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3주일 독서기도
우리는 세상 극변까지 그리스도를 전합니다
“만일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면 나에게 화가 미칠 것입니다.” 그리스도 친히 이 일을 하라고 나를 보내십니다. 나는 사도이고 증인입니다. 목표가 더 멀리 있으면 있을수록, 내 사명이 더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그것을 하도록 나를 강요하는 사랑은 그만큼 더 시급합니다. 나는 그분의 이름을 고백해야 합니다. 예수는 그리스도이시고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들이시라는 것을 고백해야 합니다. 그분은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계시이시고 “만물에 앞서 태어나신 분이시며” 창조된 만물의 기초이십니다. 그분은 인류의 스승이시고 구세주이십니다. 그분은 우리를 위해 태어나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분은 역사와 세상의 중심이십니다. 우리를 알고, 우리를 사랑하는 분이십니다. 우리 생활의 동반자이시고 벗이십니다. 고통받는 분이시고 희망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은 언젠가 오셔야 하실 분이시고 우리의 심판자 되실 분이시며 우리가 희망하는 것과 같이 우리 존재의 영원한 완성이시고 우리의 행복이십니다.
그분에 대해 말하는 것을 결코 끝내 버릴 수 없습니다. 그분은 빛이시고 진리이시며 참으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배고픔을 채워 주시는 빵이시고 우리의 갈증을 풀어 주시는 생수의 원천이십니다. 우리의 목자, 우리의 인도자, 우리의 모범, 우리의 위로, 우리의 형제이십니다. 우리처럼 또 우리 이상으로 작은 자, 가난한 자, 수치를 당하신 자가 되셨습니다. 노동자가 되셨고 온갖 불행을 견디어 내셨습니다. 우리를 위해 말씀하시고 기적을 행하시며 새 나라를 세우셨습니다. 이 나라에서 가난한 이들은 행복한 자가 되고 평화가 공동 생활의 원리가 되며 마음이 깨끗한 이가 높여지고 애통하는 이가 위로를 받습니다. 또 이 나라에서는 옳은 일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만족을 느끼고 죄인은 죄 사함을 받아 모두가 형제가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 여러분은 그분에 대해 좋은 것을 많이 들어 왔습니다. 뿐만 아니라 여러분의 대부분은 이미 그분께 속하여 있는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인 여러분께 나는 그분의 이름을 반복하고 모든 이들에게 그 이름을 전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시작이요 마침이며, 알파요 오메가이십니다. 새 세상의 왕이시고 우리 인간 역사와 우리 운명의 숨겨진 최고의 근원이십니다. 하늘과 땅을 이어 주는 중재자이십니다. 영원하고 무한하신 하느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에 누구보다 온전한 사람의 아들이십니다. 모든 여인 중에 복되신 마리아의 아들이십니다. 마리아는 육신으로 그분의 어머니이시고 그분의 신비체의 영에 참여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어머니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 명심하십시오, 이분이야말로 우리가 끊임없이 전파하고 있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세세 대대 땅 극변까지 그분의 이름을 울려 퍼지게 하기를 원합니다.
응송 2디모 1,10b; 요한 1,16; 골로 1,16b-17
◎ 우리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죽음의 권세를 없애 버리시고, 복음을 통해서 불멸의 생명을 환하게 드러내 보이셨도다. * 우리는 모두 그분에게서 넘치는 은총을 받고도 받았도다.
○ 만물은 그분을 통해서 그리고 그분을 위해서 창조되었도다. 그분은 만물보다 앞서 계시고 만물은 그분으로 말미암아 존속하는도다.
◎ 우리는. 모두 그분에게서 넘치는 은총을 받고도 받았도다.
