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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말씀과 묵상

성사풀이 (13) 성체의 두 형상에 온전히 현존하시는 예수님 성체성사를 부르는 또 다른 이름은 무엇인가요

작성자은총의샘|작성시간26.06.16|조회수54 목록 댓글 0

성사풀이 (13) 성체의 두 형상에 온전히 현존하시는 예수님

성체성사를 부르는 또 다른 이름은 무엇인가요

성체성사는 성찬례(감사제), 주님의 만찬, 기념제, 친교의 성사, 거룩한 미사 등으로 불린다. 성체성사의 다양한 이름은 이 성사의 무한한 풍요로움을 드러내며, 성체성사의 여러 측면을 환기시킨다.(가톨릭교회 교리서1328~1332)

성체성사의 감사 행위를 가장 잘 드러내는 이름은 성찬례’(Eucharistia 감사제)입니다. 성체성사는 하느님 아버지의 창조 업적, 그리스도를 통한 구속 사업, 성령 안에서 이루어지는 성화에 대한 감사와 찬미의 행위입니다.

주님의 만찬은 주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수난 전날 밤에 드신 최후의 만찬과 관계되며, 어린양의 혼인 잔치를 미리 맛보는 것과도 관련됩니다. ‘성찬 모임이라는 말은 교회의 가시적 표현인 신자들의 모임에서 성찬례가 거행되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수난과 부활을 뜻하는 기념제거룩한 희생 제사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성체성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상에서 당신을 희생시킨 것을 기념하는 제사입니다.

성체성사를 친교의 성사라고 부르는 것은 이 성사를 통해 신자들이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고, 그분께서 우리를 당신의 몸과 피에 참여하게 하시어 한 몸을 이루도록 하시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거룩한 미사라고 부르는 것은 일상생활에서 하느님의 뜻을 수행하도록 신자들을 파견함으로써 끝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성체 안에 실제로 계시나요

예수님께서는 빵과 포도주의 형상 안에 실제로 현존하신다.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계약의 피다.”(마태 26,26-30)라는 말씀으로 빵과 포도주를 당신의 몸과 피가 되게 하셨기 때문이다.

교회는 이렇게 빵이 주님의 몸으로 변화되는 것을 거룩한 변화라고 합니다. 전통적으로 이러한 변화를 실체 변화라고 불러왔습니다.

또한, 그리스도께서는 성체 안에 실제 현존하시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몸과 피로 변화된 빵과 포도주가 훼손되지 않도록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성체의 두 가지 형상 안에 각각 온전히 현존하시며, 또 그 각 부분에서 현존하시므로 빵을 나누어도 그리스도께서는 나뉘지 않으십니다.(가톨릭교회 교리서1377)

그러므로 영성체 때 쪼개진 성체를 모시더라도 온전한 예수님의 몸을 모시는 것입니다.

성찬례 때 아무 빵이나 포도주를 사용할 수 있나요

성찬례 때 사용되는 빵은 누룩 없는 순수 밀가루여야 하며, 부패할 위험이 없도록 최근에 만들어진 것이어야 한다. 포도주는 포도로 빚은 천연의 것으로 순수하고 부패하지 않은 것이어야 하며, 다른 물질과 혼합해서는 안 된다.(교황청 경신성사성 훈령 구원의 성사48. 50)

우리나라에서 성찬례 거행에 사용되는 빵과 포도주는 주교회의의 승인을 받은 업체와 특정 수도 공동체에서 만듭니다. 거룩한 희생 제사 거행에 사용되는 빵, 제병은 부패할 위험도 없고 순수 밀가루를 사용하여 고결한 인품과 숙련된 기술, 적절한 도구를 가진 사람에게서 만들어져야 합니다. 비록 곡류라 하더라도 다른 재료로 만든 빵이나, 일반적으로 빵이라고 여길 수 없을 정도로 밀가루가 아닌 재료(과일, 설탕, 꿀 등)와 혼합된 것은 사용할 수 없습니다.

포도주도 포도로 빚은 천연의 것으로 순수하고 부패하지 않은 것이어야 하고 다른 물질과 혼합되어서는 안 됩니다. 따라서 진정성이나 출처가 의심스러운 포도주는 허용되지 않으며, 토착화라는 이유로 특정 지역에서 만든 빵()과 술(곡주)을 마음대로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가끔 건강이나 부득이한 이유로 저()글루텐 제병이나 포도즙을 사용할 수 있는지 물어보기도 합니다. 글루텐이 전혀 없는 제병은 성찬례 거행에 사용할 수 없습니다. 저글루텐 제병은 다른 물질이 첨가되지 않았다면 유효합니다. 또 신선한 포도즙이나 본질은 변화시키지 않고 발효만 막는 방법으로 보존된(예를 들어 냉동) 포도즙도 성찬례 거행에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글루텐 제병이나 포도즙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교구 직권자의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성찬례에 쓰는 빵과 포도주에 관한 주교들에게 보내는 회람참조)

 

 

 

 

성사풀이 (14) 첫영성체, 열 살 전후 어린이부터 가능해

첫영성체는 몇 살부터 할 수 있나요

 

한국 천주교회는 적합한 첫영성체 나이에 대해 부모와 사목자는 어린이가 10세 전후가 되었을 때에 영성체를 하도록 배려해야 한다”(사목 지침서82)고 규정하고 있다.

