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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체 성혈 대축일 특집] 포도주, ‘미사주’가 되려면? 첨가물 없이 빚은 ‘순수한’ 포도주로 시어지지 않게 온전히 보존해야

작성자은총의샘|작성시간26.06.20|조회수39 목록 댓글 0

[성체 성혈 대축일 특집] 포도주, ‘미사주가 되려면?

첨가물 없이 빚은 순수한포도주로 시어지지 않게 온전히 보존해야

 

설탕이 든 포도주를 미사주로 사용할 수 있을까? 요즘 유행하는 무알코올 포도주는 어떨까?

답은 원칙적으로 사용 불가. 다만 우리나라 미사주 마주앙은 한국 포도 특성 상 주교회의 승인 하에 설탕을 첨가한다. 이처럼 미사주에는 조건이 필요하다.

우선 성찬례 거행에 쓰일 포도주는 포도나무 열매로 빚은(루카 22,18 참조) 것으로, 다른 물질이 섞이지 않은 순수한 천연 포도주여야 한다.(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322) 성경에 예수님께서 성찬례를 제정하실 때 포도나무 열매로 빚은 것을 사용하셨고 그 외 재료는 언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마태 26,27-29)

또한 포도주는 온전한 상태로 보존하여 시어지지 않도록 해야 하고(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323) 부패하지 않아야 한다(교회법전924).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신학대전에서 포도주가 부패해 식초가 되면 포도주의 형상은 남지 않기에 식초로 성사를 행할 수 없다”(3부 문제 74, 5문 반론에 대한 답변 2)고 했다.

예외적으로, 발효되지 않은 포도즙인 무스툼(Mustum)’은 교구장의 인가를 받을 경우에 한해 사용할 수 있다. 교황청 경신성사부는 2017성찬례에 쓰는 빵과 포도주에 관하여 주교들에게 보내는 회람(4항 ㄴ)에서 신선한 포도즙이거나, 본질은 변화시키지 않고 발효만 막는 방법으로 보존된(예를 들면, 냉동) 포도즙(Mustum)은 성찬례 거행에 유효하다고 규정했다. 하지만 무알코올 포도주는 정상 발효된 포도주에서 인위적으로 알코올을 제거한 것이므로 허용되지 않는다.

원칙적으로 조건을 충족하는 포도주는 모두 미사주로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제조 과정을 완전히 통제하거나 세부 성분을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교구장이나 교황청 인가제를 실시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롯데칠성의 마주앙브랜드만 미사주로 사용하고 있다. 포도주 소비와 종교적 수요가 높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미국은 수십 종의 미사주 브랜드가 있다. 대형 회사뿐 아니라 수도회 와이너리 등도 소규모로 생산한다.

이탈리아는 지역 특화 브랜드가 많다. 시칠리아의 ‘Martinez’(마르티네즈) 등이 유명하다. 특히 바티칸은 교황의 여름 별장 부지 내 약 2규모의 포도원에서 자체적으로 포도주를 생산하고 있으며, 이 포도주는 2026년부터 교황청 라벨이 부착된 ‘HOLY SEE’ 브랜드 미사주로 사용될 예정이다.

한편 바티칸 인구 한 명의 평균 포도주 소비량은 연 약 79리터다. 영국의 세 배이자 세계 최고다. 이는 미사 전례와 공식 행사, 손님 접대 등으로 쓰이는 모든 포도주가 1000명에 미치지 않는 바티칸 인구가 소비한 것으로 집계되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전례-기도하는 교회 (15) 성찬례와 강생(Incarnatio)

 

그리스도교에서 신비(mysterium)는 일차적으로 인간의 이성으로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계시 진리를 말하며, 삼위일체 신비, 파스카 신비, 강생의 신비가 이에 해당합니다. 전례 주년 안에서, 교회는 계시(啓示)된 하느님의 신비를 더 깊이 이해하고 살아가기 위해 이를 기념하고 거행합니다. 강생은, 요한복음서가 전하는 것처럼, ‘말씀이 사람이 되신곧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인성을 취하신(요한 1,14 참조) 사건을 가리킵니다. 교회는 대림 시기와 성탄 시기, 그중에도 성탄 대축일에 강생의 신비를 성대하게 경축하고 장엄하게 거행합니다.

