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거룩한 성체여
오, 놀라운 신비여
오, 놀라운 희생이여
■ ‘성체성사의 해’를 정하게 된 배경과 그 의미 -
우리 수도원에는 주일마다 저녁기도 끝에 성체강복을 하는 아름다운 전례 전통이 있다. 한 주간을 새롭게 시작하는 주일 저녁 해가 질 무렵 수도형제들은 온 마음으로 성광 안 성체에 현존하시는 주님을 바라보며 시간의 주인이신 그분께 한 주간을 봉헌하고 강복을 받고 또다시 한 주간을 하느님의 보호 안에서 시작한다.
그 얼마나 놀라운 신비란 말인가, 하느님께서 보잘것없는 작은 빵 덩이에 계시다니! 우리 인간의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도 풀 수도 없는 신비 자체이다.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사랑의 신비라고 말할 수밖에 없으리라. 교회는 마르지 않는 사랑의 신비를 신자들에게 맛보게 하고자 2004년 10월부터 2005년 10월까지를 ‘성체성사의 해’로 정했다. 구체적으로 보면 2004년 10월 10일에서 17일까지 멕시코 과달라하라에서 열린 ‘세계성체대회’로 성체성사의 해가 시작되고, ‘교회의 생활과 사명의 원천이며 정점인 성체성사’라는 주제로 2005년 10월 2일-29일까지 바티칸에서 열릴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정기총회’를 끝으로 성체성사의 해가 마감된다. 이 기간 사이에 세계 젊은이들이 2005년 8월 16일부터 21일까지 독일 쾰른에서 성체성사를 중심으로 모이는 ‘세계청년대회’가 개최된다.
우리 한국교회에서도 성체성사의 해를 경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래서 여러 교구의 2005년 사목 교서에서 교구장들은 성체성사를 중심으로 교구민들이 살아가도록 권면하고 여러 행사들도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또 거창한 축제냐 하고 의구심과 회의를 품을 수 있고 식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한 해는 어떤 외적인 행사나 잔치가 목적이 아니다. 내적으로 쇄신하고 내적으로 풍성한 결실을 거두는 것을 목표로 한다. 참으로 그리스도인으로서 사는 것이 무엇인지를 깊이 생각하기로 결심을 하는 것이다. ‘성체성사의 해’를 마련하면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관상의 삶 안으로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 등 모든 계층의 신자들을 초대하고 있다.
사실 성체성사의 해를 교회가 설정한 이유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사목 계획이라는 큰 틀 안에서 봐야 한다. 그래서 몇 가지 교황 문헌을 통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이 문헌들 가운데 특히 성체성사의 해를 시작하면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2004년 10월 7일에 발표한 교황 교서 「주님 저희와 함께 머무소서」(Mane nobiscum Domine)를 중심으로 성체성사의 해를 정하게 된 배경과 그 의미를 알아보겠다.
1. 성체성사의 해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와 대희년을 거쳐온 여정의 정점이며 종합이다
교회는 새로운 변화의 길을 모색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통하여 자신의 신원과 목적을 새롭게 이해했다. 이러한 교회는 새 천년의 대희년과 묵주기도의 해를 거치면서 주님의 제자로서 주님을 추종하는 길을 걸어 나갔고, 이제 새로운 추진력으로 새 천년을 주님과 함께 걸어가기 위해서 성체성사 안에서 주님을 알아뵙고 주님께 힘을 얻고자 한다.
1)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열정
교서 「주님 저희와 함께 머무소서」에서 교황은, 우리 믿음의 중심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탁월하게 현존하시는 성체성사 안에서 우리가 지녀야 할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의 열정을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발견한다. “교황 바오로 6세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그리스도는 ‘인류 역사의 목적이시고 역사와 문명이 열망하는 초점이시며 인류의 중심이시고, 모든 마음의 기쁨이시며 그 갈망의 충족이시다’(현대세계의 교회에 관한 사목헌장 「기쁨과 희망」, 45항)고 선포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그 열정을 우리가 어떻게 잊을 수 있겠습니까?”(6항)
공의회를 통하여 신자들은 교회의 본성을 더욱 깊이 이해하였고, 신앙의 신비뿐 아니라 현세 사물을 그리스도의 빛으로 바라봄으로써 그에 대한 더욱 명확한 시각을 가지게 되었다. 강생하신 말씀이신 그리스도 안에 하느님의 신비와 인간의 신비가 함께 계시되었고, 그리스도 안에서 인류는 구원과 충만함을 얻는다. 요한 바오로 2세는 공의회가 천명한 그리스도 중심의 신앙관을 1979년 회칙 『인간의 구원자』에서 더욱 심화시키고 발전시켰다.
2) 성찬의 해인 대희년(2000년)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뜨거운 신앙은 대희년을 준비하고 맞이하면서 더욱 구체화되고 절정에 다다랐다. 이 대희년의 중심에 바로 성체성사가 있다. 왜냐하면 성체 안에 현존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느님 아버지께 이르는 유일한 길이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황은 이미 1994년 교서 『제삼천년기』에서 “2000년은 열렬한 성찬의 해가 될 것입니다. 성체성사 안에서, 20세기 전에 마리아의 태중에서 육신을 취하셨던 구세주께서는 당신 자신을 신적 생명의 원천으로서 인류에게 계속하여 내어주십니다.”(55항) 하고 천명했다.
대희년을 맞이하여, 교회와 세계 안에 살아계시고 구원하시는 그리스도의 현존을 극대화하고자 로마에서 ‘세계성체대회’가 개최되었다. 성체대회 이전에 요한 바오로 2세는 대희년을 준비하는 일환으로 1998년 『주님의 날』(Dies Domini)이라는 교서를 통해서 성체성사 안에 현존하시는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 신자들이 모이는 날인 주일과 주일 성찬례를 강조하고 심화했다.
