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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교회의 가르침] (34)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회칙 「신앙과 이성」 (상) 인간 이성이 추구하는 진리, 모든 해답은 십자가

작성자은총의샘|작성시간26.06.20|조회수55 목록 댓글 0

[현대교회의 가르침] (34)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회칙 신앙과 이성()

인간 이성이 추구하는 진리, 모든 해답은 십자가에 있다

 

1. 회칙의 배경

신앙과 이성(Fides et Ratio)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1998914일에 신앙과 이성, 신학과 철학 사이의 올바른 관계를 밝히기 위해 발표한 회칙이다.

그리스도교의 복음이 전파되기 전까지 인류는 꽤 긴 시기 동안 자연적 이성에만 의존하여 문화를 형성하며 살아 왔다. 때가 찼을 때, 전능하신 하느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만민의 구원 의지를 선포하셨다. 그 기쁜 소식은 예루살렘에서부터 주변세계로 널리 전해져야 했다. 당시는 헬레니즘-로마 시대였기 때문에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제시될 필요가 있었다. 그들의 문화 유산은 고대 그리스 철학적 사고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리스도교 초창기에 사도들과 교부들이 복음을 전파하는 가운데 자연히 초자연적 계시와 자연적 이성과의 만남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신앙과 이성, 신학과 철학 사이의 이 만남은 교부들과 중세 스콜라 신학자들을 통해 각각의 자율성을 존중하면서도 조화롭게 협력할 수 있는 방도가 마련되었다. 그러나 중세 후기를 거치면서 이처럼 어렵게 성취된 조화로운 관계가 결정적으로 파기되고 각기 분리의 길을 걷게 되었는데, 그 부정적인 귀결들이 현대에 심각하게 드러나고 있다.

개인적으로 나치정권 하에서 그리고 다음에는 공산치하에서 사상 또는 이데올로기가 개개인과 사회의 생활 전반에 엄청난 영향력을 미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체험한 교황은 자신의 사목 방향을 제시하는 첫 회칙 인간의 구원자(1979)에서부터 창조의 정점이자 구원의 대상인 인간이 바로 교회의 길임을 선언했다.(14) 최근에는 윤리 문제를 책임진 최고 책임자로서 진리의 광채(1993)생명의 복음(1995)이라는 두 개의 회칙을 통해 현대 세계의 도덕적 해이와 생명경시 풍조를 강하게 질타했다. 이제 재위 20주년을 맞아 새로운 천년기의 여명이 밝아 오는 것을 바라보면서 현대 세계로부터 위협받고 있는 진리자체에 관한 교도권의 가르침을 정리해야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교황은 처음부터 현대의 위험을 보고 있었다. “금세기는 인간에게 대재난의 세기, 대 파멸의 세기가 되어 왔다. 그것도 단지 물질적 파멸만이 아니고 도덕적 파멸, 참으로 무엇보다도 도덕적 파멸의 세기이다.”(인간의 구원자17)

회칙 신앙과 이성에서 교황이 가장 염려하고 있는 현대의 위험은 인간의 이성에 대한 신뢰 결핍이다. 현대인은 신이 없는 시대, 형이상학 부재의 시대, ‘허무주의의 시대를 살고 있다. 이 허무주의는 우리 시대의 특징인 가공할 전쟁의 경험을 통하여 정당화되어 왔다. “이런 극적인 경험은, 역사를 이성의 진보이며 모든 행복과 자유의 원천이라고 보는 합리주의적 낙관주의의 붕괴를 확인하였습니다. 그리고 20세기가 끝나가는 지금, 우리를 무섭도록 위협하고 있는 것은 절망의 유혹입니다.”(91) 교황은 현대의 상황이 레오 13세가 영원하신 아버지(Aeterni Patris, 1879)를 반포하던 19세기 말의 암울하던 시대 배경과 유사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오늘날의 상황을 검토하면서 우리는 다른 시대의 문제들이 새로운 각도로 다시 돌아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55) ‘이성의 진리 인식 능력에 대한 근본적 불신이 가장 절박한 문제이다. 형이상학의 죽음을 부르짖으며 19세기에 교회를 위협하던 합리주의 또는 맹신주의가 오늘날 다시 되살아났다. 이 모든 위험들은 새로운 천년기가 끌어안아야 할 도전들이다.(103)

그러므로 현대는 진리의 위기 시대를 살고 있다. 무엇보다도 인간 이성이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진리에 다다를 수 있다는 신뢰를 포기한 것이다. 이 모든 것의 뿌리에는 이성에 대한 근대 철학의 자족성(自足性) 선언에서 비롯된 내재의 원리’(principii immanentiae)가 있다.(91) 개신교 신학자 본회퍼의 표현대로 성년에 이른 인류가 이제까지의 신의 후견에서 벗어나 스스로 자기 길을 찾겠다고 고집하는 세속화의 노선이다.

교황은 회칙의 주제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이번 회칙에서는 진리자체라는 주제와, ‘신앙과 연결되어 있는 그 기초에 초점을 맞출까 합니다. 왜냐하면 급변하는 복잡한 현대가 특히 미래를 걸머질 젊은이들에게 그들이 정당하게 참조할 기준점이 없다는 느낌을 남길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6) 교황은 참된 지혜에 이르는 길이 우리의 인식 능력에 대한 진정한 신뢰를 회복하고, ‘철학의 충만한 품위를 복권시키는 것임을 확신하고 있다.

교황은 신앙과 이성, 신학과 철학의 관계를 복원시킬 수 있는 길을 찾기 위해서 성경의 가르침과 철학의 역사 그리고 교도권의 가르침을 역사적으로 회고한다.

2. 성경의 가르침: 함축적 철학

지혜를 갈망하는 것은 만민의 공통 특성이다. 지혜문학은 자연이라는 책을 읽음으로써 하느님을 향해 올라갈 수 있다고 말한다. “피조물의 웅대함으로 미루어 보아 우리는 그것들을 만드신 분을 알 수 있다.”(지혜 13,5) 그런데 세계와 역사의 사건들은 그 안에서 활동하시는 하느님께 대한 신앙을 고백하지 않고서는 결코 제대로 이해될 수 없다. 인간이 이성의 빛을 통해서 어느 길을 택할지를 알 수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오직 신앙의 지평 안에서 그들이 추구해야 하는 올바른 정신을 갖추고서야 비로소 방해받지 않고 신속하게 그 목표에까지 따라갈 수 있다.(16)

성경은 인간이 세계, 백성, 하느님 사이의 접점이라고 가르치고 있다.(21) 계시를 통해 다가온 신비에 자신을 개방함으로써, 이성이 그때까지는 감히 바랄 수도 없었던 깨달음이 하나의 가능성이 되는 그런 무한자의 영역으로 들어 갈 수 있다.