유아에게 세례를 주는 것은 교회의 오랜 전통입니다.(가톨릭교회 교리서1252) 세례를 받은 어린이가 분별력을 가질 때까지 영성체를 미뤘다가(가톨릭교회 교리서1244) 중세기에 이르러 성체성사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성숙도가 요구되면서 만 7세에 첫영성체가 허락됐습니다.

그러다가 1215년 제4차 라테라노 공의회에서 사리 분별을 할 수 있는 나이에 도달한 사람만 영성체를 할 수 있도록 규정해 만 13~14세가 된 어린이들이 첫 고해성사와 함께 영성체를 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 첫영성체에 적합한 나이가 조금씩 낮아지는 경향이 생겨나서 1910년에는 이성을 갖기 시작하는 나이를 만 7세로 보아, 이 나이의 어린이들이 부활 시기에 첫영성체를 하도록 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10세 전후에 첫영성체를 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양형 영성체는 어떻게 하나요

성체와 성혈을 함께 영해 주는 양형 영성체는 성체를 받아 모신 뒤 성혈을 성작에서 직접 마시는 방법과 성체를 성혈에 적셔 모시는 방법이 있다.(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286~287)

성체와 성혈을 모두 받아 모시는 양형 영성체는 가장 완전한 영성체 형태입니다. 왜냐하면, 양형 영성체로써 성찬의 표징이 더욱 완전하게 나타나기 때문입니다.(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281) 양형 영성체는 성체를 받아 모신 뒤 성혈을 성작에서 직접 마시는 방법과 성체를 성혈에 적셔 모시는 방법이 있습니다.

먼저 성혈을 성작에서 직접 마시는 경우에는 보통으로 부제가 성작을 들며, 부제가 없을 때는 사제 자신이나 정식으로 직무를 받은 시종 또는 영성체의 다른 비정규 봉사자가 성작을 듭니다. 필요한 경우 이 임무를 그때에만 신자에게 맡길 수 있습니다. 영성체할 사람이 그리스도의 몸을 받아 모신 다음에 성작 봉사자에게 가서 그 앞에 서면 봉사자는 그리스도의 피라고 말하고 영성체하는 사람은 아멘하고 응답합니다. 이어 봉사자가 성작을 건네주면 영성체하는 사람은 두 손으로 성작을 잡아 입에 대고 조금 마십니다. 그다음 성작을 봉사자에게 돌려주고 물러나면 봉사자는 성작 수건으로 입을 댄 곳을 닦습니다.(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286) 만일 성혈이 남으면 사제나 부제, 또는 정식으로 직무를 받아 성작을 든 시종이 제대에서 모셔야 합니다.성체를 성혈에 적셔서 모실 경우에는 사제가 성합을 들고, 그 옆에 봉사자가 성작을 들고 섭니다. 사제는 성체를 집어 한 부분을 성혈에 적신 다음 그것을 보이면서 그리스도의 몸과 피라고 말하면, 영성체하는 사람은 아멘하고 응답하고 입으로 모신 다음 뒤로 물러납니다.(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287) 어떤 경우든지 사제만이 스스로 성체를 모실 수 있고, 평신도 스스로 성체를 모시거나 다른 이에게 건네주어서는 안 됩니다.

사목적인 이유로 주례자는 세례, 견진, 혼인, 서품, 서원, 각종 피정이나 회합 미사 때 해당자들에게, 병자의 집에서 미사를 집전할 때 참석한 신자들에게 양형 영성체를 해 줄 수 있습니다.

쪼개진 성체를 모셔도 은총을 받을 수 있나요

그리스도께서는 성체가 축성되는 순간부터, 성체의 형상이 존속하는 동안 계속 그 안에 현존하신다.(가톨릭교회 교리서1377) 따라서 성체가 나누어져도 그리스도께서 나뉘시는 것이 아니며, 나뉜 조각만 영해도 우리는 성체성사의 은총을 모두 받을 수 있다.

피렌체 공의회(1438~1445)그리스도께서는 빵의 형상 안에 전적으로, 그리고 포도주의 형상 안에 전적으로 계신다. 또한, 축성된 제병과 축성된 포도주의 모든 부분에도, 그것이 나누어졌을지라도 그리스도께서 온전히 현존하신다고 선언했습니다.