성탄 대축일 전례만이 아니라, 우리는 성찬례를 통하여 강생의 의미와 가치를 더욱 깊이 그리고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성찬례 안에서 성령 청원과 축성 그리고 신앙의 신비로서 거행되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의 현존은 우리와 함께하시기 위해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곧 인성人性을 취하신 강생의 신비를 바라보게 합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지상에 내려오신 이유는 단순히 인간의 삶을 살아보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인성을 취하신 성자께서는 세상의 구원을 위하여 오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요한 6,51)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강생은 성찬례를 통하여 완성됩니다.

성찬례는 강생의 신비와 그 무한한 가치를 이해하고 살아가도록 도와줍니다. 또한 성찬례는 성자께서 사람이 되셨던 그 유일무이한 역사의 순간을 살아가지 못한 애석함을 달래 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제자들에게 너희의 눈은 볼 수 있으니 행복하고, 너희의 귀는 들을 수 있으니 행복하다.”(마태 13,16)라고 하시며 주님과 함께 동시대를 살아가는 특별한 행운을 언급하십니다. 이러한 행복은 일차적으로 예수님의 시대에 팔레스타인 지방에 살았던 사람들이 누렸던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보고, 그분 말씀을 듣고 싶어 했던 예수님 이전의 수많은 예언자와 의인들도(마태 13,17 참조), 승천 이후에 태어난 이들도 제자들처럼 성자 예수 그리스도 곁에 머물며 가르침을 받는 경험을 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신앙의 차원에서 보면, 제자들 체험은 영적인 차원을 가집니다. 믿음을 통해서 예수님 안에서 사람이 되신 하느님의 아드님을 알아보고 만나는 체험이 제자들이 누리는 행복의 중심입니다. 성찬례를 통하여 신앙인들은, 제자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체험한 것처럼, 하느님의 현존과 구원을 만나도록 초대됩니다. 성찬례는 우리가 성사(라틴어 sacramentum, 그리스어 mysterion), 곧 가시적인 표지를 아래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볼 수 있는 은총을 선사합니다. 이러한 주님의 현존을 영적으로 받아들인 모든 시대의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의 동시대인들과 같은 행복을 누리게 됩니다. 믿음으로 성찬례 안에서 강생하신 성자와 심오한 친교를 이루는 특은特恩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누렸던 행운을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선사합니다.

요한 크리소스토모 성인은 마태오 복음에서 예수님 옷자락만이라도 만지려는 병자들에 대한 구절(마태 14,36 참조)을 해석하며, “우리가 바란다면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째로 가질 수 있습니다. 그분의 몸이 여기 바로 우리 앞에 있으니까요.”(마태오 복음 강론, 하느님의 선물인 성찬례 p.187 재인용)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처럼, 믿음으로 성찬례 안에서 사람이 되어 오신 성자의 현존을 만나고 참 생명을 온전히 얻을 수 있는 은총이 우리와 함께하면 참 좋겠습니다.

 

 

 

[전례 일반과 미사의 Q&A] (40) 성전의 이해 : “제단에 대해서

 

성전에 들어서면 정면에는 통상적으로 높은 단으로 형성된 공간을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곳을 제단이라고 부릅니다. 이 말은 제사(祭事)의 장소라는 뜻의 히브리어에서 유래했으며, 미사가 봉헌되는 단()을 말합니다. 이 제단에는 순교자의 유해가 안치되기도 하는데, 이는 초기 교회에서 순교자들의 무덤 위에 돌로 세운 곳에서 의식을 행했던 것에서 유래하기 때문입니다. 계단이나 그 외의 합당한 모습으로 구분되어 보여지는 제단의 장소에 대한 의미를 살펴보도록 합시다.

우선, 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 295항에서는 제단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일러줍니다.

제단은 제대가 있고 하느님 말씀이 선포되고 사제, 부제, 다른 봉사자들이 자기 임무를 수행하는 곳이다. 조금 높은 곳에 만들거나 특별한 구조와 장식으로 성당의 다른 부분과 뚜렷이 구별되게 해야 한다. 그리고 성찬례 거행을 편리하게 수행할 수 있고 신자들이 그 거행을 잘 볼 수 있도록 충분히 넓어야 한다.

이 지침에 따르면, 제단은 분명 조금 높은 곳으로 만들어 많은 이들이 잘 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그곳은 일반 신자석과는 다르게 분명한 구조와 장식으로 성당의 다른 부분과 구별된 공간임을 드러내야 하는데, 그 목적은 성찬례 거행에 있어서 도움이 되어야 합니다. 바로 이러한 의미의 공간이 바로 제단입니다.