연중 제13주간 월요일 독서기도
그분은 우리의 하느님이시고 우리는 그 목장의 백성입니다
방금 노래한 시편 말씀은 우리가 하느님의 양 떼라는 신앙을 담고 있습니다. “주님은 하느님, 너희는 알라. 우리를 내셨으니, 우리는 당신의 것 당신 백성이어라. 기르시는 그 양 떼이어라.” 인간 목자들은 자기가 소유하고 있는 양들을 스스로 지어내지 않았고 자기가 기르는 양들을 창조하지 않았습니다. 반대로 우리 주 하느님은 하느님이시고 또 창조주이시기에 당신이 소유하고 기르시는 양들을 친히 지어내셨습니다. 하느님께서 기르시는 양들은 다른 누가 지어낸 것이 아니고, 하느님께서 지어내신 양들은 또 다른 누가 기르는 것도 아닙니다.
이 시편 말씀에서 우리는 주님의 양들, 그 목장의 백성, 당신 손이 이끄시는 양 떼라고 고백했습니다. 이제 하느님께서 당신의 양들인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을 경청하도록 합시다. 이전에 주님은 목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양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목자인 우리는 그전의 말씀들(즉 목자들에 대한 말씀)을 떨면서 들었지만 여러분은 평온한 마음으로 들었습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이제 이 시편에서 말씀하시는 것(즉 양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어떤 마음으로 들어야 하겠습니까? 전과 반대로 우리는 평온한 마음으로 듣고 여러분은 떨면서 들어야 되겠습니까? 그렇게 하면 안됩니다. 목자는 주님께서 목자들에게 하시는 말씀뿐만 아니라 양들에게 하시는 말씀도 떨면서 들어야 합니다.
만일 목자가 주님께서 양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평온한 마음으로 듣는다면 그 목자는 양들에 대한 관심이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목자인 우리에 대해 두 가지 점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즉 우리는 한 면에서 여러분과 같은 그리스도인이고 또 다른 면에서 여러분의 지도자라는 두 가지 점입니다. 우리는 지도자로서 맡은 임무를 충실히 이행해야만 목자의 반열에 들 것이지만 한편 우리는 역시 그리스도인으로서 여러분과 함께 양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께서 목자들에게 말씀하시든 양들에게 말씀하시든 간에 우리 마음에 여러분에 대한 염려가 사라지지 않도록 그 모든 말씀을 떨리는 마음으로 들어야 합니다.
형제 여러분, 이제 주님께서 좋지 못한 양들을 어떻게 꾸짖으시고 또 당신 말씀을 잘 듣는 양들에게 무엇을 약속하여 주시는지 들어 봅시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내 양들이다.” 형제들이여, 하느님의 양 떼가 되는 것은 얼마나 큰 행복입니까! 이것은 이 세상의 눈물과 걱정 가운데서도 큰 기쁨을 가져다 줍니다. 성서가 말해 주는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그분은 “졸지도 잠들지도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은 우리가 깨어 있을 때나 잠들 때나 우리를 지켜 주십니다. 인간 목자가 양 떼를 기를 때 그 양 떼가 평온을 느낀다면 하느님 친히 우리 목자가 되실 때 우리는 더 큰 평온을 느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분은 우리를 기르실 뿐 아니라 지어내시기까지 했기 때문입니다.
주 하느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의 양 떼인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이제 양과 양 사이에 숫양과 숫염소 사이에 시비를 가려 주리라.” 하느님의 양 떼 안에서 염소는 무엇을 합니까? 하느님의 왼편에 앉기로 되어 있는 염소들은 하느님의 오른편에 앉기도 된 양들과 같은 풀밭, 같은 샘에서 함께 섞여 있습니다. 하느님은 지금 이 상태를 참아 주시지만 장차 염소들을 가려내실 것입니다. 지금 하느님께서 참으시는 것처럼 양들도 참아 주어야 합니다. 장차 염소와 양을 가르시어 하나는 왼편에 하나는 오른편에 두실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응송 요한 10,27-28; 에제 34,15
◎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노라. 나는 내 양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라오는도다. 나는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노라. * 그들은 차리지 말고 남의 이익도 돌보아라.
○ 내가 몸소 내 양 떼를 기를 것이요, 내가 몸소 내 양 떼를 쉬게 하리라.
◎ 그들은. 차리지 말고 남의 이익도 돌보아라.
