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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말씀과 묵상

연중 제14주일 독서기도 하느님이 받아들이시는 제물은 뉘우치는 마음입니다

작성자은총의샘|작성시간26.06.12|조회수34 목록 댓글 0

연중 제14주일 독서기도

하느님이 받아들이시는 제물은 뉘우치는 마음입니다

 

다윗은 고백합니다. “나는 내 죄를 알고 있삽나이다.” 내가 내 죄를 알고 있사오니, 하느님이시여, 내 죄를 잊어 주소서. 우리는 죄 없는 착한 생활을 하고 있다고 조금이라도 가정해서는 안됩니다. 우리 생활이 칭송받을 만한 때에도 용서받아야 할 죄가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한편 희망이 없는 사람들도 자신의 죄에 무관심하면 할수록 타인의 죄에 더 많은 관심을 쏟아 넣습니다. 그들은 타인의 잘못을 고쳐 줄 마음으로 그 잘못을 찾는 것이 아니고 그것을 비판하려고 찾는 것입니다. 그들은 잘못을 자기 탓으로 돌릴 줄 모르고 타인의 잘못을 곧잘 나무랍니다. 이것은 다윗이 우리에게 보여준 기도하는 법도 하느님과 화해하는 방법도 아닙니다. 다윗은 고백했습니다. “나는 내 죄를 알고 있사오며, 내 죄 항상 내 앞에 있삽나이다.” 다윗은 다른 사람의 죄에 관심을 쏟지 않았습니다. 그는 마음의 눈을 자신에게로 돌려 겉으로가 아니라 내심으로 깊이 들어갔습니다. 그는 변명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용서를 청할 때 교만하게 청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은 하느님과 화해하기를 원합니까? 하느님께서 여러분과 화해하시도록 여러분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도록 하십시오. 같은 시편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제사는 당신이 즐기지 않으시고 번제를 드려도 받지 아니하시리이다.” 그렇다면 제사를 바치지 말아야 한다는 말씀입니까? 어떤 번제를 드린다 해도 하느님과 화해할 수 없기 때문에 아무 것도 바치지 말아야 한다는 말씀입니까? 시편의 말씀은 그런 뜻이 아닙니다. “제사는 당신이 즐기지 않으시고 번제를 드려도 받지 아니하시리이다.” 시편을 계속 읽어 내려가며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하느님, 나의 제사는 통회의 정신, 하느님은 부서지고 낮추인 마음을 낮추 아니 보시나이다.” 여러분은 이제 이전에 바친 것을 포기하고 앞으로 바쳐야 할 것을 찾아냈습니다. 여러분은 이전에 옛 조상들처럼 제사라고 하는 양의 희생 제물을 바쳤습니다. “그러나 제사는 하느님이 즐기지 않으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이전의 제사를 즐기지 않으시고 어떤 새로운 제사를 원하고 계십니다.

다윗은 말합니다. “번제를 드려도 받지 아니하시리이다.” 하느님께서 번제를 즐기지 않으신다고 해서 여러분이 제사를 바치지 않아도 된다는 말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느님, 나의 제사는 통회의 정신, 하느님은 부서지고 낮추인 마음을 낮추 아니 보시나이다.” 여러분은 이제 바칠 제물을 갖고 있습니다. 이 제물을 양 떼에서 고를 필요가 없습니다. 향을 가져오려고 배를 장만하여 먼 지방까지 항해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느님이 즐겨 하시는 것을 여러분의 마음에서 찾아야 합니다. 마음이 부서지고 낮추어져야 합니다. 그런데 마음이 부서지면 그것이 소멸해 버리리라고 걱정합니까? 여기에 있는 말씀을 들으십시오. “하느님, 내 마음을 깨끗이 만드시고, 내 안에 굳센 정신을 새로 하소서.” 따라서 마음을 깨끗이 만들도록 먼저 불순한 마음을 부숴 버려야 합니다.

