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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말씀과 묵상

[홍기선 신부의 복음의 기쁨 해설] (11) 인간의 한계 상황 속에서 선교 폭우 속에도 목자가 있기에

작성자은총의샘|작성시간26.06.17|조회수137 목록 댓글 0

[홍기선 신부의 복음의 기쁨 해설] (11) 인간의 한계 상황 속에서 선교

폭우 속에도 목자가 있기에

 

인간은 여러 가지 한계를 지닌 존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 속에서 끊임없는 변화를 통해 발전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하느님 나라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교황은 이와 같은 여정 속에서 선교를 위해 뛰어든 사목자들이 지녀야 할 태도와 덕목에 대해 일러준다. 먼저 어느 시대이든지, 그 시대 상황 속에서 계시된 말씀을 해석하고 진리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40). 또한 그 시대에 맞는 진리의 표현 방식을 습득해야 한다(40). 그리고 부족한 인간의 한계 상황을 인정해야 한다. 그들에게 사랑이 담긴 위안과 격려로 하느님의 구원 의지를 전달해 주는 자비의 사목자가 되어야 한다(44).

복음을 더 정확히 전하기 위한 수단

학문의 발전은 진리를 더욱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하게 해준다. 그 결과, 우리의 신앙은 더욱 깊어지게 된다. 성경 주석가들과 신학자들의 책무는 교회의 판단이 더욱 성숙하도록 돕는 것이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사회과학역시 교회를 위해 봉사함을 언급하기도 했다. “교회는 교도권의 직무를 완수하는 데 필요한 구체적 정보를 얻기 위해, 사회과학의 공헌에 관심을 갖습니다”(40).

철학과 신학과 사목의 다양한 사상의 발전은 교회를 성장시키는 밑거름이 된다. 따라서 신앙인들은 복음의 기쁨을 전하기 위해, 이 모든 학문의 도움을 적극적으로 수용해야 한다. “그러한 모든 것이 한없이 풍요로운 하느님 말씀을 더욱 분명하게 표현할 수 있도록 해 주기 때문입니다”(40).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앙의 내용 속에는 이유와 논증의 명백한 영역을 넘어서는 것들이 있다. 교황은 어떤 모호함으로 표현되는 신앙의 십자가의 존재를 언급하면서, 이것 때문에 신앙인의 믿음의 동의가 흔들리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아우구스티노의 말대로, 계시된 진리를 알기 위해서 믿을 때, 신앙의 동의는 언젠가 깨달음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따라서 복음 선포자는 자신의 삶을 통해 믿음의 동의를 드러내야 한다. 비신앙인들과의 친교 그리고 그들 안에서의 사랑과 증언의 삶을 통해, 그들도 마음으로부터 동의할 수 있도록 일깨워야 하는 것이다(42).

또한 현대 사회의 급격한 문화적 변화에 발맞추어 진리의 표현 방법을 계속해서 탐구해야 한다. 진리의 본질은 변하지 않으나, 그 표현 방법과 용어는 그 시대의 문화 속에서 재해석돼야 하기 때문이다. 만일 이와 같은 문화적 적응을 하지 못하고 과거의 표현에 집착한다면, 그 본질은 왜곡되고 복음의 아름다움은 실종되고 말 것이다. 더 이상 매력적이지 못하게 된다. 교황은 요한 바오로 2세의 회칙을 인용하며 이렇게 강조한다. “진리의 표현은 여러 가지 형태를 취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의 사람들에게 복음의 변함없는 의미를 온전히 전달하려면, 이러한 표현 형태들이 반드시 쇄신되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합시다”(41).