3) 묵주기도의 해와 빛의 신비(2002년 10월-2003년 10월)
대희년을 마무리하면서 교황은 2001년 『새 천년기』라는 교서를 통해서 모든 신자들이 바라보아야 할 얼굴은 바로 부활하신 그리스도이시고, 바로 이 그리스도에게서 새롭게 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이 출발은 참된 기도 안에서 이루어지고, 그리스도를 만나고 체험하는 주일과 성찬례에서 나아가게 된다.
교회는 2002년 10월부터 2003년 10월까지 묵주기도의 해를 선포하고 교황 교서 『동정 마리아의 묵주기도』(Rosarium Virginis Mariae)를 발표하면서, 성모 마리아의 관점에서 그리스도의 얼굴을 바라보는 주제로 돌아갔으며, 묵주기도를 바칠 것을 다시 한번 장려하였다. 여기서 교황은 이 전통적인 기도를 성모님의 눈으로 예수님의 삶과 죽음의 신비를 바라보는 관상기도라고 정의한다. 더 나아가 묵주기도에 빛의 신비를 추가함으로써 수세기에 걸친 오랜 전통을 발전시켜, 이 탁월한 형태의 관상을 더욱 완전한 복음의 요약으로 만들고자 하였다. 빛의 신비는 주님께서 잡히시던 날 밤 최후 만찬에서 거룩한 성체성사를 제정하신 사건에서 절정에 이른다.
4) 묵주기도의 해에서 성체성사의 해로(2004년 10월-2005년 10월)
교황은 묵주기도의 해 중간인 2003년 성목요일에 회칙 『교회는 성체성사로 산다』를 발표하여 성체성사와 교회의 뗄 수 없는 생생한 관계 안에서 성체성사의 신비를 조명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성체 안에 현존하시는 주님의 위대한 신비에 맞갖은 예배를 드릴 때 신자들이 모두 합당한 공경으로 성찬의 희생제사를 거행하도록 당부한다. 무엇보다도, 성체성사의 영성에 대한 필요성을 다시 한번 제시하고, 묵주기도의 해에 “성찬의 여인”이신 성모 마리아를 그 본보기로 든다. 성체성사의 해는 그리스도께 대한 관상이라는 주제에 변함없이 충실하면서도, 해를 거듭하면서 더욱 풍요로워진 배경 위에서 시작된다. 곧 성체성사의 해는 교회가 걸어온 여정의 정점이며 그 여정을 종합하는 해이다. 교회가 도달할 최종 목적지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성체성사가 이 지상에서 ‘오늘(hodie)’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 현존하시는 매우 특별하고 탁월한 방식이기에, 교회는 성체성사를 중심으로 모일 수밖에 없고 성체성사에서 생명과 힘을 얻을 수밖에 없다.
2. 빛의 신비인 성체성사의 해를 경축하는 영적 의미
성체성사의 해에 이루고자 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교회에 영적 깊이를 더하는 것이다. 성체성사의 해는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인들이 도달해야 할 분이 누구이신지를 명확히 인식하고 관상하도록 촉구하는 해이다. 현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를 성체성사 안에서 참으로 발견하고, 성체성사를 진실한 마음으로 거행하고, 성체와 성혈을 공경하고, 마침내 성체성사 안에 현존하시는 그리스도를 관상하고 그분의 제자로서 그분 뒤를 따라야 한다.
교황은 회칙 『교회는 성체성사로 산다』에서 성체성사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교회는 성체성사로 산다. 이러한 진리는 일상적인 신앙 경험을 표현하는 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교회 신비의 핵심을 요약하고 있습니다”(1항).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는 이미 성체성사가 그리스도교 생활 전체의 원천이며 절정이라고 선포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 계시겠다고 하신 당신의 약속을 특별히 빵과 포도주의 형상 아래 성체성사를 통하여 성취하시고 실현하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체성사는 그리스도 현존의 위대한 신비이다.
2000년 전 최후 만찬 석상에서 그리스도께서는 파스카 제사와 식사를 제정하시고, 이로써 교회 안에 십자가 제사(sacrificium crucis)가 효과적으로 현존하도록 하셨다. 주님께서는 빵과 잔을 드시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쪼개어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시며, “받아라, 먹어라, 마셔라.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의 잔이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하셨다. 그래서 주님이신 그리스도를 대리하는 사제가 주님 친히 하신 일과 당신을 기념하여 행하라고 제자들에게 맡겨주신 이 신비를 완수한다. 교회는 성찬 전례 거행의 모든 부분을 그리스도의 말씀과 행위에 맞추어놓았다.
성찬 전례에 들어가서 예물 준비 때 빵과 포도주를 제대에 봉헌한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손에 드셨던 것과 같은 요소들이다. 감사기도로써 모든 구원 업적을 통하여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드리며, 예물은 그리스도의 살과 피가 된다. 한 빵을 뗌으로써(fractio panis) 믿는 이들의 일치를 드러내고, 사도들이 그리스도의 손에서 받아 모신 것과 같이 신자들은 영성체를 통하여 주님의 살과 피를 먹음으로써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된다.
무엇보다도 성체성사는 빛의 신비이다. 예수님께서 세상의 빛이시기 때문이다(요한 8,12). 첫 창조 때 하느님께서 빛 안에서 세상을 창조하셨듯이(창세 1장 참조), 새로운 빛 자체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께서는 우리 안에서 그리고 세상 안에서 새로운 창조를 이루신다. 그래서 성체성사의 해는 빛의 해이며 동시에 새로운 창조의 해이다. 이 빛 안에서 신자들은 새로운 피조물로서 하느님의 생명 안으로 깊이 들어가게 된다.
