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과【마음의 눈을 뜨면】
우리가 보이는 세계에 대해 검증된 지식을 배워서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될 때 우리는 이것을 안다라고 합니다. 인간이 평생 동안 터득해도(천재라 할지라도) 지식의 세계에는 1%밖에 알지 못한다고 합니다. 나머지 99%의 세계, 즉 미지의 세계를 알기 위해서는 신앙의 눈을 떠야 합니다. 이 신앙의 세계는 은총의 눈을 떠야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 세계는 이제까지 보던 모습과는 사뭇 다르게 보입니다. 이 세상의 하찮은 들꽃 하나도 거룩함이 깃든 하느님의 피조물로 보이게 되고 지난날 슬픔과 고통으로 보였던 삶의 편린들에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건네시는 축복과 생명이 깃들어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또한보이는 것만 볼 수 있는 육체적인 눈에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 까지 볼 수 있는 마음의 눈에 의지하는 믿음의 세계입니다. 믿음의 절정은 보지 않고도 믿는 믿음입니다. 보이지 않고, 만져지지 않고, 들리지 않아도 모든 것의 근본이 되는 신비의 세계에 대한 체험이나 종교적인 진리를 배워서 수용하게 될 때 당신의 눈앞에 새로운 세계가 열리게 되어 안목이 바뀔 것입니다. 그러나 비신자가 느끼지 못하는 이 신앙의 세계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세 차원의 단계를 거쳐야 합니다.
먼저 선행되어야 믿음의 차원은 지성적인 믿음(성경, 교리)이 있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계시된 진리를 지성적으로 받아들여 믿는 것을 의미합니다. 증거나 확증이 없이 무턱대고 믿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성적 믿음은 교리나 성경 등의 내용을 듣고 배워서 지성적으로 받아들이고 동의하는 것입니다. 이때 지난날의 안목을 버리고 새로운 안목을 택하게 됩니다. 이것이 신앙의 은총입니다. 신앙의 은총은 마음의 눈을 열어 줌으로서 계시의 내용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게 됩니다. 거기에는 하느님의 계획 전체, 신앙의 신비, 신비들의 상호관계 ,계시된 신비의 중심이신 그리스도와 이루는 관계에 대한 이해가 포함됩니다. 지성적 믿음은 거기에 그쳐서는 안 됩니다. 지성적 믿음은 우리가 하느님께 마음을 열고 의지하는 믿음으로 발전해야합니다. 3인칭의 호칭에서 2인칭 즉 당신으로 변하는 믿음의 관계가 바뀔 것입니다. 이것이 정서적 믿음(신뢰, 의탁) 또는 관계적 믿음입니다. 이 믿음은 가슴으로 믿는 믿음입니다. 하느님께 대한 신뢰와 의탁의 마음을 강화시키는 믿음입니다. “하느님이 계시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예수께서는 그리스도이시다.”라는 것을 수긍하고 받아드리는 것을 지성적 믿음이라면 정서적 믿음은 그 하느님의 현존 ,사랑, 예수께서 주시는 용서와 평화 등을 마음으로 받아들여 느끼고 체험하도록 하는 것을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지성적 믿음인 교리나 성경을 통해 접한 “계시된 분”, 즉 성부하느님, 성자하느님, 성령하느님을 가슴으로 느끼고 마음으로 다가가 의지하고 신뢰하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성경이 아니라 성경이 증언하는 그분을 믿는 것이요, 전통이 아니라 전통이 전해주는 그분을 믿는 것이며, 교회가 아니라 교회가 선포하는 그분을 믿는 것 이것이 정서적 믿음입니다. 이 정서적 믿음을 통하여 하느님과의 관계가 돈독해지면 이제는 삶이 바뀌게 됩니다. 이로써 의지적인 믿음(기도, 실행)의 삶을 살게 되는 것이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내게 위대한 소망이 있다면 이 소망을 확증해 주는 것이 의지적 믿음입니다. 이 믿음은 미래의 사실들을 현재의 사실들로 느끼는 것입니다. 이 믿음은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증거라는 말은 “확신”혹은 “신념”을 뜻합니다. 그것은 하느님과 그의 약속을 믿는 것입니다. 믿음은 신자의 영혼으로 하여금 미래를 현재처럼 느끼게 해주면서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는 것처럼 생각할 수 있게 해 줍니다. 그래서 이런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방황하지 않고 목표를 향해 전진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신앙(믿음)은 기쁨입니다.
기쁨은 사랑입니다. 사랑은 신앙(믿음)입니다.
