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0주일 독서기도
나는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 하는 것보다 하느님을 즐겁게 할 수 있는 사람이기를 원합니다
테오포로스라는 별명을 가진 나 이냐시오는 성부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로마 교회에 문안을 드립니다. 귀교회는 지극히 높으신 성부와 그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숭고하신 자비를 받았으며 우리의 하느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과 사랑으로 말미암아 세상 물질을 창조하신 분의 사랑과 빛을 받았습니다. 로마 사람들의 지역을 주재하는 귀교회는 하느님께 합당한 교회이며, 존경과 찬미를 받아 마땅한 교회이며, 성공과 순결을 지닌 복된 교회입니다. 모든 그리스도교 공동체들 가운데서 가장 탁월한 사랑의 공동체이며, 그리스도의 법과 성부의 이름을 보유한 교회입니다. 육과 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모든 계명을 받아들이고 하느님의 은총으로 충만하여 이교적인 모든 것에서 탈피한 귀교회 형제들에게 우리 하느님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무한한 기쁨이 있기를 빕니다.
나는 하느님께 기도함으로써 여러분의 거룩한 모습을 뵈올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사실 나는 이 특전을 위해 빌고 또 빌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사슬로써 포박되어 만일 내가 목적지까지 가기에 합당하다고 생각하시는 하느님의 뜻이 있으시다면 나는 여러분을 직접 뵈옵고 안사 드리게 될 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나를 위해 예비된 몫을 방해 없이 차지하는 은총을 얻기만 한다면 일은 잘 시작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사랑이 나에게 손해를 끼칠까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원하는 대로 하기가 쉽지만, 내가 순교할 수 있도록 여러분이 그냥 두어 주지 않는다면 나는 하느님께 도달하기가 어렵습니다.
나는 여러분이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 하는 것보다 하느님을 즐겁게 할 수 있는 사람이기를 원합니다. 사실 여러분은 하느님을 즐겁게 해드리고 있습니다. 나는 하느님께 도달할 수 있는 이런 기회를 다시는 얻지 못할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만일 침묵을 지켜 준다면 그것보다 더 좋은 일을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내 문제에 대해 침묵을 지켜 준다면 나는 하느님께 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여러분이 나의 육신을 사랑하게 되면 나는 또다시 달음질을 해야 합니다. 내가 하느님께 제물로 바쳐지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나를 위해 하지 마십시오. 제단은 준비되어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시리아의 주교를 동편에서 서편에 오게 해서 어전에 나가게 하는 은총을 베푸셨으니, 여러분은 사랑으로 합창대와 같이 모여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성부를 찬송해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 안에 다시 일어나기 위해 이 세상에서 멀리 하느님을 향해 잠드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응송 필립 1,21; 갈라 6,14
◎ 나에게는 그리스도가 생의 전부이고, 죽는 것도 이득이 되는도다.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밖에는 자랑할 것이 아무것도 없도다.
○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심으로써 세상은 나에게 대해서 죽었고 나는 세상에 대해서 죽었도다.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밖에는 자랑할 것이 아무것도 없도다.
연중 제10주간 월요일 독서기도
나는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릴 뿐 아니라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아무와도 비교될 수 없도록 다른 사람들을 가르쳤습니다. 나는 여러분들이 남에게 가르친 것을 행동으로 보여 주기를 원합니다. 내가 말만으로가 아니라 참된 원의로써 또한 내가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릴 뿐 아니라 참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도록 내적 외적 힘을 얻게 나를 위해 기도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만일 내가 참된 그리스도인이라면 나는 그리스도인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고, 이 세상에서 보이지 않게 사라지고 난 뒤에 나는 참다운 신앙인으로 드러날 것입니다. 드러나는 것은 좋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하느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부 안에 계시면서 자신을 더 많이 보여 주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교는 사람의 설득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그를 미워할 때 하느님의 능력이 이루시는 것입니다.
나는 모든 교회에 편지를 쓰면서 여러분이 방해만 하지 않으면 내가 하느님을 위해 기꺼이 죽으러 간다고 모두에게 알렸습니다. 나의 간청입니다. 불필요한 호의를 나에게 베풀지 마십시오. 나를 맹수의 먹이가 되게 버려 두십시오. 나는 그것을 통해서 하느님께 갈 수 있는 것입니다. 나는 하느님의 밀 알입니다. 나는 맹수의 이에 갈려서 그리스도의 깨끗한 빵이 될 것입니다.