성체가 쪼개져도 각 조각에는 그리스도께서 현존하십니다. 그러므로 성체를 받은 사람은 한 부분이라도 잃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성체는 신자들의 영적 양식이며 영원한 생명의 보증입니다.

중요한 것은 빵과 포도주의 형상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신 하느님의 은혜에 감사드리며 성체에 대한 지극한 사랑과 흠숭으로 응답하는 것입니다.

 

 

 

 

 

성사풀이 (15) 마음으로 성체 모시는 신령성체

- 신령성체는 지극한 성체 신심의 또 다른 표현으로서 성체를 모시지 않고 마음으로 성체를 모셔도 같은 효과가 있다는 믿음이다.

 

영성체는 미사 때만 할 수 있나요

성체성사는 교회가 봉헌하는 미사성제 안에서 이뤄진다. 따라서 영성체는 미사 때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미사 밖에서도 영성체를 할 수 있다.

거동이 불편한 병자나 어르신 등 미사에 참여하기 힘든 신자들은 자기가 거주하는 집이나, 병원, 양로원 등에서 영성체를 할 수 있습니다. 사제는 이러한 신자들을 위해 성체를 모셔 가 영성체를 해주는데 이를 병자 영성체’(봉성체)라고 합니다. 바로 이러한 목적에서 미사 때 축성한 성체를 감실에 보존하는 관습이 생겼습니다.

현재 한국의 거의 모든 본당은 정기적으로 병자 영성체를 실시하고 또한 미리 소속 본당에 연락하면 병자 영성체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원인이든지 죽을 위험 중에 있는 신자들은 병자성사와 노자 성체로 기력을 얻을 수 있습니다.(교회법 제911918921)

신령성체와 모령성체는 무엇인가요

교회는 신자가 영성체를 할 수 없는 경우에 성체에 대한 믿음과 사랑을 지니고 성체를 모시고자 원한다면 성체성사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가르친다. 이를 신령성체’(神領聖體)라고 부른다. 반대로 신자가 영성체를 해서는 안 될 경우임에도 성체를 받아 모시는 경우가 있다. 이를 모령성체’(冒領聖體)라고 한다.

사제가 없어서 미사를 거행하지 못하고 말씀 전례만 거행할 경우, 병고나 다른 여러 가지 이유에서 미사에 참여하지 못하는 경우, 대죄 중에 있으면서 고해성사를 받지 못해 영성체를 할 수 없는 경우, 혼인 무효 장애 때문에 지속해서 성체를 모시지 못하는 경우, 또는 아직 세례를 받지 않은 예비 신자일 경우에 신령성체를 할 수 있습니다. 특별한 경우이기는 하지만 미사 중에 축성된 빵(제병)이 모자라서 영성체를 하지 못하는 경우도 여기에 해당합니다.

이처럼 영성체를 하지 못하는 신자들이 신령성체를 하는 것입니다. 신령성체는 지극한 성체 신심의 또 다른 표현으로서 성체를 모시지 않고 마음으로 성체를 모셔도 같은 효과가 있다는 믿음입니다.

영성체를 하지 못한다고 미사 참여마저 하지 않는 신자들을 가끔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영성체를 하지 못하더라도 미사에 참여하고 신령성체를 함으로써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모령성체는 은총의 지위에 있지 않은 신자가 스스로 중죄 중에 있음을 의식하면서 영성체를 하는 경우입니다. 모령성체는 성체에 대한 불경한 태도이며, 중죄에 해당합니다. 그러므로 은총의 지위에 있지 않은 신자는 영성체하기 전에 하느님께 죄의 용서를 받고 교회와 화해해야 합니다.

어떤 방법으로 성체께 공경을 드리나요

성체에 대한 공경의 첫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영성체이다. 영성체 외에도 성체 현시, 성체조배, 성체강복, 성체거동, 성체대회 그리고 성시간 등의 유형으로 미사 밖에서도 성체께 공경을 드릴 수 있다.

초세기 신자들은 영성체를 위해 엄격한 규정들을 지켜야만 했으며,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성체에 대한 공경이 자연스레 생겨났습니다. 그러나 지나치게 엄격한 규정으로 영성체하는 사람의 수가 줄어들고, 영성체 대신 성체를 바라보는 공경 형태의 신심이 발달하였습니다. 13세기부터 성체조배를 통한 성체 공경 신심이 교회 안에 빠르게 퍼져 나갔습니다. 그리고 성체거동, 성체 현시, 성체강복이 교회에서 성체 공경의 한 형태로 나타나기 시작하였습니다.

성체 현시는 성광을 이용하여 성체를 볼 수 있는 형태로 제대 위에 모셔 놓고 신자들이 기도하고 묵상하며 그리스도와 일치하도록 이끌어줍니다. 성체 현시를 마칠 때는 성체강복이 이뤄지고 그다음 성체는 감실에 모셔집니다. 성체조배는 감실 안에 모셔져 있거나 현시된 성체 앞에서 개인적 또는 공동체적으로 경배를 드리는 신심 행위입니다. 성체거동은 성체를 모시고 하는 행렬로서 성체 행렬이라고도 부르며, 초대 교회 때부터 대표적 성체 공경 신심 행사입니다.