우리는 죄를 범할 때 하느님께서 죄를 싫어하시기 때문에 우리 자신에 대해서도 불쾌감을 가집시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죄가 없을 수 없기 때문에 하느님이 싫어하시는 것은 우리들도 싫어한다는 이 한 가지 점에서 하느님처럼 됩시다. 이렇게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싫어하시는 것을 우리도 싫어한다면 적어도 부분적으로라도 하느님의 뜻과 일치될 것입니다.

응송 시편 50(51),12

내 죄 내 육신에 화살처럼 박혀 있나이다. 내 주 하느님, 그 죄가 내게 상처를 주기 전에, * 참회의 약으로 나를 고쳐 주소서.

하느님, 내 마음을 깨끗이 만드시고, 내 안에 굳센 정신을 새로 하소서.

참회의. 약으로 나를 고쳐 주소서.

 

 

 

 

연중 제14주간 월요일 독서기도

누구나 자기 개인에게 이익 되는 것보다 전체에게 이익 되는 것을 찾아야 합니다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거룩한 사람과 함께하라. 그런 사람과 함께하는 사람은 거룩해지리라.” 또 다른 데에는 이런 말씀도 있습니다. “무죄한 사람과 함께하면 무죄한 사람이 되고, 뽑힌 자와 함께하면 뽑힌 자가 되며, 악한 자와 함께 하면 악한 자가 되리라.” 우리는 무죄하고 의로운 사람들과 함께합시다. 그들은 하느님께서 뽑으신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왜 여러분 가운데 투쟁과 분노와 불화와 분열과 싸움이 있어야 되겠습니까? 우리 모두 같은 하느님과 같은 그리스도를 모시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받은 은총의 영은 같은 영이 아니며, 그리스도의 부르심도 같은 부르심이 아닙니까? 왜 그리스도의 지체들을 찢고 또 산산이 파괴해 버려야 합니까? 왜 그리스도의 신비체를 거슬러 불화를 조장해야 합니까? 왜 우리가 서로 지체라는 것을 잊어버렸습니까? 그 정도로 이성을 잃었단 말입니까?

우리 주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남을 죄짓게 하는 사람은 참으로 불행하다. 이 보잘것없는 사람들 가운데 누구 하나라도 죄짓게 하는 사람은 그 목에 연자 맷돌을 달고 바다에 던져서 죽는 편이 오히려 나을 것이다.” 여러분의 불화는 많을 사람을 죄짓게 했고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실망의 씨를 뿌려 그 마음이 흔들리게 하며 우리 모두가 슬픔에 빠지게 했지만 아직도 분열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복된 사도 바오로의 편지를 손에 잡으십시오. 그는 자신의 초기 복음 선포 시절에 여러분에게 무어라고 썼습니까? 그가 성령의 영감을 받아 자기 자신과 게파와 아폴로에 대해서 여러분에게 썼을 그 당시에 벌써 여러분 가운데 분열의 기미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때의 분파는 오늘보다는 덜 죄스러웠습니다. 여러분이 편들은 이 세 분들 가운데 두 분은 지극히 높은 명성을 지닌 사도들이었고 세 번째의 분은 사도들이 승인한 사람이었습니다.

이 사태를 신속히 종결지읍시다. 주님 앞에 무릎을 꿇고 그분께서 우리와 인자로이 화해하시고 우리를 다시금 영예롭고 정결한 초기의 형제적 사랑의 유대로 되돌려 주시도록 눈물을 흘리며 주님께 간절히 청합시다. 성서에 기록되어 있는 것과 같이 이것은 생명으로 이끄는 정의의 문입니다. “너희는 열어라, 정의의 문을. 그리로 들어가서 주께 감사드리리라. 주님의 문이 바로 여기 있으니, 의인들이 이리로 들어가리라.” 열려 있는 문은 많지만, 정의의 문은 그리스도라는 문입니다. 그 문 안으로 들어가 모든 것을 사랑과 평화 속에 행하면서 그 발걸음을 거룩함과 정의의 길로 이끄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여러분 중에 충실한 사람이나 교리를 가르칠 능력을 가진 사람이나 현명하게 설교할 수 있는 사람이나 정결하게 사는 사람이 있으면, 그는 위대할수록 더 겸손해져야 하고, 자기 개인이나 이익 되는 것보다 전체에게 이익 되는 것을 찾아야 합니다.

