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6주일 독서기도
하느님의 말씀은 그치지 않는 생명의 샘이다
주여, 당신의 단 한 말씀이라도 그것이 지닌 부요를 누가 다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샘에서 물을 마시는 목마른 사람처럼 당신 말씀에서 마시는 분량보다 거기다 남겨 두는 것이 훨씬 더 많습니다. 주여, 당신의 말씀은 그것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갖고 있는 많은 견해에 따라 많은 가닥의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주님은 당신의 말씀을 여러 색깔로 채색하시어 그 말씀을 고찰하는 사람마다 그 안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볼 수 있게 하십니다.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묵상할 때 거기서 풍성하게 찾을 수 있도록 주님은 그 안에 많은 보화를 숨기셨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모든 가지에서 복된 열매를 맺게 하는 생명의 나무입니다. 그것은 사방에서 영신의 물을 샘솟게 한 사막의 갈라진 바위와 같습니다. 바오로 사도가 말한 것처럼 “우리 조상들은 그 나무에서 영적 양식을 먹었고 그 샘에서 영적 음료를 마셨습니다.”
누가 말씀의 보화의 한 부분을 접하게 될 때 자기가 찾아낸 것이 그 말씀에 담겨 있는 유일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그 안에 담겨 있는 여러 보화 중에 한 가지만 찾아낼 수 있었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자기가 그 하나만 찾아냈다고 해서 그 말씀은 쓸모없고 빈약한 말이라고 하면서 경시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 자기가 모두 찾아낼 수 없었던 그 말씀의 부요에 대해 감사해야 합니다. 내가 진 것을 기뻐해야 하며 그 말씀이 나를 이겼다는 데에 슬퍼하면 안됩니다. 목마른 사람은 물을 마실 때 그것을 흐뭇하게 마셨다고 해서 기뻐하지만 그 샘을 다 마셔 버려 바닥낼 수 없다고 해서 슬퍼하지 않습니다. 당신의 갈증이 그 샘의 물을 다 마셔 없애 버릴 필요가 없습니다. 도리어 샘이 그 갈증을 풀어 주어야 합니다. 샘물이 바닥나지 않고 갈증이 해소된다면 당신은 목마를 때마다 다시 그 샘물을 마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갈증이 해소되고 샘도 역시 다 말라 버린다면 당신의 승리는 손해가 됩니다.
받은 것에 대해서 감사하고 뒤에 남겨 둔 풍요에 대해 투덜대지 마십시오. 이미 받은 것과 도달한 것이 당신께 돌아온 몫이며 남아 있는 것은 당신이 앞으로 받을 유산입니다. 당신의 나약성 때문에 한때 받을 수 없는 것은 인내만 한다면 다른 때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한입에 마실 수 없는 것을 한입에 마시려고 하는 욕심을 부리지 말고 차차 조금씩 마실 수 있는 것을 게으름 때문에 포기하지 마십시오.
응송 1베드 1,24; 바룩 4,1 참조
◎ 주님의 말씀은 영원히 살아 있으니, * 너희에게 전해진 복음이 바로 그 말씀이로다.
○ 그것은 곧 하느님의 계명과 영원히 존속하는 율법을 기록한 책이니, 이 지혜를 따르는 사람은 살 것이로다.
◎ 너희에게. 전해진 복음이 바로 그 말씀이로다.
연중 제6주간 월요일 독서기도
지혜의 추구
썩지 않는 양식을 위해 일하고 우리 구원을 위해 일합시다. 매일의 품삯을 받을 수 있도록 주님의 포도원에서 일합시다. “내 뜻 안에서 일하는 사람은 죄를 짓지 않으리라.”고 말하고 있는 지혜의 빛으로 일합시다. 진리 자체이신 분께서 “세상은 밭”이라고 말씀하시니 그 밭을 파서 감추어져 있는 보화를 캐냅시다. 이 밭에 감추어져 있는 것은 지혜입니다. 우리 모두 지혜를 갈망하고 또 지혜를 원하고 있습니다.
지혜는 말합니다. “찾고 싶거든 되돌아와서 찾아 보아라.” 당신은 어디에서 되돌아와야 하느냐고 묻습니까? 그는 대답합니다. “당신 욕망과 의지에서 되돌아오라.” 그러나 당신은 또 질문합니다. “내 욕망과 의지에서 지혜를 찾을 수 없다면 어디서 찾을 수 있겠습니까? 내 영혼은 그것을 열렬히 갈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어떻게 찾아낸다 하더라도 내 마음에다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후하게 담을’ 때까지는 다만 찾아내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못합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지혜를 찾아내는 사람은 행복하고 슬기를 얻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그러므로 그를 찾을만한 때에 찾고, 가까이 있을 때 청하십시오.