성체대회는 성체에 대한 공경의 특수한 표현 중 하나로서, 교회 전체 구성원의 일치를 드러내는 신심 행위며, 성체성사의 신비를 기념하고자 성체 신비의 특정한 주제를 심화하고 사랑과 일치 속에서 공적으로 성체에 대한 경배를 표현하는 모임입니다. 성체대회는 지역별, 국가별로 개최되기도 하며, 전 세계적 행사로는 세계성체대회가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개인이나 공동체가 성당에서 성체께 공경을 드리려면 성체조배를 하거나 성시간에 참여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특집 - 예수님의 거룩한 몸, 성체] 오늘을 위한 성체성사

 

예수님께서 최후의 만찬 석상에서 성체성사를 제정하신 이래, 교회는 그곳이 어디든 계속해서 성찬례를 거행해왔습니다. 2차 바티칸공의회는 성체성사를 그리스도교 생활 전체의 원천이며 정점’(교회헌장11)이라 부릅니다. 교회는 성체성사에 그 기원을 두며, 성체성사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얼마나 이것을 의식하며 성찬례에 참여하고 있나요? 단순한 의무감으로, 수동적 방관자로 미사에 참여하지는 않는지요? 그 안에서 거행되는 구원의 신비가 어떻게 나 자신과 관련을 이루는지 깨닫고 참여하고 있나요?

사랑의 성사

성체성사의 핵심은 파스카 신비, 곧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 부활을 통해 실현된 구원 업적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것입니다.

사실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여러분은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실 적마다 주님의 죽음을 전하는 것입니다.”(1코린 11,26) 여기서 주님의 죽음이란 인간을 위해 당신 자신의 모든 것, 심지어 목숨까지 내어주신 예수님의 사랑을 의미합니다. 그 사랑이 우리를 죄와 죽음의 굴레에서 해방시켰으며, 하느님의 영원한 생명에 참여하여 새로운 삶을 살도록 한 것입니다.

교회는 성체성사를 통해 인간을 향한 삼위일체 하느님의 사랑과 그 사랑으로 실현된 인간 구원의 신비를 기념합니다. 성찬례의 모든 것은 벗을 위해 당신 자신을 내어주시는예수님의 역동적 사랑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 주는 내 몸이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이 잔은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내 피로 맺는 새 계약이다.”(루카 22,19-20) 빵과 포도주를 나누어주며 하신 예수님의 이 말씀은, 성령의 활동을 통해 미사에 참여하는 신자들을 향한 살아 있는 사랑의 언어요 몸짓이 됩니다.

거룩한 변화와 현존의 신비

성체성사의 의미는 단순히 주님의 만찬을 기념하는 것에 있지 않습니다. 성찬례를 통해 빵과 포도주가 예수님의 몸과 피로 변한다는 교회의 가르침은, 주님의 만찬을 나누는 교회 공동체 안에 예수님의 인격이 실제로 현존하심을 일깨워줍니다.

빵과 포도주에는 예수님의 모든 것이 담겨 있습니다. 하느님 나라 복음을 선포하며 만나셨던 모든 이들 특별히 온갖 병고와 질병을 짊어진 이들을 향한 가엾은 마음’, 그들의 처지에 공감하며 그들에게 다가가 건네신 따뜻한 말씀과 몸짓, 그들을 향한 자비와 신뢰 가득한 눈길그 모든 것 안에 그들과 하나 되고자 하신 예수님의 사랑이 배어 있습니다.

아주 작고 미소하게 보이는 예수님의 그 사랑은, 세상 안에 전혀 새로운 무언가를 가져다주었습니다. 인간의 내면을 파고들어 완전히 새롭게 창조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자신을 내어놓는사랑으로 증오와 원한, 폭력과 불의, 갈등과 다툼이 사랑과 자비, 화해와 용서에 자리를 내어줍니다. 예수님과 만난 사람은 자신의 존재가 환희 밝혀짐을, 무너졌던 삶이 다시 일으켜짐을 경험하였습니다. 두려움과 좌절과 절망에 사로잡혔던 지난 삶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와 사랑을 찾는 여정으로 초대되었음을 깨달은 것입니다.

미사성제는 새롭게 창조하는예수님의 그 사랑을 지금 여기서재현합니다. 들어 높여지는 빵과 포도주 안에, 떼어주시는 나눔의 행위 안에 예수님은 현존하시며, 신자들 각자를 향해 다가오십니다. 우리 안에 놀라운 사랑의 기적, 새로운 삶과 새로운 시작이 가능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생명의 양식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요한 6,55) 성체성사를 통해 예수님은 우리에게 생명의 양식으로 다가오십니다.