그리고 제단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서 우리는 주교 예절서 40항에 나와 있는 내용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제단에는 의자든 걸상이든 알맞게 좌석을 마련하여 공동 집전자, 또한 공동 집전하지 않더라도 가대복을 입고 참석한 의전 사제들과 신부들은 물론 그 봉사자들도 저마다 자기 자리에서 맡은 임무를 올바르게 수행하도록 해야 한다. 거룩한 옷이나 수단 위에 중백의를 입지 않았거나 합법적으로 승인받은 다른 전례복을 입지 않은 봉사자는 누구든 거룩한 예식이 거행되는 동안에는 제단에 들어가지 못한다.

이 지침에 따르면, 제단에는 사제단과 봉사자들이 앉을 수 있는 합당한 자리를 마련해야 한다고 전합니다. 대신에 거룩한 옷이나 수단 위에 중백의를 입지 않거나 합법적으로 승인받은 다른 전례복을 입고 제단에 오르도록 인도하고 있습니다. 가끔 본당 행사 중에 일반 옷을 입고 제단에 오르는 경우들이 있는데, 이는 분명한 전례적 위법행위로 볼 수 있습니다. 만일 전례 안에 봉사로 인해서 제단에 올라야 하는 경우, 합당한 의복을 갖춰 입고 올라야 한다는 사실도 상식적으로 알아두어야 합니다.

분명 제단은 신자석과는 구분되는 공간이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성사와 거룩한 예식이 거행되는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분리된 공간으로 이해하기보다는, 거룩한 공간이라는 인식을 통해 제단 앞에 나설 적마다 합당한 자세를 갖추었으면 합니다.

 

 

 

 

 

 

 

 

[전례 일반과 미사의 Q&A] (39) 성령 강림 대축일에 은사를 뽑는 이유는?

 

성령 강림 대축일은 성령께서 제자들에게 내려오시어 사도들이 세상에 복음을 선포하도록 사명을 부어주신 날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부활 시기의 폐막을 알리는 축제일입니다. 이날 전통적으로 많은 본당에서는 성령 칠은을 뽑으며 저마다 뽑은 은사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곤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모습 속에서 내가 뽑은 은사만을 받았다는 오해를 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하지만 이는 분명 잘못된 생각입니다. 각 사람에게 내리는 은사가 나뉘는 것이 아니라, 사도들이 성령의 은총을 풍성히 받고 세상에 파견된 것처럼 성령의 은사를 기억하고, 특별히 자신이 뽑은 성령의 은사를 묵상하도록 돕기 위해 마련된 신심행위입니다. 성령으로부터 받은 선물로서 교회와 공동체의 유익을 위하여 봉사하도록 주어지는 은혜로서, 그 은사는 헤아릴 수없이 풍부하며 그 종류도 다양하지만, 교리는 7가지로 정의하여 일러줍니다. 성령의 은사에 대한 근거는 이사야서 112절과 3절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 위에 주님의 영이 머무르리니 지혜와 슬기의 영 경륜과 용맹의 영 지식의 영과 주님을 경외함이다. 그는 주님을 경외함으로 흐뭇해하리라. 그는 자기 눈에 보이는 대로 판결하지 않고 자기 귀에 들리는 대로 심판하지 않으리라.

성경과 교리적인 측면을 통해 정리하자면, 7가지 은사는 인간 지성과 관련 있는 슬기(지혜), 통달(깨달음, 이해), 의견, 지식, 그리고 인간 의지와 관계 깊은 용기(굳셈), 효경, 경외심(두려워함)입니다.

우선 슬기는 하느님에 관한 것을 올바로 판단하고 실천하도록 돕는 은사입니다. 자신의 일상의 모든 것을 하느님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판단하도록 돕습니다. “통달은 진리를 깊이 통찰하고 잘 이해하도록 돕습니다. 성경의 의미나 교리를 올바로 깨닫고 이 감추어진 영적인 가르침을 깨닫도록 돕습니다. “의견은 하느님을 믿는 이들이 마땅히 해야 할 것과 피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올바로 판단하도록 합니다. 인간적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나 예상치 못한 상황 속에서 성령의 인도와 주님의 이끄심으로 인도합니다. “지식은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을 바르게 이해하게 해줍니다. 곧 세상적인 것이 아닌 영적인 것, 하느님의 것,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한 최선의 방법을 일깨우도록 합니다.