응송 1고린 9,19a. 22; 29,15-16a

나는 어느 누구에게도 매여 있지 않는 자유인이지만, 스스로 모든 사람의 종이 되었도다. 약한 사람들을 대할 때에는 약한 사람이 되었도다. * 이와 같이 내가 어떤 사람을 대하든지 그들처럼 된 것은 그들 중 다만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기 위해서였도다.

나는 소경에게는 눈이었고, 절뚝발이에게는 다리였으며, 가난한 이들의 아버지였도다.

이와.같이 내가 어떤 사람을 대하든지 그들처럼 된 것은 그들 중 다만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기 위해서였도다

 

 

 

연중 제14주간 화요일 독서기도

양 우리 밖에 있는 사람들도 그들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우리 형제들입니다

 

형제 여러분, 여러분이 무엇보다 먼저 사랑을 보여 주기를 권고합니다. 여러분 서로에게뿐만 아니라 아직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외교인이건 우리에게서 갈라져 우리와 함께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고백하지만 그분의 몸에서 떨어져 나간 이들이건 양 우리 밖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도 그 사랑을 보여주기 바랍니다. 형제들이여, 그들을 우리 형제들처럼 마음 아파합시다. 그들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여하튼 그들은 우리 형제들입니다. 그들이 하느님을 우리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을 중지하게 되면 그때에만 우리 형제가 아니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언자가 어떤 사람에 대해 말했습니다. “너희는 우리 형제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거든, ‘아니다, 우리는 너희 형제들이다.’ 하고 대답하여라.” 예언자는 누구를 두고 이 말을 하였겠습니까? 외교인들입니까? 아닙니다. 성서와 교회 관습에 따라 외교인들을 형제라 부르지 않습니다. 그러면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던 유다인들을 두고 이 말을 하였겠습니까? 바오로 사도의 글을 읽으면 아시겠지만 그는 다른 수식어를 붙이지 않고 형제들이라고 말할 때 그리스도인을 뜻하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사도는 말합니다. “어떻게 우리가 형제를 심판할 수 있으며 멸시할 수 있겠습니까?” 또 다른 데서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은 도리어 서로 억울하게 해주고 속여먹습니다. 더구나 형제들끼리 그런 짓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보고 너희는 우리 형제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우리를 외교인이라고 부릅니다. 이 때문에 자기네들이 베푸는 세례가 우리에게는 없다고 말하면서 우리에게 다시 세례를 베풀고 싶어합니다. 우리가 자기네들의 형제라는 것을 부인하는 이유가 여기 있고 또 그들의 오류도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나 예언자는 왜 우리를 보고 그들에게 너희는 우리 형제들이다.’라고 대답하라.”고 말합니까? 그들이 베푸는 세례를 우리가 반복하지 않는 세례와 같은 것으로 인정하기 때문이 아닙니까? 그들은 우리 세례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그들의 형제라는 것을 부인합니다. 한편 우리는 그들의 세례를 반복하지 않고 오히려 우리 세례와 같은 것이라 인정하기 때문에 그들을 보고 너희는 우리 형제들이다.”라고 말합니다.

만일 그들이 우리에게 무엇 때문에 우리를 찾고 왜 우리를 원하느냐?”고 묻는다면 우리는 너희가 우리 형제들이기때문이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들은 또 이렇게 반응을 보일지 모릅니다. “가버려라. 우리는 너희와 아무 관계가 없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분명히 그들과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같은 그리스도를 고백하고 같은 몸에 속하며 같은 머리 아래 있어야 합니다.