그러나 이성이 지켜야 하는 규칙들이 있다. 첫째, 인간 인식은 끝없는 여정이다. 둘째, 진리 취득은 개인의 정복의 결과일 수 없다. 셋째, 이성은 마땅히 하느님을 두려워해야 한다. 이 규칙들을 무시할 때 인간은 실패의 위험을 무릅쓰는 것이고, 결국 현자가 아니라 어리석은 자의 처지에 놓이게 된다.(18)

이성이 어려움 없이 감각 소여들을 넘어 만물의 기원인 하느님께 이를 수 있는 것은 원래의 창조계획의 일부였다. 그러나 인간이 자기 창조주와의 관계에서 감히 충만하고 절대적인 자율을 누리겠다고 나서는 불순종 때문에하느님께 이르는 이 통로는 위축되었다. 이 순간부터 인간의 인식 능력은 진리의 원천이시며 기원이신 분께 등을 돌렸기 때문에 약화되었다. 마음의 눈은 점점 더 분명히 보지 못하고, 이성은 점점 더 자기 자신의 포로가 되었다.(22)

그리스도인에게는 육화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인간 문제의 궁극적 해답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모든 철학에 진정한 도전이다.(23) 바로 여기서 이 세상의 지혜와 하느님의 지혜 사이의 대립되고, 하느님의 구원계획을 순수 인간적인 논리로 환원시키려는 온갖 시도가 실패하게 된다. 이성은 십자가로 표상되는 사랑의 신비를 제거할 수 없지만, 그 십자가는 이성이 추구하고 있는 궁극적인 해답을 제공할 수 있다. 따라서 십자가의 지혜는 그것을 제한하고자 하는 모든 문화적 한계를 철폐하고, 그것이 담지하고 있는 진리의 보편성에 개방적인 태도를 취할 것을 요구한다.

성경 속에서 발견되는 철학적 통찰은 세계와 인간 생명은 의미가 있으며,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오는 그 충만을 추구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80)

 

 

 

[현대교회의 가르침] (35)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회칙 신앙과 이성()

신앙과 이성은 진리 향한 두 날개

 

3. 그리스도교적 철학 전통

회칙은 철학’(philosophia)의 어원이 지혜에 대한 사랑임을 지적하는 것으로(3) 고전 철학의 역사 회고를 시작하고 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신화적 세계 속에서 자연적 이성의 능력을 발휘하여 진리를 찾아 나섰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오직 인간 이성의 능력만을 활용하여 우리 자신과 세계의 궁극적 근거와 의미를 묻고 그것을 영원불변하는 신들의 세계 속에서 탐색하는 제일철학 또는 형이상학의 길을 찾아냈다.

그런데 그리스도교의 계시는 존재하는 모든 것의 최고 원인으로서, ‘존재하는 분이라는 말로 가장 잘 표현될 수 있는 어떤 존재를 가정함으로써 신성(神性)이라는 최고의 속성은 물론 실재 전체의 기획자로서 존재를 확립시키고 있었다. 이때부터 그리스도교 사상가들은, ‘자연(physis)이란 무엇인가?’를 물었던 그리스인들과는 달리, 전혀 새로운 철학적 문제, 존재(esse)란 무엇인가?’라는 문제를 제기하게 되었다.

교부들은 고대의 위대한 철학자들의 사고에서 함축적이고 예비적인 형태로 남아 있던 것들을 모두 완벽하게 노출시키는 데 성공하였다. 교부들의 독창성은 절대적인 것에 개방되어 있는 이성을 환영하고 그것을 계시로부터 끌어낸 풍요로움과 혼합한 데 있다. 이것은 하나의 문화와 다른 문화 사이의 만남을 넘어, 영혼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피조물과 창조주 사이의 만남이었다.(41) 아우구스티누스는 그리스도교 진리를 신플라톤주의의 언어로 해설한다. 즉 그리스 철학의 두 원류인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일자와 일자의 최초의 산출이며 다양한 만물의 원리가 되는 신적 지성으로 종합하고자 했던 기원후 2세기의 플로티누스의 철학적 노력에서 그리스도교를 이성적으로 적절히 표현할 수단을 발견하였다. 아우구스티누스 이래로 서구 사상가들은 유한한 인간 이성이 근본적으로 다른 초월적인 순수 존재에 어떻게 도달할 수 있느냐는 대단히 까다로운 문제와 씨름해야 했다. 그 자신은 이 문제를 신적인 빛의 조명설로 해결하고자 했는데, 그것은 경험적 사실을 경시하는 플라톤적 영향을 강하게 받은 탓이었다.

그런데 12-13세기에는, 극적으로 잊혀졌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이 서구에 소개되게 되고, 이와 함께 그리스도교에는 이질적인 이슬람 종교 사상이 바탕에 깔려 있는 아랍 사상가들의 저작들도 서구에 유입되어 일대 문화적 충돌을 일으키게 된다. 특히 아베로에스는 종교적 신앙과는 그가 별도로 순수 이성 자체라고 간주한 아리스토텔레스만을 통해서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고 가르쳤다.

그러나 토마스 아퀴나스는 신학과 철학이 각기 고유의 방법과 원리를 가지고 있는 자율적 학문임을 인정하면서도 둘 사이의 자연적이고 상보적인 위계질서를 확실히하고, 이로써 신앙주의의 위험과 합리주의의 위험을 둘 다 피하고 중도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길을 찾아냈다. 토마스는 다른 어느 신학자나 철학자보다도 하느님을 이해하는 데 자연이 차지하는 역할을 강조하였다. 은총이 자연에 의존하고 자연을 완성시키듯이, 신앙은 이성에 의존하고 이성을 완성한다.(43)

교황은, 성 토마스를 인간 지성의 최고봉으로 격찬하며 천사적 박사의 사상에 대한 쇄신된 강조야말로 신앙의 요구들에 부합되는 철학의 활용을 활성화시키는 최선의 길로 판단하고 있는 레오 13세의 회칙 영원하신 아버지의 모범을 따라 성 토마스의 철학이 지니고 있는, 그 어느 것에도 비할 수 없는 가치를 강조하며(57), 토마스 아퀴나스를 진리의 사도”(44)이며 우리 시대의 스승으로 강력히 추천하고 있다.

이처럼 교부들과 스콜라학자들은 한결같이 신앙과 이성 사이의 근본적인 조화를 확립하였다. “신앙은 그 대상이 이성의 도움을 받아 이해될 것을 요구하고, 이성은 그 탐구의 정점에서 신앙이 제시하는 내용이 없이는 자신의 목적을 채울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는 것입니다.”(42)

4. 근대철학: 신앙과 이성의 분리

그러나 스코투스에서 비롯된 인간 이성의 절대적 진리 도달 가능성에 대한 의심은 오캄을 거치면서 심화되었고, 근대 철학자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 수아레즈를 통해서 근대세계로 확산되었다.