연중 제13주간 화요일 독서기도
내가 사람들의 호감을 사려고 한다면 나는 그리스도의 일꾼이 아닐 것입니다
“우리가 자랑으로 여기는 것은 우리 양심의 증거입니다.” 다른 사람을 경솔하게 판단하고 멸시하며 말을 물어 나르고 그들을 비판하고 보지 못한 것을 추측하려 들며 아무 근거 없이 헛소문을 퍼뜨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로부터 우리 자신을 방어하는 길이란 우리 양심의 증거밖에 또 무엇이 있겠습니까? 형제들이여, 영혼의 목자인 우리는 호감을 사고 싶어하는 이들에게서마저 우리 자신의 영광을 찾아서는 안됩니다. 다만 그들의 구원만을 찾아야 합니다. 우리가 바른길을 걸어간다면 그들은 우리를 따라오게 되므로 곁길로 벗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본받을 때에 그들도 우리를 본받게 하고 우리가 그리스도를 본받지 않을 때는 그들만이라도 그리스도를 본받게 해야 합니다. 주님, 당신 홀로 당신 양 떼를 기르십니다. 자기 양 떼를 잘 기르는 목자들이 다 주님 안에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람들의 마음에 드는 것을 하려고 할 때 우리 이익을 구하지 않고 사람들을 기쁘게 해주고자 합니다. 그리고 좋은 것이 사람들의 마음에 들 때 그것이 우리 명예가 되어서가 아니라 그들에게 선이 되기 때문에 즐거워 합니다. 자기 이익만을 찾는 목자들을 거슬러 사로 바오로는 “내가 아직도 사람들의 호감을 사려고 한다면 나는 그리스도의 일군이 아닐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또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도 무슨 일을 하든지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려고 애씁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하십시오.” 바오로의 이 두 가지 말씀은 다 명백하고 순수하고 온화하며 두 가지 다 잡것이 하나도 섞여 있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단순히 풀을 먹고 물을 마시도록 하십시오. 그 대신 풀을 먹을 때 풀을 짓밟거나 물을 마실 때 물을 흐리게 하지 않도록 하십시오.
여러분은 사도들의 스승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하신 말씀을 들었으리라 믿습니다. “너희도 이와 같이 너희의 빛을 사람들 앞에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즉 현재의 너희를 지어내신 분을 “찬양하게 하여라.” 실상 우리는 “그 목장의 백성이고 당신 손이 이끄시는 양 떼입니다.” 여러분이 착한 사람들이라면 모든 영예는 여러분을 선하게 지으신 하느님께로 돌려야 합니다. 여러분 스스로는 악하게 될 뿐이기에 선행을 여러분의 것으로 삼아서는 안됩니다. 왜 어떤 좋은 일을 할 때는 그것을 여러분의 영예로 돌리고 나쁜 일을 할 때는 그 수치를 하느님의 잘못으로 돌려 진리를 뒤틀어 놓습니까?
“너희 빛을 사람들 앞에 비추라.”고 말씀하신 분은 같은 설교에서 “너희는 일부러 남들이 보는 앞에서 선행을 하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위의 두 가지 사도의 말씀이 여러분에게 서로 모순되는 것처럼 보였듯이 지금 이 두 가지 복음 말씀도 그렇게 보일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마음의 물을 흐리게 하지 않는다면 복음서의 이 두 말씀은 조화되어 있음을 볼 수 있고 또 여러분도 그 말씀과 일치될 것입니다. 형제들이여, 잘 살아가도록 주의를 기울입시다. 그뿐 아니라 사람들 앞에서 훌륭히 처신하도록 합시다. 양심의 가책을 느낄 행동을 하지 않도록 노력하고, 거기에 더하여 연약한 우리가 할 수 있는 그만큼 우리가 하는 일이 어떤 것이라도 더 약한 형제로 하여금 좋지 못한 의심을 자아내게 하지 않도록 주의합시다. 우리가 깨끗한 풀을 먹고 맑은 물을 마실 때 하느님의 풀밭을 짓밟지 않도록 조심하여, 약한 양들이 우리가 짓밟아 놓은 풀을 먹어야 한다거나 흐려진 물을 마시는 일이 없게끔 해야 합니다.