형제 여러분, 당신의 젖으로 우리를 기르시고 당신의 빵으로 견고하게 해주시는 분의 사랑 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자비를 두고 여러분께 권고합니다. 우리가 그들에게 위대한 사랑과 풍성한 자비를 보여 줄 때가 왔습니다. 하느님께서 그들이 제 정신으로 돌아오게 하시고 바른 이성을 되찾게 하시어 그들이 진리를 반대할 논거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시기를 간청합시다. 그들에겐 반감의 약점 밖에 아무 것도 없습니다. 이 반감이란 강하다고 생각하면 할수록 그만큼 더 약합니다. 연약한 사람과 세속적으로 지혜로운 자와 육적인 사람을 위하여 다시 간청합니다. 그들은 우리 형제들입니다. 그들의 성사는 우리와 함께 거행되지는 않지만 우리가 거행하는 성사와 같습니다. 그들이 하는 아멘은 우리와 함께 하지는 않지만 같은 아멘입니다. 여러분은 그들을 위한 사랑을 모두 쏟아 하느님께 기도하십시오.

응송 에페 4,1. 3. 4

너희에게 권고하노니, 하느님께서 너희를 불러 주신 그 목적에 합당하게 살아가라. * 성령께서 평화의 줄로 너희를 묶어 하나가 되게 하여 주신 것을 그대로 보존하도록 노력하라.

그리스도의 몸도 하나이며 성령도 하나이도다. 이와 같이 하느님께서 너희를 당신의 백성으로 부르셔서 안겨 주시는 희망도 하나이도다.

성령께서. 평화의 줄로 너희를 묶어 하나가 되게 하여 주신 것을 그대로 보존하도록 노력하라.

 

 

 

 

 

연중 제14주간 수요일 독서기도

감사제

 

이렇게 감사 드릴 것입니다. 먼저, 잔에 대해 감사 드릴 것입니다. “우리 아버지시여, 당신 종 예수를 통하여 우리에게 알게 해주신 당신 종 다윗의 거룩한 포도에 대해 감사 드리나이다. 세세에 영광받으소서.” 다음에 쪼갠 빵에 대해 감사 드릴 것입니다. “우리 아버지시여, 당신의 종 예수를 통하여 우리에게 알려 주신 생명과 지식에 대해 감사 드리나이다. 세세에 영광받으소서. 이 빵이(만들어진 밀 알들이) 산에 흩어져 있었지만 한데 거두어 하나가 된 것처럼 당신의 교회도 땅 극변에서부터 당신의 나라로 모이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당신께 세세에 영광과 권세가 있나이다.”

주님의 이름으로 세례받은 사람들 외에는 아무도 여러분의 감사제에서 먹고 마시지 말아야 합니다. 이 점에 대해 주님께서는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을 먹고 마신 후에 이렇게 감사 드릴 것입니다. “거룩하신 아버지시여, 우리 마음 안에 거하게 하신 당신의 거룩한 이름과 당신 종 예수를 통하여 우리에게 알려 주신 지식과 신앙과 불사 불멸에 대해 감사 드리나이다. 세세에 영광받으소서.

전능하신 주여, 당신께서는 당신 이름의 영광을 위해 만물을 지어내셨나이다. 당신께서는 사람들에게 음식과 음료를 주시어 그들이 그것을 먹고 마시며 주님께 감사 드리게 하셨나이다. 그리고 우리에게 당신 종을 통하여 영신적 음식과 음료, 그리고 영원한 생명을 베풀어 주셨나이다. 주님은 전능하시기에 우리는 무엇보다 주님께 감사 드리나이다. 세세에 영광받으소서.

주여, 당신 교회를 기억하시어 온갖 악에서 보호하시고 당신 사랑 안에서 그를 완성하소서. 교회를 거룩하게 하시고 당신께서 마련하신 하늘 나라로 사방으로부터 그를 모아들이소서.

영광과 권세가 세세에 당신께 있나이다. 당신 은총이 임하게 하시고 이 세상이 사라지게 하소서. 다윗의 하느님께 호산나! 거룩한 이는 앞으로 나오십시오. 그렇지 못한 이는 회개하십시오. 오소서, 주 예수여, 아멘.”