고해소, 치유의 장이 돼야

교황은 고해실은 고문실이 아니라고 설명하면서, 사제들이 자비의 사목자가 되길 당부했다. 죄악에 떨어지는 인간 존재의 부족함과 한계를 인정하고 자비와 인내를 갖고 그들과 동행해야 한다고 했다. 교황은 치빌타 카톨리카(예수회 잡지)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고해 신부는 너무 엄격하거나 너무도 느슨한 사람이 될 위험이 항상 있습니다. 이 두 형태의 고해 신부 모두 자비로운 사람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들 중 누구도 참된 의미에서 이 고백자의 부담을 덜어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엄격한 사제는 그 책무를 계명에 넘기며 자신의 손을 씻은 사람입니다. 방임적 사제는 단순히 그것은 죄가 아니라고 말하거나 이와 비슷하게 처신하며 자신의 손을 씻은 사람입니다. 고백자들을 그렇게 홀로 내버려서는 안 됩니다. 그들의 상처는 치유되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여러 가지 제약과 한계 속에서 용기를 갖고 내딛는 사람들의 작은 발걸음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분이시다. 하느님의 사랑은 저마다의 잘못과 실패를 넘어 모든 사람 안에서 신비롭게 움직인다(44). 자비의 사목자는 그들에게 이렇게 선포하는 자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구원하셨습니다.”

신발이 더럽혀지더라도

이렇게 복음화의 임무는 용어와 상황의 한계 속에서 수행된다. 선포자들은 이러한 한계들을 잘 알고 스스로 약한 이들에게는 약한 사람처럼 되고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1코린 9,22) 되어야 한다. 결코 자기 자신 안에 갇혀서도 안 된다. 거리의 진흙탕에 신발이 더럽혀지더라도 좋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어야 한다(45).

 

 

 

 

 

[홍기선 신부의 복음의 기쁨 해설] (12) 교회는 열린 마음을 지닌 어머니

문을 열고 양들 곁으로

 

교황은 여러 가지 표현으로 교회를 설명했다. 먼저 전통적인 표현인 어머니의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 소제목으로 사용했다. 교회를 어머니라 할 때, 교회는 비옥한 모체라는 의미이다. 하느님의 아들과 딸을 끊임없이 탄생시키는 어머니이다. 그렇게 되어야 한다.

교황은 치빌타 카톨리카와의 인터뷰에서 그 의미를 부정적 예를 들면서 강조했다. “교회의 사목 직무에 종사하는 축성된 남성이든 여성이든 간에, 그들의 좋지 못한 품행을 제가 알게 되었을 때, 제일 먼저 어떤 생각이 드는지 아십니까? 아이고! 여기 열매 맺지 못하는 총각처녀가 있구나! 그들은 아버지도 될 수 없고 어머니도 될 수 없습니다. 생명을 줄 능력을 지니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사목자들을 호되게 야단치시는 말씀이다.

교황은 또 다른 표현인 아버지를 사용하며 교회를 설명했다. “때때로 우리는 방탕한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아버지가 되어야 합니다. 그 아버지는 아들이 돌아와 선뜻 집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언제나 문을 열어 둡니다”(46). “교회는 언제나 문이 활짝 열려 있는 아버지의 집이 되어야 합니다. 모든 성당의 문이 언제나 열려 있다면, 이러한 개방성을 보여 주는 하나의 구체적인 표시가 될 것입니다. 누군가 성령의 이끄심에 따라 하느님을 찾고자 성당을 찾아왔을 때, 차갑게 닫혀 있는 문을 마주하지는 않을 것입니다”(47). 교회는 생명을 잉태하여 출산하는 어머니, 탕자를 기다리는 자비로운 아버지의 모습을 지녀야 함을 강조하셨다. 특히 사목자들에게 하신 말씀이다.