결국 근대철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데카르트에 이르러 이성은 신앙과 완전히 결별하고 독자적인 진리 추적의 길을 더듬어 나갔다. 세속화의 첫걸음이 시작된 것이다. 일부 신학자들은 맹신주의를 추종했고, 철학자들은 절대 진리의 부적절함과 이성의 자족성을 주장하는 합리주의를 맹종했다. 데카르트에게는 아직 스콜라 철학과의 결속의 끈이 남아 있었지만, 칸트에 이르러서는 이성의 능력을 경험 현상계로 한정하고 형이상학과 신앙의 세계를 이성의 권역 바깥으로 완전히 추방시켜 버렸다.

일부 관념주의자들은 신앙과 그 내용을 이성이 이해할 수 있는 변증법적 구조로 변형시키려 들었고, 무신론적 인본주의자들은 신앙을 합리성의 개화를 가로막는 장애물로 간주하였으며, 실증주의자들은 형이상학과 윤리적 가치를 배격하고 기술적 진보만을 추구하고자 하였다. 이렇게 근대 철학이 추구해 온 합리주의는 결국 허무주의의 도래로 귀결되었다.(46)

이렇게 해서 보편적 진리와 지혜를 탐구하는 고상한 역할을 담당하던 철학적 이성이 이제는 인간 인식의 여러 영역 가운데 향락과 권력 등 실용적 목적에나 봉사하는 도구적 이성으로 전락하고 말았다.(47) 이리하여 인간은 자신이 만들어 낸 것들로부터 위협받는 소외된 가련한 존재가 되어 버렸다.

해방의 이름으로, 자유의 이름으로, 과학의 이름으로, 그리고 인간의 이름으로조롱받고 추방당한 형이상학과 신학은 결국 니체에 이르러 장중한 장례식을 치렀다. 적응을 강조하는 일부 신학자들은 신의 죽음의 신학이라는 모순같은 기획까지 전개했다.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을 치르면서 인류는 진보주의의 환상에서 깨어나기는 했지만, 아직도 여전히 방향과 규범을 상실한 채 불확실성의 시대를 견디고 있다. 19세기 말의 상황에서부터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5. 마무리

회칙은 사실 첫머리 인사말에서 이미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 “신앙과 이성은 인간 정신이 진리를 바라보려고 날아오르는 두 날개와 같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마음 속에 진리, 곧 당신 자신을 알고자 하는 열망을 심어 놓으셨습니다.”

신앙과 이성은 모두 인간이 진리를 향해 나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수단들이기에, 서로 조화롭게 협력해야지 분리되어서는 안 된다. “신앙이 허약한 추론보다 사태를 더 잘 꿰뚫는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오히려 그때 신앙은 신화로 변질되던가, 아니면 미신으로 전락할 중대한 위험에 처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같은 이유로 성숙한 신앙에 연결되지 않은 이성은 존재의 새로움과 근본성에 대한 민감한 감각을 잃어버릴 것입니다.”(48)

회칙은 신학과 철학이 각각의 자율성을 고스란히 유지한 채 자신의 풍요로운 본성을 복원해야 함을 강조하며, 현대의 절박한 과제로 형이상학의 복원을 들고 있다. 경험적 현상 세계를 넘어, 영성의 핵심과 그것이 솟아나는 토대를 관통해 들어갈 수 있어야 한다.(83) 인간 이성이 존재 현실에 바탕을 둔 형이상학적 차원을 복원할 수 있을 때라야만, 근본 토대에 이르는 길을 포기하고 현상에만 집착하는 현대의 무질서와 혼동은 바로잡힐 수 있을 것이다.

교황은 동일한 절대 진리에서 나온 선물들이기에 절대로 모순될 수 없는, 인간의 초자연적 계시 수용 능력인 신앙과 자연적 이성을 다시 조화롭게 화해시키는 일이야말로 두 번의 천년기를 마감하고 새로운 천년기를 시작하면서 인류가 이루어야 할 가장 절박한 과제라고 보고, 신학자들과 철학자들에게 이 과제에 투신할 것을 간곡히 호소하고 있다.

 

 

 

 

[현대교회의 가르침] (36)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권고 아시아 교회()

아시아 복음화는 인간 존엄성 증진 노력에서부터

 

지난 8월 방한했던 프란치스코 현 교황(재위 2013~ )2015년에도 필리핀과 스리랑카 등 아시아 국가들을 계속 방문할 예정이다. 이는 현대 가톨릭 교회에 있어 아시아 교회의 중요성과 그 미래적 사명을 암시하는 좋은 표징이라 할 수 있겠다.

요한 바오로 2(재위 1978~2005)1999년 교황 권고 아시아 교회(Ecclesia in Asia)는 이러한 아시아 교회의 복음화 사명에 대하여 본격적으로 말하는 첫 교황 문헌이다. 이는 2000년 대희년을 준비하기 위해 대륙별로 열린 특별 주교시노드 중, 19984~5월 로마에서 개최된 아시아 교회 시노드의 결과를 수용하여 발표한 것이다. 교황 권고 아시아 교회1999116일 인도 뉴델리를 방문한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서 장엄하게 반포되었다.

아시아 대륙의 특성

아시아 교회는 먼저, 아시아가 여러 면에서 볼 때 다른 대륙들과 구별되는 뚜렷한 특성을 지니고 있음을 설명한다. 우선 지리적으로 볼 때, 아시아는 지구상에서 가장 큰 대륙이고, 세계 인구의 3분의 2 가량이 거주하고 있는 매우 광대한 땅이다.

그리고 이러한 지리적 측면 외에도, 아시아는 문화적으로 매우 특징적인 요소들을 지니고 있다. , “이 대륙의 가장 놀라운 특징은 고대 문화와 종교 그리고 고대 전통들의 계승자들인 그 민족들의 다양성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하여 인류 가족의 유산과 역사의 본질적 부분을 구성하고 있는 수많은 문화, 언어, 믿음과 전통들의 서로 혼합되고 어우러진 복합성”(6)이야말로 아시아 대륙의 특성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실재인 것이다.

이러한 종교-문화적 특성 외에 경제-사회적 차원에서도 아시아 대륙은 다양한 복합성을 보인다. 한편으로 한국, 일본, 중국 등 동북아시아의 몇몇 국가들처럼 고도의 경제 발전을 이룩한 나라들 혹은 그러한 발전을 향한 과정에 있는 나라들이 있는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 여전히 극심한 가난의 상태에 머무는 나라들도 많다. 아시아 교회아시아는 풍부한 자원과 위대한 문명들의 대륙이지만 몇몇 국가는 지구상의 가장 가난한 나라이며, 인구의 절반 이상이 결핍과 가난 그리고 착취로 고통 받고 있는 곳”(34a)임을 지적한다.