응송 필립 2,2. 3-4; 1데살 5,14b. 15b
◎ 나의 기쁨을 완전하게 해주어라. 같은 생각을 가지고 같은 사랑을 나누며, 겸손한 마음으로 서로 남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라. * 제 실속만 차리지 말고 남의 이익도 돌보아라.
○ 약한 사람들을 붙들어 주고, 모든 사람을 인내로써 대하며, 언제나 서로 남에게 또 모든 사람에게 선을 행하도록 힘쓰라.
◎ 제 실속만. 차리지 말고 남의 이익도 돌보아라.
연중 제13주간 수요일 독서기도
그 나라가 임하소서
아무리 소견머리 없는 사람이라도 점잖은 어른에게 무엇을 청할 경우, 어떻게 하면 상대방의 마음에 들어 기분이 상하지 않게 부탁할 수 있을까를 미리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더구나 어지신 예수님이 비는 법을 가르쳐 주신 대로, 어느 한 가지를 마음먹고 청할 때에는, 무엇을 그리고 무엇 때문에 청하여야 하는가를 깊이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조심해서 할 일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주님이시여, 당신은 말 한마디로 “아버지,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소서.” 하고 맺으실 수 있지 않습니까? 모든 것을 다 아시는 분께는 여러 말이 필요치 않았으니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영원하신 지혜시여, 당신과 아버지 사이라면, 그것으로 넉넉합니다. 그러길래 당신은 올리브 동산에서 당신의 뜻과 두려움을 말씀하시고는, 당신을 아버지의 뜻에 맡겨 버리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이 잘 아시는 바와 같이, 아버지의 뜻에 스스로를 온전히 내맡기신 당신처럼, 그토록 자신을 아주 바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무엇을 지목하여 빌어야 한다고 당신이 가르치셨으니, 그 때문에 우리는 잘 살펴서 좋은 것이면 청하고, 그렇지 않으면 청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자유가 있기 때문에 우리가 원하는 그것을 얻지 못하면 주님이 주시는 것이라도 받아들이려 하지 않고,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우선 손에 들어 있는 돈처럼 보이지 않는 데서, 그것으로 부자가 될 생각은 아니하는 것입니다.
좋으신 예수님은, 우리 안에 당신의 나라가 있어지기를 빌 적에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그 나라가 임하시며” 이같이 외우라고 하시었습니다. 그럼 따님들이여, 우리 스승님의 지혜가 얼마나 크신가 생각해 봅시다. 나는 여기서 잠시 생각을 멈추고, 우리는 이 “나라”라는 말로 무엇을 비는지 밝히는 것이 좋을 줄 믿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힘이 너무 모자람을 보시고, 이 세상에서부터 당신의 나라를 마련해 주시지 않으면, 우리가 영원하신 아버지의 이름을 기리고 높이고 거룩히 빛낼 수 없으리라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러기에 좋으신 예수님은 이 두 가지를 빌게 하신 것입니다.
따님들이여, 우리는 알아야겠습니다. 빌고 있는 그것이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비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그리고 은혜를 내리시는 주님의 마음에 들도록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야 하겠습니다. 내가 여기서 내 나름대로 알아들은 것을 여러분에게 말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나는 천국에 대해서 이렇게 생각합니다. 거기에는 가지가지 복이 있겠지만, 그 중에 제일 큰 행복은, 다시는 세상의 것을 마음에 두지 않고, 오직 자기 안에 안정과 영광을 누리며 즐거워 하는 이들과 다 같이 즐거워 하는 것, 그리고 모두가 하느님을 기리고 그 거룩하심을 나타내고 당신의 이름을 찬미하여, 아무도 거역하는 자가 없음을 볼 때, 무궁한 평화와 더없는 만족을 느끼는 그것이 제일 큰 행복일 것입니다.