3. 성체성사의 해에 맛보는 교회의 친교와, 선교의 열정과, 인류에 대한 봉사
성체성사의 해에 신자들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으로서 성체성사 안에 현존하시는 그리스도께 대한 강한 체험과 충동을 느낀다. 성체성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은혜 자체인 것이다. 이 은혜는 첫째로 친교(koinonia)의 은혜이다. 교회의 일치와 친교의 원천이 바로 성체성사이다. 그리스도의 몸인 성체와 성혈의 성사를 통해서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 그리스도의 신비체라는 사실이 더욱 밝혀지고 구현된다. 따라서 교회는 성체성사 안에서 친교와 일치의 원천을 발견한다. 구체적으로 보면 주님의 날인 주일에 성찬례를 하러 교회의 각 구성원이 한자리에 모일 때 교회의 친교가 실현된다.
둘째로 성체성사는 교회 본연의 의무인 선교의 원리이고 봉사의 원천으로 드러난다. 성체성사는 신자들이 그리스도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도록 격려한다. 특히 미사 끝에 하는 파견은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임무로서 복음을 널리 전하고 사회와 문화 전체에 그리스도교 가치를 고취시키도록 노력하라는 권유이다. 성체성사의 은혜로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께서 세상 안에 참으로 현존하신다는 사실을 증언하게 된다.
셋째로 성체성사는 전 인류를 위한 연대에 힘쓰고, 정의롭고 우애로운 사회 건설에 투신하도록 재촉하며, 특히 가장 가난한 사람들에게 봉사하기를 격려한다. 영성체에서 오는 친근감으로 성찬 제정 때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예수님처럼(요한 13장) 그리스도인들도 세상의 가난한 이들과 나눔을 실천함으로써 애덕을 충만히 실현한다.
4. 교황의 실천적 권고
요한 바오로 2세는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로 성체성사의 해를 지낼 것인지에 대해서는 개별교회 주교들의 재량에 맡긴다. 덧붙여 각 주교들에게 부탁하기를, ‘성체성사의 해’는 매우 깊은 영적 수준에서 이루어질 것이므로, 개별교회의 사목 계획들을 조명함으로써 이 계획들이 신자들의 영성생활과 지역교회의 활동들을 성장시키는 바로 그 신비 안에 뿌리내리게 하고, 그리스도교 생활 전체의 한 부분인 성체성사의 차원을 강조하라고 말한다(「주님 저희와 함께 머무소서」, 5항 참조).
더 나아가 교황은 성체성사의 해 동안 모든 계층의 신자들이 주일 성찬례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더욱 자주 성체 앞에 나아가 조배하고, 성체강복을 거행하는 등 성체성사와 관련된 공동기도와 개인기도를 하도록 강하게 권고한다.
이미 요한 바오로 2세는 성체성사의 해를 미리 내다보면서 교서 『새 천년기』에서 종합적으로 말한 바 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길을 걸으시며,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에게 하신 것처럼, ‘빵을 떼어 주실 때’(루가 24,35) 당신을 알아볼 수 있게 해주십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깨어있게 하시고, 즉시 당신의 얼굴을 알아보고 ‘우리는 주님을 뵈었다’(요한 20,25)는 기쁜 소식을 가지고 형제자매들에게 달려갈 수 있게 하여주시기를 바랍니다”(59항).
■성체성사의 해를 맞는 우리의 마음 자세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2003년 4월 17일 회칙 「교회는 성체성사로 산다」를 공표한 뒤, 지난해 10월 7일 교황 교서 「주님 저희와 함께 머무소서」(Mane Nobiscum Domine)에서 작년 멕시코 과달라하라에서 개최된 제48차 세계성체대회를 시작으로 올해 10월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제11차 정기총회 때까지를 성체성사의 해로 선포하였다. 교황은 이 교서에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와 대희년의 발자취를 따라서 그리스도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을 교회 임무의 핵심으로 삼았다(「주님 저희와 함께 머무소서」, 제1장 참조). 또한 이 교서에서 교황은 그리스도의 공동체인 교회가 이 놀라운 성체성사를 중심으로 살아가도록 자극하는 중요한 사목적 지침을 제시한다.
이 글에서는 먼저 초세기부터 제2차 바티칸 공의회까지 미사와 성체에 대한 신심을 간략하게 소개하고, 성체성사의 해를 맞이해서 교구와 본당 차원에서 성체 신심을 함양하기 위한 몇 가지 행사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1. 초세기에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까지의 미사 집전과 성체께 대한 신심
교회 역사 안에서 볼 수 있듯이, 초세기에는 한 주일에 한 번 주일에만 거행하는 만찬 미사가 전부였다. 그것도 박해를 피하여 개인 가정에서 이루어졌고, 성체를 개인적으로 집에 가지고 가 예배하거나 감옥에 갇힌 신자에게 가져다주기도 하였다.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라는 주님의 말씀은 4세기 초까지는 개인 가정집에서 이루어졌다. 그것은 그때까지 아직 신자 수가 많지 않았기 때문이고, 무엇보다도 박해에 대한 두려움이 컸으며, 공적으로 집회 장소를 갖기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사도 2,24; 1고린 10,16 참조).
2세기 초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 주교에 따르면, “주교의 주재(主宰), 주교를 둘러싼 사제단과 부제들의 참가, 더욱이 모든 신자의 참여로 행하여지는 주님의 만찬 제사야말로 교회 일치의 원천”이라면서, “마음을 산란하게 하지 말고 주교와 사제에게 복종하여 하나의 빵을 나누어라. 그 빵은 죽음을 막는 불사의 영약이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준다.”(「주의 만찬」, 87면)라고 가르치고 있다.
강생 뒤 100년부터 130년 사이에 쓰인 것으로 전해지는 열두 사도의 가르침이라고 하는 「디다케」(Didache)에서는 성찬례에 대해서 “말라기 예언이 이 성찬례에서 성취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성체야말로 온 세상에서 주님께 봉헌되는 가장 깨끗한 재물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2세기 중엽에 쓰인 유스티노의 「호교론」(Apologia)에서는 성찬론에 대하여 명백히 증언하고 있다. “우리는 그것을 보통 빵과 보통 음료로서 먹고 마시는 일은 없다. 하느님 말씀에 따라 살이 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육신을 취하신 것과 마찬가지로 기도로 성체가 된 이 양식이 강생하신 예수님의 살과 피라는 것을 배워서 알고 있다.” 유스티노는 이와 같은 그리스도의 말을 포함하는 감사의 기도를 바친다면 그 빵과 포도주는 이미 보통의 빵과 포도주가 아니고, 강생하신 그리스도의 몸과 피라고 말한다. 이것은 초대교회가 사도들로부터 배운 신앙이다. 위에서 본 바와 같이 1세기에는 만찬 예식 거행과 참여에 역점을 두었고, 2세기에 들어서면서부터 빵과 포도주가 주님의 말씀대로 예수님의 살과 피로 변화된다는 사실을 강조하여 가르치고 있다.
