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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말씀과 묵상

[교회상식 더하기] (22) 방향이 다른 십자성호도 있다? 가톨릭교회는 왼쪽부터, 정교회는 오른쪽부터

작성자은총의샘|작성시간26.06.13|조회수35 목록 댓글 0

[교회상식 더하기] (22) 방향이 다른 십자성호도 있다?

가톨릭교회는 왼쪽부터, 정교회는 오른쪽부터

 

아마 신자 중에 성호경을 모르는 분은 없으시리라 생각합니다. 주요기도문 중 가장 먼저 배우는 기도이자, 가장 짧은 기도로, 신자들이 모든 기도와 일을 시작하고 마칠 때 바치는 중요한 기도기 때문입니다.

아시는 것처럼 성호경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이라 말하며 오른손 손가락을 모아 이마, 가슴, 왼쪽 어깨, 오른쪽 어깨 순으로 크게 십자성호를 긋고 두 손을 모으는 기도입니다. 그런데 혹시 왼쪽 어깨와 오른쪽 어깨의 순서가 바뀐 십자성호을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대표적으로 정교회의 십자성호가 그렇습니다. ‘성호경은 가톨릭교회만 바치는 기도 아닌가?’하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성호경이라 하면 가톨릭교회의 기도라는 인식이 강하지만, 정교회, 성공회, 루터교회 등도 성호경을 바칩니다.

정교회의 십자성호는 이마, 가슴, 오른쪽 어깨, 왼쪽 어깨 순서입니다. 순서만 다른 것이 아닌데요. 정교회는 오른손의 엄지, 검지, 중지 세 손가락을 모으고 약지와 소지는 접은 상태로 성호를 긋습니다. 모은 세 손가락은 삼위일체를, 접은 두 손가락은 예수님의 인성과 신성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사실 이 방식은 정교회만의 방식은 아닙니다. 비잔틴 전례를 사용하는 일부 동방 가톨릭교회에서도 이 십자성호로 성호경을 바칩니다.

왜 다른 것일까요? 십자성호가 전해 내려오면서 다르게 변화한 까닭입니다.

십자성호는 초대교회부터 내려오는 기도입니다. 초기에는 이마에 십자가를 긋는 형태의 작은 십자성호를 사용했고, 오늘날 성호경을 바칠 때 사용하는 큰 십자성호는 5세기경부터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십자성호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넘어가는 형태였다고 합니다. 그러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넘어가는 십자성호도 함께 사용됐는데요. 변하기 시작한 이유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신자들이 사제의 십자성호를 거울처럼 따라했다거나, ‘오른쪽을 향한다는 상징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13세기 무렵 가톨릭교회에서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긋는 십자성호가 보급됐습니다. 인노첸시오 3세 교황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긋는 십자성호를 두고 우리가 비참함에서 영광으로 건너가야 하기 때문이며, 그리스도께서 죽음에서 생명으로, 저승에서 낙원으로 건너가셨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성경 안에서 오른쪽은 하느님의 권능과 영광, 선택받은 이들의 자리를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세례를 받은 우리는 삼위일체 하느님의 이름을 부르는 이 거룩한 기도를 바칩니다. 십자성호는 그리스도께 속하게 될 사람이 받는 그리스도의 날인을 가리키는 것이며, 그리스도께서 당신 십자가로 우리에게 얻어 주신 구원의 은총을 의미하고 우리를 유혹과 어려움 가운데서 우리를 굳세게해줍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1235·2157항 참조) 여러분은 성호경을 얼마나 자주 바치시나요? 우리의 하루를, 매 순간을 성호경으로 시작하며 삼위일체 하느님의, 예수님의 십자가 은총을 가득 받으시길 바랍니다.

 

 

 

 

 

 

[‘성서와함께가꾸는 기도의 정원] (1) 장미

성모님 품에서 묵주기도가 된 장미

 

성모 성월, 가장 고운 꽃 모아 성전을 꾸밀 수 있는 제일 좋은 시절이다. 그 고운 꽃들 중 기도의 정원연재의 문을 여는 꽃으로 장미를 소개한다. 5월에 찬란하게 만발하는 꽃의 여왕’. ‘하늘의 여왕이신 성모님께 장미만큼 잘 어울리는 꽃이 또 있을까.