복음서에서 우리는 갖가지 병고로 고통을 겪는 이들을 향해 가엾은 마음이 드신 예수님의 모습을 종종 만납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양식이 되어주셨다는 것은 그들의 고단하고 힘겨운 삶, 상처 입고 버림받은 삶을 공감하시고, 당신의 따뜻한 인격으로 그들에게 희망이 되어주셨음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그들 안에 숨겨진 진리와 자유를 향한 갈망을 일깨워주셨습니다. 그 길을 몸소 걸어가시어, 그들에게 이 되어주셨으며, ‘길벗이 되어주셨습니다. 끝까지 그 길을 함께 걸으시며, 그들의 내면 깊은 갈망을 당신 사랑으로 채워주고 길러주셨습니다.

이천 년 전 예수님을 만났던 그들처럼, 우리 안에는 진리와 자유를 향한 갈망이 자리합니다. 수도 없이 배신당하고, 상처 입고, 외면당하고, 무시당하지만, 우리는 결코 포기하지 않습니다. 진실한 사랑, 거짓 없고 배신하지 않는 사랑, 지치지 않고 묵묵히 늘 함께 있어줄 우정이 있음을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 대상을 성체성사에서 만납니다. 그 옛날 사람들에게 다가가 상처를 싸매주고 치유해주시며, 죄를 용서하시고 다시 일어서도록 하신 것처럼, 예수님께서 오늘 성찬례에 참여하는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세상사에 치이고 비인격적 대우를 받으며, 모욕과 욕설, 거짓과 배신으로 상처를 입고 살아온 우리를 가엾은 마음으로 바라보시고, 말씀과 성사로 가르치고 치유하시며, 오늘을 살아갈 양식으로 당신의 사랑을 선물로 주십니다. 한없는 신뢰로 우리를 바라보시며, 용기와 희망을 북돋아주십니다. 우리가 살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성체성사에서 관건은 그분과 나 사이의 직접적인 만남이요 사랑의 친교이며 나 자신의 변화입니다.

성찬례와 이웃 사랑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바오로 사도의 편지는 성체성사와 이웃 사랑의 관계를 묵상하게 합니다. 당시 코린토 공동체가 겪고 있던 내적 분열과 갈등은 성찬례에 참여하는 그들의 그릇된 방식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습니다(1코린 11,17-34 참조). 주님의 만찬을 위한 모임에서 다른 사람을 기다리지 않고 먼저 식탁에 앉아 먹고 마시며 술에 취하기도 했기 때문에 바오로 사도의 호된 질책을 받았던 것입니다.

이 일화는 교회 공동체의 영적 건강이 신자들이 성찬례에 참석하는 방식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말해줍니다. 벗을 위해 당신 자신을 내어주신 주님의 사랑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성찬례에 참여하면서 불의와 부조리로 고통받는 이들의 처지에 무관심하다면, 그것은 예수님과 아무런 관계도 없는 신앙생활일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느님 사랑이 이웃 사랑과 동떨어진 것이 아님을 수없이 강조하셨습니다(마태 5,23-24 참조). 하느님을 대하는 방식과 세상과 이웃, 자기 자신을 대하는 방식이 서로 다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직 내 영혼의 구원을 위하여, 나 자신의 안위와 현세적 복락을 위하여 미사에 참석한다면, 그러한 나의 예배는 주님께서 어여삐 받으실 예물일 수 없습니다.

영성체는 마음의 평화를 위한 방편도, 미래 구원을 위한 보증수표도 아닙니다. 당신 자신을 생명의 양식으로 내어주시는 주님의 사랑을 온 존재를 열고 받아들이는 것이며, 그분과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분처럼 타인을 위한 존재로 변화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미사 참례와 영성체가 진정한 의미에서 하느님께 올리는 예물이 되는 것은, 성찬에서 만난 예수님의 사랑을 우리가 일상의 삶으로 증언할 때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또 우리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하느님께 바치는 향기로운 예물과 제물로 내놓으신 것처럼, 여러분도 사랑 안에서 살아가십시오.”(에페 5,2)

 

 

 

 

 

[특별기고] 성체의 존엄성

 

남성 혐오 인터넷 커뮤니티인 워마드에서 성체를 모독한 사진이 올라와 가톨릭 교회에 큰 충격을 줬다. 이후 교회에서는 본당마다 성체 현시와 조배 등 성체 공경 예절이 잇따르고 있다. 주교회의도 최근 신자들에게 성체 앞에서 기도하고 공동 보속을 할 것을 제안하는 공문을 전국 각 교구에 보냈다. 본지는 이번 호부터 네 차례에 걸쳐 성체흠숭지례(으뜸사랑, 2018) 저자인 최성균(서울대교구 성모노인쉼터 담당) 신부의 기고문을 싣는다.

