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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말씀과 묵상

[홍기선 신부의 복음의 기쁨 해설] (6) 출구에 선 교회 출발 신호가 울렸으니 떠나라!

작성자은총의샘|작성시간26.06.16|조회수29 목록 댓글 0

[홍기선 신부의 복음의 기쁨 해설] (6) 출구에 선 교회

출발 신호가 울렸으니 떠나라!

프란치스코 교황은 예수회 잡지 편집인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예수회에 들어가게 된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신학교에 들어갔을 때, 도미니코회 수사들을 좋아했습니다. 도미니코회 수사 친구들도 있었어요. 그러나 후에, 제가 잘 알고 있는 예수회를 선택했습니다. 그 당시 신학교가 예수회원들에게 맡겨져 있었기에 그들을 잘 알게 되었거든요. 예수회의 세 가지 점이 저를 이끌었어요. 선교 사명, 공동체, 수련입니다.”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리오가 교황이 되어서 교회가 지금 이렇게 변신을 시도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이 시대를 새로운 전환점으로 삼으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 사람을 준비시켰고 교황으로 뽑으셨다. 교황은 예수회에서 조련되어 부에노스아이레스 대교구의 일선 사목자로 여러 가지 경험을 했다. 시대의 징표를 읽고 하느님의 뜻과 가르침을 식별하면서 교회의 나아갈 길을 제시하였다. 현재의 교회의 모습 속에서 필요한 변화와 쇄신 그리고 사목자들의 회개를 촉구하였다. 교황으로 선택된 후, 프란치스코로 이름을 바꾸고 갑자기 자신의 삶의 기조를 바꾼 것이 아니다. 그분은 그렇게 준비되었고 살았던 분이다. 다만 보편 교회의 수장으로서의 교황 직분이 그분의 삶과 가르침을 온 세상에 전달하자, 모두가 그분을 알아보게 된 것이다. 등불이 등경 위에 제대로 놓이자 세상 사람들이 눈이 밝아진 것이다.

끊임없는 부르심

프란치스코 교황이 첫 권고문에서 강조하는 것은 교회의 선교 임무이다. 사목자들의 전향적 태도를 촉구한다. 지금까지의 방식으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분 주장의 기저에는 예수회의 정신이 깔려 있다. 예수회는 하느님의 보다 큰 영광을 위하여 죽음을 불사하면서까지 세상 극변에 나아가 복음을 전하며 살고 있는 수도회이다.

복자품에 오른 바오로 6세 교황은 이렇게 말했다. “예수회원들은 교회 안의 어느 곳이든지 존재했었고 지금도 있습니다. 그곳이 가장 어려운 곳이고 최전방이라 해도, 이념들의 교차점에도, 사회적 냉대와 질시 속에서도, 인간의 처절한 요구와 복음의 항구한 메시지 사이에 갈등이 있었던 곳이고 현재에도 있는 곳, 바로 그곳에는 언제나 예수회원들이 있었고 지금도 있습니다.”

교황은 권고문에서 하느님 말씀을 인용하며 이렇게 적고 있다. “하느님 말씀 속에는 끊임없이 하느님의 출발 신호에 반응하는 신앙인들이 역동성이 드러나 있습니다”(20). 하느님께서 신앙인을 움직이도록 촉구하는 방식에 대한 설명이다. 신앙인 측에서 보면 새로운 도전이다. 두려움을 동반하기에 망설임까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당신께서 함께하심을 약속하며 떠나라하신다. “아브라함은 새로운 땅을 향하여 떠나라는 부르심을 받아들입니다(창세 12,1-3). 모세는 당신이 그를 보낸다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듣고 백성을 이끌고 약속된 땅으로 출발합니다(탈출 3,17). 하느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당신이 그를 보내면 누구에게나 가야한다고 말씀하십니다(예레 1,7).”

출발 신호가 떨어졌으니

오늘날 교회는 우리가 처한 환경에서 새로운 세계를 향하도록 하느님의 명령을 받고 있다. 선교를 향한 출발명령이 내려진 것이다. 귀를 막으면 눈으로 보이고 눈을 감으면 귓전으로 들린다. 눈과 귀를 가리고 막으면 온몸의 울림으로 알아차릴 정도이다. 교황은 이렇게 강조한다. “우리는 모두 자신의 안위를 떠나 용기를 갖고 복음의 빛이 필요한 모든 변방으로 가라는 부르심을 따르도록 요청받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는 마치 출발선에서 시작을 알리는 신호가 떨어지길 기다리는 운동 선수처럼 출구에 서 있다. 지금 이 순간, 언제쯤 신호가 떨어질까 긴장하며 기다릴 수 있다. 도전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머뭇거리며 갈등할 수도 있다. 교황은 말한다. “이미 출발 신호는 떨어졌으니 더이상 지체하지 마십시오. 골방에서 전선을 조작하지 말고 어서 최전선으로 나가십시오.”