용기는 신앙생활 중에서 찾아오는 어려움을 극복하고 덕을 실천하게 해주는 힘입니다. 이는 더욱 하느님을 열렬히 섬기게 하고 유혹과 장애를 뛰어넘어 주님을 따르는 데 힘을 보탭니다. “효경은 자녀로서 하느님을 사랑하고 하느님의 자녀인 모든 사람을 사랑하게 해주는 은사입니다. 이웃과 하느님을 진실하게 사랑하게 인도하는 성령의 은사입니다. “경외심은 단순히 벌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하느님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사랑에서 우러나오는 두려움입니다. 이 은사로 말미암아 죄를 피하도록 인도하고, 희망을 품도록 돕습니다.

이번 성령 강림 대축일에 성령 은사 뽑기를 하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이 뽑은 은사에 대해서 깊이 묵상하고 성령께서 우리를 어느 길로 인도하실지 묵상하는 시간을 가짐으로써 성령의 선물을 마음 깊이 되새기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전례 일반과 미사의 Q&A] (38) 성체강복과 성시간의 이해

 

우리 교회는 매년 6월을 예수 성심 성월로 기념합니다. 이 달에는 성시간과 기도회로 예수 성심을 공경하는 신심 행사를 열기도 합니다. 그런데 적지 않은 교우분들께서 성시간과 성체강복에 대한 애매모호한 이해를 가지고 이러한 예식을 거행하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우선, 이 성체강복과 성시간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돕기 위해 예수 성심에 대한 이해부터 접근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가톨릭 대사전에 의하면 예수 성심에 대한 정의를 다음과 같이 내립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인류를 향한 사랑의 상징으로서 예수의 육체적 심장을 가리키는 말이다. 예수 성심을 공경하는 신심은 18세기 이후 신학적으로 정의되고, 정식으로 실천되었으나, 이 신심은 중세기부터 시작되었다. 이 신심은 신성을 취하시며 육화된 말씀인 예수 그리스도의 인류를 향한 인간적이며 신적인 사랑을 상징화한 그의 마음을 향하게 하는 것이 목적이다.

예수 성심의 의미를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신심 행위가 바로 성체강복”, “성시간입니다. 물론 성체강복은 성체 안에 성자 그리스도께서 현존하신다는 믿음과 성체에 대한 공경의 표현이라는 의미가 강하고, 성시간은 예수 그리스도의 고통, 특히 겟세마니 동산에서 느끼셨던 고통과 예수 그리스도의 인류에 대한 사랑을 기리며 기도하는 특정 시간이라는 의미이기에 분명한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이 두 가지 모두 예수 성심이라는 의미에서 시작됩니다. 따라서 온전히 그리스도의 마음에 머무르도록 돕는 것이 공통된 목적입니다. 그러나 위에서 설명드렸듯이, 분명한 차이를 두고 있습니다.

우선 성체강복부터 올바로 이해해 보죠. 성체강복의 이해는 성체 신심에서부터 시작합니다. 곧 로마 교회의 고유한 전례로서 보편적으로 성체 현시나 성체 조배와 병행하여 거행합니다. 14세기 초에 최초로 증언되어 있고, 성체강복은 성체 축일에 행한 행렬에서부터 기원합니다. 성체강복은 항상 찬미가와 적절한 노래, 기도가 선행됩니다. 이 예식은 지역교회마다 각각의 차이를 갖지만, 공통된 예식은 찬미가와 기도, 조배, 그리고 성체강복 등의 예식이 혼합되어 모든 교우들이 온전히 성체 앞에 머무르며 기도와 찬미를 드리도록 인도합니다. 정리하자면, 성체강복은 성체에 집중하고 머물도록 돕습니다.

이와 달리 성시간은 죽음의 고통에서 고민하는 예수와 함께 지내며 기도하는 것이 주된 신심 내용입니다. 성시간은 성심의 고통을 묵상하기 위해 적절한 기도문, 성경구절을 함께 묵상할 수 있습니다. 공적인 성시간은 일반적으로 성체 현시와 함께 진행되지만, 성체강복과는 다르게 성체에 집중하기보다는 그리스도의 마음, 고통, 사랑에 집중하도록 돕습니다. 곧 성시간의 목적은 세상의 죄, 특히 하느님의 사랑과 은총을 배반하는 죄를 보속함으로써 성부의 마음을 헤아리고, 죄인들의 회개와 구원을 위한 자비를 간구하며, 상처받은 예수 성심을 위로하기 위한 시간입니다.