주님의 날에 함께 모여 여러분의 제사가 순수하도록 먼저 죄를 고백한 다음 빵을 떼고 감사제를 바치십시오. 그러나 여러분의 제사가 더럽혀지지 않도록 자기 벗과 다툼이 있는 사람은 먼저 그 벗과 화해하지 않으면 여러분의 집회에 참석시키지 마십시오. 주님은 이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세세 대대에 방방 곡곡에서 나에게 깨끗한 제사를 바쳐라. 나는 위대한 왕이다. 주님이 말한다. 내 이름은 뭇 민족 사이에 크게 떨치고 있다.”

응송 1고린 10,16-17

우리가 감사를 드리면서 그 축복의 잔을 마시는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피를 나누어 마시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 그 빵을 떼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을 나누어 먹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빵을 하나이고 우리 모두가 그 한 덩어리의 빵을 나누어 먹는 사람들이니, 비록 우리가 여럿이지만 모두 한 몸이도다.

그 빵을. 떼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을 나누어 먹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연중 제14주간 목요일 독서기도

하느님의 성전은 거룩하고 여러분은 이 하느님의 성전입니다

 

나와 아버지는 그를 찾아가 그와 함께 살 것이다.” 오시는 분께 여러분의 문을 열고 영혼을 개방하며 내심을 넓히십시오. 그러면 단순성의 재화와 평화의 보화와 은총의 감미로움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또 이렇게 마음을 넓히고 모든 사람을 비추어 주는영원한 빛의 태양을 맞으러 나가십시오. 주님의 참 빛은 모든 이 위에 빛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누가 자기 창문을 닫아 놓는다면 그는 그 영원한 빛을 받지 못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마음의 문을 닫아 버린다면 그리스도는 들어오시지 못하고 밖에 계실 것입니다. 주님은 원하시기만 하신다면 들어가실 수 있지만 초대받지 않은 데에 밀고 들어가고 싶어하지 않으시며 마음 내키지 않는 사람에게 강요하시고자 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는 동정녀의 몸에서 태어나시어 온 세상의 만물이 빛나게 하시고 모든 이에게 빛을 주시고자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빛은 밤이 끼어들지 않는 영원한 빛의 광채를 그리워하는 이들만이 보게 됩니다. 우리가 매일 보는 태양은 밤의 어둠이 뒤쫓지만 정의의 태양은 지는 법이 없습니다. 사악이 지혜를 뒤쫓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문을 두드려 주시는 사람은 복됩니다. 우리의 문은 바로 신앙입니다. 신앙이 견고하면 온 집은 견고해지고 신앙이라는 이 문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들어오십니다. 교회는 아가에서 말합니다. “사랑하는 이가 부르는 소리, 문을 두드린다.” 문을 두드리며 안으로 들어오고 싶어하시는 분의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내 누이, 내 사랑아, 문을 열어라. 내 비둘기, 티없는 나의 사람아, 내 머리는 이슬에 함빡 젖었다. 머리털도 밤이슬에 함빡 젖었다.”

그런데 말씀이신 하느님은 언제 여러분의 문을 더 조급히 두드리십니까? “머리털이 밤이슬에 함빡 젖었을때입니다. 실상 주님은 유혹 당하고 환난 중에 있는 사람들이 고통에 눌려 넘어지지 않도록 그들을 찾아 주시고자 하십니다. 그분의 육신이 수고 가운데 있을 때 그분의 머리는 이슬로 함빡 젖어 물방울이 흘러내립니다. 신랑이 찾아오실 때 문이 닫혀 있어 그분께서 그냥 되돌아가시지 않도록 깨어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잠들어 있고 또 마음이 깨어 있지 않다면 신랑은 문을 두드리지 않고 그냥 가버리십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마음이 깨어 있으면 그분은 문을 두드리시면서 열어 달라고 간청하실 것입니다.