 

 

 

 

 

[홍기선 신부의 복음의 기쁨 해설] (7) 첫걸음 내딛기

길 잃은 양을 찾아 떠나야 하는 목자의 사

복음의 기쁨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즉위한 뒤, 9개월 만에 나온 권고문인데, 온전히 그 기간 동안 작성된 문안이라고는 볼 수 없다. 1979년에 멕시코에서 개최된 제3차 라틴 아메리카-카리브 주교회의 정기총회의 결과물인 푸에블라 문헌에 이미 뼈대가 되는 개념이 다 나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2007년에 브라질에서 개최된 제5차 라틴 아메리카-카리브 주교회의의 아파레시다문헌에는 더 진척된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이 두 문헌의 기저에는 1975년 복자 바오로 6세 교황의 2가지 권고문, 그리스도인의 기쁨(Gaudate in Domino)현대의 복음 선교(Evangelii Nuntiandi)가 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교황은 이미 오래 전부터 자신의 숙성된 묵상의 결과물을 갖고 있었고 그 내용을 교황 직위에 오르면서 조직적으로 재편성하여 온 세계에 발표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미 걷는 법을 배웠으니

교황은 권고문을 통해 현대의 복음 선포자들에게 용기를 북돋우고 담대하게 시작하도록 재촉하고 있다. 마치 첫걸음을 떼는 어린이를 조심스레 바라보며 전진하도록 사랑의 눈길을 보내는 부모의 심정으로 독려하고 있다. 교황은 두려움을 갖지 말라고 한다. 이미 주님께서 우리에 앞서 복음을 선포하셨고 갖가지 어려움 가운데 열매 맺고 기뻐하셨기에, 더이상 의심하며 불안해할 필요가 없다고 하셨다. 생명을 바치며 우리를 사랑하신 주님이 우리에게 당신을 따르라 하시기 때문이다. 당신께서 모범을 보여주시면서 그대로 실천하면 너희는 행복하다(요한 13,17)”고 하셨다.

교황은 아주 상세히 시작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먼저 첫걸음부터 떼어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과 결과도 일러주며 용기를 북돋아 주고 있다. 첫걸음을 뗀 후에는, 사람들의 삶에 참여하고, 그들과 함께 가고, 인내하라고 주문하신다. 밀밭의 가라지를 추수 때까지 내버려 두는 것처럼, 그들 가운데 생길 수 있는 불협화음과 작은 소란에 불평하거나 지나친 반응을 하지 말라는 주문이다. 인내하며 때를 기다리면, 주님께서 열매 맺도록 이끌어 주신다고 했다. 그러면 공동체는 기쁨으로 가득 차게 될 것이고 이 기쁨은 전례의 아름다움으로 표현되어 공동체 전체가 축제를 지내게 될 것이라 했다. 이 축제는 전례를 통해서 표현되는 것으로 복음화 활동을 경축하는 것이며 자신을 내어주는 새로운 힘의 원천이 될 것이다”(24).

그러기에 두려움 없이 첫걸음을 내딛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으며 다른 이들에게 다가가고 멀어진 이들을 찾으며 큰길에 나아가 버림받은 이들을 초대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공동체는 하느님 아버지의 자비와 그 무한한 힘을 경험하였기에 자비를 베푸려는 끝없는 열망을 지니고 있습니다”(24).

교회로부터 멀어진 이들과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이들을 초대하여 그들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을 보여주고 그들도 존엄한 존재임을 스스로 확인하게 해주라는 것이다. 교회가 그들을 상처 입은 그리스도로 대하라고 명하신다. 이는 주님께서 마태오 복음 25장을 통해 말씀하신 내용이다. 최후의 심판 때 밝혀질 내용이고 심판의 기준이다. 가장 보잘것없다고 여겨지는 사람에게 베푼 호의와 사랑이 바로 당신에게 보인 애덕 실천이라는 말씀이다.