나아가, 경제적 양극화는 아시아 대륙이 당면한 큰 사회 문제이다. 한 나라 안에서 볼 때나 대륙 전체적으로 볼 때나, 아시아에는 심각한 경제적 양극화를 통한 인간 소외 현상이 발생한다. “가난과 대중 착취의 지속적인 존재는 가장 절박한 관심의 대상입니다. 아시아에는 수백만의 억압받는 개인들이 여러 세기 동안 경제 문화 정치적으로 소외된 채 사회의 가장자리에 있어 왔습니다.”(7f)

그리고 이러한 경제 발전 과정에서 파생되는 정신문화적 황폐화 역시 매우 심각한 사회 문제로 등장한다. “개발 과정에서 물질주의와 세속주의가 확산되고 있는데, 특히 도시 지역들에서 그러합니다. 전통적 사회적 종교적 가치들을 손상시키는 이러한 이념 체계들은 아시아의 문화를 예상할 수 없을 만큼 손해를 끼치며 위협하고 있습니다.”(7a)

인간화를 위한 아시아 교회의 사명

요한 바오로 2세는 아시아 교회를 통해, 아시아의 복음화에 있어 인간 존엄성의 수호와 증진을 위한 노력이 필요함을 강조한다. , 아시아의 극심한 가난과 소외의 현실 상황 속에서 고통 받는 이들을 도우며, 하느님의 모습으로 고귀하게 창조된 인간 존엄성의 수호와 증진을 위해 기도와 관심 속에 노력해야 함은 아시아 교회의 중요한 사명 중 하나에 속하는 것이다. 사실, 이 세상에서 교회가 추진하는 발전이란 경제와 기술의 문제 훨씬 그 이상의 것이며, 그것은 하느님의 모습을 따라 창조되었으며 하느님께서 주신 인간적 품위와 양도할 수 없는 인권이 태어날 때부터 주어진 인간 인격의 완전성”(33a)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요한 바오로 2세는 아시아 대륙의 복음화 작업에 있어, “아시아의 모든 하느님 백성이 인권의 옹호와 정의와 평화의 증진에 관한 불가피한 과제에 대하여 명확하게 의식하여야 할 필요성을 강조한다. 그것은 바로 세상의 수많은 곳에서, 특히 수백만의 사람들이 차별과 착취 그리고 가난과 소외로 고통당하고 있는 아시아에서 인권이 계속 유린되고 있음”(33b)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요한 바오로 2세는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위한 교회의 사명에 대하여 말한다. “인간 존엄성의 향상을 추구함에서 교회는 가난한 사람들과 보잘 것 없는 이들에 대한 우선적인 사랑을 보여 주고 있는데, 그것은 주님께서 특별한 방식으로 그들과 당신을 동일시하셨기 때문입니다(마태 25,40 참조). 이 사랑은 어느 누구도 배제시키는 것이 아니며, 그리스도교 전통 전체가 증언하고 있는 봉사의 우선순위를 단지 구체화할 뿐입니다. 가난한 이들에 대한 우선적인 사랑, 그리고 거기에서 영감을 받아 우리가 내리는 결단은 당연히 저 무수하게 많은 굶주린 사람들, 곤궁한 사람들, 집 없는 사람들,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 그리고 더 나은 미래의 희망이 없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할 수밖에 없습니다.”(34a)

그런데 이처럼 참다운 인간화를 위한 애덕 실천의 사명에 임할 때, 아시아 교회가 특히 관심을 갖고 주목해야 할 부분은 이주자들의 문제, 그리고 어린이와 여성의 문제라고 요한 바오로 2세는 강조한다.

먼저, 아시아는 현재 피난민들, 망명 신청자들, 이주자들 그리고 외국인 노동자들의 전례 없는 홍수를 체험하고 있음을 보아야 한다. 이러한 이주 현상 속에서, 이주자들은 자주 외롭거나 문화적으로 고립되거나 언어 때문에 불이익을 당하고, 경제적으로 취약한 상태에 놓이게 되기에, 그들이 자신의 인간적 존엄성과 문화적-종교적 전통을 간직할 수 있도록 지지와 배려가 필요한 것이다. “아시아 교회는 한정된 자원에서도, 예수님의 마음속에서는 어떤 사람도 이방인이 아니며 그들이 모두 예수님 안에서 휴식을 찾게 됨을 알면서(마태 11,28-29 참조),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지고 허덕이는 사람들을 위한 환대의 집이 되고자 관대하게 노력하고 있습니다.”(34d)

한편, 요한 바오로 2세는 아시아 대륙의 고통 받는 어린이들에게 각별한 관심을 표명한다. “어느 누구도, 단지 개인들이 저지른 악의 결과일 뿐만 아니라 종종 부패한 사회 구조의 직접적 결과이기도 한 견디기 힘든 착취와 폭력의 희생자로 전락하고 있는 아시아의 수많은 어린이들의 고통에 무관심할 수는 없습니다. 주교대의원회의 교부들은 어린이들의 노동, 어린이에 대한 성도착증, 그리고 마약 현상은 이들을 가장 직접적으로 감염시키는 사회악임을 강조하였으며, 이러한 병폐들이 빈곤과 결함 있는 국가 발전 계획과 같은 또 다른 요인들에 바탕을 두고 있음을 분명히 지적하였습니다. 교회는 가장 착취당하는 이들을 위하여 행동하고 어린이들을 예수님의 사랑으로 이끄는 길을 모색하고자 이러한 악들을 극복하려고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하여야 합니다.”(34f)

그리고 아시아의 여성 문제 또한 간과할 수 없다. “아시아에서는 여성들에 대한 차별과 폭력이 자주 가정이나 직장 그리고 심지어 법적 제도 안에도 존재하고 있습니다. 문맹은 여성들 사이에 가장 널리 퍼져 있으며, 그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매춘이나 관광 그리고 유흥 산업을 위한 상품들로서 취급되고 있습니다. 온갖 형태의 불의와 차별에 대항하는 투쟁에서 여성들은 교회 공동체 안에서 동맹군을 발견하여야 합니다.”(34g) 이러한 성적 차별 속에 아직도 여성 인신매매가 횡행하며, 낙태와 미혼모의 문제 역시 심각한 상황으로 돌봄의 손길을 기다린다. 아시아의 여러 곳에서 여자 아이들은 낙태로 희생될 위험이 많으며, 심지어 태어나자마자 곧 죽게 될 위험에 놓이기도 한다”(7f)는 현실을 우리는 직시해야 한다.