이처럼 비슷해 보이는 성시간과 성체강복의 예식은 분명한 차이를 보입니다. 가끔 교회에서 성시간과 성체강복을 혼합해서 잘못된 예식을 거행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의미를 통해 각각의 목적을 분명히 이해하며 거행하는 우리들의 자세가 절실히 필요합니다.

 

 

 

 

 

 

전례-기도하는 교회 (14) 사랑의 성사인 성찬례

 

지난달까지 우리는 전례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들과 전례 거행 안에 사용되는 표징들을 간략히 살펴보았습니다. 이번 달부터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전례 헌장이 밝히는 것처럼 가톨릭 신자들의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활동인 성찬례와 성찬례가 거행되는 미사에 대해서 살펴보려 합니다. 이를 위해 먼저 성찬례에 관한 신학적, 영성적 의미와 역사를 간략히 살펴보겠습니다.

전례는 교회 활동의 전부는 아니지만 교회의 활동이 지향하는 정점이며. 동시에 교회의 모든 힘이 흘러나오는 원천입니다. 즉 전례 거행을 통해, 특히 성체성사가 거행되는 성찬례에서 하느님의 은총이 흘러나오고, 교회의 모든 활동이 목적으로 하는 구원 곧 인간의 성화와 하느님께 찬미와 찬양을 드리는 일이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집니다(전례 헌장 10항 참조).

이처럼 가톨릭 신앙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성찬례는 하느님의 놀라운 선물입니다. 사랑의 성사인 성찬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당신 자신을 내어주시고, 이를 통해서 한없는 하느님의 사랑을 우리에게 드러내시는 선물입니다(사랑의 성사 1항 참조).

성찬례는 지혜의 오묘함과 사랑의 어리석음을 동시에 드러냅니다. 또한 성찬례는 구원의 신비를 드러내는 정점을 이루며, 하느님의 구원 계획이 가장 단순한 방식으로 성취되었음을 보여 줍니다. 신앙의 질서 안에서, 성찬례는 세상 끝 날까지 교회의 여정과 함께할 궁극적인 선물입니다. 그리고 이 선물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단 한 번에 모든 사람을 위하여 이루어진 구원을 모든 사람에게 전해줍니다(성체 성사, “하느님 생명의 선물인 성찬례”, p.183 참조).

성체 성사 안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몸과 피를 생명의 양식으로 내어주시며, 우리를 끝까지사랑하고 계십니다. “제대의 성사에서 주님께서는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된 인간을 만나시고, 우리의 길벗이 되어 주십니다(사랑의 성사 2항 참조). 성체 성사 안에서 우리는 구원의 은총을 얻을 뿐 아니라 은총을 주시는 분까지 만나게 됩니다. 그리스도께서 가장 직접적이고 실질적으로 당신을 드러내시기에 성사 중에 가장 탁월한 성사는 성체 성사입니다. 따라서 성체 성사의 거행인 성찬례는 단순히 과거 사건의 기억이 아닙니다. 성찬례 안에서 그리스도의 살과 피가 빵과 포도주의 형상 안에 현존합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당신의 몸을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의 양식으로 내어주십니다. 또한 성찬례 안에 현존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죄의 용서와 구원을 위해 십자가 위에서 바치신 희생 제사를 계속 새롭게 바치십니다.

이처럼 놀라운 구원의 신비가 드러나는 성찬례는 우리에게 하느님의 본성 자체인 사랑의 진리가 드러나는 장소입니다. 당신의 모든 것, 사랑하는 아들까지도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내어주시는 성부 하느님의 사랑이, 그 사랑을 성체 성사 안에서 끊임없이 새롭게 우리에게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성찬례를 통해 보여집니다. 이 사랑이 신앙생활의 원천이며, 이 사랑을 충만히 누리며 살아가는 것이 그 정점입니다.

