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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해 : 장엄 성체조배 기도 지향과 전례자료(주교회의) ‘신앙의 해’의 주요 행사 - 성체조배와 생명의 복음(Evangelium

작성자은총의샘|작성시간26.06.19|조회수66 목록 댓글 0

신앙의 해 : 장엄 성체조배 기도 지향과 전례자료(주교회의)

신앙의 해의 주요 행사 - 성체조배와 생명의 복음(Evangelium Vitae)의 날

 

교황님과 함께하는 성체조배 유튜브 생중계 보기(한국시각 62일 오후 1150분부터)

일시 : 201362일 로마시각 오후 5(한국시각 12)

주제 : “한 분이신 주님, 하나인 믿음

교황님 기도 지향

첫 번째 기도 지향 : “오늘 전 세계에 널리 퍼져 있는 교회가 일치의 표징인 지극히 거룩한 성체를 조배하며 하나가 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주님의 교회가 그 어느 때보다 더욱 겸손하게 당신의 말씀에 귀 기울여, 세상 앞에 그 어느 때보다 더욱 아름답고 흠 없게 거룩하고 티 없이 깨끗하게설 수 있게 해 주시기를 주님께 간구합니다. 그리하여 교회의 충실한 선포를 통하여, 자비를 베푸시는 구원의 말씀이 세상에 널리 울려 퍼지게 하시고, 고통과 아픔에 온전한 의미를 주고 기쁨과 평온을 되찾게 해 주는 사랑이 점차 자라나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

두 번째 기도 지향 : “세상에서 아직도 종살이의 고통을 겪는 사람들, 전쟁과 인신 매매, 마약 밀매, 강제 노동의 희생자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또한 온갖 폭력으로 고통 받는 어린이들과 여자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교회가 깨어 기도하는 가운데, 도움을 청하는 그들의 소리 없는 외침을 듣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폭력에 휘둘리는 수많은 형제자매들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또한 불안정한 경제 상황 속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을 위하여, 특별히 실업자들과 노인들, 이주민들과 노숙자, 감옥에 갇힌 이, 소외된 이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그리하여 교회가 기도하면서 그들 곁에 함께 있음을 깨닫고, 그들이 위로와 도움을 받아 희망을 얻고, 힘과 용기를 내어 인간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게 되기를 빕니다.”

장엄 성체 조배 자료 안내

1. 신앙의 해 홈페이지에 게시된 장엄 성체 조배 전례문(PDF 파일)과 교황청 전례문의 번역문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2. 위 번역문을 바탕으로 장엄성체조배자료(주교회의)을 준비하였습니다. 이 성체 조배 자료는 교황청의 성체 조배 예식을 바탕으로 한국천주교주교회의에서 발행한 성시간(2012)과 수원교구의 자료를 참고하였습니다.

바티칸 통신(Vatican Information Service), 2013528일자

2013528일 오전 교황청 공보실에서 교황청 새복음화촉진평의회의 의장 리노 피지켈라 대주교는 사무총장 호세 옥타비오 루이즈 아레나스 대주교와 사무처장 그레이엄 벨 몬시뇰과 함께 신앙의 해의 두 가지 주요 행사인 온 세계가 함께 드리는 성체 조배생명의 복음의 날에 대하여 설명하였다.

이 두 행사 가운데 첫 번째 행사인 온 세계가 함께 드리는 성체 조배는 로마 시간으로 다음 주일인 62일 오후 5시부터 6시까지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생중계될 것이다. “한 분이신 주님, 하나인 믿음이라는 주제는 이번 행사의 특징인 깊은 일치를 보여 주기 위하여 채택되었다. 피지켈라 대주교는 이 행사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이는 교회 역사상 처음으로 이루어지는 행사입니다. 이 때문에라도 가히 역사적이라고 일컬을 만합니다. 전 세계 모든 주교좌 성당이 로마와 함께 한 시간 동안 교황님과 함께 성체 조배를 드리게 될 것입니다. 이미 여러 주교좌 성당과 주교회의, 본당, 평신도 단체, 수도회, 특히 봉쇄 수도회들이 이 행사에 놀라운 호응을 보여 주었습니다.”

쿡 아일랜드를 비롯하여 칠레, 부르키나파소, 대만, 이라크, 방글라데시, 미국, 필리핀의 여러 교구들도 성 베드로 대성전과 동시에 교황님의 지향에 따라 기도하게 될 것이다. 교황님의 첫 번째 기도 지향은 이러하다. “오늘 전 세계에 널리 퍼져 있는 교회가 일치의 표징인 지극히 거룩한 성체를 조배하며 하나가 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주님의 교회가 그 어느 때보다 더욱 겸손하게 당신의 말씀에 귀 기울여, 세상 앞에 그 어느 때보다 더욱 아름답고 흠 없게 거룩하고 티 없이 깨끗하게설 수 있게 해 주시기를 주님께 간구합니다. 그리하여 교회의 충실한 선포를 통하여, 자비를 베푸시는 구원의 말씀이 세상에 널리 울려 퍼지게 하시고, 고통과 아픔에 온전한 의미를 주고 기쁨과 평온을 되찾게 해 주는 사랑이 점차 자라나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두 번째 기도 지향은 이러하다. “세상에서 아직도 종살이의 고통을 겪는 사람들, 전쟁과 인신 매매, 마약 밀매, 강제 노동의 희생자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또한 온갖 폭력으로 고통 받는 어린이들과 여자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교회가 깨어 기도하는 가운데, 도움을 청하는 그들의 소리 없는 외침을 듣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폭력에 휘둘리는 수많은 형제자매들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또한 불안정한 경제 상황 속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을 위하여, 특별히 실업자들과 노인들, 이주민들과 노숙자, 감옥에 갇힌 이, 소외된 이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그리하여 교회가 기도하면서 그들 곁에 함께 있음을 깨닫고, 그들이 위로와 도움을 받아 희망을 얻고, 힘과 용기를 내어 인간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게 되기를 빕니다.”