1. 성체성사의 본질과 가치, 그 의미

성체(聖體)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교회에 주신 가장 큰 선물이며, 가톨릭교회 신앙의 핵심이다. 왜냐하면 성체는 인간의 눈과 척도로는 잴 수 없는 예수님의 신적인 사랑이시고, ‘불사의 영약(靈藥)’(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이시며, 성체를 영한 우리 육신도 이제 부패될 육신이 아니고 부활의 희망을 지닌 육신’(성 이레네오)이 되기 때문이다. 이 거룩한 성체의 가치와 힘은 결국 성체께 대한 최상의 흠숭 표현인 미사성제 때 이루어지며, 미사의 꽃이며 핵심인 영성체 때 그 절정을 이룬다. 이때 신자들은 하느님께 최상의 흠숭과 영광, 찬미와 사랑, 감사를 드린다.

성체성사의 본질과 가치, 의미에 대한 선언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재천명됐다. “우리 구세주께서는 팔리시던 날 밤 최후의 만찬 중에, 당신의 살과 피로써 감사의 제사(미사성제)를 제정하셨으니, 이는 당신이 재림하시는 날까지 십자가의 제사를 세세에 영속화하고, 또한 사랑하는 당신의 정배인 성교회에 당신의 죽음과 부활의 기념제를 위탁하시기 위함이었다.”(거룩한 전례에 관한 헌장247)

그러므로 성체께 대한 흠숭은 모든 교회 생활의 중심을 이루며 신자들의 신앙생활에 원천적인 동력을 제공한다. 그러한 이유로 성체께 대한 올바른 흠숭이 결여된 신앙은 성교회를 점점 세속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실제로 16세기 때 성찬례가 왜곡되고 성체께 대한 불경과 부족한 신심으로 인해 교회가 신앙적 혼란에 빠지게 되었을 때, 트리엔트 공의회(1545~1563)지극히 거룩한 성체성사에 관한 법규1항에서 만일 누가 지극히 거룩한 성체성사 안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혼과 신성과 더불어 그분의 몸과 피가, 즉 온전한 그리스도의 전 존재가 진실로, 실제로 그리고 실체적으로 존재하심을 부인하면서, 상징으로서나 형상으로 혹은 그분의 능력만이 그 안에 있다고 주장한다면, 그는 파문당해야 한다고 엄중하게 경고함으로써 성체성사에 관한 교의를 명확히 했다.

하지만 오늘날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에 성체가 잘못 해석돼 단순히 상징적인 존재로 여겨지는 측면이 점점 커지고 있다. 성찬의 전례에서 성변화가 이루어진 후, 빵과 포도주의 형상에 실제로 신성과 인성으로 존재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현존을 인정하지 않고 단지 상징적인 의미로 잘못 해석하기도 한다. 신자 중에는 성체와 성혈을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상징하는 거룩한 성물로 여기거나 영성체를 하나의 전례상 외적 행위로만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이 이를 방증하고 있다.

이에 대해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성찬례는 너무나 위대한 것이어서 누구도 그것을 가볍게 다루거나 그 거룩함과 보편성을 무시할 수 없다”(회칙 교회는 성체성사로 산다52)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체성사의 본질과 그 가치, 그 의미가 변질되고 왜곡되고 있다면 그 결과의 근본적인 책임은 과연 누구에게 있는 것인가?

성체성사야말로 인간이 되신 성령께서 베푸시는 하느님 선물의 정점이다. 따라서 성교회는 성체성사로 살아가고 거기에서 존재 이유를 반드시 이끌어내야만 한다. 이를 위해 성교회는 신자들이 성체성사의 절대적 의미와 성체께 대한 흠숭지례를 인식하는 데 혼란과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 신앙적 쇄신을 통한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가톨릭평화신문, 201885, 최성균 신부(서울대교구 성모노인쉼터 담당)]

2. 교회와 성체흠숭지례

현대 사회는 신을 배제한 인본주의, 물질만능주의, 쾌락주의로 인해 인간 존재의 가장 근원적인 문제인 신앙마저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초대 교회 때부터 가톨릭교회는 신앙적 위기를 여러 차례 겪어 왔지만, 뿌리까지 흔드는 도전은 없었다. 하지만 오늘날 교회가 겪는 신앙적 위기는 뿌리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2차 바티칸 공의회가 천명한 교회의 현대화(aggiornamnto)는 신선한 매력을 지니고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거룩한 신앙적 전통들을 왜곡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다. 공의회 이후 전례 개혁은 예상하지 못한 방향들로 진행됐고, 영의 식별에 결핍이 생기게 되었다. 이에 따라 신자들은 많은 신앙적 혼란과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 결과 신자들이 교회를 떠나면서 한국 가톨릭교회의 미사 참여율도 201719.4%로 급감했고, 사제와 수도자 수도 점점 줄어드는 유례없는 신앙적 위기를 겪고 있다.