백성이 원하는 건 목자

교황은 치빌타 카톨리카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교회의 사목자는 자비로워야 합니다. 사람들의 짐을 들어주는 사목자여야 합니다. 마치 착한 사마리아 사람이 그의 이웃을 씻겨 주고, 닦아 주고, 일으켜 세운 것처럼, 그들과 동무되어 함께 가주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사목자들은 사람들의 가슴을 뜨겁게 만들 수 있어야 하고, 그들과 함께 어두운 밤길을 걸을 수 있어야 합니다. 대화할 줄도 알아야 하고 그들의 어둠 속으로 내려갈 줄도 알아야 합니다. 그 암흑 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는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하느님 백성은 목자를 원합니다. 나라의 공무원처럼 행세하는 성직자를 원하지 않습니다.”

교황은 사목자들에게 담대한 용기를 지니도록 독려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길을 잃게 될 것을 두려워하기보다는, 우리에게 거짓 안도감을 주는 조직들 안에 갇히는 것을, 우리를 가혹한 심판관으로 만드는 규칙들과 우리를 안심시키는 습관들 안에 갇히는 것을 두려워하며 움직여 주시길 부탁드립니다”(49).

목자, 잃어버린 양을 찾아 나서야

교황은 계속 자신의 생각을 발전시킨다. 성당 문을 열어 놓고 찾아오는 사람만을 기다리지 말라고 했다. 성당을 찾지 않는 사람, 교회를 떠난 사람, 무관심한 사람, 그들을 찾아 나서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누구나 어떤 방식으로든 교회를 통해 구원으로 초대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의 교회 공동체의 일원이 되는 데 필요한 성사의 문들도 활짝 열려 있어야 한다고 했다. 특히 세례성사를 강조했다. 그리고 여러 가지 교회법적 장애로 인해, 성체성사를 배령할 수 없는 사람들을 염두에 두면서, 신중하고도 담대하게 그 문제를 사목적 관점에서 다루길 촉구하였다.

성찬례는 완전한 이들을 위한 보상이 아니라 나약한 이들을 위한 영약이며 양식이기 때문입니다.우리는 자주 은총의 촉진자보다는 은총의 세리처럼 행동합니다. 그러나 교회는 세관이 아닙니다. 교회는 저마다 어려움을 안고 찾아오는 모든 이를 위한 자리가 마련되어 있는 아버지의 집입니다”(47).

교황은 교회의 열린 문을 통해 밖으로 나온 사목자들이 우선적으로 찾아가야 할 사람들을 복음서의 내용을 통해 직접 지시한다. “친구와 부유한 사람이 아니라, 그 누구보다도 가난한 이들과 병든 이들, 자주 멸시당하고 무시당하는 이들, 우리에게 보답할 수 없는 이들(루카 14,14)에게 다가가야 합니다. 이 분명한 메시지를 약화시키는 어떠한 의심이나 변명도 있어서는 안 됩니다.결코 가난한 이들을 저버리지 맙시다”(48).

 

 

 

 

[홍기선 신부의 복음의 기쁨 해설] (13) 현대의 위기 상황등

도전과 유혹 이기고 시대의 빛과 소금 돼야

 

교황은 제2장에서 현대 사회의 위기 상황을 진단하면서, 모든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시대의 징표를 읽고 적절한 대처 방안을 강구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했다. 이때, 제일 중요한 것은 성령의 빛과 힘으로 길러진 시각이다(50). 복음에 기초한 식별력을 발휘해야 한다는 것이다. 급변하는 현대 사회를 성령께서 이끄시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성령께서 이끄시는 역사와 경제와 문화의 방향을 공동체가 선도해야 함을 일깨우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시대의 징표를 읽고, 비록 소수의 그리스도인이라 할지라도, 자신들의 삶의 자리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해야 한다. 교황은 적절한 대처방안이 강구되지 않으면, 참으로 돌이키기 힘든 곤경에 빠질 수 있음을 경고했다. 문화의 비인간화 경향을 특별히 우려하였다.