2013615일과 16일에는 생명의 복음의 날믿음으로 생명을 얻게 하소서라는 주제로 열릴 예정이다. 피지켈라 대주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인간 생명의 존엄과 존중과 증진에 대한 교회의 투신을 중심으로 하는 원대한 주제를 살펴보고자 이 날을 생명의 복음의 날이라 부르게 된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616일 오전 1030분에 생명의 백성전체와 함께 거행하는 주일 미사를 집전하시어, 그들과 미사에 함께 할 모든 아픈 이들에게 담화를 전하며 관심어린 애정을 보여 주실 것입니다. 다른 행사들처럼, 이 행사도 신앙의 해의 전통 양식을 따라 이루어질 것입니다. 2013615일 토요일 오후 2시에서 5시까지 성 베드로의 무덤을 순례하고, 원하는 이들은 고해성사를 보고 성체조배를 합니다. 또한 토요일 오전에는 로마 인근의 여러 성당에서 다양한 언어권의 단체들을 위한 교리교육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2013615일 토요일 저녁 830분부터, “화해의 길(Via della Conciliazione)을 따라 성 베드로 광장까지 침묵 속에 촛불 행렬을 하면서, 인간 생명과 그 침해할 수 없는 가치라는 주제에 대하여 사람들의 주의를 환기시키고자 합니다. 촛불 행렬은 성 베드로 광장에서 몇 가지 뜻 깊은 증언을 나누는 것으로 마무리될 것입니다. 이미 미국, 독일, 일본, 헝가리, 루마니아, 스페인, 프랑스, 캐나다, 뉴질랜드, 아르헨티나, 영국, 벨기에, 슬로바키아, 코스타리카, 포르투갈, 호주에서 여러 단체들이 참가 신청을 하였습니다. 또한 가정들뿐만 아니라, 각국 주교회의, 교구, 본당, 수도회, 신학교, 그리고 몰타 기사단과 같은 인도적인 구호 단체, 교회 운동 단체, 우니탈시(Unitalsi)나 적십자(Red Cross)와 같은 단체들, 생명 수호 단체들의 대표를 비롯하여 특별한 단체나 종교에 소속되어 있지 않으나 생명 증진과 수호에 관심이 있는 많은 이들도 참여할 것입니다."

 

 

 

신앙의 해 : 장엄 성체조배 기도 지향과 전례자료(주교회의)

신앙의 해의 주요 행사 - 성체조배와 생명의 복음(Evangelium Vitae)의 날

 

교황님과 함께하는 성체조배 유튜브 생중계 보기(한국시각 62일 오후 1150분부터)

일시 : 201362일 로마시각 오후 5(한국시각 12)

주제 : “한 분이신 주님, 하나인 믿음

교황님 기도 지향

첫 번째 기도 지향 : “오늘 전 세계에 널리 퍼져 있는 교회가 일치의 표징인 지극히 거룩한 성체를 조배하며 하나가 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주님의 교회가 그 어느 때보다 더욱 겸손하게 당신의 말씀에 귀 기울여, 세상 앞에 그 어느 때보다 더욱 아름답고 흠 없게 거룩하고 티 없이 깨끗하게설 수 있게 해 주시기를 주님께 간구합니다. 그리하여 교회의 충실한 선포를 통하여, 자비를 베푸시는 구원의 말씀이 세상에 널리 울려 퍼지게 하시고, 고통과 아픔에 온전한 의미를 주고 기쁨과 평온을 되찾게 해 주는 사랑이 점차 자라나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

두 번째 기도 지향 : “세상에서 아직도 종살이의 고통을 겪는 사람들, 전쟁과 인신 매매, 마약 밀매, 강제 노동의 희생자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또한 온갖 폭력으로 고통 받는 어린이들과 여자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교회가 깨어 기도하는 가운데, 도움을 청하는 그들의 소리 없는 외침을 듣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폭력에 휘둘리는 수많은 형제자매들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또한 불안정한 경제 상황 속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을 위하여, 특별히 실업자들과 노인들, 이주민들과 노숙자, 감옥에 갇힌 이, 소외된 이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그리하여 교회가 기도하면서 그들 곁에 함께 있음을 깨닫고, 그들이 위로와 도움을 받아 희망을 얻고, 힘과 용기를 내어 인간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게 되기를 빕니다.”

장엄 성체 조배 자료 안내

1. 신앙의 해 홈페이지에 게시된 장엄 성체 조배 전례문(PDF 파일)과 교황청 전례문의 번역문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2. 위 번역문을 바탕으로 장엄성체조배자료(주교회의)을 준비하였습니다. 이 성체 조배 자료는 교황청의 성체 조배 예식을 바탕으로 한국천주교주교회의에서 발행한 성시간(2012)과 수원교구의 자료를 참고하였습니다.

바티칸 통신(Vatican Information Service), 2013528일자

2013528일 오전 교황청 공보실에서 교황청 새복음화촉진평의회의 의장 리노 피지켈라 대주교는 사무총장 호세 옥타비오 루이즈 아레나스 대주교와 사무처장 그레이엄 벨 몬시뇰과 함께 신앙의 해의 두 가지 주요 행사인 온 세계가 함께 드리는 성체 조배생명의 복음의 날에 대하여 설명하였다.

이 두 행사 가운데 첫 번째 행사인 온 세계가 함께 드리는 성체 조배는 로마 시간으로 다음 주일인 62일 오후 5시부터 6시까지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생중계될 것이다. “한 분이신 주님, 하나인 믿음이라는 주제는 이번 행사의 특징인 깊은 일치를 보여 주기 위하여 채택되었다. 피지켈라 대주교는 이 행사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이는 교회 역사상 처음으로 이루어지는 행사입니다. 이 때문에라도 가히 역사적이라고 일컬을 만합니다. 전 세계 모든 주교좌 성당이 로마와 함께 한 시간 동안 교황님과 함께 성체 조배를 드리게 될 것입니다. 이미 여러 주교좌 성당과 주교회의, 본당, 평신도 단체, 수도회, 특히 봉쇄 수도회들이 이 행사에 놀라운 호응을 보여 주었습니다.”

