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레오 14세 교황 회칙 「고귀한 인류」 해설 (상) 반포 배경 폭주하는 AI 기술, 위기에 놓인 인류... 복음적 경고의
작성자은총의샘작성시간26.06.21조회수60 목록 댓글 0[특별기고] 레오 14세 교황 회칙 「고귀한 인류」 해설 (상) 반포 배경
폭주하는 AI 기술, 위기에 놓인 인류... 복음적 경고의 목소리 절실
레오 14세 교황이 5월 25일 인공지능(AI) 시대의 인간 존엄을 주제로 한 첫 회칙 「고귀한 인류(Magnifica Humanitas)」를 반포했다. 물리학자이자 사제로, AI 시대 교회의 역할을 성찰해 온 김도현 신부(바오로·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의 특별기고를 통해, 첫 회칙의 반포 배경과 주요 내용을 소개한다.
- ‘또 다른 산업혁명’으로 불리는 인공지능은 이제 우리 사회 곳곳에서 활용되고 있다. 인류 발전에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교회의 인간관과의 충돌, 대량 실업, 전쟁과 환경 문제 등 많은 부작용 또한 우려되고 있다. 사진은 공장에서 로봇들이 인간을 대신해 일하고 있는 노동 현장을 가상해 만든 모습. AI 생성 이미지
2025년 5월 8일 선출된 레오 14세 교황은 5월 10일 추기경들에게 행한 공식 연설에서 ‘레오’라는 이름을 택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 바 있습니다.
“저는 바로 이 길을 이어가도록 부름받았음을 느끼면서 레오 14세라는 이름을 선택하였습니다.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그 주된 이유는 레오 13세 교황님께서 역사적인 회칙 「새로운 사태(Rerum Novarum)」를 통하여 제1차 산업혁명의 상황에서 사회 문제를 다루셨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에도 교회는 인간 존엄성과 정의와 노동을 수호하는 데에 새로운 도전이 되는 또 다른 산업혁명과 인공지능 분야의 발전에 대응하기 위하여 사회교리라는 교회의 유산을 모든 이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그의 관점이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는 회칙이 바로 「고귀한 인류」입니다. 그래서 이 회칙은 제1차 산업 혁명기의 「새로운 사태」가 그러했듯이, 제4차 산업 혁명기인 AI 시대의 여러 사회적, 윤리적, 신앙적 문제들에 대한 교도권의 공식 입장을 표명하는 대단히 중요한 사회 교리 문헌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하필 AI가 발전하고 있는 이 시점에 교황은 AI에 대해 다소 부정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러한 회칙을, 그것도 첫 회칙으로 반포한 것일까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AI는 처음부터 ‘유물론’적인 관점에 따라서 탄생했기 때문입니다. AI는 미국 시카고대학교 심리학과의 워런 매컬러(Warren McCulloch)와 월터 피츠(Walter Pitts)가 1943년에 발표한 한 수학 논문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들이 활동했던 1900년대 초, 인간 두뇌의 구조와 전기 생리학적 현상에 관해 연구하던 연구자들이 ‘두뇌와 디지털 회로의 작동 구조가 유사하다’는 사실을 밝혀내자, 매컬러와 피츠는 인간의 두뇌를 일종의 디지털 회로로 이해하면서 회로를 분석하는 수학적인 방법을 통해 우울증과 같은 인간의 여러 심리적인 문제들을 설명할 수 있다는 대담한 제안을 한 수학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비록 그들의 제안은 그 후 심리학 분야에서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인간의 두뇌를 일종의 디지털 회로로서 분석한 그들의 방식은 후에 ‘디지털 회로를 잘 만들면 인간의 두뇌처럼 학습이나 추론을 할 수 있는 인공두뇌를 만들 수 있다’는 아이디어로 발전하게 되면서, 이후 AI의 탄생에 중요한 이론적 토대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점은 매컬러와 피츠가 인간의 두뇌를 디지털 회로로서 해석한 그 방식이 지극히 유물론적이었다는 점입니다. 교회의 전통적인 가르침에 따르면, 인간은 육체와 영혼이 결합된 존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두뇌 작용을 영적인 부분은 배제한 채 그저 물질적으로만 이해했던 그들의 접근 방식은 결국 AI의 탄생 시점부터 현재까지 교회의 인간관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문제를 야기하고 있습니다.