그렇다면 교황은 이 시대의 징표를 어떻게 잃고 해석하고 있는가? 교황은 자신의 진단을 2장 전체를 통해 소개하고 있다. 그동안의 보편 교도권의 분석과 각국 주교회의의 분석들을 전제 조건으로 하면서, 사목적 관점에서 자기 생각을 간략히 그러나 폭넓게 언급했다. 특별히 교회가 선교적인 모습으로 쇄신되고자 할 때, 그 역동적 에너지를 약화하거나 제한하는 현실적 장벽들을 두 부문으로 나누어 일일이 지적하였다.

황금만능주의의 도전

두 부문의 제목은 도전유혹이라는 각각의 주제로 분류되어 붙여졌다. “오늘날 세상의 도전들사목 일꾼들이 겪게 되는 유혹들이다.

세상의 도전들은 다음과 같이 구분되었다. 황금만능주의의 도전 문화적 도전 신앙 토착화의 도전 도시 문화의 도전이다. 여기에서 황금만능주의의 도전4가지 거절해야 할 시대적 경향을 통해 설명하고 있다(배척의 경제, 돈의 새로운 우상, 지배하는 금융제도, 불평등). 그러나 교황은 이 4가지를 주제를 황금만능주의의 도전’(필자가 만든 제목이다)이라는 제목 아래의 소주제로 두지 않고, 직접 4가지 주제를 다루었기에 독자들은 조금 혼돈될 수도 있다. 그러나 필자의 설명을 통해 잘 살펴보면, 그 구조를 파악하게 될 것이다. 그 구체적인 내용 설명은 다음 회부터 시작해 보겠다.

수용과 거부, 명확히 해야

두 번째로 다룬 것은 유혹들이다. ‘사목 일꾼들이 겪게 되는 유혹들이다. 다음과 같은 소제목으로 구분하여 설명하면서, 수용과 거부의 분명한 태도를 취하도록 이끌고 있다. 좋은 것은 취하고 나쁜 것은 버리라는 것이다. 특히 사목자들이 빠질 수 있는 나쁜 유혹들의 종류와 형태를 구체적으로 지적함으로써, 경계를 당부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선교 영성의 도전에 대한 수용”, “이기적인 나태는 안 된다”, “무익한 비관주의는 안 된다”, “그리스도께서 가져다주신 새로운 관계의 수용”, “영적 세속성은 안 된다”, “우리 사이에 싸움은 안 된다”, “교회의 또 다른 도전들”. 교황은 제목을 붙이면서 아니오를 분명히 구분하였다. ‘할 것은 예하고, 아니라고 할 것은 아니라고 해야 함을 강조했다. 받아들일 것은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거부해야 할 것은 거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구체적 내용 설명도 다음에 다룰 것이다.

발전 뒤에 드리워진 그림자

많은 사람이 현대 사회의 기술 혁신과 산업 발전으로 말미암은 경제적 성장에 도취되어 있을 때, 교황은 피상적 현상들 이면에 숨어 있는 진실을 놓치지 않는다. 내적 공허감 속에서 신음하면서도, 그 해결책을 외적 즐거움에서만 찾으려 드는 현대 사회의 질병을 식별하여 분명히 드러내 주었다. 그 식별의 내용을 다음과 같다.

수많은 질병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 심지어 강대국이라 불리는 나라의 사람들조차 두려움과 절망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살아 있다는 기쁨이 자주 퇴색되고, 다른 이들에 대한 존중이 갈수록 결여되며, 폭력이 증가하고, 사회적 불평등이 더욱 심화하고 있습니다. 살기 위해서, 흔히 인간의 품위마저 버린 채, 살기 위해서라도 고군분투해야 합니다”(52).

비록 현대 사회가 건강교육커뮤니케이션분야에서 많은 발전을 했으나, 그 혜택을 누리는 사람은 소수이고 대다수 사람은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거나 비참한 삶의 조건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52). 우리가 지금 예언자적 소명을 실천하지 않으면, 현대 사회는 사람을 비인간화시키고 도구화시켜 돌이킬 수 없을 지경으로 만들 것이다(51).