쿡 아일랜드를 비롯하여 칠레, 부르키나파소, 대만, 이라크, 방글라데시, 미국, 필리핀의 여러 교구들도 성 베드로 대성전과 동시에 교황님의 지향에 따라 기도하게 될 것이다. 교황님의 첫 번째 기도 지향은 이러하다. “오늘 전 세계에 널리 퍼져 있는 교회가 일치의 표징인 지극히 거룩한 성체를 조배하며 하나가 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주님의 교회가 그 어느 때보다 더욱 겸손하게 당신의 말씀에 귀 기울여, 세상 앞에 그 어느 때보다 더욱 아름답고 흠 없게 거룩하고 티 없이 깨끗하게설 수 있게 해 주시기를 주님께 간구합니다. 그리하여 교회의 충실한 선포를 통하여, 자비를 베푸시는 구원의 말씀이 세상에 널리 울려 퍼지게 하시고, 고통과 아픔에 온전한 의미를 주고 기쁨과 평온을 되찾게 해 주는 사랑이 점차 자라나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두 번째 기도 지향은 이러하다. “세상에서 아직도 종살이의 고통을 겪는 사람들, 전쟁과 인신 매매, 마약 밀매, 강제 노동의 희생자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또한 온갖 폭력으로 고통 받는 어린이들과 여자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교회가 깨어 기도하는 가운데, 도움을 청하는 그들의 소리 없는 외침을 듣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폭력에 휘둘리는 수많은 형제자매들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또한 불안정한 경제 상황 속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을 위하여, 특별히 실업자들과 노인들, 이주민들과 노숙자, 감옥에 갇힌 이, 소외된 이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그리하여 교회가 기도하면서 그들 곁에 함께 있음을 깨닫고, 그들이 위로와 도움을 받아 희망을 얻고, 힘과 용기를 내어 인간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게 되기를 빕니다.”

2013615일과 16일에는 생명의 복음의 날믿음으로 생명을 얻게 하소서라는 주제로 열릴 예정이다. 피지켈라 대주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인간 생명의 존엄과 존중과 증진에 대한 교회의 투신을 중심으로 하는 원대한 주제를 살펴보고자 이 날을 생명의 복음의 날이라 부르게 된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616일 오전 1030분에 생명의 백성전체와 함께 거행하는 주일 미사를 집전하시어, 그들과 미사에 함께 할 모든 아픈 이들에게 담화를 전하며 관심어린 애정을 보여 주실 것입니다. 다른 행사들처럼, 이 행사도 신앙의 해의 전통 양식을 따라 이루어질 것입니다. 2013615일 토요일 오후 2시에서 5시까지 성 베드로의 무덤을 순례하고, 원하는 이들은 고해성사를 보고 성체조배를 합니다. 또한 토요일 오전에는 로마 인근의 여러 성당에서 다양한 언어권의 단체들을 위한 교리교육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2013615일 토요일 저녁 830분부터, “화해의 길(Via della Conciliazione)을 따라 성 베드로 광장까지 침묵 속에 촛불 행렬을 하면서, 인간 생명과 그 침해할 수 없는 가치라는 주제에 대하여 사람들의 주의를 환기시키고자 합니다. 촛불 행렬은 성 베드로 광장에서 몇 가지 뜻 깊은 증언을 나누는 것으로 마무리될 것입니다. 이미 미국, 독일, 일본, 헝가리, 루마니아, 스페인, 프랑스, 캐나다, 뉴질랜드, 아르헨티나, 영국, 벨기에, 슬로바키아, 코스타리카, 포르투갈, 호주에서 여러 단체들이 참가 신청을 하였습니다. 또한 가정들뿐만 아니라, 각국 주교회의, 교구, 본당, 수도회, 신학교, 그리고 몰타 기사단과 같은 인도적인 구호 단체, 교회 운동 단체, 우니탈시(Unitalsi)나 적십자(Red Cross)와 같은 단체들, 생명 수호 단체들의 대표를 비롯하여 특별한 단체나 종교에 소속되어 있지 않으나 생명 증진과 수호에 관심이 있는 많은 이들도 참여할 것입니다."

 

 

 

[알기 쉬운 교리상식] 밥이 되신 예수님 - 성체성사

 

가족 중에 신부가 있으면 편리한 점도 더러 있다. 집안에 크고 작은 행사가 있을 때 가족이 모여서 미사를 함께 봉헌할 수 있는 것도 프리미엄이라고 할 수 있으니 말이다. 오래 전 부제 때 형 신부와 함께 가족미사를 봉헌할 때의 일이다. 성찬의 전례를 시작하려는데 조카 두 녀석이 제대 앞으로 바짝 다가앉더니만 성작과 성반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것이었다. 성작을 들었다가 놓으니 그 안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잠시 후 호기심 어린 눈빛이 실망의 눈빛으로 바뀌고 뒤로 물러나 앉는다. 미사 후에 왜 그랬냐고 물어보니 그중 큰아이의 답은 이랬다. “거짓말이야. 그대로네 뭐.” 빵과 포도주가 왜 살과 피로 변하지 않고 그대로 있느냐는 거다. 당시 다섯 살짜리가 이해한 성체성사이다.

성체성사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기 전날 저녁에 제자들과 함께 가지신 최후만찬을 기념하는 예식이다. 교회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충실히 지켜 초대교회부터 지금까지 이 예식을 거행해 왔고 교회가 존속하는 한 이 예식은 계속될 것이다.

최후만찬은 유다인들의 식사순서대로 진행되었다. 예수께서는 만찬을 시작하시면서 빵을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주시며 말씀하셨다. “이는 너희를 위한 내 몸이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그리고 식사가 끝날 무렵에 같은 모양으로 잔을 들어 말씀하셨다. “이 잔은 내 피로 맺은 새 계약이다. 너희는 이 잔을 마실 때마다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1코린 11,23-25 참조) 시간이 흐르면서 차츰 식사와 나눔이 분리되기는 하였지만 성체성사의 기본은 먹고 마시는 일, 즉 식사의 형태이다. 빵을 떼어 나누어 먹고 포도주 잔을 나누어 마시는 행위를 통하여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과 우리가 일치하는 것이 성체성사이다.

그런데 교회의 역사를 보면 먹고 마시는 행위보다 거룩하신 몸(聖體)이 강조되면서 영성체를 기피하던 시기도 있었다. ‘죄 많은 내가 어떻게 감히 지존하신 주님의 몸을 모실 수가 있는가?’하면서 영성체보다는 성체조배나 성체거동 같은 신심행위가 권유되었었다. 오죽했으면 신자는 적어도 일 년에 한번 고해성사와 영성체를 해야 한다.’는 교회법이 생겨났을까?