우리 영혼에는 문이 있습니다. 또 성서의 말씀에 의하면 성문도 있습니다. “성문들아, 너희의 머리를 들라. 영원한 문들아, 활짝 열려라. 영광의 임금님이 듭시려 하시나니.” 여러분이 이 신앙의 성문을 기꺼이 들어올린다면 영광의 임금님은 당신 수난의 전리품을 가지고 여러분 안에 들어오실 것입니다. 정의도 성문을 갖고 있습니다. 주 예수께서 당신 예언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열어라, 정의의 문을.” 그러므로 문을 가지고 있는 영혼도 있고 성문을 가지고 있는 영혼도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오셔서 문을 두드리시고 성문도 두드리십니다. 그분께 문을 여십시오. 그분은 들어오고 싶어하시며 신부가 깨어 있기를 원하십니다.

응송 묵시 3,20; 마태 24,46

보라, 내가 문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 나는 그 집에 들어가서 그와 함께 먹고, 그도 나와 함께 먹게 되리라.

주인이 돌아올 때에 자기 책임을 다하고 있다가 주인을 맞이하는 종은 복되도다.

나는. 그 집에 들어가서 그와 함께 먹고, 그도 나와 함께 먹게 되리라.

 

 

 

 

연중 제14주간 금요일 독서기도

우리는 사랑의 화목 가운데 하느님의 계명을 지킨다면 참으로 복됩니다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사랑은 얼마나 위대하고 놀라운 것입니까! 사랑의 완전성을 아무도 표현할 수 없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것을 지닐 능력을 베풀어 주신 사람이 아니라면 그 사랑 안에 거처할 사람이 누구이겠습니까? 우리가 온갖 인간적 편애에서 벗어나 깨끗하여지고 참된 사랑 안에 거할 수 있도록 주님의 자비를 구하고 간청합시다. 아담으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세대는 다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은총으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완성에 이른 이들은 의인의 지위를 얻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나라가 임하실 때 나타날 것입니다. 성서에 내 백성아, 어서 너의 골방으로 들어가거라. 나의 노여움이 풀릴 때까지 잠깐 숨어 있어라.” “나 이제 무덤을 열고 내 백성이었던 너희를 그 무덤에서 끌어올리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우리는 사랑의 화목 가운데 하느님의 계명을 지킨다면 참으로 복됩니다. 그때에 우리 잘못은 사랑을 통하여 사함을 받을 것입니다. 성서는 말합니다. “복되다, 그 죄 사하여지고 그 허물 씻어진 이여, 주께서 탓을 아니 돌리시고, 마음에 거짓이 없는 사람이여, 복되도다.” 이 성서 말씀이 복되다고 말하는 사람은 하느님께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선택하신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께 세세 대대 영광이 있으소서. 아멘.

 

 

 

우리가 우리 원수의 유혹을 받아 죄를 범한 일이 있다면 모든 죄에 대해 용서를 청합시다. 그리고 지금까지 반항과 분열을 조장시켜 온 이들은 우리의 공동 희망을 생각해야 합니다. 참으로 하느님께 대한 두려움과 사랑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이웃이 고통당하는 것을 보기보다는 자신이 고통당하는 것을 원하고 우리가 이어받은 아름답고 올바른 화목을 깨기보다는 욕먹는 것을 더 원합니다. 사람에게는 자기 마음을 굳게 다지기보다는 자기 잘못을 솔직히 시인하는 것이 더 낫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관대하고 자비로우며 사랑이 충만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다음과 같이 말해야 합니다. “우리 가운데 반항과 불화와 분열이 생긴 것이 나 때문이라면 나는 물러나 공동체가 원하는 데에 가서 공동체가 결정하는 대로 하겠습니다. 그래야 그리스도의 양떼는 뽑히운 원로들과 함께 평화롭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사람은 그리스도 안에서 큰 영광을 얻고 어느 곳에서 나 영접받을 것입니다. “땅이며 그 안에 가득 찬 것이 모두 하느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사는 사람은 이렇게 하고 있고 또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을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응송 1요한 4,21; 마태 22,40

우리는 하느님에게서 이 계명을 받았도다. *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는 자기 형제들도 사랑해야 하는도다.

