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한 신부와 함께하는 기도 따라하기] (26) 하느님의 일이 저 사람에게서 드러나려고 그리된 것이다
■ 성경 구절: 요한 9, 1-12. 35-41 태어나면서부터 눈먼 사람을 고쳐 주시다.
■ 청할 은총: 예수님을 보다 깊이 알 수 있고 보다 열렬하게 사랑할 수 있으며 그분을 보다 가깝게 따를 수 있는 은총을 청합니다.
■ 기도요점:
1. “예수님께서 길을 가시다가 태어나면서부터 눈먼 사람을 보셨다.”(1절) 이 눈먼 사람은 살아오면서 많은 상처를 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상처는 주거나 받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상처를 받겠지만, 상처는 자신이 만드는 것이라면 상황은 달라집니다. 자신이 상대방의 말에 동요되거나 휘둘리지 않고 영향을 받지 않는다면 상처받을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받은 상처를 되돌아보며, 상처가 있다면 그 상처는 내가 만들었음을 숙고해봅니다.
2. “하느님의 일이 저 사람에게서 드러나려고 그리된 것이다”(3절)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듯이 하느님의 일이 나에게 드러난 것은 어떤 것이 있는지 생각해봅니다. 우리의 삶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이나 사건을 통하여 이 “만남이나 사건이 하느님을 만나기 위한 무슨 기회가 되는지”를 생각해보는 사람이라면 “하느님의 일이 내 안에서 드러나려고 그리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음을 숙고해봅니다.
3. “땅에 침을 뱉고 그것으로 진흙을 개어 그 사람의 눈에 바르신”(6절 참조) 장면을 보면 상대방의 믿음 수준에 맞춰 대하는 예수님을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한 마디만 하면 나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왕실 관리는 예수님께 ‘주님, 제 아이가 죽기 전에 같이 내려가 주십시오.’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가거라. 네 아들은 살아날 것이다.’ 그 사람은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이르신 말씀을 믿고 떠나갔다.”(요한 4,49-50) 이것을 통하여 왕실 관리의 믿음 수준을 알 수 있듯이 ‘땅에 침을 뱉고 진흙을 개어 눈에 발라야 낫는다’는 수준의 믿음도 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상대방을 믿음의 수준대로 대하듯 예수님께서는 나 자신을 어느 수준으로 대할지를 생각해보며 자신의 믿음 수준을 숙고해봅니다.
4. 예수님께서 “실로암 못으로 가서 씻어라”(7절)라고 말씀하시듯, 못으로 가서 씻어야 한다는 것은 제대로 보지 못하도록 막고 있는 것을 의미하며 구체적으로 나에게 있어서 그것이 무엇인지를 숙고해봅니다. 구체적으로 앞을 보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보면 그것은 크게 ‘자신의 생각’과 ‘과거의 경험’이라는 필터로 하여금 세상을 제대로 볼 수 없게 만들고 있음을 숙고해봅니다.
5. 이 성경 구절을 처음부터 천천히 읽어나가면서 예수님과 치유를 받은 태생 소경과의 마지막 대화, 즉 “너는 사람의 아들을 믿느냐?”(35절)고 하자 소경은 “주님, 저는 믿습니다”(38절)라고 말하는 장면을 특별히 묵상해보며, 나는 ‘주님을 믿는다’고 고백할 수 있는가를 생각해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내 안의 주인이 예수님이고,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어야 하고, 그것을 행해야 된다는 의미에서 예수님을 제대로 믿고 있는지 숙고해봅니다.
6. 나는 겸손하게 내 믿음의 순수성을 기원해봅니다. 순수한 믿음은 다만 예수님의 말씀만을 온전하게 알아듣고 행한다는 것으로 자기 중심적인 것을 버리고 하느님 중심적인 삶으로 바뀌는 것을 의미함을 숙고해봅니다.
[정규한 신부와 함께하는 기도 따라하기] (25)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 성경 구절: 요한 4,1-42 사마리아 여인과 이야기하시다.
■ 청할 은총: 내게 주시는 그분의 열성을 더욱 깨닫고 나를 길러주시는 그분의 사랑을 받아들일 만큼 예수님께 다가설 수 있는 은총을 하느님께 청합니다.
■ 기도 요점:
1. 마음을 가라앉히고 하느님 현존 안에 있음을 느껴봅니다. 자신의 내면 한가운데로 깊이 침잠하여 머무릅니다. 그 한가운데에서 부드럽게 올라오는 샘물을 상상해봅니다. 이 물이 나의 내면에서 서서히 솟구쳐 올라 온 몸을 통해 흐르는 것을 느껴봅니다. 이 물이 내 몸 곳곳을 신선하게 만들고 정화시키는 생명의 힘을 보내는 원천임을 상상해봅니다. 예수님께서 “나는 생명의 물이다”라고 하신 말씀을 들으면서 이 물이 내 영혼 내부에 부드럽게 흐르도록 놓아두며 그것을 통하여 ‘하느님의 현존’을 체험하면서 그 속에 머물러봅니다.