영성체를 회피하는 것은 제정자이신 예수님의 의도와 정반대의 태도이다. 대죄 중에 있는 자는 마땅히 고해성사 후에 영성체를 해야겠지만, 소죄 중에 있는 자에게는 치유의 성사이기도 하다. 우리는 영성체하기 전에 이런 기도를 한다. “주님, 제 안에 주님을 모시기에 합당하지 않사오나, 한 말씀만 하소서. 제가 곧 나으리이다.” 주님과 멀어지는 것이 죄라면 주님과 일치하는 성체성사야말로 치유의 성사가 아니겠는가?

성체성사는 교회의 친교성(koinonia)을 잘 드러내 준다. 교회의 일치는 세례성사를 통해서도 드러나지만 성체성사를 통해서 분명해진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우리가 축복하는 그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동참하는 것이 아닙니까? 우리가 떼는 빵은 그리스도의 몸에 동참하는 것이 아닙니까? 빵이 하나이므로 우리는 여럿일지라도 한 몸입니다. 우리 모두 한 빵을 함께 나누기 때문입니다.”(1코린 10,16-17) 성체성사를 통하여 내가 개인적으로 주님과 일치하기도 하지만, 같은 예수님의 몸을 나누는 형제들과도 일치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체성사를 통하여 교회는 성장하고, 일치되고 성화된다.

성체성사는 우리의 삶으로 드러나야 한다. 자기희생의 삶, 자기 봉헌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이다.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먹고 마심으로써 그리스도의 몸이 된 공동체는 그리스도의 삶을 살아야 한다. 바오로 사도가 수도 없이 강조하기도 하였지만, 요한복음서가 전하는 바를 새겨들어야겠다. 마태오나 마르코, 루카복음서가 전하는 최후만찬 기사는 내용이 거의 일치한다. 하지만 요한복음서에서는 같은 대목에서 성체성사 설정 부분이 빠져 있다. 그 대신에 만찬 후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성체성사가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주님의 전적인 자기희생의 성찬례가 형식에 그치지 않도록, 오히려 성체성사의 영적인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봉사의 모범을 보여 주셨고 성찬례에 참여하는 우리들도 그렇게 하라고 명하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발을 다 씻어주시고 나서 제자들에게도 서로 발을 씻어 주라고 하셨다. 성체성사의 삶을 산다는 것은 서로를 위한 희생의 삶이고 봉사의 삶이다. 성체성사를 통하여 예수님과 일치한 사람은 예수님께서 명하신 삶을 살아야 한다. 요한복음서의 성찬례는 사랑의 새 계명으로 마무리된다.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어떻게 해서 빵이 예수님의 몸이 되고 포도주가 예수님의 피가 되는지를 설명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런 일들은 신학자들에게 맡겨 두고, 예수님께서 그렇게 약속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그 사실만 믿고 따르면 된다. 빵을 들고 당신 몸이라 하셨고, 포도주를 들고 당신 피라 하셨다.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이것을 계속 행하라고 하셨다.

우리가 음식을 바꾸면 체질이 변한다고 한다. 마음을 다하여 영성체를 자주 하다 보면 우리의 영적인 체질도 변할 것이다.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처럼 말이다.

 

 

 

 

[경향 돋보기] 올해는 성체성사의 해

성체성사의 삶

20여 년 전 고해성사를 전화로 볼 수 없는지, 또는 전화로 상담을 하고선 이것을 고해성사로 대체하면 되지 않겠는지 하는 질문을 가끔 받곤 하였다. 각종 통신매체들이 발달한 요즘에도 화상매체를 통한 갖가지 종교의식들에 대해 궁금해 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편리한 매체를 이용하면 될 텐데 교회의 예배형태는 현대인의 생활형태에 도무지 맞추려 하지 않는다고 불평도 할 것이다. 인터넷을 활용하면 순식간에 온갖 정보를 검색해 내어 생활에 활용할 수 있는데, 교회에선 소공동체니 거룩한 독서니 하면서 자꾸만 옛사람들의 생활형태를 얘기하니, 이래서야 현대인에게 도무지 무엇을 줄 수 있겠는지 한탄하기도 할 것이다. 검은 천을 뒤집어쓰고 여기를 보세요. 하나. . !” 하며 사진을 찍던 시절에는 사진이 귀했으나, 이젠 디지털 카메라가 널리 보급되어 무조건 찍고 본다.

우리의 생활환경이 이렇게 변했다.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고리타분한 옛날이야기를 늘어놓으면 무슨 재미가 있을까마는 그래도 수천 년 전부터 오늘날까지 변하지 않고 내려오는 성체성사에 대한 얘기를 해야겠다. 왜냐하면 성체성사의 삶이야말로 우리 삶의 의미를 밝혀주고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깨우쳐준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러한 점을 강조하시려고 교황 성하께서 지난해 10월 멕시코 과달라하라에서 개최된 세계성체대회를 시작으로 올 10월까지 한 해 동안을 성체성사의 해로 선포하셨지 않은가.

성체성사는 생명의 신비

성체성사의 핵심적인 내용은 너를 살리기 위해 나는 죽는다.’는 생명의 신비이다. 예수님께서는 돌아가시기 전날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가지시는 자리에서 성체성사를 세우시면서, 당신이 떼어주는 빵과 돌려 마시도록 건네는 포도주가 죽음에 붙여진 자신의 몸과 피임을 분명히 밝히신다. “받아먹어라. 이것은 내 몸이다. 모두 돌려 마셔라. 죄를 용서해 주려고 많은 사람을 위해 쏟는 내 계약의 피다“(마태 26,26-29; 마르 14,22-26; 루가 22,15-20; 1고린 11,23-26 참조).

모든 생명체는 한 생명체의 죽음에서 태어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누릴 것이다.”(요한 6,54). 우리가 먹는 음식들은 생명체들이 우리의 먹이가 된 것이다. 그렇듯이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고자 우리의 먹이가 되신 것이다.

따라서 성체성사의 또 다른 핵심적인 내용은, 예수님을 먹이로 먹는 사람은 예수님과 하나가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요한 복음사가가 전해주는 하느님의 엄청난 신비를 깨닫지 못하고 살아가기가 일쑤이다. 하느님께서 인간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오셨고, 인간이 되신 하느님께서 성체성사로 이제 우리 안에 머무신다(요한 1,14; 6,56 참조).