거기서는 모든 이가 주님을 사랑하고, 영혼이 하는 일이란 오직 당신을 사랑하는 것뿐, 당신을 환히 알기 때문에 아니 사랑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도 그와 같이 사랑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물론 거기서처럼 오롯하게 끊임없이 할 수야 없습니다만, 주님을 더 알았던들, 지금 우리가 사랑하고 있기보다는 당신을 사랑하는 법이 훨씬 달랐을 것입니다.
응송
◎ 당신 자녀들에게 좋은 것을 주실 줄 아시는 분께서 우리에게 구하고 찾으며 문을 두드리라고 말씀하시는도다. * 우리가 충실히 믿고 굳건히 희망하며 열렬히 갈망하면 할수록, 더욱더 받을 수 있으리라.
○ 이런 것은 말을 많이 함으로보다 탄식으로, 이야기함으로보다 눈물로 이루게 되는도다.
◎ 우리가. 충실히 믿고 굳건히 희망하며 열렬히 갈망하면 할수록, 더욱더 받을 수 있으리라.
연중 제13주간 목요일 독서기도
앞장서 놀라운 성전에 들어가리라
“암사슴이 시냇물을 그리워하듯, 내 영혼 하느님을 그리나이다.” 시편이 말해 주는 이 사슴들이 시냇물을 그리워하는 것처럼 이집트를 나옴으로 세속을 떠나서 파라오와 그 군대들을 세례의 물로 삼켜 버려 마귀를 죽여 버린 우리 사슴들도 교회의 샘, 곧 성부와 성자와 성령을 그리워합니다.
예언자 예레미야는 성부께서 샘이라고 말합니다. “나의 백성은 생수가 솟는 샘인 나를 버리고 갈라져 새기만 하여 물이 괴지 않은 웅덩이를 팠다.” 예언자 바룩은 성자에 대해서 “그들은 지혜의 샘을 외면했다.”라고 말해 주고, 사도 요한은 성령에 대해서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그 속에서 샘물처럼 솟아올라 영원히 살게 할 것이다.”라고 기록하며, 주님께서 직접 하신 이 말씀은 성령에 대한 말씀이라고 복음사가 자신이 지적합니다. 이 세 가지 성서 인용은 삼위 일체 신비가 교회의 세 가지 샘이라는 것을 분명히 증명해 줍니다.
신앙인의 영혼도 이 샘을 그리워하고 세례를 받은 영혼도 이 샘을 그리워합니다. “내 영혼, 하느님을, 생명의 하느님을 애타게 그리나이다.” 그런데 그저 하느님을 뵙고 싶은 마음만이 아닙니다. 애타게 그리워하고 불타 오르도록 목말라 합니다. 세례 받기 전 그들은 서로 다음과 같은 말을 나누었습니다. “그 하느님 얼굴을 언제나 가서 뵈오리까.” 이제 그들이 그리워한 것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제 그들은 들어와 하느님 면전에 있고 제단 앞에 나와 구세주의 거룩한 신비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몸을 영할 수 있게 되고 생명의 샘에서 다시 태아나 자신감을 갖고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앞장서 놀라운 성전에, 하느님의 집까지 들어가리라.” 이 하느님의 집이란 놀라운 성전인 교회입니다. 교회 안에 “축제의 모임 가운데 환희와 찬미 소리 드높이 울려 퍼집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입어 우리의 인도를 따르고자 하는 여러분은 낚시 바늘에 걸려든 작은 물고기와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하느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이 세상이라는 깊은 바다에서 끌려 올라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자연의 법칙이 바뀌었습니다. 고기는 물에서 나갈 때 죽고 말지만 사도들은 우리를 죽음에서 생명으로 이끌고자 이 세상이라는 바다에서 낚아 내었습니다. 우리가 세상에 있을 때 눈은 심연에다 두고 있었고 우리 생활은 진창 속에서 보냈습니다. 그러나 물결 속에서 끌려 나온 다음, 태양을 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참된 빛을 바라보기 시작하자 넘치는 기쁨으로 어쩔 줄 몰라 우리 영혼에게 말합니다. “내 영혼아, 하느님께 바라라. 나는 다시 그 님을 찬미하게 되리라. 내 낯을 살려 주시는 분 내 하느님을.”