4세기에 이르러 강생 312년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종교 자유에 대한 칙서와 313년 주님의 날 공휴일 선포, 이어서 가톨릭 교회의 국교 선포 등으로 교회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무엇보다도 지하 교회의 상황에서 지상에 성당을 건축하게 되고, 신자 수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신자생활에 일대 전환기가 마련되었다. 무엇보다도 가톨릭 교회가 로마제국의 국교가 된 뒤, 유럽의 모든 나라가 주일미사 참례의 의무를 법률로 선포함에 따라 누구나 주일미사에 참여해야만 했다.
그러나 시대가 흐름에 따라 신자들의 신앙이 점점 약해져 미사에 참여하는 신자들의 수가 감소하고, 그 결과 성체께 대한 신심도 약해져 1년에 겨우 2-3회 영성체하는 데 그치게 되었다. 그러나 임종 때에 내세로의 “여로의 양식”으로 노자 성체를 영하는 신심은 굳게 지켜졌다.
12세기에 들어와서 성체 교의에 대한 토론이 활발하게 일어났다. 곧 이 시대의 성체 교의의 핵심은 빵과 포도주의 실체 변화(實體變化, Transsubstantiatio)였다. 실체 변화란 빵과 포도주의 형상은 그대로 남아있고 그 실체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함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의 이 같은 현존을 신앙의 교의로 받아들이게 되면서부터 성체 안에 현존하시는 그리스도께 대한 신심이 한층 더 깊어졌고, 이 신심 행위가 여러 가지 모양으로 나타났다. 그 대표적인 예가 미사 중에 빵과 포도주의 축성이 행하여진 뒤, 주님의 몸인 빵과 주님의 피를 담은 성작을 높이 들어 신자들에게 보여줄 때, 신자들이 신인(神人) 예수 그리스도께 몸을 굽혀 경배하는 것이다.
또한 미사가 끝난 다음에도 남은 성체께 대하여 믿음과 존경의 예를 표하게 되었다. 예전에는 노자 성체를 위해서만 성체를 보존하였고, 그 보존된 성체께 대하여 특별한 공경을 표하거나 성체 앞에서 경배를 표시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 그러다가 11세기에서 12세기에 거쳐 성체를 보존하는 아름답고 예술적으로 장식된 감실이 등장했다. 또한 신자들이 미사 이외의 시간에도 성체를 현시하고자 아름다운 성체 현시대(오늘날의 성광)가 만들어졌고 여기에 성체를 넣어 높이 현시하여 찬미와 흠숭의 예를 표하였으며, 성광을 높이 들어 신자들에게 강복하는 예식이 생겼다. 1264년 교황 우르바노 4세는 성체 대축일을 제정하고 이 축일을 모든 교회에서 지키도록 하였다. 이 축일을 제정하게 된 직접적인 동기는 로마 북쪽 약 100km 부근의 “볼세나”라는 조그만 동네에 있는 성녀 크리스티나 성당에서 있었던 성체와 성혈의 기적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때부터 성체 거동을 하는 전례가 등장했다.
트리엔트 공의회는 교회 역사상 성체성사뿐 아니라 다른 모든 성사와, 교회의 많은 규율에 대해서 혁신을 가져온 공의회이다. 공의회에서는 성체 안에 현존하시는 그리스도께 대한 예배와 그 방법, 성체 행렬, 보존에 대해서 새로운 규정을 정하였다(교령 제5장). 7장에서 성체를 깨끗한 마음으로 영하도록, 곧 대죄 가운데 있을 때에는 반드시 고해성사를 받고 영하도록 규정하였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는 성체께 대한 새로운 교의를 다루지는 않았다. 다만 거룩한 전례에 관한 헌장 「거룩한 공의회」에서 “그리스도 신자들이 이 신앙의 신비에 마치 국외자나 말 없는 구경꾼처럼 끼여있지 않고, 예식과 기도를 통하여 이 신비를 잘 이해하고 거룩한 행위에 의식적으로 경건하게 능동적으로 참여하도록 깊은 관심과 배려를 기울일 것”(48항)을 당부하고 있다.
2. 성체성사의 해에 무엇을 할 것인가?
성체성사의 해를 맞아 다음 몇 가지 행사를 제시하고자 한다. 그 목적은 무엇보다도 우리의 믿음을 굳게 하고 신앙생활을 활성화하고자 성체께 대한 신심을 깊게 하는 데 있다고 하겠다. 사실 믿음의 은혜, 구원의 은총, 성체 신심의 원천은 십자가의 제사를 재현하고 새롭게 하는 미사의 제사에서 온다. 미사에서 우리는 하느님 아버지께 최고의 영광과 흠숭, 감사를 드리고, 우리 구원에 필요한 모든 은총을 받기 때문이다. 또한 미사에서 우리 신앙생활에 필요한 모든 은총과 힘을 받는다. 그러므로 다음 몇 가지를 제의하고자 한다.
첫째, 본당에서 구역별로 나누어 각 구역의 신자들이 고해성사를 받고, 한 달 동안 미사 참례를 하고 영성체를 하는 것이다. 위에서도 잠시 언급한 바와 같이 미사야말로 무한한 은총의 보고(寶庫)이기 때문이다. 또한 영성체할 때 우리는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특히 죄인들의 배은망덕과 성체를 모독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배상 영성체를 함으로써 죄인들 때문에 고통받으시는 예수님께 위로를 드리고, 그 고통에 동참하게 된다.