성체를 먹는 사람은 예수님이 된다

우리가 받아먹는 성체는 그래서 예수님의 현존 그 자체이다. 예수님께서는 동정녀에게서 태어나시어 세례를 받으시고, 40일 단식하시고 광야에서 유혹을 받으셨으며,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는 가운데 병자를 치유하시고 제자들을 뽑아 가르치셨다. 또한 하느님을 모독한 불경한 죄인으로 몰려 체포되시어 사형선고를 받으시고,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타 산상에 올라 처형되시어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바로 그 예수님께서 지금 우리와 함께 계시는 현존이 성체이다.

교회는 나를 기억하여 이 예를 행하여라.”(루가 22,19; 1고린 11,24.25)는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성실하게 성체성사를 거행하고 있다. 교회가 어떤 역경과 박해 속에서도 수천 년 동안 성체성사를 중단 없이 거행해 오고 있는 이유는 성체성사만큼 더 확실히 예수님의 기억을 재현하는 의식이 없기 때문이다. 기억의 성서적 의미는 한마디로 현존이다.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이를 행하는 행위 자체가 당신의 현존임을 의미한다.

결론은 어떻게 되는가?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살과 피를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의 음식과 음료로 주셨고, 그 음식과 음료는 그분의 현존을 지금 이 자리에서 이루는 성체성사이며, 성체를 받아먹는 사람 안에 예수님께서 현존하신다는 것이다. 결국 성체를 먹는 사람이 예수님의 현존이 된다는 것이므로 논리적으로는 성체를 먹는 사람은 예수님이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과연 예수님의 현존인가

성체를 먹는 우리가 과연 예수님의 현존인지 우리의 모습을 바라보면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이 많이 든다. 우리의 모습은 웰빙이다 뭐다 하는 갑남을녀 가운데 하나이고, 내적인 완성보다는 외적인 화려함에 편승한 모습이다. 갖가지 고통을 겪고 있는 이들이 주위에 지천으로 있음에도 나의 이익에는 눈을 부릅뜨면서 그들에겐 눈을 감고 마는 이기적이고 이해타산적인 모습이 우리이다. 사랑하기보다 사랑받으려 하고, 이해하기보다 이해받으려는 모습이 우리의 현재 모습이 아닐까. 이런 모습은 예수님의 현존의 모습이 아니라, 오히려 예수님의 현존을 파괴하고 방해하는 모습이다.

벗을 위해 자신을 전적으로 봉헌하신 예수님을 먹는 우리는 예수님으로 살아야 한다. 최후만찬 때에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신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에게 한 일을 너희도 그대로 하라고 본을 보여주신 것이다.”(요한 13,15)라고 말씀하셨다. 이 최후만찬에서 성체성사를 세우신 예수님께서 이젠 당신의 몸과 피를 먹고 마시는 이는 성체성사가 되도록 당신께서 본을 보이셨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보이신 본은 이웃을 섬기고자 자신의 목숨을 바치는 봉사의 본이다. 이러한 섬김의 죽음이 성체성사의 의미의 본질을 이루고 있다.

벗을 위하여 제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요한 15,13). 예수님의 성체를 먹는 사람은 예수님과 하나가 되어 예수님의 삶을 살아야 한다. 예수님은 영원한 생명의 양식이 되고자 한 덩어리의 빵이 되셨다. ‘먹이로 너에게 건네진 나의 존재가 되셨다. 성체를 먹는 사람도 예수님처럼 제대 위에 올려진 한 덩어리의 빵, 먹이로 너에게 건네진 존재가 되어야 한다. 사귐과 섬김과 나눔의 삶이 곧 성체성사의 결실이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사, 지금 여기에예수 그리스도를 현존시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현존이 교회의 존재 이유이고 목적이다. 그래서 교회가 있는 곳에 성체성사가 있고, 성체성사가 있는 곳에 교회가 있다. 이 모든 것은 예수님의 성체를 먹는 우리가 예수님의 현존으로 변화될 때 가능한 것이다. 예수님과 사귐을 이루고 그분의 섬김과 나눔의 삶이 우리의 일상이 될 때만이 가능하다.

예수님이 세상을 위해 한 덩어리의 빵으로 자신을 건네셨듯이, 이제 예수님의 현존인 우리가 세상을 위한 한 덩어리의 빵으로 우리 자신을 건네야겠다.

 

 

 

 

 

[전례] 미사 없이 성체께 드리는 공경 (1)

성체 신비 공경 훈령(Eucharisticum Mysterium)”(1967. 5. 25)의 제3부는 미사를 드리지 않을 때 성체께 드리는 공경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이 훈령은 1973621일 경신성성의 교령과 함께 공포한 미사 없는 영성체와 성체신심 예식서(De Sacra Communione et De Cultu Mysterii Eucharistici extra Missam)”로 결실을 맺었다.

미사 때가 아닌 보통 때 성체께 공경을 드리는 신심은 그리스도께서 성체 안에 실제로 현존하신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프로테스탄트들의 주장을 반박하는 데에서 크게 발전하였다. 교회는 이러한 성체신심과 관련하여 성체 안에 그리스도께서 영속적으로 현존하신다는 교의를 밝히면서 성체신심이 믿음의 성장과 그리스도인의 삶에 미치는 귀중한 가치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1. 성체 신비 공경

성체 공경은 그리스도께서 그 형상 안에 실제로 현존하신다는 사실에서 기인한다. 이 교의는 아주 오랜 전통을 지닌 것이다. 그러나 성체 신비 공경이라는 표현은 고대 전승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말이다. “하늘 신비의 공경이라는 표현을 찾아볼 수 있더라도, 그것은 오늘 우리가 뜻하는 성체조배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성체성사 거행 전체, 곧 미사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러나 트리엔트 공의회 이후 신학은 성체조배를 가리키는 말로 성체 신비 공경이라는 표현을 썼다. 더 나아가 성체 신비 공경 훈령은 제3부의 제목을 영속하는 성사인 성체조배에 대하여(De cultu Sanctissimae Eucharistiae prout est Sacramentum permanens)”라고 함으로써 성체 공경을 명백하게 성사로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이 훈령은 여러 곳에서 성체 안에 현존하시는 그리스도를 예배한다(co1ere), 흠숭한다(adorare), 공경한다(honorare)’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우리는 흠숭의 뜻을 지닌 여러 표현들이 성체께 대해 쓰여지고 있는 것을 이 훈령의 여러 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in cultu sacrarum Specierum”(3g) “latriae cultum”(3f), “adorationis cultus”(49), “cultus sanctissimi Sacramenti”(60) .