오히려 맹수들을 유인해서 그들이 나의 무덤이 되게 할 뿐 아니라 내가 죽어 아무에게도 폐가 되지 않게 맹수들이 내 몸의 어떤 부분도 남겨 두지 말도록 해주기 바랍니다. 세상이 내 몸을 볼 수 없을 때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참다운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 맹수라는 도구를 통해서 내가 하느님께 봉헌된 희생 제물이 될 수 있도록 그리스도께 기도하십시오. 나는 베드로와 바오로같이 여러분에게 명령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사도들이었고 나는 한 죄수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내가 고통을 겪는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자유인이 될 것이며 그분 안에 자유인으로 다시 태어나게 될 것입니다. 지금은 사슬에 포박되어 헛된 것은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나는 시리아에서 시작하여 로마까지 육지에서나 바다에서나 밤이나 낮이나 싸우고 있습니다. 즉, 나는 열 마리의 표범과 같은 군인들에 의하여 결박되어 끌려가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그들에게 혜택을 베풀면 그들은 더 포악해지는 것입니다. 그들의 학대를 받으면서 나는 더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으로 내가 그만큼 의인이 된 것은 아닙니다.” 나 때문에 마련된 맹수 떼를 빨리 만나고 싶습니다. 그 맹수들이 나에게 성급히 달려들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맹수들이 겁을 먹어 달려들지 못한 경우가 있지만 나는 그들과는 달리 나를 급히 잡아먹도록 유인하겠습니다. 그리고 맹수가 만일 거절하면 나는 강요하겠습니다. 나를 용서하십시오. 나에게 무엇이 유익한지는 내가 알고 있습니다. 이제 와서 나는 제자가 되기 시작합니다. 보이는 것이나 보이지 않는 것이거나 아무것도 내가 그리스도께로 가는 길을 질투해서 방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불도 좋고 십자가도 좋고 맹수의 무리도 좋으며, 사지를 짓이기고 찢어도 좋고, 배를 갈라도 좋으며 팔다리를 자르고 온 몸을 난도질해도 좋습니다. 가장 잔인한 형벌도 좋습니다. 다만 내가 예수 그리스도께로 갈 수만 있다면 말입니다.
응송 갈라 2,19. 20
◎ 나는 이미 율법의 손에 죽어서 하느님을 위하여 살게 되었도다. 이제는 내가 살고 있는 것은 하느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이로다. * 그분은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해서 당신의 몸을 내어 주셨도다.
○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달려 죽었으니,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내 안에서 사시는 것이로다.
◎ 그분은.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해서 당신의 몸을 내어 주셨도다.
연중 제10주간 화요일 독서기도
나의 지상적인 모든 욕망은 십자가에 못박혔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쾌락도 지상의 모든 왕국도 나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이 세상 극변까지를 다스리는 것보다 그리스도 예수와 일치하기 위해 죽는 것이 나에게는 더 좋습니다. 내가 찾고 있는 것은 우리를 위해서 죽으신 바로 그분이며 내가 원하는 것은 우리를 위해 부활하신 바로 그분입니다. 다시 태어나는 내 출생의 때가 가까웠습니다. 형제들이여, 나를 잊어버리십시오. 내가 이 생명을 얻는 데 방해하지 마십시오. 나를 죽음의 상태에 놔두려 하지 마십시오. 하느님께 가고자 하는 사람을 세상에다 던지지 마십시오. 물질로써 유혹하지 마십시오. 나에게 깨끗한 빛을 받을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내가 거기 닿아야 사람이 될 것입니다. 내 하느님의 수난을 본받는 자가 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아무라도 하느님을 자기 안에 간직한 사람이면 내가 원하는 바를 들을 것이며 나를 재촉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동정할 것입니다.