2. 물은 그리스도께서 이 지상을 떠나시는 순간에 우리 안에 풍성히 부어주실 성령의 선물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물이라는 상징적 개념으로부터 양식이라는 상징적 개념에 이르기까지 두 가지가 다 생명의 요소들입니다. “내 양식은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실천하고, 그분의 일을 완수하는 것이다”(34절)라는 말씀에서 양식은 사랑을 실천하는 것으로 나타나게 되는데 나는 어떤 종류의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내 양식이 되고 있는가를 숙고해봅니다.
3. 예수님께서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14절)라고 말씀하시니 그 여인은 “선생님, 그 물을 저에게 주십시오”(15절)라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예수님께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이렇게 예수님께 관심을 가지게 되는 호기심의 눈이나 사건을 통해 예수님과 친밀해지고 있는지를 숙고해봅니다.
4. ‘생명의 물’이란 무엇일까요? 우리는 끊임없이 이러한 의미를 찾아야 하고, 사랑과 희망을 붙잡으며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요? 의미를 찾고 사랑을 실천하려는 마음이 바로 생명의 물을 찾고 있다는 것임을 숙고해봅니다.
5. 기도는 하느님의 현존을 체험하는 것이기에 기도라는 생명의 물을 마시고, 사랑 실천이라는 생명의 양식을 먹음으로써 생명의 요소들로 우리 마음속에서 용솟음쳐야 함을 숙고해봅니다.
6. 예수님께서 사마리아에 이틀간 머무르시며 사마리아 여인에게 당신 자신을 ‘구세주’로, 그리고 동네 사람들에게 ‘세상의 구세주’로 계시하십니다. 이렇게 ‘보잘 것 없는 사람들’에게 계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나 자신에게는 어떻게 예수님께서 다가오며 계시하시는지 숙고해봅니다.
7. 예수님께서 하신 “눈을 들어 저 밭들을 보아라. 곡식이 다 익어 수확 때가 되었다”(35절)는 말씀을 숙고하면서, 나는 추수할 들판에 있는 제자가 되어 내 삶에 특별한 의미를 주는 예수님의 말씀을 되새기며 맛들여봅니다.
8. 예수님을 따르려는 자신에게 충만한 의미를 담고 있는 곳이나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장면으로 되돌아가 깨달음을 주거나 느낌을 주는 곳에 더 깊이 머무르는 묵상을 해봅니다. 그곳에서 내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예수님과 친구가 친구에게 말하듯 담화를 나누어봅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우리를 찾아주시어 우리의 믿음을 심화시켜주시고, 생명수의 샘에서 생명수를 마시고 싶은 우리의 바람을 강하게 해주시도록 대화를 나누어봅니다.
[정규한 신부와 함께하는 기도 따라하기] (24) "이는 내가 선택한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 성경 구절: 루카 9,28-36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모하시다
■ 청할 은총: 예수님을 더욱 친밀하게 알고 사랑하여 믿음과 용기를 갖고 그분을 따를 수 있는 은총을 청합니다.
■ 기도 요점:
1. 예수님으로부터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와 함께 그분을 동행하여 산에 오르자고 초대받는 나 자신을 상상합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의 모습을 살펴보고,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며 산에 오를수록 변해가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며 느낌이 오는 곳에 멈추어 머물러봅니다.
2. 예수님의 변모는 외적 변화만을 가리키지 않고 내적 변화가 동반돼야 합니다. 외적 변화는 예를 들어 기부하지 않던 사람이 기부하게 됨을 말하며 내적 변화는 기부하기 전과 후의 마음이 똑같아짐을 의미합니다. 선행 전후의 마음이 같았을 때를 기억하며 그때가 자신의 변모가 일어났던 상태임을 생각합니다. 그때가 바로 하느님의 현존에 있었음을 기억하며 지금도 그것이 가능할 수 있음을 숙고해봅니다.
3. 정상에 오르자, 예수님과 제자들이 조용히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 나도 그 옆 어디에 앉아 마음을 가라앉히고 기도에 들어갑니다. 예수님의 얼굴과 옷에서 빛나는 모습 속에 하느님께서 예수님 안에 현존하심을 숙고해봅니다. 예수님께서 이 사건을 통해 당신이 겪게 될 수난과 십자가가 끝이 아니라 부활의 영광에 이르게 되리라는 사실을 알려 주시듯, 우리의 어려움과 고통을 통해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주시는 하느님의 위로를 느껴봅니다.