그리고 한 달 동안 개인적으로 또는 단체로 15분이나 30분씩 성체조배를 한다. 많은 본당에서 성체조배실을 따로 만들어놓고 성체조배를 생활화하고 있지만, 이 기회에 더 많은 신자들이 여기에 동참하도록 한다. 우리 믿음의 생활화는 성체를 영혼의 양식으로 삼을 때 이루어진다고 할 것이다.
우리는 많은 성인성녀들이 성체께 대한 깊은 신심을 가졌음을 그들의 전기를 통해 알 수 있다. 대표적인 성인들 가운데 성 토마스 데 아퀴노 학자를 소개하고자 한다. 토마스는 서방교회에서 첫째가는 대학자라고 해야 할 것이다. 교황 우르바노 4세는 “볼세나”의 기적이 있은 뒤, 성체 축일을 제정하면서 토마스 데 아퀴노와 보나벤투라에게 성체께 대한 찬미가를 지어오라고 하였다. 얼마 뒤 두 학자는 각각 성체 찬미가를 지어 교황 앞에 왔다. 먼저 토마스 데 아퀴노가 자신이 지은 성체 찬미가를 읽었다. 토마스의 찬미가를 듣고 있던 보나벤투라는 자신이 지은 찬미가가 너무 초라하다고 생각하여 교황 앞을 슬그머니 빠져나와 자신의 찬미가를 찢어버렸다고 한다. 우리는 오늘날까지 토마스의 “성체 찬미가”를 기도 때마다 사용하고 있다. 이 찬미가는 우리가 아무리 읽고 또 읽어도 그 신비함을 다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찬미가이다.
다음으로 성체께 대한 신심이 깊은 성인은 알폰소 마리아 데 리구오리 주교이다. 그는 젊어서 변호사로 명성을 떨쳤지만, 40세에 이르러 사제가 되었고, 뒤에 주교가 되고, 남녀 구속주회를 창설하였다. 그가 1745년에 쓴 『성체 방문』이라는 책은 그의 생전에 22판을 인쇄하였고, 1960년까지 여러 나라에서 무려 2009판이나 인쇄되었다. 알폰소 성인은 성체조배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영성체 다음으로 하느님께 맞갖고 마음에 드는 기도는, 우리 제단에 현존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자주 방문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성체 앞에서 기도하며 보내는 15분으로 하루 동안 하는 다른 모든 영적 실천 행위보다 더 많은 것을 얻음을 알아두시오.” 하고 말하였다. 은퇴한 뒤 말년에 성인은 성체 앞에서 살다시피 하였다. 성인의 건강을 염려한 장상이 성인에게 성체조배 시간을 제한하자 슬피 울었다고 전해질 정도로 성체께 대한 신심이 깊었다.
또한 본당에서 한 달에 한 번 성시간을 가질 것을 제안한다. 성시간 동안 우리는 성체 안에 계시는 예수님께 최고의 흠숭과 영광과 찬미를 드리며, 또한 죄인들이 성체께 끼치는 독성의 죄를 배상하고, 그들의 죄를 대신 보속함으로써 죄인들의 회개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다. 또한 본당에서 40시간 계속해서 성체조배를 하는 신심도 가져 볼 만하다. 이 같은 신심은 본당에서도 가능하지만 수도회에서 더 많이 시행하고 있다. 이렇게 한 달 동안 미사와 영성체, 성체조배, 성시간을 가짐으로써 성체 안에 계시는 예수님께 더 많은 흠숭과 찬미를 드리고 죄인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가운데 성체께 대한 신심을 돈독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음으로 교구 차원에서 적어도 한 번 성체대회를 가져 신자들이 성체께 대한 공경과 신심을 갖도록 도와주고, 외적으로 성체께 대한 신심을 표현함으로써 성체께 더 많은 영광과 찬미를 드릴 수 있도록 한다. 또한 교구장 권한으로 한 달 동안 미사 영성체하는 모든 신자에게 전대사(全大赦)를 허락하는 것도 매우 바람직한 일로 생각된다.
끝으로 전국 차원에서 성체대회를 갖는 것도 생각해 볼 만한 일이다. 1989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참석 아래 서울 여의도 광장에서 거행된 제44차 세계성체대회의 감격이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있다. 우리 인간은 내적으로, 개인적으로만이 아니고 외적으로, 또한 공동으로 기쁨을 표현하고자 하는 본성을 갖고 있다. 따라서 성체께 대한 신심을 모두가 한 마음이 되어 외적으로 성대하게 표함으로써 성체 안에 현존하시는 예수님께 더 많은 흠숭과 영광과 찬미를 드릴 수 있다. 또한 이를 통해 성체께 대한 우리 각자의 신심도 두터워지는 이중의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3. 맺는 말
오늘날 제물과 성사로서의 성체가 경시되고 평가 절하되며 잘못 해석되어 거룩한 성체가 상징적인 존재로 떨어져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성체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인 빵과 포도주의 실체 변화(實體變化)를 부정하거나 의문을 제기하고, 빵과 포도주의 성 변화 뒤에 성체의 형상 안에 당신의 몸과 피, 신성과 인성으로 존재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현존을 부정하거나 그리스도의 단순한 상징적 또는 동적인 현존으로 해석해서는 안 될 것이다.
성체성사의 해를 맞이해서 성체께 대한 신심의 앙양뿐 아니라 우리 모두가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성체 안에 그리스도께서 참으로, 실제로, 실체적으로 계심을 믿는 참된 신앙을 다시 한번 고백해야 할 것이다.
■성체거동(聖體擧動 [라] Processio Eucharisticae [영] Eucharistic Procession)이란?