이 세상의 통치자가 나를 잡아가서 하느님을 향한 이 내 마음을 돌려놓으려 합니다. 거기 있는 여러분들은 그 누구라도 이것을 거들지 마십시오. 그것보다는 나를 위해 아니 하느님을 위해 도움이 되도록 하십시오. 입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고 마음으로는 세속을 원하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 나쁜 마음이 여러분 안에 자리잡지 않도록 하십시오. 내가 여러분에게 도착했을 때는 나를 믿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내가 부탁하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여러분에게 쓰는 말을 믿으십시오. 지금은 내가 살아서 이 글을 쓰고 있지만 죽음을 열망하고 있습니다. 나의 지상적인 모든 욕망은 십자가에 못박혔고 세상 물질을 사랑하기 위한 불은 내 안에 더 없습니다. 다만 내 안에 있는 것은 샘솟는 물이고, 이 샘물이 “성부께로 오라.”고 내 안에서 속삭이고 있습니다. 이제 썩어 없어질 음식이나 인생의 쾌락이 내 마음을 기쁘게 할 수 없습니다. 다윗의 자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살인 하느님의 빵을 먹고 영원한 사랑이신 그분의 피를 마실 것만 나는 바라고 있습니다.
나는 인생을 더 살고 싶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여기에 동의하면 내 원의는 이루어질 것입니다. 동의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원의도 하느님께서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이 짤막한 편지로써 내가 여러분에게 그것을 청하고 있습니다. 나를 믿으십시오. 내가 진실로 말하고 있다는 것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에게 나타내 보이실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거짓말을 모르시는 입이며, 이 입을 통해서 성부께서 진실을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원의가 채워지도록 나를 위해 기도하십시오. 내가 육의 원의를 따라 이 편지를 쓰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따라 쓰는 것입니다. 내가 수난을 당한다면 여러분이 나에게 호의를 보인 것이고 수난에서 제외된다면 여러분이 나를 미워한 것입니다.
여러분의 기도 중에 시리아 교회를 기억하십시오. 이제는 나 대신 하느님께서 목자로 계시는 교회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만이 그 교회의 감독이시고 또 거기에는 여러분의 사랑이 있습니다. 나는 주교의 한 사람인 것을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나는 그들 중에서 보잘것없는 사람이고 팔삭둥이와 같이 합당하지 못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만일 내가 하느님께 이를 수만 있다면 하느님의 자비를 힘입어 값진 존재가 되는 은혜를 얻을 것입니다. 내 영혼이 여러분에게 인사를 드리며, 나를 단순한 과객으로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영접한 교회들의 사랑이 또한 여러분에게 인사를 드립니다. 그뿐 아니라 이 몸이 지나가는 길에 있지는 못했어도 내가 지나가는 길에 대표를 파견한 교회들의 사랑도 여러분에게 전합니다.
응송 골로 1,24. 29
◎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꺼이 고통을 겪고 있도다. * 나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위하여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내 몸으로 채우고 있도다.
○ 내 안에서 강하게 활동하시는 그리스도를 힘입어 애써 노력하고 있도다.
◎ 나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위하여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내 몸으로 채우고 있도다.
연중 제10주간 수요일 독서기도
요르단을 건너감
계약의 궤는 요르단까지 백성들을 앞서 갔습니다. 사제와 레위들이 멈추었을 때 강물은 마치 하느님의 봉사자들에게 예를 표하듯 흐름을 멈추고 우뚝 일어나 양편으로 갈라져 쌓여서 하느님의 백성이 안전히 건너가도록 해주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여, 옛적 백성들에게 일어났던 이 일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놀라지 마십시오. 여러분도 성세성사로 요르단을 건넜습니다. 또 하느님의 말씀은 여러분에게 더위대하고 더 고귀한 것들을 약속하셨으며, 당신께로 이르는 공중의 통로를 마련해 주셨습니다.
사도 바오로가 의인들에 대해 말하는 것을 들어 보십시오. “그때 살아 남아 있는 우리가 구름을 타고 공중으로 들리어 올라가서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고 항상 주님과 함께 있게 될 것입니다.” 모든 피조물은 의인을 섬기기 때문에 의인은 두려워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예언자의 입을 빌어 의인에게 약속하시는 바를 또 들어 보십시오. “네가 불속을 걸어가더라도 그 불길에 너는 그을리지도 타버리지도 아니하리라. 내가 너의 주 하느님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느 곳이나 의인을 안전히 받아들이고 모든 피조물이 그에게 마땅한 봉사를 바칩니다. 그리스도인들이여, 어떤 일들이 옛적에만 일어나고 현재 듣고 있는 우리에게는 일어나지 않으리라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사실 이 모든 일들은 상징적으로 여러분에게 실현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우상의 어둠을 떠나 하느님의 법을 들으러 나올 때 출애굽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예비자 반에 들어가 교회의 계명을 지키기 시작할 때 여러분은 홍해를 건너 사막을 통과하며 거기에 장막을 세우고 멈춰서 매일 하느님이 선포하시는 법을 듣고 주님의 영광을 계시하는 모세의 얼굴을 바라보는 데에 시간을 보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례의 영신적 샘으로 나아와 레위 앞에서 허용된 이들에게만 알려진 그 위대하고 거룩한 입문 성사를 받게 될 때, 사제들의 인도로 요르단을 건너 약속의 땅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그 땅에서 예수님은 모세를 이어 여러분을 받아들이시고 여러분에게 새 여정의 지도자가 되십니다.