그 지혜가 얼마나 가까이 있는지 알고 싶습니까? “그는 바로 당신 곁에 있고 당신 입에 있고 당신 마음에 있습니다.” 그러나 올바른 마음으로 찾을 때만 그러합니다. 당신의 마음 안에 지혜를 찾아내면 입술은 지혜로 충만할 것입니다. 그것을 밖으로 자아내어 잃어버리지 않도록 내부로 흘러 들어가게 하십시오.
지혜를 찾아냈다면 참으로 꿀을 찾아낸 것입니다. 그러나 너무 많이 먹어 부대끼어 토하지 않도록 지나치게 먹지 말고 언제나 배고플 수 있게 취하십시오. 지혜는 말합니다. “나를 먹는 사람은 더 먹고 싶어지고 나를 마시는 사람은 더 마시고 싶어진다.” 당신이 무엇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벌써 많이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토하지 않도록 탐식하지 마십시오. 그렇게 하면 탐구하는 일을 너무 빨리 포기함으로써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 것을 잃어버릴지 모릅니다. 지혜가 가까이 있고 그것을 찾을 수 있을 때 탐구해야 합니다. 청하는 것을 중단하면 안됩니다. 솔로몬의 말에 의하면 “꿀도 많이 먹는 것은 좋지 않은” 것처럼 “엄위를 너무 찾는 사람은 그 영광에 눌리고 맙니다.”
“지혜를 찾아내는 사람은 복된 사람”인 것처럼 지혜를 잃지 않고 간직하는 “사람”은 더욱더 “복된” 사람입니다. 이 말은 그 사람이 지혜를 많이 얻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다음 세 가지 경우에 당신 입에서 확실히 지혜나 슬기가 흘러 나옵니다. 즉, 죄를 고백할 때, 감사와 찬미의 노래를 부를 때, 그리고 격려의 말이 흘러 나올 때입니다. 참으로 “마음으로 믿어서 의화되고 입으로 고백하여 구원을 얻게 됩니다.” 또 성서 말씀에 의하면 “의로운 사람은 이야기하기 시작할 때 먼저 자신을 나무랍니다.” 그리고 이야기 중간에 하느님을 찬미하고 또 이렇게 함으로써 그 입에서 지혜가 흘러 나온다면 세 번째로 자기 이웃을 격려합니다.
응송 지혜 7,10ab. 11a; 8,2ac
◎ 나는 건강이나 아름다움보다 지혜를 더 사랑하였으며, 햇빛보다 지혜를 더 좋아하였도다. * 지혜는 나에게 모든 좋은 것을 가져다 주었도다.
○ 나는 젊어서부터 지혜를 그리워하고 찾았으며, 지혜를 아내로 얻으려고 찾아 다녔도다.
◎ 지혜는. 나에게 모든 좋은 것을 가져다 주었도다.
연중 제6주간 화요일 독서기도
창조주이시고 사람이 되신 지혜를 통하여 아버지를 알게 됩니다
하느님의 지혜이신 외아드님은 만물의 창조자이시고 조성자이십니다. 성서는 “주님이 하신 일이 많고도 많건마는, 그 모두를 지혜로써 이룩하셨으니, 온 땅에 당신 조물 가득 차 있나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조성된 것이 그 자체로 존재할 뿐만 아니라 훌륭히 존재할 수 있도록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지혜께서 피조물의 위치에 내려오시어 만물과 각 피조물에게 당신의 인호와 당신 모상의 유사성을 박아 주시어 조성된 것이 지혜로 장식되고 하느님다운 업적으로 보이기를 원하셨습니다.