 

 

 

[홍기선 신부의 복음의 기쁨 해설] (14) 황금만능주의의 도전

약육강식의 세계로 전락하고 말 것인가

 

2013년 여름, 브라질의 코파카바나 해변으로 전 세계 370만 명의 청년들이 모였다. 일주일 동안 치러질 세계청년대회 때문이었다. 교황은 십자가의 길행사 때, 특별한 사람들을 초대했다. ‘퇴출되어 일자리 없는 아르헨티나 사람들’(laboradores excluidos)이었다. 그들은 골판지 수집으로 생활하는 사람들’(cartoneros, 영어로는 waste picker)이다. 십자가의 길을 하는 동안 당신 곁에 머물게 하였다. 서민 주택 혹은 빈민가에 거주하는 남녀 35명 정도가 초대됐다. 그들은 2001년의 처참한 경제적 위기가 닥치기 전까지 정규직이었고, 사회보장 혜택까지 받던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골판지와 금속 조각, 그리고 음식을 찾기 위해 쓰레기를 뒤지며 하루하루 연명하는 사람들이다. 아르헨티나 전체에 약 10만 명 정도가 있고, 부에노스아이레스에만 8천 명 정도가 있다. 교황은 이미 자신의 착좌 미사에도 그들의 대표인 세르지오 산체스(Sergio Snchez)를 초대했었다. 그는 퇴출당한 이들의 운동’(Movimiento de Trabajadores Excludos)이라는 문구가 새겨진 작업복, 녹색과 푸른색으로 양분된 유니폼을 입고 참석했다. 세상에서 제일 힘 있는 나라의 수장들보다 앞자리에 앉아서 참관했다. 그날 온 세상은 교황이 왜 그를 불렀는지 궁금해했었다.

돈을 중심으로 형성된 사악한 문화

복음의 기쁨2장을 살펴보고 있다. 교황은 황금만능주의의 도전을 언급하면서 강한 어조로 ’(No)라고 외치고 있다. ‘배척의 경제’, ‘새로운 우상인 돈’, ‘세상을 지배하는 금융 제도’, ‘사회적 불평등은 척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황금만능주의가 낳은 사회적 경향이다. 만일 이것들을 용인하거나 묵인하게 되면, 우리 인간의 품위와 존엄이 훼손될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는 무자비하고 비인간적인 사회로 전락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51).

교황은 먼저 배척의 경제는 안된다고 소리를 높였다. 여기서 사용하는 배척이라는 말은 퇴출로 바꾸어도 된다. 소수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정당하게 고용된 사람들을 정리 해고하여 마치 폐품처럼 버리는 문화를 의미한다. 사람이 우선시되고 중심이 되는 문화가 아니라, 돈이 최고의 가치를 지니고 그것을 중심으로 형성된 사악한 문화다. 소득의 균형 있는 분배를 통해 모든 사람의 성장을 도모하기보다는, 전체의 총생산량과 성장에만 의미를 두고 펼치는 경제 정책이다. 신자유주의 경제의 폐해다. 교황은 이렇게 말한다.

이제는 단순히 착취와 억압 현상의 문제가 아닙니다. 전혀 새로운 어떤 것입니다(). 배척된 이들은 다시는 사회의 최하층이나 주변인이나 힘없는 이들이 아니라, 사회 밖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착취된이들이 아니라 쫓겨난 이들, ‘버려진사람들입니다”(53).

그들은 소외된 사람 혹은 주변인이란 개념으로 포괄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경계 지역에조차 몸 붙이지 못하도록, 아예 무대 밖으로 추방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돈을 숭배하는 사회는 그들의 공간을 허락하지 않는다. 차라리 없어져 버렸으면 좋은 존재들이다. 약육강식의 짐승들 세계의 모습과 다를 바 없다. 교황은 이와 같은 악마적 경향을 지적하고 있다.