그렇게 많고도 위대한 하느님의 업적을 상기할 때 바다가 여러분을 위해 어떻게 갈라졌고 강물이 어떻게 일어나 우뚝 섰는지 알 것입니다. 여러분은 바다를 향해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바다야, 너 어찌 도망쳤더냐, 요르단아, 너 어찌 거슬러 흘렀더냐. 산들아, 언덕들아, 숫양과 어린 양처럼 너희는 어찌하여 뛰놀았더냐.” 하느님의 대답은 이러할 것입니다. “땅은 주님의 면전에서, 야곱의 하느님 그 면전에서 소스라쳤도다. 주님은 바위가 못이 되게 하시고, 차돌을 샘솟게 하셨도다.”
응송 지혜 17,1a; 19,22a; 시편 76(77),20a
◎ 주님의 심판은 위대하고 그분의 말씀은 설명할 수가 없도다. * 주께서는 당신 백성을 위대하게 또 영광스럽게 하셨도다.
○ 바다에다 길을 내시고 많고 많은 물에다 작은 길을 내셨도다.
◎ 주께서는. 당신 백성을 위대하게 또 영광스럽게 하셨도다.
연중 제10주간 목요일 독서기도
예리고의 점령
예리고는 포위되어 있습니다. 반드시 점령해야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점령합니까? 예리고를 향해 검을 사용치도 않고 전차로 공격하지도 않으며 쇠 팔매를 던지지도 않습니다. 나팔을 부는 사제들만 나서서 예리고 성벽을 허물어뜨립니다. 성서에서 예리고가 세상을 상징한다는 것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예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났다고 하는 복음서의 이야기에 나오는 사람은 에덴 낙원에서 이 세상으로 추방된 아담을 상징해 주는 것이 분명합니다. 예수께서 예리고로 가시어 눈을 뜨게 해주신 그 곳의 맹인들도 하느님의 아들이 찾아 주시는 이 세상에서 무지로 눈멀어 고생하는 모든 사람들을 상징해 주었습니다. 이 예리고, 즉 이 세상은 몰락하고 말 것입니다. 세기의 종말은 성서에서 오래 전에 계시되었습니다.
그러면 이 종말은 어떻게 일어나겠습니까? 무엇이 종말을 알리겠습니까? “나팔 소리가 날 때”라고 성서는 말합니다. 무슨 나팔입니까? 바오로는 이 비밀에 해답을 줍니다. 그의 말을 들으십시오. “마지막 나팔 소리가 들릴 때 그리스도를 믿다가 죽은 사람들은 불멸의 몸으로 살아나고, 대천사의 부르는 소리가 들리고 하느님의 나팔 소리가 울리면 주님께서 친히 하늘로부터 내려오실 것입니다.” 그때 우리 주 예수께서 나팔 소리로 예리고를 치시어 완전히 몰락시키실 것입니다. 그 곳의 유일한 생존자들은 창녀와 그 권속들뿐일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께서 오실 것입니다. 나팔 소리가 울려 퍼지는 중에 오실 것입니다.
주님은 당신이 보내신 정탐원들을 맞아들이고 당신 사도들을 신앙과 순명 안에서 받아들여 제일 안전한 자리에 숨겨 준 그 한 여인만을 구원하시고 그 죄녀를 이스라엘 가문에 들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여인이 과거에 범한 죄를 되새겨 그 죄를 다시 그녀에게 되돌리지 맙시다. 그 여인은 한때 창녀였으나 이제는 정결한 동정녀처럼 한 정결한 정배인 그리스도와 결합하였습니다. 사도 바오로가 그 여인에 관해 말하는 것을 들으십시오. “내가 순결한 처녀인 여러분을 오직 한 남편 그리스도에게 바치려고 정혼을 시켰습니다.” 사도는 역시 “우리도 전에는 온갖 욕정과 쾌락의 종이 되었습니다.”라고 말할 때 그 여인에 관해 말하고 있습니다.