장미는 구약 성경에서 처음 언급된 이래 지난 수백 년 동안 그리스도교 문화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중요한 꽃으로 자리매김했으며, 특히 성모 마리아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꽃이 되었다. 오래된 전설에 따르면 인간이 타락하기 전에는 장미 줄기에 가시가 없었으나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나면서부터 줄기에서 가시가 돋았다고 한다.

동정녀 마리아는 원죄에 물들지 않은 존재이므로 가시 없는 장미라고 불렸고, 이에 화가들 사이에서는 장미와 성모 마리아장미 덩굴 아래 성모 마리아를 주제로 한 작품을 그리는 것이 한때 크게 유행했다. 장미는 원죄 없는 잉태, 성모 승천, 천상 모후의 관을 받는 마리아를 그린 성화에도 많이 등장했으며, 특히 성모 승천을 묘사한 작품에서는 마리아의 빈 무덤 앞에 백합과 함께 그려지곤 했다.

인류는 약 2500~3000년 전부터 장미를 재배하기 시작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장미는 야생 덩굴장미의 일종인 개장미(Rosa canina). 이 장미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풍성한 화형의 현대 품종 장미와 달리 꽃잎이 다섯 장뿐인 수수한 외모의 홑꽃으로, 지금도 독일 힐데스하임 대성당 뒷벽에서 볼 수 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대성당이 연합군으로부터 폭격을 당했을 때도 이 장미 뿌리는 잔해 속에서 살아남아 꽃을 피웠다.

오랜 세월에 걸쳐 다양한 종·교배종·품종이 탄생한 만큼 장미는 색감이나 화형, 크기가 다양해 절화로서의 활용도가 높다. 가장 보편적이고 무난한 꽃 중 하나이기에, 장미 없이는 제대를 비롯한 성전 장식이나 꽃 봉헌을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다. 물리적인 봉헌은 물론 영적인 봉헌도 마찬가지다. 수줍게 오므린 꽃봉오리처럼 동글동글한 묵주 알을 손으로 굴리며 성모님께 장미를 한 송이씩 바치는 것이 로사리오(rosario) 기도, 즉 묵주기도로, 로사리오는 장미 정원’‘장미 화환을 뜻하는 라틴어 로사리움(rosarium)에서 유래한 단어다.

장미는 꽃 색깔마다 상징하는 바가 다르다. 붉은색은 열정과 사랑, 흰색은 순수함 또는 죽음, 복숭아색은 겸손과 순결, 분홍색은 은총과 행복, 인공적인 염색으로 만들어낸 파란색 장미는 기적을 상징한다. 물론 성전 장식에 활용하는 경우에는 전례색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한다. 결국 모든 꽃은 그 자체로 메시지를 전달하기보다 그 꽃을 하느님께 드리는 나의 진심과 그 순간의 맥락 속에서 의미가 완성된다.

 

 

 

 

[‘성서와함께가꾸는 기도의 정원] (2) 작약

 

판테온 꽃비, 성령의 불꽃

성당 회중석에 서서 오소서 성령이여를 듣고 있다고 상상해 보자. 성가가 절정에 이른 순간 성령의 불꽃을 상징하는 붉은 작약 꽃잎이 공중에 흩날리고, 성령이 영혼을 어루만지는 듯한 기분에 온몸에 전율이 인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지 40일째 되는 날은 주님 승천 대축일(지난 주일), 그로부터 10일 뒤는 주님의 성령이 지상에 내려온 것을 기념하는 성령 강림 대축일(오늘)이다. 성령 강림 대축일은 영어로 펜테코스트(Pentecost)’라고 하는데, 이는 ‘50번째라는 뜻의 그리스어 πεντηκοστή(펜테코스테)’에서 유래했다.

부활 시기를 마무리하는 성령 강림 대축일은 교회의 시작을 알리는 날이기도 하다. 이 거룩하고 특별한 대축일날 로마 판테온에서는 돔 한가운데 뚫린 거대한 천창(天窓)에서 꽃비를 내리는 전통이 10세기부터 이어져 오고 있는데, 이때 흩뿌려지던 꽃이 작약이다. 오늘날에는 주로 붉은 장미 꽃잎을(때로 흰색 꽃잎을 섞어) 뿌리는데, 이 꽃비는 사도행전 2장에서 언급되는 불꽃 모양의 혀를 형상화한 것이다.