남의 아픔이 느껴지지 않는 세상

돈으로 형성된 삶의 무대 위에 존재하는 사람들은 그 무대 밖으로 퇴출된 사람들의 존재에 대해 무관심으로 일관하게 된다. 자신들이 만든 이상적 가치관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방해가 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교황은 이와 같은 경향이 매스 미디어의 발달로 형성된 세계화를 통해, 온 인류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했다. 소위 말해 무관심의 세계화”(54)가 진행되고 있음을 지적했다. “알게 모르게 우리는 다른 이들의 고통스러운 절규 앞에서 함께 아파할 줄 모르고, 다른 이들의 고통 앞에서도 눈물 흘리지 않으며, 그들을 도울 필요조차 느끼지 못하게 되었습니다”(54).

낙수 효과는 없다

신자유주의 경제 이론은 1980년대에 미국 레이건 행정부가 채택한 경제 정책이다. 부유층과 대기업에 감세 혜택을 주고 공공기관의 민영화를 추진하며 시장의 자율성에 절대권을 부여하는 경제 정책이다. 우리나라에는 1997년 외환 위기를 겪으면서, 구조 조정과 정리 해고를 통해 부실한 기업을 회생시킨다는 목적으로 도입되기 시작했다. 최근에 부유층 감세와 공공기관의 민영화 움직임 등이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의 일환으로 추진되고 있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의 ··(세금과 정부 규모를 이고, 불필요한 규제를 , 법질서를 우자는 뜻)’ 정책이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교황은 사실로 확인되지 않은 낙수 효과’(trickle-down) 이론을 맹종하는 것을 경계시키고 있다. 시장 경제에 절대적 자율권을 부여하고 부유층에 감세하면, 중간 계층과 하부 계층에게까지 순차적으로 그 혜택이 돌아간다는 낙수 효과 이론은 더 이상 설 자리가 없다는 것이다. 그 결과로 나타난 것이 더욱 심화된 양극화 현상과 배척의 경제라는 비도덕적이며 악마적 사회 현상이다. 배척의 경제는 안 된다(53).

 

 

[홍기선 신부의 복음의 기쁨 해설] (15) 돈의 새로운 우상은 안 된다

 

현대 사회에 반복되는 금송아지 숭배

2008915, 미국의 투자 은행 리만 브러더스사가 파산했다. 주택 담보 대출(Subprime Mortgage)에 대한 투자 실패 때문이었다(‘Subprime’은 은행의 고객 분류 등급 중 불량 대출자를 의미한다. ‘Prime’우량 고객이다. Mortgage주택 담보 대출을 뜻한다). 관련된 금융 기관들이 연쇄적으로 부도 위기에 몰리거나 파산하고 인수 합병되었다. 세계 금융 시장이 요동쳤고, 금융 불안으로 투자와 소비가 급랭하면서, 세계 경제가 동반 침체했다. 보도매체에서는 난리를 피워댔다. ‘모기지때문에 세계금융위기(Global Financial Crisis)가 닥쳤다는 것이다. 경제 용어에 밝지 못한 필자에게 너무도 낯선 모기지’(mortgage)라는 영어식 표현이 이제는 마치 모국어처럼 들릴 정도가 됐다.

교황은 세상의 가치관에 대해 비판하며 이렇게 말했다. “나이 든 노숙자가 길에서 얼어 죽은 것은 기사화되지 않으면서, 주가지수가 조금만 내려가도 온 세상이 난리가 납니다”(53). “‘이 우리 자신과 우리 사회를 지배하도록 방치해 놓았기 때문입니다”(55). 우리가 돈의 노예가 되었다는 말과 다를 바 없는 표현이다.

물신주의 앞에 말살되는 인간성

우리가 현재 겪고 있는 금융 위기의 원인을 여러 가지로 분석해 볼 수 있으나, 교황은 근원적이며 본질적 이유를 문제 삼는다. 세상의 모든 재화는 인간을 위해 존재하고, 인간의 복지와 구원을 위한 소비재이건만, 인간이 오히려 재물의 노예로 전락해 버리고 말았다고 한탄한다.