하느님과의 만남은 사랑이며, 기쁨이며 믿음입니다.
새털 깃과 같이 성령의 바람을 타고 온유하게 이끄시는 대로 나아가십시오. 하느님방식의 응답에 감사드릴 줄 아는 삶을 사는 신앙인이 됩시다.』
◉ 마음(성경 2482절에서 마음의 단어가 나옴)
“아저씨가 사는 곳에 있는 사람들은 한 정원 안에 장미꽃을 오천 송이나 가꾸지만 …… 그들이 찾는 것을 거기서 발견하지는 못해…….” “눈으로는 보지 못해. 마음으로 찾아야 해.” 생텍쥐페리의 동화 『어린 왕자』에 나오는 이 말은, 사람의 마음이 닫히고 그 안에 욕망이 가득하면 진실과 아름다움을 볼 수 없다는 의미를 전해 주고 있습니다.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호수 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두려워할 것을 염려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실 물 위를 걸어오는 것을 보고 놀라지 않거나 두려워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 말씀을 좀 더 깊이 묵상하면 겉으로 드러난 예수님의 모습은 두려움의 대상일 수 있으나 그 안에 제자들을 사랑하시는 참된 사랑의 마음이 담겨 있음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랑의 마음은 ⇒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는, 마음의 눈으로만 볼 수 있는 진실이며 아름다움일 것입니다. 주님의 권능과 위엄의 모습 속에 숨어 있는 그분의 아름다운 마음을 보게 될 때 우리의 마음도 아름다움으로 채워질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 마음은 생명의 빵에 대한 말씀을 통하여 더욱더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마음이란?
0-내가 존재하고 내가 머무는 거처(내려가는 곳)이다.
0-우리의 숨겨진 중심이다. 그래서 오로지 하느님의 성령만이 마음을 살피고 감지하실 수 있다.
0-마음은 진리의 자리이다.
0-하느님의 모습을 닮은 우리는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기 때문에 마음은 서로가 만나는 자리이며 계약이 체결되는 자리이다.
(결론)
1. 변화하는 삶-안목, 관계, 삶(신념, 소망, 실천)
2. 천주교와 기독교
3. 위대한 가톨릭 신앙
(알아둡시다)
★ 그리스도교/기독교
가. ‘기독교’라는 말은 그리스도(Christus)를 한자로 ‘기독(基督)’이라고 표기한 데서 유래한 말입니다. 천주교를 포함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하느님으로 고백하는 종교는 모두 그리스도교, 곧 기독교입니다. 따라서 기독교라는 말을 개신교를 가리킬 때만 사용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요즘은 원래의 발음을 그대로 사용하는 추세라서 기독교라는 말보다 그리스도교라는 말을 더 자주 쓰고 있습니다.
나. ‘천주교’라는 말은 중국에 가톨릭이 전래된 후 상제(上帝) 개념과 구분하기 위하여 천주(天主)라는 말을 사용하면서 생긴 말이고, 원래 명칭은 가톨릭교회 입니다.
다. 가톨릭(Catholic)은 ‘보편적’ ‘공번된’이라는 뜻입니다.
모든 시대, 장소, 사람에게 유효한 “보편성”을 지닌 교회
라. 어느 종교를 갖고 있느냐는 질문에 천주교 신자들은 “성당 다닌다.” 하고 말하는 경우가 있는데, 성당은 종파가 아니라 천주교 전례가 이루어지는 장소를 말하므로 “천주교이다.” 또는 “가톨릭이다.” 하고 말하는 것이 바른 대답입니다.
마. 그리스도교 종파는 크게 가톨릭교회(천주교), 동방 정교회, 프로테스탄트(개신교), 영국 교회(성공회)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바. 그리스도(그리스어): ‘기름부음 받은 자’ - 구약 왕, 사제, 예언자(직함의미)
- 메시아(히브리어), 구세주 예수(그리스어), 여호수아(히브리어) : ‘야훼께서 구원하시다’
(참고사항)
1. 십자성호(성호경)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의미 ①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 대한 신앙고백이며
② 하느님의 외 아드님이신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 가셨음을 상기하는 것이며
③ 우리가 천주교 신자임을 겉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2. 십자성호 긋는 법
- 왼손을 먼저 가슴에 붙이고, 오른손가락을 모두 한데 모아
- 이마에서“성부와”, 가슴에서“성자와”, 왼편어깨에서“성”오른편어깨에서“령의”하며 십자를 긋습니다.
- 곧바로 오른손과 왼손을 가슴에 모으면서 성호경의 남은 부분 “이름으로. 아멘.”으로 하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