아시아의 종교-문화적 가치

아시아의 현 상황과 역사적 맥락을 보다 더 깊이 있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아시아인들의 내면에 종교적 가치의 문화화와 생활화가 깊이 이루어져 있음을 알아야 한다. “아시아 민족은 침묵과 명상에 대한 사랑, 소박함, 조화, 초연함, 비폭력, 근면의 정신, 훈련, 검소한 생활, 배움에 대한 목마름, 철학적 탐구와 그들의 종교적이며 문화적인 가치들에 긍지를 갖고 있습니다. 그들은 생명 존중, 모든 존재에 대한 연민, 자연과 친밀함, 부모, 연장자와 조상들에 대한 효성, 그리고 몸에 밴 공동체 의식과 같은 가치들을 사랑합니다.”(6c)

이처럼 아시아 대륙의 종교문화에 깊이 뿌리박힌 아시아인들의 삶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여러 세계 종교들이 바로 이곳 아시아에서 시작되었음을 알아야 할 것이며, 이러한 세계 종교들과의 진지한 대화가 아시아 교회에 요구된다. 어떤 면에서 볼 때, 아시아의 복음화 사업은 바로 여기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말할 수도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요한 바오로 2세는 종교 간의 대화를 통한 복음화 사업에 대하여 말한다. “아시아는 세계의 주요 종교들, 곧 유다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 힌두교의 요람입니다. 아시아는 불교, 도교, 유교, 조로아스터교, 자이나교, 시크교, 그리고 신도(神道)와 같은 많은 다른 영적 전통들의 발상지입니다. 수백만의 사람들이 또한 다양한 수준으로 구조화된 의례와 형식화된 종교적 가르침에 따라 전통적이거나 종족적인 종교들을 신봉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이러한 전통들에 대단히 깊은 존경심을 갖고 있으며 그들 신봉자들과 진지한 대화를 모색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가르치는 종교적 가치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을 기다리고 있습니다.”(6b)

 

 

 

 

[현대교회의 가르침] (37)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권고 아시아 교회()

아시아의 다양한 종교와 문화적 상황 이해, 이야기식 · 신비적 접근 등 효과적 선교방법 제시

성 요한 바오로 2(재위 1978-2005)1999년 교황 권고 아시아 교회(Ecclesia in Asia)는 아시아 교회의 복음화 사명에 대하여 말하는 문헌이다. , 가난과 종교심이 교차하는 이 광대한 아시아의 땅에서, 어떻게 유일한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할 것인가에 관해 여러 차원에서 다루며 복음화의 길을 제시한다. 지난번의 첫 연재가 아시아의 상황과 맥락에 대한 고찰, 그리고 인간화를 위한 교회의 복음화 사명에 초점을 맞추어 설명이 이루어졌다면, 오늘 두 번째 연재에서는 구원론과 선교신학 차원에 중점을 두고서 아시아 교회의 내용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특히, 아시아의 복음화를 위한 교육학적 방법과 신비적 접근, 그리고 친교의 신학이 강조되어 소개될 것이다.

유일한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편적 구원을 매개하는 성령의 활동

아시아 교회는 다종교 상황인 아시아의 문화적 특성을 충분히 고려하면서도, 복음의 핵심적 메시지가 결코 방법론적 차원에서 축소, 간과되어서는 안 됨을 강조한다. ,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과 보편성이 분명하게 천명되는 동시에, 그리스도의 이러한 유일한 구원 중개’(medium of salvation)가 성령의 활동에 의해 다양하게 전달됨을 제시한다. “시간의 처음부터 끝까지 예수님께서는 유일한 보편적 중개자이십니다. 비록 명시적으로 그분을 구세주로 믿는 신앙을 고백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구원은 성령의 통교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은총으로서 오는 것입니다.”(14)

이처럼 아시아 교회는 그리스도론적 성찰과 성령론적 성찰을 긴밀히 연결시켜 구원론적 주제를 전개시킨다. 신학적으로 볼 때, ‘성령의 보편적 현존과 활동’(the universal presence and activities of the Holy Spirit)이란 신학적 주제는 사실 아시아 신학에 매우 잘 적용될 수 있다. 아시아의 다양한 종교-문화 상황 속에 신비로이 현존하시며 사람들을 보편적 구원에로 인도하시는 성령의 활동에 대한 성찰이 최근의 아시아 신학적 논의에서 많이 이루어진다. 하지만 아시아 교회는 이러한 성령론적 성찰이 반드시 그리스도론적 중심성과 연결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 성령의 활동을 논함에 있어,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과 보편성을 간과, 경시해서는 안 된다. 이는 아시아 신학 일부의 과도한 성령중심주의적’(pneumatocentric) 흐름을 경계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요한 바오로 2세는 말한다. “성령의 보편적 현존은 예수 그리스도를 단 한 분이시며 유일하신 구세주로서 분명히 선포하는 일을 소홀하게 하는 변명에 사용될 수는 없습니다. 반대로 성령의 보편적 현존은 예수님 안에 있는 보편적 구원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습니다. 창조와 역사 안에서 성령의 현존은 예수 그리스도께 향하여 있으며, 그분 안에서 창조와 역사는 구속되며 성취됩니다. 강생 이전과 성령강림의 절정의 순간 모두, 성령의 현존과 활동은 언제나 예수님과 그분께서 가져오시는 구원이 목표였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보편적 현존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안에서 하시는 성령의 활동과 결코 분리될 수 없는 것입니다.”(16)

아시아 교회의 사명

그러므로 아시아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중심성에 기초하여 성령의 신비로운 인도를 따라 아시아의 복음화를 위해 노력하고 투신해야 할 사명을 깨닫게 된다. 요한 바오로 2세는 이제 아시아 교회가 그야말로 성령의 불길에 의해 타올라야 함을 강조한다. “교회는 성령의 촉구에 순종할 때에만 자기 사명을 수행할 수 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아시아의 구체적 상황들 안에서 성령의 활동에 대한 진정한 표지와 도구가 되도록 부름 받은 교회는 대륙의 다양한 상황들 안에서 새롭고 효과적인 방법으로 구세주 예수님에 대하여 증언하도록 하시는 성령의 호소를 식별하여야만 합니다.”(18)

사실, 이는 오늘의 한국 교회를 위해서도 매우 의미 있는 진술이다. 성령의 인도를 따라 하느님의 뜻을 식별하며 아시아의 상황 속에서 복음을 선포하고 증언해야 할 사명을 우리 모두 되새겨야 한다.

복음 선포를 위한 교육학적 방법

아시아 교회는 다종교문화의 아시아 상황에서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효과적으로 선포할 것인가를 설명한다.

