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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말씀과 묵상

2026-05-31...삼위일체 대축일 주제...하느님에 관한 이해

작성자은총의샘|작성시간26.06.06|조회수16 목록 댓글 0

2026-05-31...삼위일체 대축일

주제...하느님에 관한 이해

 

오늘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으로 구별하는 하느님이 하나이고 한 분이라는 신앙의 내용을 말하고 그 일을 믿음을 고백하는 삼위일체 대축일입니다. 사람이 삼위일체라는 특별한 표현을 통해서 하느님을 설명한다고 해서 사람이 하느님에 관하여 알아듣는 내용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리스도교 이전의 다신교(=여러 신을 섬기고 생각한 신앙)의 개념에서는 인간 사회에 영향을 주는 각각의 기능과 바람에 따라 많은 신을 생각했는데, 그리스도교 신앙에서는 그렇게 여럿으로 드러나는 신들의 요소가 사실은 하나이신 하느님이 보이시는 일이라고 설명하는 것이 삼위일체에 관한 내용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삼위일체는 하나이고 한분이신 하느님이라는 표현에 여러 대상으로 드러나던 신들이 실제로는 하나의 하느님이라는 표현입니다. 성부이신 하느님은 세상을 창조하셨고 당신의 뜻대로 세상을 다스리는 하느님으로, 성자이신 하느님은 세상에 있는 피조물을 위하여 목숨과 생명을 바치면서까지 구원의 길을 알려주신 하느님으로, 성령이신 하느님은 구원자가 세상에 당신의 모습을 드러내신 이후에 피조물과 여러 생명체가 하느님의 뜻을 따르고 실천하는 일에 하나로서 하느님의 뜻을 표현했다는 의미로 구분하는 것이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에 관한 설명입니다.

하느님에 관해서 사람의 표현으로 이렇게 구별합니다만, 실제로 사람이 하느님을 완벽하게 안다거나 충분하게 알아서 표현하는 내용은 아닙니다. 하느님을 이해하겠다는 사람의 노력이 기특하기는 하지만, 실제로 하느님께서 당신의 뜻을 사람에게 계시하지 않으신다면 사람이 하느님을 올바르게 이해할 방법은 없습니다.

모세는 히브리 백성을 이집트를 탈출하여 가나안을 향해서 이끌면서 하느님의 힘을 드러냈지만, 자신이 하느님이라고 놀라운 이론을 주장한 사람이 아니라 실제로 세상에서는 겸손하게 산 사람이었습니다. 자기 자신을 드러내려고 하지 않았고, 하느님의 도움을 청한 사람으로 살았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세상에 살면서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고 실행하면서도 가져야 하는 마음 자세를 모세에게서 배울 수 있습니다.

모세는 하느님께서 하신 명령에 따라 십계명을 담을 돌판을 준비했고 시나이 산으로 올라가서 하느님이 주시는 계명을 돌판에 새겨 받았습니다. 없어질 수도 있는 돌판에 계명을 새겼다는 것이 중요한 일은 아닙니다. 예전에는 돌판에 새긴 것이 확실했다고 하겠지만, 지금은 마음과 삶에 새겨 내가 하느님에게서 멀어지지 않고 도망치지 않는 삶이 필요하다고 할 것입니다.

둘째 독서로 들은 말씀은 바오로 사도가 코린토인들에게 보낸 편지로, 하느님에 관하여 삼위일체의 신앙을 고백하는 사람으로서 드러내고 살기를 권장하는 내용입니다. 세상의 삶이 바쁘다고 말하는 사람이라면 신앙의 정신을 삶으로 표현하는 일은 얼마나 쉽다고 하겠습니까? 어려운 일은 누구에게나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평화를 실천하는 사람으로 사는 일은 얼마나 어렵겠습니까? 내가 평화의 입맞춤을 드러내는 사람으로 살기는 얼마나 어렵겠습니까? 사람의 생각과 뜻만으로는 가능하다고 말하기가 어렵지만 삼위일체의 정신을 드러내는 사람이라면 하느님의 힘으로 이 일은 어디까지나 가능할 수 있는 일일 것입니다.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삼위이지만 일체로 드러나는 하느님을 우리가 개인의 힘으로 만날 방법은 없기에,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우리가 알아듣기는 어렵겠지만, 복음을 통해서 그 내용을 강조하는 교회의 정신을 기억하면 좋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것은 인간의 구원입니다. 당신께서 창조하셨고 그 뜻을 따라 살기를 바라는 피조물인 존재가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구원의 힘을 입어, 우리를 위한 구원의 선물을 마련하고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구원의 선물을 우리가 받아들이는 방법을 배우고 실천하면 좋을 것입니다. 창조주와 구원자 그리고 교회를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는 하느님의 선물을 잘 받아 누리면 좋을 것입니다.