우리가 입으로 하는 말이 하느님의 아들이신 말씀의 상징인 것처럼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지혜 역시 지혜 자체이신 말씀의 상징입니다. 우리가 우리 안에 담겨 있는 이 지혜를 통하여 생각하고 이해할 힘을 갖게 됨으로써 창조자이신 지혜를 맞아들일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되고 또 그를 통하여 영원한 지혜의 아버지를 알 수 있게 됩니다. 성서는 말해 줍니다. “아들을 모시고 있는 사람은 아버지도 모시고 있다.” “나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맞아들이는 사람이다.” 우리와 모든 피조물 안에 영원한 지혜의 창조된 한 몫이 박혀져 있기 때문에 창조자이신 지혜 자체께서는 피조물 안에 있는 그 몫을 당신 것으로 여기시면서 “주께서는 나를 당신 업적 안에서 창조하셨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먼저 설명한 바와 같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는 하느님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지혜로우신 계획에 따라 우리가 전하는 소위 어리석다는 복음을 통하여 믿는 사람들을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이 옛날처럼 피조물 안에 존재하는 지혜의 상징과 그림자를 통하여 당신을 알게 되는 것을 더 원치 않으시고 참된 지혜 자체께서 육신을 취하여 사람이 되시고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심으로써 믿는 사람이 모두 그분께 대한 신앙으로 말미암아 구원받을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이 하느님의 지혜는 과거에 피조물에 박혀져 있는 자신의 상징을 통하여 당신 자신을 드러내시고 (그래서 성서는 그분이 지음 받았다고 말합니다.) 또 당신 자신을 통하여 성부를 드러내셨습니다. 그런데 그 후 말씀이신 지혜께서는 요한이 말하는 대로 사람이 되시고 죽음을 멸하시어 인류를 구원하심으로써 한층 더 분명히 당신 자신과 당신 자신을 통하여 성부를 드러내셨습니다.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 그들이 참되시고 오직 한 분이신 하느님 아버지를 알고 또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해주소서.”
온 땅은 이 지혜의 지식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아드님을 통하여 지니고 계신 지식과 아버지로부터 나오신 아드님이 지니고 계신 지식은 같은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누리시는 기쁨을 아드님도 아버지 안에서 누리십니다. 지혜는 말씀하십니다. “그분은 나를 두고 즐거워 하셨고 나는 매일 그분의 현존 앞에서 즐거워 했도다.”
응송 골로 2,6. 9; 마태 23,10b
◎ 너희는 그리스도 예수를 주님으로 받아들였으니 그분을 모시고 살아가라. * 그리스도의 인성 안에는 하느님의 완전한 신성이 깃들어 있도다.
○ 너희의 스승은 그리스도 한 분뿐이시로다.
◎ 그리스도의. 인성 안에는 하느님의 완전한 신성이 깃들어 있도다.
연중 제6주간 수요일 독서기도
하느님의 지혜는 술을 따라 잔치를 베풀었다
“지혜가 제 집을 지었다.” 스스로 존재하시는 하느님 아버지의 능력은 당신 거처로서 온 우주를 마련하시고 그 안에서 거하시고 활동하십니다. 그분은 또 유형, 무형의 본성으로 구성된 인간을 당신의 모상과 유사성에 따라 지으셨습니다. “지혜가 그 집의 기초로 일곱 기둥을 세웠다.” 지혜께서는 그리스도의 모상에 따라 인간을 창조하신 다음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의 계명을 지킬 수 있도록 그에게 성령 칠은을 베푸셨습니다. 성령 칠은은 지식을 통하여 덕행을 자극하고 덕행을 통하여 지식을 나타나게 함으로써 영적인 사람이 초자연적인 것에 참여하고 신앙의 완성에 견고해져 완덕에 도달하게 합니다.
이 칠은은 영혼이 본성상 가지고 있는 빛과 힘을 한층 더 성장하게 합니다. 굳셈의 덕은 영혼으로 하여금 당신 계획에 따라 만물을 존재케 한 하느님의 의지를 피조물 안에 있는 목적에서 열렬히 찾고 갈망하게 해줍니다. 바른 의견의 덕은 지음 받지 않은 영원한 하느님의 모든 성의를 그분의 성의가 아닌 것과 구별하게 하고 그것을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받아들이게 합니다. 슬기의 덕은 이 하느님의 의지에 동의하게 하고 다른 것이 아닌 그 하느님의 의지에 안주하게 해줍니다.