여기서는 너무 일방적으로 직접적이며 즉각적으로 이루어지는 선포 방법보다는, 아시아의 문화를 고려하고 존중하며 점진적으로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이해시키고 알려나가는 교육학적 방법’(pedagogy)이 그 핵심 개념으로 제시된다. “예수 그리스도를 유일한 구세주로 소개하는 일은 사람들이 점차 그 신비가 완전히 자기 것이 되게 하는 교육학적 방법을 따라야 합니다. 비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첫 복음화 과정과 신앙인들에게 예수님에 대하여 지속적으로 선포하는 방법이 다른 접근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명확한 일입니다. 첫 복음화에서 예를 들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개는 아시아 민족들의 신화와 민속에서 표현된 열망들의 성취로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아시아 문화 형태에 친숙한 이야기 식 방법들을 택하여야 합니다. 사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선포는 복음서처럼 그분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가장 효과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소개하는 데 언제나 전제되고 표현되어야 하는 관련된 존재론적 개념들은 더욱 설화적이고 역사적이고 심지어 우주적인 전망을 통하여 보완될 수 있습니다. 주교대의원회의 교부들이 강조한 것처럼, 교회는 그리스도의 얼굴이 아시아에서 제시될 수 있는 새롭고 놀라운 방법에 열려 있어야 합니다.”(20)

아시아 복음화 위한 신비적 차원 접근

아시아 교회의 복음 선포 사명을 이해하기 위해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바로 신비적측면의 접근이다. 요한 바오로 2세는 지혜(wisdom) 전통의 세계 종교들이 자리한 아시아에서 그리스도교 신비사상의 재발견을 위한 노력이 오늘날의 새로운 복음화작업에로 어떻게 연결되고 효과적으로 전환될 수 있는지를 말한다. , “신비주의에 대한 그리스도교의 위대한 전통들의 활력성에 대하여 증언함으로써 종교 간 대화에 매우 중요하게 이바지할 수”(31)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아시아의 선교를 위해 관상의 중요성이 제시된다. “선교는 관상적인 활동인 동시에 활동적인 관상입니다. 그러므로 기도와 관상 중에 하느님께 대한 깊은 체험을 하지 못한 선교사는 영적인 영향력이나 선교적 성공이 그다지 없을 것입니다. 그것은 제가 다른 곳에서 기술한 바 있지만, 저의 고유한 사제적 체험에서 얻은 통찰이며, 비그리스도교적 영적 전통을 지닌 대표자들, 특히 아시아의 대표자들과 나눈 만남은 선교의 미래가 관상(contemplation)에 크게 달려 있다는 확신을 굳게 해 주었습니다. 개인과 민족들 전체가 신적인 것에 갈증을 느끼고 있는 대종교들의 고향인 아시아에서, 교회는 긴박한 인간적, 사회적 관심사에 투신할 때에도 영적으로 깊은 기도하는 교회가 되도록 부름 받은 것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에게는 기도와 관상으로 이루어진 참된 선교 영성이 필요합니다. 진실로 종교적인 사람은 아시아에서 깊은 존경과 따름을 받게 됩니다.”(23)

친교의 신학

아시아 교회5장은 선교를 위한 친교와 대화라는 제목으로, 아시아 복음화를 위한 친교의 신학을 제시한다. 이는 소수의 아시아 교회가 당면한 상황 속에서 어떻게 아시아 복음화의 길을 걸어가야 하는지를 매우 잘 설명한다. 요한 바오로 2세가 여기에서 제시하는 핵심 개념은 친교와 일치, 그리고 대화를 통한 복음화의 길이며, 바로 이러한 복음화 작업이 아시아 대륙에 큰 기여를 하게 될 것이란 전망이 제시된다. 우리가 예수님과 나누는 친교와 일치로부터 출발하여, 그리스도인들 사이의 친교, 그리고 다른 모든 이와의 대화와 친교를 지향해 나아가는 것이 곧 아시아 복음화의 길이다.

친교와 선교는 서로 불가분리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친교와 선교는 서로 깊숙이 연결되어 있고 서로 상호 작용을 하며 서로 함축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친교는 선교의 원천이고 결실이며, 친교는 선교적이고 선교는 친교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친교의 신학을 사용하면서, 2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회를 모든 사람이 어떻게든 관련되어 있는 하느님의 백성인 순례자로 묘사할 수 있었습니다.다양한 민족, 문화, 그리고 종교들 속에서 친교로서 교회의 삶은 더 큰 중요성을 띠고 있습니다. 실제로 일치에 대한 교회의 봉사는 아시아에서는 특별한 관심사입니다. 왜냐하면 아시아는 윤리, 사회, 문화, 언어, 경제 그리고 종교적인 차이들에서 일어나는 긴장과 분열 그리고 갈등이 있는 곳이기에 그러합니다.”(24)

 

 

 

 

 

[현대교회의 가르침] (38)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교서 새 천년기()

은총의 대희년 마감하며 새로운 천년 향한 희망 제시

 

새 천년기(Novo Millennio Ineunte)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 교황 재위 23년째인 200116일 주님 공현 대축일에 반포한 교서로서 2000년 대희년 폐막에 즈음하여 주교들과 성직자들 그리고 평신도들에게 보내진 교황 문헌이다. 교황께서는 2000년 대희년을 마감하면서 느껴오는 감정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셨다.

신랑이신 주님의 얼굴을 바라보는 일에 몰두하였던 이 해에 교회의 기쁨은 대단히 컸습니다. 대희년 동안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킨 이 은총의 사건을 헤아린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 해를 마무리하며 우리는 이 오랜 감사의 말씀을 새로운 기쁨으로 되풀이할 수 있습니다.”(1)

무릇 사람이 어느 순간에 기뻐할 수 있는 것은 갑자기 선물이 주어졌을 때도 있겠지만, 스스로 생각하고 계획하였던 일이 무사히 잘 마무리되었을 때에 그 기쁨은 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교황께서 대희년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천년기를 시작하는 시점에서 이와 같이 모든 이와 함께 기쁨을 만끽하고 싶으셨던 것은 주님의 은총도 함께 하셨기 때문이겠지만, 무엇보다도 계획하셨던 일이 생각했던대로 잘 마무리될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교황께서는 2000년 대희년을 준비하면서 1994년 발표하셨던 교서 제삼천년기에서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기쁨의 원인으로 화해와 참회를 강조하신 바 있다. “모든 희년의 기쁨은 무엇보다도 죄의 용서에 기초한 기쁨, 회개의 기쁨입니다. 개인이든 공동체든, 회개는 하느님과 화해하기 위한 전제 조건입니다.”(제삼천년기32) 그리고 교황께서는 진정한 용서와 화해가 이루어지기 위해 필요한 회개의 정신을 교회 쇄신의 원동력으로 삼으시면서 2000년 대희년을 맞이하고 싶으셨던 것 같다. “저는 이 성년 거행을, 교회가 새로운 열정으로 복음화 사명을 수행할 수 있도록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35년 동안 얼마나 자기 쇄신을 해 왔는지를 성찰해 보는 섭리의 기회라고 생각하였던 것입니다.”(2)