4. 하느님과 깊은 대화에 빠지시는 예수님을 기도 중에 관상합니다. 예수님의 얼굴 표정과 자세 등의 이 모든 태도에 반영된 사랑의 일치를 느껴봅니다. 그리고 예수님 안에 깃든 하느님의 모습에 집중하면서 자신 안에 현존하고 계신 하느님을 느껴봅니다.
5. 모세와 엘리야의 현존을 깨닫고, 그들이 예수님과 나누는 대화를 주의 깊게 들어봅니다. 이러한 일이 진행됨에 따라, 나도 베드로의 흥분과 그곳에 머물고 싶어 하는 그의 열망에 빠져들며 느껴지는 곳에 멈춰 머물러봅니다. 우리의 사명은 고통받고 버려진 이들의 마음에 사랑과 희망을 심어주는 등불이 되어줄 때 변모하신 예수님처럼 우리도 변모하게 됨을 숙고해봅니다.
6. 하느님께서 거하시는 구름이 우리 모두를 덮는 것을 느껴봅니다. 예수님의 신원과 영광을 드러내는 “이는 내가 선택한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35절)라는 말씀이 나를 향해서 하는 말씀으로 듣고 거기에 응답하는 내 가슴 속에서 들려오는 여린 소리를 들으며 어떠한 느낌이 일어나는지 살펴보며 머물러봅니다.
7. 바오로 사도가 “우리는 모두 너울을 벗은 얼굴로 주님의 영광을 거울로 보듯 어렴풋이 바라보면서, 더욱더 영광스럽게 그분과 같은 모습으로 바뀌어 갑니다”(2코린 3,18)라고 말하듯이 우리 안에 예수님과 함께하는 기쁨이 끊임없이 생겨나도록 해야함을 생각해봅니다. 그래서 성령에 의해 생각과 의지가 새로워짐으로써 새로운 삶의 형태로 변화되어 나가는 것임을 숙고해봅니다.
8. 주님의 변모 사건이 말하는 것은 우리는 기도를 통하여 예수님의 모습으로 바뀌어 가고 있으며 이 변화가 언제가는 완성될 것이라는 희망을 안고 살아가는 것을 깨닫는 것임을 숙고하며 예수님과 대화를 나누어봅니다.
[정규한 신부와 함께하는 기도 따라하기] (23) 유혹을 물리치시는 예수님
■ 성경 구절: 루카 4,1-13 광야에서 유혹을 받으시다.
■ 청할 은총: 나를 유혹하거나 나의 선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유혹의 뿌리를 잘 알고 예수님처럼 유혹을 이길 수 있는 은총을 청합니다.
■ 길잡이: 비가 올 때 사막은 어느 것도 자라지 않지만, 광야는 풀들이 자라는 곳으로 광야는 정화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 기도 요점:
1. 예수님과 함께 광야로 나아갑니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주위를 아주 자세하게 상상해 봅니다. 나에게 있어서 광야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사막인가, 어두운 숲인가, 혹은 텅 빈 집인가를 생각해봅니다. 이렇게 내가 이끌려간 이 광야 한가운데 서서 느끼는 느낌들에 주목합니다. 그리고 가장 억압적이고 두렵고 위협적이며 혼란시키는 것이 무엇인가를 숙고해봅니다.
2. “사십 일 동안 악마에게 유혹”(2절)을 받으셨듯이 악의 존재가 무엇인가를 알아차리고 그 악의 존재를 자세히 바라봅니다. 그것에게 어떤 형체를 부여해 봅니다. 그건 어쩌면 어두운 그림자이거나, 무서운 짐승이거나, ‘악마’같은 사람이거나, 혹은 형체 없는 어떤 목소리일 수도 있습니다. 이 악의 존재가 어떻게 움직이며, 어떻게 보이며, 어떻게 말하는지를 알아보고 그것을 지켜보며 숙고해봅니다.
3. 이 악의 존재가 예수님께 했던 것처럼 세 가지 유혹을 내게 던지는 소리를 듣습니다.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이 돌더러 빵이 되라고 해 보시오”(3절), “당신이 내 앞에 경배하면 모두 당신 차지가 될 것이오”(7절),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여기에서 밑으로 몸을 던져 보시오.”(9절) 악의 계략들은 예수님을 가난, 모욕과 업신여김, 박해, 무기력의 구세주, 가난한 메시아가 아니라 소유, 명예, 권능의 메시아로 예수님을 유혹합니다. 나에게 다가오는 이러한 유혹들을 하나하나 숙고해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믿음으로 이 유혹과 모든 악을 물리치셨듯이 나도 유혹을 이기기 위해 예수님과 같은 믿음을 가지고 있는가를 숙고해봅니다.