응송 시편 26(27),4
◎ 오직 하나 주께 빌어 얻고자 하는 것은, * 한평생 주님의 집에 산다는 그것이로다.
○ 주님의 사랑을 누리고 그분의 성전을 우러러보며,
◎ 한평생. 주님의 집에 산다는 그것이로다.
연중 제13주간 금요일 독서기도
예수 그리스도는 인성으로 말하면 다윗의 후손으로 태어나신 분이십니다
“하느님과 사람 사이에 중재자이신 인간 그리스도 예수”, 우리 구세주는 하느님의 예정과 은총의 찬란한 빛이십니다. 인간 예수가 지니신 그 위대한 지위는 그분이 과거에 행하신 어떤 선행과 또 그분이 지니신 신앙의 공로로써 얻은 것입니까? 이 질문에 대답할 사람이 있으면 한번 대답해 보십시오. 성부와 함께 영원하신 말씀께서 한 위격 안에서 인성을 취하여 사람이 되셨는데 그 사람은 무슨 공로로 하느님의 외아드님이 되셨습니까? 그것은 인간 예수께서 이미 행하신 어떤 선행 때문이겠습니까? 또 인간 예수께서는 표현할 수 없는 탁월한 그 지위에 이르려고 어떤 선행을 하시거나 어떤 신앙을 지니시거나 또는 어떤 기도를 바치셨습니까? 인간이 아니라 하느님이신 말씀께서 이렇게 하신 것입니다. 인간 예수가 존재하기 시작할 때부터 하느님의 외아드님으로서 존재하시는 것은 하느님의 말씀께서 그 인간을 지어내시고 취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은총의 원천이 우리 머리이신 그리스도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은총은 지체들에게 그들 각각의 능력에 따라 흘러내립니다. 신자는 그 은총을 통하여 신앙의 시초부터 그리스도인이 되고 인간 예수는 같은 은총을 통하여 태어날 때부터 그리스도가 되셨습니다. 사람을 그리스도인으로 태어나게 하는 그 같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는 태어나셨습니다. 우리에게 죄 사함을 베풀어 주시는 그 같은 성령께서는 인간 예수를 온갖 죄로부터 미리 건져 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미래에 하실 이 모든 것을 이미 분명히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성인들에 대한 예정은 성인 중의 성인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가장 찬란히 빛났습니다. 진리가 말하는 것을 옳게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누가 이 예정의 교리를 부인할 수 있겠습니까? 영광의 주님 자신도 사람이 되신 하느님의 아들이신 만큼 예정되셨다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 친히 예정되셨습니다. 인성을 따라 다윗의 후손이 되실 그분은 거룩함의 영을 따라 권능으로 하느님의 아들이 되시기로 예정되셨습니다. 이 때문에 그분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동정 마리아에게서 탄생하셨습니다. 하느님이신 말씀께서 독특하고도 형언할 수 없는 방법으로 한 인간을 취하셨으므로 그분은 동시에 하느님의 아들이시오 사람의 아들이라고 참으로 또 합당히 일컬어질 수 있습니다. 말씀께서 취하신 인성으로 말미암아 사람의 아들이시고 인성을 취하신 그 하느님의 외아드님으로 말미암아 하느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가 믿는 하느님은 삼위 일체가 아니시고 사위 일체이실 것입니다.
인성이 이렇게도 위대하고 높게 이렇게도 탁월한 위치로 예정되었으므로 그보다 높은 위치를 드높여질 수 없습니다. 한편 신성은 나약한 인성을 취하시고 십자가 위에서 죽기까지 하심으로 자신을 그 이상 더 낮추실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우리의 머리가 되시기로 예정되신 것처럼 많은 수효의 우리도 그분의 지체가 되기로 예정되었습니다. 아담으로 말미암아 잃어버린 인간의 공로는 여기서 머리를 숙이고 하느님의 외아드님이신 홀로 주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승리를 얻는 하느님의 은총이 다스려야 합니다. 우리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독특한 탄생이 그분이 이미 지니신 공로에 의한 것임을 본 사람은 누구나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지체들인 우리도 그분께서 이미 지니신 공로에 인해 재생했다는 것을 알도록 힘써야 합니다.