작약이 이같이 사용된 데는 성령 강림 대축일이 있는 5월에 만개하는 개화 습성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에 독일을 비롯한 서유럽권 국가에서는 작약을 성령 강림절 장미(Pentecost rose)’라고 부른다. 5월은 성모 성월이므로 성모 마리아의 장미(Our Lady’s rose)’로도 불린다.

작약의 라틴어 속명 페오니아(Paeonia)’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치유의 신 페온(Paeon)’이 어원으로, 작약의 씨앗과 뿌리는 지난 수백 년 동안 약재로 널리 쓰였다. 서양의 경우 작약이 약초로서 재배된 기록은 무려 1세기부터 존재하지만, 화려한 외형의 겹꽃 품종을 앞세워 관상용으로 본격적으로 재배된 것은 그보다 한참 뒤인 18~19세기의 일이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작약이 약용으로 유익할 뿐만 아니라 악령으로부터 사람을 보호하는 힘이 있다고 생각했다.

작약은 하느님을 향한 열렬한 사랑을 상징하므로 흰색·붉은색·분홍색 등 색에 상관없이 대부분의 성경 정원이나 기도 공간에 잘 어울린다. 꽃은 분홍색이 향기가 가장 진하고, 색깔이 진할수록 향기가 약해진다. 제철인 5월에는 성전 안 꽃꽂이에도 자주 활용하는데, 겹겹이 풍성하고 소담하게 피는 작약의 모습은 늘 충만함을 상기시킨다. 화려한 작약의 풍성한 모습에서 가장 좋은 위로자, 영혼의 기쁜 손님을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교회상식 더하기] (20) 성모송은 최후의 수단’?

죽을 때 구원 청하는 삶의 진정한 최후의 수단

 

헤일 메리(Hail Mary)’마지막으로 던져보는 승부수’, 곧 최후의 수단이라는 의미의 관용적 표현입니다. 그리고 원래는 성모송의 첫 구절이자, 성모송을 일컫는 말이지요.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으로 시작하는 우리말 성모송을 떠올리면 ‘‘헤일은총이 가득하다는 뜻일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요. 사실 헤일 메리는 라틴어 아베 마리아(Ave Maria)’에 해당합니다. 순서대로 우리말로 옮기면 기뻐하소서 마리아님이 됩니다.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는 우리말 어순에 맞춰 번역한 것입니다.

성모송은 오랜 역사를 지닌 기도입니다. 기뻐하소서 마리아님이라는 기도 문구는 3세기 무렵부터 사용됐습니다. 나자렛의 성모영보성당 벽에서는 3세기 초에 새겨진 ΧΕ ΜΑΡΙΑ라는 문구가 발견됐는데요. 바로 그리스어로 기뻐하소서 마리아님을 뜻하는 카이레 마리아(Χαρε Μαρία)’의 약자입니다.

기뻐하소서 마리아님이라는 성모송의 첫 부분은 예수님의 잉태를 전하기 위해 성모님을 찾아온 천사의 인사에서 따온 기도문입니다. 성경에는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루카 1,28)라고 번역됐습니다. 이미 6세기경에는 이 천사의 인사말로 성모님을 찬양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여기에 예수님을 잉태한 성모님과 만난 엘리사벳의 인사말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루카 1,42)가 이어집니다. 이렇게 성모님을 향한 두 찬송이 모여 성모송을 이룹니다.

우리말로 성모송을 바칠 때 보통 주님께서 함께 계시니 여인 중에 복되시며를 한 호흡에 기도하곤 하기 때문에, 마치 주님께서 함께 계시기 때문에성모님께서 여인 중에 복되시구나!”하고 생각하기 쉬운데요. 그 말 자체가 틀린 것은 아닙니다만, 실은 주님께서 함께 계시기 때문에 은총이 가득하시다라는 것이 성모송의 원래 취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천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이 두 찬송이 성모송의 전부였습니다. 그렇다면 천주의 성모 마리아님, 이제와 저희 죽을 때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주소서라는 청원은 언제 생긴 것일까요? 이 청원은 15세기 무렵부터 형성되기 시작해 16세기에 오늘날과 같은 기도문으로 정착됐다고 합니다.