- 레오 14세 교황의 회칙 「고귀한 인류」
둘째, 2022년 말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등장한 챗지피티(ChatGPT)를 비롯한 여러 생성형 AI들이 전 세계의 수많은 회사에서 적극적으로 활용됨으로 인해 심각한 사회적 문제인 ‘대량 실업 문제’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단적으로, 대표적인 전자상거래 기업인 아마존(Amazon)은 작년과 올해 총 3만 명의 직원을,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으로 유명한 메타(Meta)는 올해 5월 8000명의 직원을 해고했습니다. 국내에서도 2025년도 공인회계사 합격자 1200명 중 실제 회계법인 등에 채용된 인원은 연말 기준으로 300명대에 그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모든 일은 AI가 회사 업무에 본격적으로 도입됨으로 인해 생겨난 현상입니다. 효율성과 인건비 절감이라는 달콤한 유혹에 의해 인간이 직장에서 밀려나는 대량 실업 문제는 날이 갈수록 더욱 심해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셋째, 올해에 이르러 AI는 전쟁에 직접적으로 활용되기 시작했습니다. 올해 1월 미군이 베네수엘라의 마두로 전 대통령을 체포한 작전에서 세계적인 AI 스타트업 기업인 앤트로픽(Anthropic)의 생성형 AI인 클로드(Claude)가 활용된 것이 알려졌습니다.
올해 2월 말부터 시작된 미군의 이란 공습 작전에서도 클로드가 활용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미국의 한 군사용 로봇 회사가 개발한 전쟁용 AI 휴머노이드 로봇도 정찰 임무를 위해 우크라이나의 전쟁터에 투입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그래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인류 역사상 최초로 AI 휴머노이드 로봇이 활용된 전쟁이 되었습니다.
넷째, AI 기술을 선도하는 전 세계의 여러 회사가 운영하고 있는 데이터 센터들은 엄청난 양의 전력을 사용합니다. 2025년 12월 국제 통화 기금(IMF)의 보고에 따르면, 전 세계 데이터 센터의 총 전력 소비량은 2023년에 이미 세계 10위 전력 사용 국가인 프랑스 전체의 전력 소비량을 넘어선 상태인데, 2030년이 되면 그 양이 약 세 배로 폭증해서 세계 3위 전력 소비 국가인 인도의 2023년도 소비량에 맞먹게 될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나라와 미국을 포함한 여러 나라 정부는 폭발적인 전력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다수의 발전소를 신규 건설할 계획입니다. 이러한 와중에 올해 3월 초 미국 정부와 7개 주요 빅테크 기업 간에 “기업들이 데이터 센터 운영으로 인해 새롭게 발생하는 전력 수요를 충족하는 데 필요한 발전 자원과 전력을 직접 건설하거나, 외부에서 도입하거나, 구매”하기로 협약을 체결했습니다.