목자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나

교황은 일상 강론과 일반 알현 때, 자주 양 냄새 나는 목자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다. 자신의 안위만을 신경 쓰느라 폐쇄적인 교회가 되기보다는, 거리로 나와 다치고 상처 입고 더럽혀진 교회를 원한다고 말씀하셨다. 양 냄새 나는 목자란 양들과 함께 있기에 당연히 그들의 냄새가 밴 목자다. 이리로부터 양들을 보호하기 위해 목숨을 바치는 목자이고 추위와 굶주림에 떨고 있는 양들을 껴안고 그들의 상처를 어루만지며 치유하기 위해 약을 발라주는 목자이다. 자신이 양들을 위해 존재하고 있음을 양들이 알뿐만 아니라 온 몸으로 느끼도록 하는 목자이다. 그래서 양들은 그들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그들을 따르게 되는 것이다

 

 

 

 

 

[홍기선 신부의 복음의 기쁨 해설] (8) 사목 활동의 쇄신

! 낙제라니

 

교황은 교회 전체의 지속적 쇄신을 강조하면서 현재 상황을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다고 했다. 현재 상황을 굳이 점수로 환산하자면 낙제점이라는 것이다. 교회가 너무도 무사안일하게 살고 있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교회가 문제라기보다는 교회 안의 사목자들과 신자들의 삶의 자세와 태도가 문제이다. 이런 식의 태도와 자세는 그저 단순한 관리차원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성령께서 원하는 교회상

비신자들과 냉담에 빠진 자들, 미지근한 신앙생활을 영위하는 형식적인 신앙인들은 백안시하고, 열심히 한 신앙인들의 최소한의 의무사항만을 관리하며 자신의 안위만을 신경 쓰는 교회는 성령께서 원하시는 교회가 아니라는 것이다. 성령께서 힘차게 활동하시는 교회를 원한다. 양 냄새 나는 목자의 교회, 선교의 열매로 기뻐하는 교회를 원한다. 이와 같은 기쁨과 아름다움이 전례로 표현되어 새로운 힘의 원천이 되는 교회를 원한다. 과거의 화려한 유물과 유적의 보관과 관리만이 주된 목적인 박물관 같은 교회를 원하지 않는다. 그래서 더 이상 수수방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선교 사명에 불타는 이들은 어디에

교황은 교회 쇄신의 시점을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명령하고 지시하여 강제적으로라도 변화의 결과를 내라고 윽박지르지 않는다. 교황은 신앙인들의 선한 의지에 호소한다. 지금 당장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고 간곡히 부탁한다. 이렇게 당신의 간절한 소망을 표현했다.

저는 신앙인 모두가 모든 것의 변화를 가져오는 선교적 결단을 내려주길 꿈꿉니다. 이는 교회의 관습과 행동 양식, 시간과 일정, 교회의 용어와 모든 구조가 자기 보전보다는 오늘날 세계의 복음화를 위한 적절한 통로가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27).

교황은 계속해서 본당과 교구, 사목자와 신자들 그리고 주교들과 본인의 교황 직분까지 언급한다. 모든 구조의 순기능은 살리고, 역기능은 과감히 쇄신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먼저 본당을 지적하면서, 결코 시대에 뒤떨어진 조직이 아니라며 사목자와 공동체의 적극적 활동을 독려했다.

본당 사목구는 공동체들의 공동체이고 길을 가다가 목마른 이들이 물을 마시러 오는 지성소이며, 지속적인 선교 활동의 중심지입니다. (...) 본당 사목구는 사람들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가 살아 있는 친교와 참여의 장소가 되고 온전히 선교를 지향하여야 합니다”(28).

우리 한국 교회가 귀담아들어야 할 대목이다. 타 본당에서의 낯섦과 공동체의 냉랭함 때문에 객지의 외로움을 호소하는 사람들의 소리를 얼마나 자주 들었던가! 자신의 본당에서 친교와 나눔의 공동체를 형성하기 위해, 우리 자신은 얼마나 참여하고 있는지 반성해 볼 일이다. 시간이 갈수록 봉사자를 찾기가 힘들다. 많은 사람이 의무감에 사로잡혀 미사에 참여한 후, 쏜살같이 성당을 빠져나간다. 단체 활동에 참여하고 선교를 위해 사명감에 불타는 신자를 찾기가 너무도 힘든 세상에서 살고 있다.

복음화의 주역 교구

개별 교회인 교구는 복음화의 주역입니다. 왜냐하면 하나이고 거룩하고 보편되며 사도로부터 이어 오는 그리스도의 교회가 참으로 내재하며 활동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30).

교황은 개별 교회가 그 지역을 위해 그리스도께서 주신 모든 구원의 수단을 갖추고 있기에, 그 지역의 변두리나 새로운 사회 문화적 환경을 향하여 끊임없이 나아가야 함을 강조했다. 선교 열정이 더욱더 강렬하고 충만해지도록 개별 교회에 단호한 식별과 정화와 개혁의 과정이 필요함을 역설했다. 다분히 서구와 남미 교회의 현실을 반영한 말씀으로 보인다. 그러나 우리 역시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끝으로 주교들과 교황 직분의 역할과 쇄신에 대해 언급하면서, 개방된 자세로 모든 부류의 사람들과 단체들의 생각과 의견에 귀를 기울이어야 함을 언급했다. 또한, 주교들은 자기 교구의 교회 안에서 선교적 친교를 증진하여야 하고 여러 가지 형태의 사목적 대화를 장려하고 발전시켜야 한다고 했다.