“지혜는 잔에다 자기 술을 섞어 손수 잔치를 베풀었다.” 하느님께서는 영신적 본성과 육신적 본성이 섞여 있는 사람 안에 모든 피조물에 대한 지식과 이 피조물의 창조자이신 당신에 대한 인식을 술잔에서 술을 따르듯 부어 주셨습니다. 이 지식을 소유하고 있는 마음은 술의 취기처럼 응당히 하느님에 대한 것들로 취하게 됩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빵인 그분은 영혼들이 덕행으로 자라게 하시고 영혼들이 지식으로 취해 즐기게 하심으로써, 이 영적 잔치의 한 몫을 누리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 천상 잔치를 베풀어 주십니다
“지혜는 종들을 보내어 술을 마시러 오라고 간청했다.” 지혜께서는 사도들을 당신 성의의 봉사자들로서 복음을 전파하도록 파견하셨습니다. 이 복음 전파는 성령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므로 자연법과 법조문을 초월하며 사람들을 그분에게로 불러들입니다. 마치 술잔에서처럼 그분 안에서 육화의 신비는 아무 혼동 없이 신성과 인성의 놀랍고도 독특한 일치를 이루었습니다.
지혜께서는 사도들을 통하여 또 말씀하십니다. “어리석은 이들아, 이리 들어오라.” 즉 “어리석은 사람아, 마음속에 ‘하느님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아, 그 불신앙을 버리고 신앙을 통하여 나에게로 와 내가 주님이고 만물의 창조자임을 알라.” “지혜는 속없는 사람을 이렇게 초대한다. ‘와서 내가 차린 음식을 먹고 내가 빚은 술을 받아 마셔라.’” 즉, 고상한 지식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신앙의 업적이 없는 사람에게 그분은 말씀하십니다. “와서, 굳셈의 덕으로 빵처럼 너를 살찌울 내 몸을 먹고, 술처럼 너희를 영적으로 즐겁게 하고 신격화해 주는 내 피를 마셔라. 나는 이 피를 너희 구원을 위해 나의 신성과 기묘히 혼합시켰다.”
응송 잠언 9,1. 2b; 요한 6,56
◎ 지혜가 일곱 기둥을 세워 제 집을 짓고, * 술을 따라 손수 잔치를 베풀었도다.
○ 주께서 말씀하시는도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서 살고 나도 그 안에서 산다.”
◎ 술을. 따라 손수 잔치를 베풀었도다.
연중 제6주간 목요일 독서기도
하느님의 말씀에 네 입을 열어라
우리 마음과 입에 항상 지혜의 묵상이 있어 우리 혀는 바른 것만을 말하고 하느님의 법이 마음속에 항상 머물러 있기를! 성서는 우리에게 말해 줍니다. “너희는 집에 앉아 있을 때나 길을 갈 때나 자리에 들었을 때나 일어났을 때나 항상 이것을 말해 주어라.”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이야기합시다. 그분 자신이 지혜이시고 말씀이시며 하느님의 말씀이십니다.
성서에 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에 네 입을 열어라.” 그분의 교훈을 반향하고 그 말씀들을 묵상하는 사람은 그분 자신을 드러냅니다. 그분에 대해 항상 말합시다. 지혜에 대해 말할 때 그분에 대해 말하는 것입니다. 덕행에 대해 말할 때 그분에 대해 말하는 것입니다. 정의에 대해 말할 때 그분에 대해 말하는 것입니다. 평화에 대해 말할 때 그분에 대해 말하는 것입니다. 진리와 생명과 구속에 대해 말할 때 그분에 대해 말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에 네 입을 열어라.” 입은 우리가 열고 말씀은 하느님이 하십니다. 그래서 다윗은 “주 하느님의 말씀을 내 듣고 싶사옵니다.”라고 말하고 하느님의 아들께서는 친히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 한껏 네 입을 벌려 보라. 나는 곧 그 입을 채워 주리라.” 그러나 우리 모두가 솔로몬이나 다니엘처럼 완전한 지혜를 얻을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신앙을 가진 사람이라면 모든 이는 그 능력에 따라 지혜의 정신을 받습니다. 우리가 신앙을 가지고 있다면 지혜의 정신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집에 앉아 있을 때” 하느님에 관한 것들을 항상 묵상하고 말합시다. 여기서 말하는 “집”이란 교회를 뜻할 수 있고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말하는 그 내부의 집을 뜻할 수도 있습니다. 죄를 피하고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도록 슬기롭게 말합시다. 우리가 “앉아 있을 때” 우리가 심판관인 듯 우리 자신에게 말합시다. “길을 갈 때”에도 게으름에 빠지지 않도록 말합시다. 그리스도는 길이시기에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한다면 “길을 갈 때에” 말하는 것이 됩니다. “길을 갈 때” 우리 자신에게 말하고 그리스도에게 말합시다. 우리가 그분께 어떻게 말해야 되는지 들어 봅시다. 사도는 말합니다. “어느 예배소에서나 남지들이 성을 내거나 다투거나 하는 일이 없이 깨끗한 손을 쳐들어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사람이여, 죽음의 잠이 당신을 덮치지 않도록 졸음이 올 그때에도 말하십시오. 졸음이 올 때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들어 보십시오. 성서는 말합니다. “이 눈에서 잠을 거두오리다. 눈두덩에서 단잠을 거두오리다. 하느님의 자리를 마련하기까지 야곱의 하느님 계신 곳을 얻기까지.”