하느님과 그리스도께 드리는 흠숭을 가리키는 표현들이 성체께 쓰여지고 있다. 성체와 그리스도의 완전한 동일성에 대한 신앙이 표현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성체를 공경하며 그리스도를 흠숭한다는 것이다. “미사 후에 성체를 모셔두는 두 번째 목적은 미사를 드리는 때가 아니라도 영성체를 시켜주고, 형상 안에 감추어 계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흠숭하려는 것이다”(49). 또한 이 훈령은 성체 안에 계신 그리스도께 대한 예배는 부분적인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것은 미사 거행 전체를 통해서 그리스도께 드리는 예배와 동일한 가치를 지닌다는 것이다. “미사 거행 안에서나 미사 후에 미사 성제의 은총을 전파하고자 보존한 거룩한 형상께 예배를 드릴 때나 똑같이 완전한 성체 신비로 생각하여야 한다”(3g).

2. 영성체와 미사 성제의 연결

거룩한 제사인 성체성사의 중심은 영성체이다. 영성체와 제사는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는 완전히 결합되어 있는 하나이다. “미사에서 제사와 거룩한 잔치는 아주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같은 신비에 속한다”(3b).

그리고 빵과 포도주를 가지고 행하는 잔치의 형식과 성체와 성혈을 이루는 말씀(“이는 내 몸이다. 너희는 받아 먹어라. 이는 내 피다. 너희는 받아 마셔라.”)은 제사가 영성체를 지향하고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그것이 예수님의 뜻이었다. “하느님의 백성은 주님의 살과 피를 모심으로써 파스카 제사의 효과를 얻고 새로운 계약을 새롭게 한다”(3a).

성체 신비 공경훈령은 잔치의 형식으로 거행하는 성체성사를 강조하면서 좁은 의미의 성사의 열매들을 얻기 위한 길이라는 뜻에서 영성체와 제사의 밀접한 관련성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이러한 밀접한 관련성을 생각하면 그저 습관적으로 영성체를 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미사에는 참여하면서 영성체를 하지 않는 데에도 커다란 문제가 있다. 제사에서 영성체가 갖는 중요성을 간과하는 태도에는 분명 문제가 있다. 영성체를 통해서 우리는 성체성사의 거행으로 봉헌되는 그리스도의 몸과 온전히 하나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신자들은 죄를 짓지 않도록 노력하며 죄를 지었을 때는 곧바로 참회하고 고해성사를 통하여 하느님과 형제들과 화해하여야 한다.

이것은 첫영성체를 준비하는 어린이들의 교리교육 때부터 잊지 말아야 할 사실임을 이 훈령은 지적하고 있다. “특히 어린이들의 첫영성체를 준비시킬 때부터 이 모든 것을 생각하여 그들의 첫영성체가 참으로 그리스도의 몸과 온전히 하나가 된다는 사실을 표현해야 한다”(14). 또 다른 자리에서는 주님의 만찬에 참여함은 언제나 우리를 위해 당신 자신을 아버지께 제물로 바치시는 그리스도를 실제로 모신다는 것이다.”(3b)라고 가르쳐주고 있다.

영성체와 성찬례의 일치를 분리시킬 수 없다. 성체는 우리 안에 들어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실제로 이루신 제사 안으로 우리를 이끈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구속 공로를 나누어 받는다. 이렇게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심으로써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원의 은혜를 나누어 받게 되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정하신 방법이다.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 먹어라.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줄 내 몸이다.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 마셔라. 이는 새롭고 영원한 계약을 맺는 내 피의 잔이니 죄를 사하여 주려고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 흘릴 피다.” 이것은 성체 신비 공경훈령의 기초를 이루고 있는 신학이고, 이러한 신학은 영성체 규정의 규범이 되었다. “신자들은 영성체로써 성체성사 거행에 더욱 완전하게 참여한다”(31). 여기에서 자연적으로 현재 거행되고 있는 미사에서 축성한 성체를 모시도록 하는 규정이 나오게 된다. “외적으로 보아 영성체로써 현재 거행하고 있는 제사에 참여한다는 사실을 더 분명하게 드러내도록 신자들이 같은 미사에서 축성한 성체를 받아 모시도록 배려할 것이다”(31). 또 이어서 훈령은 완전한 표징의 성격이 드려나도록 양형 영성체를 할 수 있는 기회를 확대하고 있다. “외적인 표징이라는 뜻에서 거룩한 영성체는 양형으로 이루어질 때에 더 충만한 형태를 지닌다. 양형 영성체는 성찬의 표징을 더 완전하게 나타내는 것이며 그리스도의 피로써 새롭고 영원한 계약을 맺으신 하느님의 뜻을 더욱 명백히 드러내고 성찬과 아버지의 나라에서 갖게 될 종말론적인 잔치의 연관성을 더욱 분명하게 표현한다”(32).

그러나 한 가지 형상으로만 영성체를 한다 해서 불완전한 영성체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도 확인시켜 주고 있다. “어느 한 가지 형상으로 영성체를 하든지 완전한 그리스도를 전체로 받아 모시는 것이며, 참 성체를 받는다는 트리엔트 공의회의 원칙은 변함이 없다”(32). [경향잡지, 19972월호, 김종수 요한 신부(주교회의 사무총장)]

 

 

 

[전례] 미사 없이 성체께 드리는 공경 (2)

3. 미사 거행 없이 하는 영성체

성체 신비 공경훈령은 영성체와 성찬례의 일치를 드러낼 수 있도록 현재 거행되고 있는 미사에서 축성한 성체를 받아 모시도록 가르쳐야 하지만 정당한 이유가 있다면 영성체를 청하는 교우들에게 미사 때가 아니더라도 성체를 영해 주어야 한다고 가르친다(33). 그러나 이 훈령은 미사 없이 성체를 영해 줄 때 말씀 전례를 짧게 거행하도록 권고한다. 어떤 방식으로 영성체를 하든 그리스도와 일치하고 또한 미사로 거행된 그리스도의 희생제사에 일치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밝혀주어야 한다. 사실 성체를 보존하는 목적은 미사에 참여하지 못한 사람들을 미사를 통하여 재현된 그리스도의 제사에 일치시키는 데에 있다(3e항 참조). 성찬례가 희생제사를 드리시는(in atto)’ 그리스도를 현존하시게 한다면, 따로 보존하고 있는 성체는 희생제사를 드리신(in stato)’ 그리스도를 계속해서 현존하시게 한다.