성체거동은 성체행렬이라고 불리기도 하며 성체강복과 함께 대표적인 성체 신심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이미 초대교회 때부터 행렬은 대표적인 그리스도교 신심행사였다. 에제리아의 예루살렘 순례기에서 볼 수 있듯이 이미 4세기말 경에 예루살렘에서는 신자들이 그리스도의 행적을 따르기 위해 예루살렘과 베틀레헴에서 행렬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관습은 곧 로마를 비롯하여 다른 지역으로 전해지게 되었다. 중세에 이르러 신자들은 자주 성인들의 축일, 특히 순교자들의 축일에 그들의 유해를 모시고 또는 그리스도와 마리아의 축일에 성상, 성화, 십자가 등을 들고 행렬하였는데 이 행렬에는 감사, 참회, 속죄, 축복청원 등 매우 다양한 의미가 내포되어 있었다. 특히 지역적인 재난이 발생했을 때나 공동체적인 감사를 드려야 했을 때 성대하게 행렬을 했음을 여러 기록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이 행렬의 관습은 이후 성모 마리아의 4대 축일(탄생, 영보, 취결례, 승천)들과 연중 주요 축일들에 널리 행하여 졌고 현재도 이탈리아, 스페인을 비롯하여 라틴 아메리카 지역에서 널리 행해진다.
행렬 중에서 성체를 모시고 행렬하는 것을 성체거동이라고 불렀는데 이와 같은 성체행렬은 노자성체를 수여할 때 처음으로 거행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 행렬은 성당에서 병자의 집까지 무리를 지어 계속되었으며 행렬 중에 종을 치기도 하였다. 또한 성목요일에는 제대 위에 모셔져 있던 성체를 다음날까지 밤샘기도를 하기 위한 방으로(오늘날의 현양제대) 옮겨 모시는 의식이 있었는데 11세기말부터 이러한 의식은 매우 장중하게 거행되게 되었고 이것이 예식화 된 성체거동의 첫 번째 형태로 보여진다. 중세 중기에 이르러 성체가 그리스도의 현존의 가장 확실한 표징으로 널리 경배되면서 빨마주일(주의 수난 성지 주일)에도 성체를 모시고 행렬을 하는 예절을 거행하였다. 1264년 교황 우르바노 4세가 전 교회에 성체축일(Corpos Domini)을 지낼 것을 명하였고 이 성체축일은 성체신심 고양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여 주었다. 1311년 비엔나 공의회에서 클레멘스 5세가 우르바노4세의 성체축일에 관한 회칙 에 대해 언급하는데 성체축일과 관련된 행렬 부분은 아직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13세기말경부터 독일 쾰른 지방과 프랑스의 앙제 지방에서 시작된 새로운 형태의 성체행렬은 곧 전 독일과 프랑스 지역으로 급속히 확산되었다. 이 행렬은 신자들에게 성체를 보여주기 위한 성체 보관함을 사용하였는데 이것이 성광으로 발전되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성체축일의 성체거동의 집전은 더욱 장려되어 14세기말에는 독일의 여러 지방에서 대축일을 장엄하게 지내기 위한 예절로 큰 축일마다 성체거동이 집전되게 되었다. 이후 중세와 종교개혁 시기를 거치면서 성체거동은 신자들이 함께 행렬을 이루며 참여하는 신심행사로 발전하였는데 이는 거리를 지나서(per vias) 시가지와 마을을 통과함으로써 성체의 신비에 대한 경배를 공적으로 선포한다는 의미가 있었다. 그러나 성체의 본질적인 의미, 즉 인간을 위해 쪼개진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개념이 약화되고 맹목적인 경배의 대상으로 성체가 잘못 이해될 소지가 상존하고 있었다.
현행 성체거동 예식은 <미사 없는 영성체와 성체 신심 예식서(De Sacra Communione er de Cultu Mysterii Eucharistici extra Missam)>에 포함되어 있는데 이 예식서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전례헌장의 “전례서들의 표준판에 정해진 범위 내에서, 특히 성사집전, 준성사, 행렬, 전례용어, 성음악과 성미술의 적응을 규정하는 권한은 당해 지역교회가 갖는다(전례헌장39항)”라는 지침을 따르면서 성체거동을 지역 교회의 교구장 주교가 성체에 대한 마땅한 존경을 유지하고 현실적인 환경을 고려하여 행렬의 절차와 장소와 타당성을 판단하여 거행하라고 지시한다(예식서101항). 또한 성체와 성혈 축일 등 성체의 의미를 살릴 수 있는 날 이와 같은 성체거동을 거행할 것을 새 예식서는 권고하고 있다. 특히 성체행렬을 하기 전에 미사를 거행하여 그 행렬에 모실 성체를 축성할 것을 지시하고 있으며 미사 후에 성체조배를 하고 행렬을 하는 것도 허용하고 있다(103항). 행렬을 할 때는 그 지역교회의 관습에 따라 행할 수 있으며 행렬 중간의 적당한 집회장소에서 성체강복을 할 수 있다. 사제는 성체 행렬 시 미사 직후라면 제의를, 그렇지 않으면 흰색 갑바를 입어야 하며 행렬 시는 촛불, 향, 햇빛 가리개 등을 사용할 수 있다. 행렬은 한 성당에서 다른 성당으로 가는 것이 보통이나 환경에 따라 출발했던 성당으로 되돌아 올 수도 있다. 이러한 성체거동은 사제의 성체강복으로 끝을 맺게 된다(예식서 104-108항).
현대에 와서 이와 같은 성체거동의 예식은 단순한 행렬을 뛰어넘는 집회(Statio)로 발전하였는데 성체신심을 어떤 주제와 연결시켜 일정한 관점에서 성체 신비의 공경을 드리기 위해 성체대회(Congressus Eucharistici)라는 행사를 지역별, 국가별로 행할 수 있도록 새 예식서는 배려하고 있다. 이와 같은 성체대회를 통해 성체신비에 대한 전통적인 신심을 현대적인 방법으로 이어가고 있는데 이것의 전세계적인 행사로는 <세계성체대회>가 있다.