일어날 때 하느님께서 하라고 명하시는 것을 잘 지키도록 그분께 말합시다.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우리를 깨우고 계신지 들어 보십시오. 우리 영혼은 말합니다. “내 사랑하는 이가 내 문을 두드리도다.” 또 우리가 어떻게 그리스도를 깨워 드려야 하는지 들어 보십시오. 영혼은 또 말합니다. “예루살렘의 딸들이여, 간절히 청하니, 잠에서 깨어 사랑하는 이를 잠에서 깨워 주심시오.” 우리가 사랑하는 이는 그리스도이십니다.
응송 1고린 1,30b. 31; 요한 1,16
◎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께서 주신 우리의 지혜와 정의, 거룩함과 구속이 되셨도다. * 성서에도 기록되어 있듯이, “누구든지 자랑하려거든 주님을 자랑하여라.”
○ 우리는 모두 그분에게서 넘치는 은총을 받고 또 받았도다.
◎ 성서에도. 기록되어 있듯이, “누구든지 자랑하려거든 주님을 자랑하여라.”
연중 제6주간 금요일 독서기도
우리 마음은 하느님을 갈망합니다
우리가 무슨 약속을 받았습니까? “우리는 그리스도의 참모습을 뵙겠기 때문에 그리스도와 같은 사람이 되리라.”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요한은 자기가 표현할 수 있는 것을 다 말했습니다. 그 나머지는 마음의 숙고에 달려 있습니다. 여기에서 요한이 말하는 것을 실재와 비교해 본다면 그것은 얼마 되지 않는데, 요한이 지닌 능력과 비교도 안 되는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러므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마음 안에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주님 임재의 은총으로 돌아갑시다. 그런데 현재로서는 그것을 아직 볼 수 없기 때문에 애타게 갈망할 뿐입니다.
열심한 그리스도인의 전생활은 하나의 거룩한 갈망입니다. 우리가 갈망하는 것을 아직은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갈망한다면 장차 보게 될 것에 이를 때 그것을 누릴 능력을 갖게 됩니다.
어떤 용기를 가지고 있다고 할 때 받아 넣을 것이 너무 많다면 그 용기가 자루이건 부대이건 어떤 것이든 간에 그것을 더 크게 만듭니다. 그리고 넣을 것이 너무나 많고 담아 넣을 용기는 작을 때 그 용기를 늘려서 용량을 늘립니다. 하느님도 이렇게 하십니다. 그분께서는 우리 갈망을 채워 주시는 것을 늦추심으로써 그 갈망을 더 크게 하시고 갈망을 더 크게 하심으로써 우리 영혼을 넓히시고 또 이렇게 넓히심으로써 영혼의 용량을 늘리십니다.
형제들이여, 언제나 갈망하는 마음을 갖도록 합시다. 우리가 갈망하는 것은 언제나 채워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 바오로는 장차 올 것을 받을 수 있도록 자기 마음을 활짝 펼쳤습니다. “나는 이 희망을 이미 이루었다는 것도 아니고 또 이미 완전한 사람이 되었다는 것도 아닙니다. 나는 그것을 이미 붙들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희망을 아직 이루지 않았으면 이 세상에서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사도 바오로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다만 나를 향하여 달려갈 뿐입니다.” 바오로는 앞에 있는 것만 바라보고 갈망하는 것을 따라간다고 말합니다. 그는 “눈으로 본 적이 없고 귀로 들은 적이 없으며 아무도 상상조차 하지 못한 일을” 받아들일 준비가 아직 되어 있지 않다고 느끼고 있었습니다.