이렇게 되면 앞으로 영향력 있는 민간 기업들은 그들의 필요에 따라 얼마든지 자체적으로 발전소를 지을 수 있게 되며, 그 결과는 어쩌면 공동의 집인 지구의 환경에 심각한 재앙을 초래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인해, 레오 14세 교황은 레오 13세 교황이 135년 전 제1차 산업 혁명이 만들어낸 여러 심각한 상황을 바라보던 바로 그 눈길로 우리의 현 상황을 지켜보면서, 「새로운 사태」의 연장선상에서 새로운 사회 회칙인 「고귀한 인류」를 반포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 새로운 회칙이 반포된 배경의 심각성을 잘 이해하게 되면 그만큼 그 회칙의 구체적인 내용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특별기고] 레오 14세 교황 첫 회칙 「고귀한 인류」 톺아보기
“기술혁신의 주인은 인류”… 교황은 ‘사랑의 문명’을 건설하자 했다
AI 시대, ‘사랑의 문명’을 재건하는 인간의 소명
레오 14세 교황의 첫 회칙 「고귀한 인류」(Magnifica Humanitas)가 5월 25일 교황과 주요 참석자들이 함께하는 가운데 바티칸 새 시노드 홀에서 반포되었다. 「고귀한 인류」는 레오 13세 교황의 회칙 「새로운 사태」(Rerum Novarum) 135주년을 맞이한 지난 5월 15일에 서명되었고, 25일 공개 발표회와 함께 반포됐다.
공개발표회는 교황청 신앙교리부 장관 마누엘 페르난데스 추기경, 안나 로울랜즈(영국 더럼 대학교 신학자) 교수, 크리스토퍼 올라(미국 AI 기업 앤트로픽의 공동 창업자), 레오카디 루숌보(캘리포니아 산타 클라라 대학교 예수회 신학대학원 정치신학 및 가톨릭 사회학) 교수, 교황청 온전한인간발전촉진부 장관 마이클 체르니 추기경 순으로 발표가 진행되었다.
이번 회칙은 AI와 인간 존엄 관련 그리고 세계 평화문제에 대한 교회의 대응을 다룬 첫 사회 회칙이다. 그 배경에는 오늘날 인공지능(AI)과 디지털 혁명이 인간 삶 전체를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는 “새로운 것들(res novae)”에 직면한 인류에 대한 깊은 위기의식이 놓여있다.
이번 회칙의 주요 내용은 소주제에 명시된 것처럼 “인공지능 시대 인간존재 보호함(On Safeguarding the Human Person in the Time of Artificial Intelligence)”이다. 교황은 첫 회칙 공개발표회 마무리 발언에서 AI가 현대 사회에 미치는 위험요소에 대한 자신의 무거운 책임감을 표명하면서 다음 두 가지를 강조하였다.
하나는 ‘AI를 무장해제(disarm)하는 것’이다.(회칙 110항 참조) 무장해제라는 강력한 언어를 교황이 선택한 이유는 AI 시대에 인류를 보호해야 하는 필요성이 그만큼 절실했기 때문이다. 교황은 AI 시대에 기술을 가진 권력자가 자동으로 통치권을 갖는 것을 거부한다는 의미에서 무장해제라는 말을 사용한다. 그리고 AI는 누구든 환영할 수 있고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에서 AI의 무장해제라는 말을 사용한다. 따라서 교황의 AI 무장해제는 기술을 독점적 통제에서 해방하고, 토론 가능하고 접근 가능한 인간 친화적으로 만들자는 의미다. 예로, 평화와 인류를 위한 핵 군축과 공동이익을 위한 핵에너지의 공동사용이다.
교황이 강조한 다른 하나는 AI가 ‘인류의 건설현장(constructive site)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AI는 공동선을 건설하고 사랑의 문명(civilization of love)을 재건하는 ‘역사의 건설현장(constructive site)이 되어야 하는 것’이 교황의 목소리다.(회칙 90항 참조) 교황은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는 느헤미야 이야기처럼, 모든 이가 함께 벽돌 하나하나를 쌓는 역할을 수행하는 정의로운 공존을 이루자고 했다. 마지막으로 교황은 AI 시대에 소수의 특권층만이 아닌 인류 공동의 집을 위한 미래를 함께 건설하고, 하느님의 위대하심을 찬양하는 마니피캇의 성모님을 찬양하면서 발언을 마쳤다.
- 레오 14세 교황이 5월 25일 발표한 회칙 「고귀한 인류」.