그 창녀가 이제는 왜 죄인이 아닌지 더 알고 싶습니까? 다시 사도 바오로의 말을 들으십시오. “여러분 중에도 이런 사람이 더러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하느님의 성령으로 깨끗이 씻겨지고 거룩하여졌습니다.” 예리고가 몰락할 때 그 여인은 거기에서 피신할 끈을 받았습니다. 온 교회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이 흘리신 피로 말미암아 구원받습니다. 그리스도께 영광과 권세가 영원히. 아멘.
응송 이사 49,22bc. 26cd; 요한 8,28a
◎ 내가 손을 들어 만국을 부르리라. 백성들을 향하여 나의 깃발을 날리리라. * 그때에 모든 인생은 알리라. 주님이신 내가 너의 구원자임을, 너의 원수를 갚는 야곱의 강한 자임을.
○ 너희가 사람의 아들을 높이 들어올린 뒤에야, 내가 누구라는 것을 알게 되리라.
◎ 그때에.
연중 제10주간 금요일 독서기도
감미로운 시편
성서 전체가 향기처럼 하느님의 은총의 영을 풍기지만 감미로운 시편은 더욱 그러합니다. 모세는 선조들의 행적을 기록 할 때 그것을 어떤 때는 소박한 필체로 썼습니다. 그러나 선조들이 경탄하는 가운데 백성을 홍해를 통하여 이끌어 내고 파라오왕이 자기 군대와 함께 물에 빠지는 것을 보았을 때, 자신이 지닌 모든 능력을 일으켜 세워(방금 자신의 능력으로 위대한 공적을 이루었기 때문에) 하느님께 승리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여 예언자인 미리암이 소구를 들고 다른 여인들에게 함께 부르도록 권고하면서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주님을 찬양하여라, 그지없이 높으신 분. 기마와 기병을 바다에 처넣으셨도다.”
역사는 교훈을 주고 법은 질서를 세우며 예언은 예고해 주고 견책은 징계하며 윤리는 설득시켜 줍니다. 시편은 이 모든 것의 종합이고 또 인간 구원의 영약입니다. 시편을 읽는 사람은 그 안에서 자신의 욕정으로 인해 생긴 상처들을 치료할 특별한 치료제를 찾아냅니다. 투쟁하고 싶은 사람이 시편을 읽으면 자신이 영혼들을 위한 일종의 공동 체육관이나 덕행 단련을 위한 대운동장에서 있는 것처럼 느낍니다. 그 곳에는 여러 가지 경기 종목이 마련되어 있고 그 중에서 자기 능력에 가장 맞고 가장 쉽게 월계관을 얻을 수 있는 경기 종목을 선택해야 합니다.
누가 조상들의 행적을 되새기고 그것을 본받으려 한다면 그는 단 한 개의 시편이 그들의 전역사를 담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며 그 짧은 시편 독서에서 암기를 위한 훌륭한 보화를 얻을 것입니다. 법에게 힘을 주는 것이 무엇인가 누가 알고자 한다면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은 율법을 완성한다.”라는 성서 말씀대로 그 힘은 사랑의 유대에 있습니다.) 시편을 읽어야 합니다. 시편에서 온 백성의 수치를 씻고자 그렇게도 큰 위험에다 몸을 드러내놓은 한 인간이 보여 주는 위대한 사랑을 보고, 이 용기가 가져온 승리에서 그는 사랑이 얼마나 위대한 일들을 할 수 있는가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예언의 능력에 대해서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다른 이들이 불투명하게 전한 것이 시편의 저자에게만 명백하고 확실한 약속으로 드러났습니다. 예를 들면 “네 몸의 소생을 네 왕좌에 영원히 앉히리라.”고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대로, 주 예수는 시편 저자인 다윗의 가문에서 나오리라고 말합니다. 시편에는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탄생하시리라는 것만이 아니고 우리 구원을 위해 수난 받으시고 죽으시며 부활하시고 하늘에 올라 성부 오른편에 앉으시리라는 것도 예언되어 있습니다. 다른 누구도 감히 말하지 못한 것을 이 예언자 홀로 전했고, 다음에 주님 친히 복음에서 가르치셨습니다.