그래서였는지, 교황께서는 대희년 중인 2000년 사순 제1주일 용서의 날강론에서 용서라는 주제를 강조하신 것을 볼 수 있다. “베드로의 후계자로서 저는 이 자비의 해에 교회가 주님께 받은 성덕을 강화하고 하느님 앞에 무릎을 꿇고, 과거와 현재에 자녀들이 지은 죄에 대하여 용서를 간청하도록 촉구하였습니다. 우리 모두 용서하고 용서를 청합시다.”(‘용서의 날강론 3)

교황께서는 계속해서 다음과 같이 강조하셨다. “그리스도인들 사이의 분열, 진리를 빙자하여 행사되기도 하였던 폭력, 이따금 다른 종교인들에게 보였던 불신과 증오의 태도에 대하여 용서를 청합시다. 더 나아가, 오늘날의 죄악에 대하여 그리스도인으로서 져야할 우리의 책임까지도 고백합시다. 우리의 죄를 고백하면서 동시에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게 저지른 죄를 용서합시다.”(‘용서의 날강론 4) 그리고 교황께서는 이 성년(聖年)이 화해의 때와 구원의 때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시면서 강론을 마치셨다.

물론 교황께서 이러한 주제로 강론을 하시게 된 것은 갑작스러운 일이 아니다. 이미 제삼천년기에서 진정한 용서와 화해를 이룩하기 위하여 노력할 것을 요청하신 데에 따라 보편 교회는 2000년 대희년을 준비하며 자기 성찰을 철저히 시도하였고, 그에 대한 결실로 문헌을 발표할 수 있었다. 그래서 교황께서도 강론 중에 국제신학위원회가 몇 달 전에 발표한 문서를 언급하셨고, 이러한 노력을 마무리 하는 차원에서 용서의 날강론이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국제신학위원회는 2000년 대희년을 경축하자는 취지에서 1998년에서 1999년까지 교회와 과거의 잘못이라는 주제로 여러 차례 회의를 거쳐 나온 내용을 신앙교리성 장관의 허가를 받아 199912월에 기억과 화해, 교회와 과거의 잘못이라는 제목의 문서를 발표하였다. 국제신학위원회는 문서의 서론에서 19981129일에 발표된 2000년 대희년 칙서인 강생의 신비(Incarnationis Mysterium)에 나오는 중요한 주제인 기억의 정화를 모티브로 하여 작성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이 문서는 과거의 잘못에 대한 인정과 관련하여 기억의 정화행위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들에 대하여 신학적 성찰을 제시하고 있다. 따라서 이 문서의 목적은 특정한 역사적 사건들을 조사하려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잘못에 대한 참회의 바탕이 되는 전제들을 명확히 하려는 것이다.”(기억과 화해, 교회와 과거의 잘못서론)

국제신학위원회가 문서에서 밝힌 무엇보다 중요한 사항은 과거의 잘못에 대한 회개 행위의 도덕적 식별이다. 문서는 식별을 위한 도덕적 기준들로 양심의 원리와 사실성의 원리 그리고 패러다임 변화의 원리를 제시하였다. 그와 함께 교회가 성찰해야 하는 주제로 그리스도인의 분열, 진리를 위한 폭력의 행사, 그리스도인과 유다인을 언급하였다. 그러나 그것보다도 더 엄중한 오늘날의 잘못은 종교적 무관심, 생명 의식 결여, 세속주의 풍조, 윤리적 상대주의, 태아의 생명권 부인, 가난한 이들에 대한 무관심 등 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오늘의 교회는 반드시 이와 같은 죄악에 대한 책임을 느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이러한 성찰은 국제신학위원회가 교황의 가르침을 계승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교황께서는 교서 제삼천년기에서 이와 같은 주제를 이미 언급하셨다. “그리스도교의 제2천년기가 그 끝에 이르면서, 교회는 자기 자녀들의 죄과를 더욱 철저하게 의식하여야 할 것입니다. 신앙의 가치에 영감을 받은 삶을 세상에 증언하기는커녕, 참으로 반증거와 추문의 형태를 보이는 사고방식이나 행동양식에 빠져 들어 그리스도와 그분의 복음의 정신에서 벗어났던 역사의 모든 시대를 그 자녀들에게 상기시켜 주어야 합니다.”(제삼천년기33) 어쩌면 교황께서는 이러한 생각을 교황 즉위 때부터 가지고 계셨던 것 같다. 예를 들어 교황께서는 재위 2년 차인 1979년에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재판 판결을 재고할 것을 권고하여 특별위원회를 발족시켰고, 결국 가톨릭교회는 1992년에 당시 조치가 비극적인 상호 이해 부족에서 나온 실수였다고 고백하면서 교회 법정의 오류를 인정한 바 있었다.

하지만 역사를 살펴보는 일은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실 또 다른 것을 준비하는 일이다. 교황께서는 교서 새 천년기에서 우리의 시선이 미래를 향하기를 권고하였다. “지난 몇 달 동안 우리는 희년을 과거에 대한 기억만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예언으로 삼아 다가오는 새 천년기를 전망하였습니다.”(3) , 미래를 준비하지 않는 과거에 대한 회상은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과거를 철저히 반성하는 것은 미래에 같은 실수를 범하지 않고 더 나은 삶의 여정을 걸을 수 있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아마도 교황께서는 우리가 지난 이천년보다 더 나은 새 천년을 맞이하기를 바라셨던 것 같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 교서 서문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인용하시면서 언급하신 초대의 말씀을 마음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쳐라! 오늘 우리에게 들려 오는 이 말씀은 감사하는 마음으로 과거를 기억하고 현재를 열심히 살며 신뢰를 가지고 미래를 바라보라고 우리를 초대합니다.”(1)

 

 

 

[현대교회의 가르침] (39)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교서 새 천년기()

생명존중 · 사회교리 실천 · 인류평화 친교의 영성오늘날 과제로

 

새 천년기(Novo Millennio Ineunte)를 읽고 있노라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 그 동안 발표하셨던 많은 문헌들과 사뭇 다른 느낌을 받게 된다.

물론 교황께서는 신학적 관점이든, 윤리적 관점이든 아니면 시대적으로 떠오르는 중요 주제를 다루는 관점이든 모든 문헌에서 영성적인 숙고를 하는 것을 잊지 않으셨다. 하지만 이번 문헌은 문헌 전체를 영성적인 관점에서 서술해 간 거의 유일한 문헌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4장에 걸쳐서 작성된 문헌 안에서 교황께서는 영성적인 성찰과 함께 새로운 천년기의 시작을 맞이하면서 사목적 과제를 던져 주고자 하셨다.