물론 성찬례를 통해 드러나는 하느님의 사랑과 구원을 온전히 이해하고 충만히 살아감으로써 복음을 선포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찬례 안에서 하느님께 받은 사랑을 먼저 기억할 수 있다면, 그리고 그 사랑에 감사할 수 있다면 우리는 미사 참례를 통하여 새롭게 살아갈 힘을 얻을 것입니다. 오늘 참례한 성찬례를 통해서 우리 삶의 여정을 함께 걸어가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그 사랑 안에서 기쁨을 되찾으시면 참 좋겠습니다.

 

 

 

 

[알기 쉬운 전례 상식] 훼손된 성물은 어떻게?

선물은 받는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한다.

 

요셉 씨! 부활 대축일에 세례를 받으셨다니 하느님의 자녀가 되신 것에 대해 축하드립니다. 여기 예수님상을 선물로 드립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예수님을 생각하며 신앙의 힘으로 이겨 내시길 바랍니다.” “마리아! 견진성사도 받고 교회의 성숙한 어른도 되었으니 축하해. 성모 마리아를 닮으라고 성모상을 선물로 준비했어”.

예비 신자 기간을 거쳐 기본 교리를 배워 익힌 다음 하느님 백성이 되는 세례를 받거나, 견진성사를 통해 성령을 받아 성숙한 어른이 되었거나, 영명 축일을 맞아 여러 신심 단체에서 특별 공로를 인정받았을 때, 대개 신앙의 상징이요 표현으로서 특별한 의미를 지닌 아름다운 성물을 선물로 주고받는다.

하지만 하느님께 기도하고 공경하는 상징물인 성물이, 시간이 흘러 훼손되었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도시에 밀집되어 있는 아파트 구역의 쓰레기장에는 이사를 오고 가는 시기가 되면 오래된 예수님상과 성모님상을 비롯하여 멀쩡한 성물들이 버려져 있는 경우가 있다. 실로 마음이 아팠다.

그렇다면 가톨릭 교회는 언제부터 훼손된 성물을 처리하는 규정을 내렸고 그 지침 내용은 무엇이었을까? 1874, 지금의 교황청 경신성사부와 신앙교리부의 전신인 예부성성(Sacra Congregatio Rituum, 1588-1969)과 성무성(Sanctum Officium, 1542-1965)은 훼손된 성물을 처리하는 규정에 관한 지침을 다음과 같이 내렸다고 한다.

 

모든 종류의 천(제대보, 성체포, 성작수건, 제의, 장백의, 영대 등)은 태워서 재를 만들어 땅에 묻어야 한다.

성수가 오염되었거나 너무 오래되었을 때에는 흙이 있는 땅(밭이나 화단 등)에 직접적으로 쏟아 버려야 한다.

성지가지는 태워서 재의 수요일에 재로 사용할 수 있다.

묵주나 성상들은 땅에 묻어야 한다.”

심지어 1983년 교회법전은 봉헌이나 축복으로써 하느님 경배를 위하여 지정된 거룩한 물건들을 존경스럽게 다루어야 하며, 개인 소유인 경우에도 속되거나 부적당한 용도로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1171)라고 강조하고 있다.

손상된 성물은 단순한 물질적 대상이 아니라 신앙의 표현으로 간주되어야 하며 그 의미와 존엄성을 고려하여 처리를 신중하게 해야 한다. 훼손된 성물이 수리가 가능한 경우에는 될 수 있는 한 잘 수리하여 다시 사용하도록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개인 및 본당 차원에서 파손된 성물을 모아 처리하는 방법에 대한 교육이 지속적으로 필요하다. 개인 및 가정에서는 훼손된 성물을 깨끗한 땅에 묻거나 포대자루에 넣고 잘게 부순 후에 잘 싸서 땅에 묻도록 한다. 본당 차원에서는 신자들이 파손되거나 사용하지 않는 성물을 본당에 가져오도록 하여 한데 모아 파기하여 폐기하도록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성물업자가 이러한 성물을 수거하여 처리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좋다.

몇 년 전에 미용실에 들른 적이 있었다. 성모상이 창가에 모셔져 있어서 천주교 신자인지 살짝 물어보았더니, 미용실 사장님의 말이 가슴 깊이 파고들었다. “저는 성당을 다니지는 않는데요. 왜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이 마리아상을 쓰레기장에 버리고 가는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제가 성모님을 잘 씻어 가게 안에 모셔 놓았는데, 신기하게도 마음이 편안하네요.” ! 망치로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느낌이랄까?

마태오님, 혹시 집에 손상된 성물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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