4. 예수님께서 나와 함께 계심을 느껴봅니다. 그분께서는 유혹을 받으셨기 때문에 유혹받는 우리 자신의 심정을 너무나 잘 아시는 예수님께 나의 유혹들에 대해 말씀드리고 내가 악에 굴복하지 않도록 그분의 힘을 나누어 주십사고 청해봅니다. 성숙된 신앙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이러한 식별의 삶을 사는 일이기 때문에 나는 이러한 식별을 잘 하고 있는지 숙고해봅니다.
5. 우리에게 있어 예수님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분 안에 활동하시는 성령께 순종하시며, 성부의 원의를 찾으십니다. 예수님은 주변의 권력 있는 자들이 추구하던 것과 아주 다른 길을 가십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뜻을 어떻게 찾아가고 있는지 숙고해봅니다.
6. 예수님을 깊이 알 수 있는 만큼 더욱 진실되게 따를 수 있기 때문에 예수님의 동료가 되어 더 잘 그분을 알고, 더욱 그분을 사랑하기 위하여 가장 심한 가난, 모욕과 업신여김, 그리고 겸손을 받아들이려는 원의를 통하여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예수님과 친구처럼 이야기를 나누어봅니다. 그리고 나의 신뢰와 믿음이 자라서 예수님처럼 하느님께 완전히 의탁할 수 있도록 예수님과 친밀히 이야기를 나누어봅니다.
[정규한 신부와 함께하는 기도 따라하기] (22) "자캐오야, 얼른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
■ 성경 구절: 루카 19,1-10 예수님과 자캐오
■ 청할 은총: 예수님을 보다 더 잘 알고, 더 많이 사랑하고, 마음을 다하여 따르고자 하는 열망을 가질 수 있는 은총을 청합니다.
■ 기도 요점:
1. 자캐오라는 이름의 뜻은 ‘청결한 사람’이라는 의미이지만, 이름의 뜻과는 달리 죄인이었다는 것을 생각해봅니다. 예리코는 국경 도시였기 때문에 여기서는 세관원들이 부유하게 잘 살 수 있었는데, 이렇게 잘 사는 세관장인 자캐오가 무엇이 아쉬워서 예수님을 보려고 애를 썼을까요? 그것은 자캐오가 예수님에 대한 관심이 있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닐까요? 그러면 무엇이 그로 하여금 예수님께 관심을 갖게 만들었을까를 숙고해봅니다.
2. 자캐오가 예수님을 만나려고 했다는 것은 적어도 그분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조금은 알고 있었고, 무엇에 대하여 말하는 사람인지도 알고 있었으며, 그러한 것들이 자캐오에게 관심을 끌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어떠한 점이 자캐오에게 관심을 끌었을까를 숙고해봅니다. 지금과는 다른 새로운 삶을 살고 싶었던 갈망이 있었기에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려는 내적인 움직임 때문에 예수님에게 끌렸고 보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3. 자캐오가 예수님을 만날 기회를 찾고 있었는데 예수님이 예리코에 오신다는 소식을 접하자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뛰어가지만, 군중이 많아 볼 수조차 없었던 것은 키가 작아서였습니다. 기회가 왔고 작은 키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으로 나무 위로 올라가게 됩니다. 자캐오처럼 나는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가로막는 장애물을 어떻게 극복하고 있는지 숙고해봅니다.
4. 세관장이 나무 위로 올라간 것은 자신의 체면을 생각하지 않은 채 오로지 예수님을 만나는 것이 더 중요했다는 것입니다. ‘체면을 알되 그 체면이 예수님을 만나는 데는 아무 영향을 끼치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나무 위로 올라간 이 이상한 행동 때문에 웃음거리가 될 수도 있지만 전혀 개의치 않는 모습입니다. 사회적 계급적 편견으로부터 해방되어 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내가 예수님을 만나는 데 있어서 가로막고 있는 선입견이나 편견에 대해 숙고해봅니다.
5. 이제 나는 돌무화과나무 위에 올라가 있는 것을 상상해보고 예수님께서 “자캐오야, 얼른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5절)하시며 내 이름을 부르시고 그분이 내 집에 머물기를 요구하실 때 나는 어떻게 느끼며 응답할지 숙고해봅니다.
6. 자캐오는 예수님의 말씀(5절)에 ‘예수님을 내면으로 받아들임’으로 인해 그의 마음이 이웃에게 열려 “보십시오, 주님! 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다른 사람 것을 횡령하였다면 네 곱절로 갚겠습니다”(8절)라는 실천적인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가 이렇게 한 것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자캐오의 마음이 열렸고 진정으로 예수님을 받아들이고 맞아들임에 있었음을 숙고해봅니다.
7. 내가 돌무화과나무에서 내려와서 예수님과 함께 우리 집으로 가면서, 나는 예수님께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을까를 자캐오의 마음과 비교해보면서 숙고해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과 더욱 의미 있는 지속적인 관계를 잘 맺기 위해 그분께 나의 희망과 계획을 말씀드리고 그분의 말씀을 들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