먼저, 첫 번째 장에서 교황께서는 전 세계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 때문에 그리고 그리스도와 함께 모였던 축제의 시간을 회상하면서 다음과 같은 인식을 비추셨다. “이번 희년은 새 천년기의 시작과 일치함으로써, 분명히 우리에게 천년 왕국의 환상에 젖지 않고 구원 역사의 원대한 지평 안에서 그리스도의 신비를 더욱 깊이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5) 사실 교황께서는 지난 제삼천년기에서 이미 대희년을 맞이하면서 새로운 천년왕국설에 빠져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시면서 철저한 준비를 요청하신 바 있었다(참조. 제삼천년기23). 그 덕분에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신비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고, 그 결과로 그리스도의 신비를 더욱 깨달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준비 기간 중에 참회의 성찰을 성실하게 수행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신비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을 정화하고자 대희년은 용서의 요청으로 확연히 특징지어졌습니다.”(6)

교황께서는 대희년 기간 동안에 있었던 각각의 행사들을 회상하시면서 총평으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대희년이 우리에게 남긴 가장 큰 유산의 핵심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저는 주저 없이 그리스도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이라고 대답할 것입니다.”(15) 결국 역사 안에 그리스도와 신비 안에 그리스도를 동시에 직시하여야만 드디어 그리스도인의 영적 여정이 시작되면서 교회의 올바른 미래를 바라보게 된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두 번째 장에서 교황께서는 그리스도인의 영적 여정을 위하여 그리스도의 얼굴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 소개하셨다. 예수님의 공생활 기간 중에 제자들이 예수님을 인식하기 위해서는 평범한 방법만으로 충분하지 않고 하느님에게서 오는 계시의 은총이 필요하였던 것과 같이,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 이후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의 얼굴을 관상하는 신비에 다다르기 위해서는 자신의 노력만으로 가능하지 않고 은총이 이끌어 주는 침묵과 기도의 체험이 필요하다고 강조하였다(참조. 20).

특히 교회가 그리스도의 얼굴을 올바로 인식하기 위해서는 참 하느님이시며 참 사람이신 성자의 신원을 먼저 깨달아야 한다고 가르친다(참조. 21~24). 말씀이 사람이 되시면서까지 성자께서 자신을 비우셨음을 깨달아야만 역설적으로 고통에 찬 그리스도의 얼굴을 알아볼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그 고통은 하느님께 버림받았다고 생각하는 절망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의 기도인 것이다(참조. 25~26). 그리고 이와 같은 사막 체험은 2000년 교회 역사 안에서 많은 영성가들에 의해 끊임없이 체험되어져 왔다(참조. 27).

결국 고통에 찬 그리스도의 얼굴을 제대로 이해하게 되면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얼굴을 마주보게 될 준비가 되었다고 말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예수님에 대한 제자들의 추억은 부활이 가져다주는 감미로운 기쁨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문헌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권고한다. “이러한 경험에서 힘을 얻은 교회는 오늘 제삼천년기를 시작하는 세상에 그리스도를 선포하고자 다시 여정을 시작합니다.”(28)

한편 세 번째 장에서 교황께서는 그리스도의 얼굴을 바라보기 시작한 그리스도인이 걸어가게 될 다양한 영적 여정, 그리스도인 생활의 새로운 활력을 얻을 수 있는 각 공동체의 상황에 맞는 사목 계획을 마련할 것을 당부하셨다(29).

문헌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교회헌장에서 이미 언급되었던 거룩함에로의 보편적인 부르심의 정신에 따라 첫 번째 사목 계획으로 성덕을 제시하였다. “모든 사람에게 이렇게 숭고한 보통의 그리스도인의 삶을 다시 한 번 온 마음으로 강조할 때가 왔습니다.”(31)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성화를 위하여 각자 성덕의 훈련을 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이 성덕의 훈련은 아주 특별한 어떤 것을 실천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모든 그리스도인이 잘 알고 있는 보통의 방법을 통해서 실천하게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기도의 실천, 성찬례의 참여, 화해의 성사인 고해성사로 회귀 등이 성덕의 훈련을 위한 통상적이면서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것이다(참조. 32~37). 이러한 훈련을 통하여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성화를 위하여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은총이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참조. 38). 그러나 하느님의 말씀에 새롭게 귀 기울이지 않는다면 이러한 성덕과 기도의 으뜸가는 중요성은 물론 상상할 수도 없습니다.”(39) 그러므로 성화의 완성은 하느님의 말씀에 귀 기울일 뿐만 아니라 말씀의 봉사자가 되어 복음의 메시지를 선포하는 데에 있다고 문헌은 강조하였다(39~41).

마지막으로 네 번째 장에서 교황께서는 새로운 천년기에 그리스도인이 당면한 과제로 친교의 영성을 언급하셨다(참조. 43). 특히, “친교는 모든 교회 생활 구조 안에서 날마다 모든 차원에서 개발되고 확대되어야한다는 것이다(45). , 다양한 신분의 하느님 백성뿐만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단체들도 교회와 조화를 이루며 친교를 도모해야 한다는 것이다(참조. 46). 또한 교회 안에 갈라진 형제들도 함께 친교를 이룰 수 있도록 대화를 촉진하여야 한다(참조. 48).

그런데 교황께서는 친교의 본질은 결국 사랑이라고 강조하셨다. 그리고 이러한 사랑은 우리 안에서 모든 인간에 대한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사랑을 실천하도록 고무한다는 것이다(49). 그래서 오늘날 그리스도인은 구체적인 분야에서 사랑을 실천하도록 요청받게 되는데, 그 과제는 바로 생태 위기에 대한 염려, 모든 인간 존재의 생명에 대한 존중을 위한 최첨단 과학 지식의 선용, 교회의 사회 교리, 다른 종교인들과 개방과 대화의 관계 구축 등이다(참조. 50~56).

교황께서는 이 문헌을 끝마치기에 앞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저는 교회에 대희년 준비의 한 방법으로 공의회의 가르침을 얼마만큼 받아들였는지에 대하여 성찰해 보도록 요구하였습니다.여러 해가 지났지만, 공의회 문헌들은 그 가치나 광채가 전혀 퇴색되지 않았습니다.”(57)

비록 이 문헌의 제목은 새 천년기였지만, 그리스도인의 영적 여정에는 사실 새로운 것은 없다. 교회 역사 안에서 기존에 배워서 알던 것들만이라도 잘 실천한다면 새로운 천년기에 그리스도인은 하느님 백성으로서 훌륭히 살아갈 수 있고 하느님 나라의 도래를 앞당길 수 있다.

, 과거에 대해서 충분히 참회하는 성찰을 하고, 현재에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열심히 실천한다면, 미래에 우리 모두는 구원의 은총을 받고 영원한 기쁨을 누릴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새로운 천년기를 맞이하는 전 인류가 함께 살아가야 할 친교의 영성이다. “희년의 폐막과 함께 희망의 미래가 밝아 오는 이 때, 온 교회의 찬미와 감사 기도가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다다르기를 빕니다.”(59)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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