 

 

 

 

 

[홍기선 신부의 복음의 기쁨 해설] (9) 복음의 핵심으로부터

참 좋았던 오늘 강론, 내용 기억나시나요?

 

세상에는 귀감이 되는 이야기가 많이 있다. 덕성스러운 사람들에 대한 칭송들이다. 하나같이 교훈적이다. 친구 사이의 아름다운 우정과 의리에 관한 에피소드, 난세에 나라를 구한 영웅들의 용덕과 사회 정의 실현을 위해 부정과 부패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의 이야기, 봉사 활동을 통해 어려운 이웃을 돕는 사람들에 대한 매스컴의 보도 등. 세상을 밝혀주고 따뜻하게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들이다. 그들의 도덕적인 삶은 언제나 우리에게 감동을 준다. 그래서 사제들의 강론에 예화로 많이 등장한다.

진리는 훼손되서는 안돼

가끔, 좋은 강론을 들었다는 신자에게 그 내용을 물을 때가 있다. 이때 상당히 많은 이들이 복음 선포의 핵심 내용보다는 예화나 도덕적 가르침만을 기억하여 답변하는 것을 들었다. 무언가 잘못됐다. 우리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부수적인 것과 동일시됐거나 왜곡됐다는 것이다. 아주 쉽게, 빈번히 벌어지고 있다.

교황은 이를 경계시킨다. “그 부수적인 측면들이 아무리 중요하다 하더라도, 그 자체만으로는 그리스도 메시지의 핵심을 전달할 수 없습니다”(34).

물론 사제들은 예화를 그리스도의 핵심 메시지와 연결하여 설명하였겠지만, 결과가 그리 좋지 못할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이다. 때론 강론이 교회법 규정이나 사회의 미담을 전해주는 것으로 끝나버릴 때도 있다. 도덕 교사의 강단의 가르침과 구원의 복된 소식을 선포하는 강론은 결코 같은 것이 아니다.

교황은 선교 사목을 할 때, 수많은 교리를 두서없이 전달하고 이를 끈질기게 강요하지 말라고 당부한다(35). 제일 중요한 내용을 전달해 주면 된다는 것이다. “그 선포의 내용은 본질적인 것에, 곧 가장 아름답고, 가장 위대하고, 가장 매력적이면서 가장 필수적인 것에 집중해야 합니다. 그 깊이와 진리가 훼손되지 않은 단순한 메시지일수록, 더욱 설득력 있고 빛나게 됩니다”(35).

다시 말해, 핵심 메시지가 부각되고 직접적으로 표현될 수 있는 몇 가지 신앙 교리나 도덕적 가르침이면 족하다는 것이다. 전달되어야 할 그 핵심 메시지는 무엇인가? 다음과 같다.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드러난 하느님의 구원적 사랑의 아름다움이다.

자비, 도덕적 가르침의 으뜸

교황은 토마스 아퀴나스와 제2차 바티칸 공의회까지 인용하면서, 계속해서 부연 설명을 한다. 신앙 교리는 물론 도덕적 가르침을 포함한 교회의 가르침 전체에는 서열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키기 위함이다. 그러니 핵심 메시지를 잘 드러내는 상위 서열의 신앙 진리와 도덕적 가르침을 통해 말씀을 선포하라는 권고이다.

그러면 최상의 도덕적 가르침은 무엇인가? 교황의 강론과 가르침을 잘 살펴보면, ‘자비에 대한 표현이 유난히 많음을 확인할 수 있다. 교황은 권고문에서 그 이유를 설명했다. 토마스 아퀴나스가 강조한 것처럼, ‘자비는 그 자체로 가장 큰 덕이기 때문이다(37). 교회의 도덕적 가르침 가운데 최상위의 덕이 자비이기에, 이를 통해 핵심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자비의 결정적 표현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이다. 사도 바오로는 이를 무상으로 주어진 선물로 설명했다(로마 9,23; 에페 2,4).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는 자비로운 하느님, 가난하고 소외되고 병들고 슬픔에 지친 자들의 위로자이시고 구원자이신 하느님께서는 만민을 구원하길 원하신다(루카 3,6). 그 하느님은 당신 외아들을 통해 말씀하셨다. “하느님께서 자비로운 것처럼 우리도 자비로워져야 한다”(루카 6,36)고 말했다. 이는 사랑으로 행동하는 믿음”(갈라 5,6)을 지녀야 한다는 말씀이다.