응송 갈라 4,4-5; 에페 2,4; 로마 8,3 참조
◎ 때가 찼을 때,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시어 여자의 몸에서 나게 하시고 율법의 지배를 받게 하시어, * 율법의 지배를 받고 사는 사람을 구원해 내셨도다.
○ 한없이 자비스러우신 하느님께서는 그 크신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셔서, 당신의 아들을 죄 많은 인간의 모습으로 보내셨도다.
◎ 율법의. 지배를 받고 사는 사람을 구원해 내셨도다.
연중 제13주간 토요일 독서기도
구원의 때에 회개하십시오
여기 참석하신 분 중에 죄의 노예가 된 사람이 있다면 하느님의 참된 자녀로서 재생하도록 신앙을 통하여 준비하십시오. 죄의 비참한 노예 상태를 벗어버리고 주님을 섬기는 복된 신분을 취하여 하늘 나라의 상속을 받을 합당한 자가 되도록 하십시오. 회개를 통하여 헛된 욕망으로 썩어 가고 있는 여러분의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자신을 창조하신 분을 앎으로 새로워지는 새사람을 입으십시오. 그리고 영원한 집에 영접 받도록 신앙을 통하여 성령의 보증을 얻으십시오. 영적 날인을 받아 주님께서 여러분을 쉽게 알아보시도록 하십시오. 여러분을 위해 마련된 생명을 유산으로 받을 때가 올 때 그분의 오른편에 앉게 되도록 거룩하고 신령한 그리스도의 양 떼에 들어가십시오.
실상 지금까지 죄의 거친 옷을 입고 있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왼편에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재생의 세례를 받을 때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얻는 하느님의 은총에 아직 도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여기서 말하는 재생은 육신적인 재생이 아니라 영혼의 영신적인 재생입니다. 우리 육신은 우리 혈육의 부모에게서 태어났지만 우리 영혼은 신앙을 통하여 재생했습니다. “영은 불고 싶은 데로 붑니다.” 여러분이 합당한 자가 되고 양심이 온갖 불결과 거짓에서 벗어날 때 다음 말씀을 들을 것입니다. “너는 과연 착하고 충성스러운 종이다.” 여기에 참석하신 분 중에 누가 자신이 하느님의 은총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는 자신을 속이고 있고 은총의 가치를 모르고 있습니다. 마음과 생각을 꿰뚫어 보시는 분을 생각하여 충실하고 위선 없는 영혼을 마련하십시오.
지금 이때는 회개의 때입니다. 그렇다면 밤이건 낮이건 말과 행동으로 범한 죄를 다 고백하십시오. 하느님께서 여러분의 소원을 기뻐 들어주실 때 회개하고 구원해 주시는 날에 천상 보화를 받으십시오. 받을 은총을 더 풍성히 받을 수 있도록 여러분 자신을 깨끗이 하십시오. 죄 사함은 모든 사람이 똑같이 받지만 성령의 친교는 각자의 신앙에 비례하여 받습니다. 조금 일하면 조금 받고, 많은 일을 하면 보상도 클 것입니다. 다른 이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여러분 자신을 위해서 달려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참으로 이익 되는 것을 찾으십시오. 어떤 사람에 대해 불만이 있다면 그를 기꺼이 용서해 주십시오. 여러분은 여기에 죄 사함을 받으러 왔으니 여러분에게 잘못한 사람이 있으면 그를 용서해 주십시오.
응송 잠언 28,12; 1요한 1,9
◎ 제 잘못을 감추는 자는 잘될 리 없도다. * 제 잘못을 고백하고 거기서 손을 떼는 자는 자비를 입으리라.
○ 우리가 우리의 죄를 하느님께 고백하면, 진실하시고 의로우신 하느님께서는 우리 죄를 용서하시리라.
◎ 제 잘못을. 고백하고 거기서 손을 떼는 자는 자비를 입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