회칙의 구성 및 내용
회칙의 구성은 전체적 맥락을 요약한 서론과 결론, 그리고 본문 5장을 합해 총 5장 245개항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 장의 전개가 매우 진솔하고 세부적이며 논리적이다. 먼저 제1장은 교회의 사회 교리가 어떻게 형성되어 왔는지를 개괄적으로 제시하고(17~24항), 레오 13세 교황부터 현재에 이르는 사회 교리 전통을 재조명하면서(28~45항), AI 시대 또한 교회가 외면할 수 없는 새로운 현실임을 밝힌다. 사회 교리는 고정되고 정체된 매뉴얼이 아니라, 역사 속에서 발전하는 “복음에 충실한 역동적 성격(dynamic character)”이다.(45항)
제2장은 먼저 하느님의 모상(Imago Dei)인 인간 존엄성을 바탕으로 살아있는 실체와 같은 사회 교리의 기초와 원리를 설명하며(46~58항), AI 시대의 “새로운 것들(new things)”을 해석하는 데 도움이 되는 사회 교리의 핵심 원리들을 다시 정리한다(59~81항). △공동선(common good) △재화의 보편 목적(universal destination of goods) △보조성(subsidiarity) △연대성(solidarity) △사회정의(social justice)다.
회칙의 주요 내용은 제3장과 제4장에 있다. 제3장에서 교황은 기술 관료적 패러다임(technocratic paradigm)의 지배가 점점 커지는 위험을 분석하며(92~96항), 기술혁신을 이끌어야 하는 인간의 주체성(지성, 양심, 자유 등)을 강조한다. 현재의 AI 시스템은 ‘만들어진(built)’ 것이라기보다 ‘배양된(cultivated)’ 것에 더 가까워(98항) 엄청난 잠재력을 지닌다. 한마디로 AI는 “가치 있는 도구이지만 경계심이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AI 사용에 대한 책임성, 투명성, AI 거버넌스는 명확한 기준과 실질적 감독 아래 이루어져야 하며(108항), 앞서 언급한 AI ‘무장해제’의 필요성을 주장한다.(110항)
마지막 부분은 우리 마음에서 투쟁하는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두 도시와 두 사랑(Two cities and two loves)”을 언급한다. “두 사랑이 두 도시를 세웠다. 곧 하느님을 멸시하기에 이르는 자기 사랑이 지상의 도시를 세웠고, 자기 자신을 멸시하기에 이르는 하느님 사랑이 하늘의 도시를 세웠다.”
제4장은 공동선으로서 진리·노동·자유의 보존을 강조하며, 전환의 시대에 사회 주요 분야에서 추진해야 할 인간 중심적 AI 활용을 구체적으로 언급한다. AI 시대에 교육·노동·어린이·노동시장·금융·경제·가족과 청년 등 각 분야에서 야기될 수 있는 중요한 위험 요소들을 분석하고 나아가 해법을 제안한다.(139~169항) 또 의존성과 상업화로부터 인간의 자유가 보호되어야 함을 강조하면서 교황은 과거의 노예제에 대한 용서를 청한다.(176항) 마지막 부분은 디지털 경제에 의한 새로운 형태의 노예제에 대한 규탄이며, 우리 모두의 공동 책임(제도·기업·중간조직·시민)이 강조된다.
제5장은 평화와 사랑의 문명에 관한 전망으로 나아간다. 교황은 AI 군비경쟁과 자율살상무기 개발을 강하게 경고하면서 ‘힘의 문화’가 아니라 ‘사랑의 문명’을 재건해야 한다고 촉구한다.(182~211항) 교황은 회칙 서론에서 언급했던 성경적 이미지의 두 가지 상반된 길을 비교하면서, 권력과 교만에 의지하여 바벨탑을 쌓으려는 유혹에서 벗어나 느헤미야 시대처럼 인내하고 함께하면서 인간성과 공동선을 지키자고 요청한다.