어떤 이유로든 미사에 참여할 수 없는 신자들도 영성체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희생제사에 참여하는 은총을 누린다. 노자성체는 그 좋은 예다. “노자 영성체는 미사 성제에서 거행되는 파스카 신비, 곧 주님의 죽음과 아버지께 넘어가신 그분의 신비에 참여하는 특별한 표징이다. 이 세상을 떠나려 하는 신자는 노자성체를 모심으로써 그리스도의 성체에서 힘을 얻고 부활의 보증을 받는다. 그러므로 어떤 이유로든지 죽을 위험에 놓인 신자들은 거룩한 성체를 받아모실 의무가 있다”(39).

영성체는 위에서 말한 대로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희생제사에 신자들을 일치시켜 줄 뿐만 아니라 신자 공동체와도 일치하게 한다. 그러므로 움직이기 불편한 노인이나 병자는 미사에 참여하지 못하더라도 영성체를 통하여 신자 공동체에 속하여 있음을 확인한다(40). 그러므로 성체 신비 공경훈령은 목자들은 중병도 아니고 곧 죽을 위험이 없다고 하더라도 병자와 노인들에게 자주 영성체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어야 한다.”(40)고 강조한다. 그리고 병자가 빵의 형상으로 영성체할 수 없다면 포도주의 형상으로 성체를 영해 주도록 권고한다(41). 이처럼 영성체는 개인의 신심으로만이 아니라 온 교회와 일치를 이루고 계신 그리스도의 구원활동에 참여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4. 성체조배

교회는 미사가 끝난 뒤에도 그리스도께서 성체 안에 실제로 현존하신다는 믿음으로 성체께 공경을 드려왔다. 빵과 포도주는 실체변화(transubstantiatio)’하여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되고, 그렇게 하여 성체 안에 그리스도께서 실체로(substantialiter)’ 현존하신다는 것이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이다. “‘모든 그리스도 신자들은 가톨릭 교회 안에 전해 내려오는 관례에 따라 이 지극히 거룩한 성체를 공경하며 참 하느님께 드려야 할 마땅한 흠숭을 드린다. 주 그리스도께서 양식이 되시려고 (성체성사를) 제정하셨다는 이유로 적게 흠숭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아무도 의심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성체 안에 계시며 흠숭을 받으실 분은 주님 자신이시고, 주님께서는 빵과 포도주의 변화를 통하여 성체 안에 실체로현존하시기 때문이다(성체 신비 공경 훈령, 3f).

교회가 성찬례를 거행할 때 그리스도께서는 말씀 안에 현존하시고 사제의 인격 안에도 현존하시며 십자가 위에서 바치신 제사를 봉헌하신다. 미사가 끝난 뒤에는 성체의 형상 안에 현존하신다. 이것이 교회가 미사가 끝난 뒤에도 성체를 감실에 모셔 병자에게 성체를 모셔 가게도 하고, 미사에 참여하지 못한 사람들이 성체께 흠숭을 드리게 하는 이유이다. “미사를 거행하지 않을 때 성당 안에 성체를 모셔두는 첫째요 본래의 목적은 노자성체를 모셔가는 데에 있고, 그 다음의 목적은 미사 때가 아니더라도 성체를 영해 주며 성체의 형상 안에 현존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흠숭하는 것임을 기억하는 것은 무익한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병자를 위하여 성체를 보존한 것이 성당에 모셔둔 하늘의 음식을 흠숭하게 된 아름다운 관습을 낳았기 때문이다.”(49). 그러므로 신자들은 성체 안에 계신 주 그리스도를 공경하도록 힘쓰고, 목자들은 여러 시간 동안 성당을 개방하여 신자들이 성체조배를 하도록 자신의 표양과 말로써 이끌어주어야 한다(50, 51항 참조).

성체 안에 그리스도께서 실제로현존하신다는 사실은 그 현존을 가능하게 하는 성찬례와 연결되고 영성체로 열매를 맺을 때 그 뜻을 온전히 실현하게 됨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미사 때가 아닌 때 하는 개인적인 성체조배는 각 개인이 그 미사의 뜻을 마음 안에 새기고 실천하게 하는 데에 도움을 주는 것이다. 신자들은 성찬례 거행에 참여하고 일상생활에서 자주 성체조배를 할 때 성체조배의 목적이 무엇인지도 깨닫게 되고 또한 성체성사의 은혜를 충만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미사 때가 아닌 때 하는 성체조배는 미사 거행에서 이루어지는 파스카 신비에 신자들을 더 밀접히 결합시켜 주는 좋은 신심행위이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신비와 그분의 지체인 교회의 신비에 우리들을 온전히 결합시켜 준다. 성찬례는 신자들의 영성체로 완성되고, 신자들은 성체조배로 성체 신비를 더 깊이 체험하며 더 성숙하게 된다.

신자들을 성체께 나아가도록 이끌어주는 신심은 신자들을 파스카 신비에 더 완전히 참여하게 하며, 그리스도께서 인성으로 당신 몸의 지체들 안에 하느님의 생명을 끊임없이 부어주시는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응답하게 한다. 또한 그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성령 안에서 그들의 전생애를 아버지께 봉헌하고 그 놀라운 교환으로 믿음과 희망과 사랑을 증진시킨다. 이로써 올바른 마음의 자세를 갖추고 열심히 주님의 기념을 거행하며 아버지께서 주신 빵을 자주 받아 모시게 된다”(50).

이처럼 미사 없이 드리는 성체조배는 성체성사의 가치를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성체의 신비를 더 잘 이해하게 하고 주님의 죽음의 기념인 성체성사를 올바로 거행할 자세를 갖추게 하며 영성체로써 성체성사의 은혜를 받아 누리게 한다. [경향잡지, 19973월호, 김종수 요한 신부(주교회의 사무총장)]

 

 

 

 

 

[전례] 미사 없이 성체께 드리는 공경 (3)

5. 성체 보존의 장소

성체 신비 공경훈령 52-57항에서는 성체를 보존하는 장소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이 지침에 따르면 같은 성당 안에는 하나의 감실을 두어야 한다(52). 그러나 이 감실은 제단 영역 안에 안치하거나 아니면 다른 적합한 장소에 둘 수 있다(54). 그렇지만 감실 안에 성체를 모셔두는 자리는 그곳이 성당이거나 소성당이거나 모두 참으로 뛰어난 자리”(53)이어야 하지만 신자들이 개인적으로 찾아와 끊임없이 성체께 조배를 드리고 기도하기에 적합한 장소여야 한다.