교황은 계속해서 강조한다. “이웃을 향한 사랑의 활동은 성령의 내적 은총을 가장 완벽하게 밖으로 드러내는 것입니다”(37). 가난한 자들과 함께하며 그들의 구조적 가난을 없애고 인간다운 품위를 유지하도록 힘쓰는 교회의 모습을 설명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홍기선 신부의 복음의 기쁨 해설] (10) 복음의 향기

 

사랑으로 손 내밀 때 복음의 향기 전해져

교황은 복음의 기쁨39항에서 복음의 향기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복음의 본질적 메시지는 행동하는 믿음을 살도록 촉구하고 있는데, 우리가 이에 충실치 않고 특정한 이념적 선택에 따른 교리나 도덕적인 측면만을 강조한다면, ‘복음의 향기를 잃게 된다는 경고의 말씀을 하시면서 사용하셨다.

초대받은 당신

복음을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여러 가지 표현으로 답할 수 있을 것이다. 교황은 복음을 하느님의 초대장으로 설명했다. “복음은 무엇보다도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느님께,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느님께 응답하라는 초대장입니다”(39).

그렇다면 응답방식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이와 같은 초대에 대한 응답은, “우리가 다른 이들 안에 계신 하느님을 인정하고 모든 사람의 선익을 추구하기 위해, 우리 자신에게서 나옴으로써 실현됩니다”(39).

행동하는 믿음을 강조한 것이다. 타인을 사랑하고 동정해주며(필립 2,1) 따뜻한 마음으로 너그럽게 대해 주고(에페 4,32) 궁핍한 형제에게 자비를 실천함으로써(마태 25,40) 실현된다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우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는 것이다(루카 6,36). 매력적이지 않을 수 없다. 복음 선포자의 권위를 모두가 인정하게 하게 될 것이다. 자비를 실천하는 그들 안에 하느님의 사랑이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1요한 3,17).

복음의 향기가 지속되려면

우리가 복음을 선포한다는 것은 이와 같은 하느님의 초대장을 모든 이에게 전하는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이 초대의 의미가 가려지거나 약화되어서는 안 된다. 본질적이기 때문이다. 교회가 가르치는 모든 덕은, 이 사랑의 응답(초대의 응답)을 돕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전하는 이 초대는 확신에 찬 초대가 되어야 한다. 힘차고 매력적인, 그야말로 눈부신 초대가 되어야 한다.

어떻게 이 초대의 매력을 드러낼 수 있는가? 행동하는 믿음을 통해서 드러낼 수 있다. 행동하는 믿음은 우리의 공개적 응답의 삶으로 표현되고 이는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 또 다른 초대가 되는 것이다.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드러난 하느님의 구원적 사랑의 아름다움”(36)을 온 인류가 믿고 응답하도록, 우리의 권위 있는 삶을 통해 초대하는 것이다.

교황은 우려의 말도 잊지 않는다. 만일 우리의 초대가 매력 없는 초대가 된다면, 교회의 도덕적 가르침은 사상누각이 될 위험에 빠지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39). 매력 없는 초대란 핵심적 메시지가 빠진 초대일 때 발생한다. 행동하는 믿음으로 이 핵심적 메시지를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교회의 모든 도덕적 가르침도 이 핵심 메시지에 대한 응답으로 나온 것이기에, 본질이 빠진 상태의 부수적인 모든 것은 사상누각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는 복음을 선포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이념적 선택에 바탕을 둔 어떤 교리나 도덕적 측면을 강조할 때 발생한다.

교황은 우리가 쉽게 빠질 수 있는 위험이라며 경계를 당부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전하는 메시지는 그 신선함을 잃어버리고 더는 복음의 향기가 나지 않을 위험이 있습니다”(39).

우리가 하느님의 선포 방식대로 선포할 때, 하느님의 초대는 신선함과 매력을 지니게 된다. 하느님의 선포 방식은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인간으로 오시는 것이었다. 우리도 소외되고 버려진 이들에게 복음의 기쁨을 선포하기 위해, 그들 한가운데로 나아가야 한다. 그들의 손을 맞잡고 연대하여야 하고 복음의 메시지를 우리의 삶으로 증명해 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때, 우리가 전하는 모든 교리와 도덕적 훈계는 핵심 메시지를 부각시키는 부수적인 것으로 존재할 때에만 그 의미를 지니게 된다. 우리가 전하는 메시지 속에는 언제나 복음의 향기가 묻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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