결국 이번 회칙은 우리 모두에게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무엇을 만들 것인가? 또 어떤 인간으로 남을 것인가? 레오 14세 교황이 언급한 바벨탑인가 아니면 느헤미야의 성벽 쌓기인가? 또한 힘의 문화를 만들어 나갈 것인가, 아니면 사랑의 문명을 건설할 것인가?
레오 14세 교황 성하께서
사제 성화의 날을 맞이하여 사제들에게 보내는 메시지
(2026년 6월 12일)
사랑하는 형제 사제 여러분,
교회는 오늘, 온 인류를 위한 평화와 일치의 마르지 않는 샘이 흘러넘치는 주님의 꿰찔린 성심을 묵상합니다. 저는 무엇보다도 저 자신과 여러분 모두에게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에게 하신 말씀을 전합니다. “나, 주 너희 하느님이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레위 19,2; 참조: 1베드 1,16). 하느님의 이 부르심은 오랜 세기를 거쳐 오늘날에도 모든 신자, 특히 우리 사제들을 향하여 힘차게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거룩함은 수많은 선택지 가운데 하나도, 추상적인 이상도 아닙니다. 거룩함은 부활하신 분의 생명에 참여하고자 하는 모든 사람의 정체성 그 자체와 연관되는 소명입니다.
거룩함은 그리스도의 신비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거룩함에 참여하라고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당신이 거룩하시니 우리도 거룩한 사람이 되라고 부르실 때,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나아가야 할 길을 보여 주십니다. 이 길은 그분 성심에 따라 빚어지도록 우리 자신을 맡겨 드리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이 부르심은 우리에게 특히 근본적인 부르심입니다. 주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내 마음에 드는 목자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너희를 지식과 슬기로 돌볼 것이다”(예레 3,15). 우리에게 요구되는 거룩함은 신뢰에 찬 의탁입니다. 곧 주님의 성령께서 우리를 변화시켜 주시도록 내어 맡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로 여기에서 우리 사제 생활의 커다란 역설이 드러납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바로 그 거룩함에 참여하도록 부름받았지만, 이 보물을 질그릇 속에 지니고 있다는 사실입니다(2코린 4,7 참조). 우리는 유한하고 불완전하며 종종 약함과 피로에 짓눌리고 때로는 상처받기도 합니다. 이처럼 나약한 인간의 마음이 어떻게 하면 그토록 고귀한 부르심에 응답할 수 있을까요? 사제는 이러한 긴장 속에서 살아가지만, 바로 주 예수님의 열린 옆구리가 평화를 찾을 수 있는 곳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나 됨의 여정
우리의 마음이 그리스도의 성심과 하나 되는 것은 소수의 선택받은 이들만 누릴 수 있는 경험이 아니라 일상 안에서 이루어지는 성사적 여정, 성찬의 여정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우리는 성품성사를 통하여 그리스도를 닮게 되었지만, 날마다 성찬례를 거행하고 기도하며 하느님 말씀을 묵상하고 형제자매들에게 겸손되이 봉사함으로써 언제나 우리 안에 이 은총의 선물을 되살려야 합니다. 모든 것에서, 곧 우리가 하는 모든 것과 날마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에서 늘 그리스도와 하나 됩시다. 그렇게 할 때에, 고립되어 혼자 아무리 노력해도 다다를 수 없던 그 거룩함이 있는 그대로 드러날 것입니다. 거룩함은 우리보다 앞서고 우리를 뒷받침하며 우리를 변모시키는 은총에 화답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우리 인간성 안에는 별개의 영역들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기도, 직무, 관계, 피로, 기쁨, 실패, 심지어 허비한 것처럼 보이는 시간이나 헛되다고 여겨지는 사랑까지도, 모든 것이 하느님께서 당신 자신과 당신의 무한한 사랑을 드러내시는 특별한 자리가 됩니다.