교회는 우리가 죽을 때를 위해 준비하도록 권유하고, 성모송을 통해 성모님께 우리가 죽을 때 우리를 위해 빌어주시길 청합니다. “당신 아들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처럼, 마리아께서는 우리가 죽을 때도 함께 계셔 주실 것이며, “천국에 계신 당신의 아들 예수님께 우리를 인도해 주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가톨릭교회교리서1014·2677항 참조)

헤일 메리가 최후의 수단이라는 뜻이 된 것은 미국 미식축구에서 유래했지만, 이 청원을 생각하면 성모송은 우리에게 진정한 최후의 수단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교회, 하느님 백성의 친교] (54) 모든 신자의 성화 소명, 교회헌장40

 

교회헌장40항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보편적 성화 소명에 대한 가르침을 담고 있습니다. 먼저 공의회는 신자들의 성화 소명이 예수님으로부터 비롯된 것임을 성경을 바탕으로 설명합니다.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마태 5,48)라고 말씀하신 예수님께서는 모든 완덕의 모범이요 스승이시며 그러한 삶의 창시자요 완성자로서 모든 제자에게 생활의 성화를 가르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마르 12,30)하고,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요한 13,34)하라고 하시면서, 성령을 보내시어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마음이 내적으로 타오르도록 하셨습니다.

이어서 공의회는 사도 바오로의 의화론에 근거하여 그리스도인의 성화 소명을 설명합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자신의 공로로 하느님께 부르심을 받지 않고, 오로지 하느님의 계획과 은총에 따라 부르심을 받습니다. 자신의 업적으로 의화되지 않고, 주님이신 예수님의 구원 업적으로 그분 안에서 의화됩니다. 그렇게 믿음으로 세례받아 하느님의 자녀가 되고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함으로써 참으로 거룩하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의 은총으로 거룩하게 살고, 이렇게 받은 거룩함을 보존하고 완성해야 합니다. 또한 공의회는 그리스도인들이 성도들에게 걸맞게”(에페 5,3) 살아야 한다는 사도의 권고를 상기시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께 선택된 사람, 거룩한 사람, 사랑받는 사람답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동정과 호의와 겸손과 온유와 인내”(콜로 3,12)로 성덕에 이르는 성령의 열매”(갈라 5,22)를 맺어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모두 많은 실수를 저지르기”(야고 3,2) 때문에, 하느님의 자비를 바라며,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쳐주신 기도처럼 저희 잘못을 용서”(마태 6,12)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보편적 성화 소명과 관련한 예수님의 말씀과 바오로 사도의 가르침, 그리고 죄에 대한 야고보서의 구절로부터 공의회는 어떠한 신분이나 계층이든 모든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교 생활의 완성과 사랑의 완덕으로 부름 받고 있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자명한 일이라는 결론에 이릅니다. 또한 공의회는 신자들의 이러한 성덕은 세속에서도 인간다운 생활양식의 증진을 이룬다고 말합니다. 그러한 완덕에 이르기 위해서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르고, 그분을 닮아 하느님의 뜻을 따르며, 하느님의 영광과 이웃에 대한 봉사에 헌신해야 합니다. 그럴 때 교회의 성인들이 보여준 성덕의 모범처럼 하느님 백성의 거룩함은 풍성한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교회의 언어] Dudar(두다르, 스페인어) : 의심하다, 망설이다

 

오늘 복음에서 열한 제자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고 전한 여인들의 말을 반신반의하며 예수님께서 분부하신 산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는데도 여전히 더러는 의심하였습니다. 믿음과 불신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있는 것입니다.

Dudar(의심하다)는 같은 의미를 지닌 라틴어 동사 ‘Dubitare’(두비따레)에서 왔습니다. 이 말은 을 의미하는 ‘duo’(두오)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결국 의심하다는 것은 둘 사이에서 망설이며 고민함을 의미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둘 사이에서 주저하기를 멈추고 한 분이신 하느님을 선택할 것을 이야기합니다. 엘리야 예언자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여러분은 언제까지 양다리를 걸치고 절뚝거릴 작정입니까?”(1열왕 18,21) 하고 말하면서 바알 신이 아니라 하느님을 따를 것을 선택하라고 촉구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마태 6,24; 루카 16,13)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더 이상 둘 사이에서 망설이기를 그치고, 한 분이신 주님을 더 온전히 믿을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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