끊임없이 갈망하는 것 - 이것이 우리 삶입니다. 그러나 우리 마음속에서 세상에 대한 사랑을 끊어 버리면 끊어 버리는 그만큼 거룩한 갈망은 우리 마음에서 자라나게 됩니다. 이미 말했듯이 비어 있는 것만 채울 수 있습니다. 선으로 채우고자 한다면 먼저 악을 쏟아 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꿀로 채우고 싶어하신다고 합시다. 만일 우리 마음이 식초로 가득 채워져 있다면 어디에다 꿀을 넣겠습니까? 먼저 그릇에 담겨 있는 것을 비워야 합니다. 그릇도 씻어야 합니다. 받아 넣을 것이 무엇이든 그것을 받기에 합당하도록 부지런히 거듭거듭 속을 닦아 내야 합니다. 그 안에다 담아 넣을 것의 이름을 붙일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꿀도, 황금도, 포도주도 아닙니다. 그래도 굳이 이름붙이고 싶다면 “하느님”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하느님”이라고 말할 때 그것은 무슨 뜻입니까? 세 마디로 된 이 한 단어가 우리가 기대하는 전부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그분에 대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지만 그것은 실재보다 부족합니다. 그분이 오실 때 우리를 채우실 수 있도록 그분께로 우리 자신을 펼칩시다. “우리는 그분의 참모습을 뵙겠기 때문에 그분과 같은 사람이 될 것입니다.”
응송 시편 36(37),4-5a
◎ 네 즐거움일랑 주님께 두라. * 네 마음이 구하는 바를 당신이 주시리라
○ 네 앞길 주께 맡기고, 그를 믿어라.
◎ 네 마음이. 구하는 바를 당신이 주시리라
연중 제6주간 토요일 독서기도
가정의 태양인 아내
가정은 제 태양으로 빛나고 있으니 그것은 아내입니다. 아내에 대해서 성경이 무엇을 가르치는지 들어 보십시오. “살림살이를 알뜰하게 하는 좋은 아내는 남편을 기쁘게 하고, 정숙한 아내는 더할 바 없는 매력을 갖고 있어, 주님의 산에 떠오르는 태양처럼 아름답다. 아내의 미모는 가정의 보화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사실 아내와 어머니는 가정의 태양입니다. 관대함과 헌신적 노력과 변함없는 명랑과 모든 것을 깨어 돌보는 아내의 모습은 태양과 같아, 남편과 자녀들의 생활을 기쁘게 합니다. 마음의 빛과 열이 아내에게서 발산합니다. 부부가 결혼할 때에 자기보다 상대방의 행복을 추구한다면 그 결혼은 행복하다고 합니다. 이런 마음의 자세는 쌍방에 다 요구되는 것이지만 특히 아내의 덕행입니다. 이는 모성의 본성과 같아 마음의 슬기로 어려움을 당해도 기쁨으로 바꾸어 놓습니다. 모욕을 당해도 존경과 품위를 보존함으로써 태양과 같이 아침의 어두움도 서광으로 밝혀 주고 지루한 장마 속에서도 금빛 같은 햇살로 밝혀 줍니다.
아내는 맑은 시선과 따뜻한 말씨로 가정의 태양이 됩니다. 아내의 눈길과 따뜻한 말소리는 가족들의 마음속을 파고들어 움직이고 어루만지고 격려하며, 남편이 온종일 직장에서나 밭에서, 상가의 복잡한 활동이나 시끄러운 공장에서 수고하고 돌아왔을 때 온갖 고통의 쓰라림을 씻어 주고 잘된 일에 대하여 기쁨을 느끼게 하며 가족들의 즐거운 대화를 유도합니다.
아내는 본성적으로 솔직하고 밝은 표정과 순박하고 착한 그리스도교적 품위로 가정의 태양이 됩니다. 자기를 반성하는 착한 마음씨와 몸과 옷의 고상한 치장과 생활 태도의 정숙함으로 가정의 태양이 됩니다. 섬세한 마음씨와 기쁜 얼굴의 눈짓, 악의 없는 침묵과 미소, 자애 가득 찬 끄떡임은 순진하고 감미로운 꽃의 향기를 발산하며 태양의 갖가지 빛을 반사하는 꽃송이 같은 것입니다. 바라건대 이러한 현모양처의 모습이 아버지와 자녀들 마음속에 사랑과 고마움의 높은 감정을 박아 주고 자극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주기 바랍니다.
응송 집회 26,15. 16
◎ 살림살이를 알뜰하게 하는 좋은 아내는 자기 남편을 기쁘게 하고, * 거룩하고 정숙한 아내는 더할 바 없는 매력을 갖고 있도다.
○ 주님의 산에 떠오르는 태양처럼, 아름다운 아내의 미모는 가정의 보화로다.
◎ 거룩하고. 정숙한 아내는 더할 바 없는 매력을 갖고 있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