올곧고 단순하며 순수한 마음을 지닌 사제는 행동하면서도 관상하고, 자비로우며, 시련 속에서도 충실하고, 자신을 내어 주면서도 기뻐하는 사람입니다. 말과 계획만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화해를 이룬 마음에서 나오는 살아 있는 증거를 보여 주며, 그리스도의 거룩함이 발산하는 좋은 향기를 널리 전할 목자들이 세상에는 절실히 필요합니다. 예수 성심을 닮은 건실한 사제의 삶은 일치와 평화와 자비에 대한 믿음직한 표징입니다. 그리하여 분열과 두려움으로 얼룩진 이 시대에, 우리는 평화를 이루는 일꾼이 되고, 흩어진 이들을 한데 모으시고 상처 입은 이들을 낫게 하시는 착한 목자의 자애로움을 증언하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의 열정은 부산스러움이 아니라, “황홀경이고 개방이며 선물이고 만남[인]”(프란치스코, 회칙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28항) 사랑으로 흘러넘치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은 거룩한 이들의 마음입니다
거룩한 사람이 되라는 부르심에 대한 응답은, 고행과 완덕을 향한 노력도 물론 필요하겠지만, 예수님의 꿰찔린 성심 안에서 드러난 사랑을 신뢰의 마음으로 따를 때 가능해집니다. 요한 사도는 우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분의 열린 옆구리를 관상하도록 이끌어 줍니다(요한 19,34 참조). 이를 통하여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얼마나 거룩하신지 결정적으로 보여 주십니다. 닿지 못할 먼 거리에 있는 동떨어진 완덕으로가 아니라, 상처 입기까지 내어 주는 사랑, 그리하여 자비와 생명의 샘이 된 그 사랑 안에서 당신의 거룩함을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 성심은 바로 이러한 하느님 사랑의 탁월한 표상입니다. 그 사랑은 스스로 연약해지고 고통을 은총으로 변화시키며 괴로움을 희망으로 바꿀 수 있기에 하느님의 전능한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복되신 예수 성심은 거룩함이 친밀함과 자애로움으로 드러나는 ‘자리’입니다. 사제의 거룩함은 겸손하고 용기 있게 사람들에게 다가가고,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며, 많은 이들이 들어와 풀밭과 쉼터를 찾을 수 있도록 울타리의 문을 열어 두는 데에서 드러날 수 있습니다(요한 10,9 참조). 그러하기에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우리를 사람들에게서 멀어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모든 이에게 가까이 다가가게 하는 하느님과의 관계입니다. 그러한 관계는 인내와 친절의 마음, 가까이 가고 연민을 지니며 경청하는 마음을 빚어냅니다. 우리의 불완전한 마음이 예수님의 꿰찔린 성심과 하나 됨으로써 거룩함을 위한 우리의 여정이 실현됩니다. 이제는 우리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갈라 2,20 참조). 그러므로 거룩함은 혼자서 실천할 수 없습니다. 사제의 형제애를 소중히 여기십시오. 서로 찾아가고 경청하며 서로 지지해 주십시오. 고립된 사제는 서서히 힘을 잃어 갈 것입니다. 형제들과 함께 길을 걷는 사제는 성장해 나갈 것입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말을 다시 한번 되새겨 봅시다. “어떻게 하면 우리는 어둠 속에 머물지 않을 수 있습니까? 형제들을 사랑함으로써 가능합니다. 우리가 형제들을 사랑한다는 증거는 무엇입니까? 이는 바로 일치를 깨뜨리지 않고 사랑을 지키는 것입니다”(「요한 서간 강해」[In Epistulam Ioannis ad Parthos], II, 3).