이러한 면에서 오늘날 가톨릭교회는 중세 말기 교회의 모습과 상당히 흡사한 점이 있는 것 같다.

14세기부터 신학자들이 성체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의 현존을 신학보다는 철학적으로 해명함으로써 교회는 혼란에 빠졌고, 성체에 관한 이단설까지 유포됐다. 이러한 성체 논쟁은 16세기 프로테스탄트의 도전을 불러오면서 결국 교회를 분열시켰다. 이들의 도전은 신앙생활과 성찬례를 왜곡시키며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인 성체와 성혈을 단지 그리스도의 몸과 피의 상징으로 해석하게 만들었다. ‘성체와 성혈의 실체변화를 부정했다는 점에서 매우 심각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결과를 초래한 첫 번째 이유는 당시 교회에 만연된 성찬례에 대한 부족한 교육과 열심하지 못한 신심 때문이었다. 교회에서는 성찬례가 그리스도의 십자가상 제사의 재현임을 신자들에게 충분히 제시해주지 못했다. 성찬례를 형식적으로 거행하고 있었기에 신자들은 성찬례의 의미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채 수동적으로 참여하면서 영성체도 자주 하지 않는 상태가 됐다. 결국 많은 신자가 가톨릭교회로부터 떨어져 나갔다.

 

 

 

역사의 과정을 통해서도 드러났듯이 교회는 신자들의 성체성사에 대한 신심을 올바르고 정확하게 정립해 줘야 할 막중한 책임을 갖고 있다. 1965년 교황 바오로 6세께서도 거룩한 성체성사에 대한 교리와 흠숭지례에 관한 회칙신앙의 신비를 통해 빵의 전 실체가 그리스도의 몸으로, 그리고 포도주의 전 실체가 그리스도의 피로 바뀌는 놀라운 변화에 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아니한 채, 트리엔트 공의회가 단언하고 있는 이 실체변화의미변화또는 목적변화따위의 용어를 사용하여 이런 변화들에 지나지 않는다고 설명하는 것은 전적으로 옳지 않습니다”(11)라고 쓰셨다. 그러면서 신자들에게 성체를 상징으로 여기는 심각한 위험성을 일깨우셨고, 성체에 대한 올바른 믿음을 알려줄 책임이 먼저 교황 자신에게도 있음을 명백히 하셨다.

그렇기에 오늘날 가톨릭교회가 혼란과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그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이며 왜 이러한 신앙적 위기의 현상들이 점점 확대되고 있는지 알아봐야 한다. 먼저 가톨릭 신앙의 핵심인 성찬 전례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먼저 짚어봐야 할 것이다. 특히 교회가 현재 거행하고 있는 성찬 전례의 방식과 태도에서 비롯될 수 있는 문제점들을 세심하게 점검해 봐야 할 것이다.

3. 성체분배에 관한 문제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현대 교회가 성체성사의 신비를 수호할 수 있도록 성찬례의 규율과 관련된 훈령을 마련하라고 명하셨다.

2004년 교황청 경신성사성은 지극히 거룩한 성찬례와 관련해 준수하거나 회피해야 할 일부 문제들에 관한 훈령 구원의 성사에서 2차 바티칸 공의회 전례 쇄신은 신자들이 거룩한 미사성제에 더욱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이바지하였다”(4)고 평가했다. 하지만 동시에 그럼에도 그림자는 있다’”며 전례의 남용에 대해 언급했다.

오늘날 성직자가 부족하고 신자 수가 많다는 이유로 도입된 비정규 성체분배자 특별 봉사제도가 이러한 전례 남용의 문제를 드러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짚어봐야 할 것이다.

이 훈령에서도 비정규 성체분배자라는 항목에서 성체 분배문제에 대해 매우 세심한 규정들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비정규 성체분배자의 남용에 대해서도 경고하고 있다. “성체를 분배하는 거룩한 성직자의 수가 충분하다면 비정규 성체분배자를 임명하지 않도록 한다. 미사 거행에 참석하였으면서도 성체 분배를 하지 않고 그 직무를 평신도에게 떠넘기는 사제들의 관행은 비난받아 마땅하다.”(157) 다만 사제나 부제가 없을 때, 사제가 병약하거나 연로하여 성체를 분배할 수 없을 때 비정규 성체분배자가 성체를 분배할 수 있다.”(158)

그렇지만 영성체를 하는 교우가 적거나 여러 사제가 있는데도 (사제는 앉아 있고) 비정규 성체분배자에게 성체를 분배하게 하거나, 비정규 성체분배자들에게 환자 봉성체를 시키는 것은 교회가 특별 봉사제도를 도입한 의도와는 거리가 매우 먼 것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성체성사를 이룰 수 있는 집전자는 유효하게 성품된 사제뿐이며, 정규 성체분배자는 주교와 사제와 부제이고, 미사 거행 중에 신자들에게 성체를 분배하는 것은 그들의 소임이기 때문이다.(154)