■성체강복(聖體降福 [라] Benedictio Eucharisticae [영] Eucharistic Benediction)이란?
성체강복은 통상 성체현시(Expositio Eucharisticae), 성체조배(Adoratio Eucharisticae)와 병행하여 거행되며 성체거동과 함께 성체공경 신심의 대표적인 것이며 또한 대표적인 서방교회의 고유전례라고 할 수 있다.
성체공경의 역사
성체에 대한 흠숭과 존경의 표시는 이미 초대교회 때부터 있어왔다. 성찬례에 참석한 신자들은 성체를 집으로 모셔가기도 했고 또 노자성체를 위해 정성껏 보관하기도 하였다(유스띠노 호교론 1,67; 히뽈리또 사도전승 32). 초대교회이래로 성찬례 밖으로 성체를 모셔갈 때 무릎을 꿇거나 부복을 하기도 하였고 이러한 공경의 형식은 오늘날 비잔틴 전례에 그대로 남아 있다. 그러나 신자들의 조배를 위해 성체를 일정한 장소에 현시하거나 성체께 올리는 특별한 예식은 없었던 것으로 보이며 성체는 눈에 띄지 않는 견고한 장소에 보관되었다. 초창기의 그리스도교 건물은 신자들이 일정한 시간에 예배를 위해 모이는 단순한 용도로 이용되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교회는 점차적으로 신자들이 자신들에게 적당한 시간에 기도하러 오는 장소가 되었고 특히 수도원의 부흥과 더불어 경당은 기도를 위한 공간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그러나 이때까지 성당의 중심은 제대였고 감실은 성체보존을 위한 실제적이고 단순한 장소로 생각되었다.
중세를 거치면서 성체 안의 그리스도의 현존에 대한 논쟁이 시작되고 성체의 신비에 대한 새로운 신심이 발흥하면서 성체공경에 대한 신앙은 급속도로 확산되었다. 이러한 새로운 신심(Devotio moderna)은 전례의 쇠퇴에 의해 기인된 것이었다. 서방교회에서의 전례의 쇠퇴는 전례가 라틴어를 고집하여 신자들이 전례언어를 알아듣지 못하게 되었고, 또한 전례가 소수 특권계층을 위한 예절이 되어갈 때 이미 예견된 것이기도 했다. 특히 중세의 신심운동의 기초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아버지께로(Ad Patrem per Filium)" 나아가는 것이었고 따라서 그리스도와의 특별한 일치, 그리스도를 본받음의 신심 등이 강조되었다. 이러한 경향 아래서 눈에 보이는 성체 안에 그리스도가 현존하신다는 신앙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성체를 특별히 공경하여야할 열의를 마음에 심어주었고 그래서 성체는 이해하기 어려운 언어로 집전되는 미사에서보다는 개인적인 묵상이나 눈으로 볼 수 있는 성체의 현시 등을 통한 미사 밖의 신심행사에서 더욱 큰 흠숭과 공경의 대상이 되었다. 이렇게 성체는 중재자 그리스도의 볼 수 있는 표징이 되었고 천상과 지상을 연결시키는 고리와 같은 역할을 하게 되었으며 환자들을 위해 성체를 보관하던 제의방 안의 금고 같은 형태의 감실이 9세기 말엽부터 성당 제단 위로 올라오게 되었다. 이렇게 성체신심이 점차 발전하면서 11세기말경에 클뤼니 수도원 등에서는 감실 앞에서 절을 하는 관습이 생겨났고 더 나아가 감실을 장식하고 그리스도의 현존을 상징하는 등불을 감실 곁에 켜두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성체 신심이 확장되면서 12세기경에는 성체공경을 위한 고유예절이 생겨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성체 공경 신심이 중세 중기를 지나 더욱 발달함에 따라서 다양한 형태의 감실이 만들어지고 제대 위에 화려한 장식으로 꾸며져 노출되었기 때문에 감실과 성체가 훼손되는 것을 막기 위해 제4차 라테란 공의회(1215)는 감실을 잠글 수 있는 장치를 하라고 명하기에 이른다. 이러한 감실은 갈리아, 이탈리아, 독일 등을 거쳐 더욱 다양한 형태로 발전되는데 특히 독일에서는 성당 제단 앞에 탑 형태를 만들고 그 위에 감실을 모셨으며 금속재료와 유리를 함께 사용하여 성체가 보여지게끔 제작하기도 하였고 이는 성광의 출현을 예고하고 있는 것이다.
성체에 대한 다양한 신심행사들도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독일 지방에서는 14세기에 성체 축일(Corpos Domini)에 성체거동을 한 후 성체를 현시해 놓고 성무일도를 드렸으며 미사까지 봉헌하기도 하였다. 1372년 독일 브란덴부르그 주교는 서방교회의 6대 축일(성탄, 부활, 성령강림, 성체축일, 성전봉헌축일, 모든 성인의 날)에 위와 같은 성체 공경을 명하였다. 또한 성녀 도로테아의 삶에 관한 1394년의 기록을 보면 매일 아침 성당에 가서 성광에 모셔져 있는 성체를 바라보며 기도했다는 기록이 있음을 보아 이러한 성체현시의 관습은 연중 다른 날에로 확산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태리와 프랑스 지방에서는 예수가 무덤 속에 계셨던 시간을 상징하여 40시간의 성체조배가 유행하였고 이러한 성체현시와 조배는 16세기에 이르러 성체강복으로 끝을 맺게 되었는데 1600년의 교황 클레멘스8세의 주교예식서(Ceremoniale episcoporum)는 성체축일날 성체거동 후에 지존하신 성체(Tantum ergo)를 부르고 천상양식(Panem de caelo) 후렴 뒤에 강복 기도문(Deus qui nobis)을 바치며 이어서 성광을 들어 강복을 하는 전통형식이 확정되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트렌토 공의회 이후 종교개혁자들이 성체의 실체변화에 대해 반대함으로써 가톨릭 교회의 성체신심은 한층 강화되었고 그리스도 현존의 상징이 되는 감실은 더욱 화려하게 장중하게 치장되었으며 성당의 가장 중요한 자리에 감실이 세워지게 되었다. 반 개혁운동이 강했던 이탈리아 밀라노의 경우 교구 내 성당들이 돌아가면서 한 시간씩 성체를 현시하기도 하였다. 이후 바로크 시대를 중심으로 성체 신심의 시대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성체공경이 활발하게 펼쳐졌고 이와 같이 활발한 성체신심은 19세기 중반까지 교회 안에서 계속되었다. 이러한 성체신심의 지나친 발전은 오히려 영성체를 소홀히 하고 미사의 공동체성과 미사 안에서 실현되는 그리스도의 파스카 제사에 관한 신비신앙을 저하시키는 등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되었고 지나치게 남용되는 듯한 경향을 띄게 되었다. 이러한 경향은 급기야 20세기 전례운동을 통해서 다른 신심행위들과 함께 진지하게 고려되기 시작하였고 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에 교회는 이에 대한 새로운 지침을 발표하게 된다.