사랑하는 사제 여러분, 그리스도의 꿰찔린 성심 앞에서 ‘저 여기 있습니다.’(eccomi) 하고 날마다 새롭게 응답하십시오. 그분께 여러분 자신을 온전히 내어 맡기십시오. 그러면 여러분도, 그분께서 당신 백성을 사랑하시는 바로 그 사랑으로 백성을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아르스의 거룩한 본당 신부가 즐겨 하던 이 말을 기쁜 마음으로 기억하십시오. “사제직은 예수 성심의 사랑[입니다]”(베네딕토 16세, 사제의 해를 선포하는 서한, 2009.6.16.). 이 사랑은, 우리가 모든 것을 내맡기고 봉헌한다면 아무것도 잃어버리지 않을 것이라는 약속이요 보증입니다. 저는 모든 사제 한 사람 한 사람을 사제들의 어머니이신 동정 마리아께 맡겨 드립니다. 그리하여 당신 아드님의 신비를 마음 깊이 간직하셨던 그분의 가르침으로 우리가 세상의 구원자이신 그리스도의 성심을 우리 안에 간직하고 그 성심이 우리 안에서 뛰게 되기를 바랍니다.
바티칸에서
2026년 6월 12일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 성심 대축일
레오 14세 교황
[특별기고] 레오 14세 교황 회칙 「고귀한 인류」 해설 (하) 주요 내용
‘AI 권력화’ 경계하며 ‘인간 존엄성 수호’ 교회 소명 일깨워
레오 14세 교황이 5월 25일 인공지능(AI) 시대의 인간 존엄을 주제로 한 첫 회칙 「고귀한 인류(Magnifica Humanitas)」를 반포했다. 물리학자이자 사제로, AI 시대 교회의 역할을 성찰해 온 김도현 신부(바오로·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의 특별기고를 통해, 첫 회칙의 반포 배경과 주요 내용을 소개한다.
지난 5월 25일 반포된 회칙 「고귀한 인류(Magnifica Humanitas)」는 ‘인공 지능 시대에 인간 존엄성 수호에 관한 교황 레오 14세 성하의 회칙’이라는 부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부제에서 드러나듯 인공지능(AI) 시대에 인간 존엄성을 수호하는 것이 바로 이 회칙의 주제입니다. 이미 지난 주에 설명해 드린 바와 같이, 이미 우리에게 다가온 AI 시대는 AI의 오남용으로 인해 유물론적 관점의 확산과 대량 실업, 전쟁 활용과 환경 파괴 등 여러 문제를 낳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여러 문제는 복합적으로 하느님을 닮은 고귀한 존재인 인간이 지닌 고유한 가치에 흠집이 생기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레오 14세 교황은 자신의 첫 회칙을 이렇게 시작합니다.
“하느님에 의해 창조된 고귀한 인류는 오늘날 중대한 선택에 직면해 있습니다. 새로운 바벨탑을 건설할 것인가, 아니면 하느님과 인간이 함께 지내는 도시를 세울 것인가 하는 선택 말입니다.”(1항)
여기서 교황은 이 회칙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볼 수 있는 두 가지 성경적 이미지를 사용하는데, 그 하나는 바벨탑 건설 이야기(창세 11,1-9 참조)이고, 다른 하나는 예루살렘 성벽 재건 이야기(느헤 2-6장 참조)입니다.
“사람들은 ‘꼭대기가 하늘까지 닿는’(창세 11,4) 탑을 건설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들은 온 땅에 흩어지는 것을 두려워하여 자신들의 안정과 힘을 보장하고, 무엇보다도 ‘이름을 날리기’를 원했습니다. … 하지만 그 계획 안에는 깊은 위험이 숨어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느님과 관계없이 구상된 프로젝트였으며, 다양성을 제거하는 획일성에 의존했고, 친교보다는 동질화를 선택한 계획이었습니다. … 따라서 바벨탑은, 아무리 거창해 보이는 노력이라 하더라도 자기 과시에서 비롯되고, 효율성을 위해 인간 존엄성을 희생하며, 하느님의 축복 없이 하늘에 도달하려는 모든 시도의 한계를 드러냅니다.”(7항)
“바빌론 유배 이후, 일부 백성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지만, 도시는 여전히 폐허였고, 성벽은 무너져 있었으며, 성문들은 불타 있었습니다.(느헤 1-2장 참조) … 느헤미야는 윗자리에서 해결책을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각 가문을 불러 모아 각자 맡은 구간의 성벽을 재건하게 했고, 그들의 우려를 들으며 노력을 조율하고 반대에 대응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도시가 한 사람의 주도로 다시 세워진 것이 아니라 모두의 공동 책임을 통해 되살아났음을 보여 줍니다. … 그것은 하느님을 중심에 둔 사업이었고, 돌을 다시 쌓기 전에 먼저 관계를 재건하는 일이었습니다.”(8항)
이어서 교황은 이 회칙이 작성된 의도를 다음과 같이 드러냅니다.