 

 

 

삼위일체 대축일 절두산성지순례미사 강론

주제 : 삼위일체와 순교성지

오늘은 삼위일체 대축일입니다. 삼위일체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속성을 우리보다 앞서 살았던 뛰어난 신학자들을 통하여 알려주신 것입니다. 낱말의 의미는 우리가 성부와 성자와 성령으로 따로따로 알아드는 하느님이 세 위격으로 드러나면서도 한분이라는 내용입니다. 신학자들의 이론이니, 오늘 복음이나 독서에는 삼위일체라는 표현은 나오지 않습니다.

사람이 세상에서 올바른 사람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몸과 마음과 생각이 조화를 이루어야합니다. 이 세 가지 중 그 어느 하나도 자기 멋대로 움직이지 않고 일치를 이루고 같은 방향을 향해야만 그 결과로 올바른 사람이 되는 것이 가능한 일입니다.

우리가 온 이곳은 절두산(截頭山, 끊다<>/()성지입니다. 조선시대 고종임금의 아버지 대원군은 자신이 생각했던 쇄국정책의 한 가지 방법으로 그리스도교신앙을 박해한 사람이었습니다. 이 대원군이 벼슬아치들에게 그리스도신자라는 죄명(罪名)만 있다면, 선참후계(先斬後啓, =관청이나 벼슬아치가 임금에게 올리는 말)의 형식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래서 국가기록에는 이곳에서 순교한 사람은 29명에 대한 기록만 있다고 하지만, 얼마나 많은 분들이 신앙 때문에 이곳에서 목숨을 잃은 곳인지도 알 수 없는 참수와 치명(致命,=순교의 옛날말) 장소입니다.

지금 이 순간 땀도 나고, 힘들고 지쳤지요? 땡볕에 걸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이토록 힘들게 하는 신앙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단체행동에 따라서 성당에서 이곳까지 9킬로미터쯤을 걸었기 때문입니다. 현실에서는 우리가 힘든 일을 했습니다만, 이곳에서 삶을 마친 순교자들의 삶에 비교해도 같은 소리를 할 수 있을까요? 시대가 달라졌으니 똑같은 말이 적용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사람이 드러내는 자세는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오늘 아침부터 이곳을 향해서 2시간 정도, 사람에 따라서는 더 많은 시간을 걸었습니다. 내가 사용한 시간의 길이가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이곳에 방문하여 여기에서 미사를 함께 하고, 잠시 후 구역별이나 개인으로 이 순교지의 곳곳을 돌아보며 특별한 시간을 지내고 집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이곳까지 걸어오느라고 사용한 시간, 이곳에서 미사와 더불어 순교의 흔적을 잠시 돌아보고, 그 다음에 우리 삶에 익숙한 현장으로 돌아간 다음, 오늘 우리가 한 일들이 가져올 영향은 무엇이겠습니까?

오늘 삼위일체축일, 사랑을 베풀어주시고, 은총을 내리시며, 일치를 선물로 주시는 삼위일체하느님의 선물을 충실하게 받아서 세상 삶에 드러낼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힘겨운 마음과 태도로 이 자리에 함께 했겠지만, 우리가 오늘 준비한 자세로 세상을 대하고 산다면, 하느님은 우리에게 그에 맞는 축복을 내려주실 것입니다.

오늘 성지순례에 함께 분들과 신앙을 기억하고 드러내는 분들에게 힘을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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