가능하다면 감실은 성당의 중심에서 떨어진 경당에 안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무엇보다도 혼인과 장례가 자주 거행되고 예술품과 역사적 유물을 찾는 방문객들이 많은 성당일수록 더 그러하다”(53).

그리스도께서 당신 교회 안에 현존하시는 주요 모습들은 미사 성제 안에서 드러난다. 첫째로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이름으로 모인 신자들의 회중 안에 현존하시고, 다음으로는 성서를 봉독하고 해설할 때에 당신의 말씀 안에 현존하시며, 또한 집전자의 인격 안에 현존하시고 마침내 특별한 양상으로 성체의 형상 안에 현존하심이 드러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성체 현존은 축성의 열매요 또 그렇게만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마사 거행 시작부터 미사가 거행되는 제대의 감실에는 할 수 있는 대로 외적인 표징인 성체를 모시는 않는 것이 성찬례의 본성에 더 잘 들어맞는다.” 이것은 사제가 성체를 모신 다음에 신자들이 같은 성체에서 (축성한) 주님의 몸을 받아 모시도록 하는 더욱 완전한 미사 성제의 참여를 크게 권장한다.”는 전례헌장 55항을 더 적극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모든 사목자들은, 교회 안에 현존하시는 그리스도께서는 성체 안에만 현존하는 것이 아니라 성찬례를 거행하는 동안 줄곧 그 자리에 현존해 계시며 그리스도의 성체 현존은 그 성찬례 거행의 결과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신자들은 그 미사에서 축성한 성체를 받아 모심으로써 그 사실을 더 잘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감실에 축성해 둔 성체만으로 영성체를 하다 보면 신자들이 그리스도의 죽음을 기념하는 성찬례 거행 자체를 의미없는 형식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다.

감실은 성찬례 거행의 공간이 아니라 성찬례 밖에서 이루어지는 신자들의 신심을 위한 공간이다. 그러므로 성당과 연결되는 다른 경당이나 성당의 측랑 쪽에 감실을 안치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6. 성체 공경의 여러 양식

성체 신비 공경훈령 마지막 부분은 미사 밖에서 이루어지는 성체 공경의 여러 행사와 예식들에 관하여 언급하고 있다. 58항에서는 거룩한 신심 행위에 관하여 말하고, 59항에서는 성체행렬에 관한 지침을 주고 있다. 성체현시와 성체현시를 끝내는 성체강복에 관한 지침(60-66)도 제시하고 있고, 마지막으로 성체대회에 관한 언급(67)으로 이 훈령을 끝맺고 있다. 그러나 이 훈령이 성체신심 전반에 관한 결정적인 지침을 제시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다음에 나올 실용 문서들을 통하여 구체화할 수 있도록 그 골격만을 제시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미사 밖에서 이루어지는 여러 형태의 성체신심 행사들이나 성체조배는 성체성사의 뜻을 더 잘 이해하고 일상생활에서 실천하기 위한 것임을 밝히고 있다(58). 그 행위 자체로 목적을 다 이루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분명히 기억해야 한다. 장엄한 예식과 노래로 거리를 행렬하는 성체행렬은 성체성사에 대한 믿음과 신심을 일반인들에게까지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데에 뜻이 있다(59). 지극히 거룩한 성체를 성합이나 성광에 모셔 현시하는 것은 그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현존을 깨닫고 마음으로 그분과 일치하도록 신자들의 정신을 이끌어주는 것이다”(60). 그러나 성체현시가 미사에서 유래한다는 것을 외적으로도 분명하게 알 수 있도록 성체현시를 미사 끝에 이어 하도록 권고한다. 그리고 현시 때에 할 수 있는 장식은 되도록 피하게 하고 있다. 그러한 장식이 성체성사를 우리의 음식(cibum)과 치료제(remedium), 위로제(levamen)로 세우신 그리스도의 바람을 흐려지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60).

 

 

 

성체를 현시하고 있는 동안 같은 성당 안에서 미사를 집전하는 것은 금지된다. 비록 지금까지 상반되는 허가나 전통이 있고 또 그것이 아무리 중대한 것일지라도 이 원칙은 지켜져야 한다”(61). “법의 규정에 따라 잠시 성체를 현시할 때에도 성체로 강복하기 전에 적절히 하느님 말씀의 봉독과 성가, 기도 그리고 어느 정도 계속되는 침묵 조배에 적당한 시간을 바쳐야 한다. 미사 끝에 강복만을 주기 위한 현시는 금지된다”(66). 성체현시 예식의 절차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는데, 성체현시가 신자들에게 잘 보일 수 있도록 현시대를 사용하더라도 너무 높거나 먼 거리에 올려놓지 않도록 주의를 주고 있다(62). 그것은 성체성사가 지닌, 형제들의 일치를 위한 식탁의 뜻을 잃게 한다는 것이다. 성체를 현시하는 동안에는 신자들의 정신이 온전히 주 그리스도께 집중할 수 있도록 기도하고 성서를 읽으며 강론으로 성체의 신비를 깨우쳐주도록 하고 있다. 하느님 말씀에 화답하여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거룩한 침묵을 지키는 것도 중요한 예식의 하나이다. 현시를 마칠 때에 성체로 강복을 준다. 강복 직전에 탄툼 에르고를 노래하는데, 이는 성체께 대한 다른 노래로 바꿀 수 있다(62).

각 지역 교회는 성체의 신비를 더욱 깊이 묵상하며 흠숭하기 위하여 해마다 얼마 동안의 날짜를 잡아서 장엄하게 성체를 현시할 수도 있고(63), 성체대회를 가질 수도 있다(67).

우리는 미사 없이 또는 미사 밖에서 이루어지는 성체 공경의 뜻과 여러 예식에 관련된 주의사항을 살펴보았다. 어떤 양식으로 이루어지든지 성체 공경 신심과 그 예식은 미사와 관련해서 이해해야 하고 미사 성제의 거행을 그러한 신심의 원천으로 또 지향의 정점으로 삼아야 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그럴 때에만 우리는 성체성사 안에 담긴 그리스도의 뜻을 깨달을 수 있고 또 실천할 수 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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