“추상적으로 볼 때 기술 자체는 인간 문제의 해결책도 아니고, 본질적으로 악한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실제로 기술은 결코 중립적이지도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것을 구상하고, 자금을 지원하며, 규제하고 사용하는 사람들의 특성을 반영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핵심적인 선택은 기술에 대해 ‘예’ 또는 ‘아니요’를 고르는 것이 아니라, 바벨탑을 건설할 것인가 아니면 예루살렘을 재건할 것인가의 선택입니다. 곧 하늘을 지배하려는 권력의 길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하느님 현존 안에서 형제적 공존의 성벽을 함께 재건하는 백성의 길을 택할 것인가의 문제입니다.”(9항)
회칙은 AI를 절대로 거부하지 않습니다. AI의 개발과 사용을 거부할 것을 교황의 이름으로 신자들에게 명령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AI의 선용을 통해 우리가 다 같이 ‘하느님의 도성인 예루살렘을 재건’하도록 촉구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게 할 때 비로소 AI의 오남용으로 인해 생겨난 여러 문제가 정리되고 인간 존엄성이 제대로 수호될 수 있을 거라고 교황은 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황은 AI를 무장 해제시켜야 한다고 말합니다: “저는 제가 매우 소중하게 여기는 ‘무장 해제(disarm)’라는 표현을 사용하고자 합니다. … 무장 해제란 기술적 힘이 자동적으로 지배할 권리를 부여한다는 가정을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무장 해제는 기술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이 인간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110항)
그래서 이 회칙은 총 245항에 걸쳐 마지막까지 ‘예루살렘 재건의 이미지’를 지속적으로 상기시키는 방식으로 논의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예루살렘을 재건하기 위해서는 재건의 길 중간에 놓인 여러 문제를 깊이 들여다보고 정리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회칙의 본문에서는 AI 시대에 생겨난 다양한 문제를 자세히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들은 사회적으로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에 이 회칙은 레오 13세 교황의 「새로운 사태」의 연장선상에서 사회 교리를 다루는 회칙으로 작성되었습니다. 그래서 회칙의 앞부분은 레오 13세 교황부터 프란치스코 교황까지의 사회 교리의 발전 상황을 요약 정리한 후에 사회 교리의 여러 중요한 원리들 즉 인간 존엄성, 공동선, 보조성, 연대성 등을 제시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 후 교황은 AI 시대에 들어선 우리 사회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를 조목조목 지적하면서 인간 존엄성에 대해 지속적으로 강조합니다. 지적된 문제 중에서 특별히 중요하게 언급된 것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트랜스휴머니즘과 포스트휴머니즘, 실업, AI 시대의 새로운 노동력 착취, 전쟁에 악용되는 AI, 외교적 다자주의의 위기 등.
회칙은 많은 내용을 담고 있지만, 핵심은 하나입니다. 바로 ‘AI 시대에도 인간을 우선에 두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우리도 느헤미야처럼 경청과 용기, 기도와 책임을 결합하도록, 그래서 기술 관료적 사고방식이나 당파적 이해관계가 우세해 보일 때조차도 인간의 도시가 살기에 더욱 적합한 곳이 될 수 있도록 부르심을 받은 것입니다.”(241항)
우리 모두는 AI 시대에도 인간 존엄성이 수호되는 예루살렘을 재건할 소명을 받은 이들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