이러한 비정규 성체분배자의 남용을 막기 위해 교구장 주교는 비정규 성체분배자가 폭넓게 임명된 경우에 특별 규범을 발표하여, 법에 따라 교회의 전통을 유념하면서, 그러한 직무를 적절히 수행하는 방법을 확정 지어 주어야 한다”(160)고 언급하고 있다. 어떠한 경우에도 사제의 고유한 직무를 신자들에게 양보함으로써 전례가 남용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32)고 강조했다.그러므로 미사 중에 신자 수가 많다는 이유만으로 비정규 성체분배자를 상습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 이 전례의 남용은 놀라운 성체성사에 관한 가톨릭 교리와 건전한 신앙에 혼란이 생기도록 하는 데 일조(一助)하고 있는 것”(6)이며, 이러한 남용이 계속된다면 전례가 갖는 본연의 의미가 약해지거나 사라지게 될 것이다.

결과적으로 정규 성체분배자보다 더 많아진 비정규 성체분배자의 남용은 사목이나 전례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신자들이 간직해 온 교회의 성사생활과 전례 참여, 신앙심과 관련된 세습된 영적 자산과 유산을 빼앗는 것이 되고 말 것이다. [가톨릭평화신문, 2018819, 최성균 신부(서울대교구 성모노인쉼터 담당)]

4. 영성체 방법에 관한 문제

한국 천주교 사목지침서78조는 영성체 방법에 대해 영성체는 혀로 또는 손으로 자유로이 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미사 없는 영성체와 성체신심 예식서21항에서도 영성체를 시켜줄 때에는 축성된 제병을 영성체자들의 혀에 얹어 주는 방법을 사용한다. 그러나 각 주교회의는 손에 얹어 주는 방법을 허락할 수도 있다. 조건은 교황청의 확인을 받아야 하고, 불경의 위험이 없어야 하고, 성체께 대한 그릇된 생각이 신자들 마음속에 스며들지 않을 경우에 한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2004년 교황청 경신성사성 훈령 구원의 성사92항에서도 모든 신자는 입으로 성체를 받아 모실 권리가 있지만, 손으로 성체를 받아 모시기를 바랄 경우 성체를 손에 들고 멀리 나가지 못하게 주의해야 한다. 신성 모독의 위험이 있다면, 손에 성체를 주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초대 교회에서는 일반적으로 손으로 성체를 받아 모셨다. 그러나 9세기 프랑스 루앙 시노드(878)는 신자들이 입으로 성체를 영하도록 결정했다. 당시에도 신자들이 성체를 손으로 받은 즉시 영하지 않고 집으로 모셔 가서 성체를 모독하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성체께 대한 경외심이 매우 커 오직 사제만이 성체를 만질 수 있다는 확고한 신심도 이같은 결정의 배경이었다. 9세기부터 1968년까지 모든 가톨릭 교회에서 신자들은 영성체를 할 때 무릎을 꿇고 턱밑에 영성체 받침을 받치고 입으로 성체를 받아 모셨다.

그러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직후 유럽 일부 지역 교회에서 손으로 하는 영성체를 부분적으로 허용했다. 교황청 경신성사성은 1969주님의 기념제훈령에서 손으로 하는 영성체 방법에 관한 철저한 교리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손으로 하는 영성체를 할 때는 성체성사의 현존에 대한 신앙 의식을 약화시키는 조짐마저도 배제하며, 성체께 대한 신성 모독의 위험이나 그런 위험의 징조마저 배제하도록 한다.”

그렇다면 과연 오늘날 이 손으로 하는 영성체 방법을 실시할 때 교회의 이 훈령들과 지침들을 각 지역 교회가 철저하게 실천하고 있는가?

초대 교회에서는 제자들이 얼마나 굳은 믿음으로 성체를 영했을 것이며, 얼마나 깊은 흠숭과 경외심을 가지고 그리스도의 명을 따라 이 생명의 빵을 분배해 주었겠는가! 그리고 자신들과 똑같이 그리스도교인들이 성체를 영하도록 제자들은 얼마나 큰 관심을 가지고 가르쳤겠는가!

오늘날 손으로 하는 영성체를 할 때 드러나는 가장 중대한 문제점은 영성체자들이 거룩한 성체를 경솔하게 대하거나, 동작이 기계적인 습관으로 변하면서 점점 성체께 대한 흠숭을 경시하고 하락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손으로 하는 영성체 방법은 신자들의 신앙을 약화시켰고, 가장 중요한 그리스도의 몸인 성체께 대한 흠숭을 하락시키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들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성체 흠숭에 대한 철저한 교리교육이 우선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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