모든 율법과 예언서는 이 두 계명으로 요약할 수 있도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는 자기 형제들도 사랑해야 하는도다.

 

 

 

 

연중 제14주간 토요일 독서기도

주 예수 그리스도는 참 솔로몬이시다

솔로몬은 장차 올 교회와 주님의 몸의 모형과 형상으로 주님께 성전을 건립해 드렸습니다. 이 때문에 주님은 복음서에서 이 성전을 허물어라.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옛 솔로몬의 성전을 건립한 것과 같이 평화의 참된 건설자이시고 참 솔로몬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친히 성전을 건립하셨습니다. “솔로몬이라는 이름은 평화의 건설자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바오로 사도가 말하는 것처럼 평화의 참된 건설자는 그리스도뿐이십니다. “그리스도야말로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그분은 두 민족을 화해시켜 하나로 만드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반대 방향에서 오는 두 개의 벽을 당신 안에서 연결시키신 평화의 참된 건설자이십니다. 즉 그분께서는 할례받은 사람들 가운데서 온 신자들을 이어 주는 모퉁잇돌이 되심으로 평화의 참된 건설자가 되셨습니다.

다윗과 바쎄바의 아들이고 이스라엘의 왕이었던 옛 솔로몬은 평화의 참된 건설자이신 그리스도의 형상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솔로몬이 하느님의 집을 지었을 때 그 성전을 지은 사람은 옛 솔로몬이었다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시편은 새 솔로몬이 그것을 지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집을 아니 지어 주시면 그 짓는 자들 수고가 헛되리로다.” 그 집을 짓는 사람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 집을 짓는 데 많은 이들이 일하고 있지만 그리스도께서 그들과 함께 지어 주시지 않으면 그 짓는 자들 수고가 헛됩니다.” 그 집을 짓는 데 일하는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교회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전파하고 하느님의 성사를 집행하는 모든 사람들입니다. 우리 모두는 현재 여기저기 뛰어다니면서 수고하고 집을 짓고 있습니다. 우리 앞 세대에도 다른 이들이 뛰어다니면서 수고하고 집을 지었습니다.

그러나 주께서 집을 아니 지어 주시면 그 짓는 자들 수고가 헛될 것입니다.” 사도들은 자기들이 지은 집이 무너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것을 보고 바오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이 날과 달과 계절과 해를 숭상하기 시작했다고 하니 여러분을 위한 내 수고가 허사로 돌아가지나 않았나 염려됩니다.” 바오로는 자기가 집을 짓는데 주께서 내적으로 일하시는 것을 알고 자기가 그들 가운데서 별 효과 없이 일했다는 것을 깨닫고는 그들에게 불만을 표시합니다. 우리는 외적으로 말하고 주님은 내적으로 지으십니다. 우리는 여러분이 우리 말을 듣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지만 사람의 생각을 꿰뚫어 보시는 그분만이 여러분의 생각을 보십니다. 그분은 건설하시고 그분은 권고하시며 그분은 두려움을 불어넣으시고 그분은 마음을 높이시며 그분은 여러분의 마음을 신앙으로 이끄십니다. 우리 역시 일꾼으로 일할 뿐입니다.

응송 요한 2,19

성전 건립이 끝나자 주님의 영광이 성전 뜰을 가득 채우고 왕은 기쁨에 넘쳐 외쳤도다. * 이스라엘의 주 하느님, 찬미 받으소서. 당신은 나의 조상 다윗에게 하신 약속을 모두 이루어 주셨도다.

이 성전을 헐어라.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리라.

이스라엘의. 주 하느님, 찬미 받으소서. 당신은 나의 조상 다윗에게 하신 약속을 모두 이루어 주셨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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