응송 시편 56(57),8-9
◎ 든든한 내 마음, 하느님, 내 마음은 든든하오니, * 나는 노래하리이다. 고에 맞추어 읊으리이다.
○ 내 영혼아 잠 깨어라, 거문고야 기타야 잠을 깨어라. 새벽을 흔들어서 나는 깨우리라.
◎ 나는. 노래하리이다. 고에 맞추어 읊으리이다.
연중 제10주간 토요일 독서기도
나는 심령으로 기도하는 동시에 이성으로도 기도하겠습니다
시편보다 마음을 더 기쁘게 하는 것이 있겠습니까? 다윗 자신이 아름답게 말해 줍니다. “주님을 찬양하라, 노래도 좋을씨고. 하느님 노래하라, 찬미도 고울씨고.” 그렇습니다. 시편은 백성들에게 내리는 하느님의 축복이고 하느님께 바치는 찬양이며 신자들이 드리는 감사이고 모든 이들이 치는 손뼉입니다. 보편적인 교훈이고 교회의 목소리요 노래로 바치는 신앙 고백이고 참된 신심의 표현입니다. 또한 자유의 기쁨이고 행복에 넘치는 외침이며 환희의 소리입니다. 시편은 분노를 가라앉혀 주고 근심 걱정에서 해방시키며 슬픔을 몰아냅니다. 시편은 밤에는 우리를 지켜 주는 무기이고 낮에는 우리를 가르치는 교사입니다. 두려울 때의 방패이고 거룩함을 지닌 이들에게 축제입니다. 고요함의 거울이요 평화와 화목의 보증입니다. 시편은 칠현금처럼 여러 가지 목소리를 하나의 노래로 모읍니다. 새벽에 시편의 노래 소리가 울려 퍼지면 저녁에는 그 소리 메아리 쳐옵니다.
시편에는 교훈과 유희가 서로 겨루고 있습니다. 시편을 즐기기 위해 노래하고 교훈을 얻기 위해 배웁니다. 시편을 바치는 동안 온갖 좋은 생각이 마음에 떠오르지 않습니까? “사랑의 노래”라는 시편이 있습니다(시편 44). 나는 그 시편을 읽을 때 즉시 거룩한 사랑에 대한 갈망으로 불타 오릅니다. 시편에서는 또 계시의 은총, 부활의 증거, 계약의 선물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시편에서 우리는 죄를 피하는 것을 배우고 죄를 보속할 때 느끼는 수치심을 잊게 됩니다.
시편은 복된 예언자가 성령이라는 활로 연주하여 천상 음악의 즐거운 선율이 땅에 울려 퍼지게 하는 덕행의 악기가 아니겠습니까? 시편 저자가 시편을 노래할 때에는 죽은 동물의 잔재에서 만들어 낸 십현금의 현으로 연주하는 음악이 하느님을 찬미하는 천상 선율의 음악이 되게 합니다. 이것으로 시편 저자는 우리들도 이와 같이 먼저 죄에서 죽은 다음에 우리 육신의 여러 가지 덕행이 음악 소리가 나오게 할 때 우리 기도가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기도가 된다고 가르칩니다.
이 때문에 다윗은 우리가 마음으로 주님께 노래하고 마음으로 찬미를 드려야 한다고 말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나는 심령으로 기도하는 동시에 이성으로도 기도하겠습니다. 나는 심령으로 찬미의 노래를 부르는 동시에 이성으로도 찬미의 노래를 부르겠습니다.” 또 물질적 쾌락이 영혼을 구속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누르는 육신의 욕정을 일으키지 않도록 우리는 우리 생활과 활동을 천상 사물에 대한 관심에 따라 이루어 나가야 합니다. 복된 예언자는 영혼의 구원을 얻기 위해 노래한다고 말했습니다. “현금을 타며 당신께 읊어 드리리이다. 이스라엘의 거룩한 님이시여, 당신께 찬미할 때, 내 입술을 방실방실 속량하신 영혼도 너울너울 기쁘리이다.”
응송 시편 91(92),2. 4
◎ 좋으니이다, 지존하신 님이여. 주님을 기려 높임이, * 그 이름 노래함이 좋으니이다.
○ 십현금에 칠현금 소리, 수금의 맑은 가락에 노래부르며,
◎ 그 이름. 노래함이 좋으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