이는 고대의 금송아지에 대한 숭배(탈출 32,1-35)와 다를 바 없다. 이 시대는 돈에 대한 물신주의에 빠져 있다. 그 결과 비인간적이고 무자비한 경제 시스템이 무소불위의 힘으로 인간성을 말살시키고 있다.

우리가 원하는 시스템은 배척과 불평등이 없는 경제 시스템, 인간 중심적인 시스템, 모두가 함께 살고, 함께 참여하며 미래로 나아가는 상생과 공생의 경제 시스템이다.

소비욕의 존재로 전락하는 인간

최근 우리 주변에서 착한 소비혹은 윤리적 소비그리고 공정 무역이라는 표현이 심심치 않게 들린다. 기업이 보건, 빈곤, 환경과 같은 사회적 문제의 해결을 위해, 자신의 상품의 일정 부분의 이익을 활용하겠다고 했을 때, 소비자가 그 물건을 구매하면, 간접적으로 사회적 문제 해결에 동참한다는 자부심을 가지도록 부추기는 시스템이다. 그렇게 소비자의 자긍심을 높여주기에 윤리적 소비혹은 착한 소비라 불린다. ‘공정 무역은 생산자와 사업자가 상생하도록 돕는 무역이다. ‘공정 무역 커피라는 말도 생소하지 않을 것이다. 하여간 소비를 하면서도 생산자에게 충분한 대가를 전달한다는 상생의 윤리 의식도 챙기도록 하고 있다. 유럽 사회에서는 비교적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이 모든 것은 나름 도덕적 이유를 근거로 소비의 정당성을 제시하고 있으나, 교황의 날 선 비판을 온전히 피하진 못했다. 교황은 기업들의 코즈마케팅(Cause Marketing, 명분마케팅) 전략 역시 인간을 욕구의 하나로만, 곧 소비욕의 존재로 전락시키는 것”(55)으로 규정했다. 시장에 새로운 제품이 나오면, 사지 못해 안달이 나는 사람들로 만들었다. 이 모든 것들은 을 우상화한 황금만능주의의 결과이다.

경제 시스템, 인간 중심으로 돌아갈 수 없나

교황은 여기에서 국가의 역할을 부각시킨다. ‘공동선을 지키는 역할을 맡은 국가는 자신의 통제권을 발휘하여 경제 시스템 자체가 인간 중심적으로 전환되도록 힘써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의 시장의 자율권의 절대적 군림은 다음과 같은 해악을 가져왔다. “눈에 보이지 않고 때로는 가상으로 존재하는 새로운 독재가 출현하여 일방적이고 무자비하게 자기 법과 규칙을 강요하고 있습니다.널리 만연한 부패와 이기적인 탈세가 세계적 규모를 띠고 있습니다. 이익 증대를 목적으로 모든 것을 집어삼키려 하는 이 체제 안에서, 절대 규칙이 되어 버린, 신격화된 시장의 이익 앞에서 자연 환경처럼 취약한 모든 것은 무방비 상태에 놓여 있습니다”(56).

시인 이의용님이 쓴 돈이 보낸 편지를 옮겨본다. “당신은 언제나 나를 움켜쥐고는 나를 당신의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당신이 나의 것이지요. 나는 아주 쉽게 당신을 지배할 수 있어요. 우선 당신은 나를 얻기 위해서라면 죽는 것 말고는 무엇이든지 하려고 합니다. 나는 사람들에게 있어 무한히 값지며 보배로운 존재입니다. 물이 없으면 한 포기의 풀도 살 수 없듯이, 내가 없으면 사람은 물론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죽고 말 것입니다. 회사도, 정부도, 학교도, 은행도부디 나의 노예가 되지 않도록 조심스럽고 현명하게 나를 다루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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