현행 성체강복 예식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성체공경과 같은 신심행사가 전례와 조화를 이루고 신자들을 전례에로 인도하도록 하여야 한다고 선언하였고(전례헌장 13항) 성체신심에 관한 예부성성(훗날의 성사경신성성)의 성체 신비 공경에 관한 훈령 이 1967년 5월 25일 반포되었다. 이 훈령의 제3부에서는 성체신심의 중요성을 확인하면서 반복적으로 미사가 거행되는 성당에서는 적당한 숫자의 신자들이 참석할 수 있다면 1년에 한 번 장엄하게 성체공경을 위한 현시를 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63항). 또한 성체공경과 성체성사의 관계에 대해 언급하면서 성체신심을 위한 여러 가지 다른 지침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는데 특히 성체성사의 의미를 명확히 하기 위해서 성체현시 중의 미사 집전을 금지하고 있으며(61항) 이는 새 예식서에서 재차 강조하고 있다. 이 훈령의 내용에 맞추어 1973년에<미사 없는 영성체와 성체 신심 예식서(De Sacra Communione et de Cultu Mysterii Eucharistici extra Missam)>가 출간된다.
이 예식서는 우선 총 지침(Praenotanda)에서 미사 없는 성체신심과 미사성제와의 관계에 대해 언급하는데 우리를 위해 자신을 내어주시는 생명의 빵이며 빠스카이신 그리스도와의 성령을 통한 일치가 미사성제를 통해 이뤄지므로(1-4항) 성체신심이 영성체를 통해 완결되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13-15항). 이 예식서는 미사 없는 영성체와 성체분배 등의 성체신심에 관한 예식서인데 제3장에서 성체현시와 성체강복, 성체행렬, 성체대회 등 미사 밖에서의 성체 공경에 관한 예절을 수록하고 있다. 이 예식서에 따르면 우선 성체강복은 단순히 강복 그 자체만을 위해서 거행해서는 안되며 성체현시 및 조배, 그리고 “하느님의 말씀을 읽고 노래를 부르고 기도를 바치며 잠잠한 묵상을 계속하는 절차를 밟아야한다(89항)”고 규정한다. 또한 성체의 현시는 그리스도의 현존이기에 성체성사의 의미를 흐리게 할 지나친 장식은 하지 않을 것을 권고하고 있다(82항). 그리고 성체는 성광이나 성합을 이용하여 현시할 수 있고 성체현시를 위한 장식으로는 초(4-6개)를 켜 두며 성체현시 및 강복 시에 성체께 분향을 드릴 수 있다(85항). 이와 같은 성체현시와 함께 성체조배가 거행되는데 이 때 “신자들의 보다 깊은 기도를 도와주기 위해 성경독서와 함께 성체신비를 더 잘 묵상할 수 있도록 해설이나 짧은 훈시를 겸할 것”(95항)을 권고한다. 그리고 성체현시가 길어질 때는 성무일도를 바칠 수 있다(96항). 성체조배를 끝맺을 때 비로소 강복을 위한 분향을 하고 강복 전 기도문인 그리스도의 성체성혈 대축일 본기도문, 혹은 예식서의 다른 기도문 중의 하나를 집전자가 바친 후에 성광을 들어 신자들에게 십자표를 그며 성체강복을 하게 된다. 성체강복은 성체를 다시 감실로 옮겨 모심으로 끝맺는다.
새 예식서는 전통적인 성체강복 예식을 준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으며 이전의 성체강복 예식서와는 달리 집전자가 위에서 언급한 몇 가지 사항을 준수하면서 비교적 자유롭게 예식을 구성하여 거행할 수 있도록 허락하고 있다. 이 새 예식서에서는 이전과는 달리 성체현시 및 강복의 집전자로 사제뿐만 아니라 부제까지 예절을 거행할 수 있도록 허락하고 있으며 집전 시 복장으로는 장백의와 흰색 영대, 흰색 갑바와 견포를 사용할 것을 지시한다. 또한 만약 사제나 부제가 없거나 또는 있어도 다른 이유로 거동할 수 없다면 시종직을 받은 사람이나 성체분배권을 받은 사람도 성체를 현시하거나 다시 감실로 옮겨 모실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이 성체강복을 줄 수는 없다.
이러한 성체공경의 중요성과 성체보존 및 현시의 규정들은 이 후 성사경신성성의 성체 신비 공경에 관한 1980년 반포된 훈령 에 의해 다시 한 번 언급되었다. 여기서도 이전의 훈령이나 예식서의 지침에서처럼 성체신심과 성체성사의 중요성과 관련하여 언급하고 있는데 성체신심 예식서의 규정 준수를 상기시키면서 성체의 존엄성에 대한 교육을 강조하고 있으며 미사와 미사 밖의 성체공경에 대해 언급하면서 사목자들이 성체에 대한 올바른 신심을 가지고 신자들을 이끌 것을 권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