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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말씀과 묵상

월 21일 제 12주간 주일 제1독서 사무엘 상권에 의한 독서 16,1-13 다윗이 왕으로 축성되다

작성자은총의샘|작성시간26.06.21|조회수53 목록 댓글 0

621일 제 12주간 주일

1독서

사무엘 상권에 의한 독서 16,1-13

다윗이 왕으로 축성되다

그 무렵 1 주께서 사무엘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사울을 이스라엘왕의 자리에서 파면시켰다고 해서 너는 언제까지 이렇게 슬퍼만 하고 있을 셈이냐? 기름을 뿔에 채워 가지고 길을 떠나거라. 내가 너를 베들레헴에 사는 이새라는 사람에게로 보낸다. 그의 아들 가운데서 내가 왕으로 세울 사람을 하나 보아 두었다.”

 

2 사무엘이 사울이 알면 저를 죽일텐데 어떻게 갑니까?” 하고 여쭙자 주께서는, “암송아지 한 마리를 끌고 가거라. 주님께 제사를 드리러 왔다고 하면서 3 이새를 제사에 초청하여라. 그러면 네가 할 일을 내가 알려 주리라. 너는 내가 지적하여 일러주는 자에게 기름을 부어 그를 성별시켜 나에게 바쳐라.” 하고 이르셨다.

 

4 사무엘은 주께서 이르시는 대로 하였다. 그가 베들레헴에 다다르자 그 성읍의 장로들은 안절부절못하고 그를 맞으며 언짢은 일로 오신 것은 아니겠지요?” 하고 물었다. 5 “아니오. 좋은 일로 왔소. 주님께 제사를 드리러 온 것이오. 그러니 모두들 목욕 재계하고 함께 제사 드리러 갑시다.” 이렇게 일러 놓고 사무엘은 이새와 그의 아들들을 목욕 재계시킨 다음 제사에 나오라고 초청하였다.

 

6 그들이 나타나자 사무엘은 엘리압을 보고 속으로 바로 여기 주께서 기름 부어 성별하실 자가 있구나.” 하고 생각하였다. 7 그러나 주께서는 사무엘에게 용모나 신장을 보지는 말라. 그는 이미 내 눈 밖에 났다. 하느님은 사람들처럼 보지 않는다. 사람들은 겉모양을 보지만 주님은 속마음을 들여다본다.” 하고 이르셨다. 8 다음으로 이새는 아비나답을 불러 사무엘 앞에 나와 서게 하였다. 그러나 사무엘은 이 아들도 주께서 뽑으신 아들이 아니오.” 라고 하였다. 9 이새가 다시 삼마를 보여 드렸지만, 사무엘은 그도 주께서 뽑으신 아들이 아니라고 하였다.

 

10 이렇게 이새가 아들 일곱을 사무엘 앞에 나와 뵙게 하였다. 그러나 사무엘은 이 아들 가운데는 주께서 뽑으신 아들이 없소.” 하고 11 이새에게 그밖에 아들은 또 없느냐고 물었다. 이새가 막내가 또 있긴 하지만 지금 양을 치고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사무엘이 이새에게 사람을 보내 데려오시오. 그가 올 때까지 우리는 식탁에 앉을 수가 없소.” 하고 일렀다. 12 이새가 사람을 보내어 데려온 그는 볼이 붉고 눈이 반짝이는 잘생긴 아이였다. 주께서 말씀을 내리셨다. “바로 이 아이다. 어서 이 아이에게 기름을 부어라.” 13 그리하여 사무엘은 기름 채운 뿔을 집어 들고 형들이 보는 앞에서 그에게 기름을 부었다. 그러자 주님의 영이 다윗에게 내려 그날부터 줄곧 그에게 머물러 있었다. 사무엘은 길을 떠나 라마로 갔다.

응송 시편 88(89),20bc. 22a. 21

영웅에게 왕관을 씌웠노라. 백성 중에 뽑힌 자를 높이었노라. * 내 손이 항상 그와 함께 있노라.

나는 내 종 다윗을 얻어 만나, 거룩한 기름으로 발라 주었으니,

내 손이. 항상 그와 함께 있노라.

 

2독서

파우스티누스 루치페라누스 사제의 삼위일체론에서 (Nn. 39-40: CCL 69,340-341)

그리스도는 영원히 왕이시고 사제이십니다

우리 구세주께서는 육신을 따라 참으로 기름 부음 받은 이가 되시어, 참된 왕, 참된 사제가 되셨습니다. 그분은 구세주로서 아무 부족함이 없도록 두 가지 신분을 다 지니셨습니다. 주님은 다음 성서 말씀에서 당신 자신이 왕이 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주는 당신의 거룩한 시온산 위에다 나를 임금으로 세우셨도다.” 그리고 다음 성서 구절에서 아버지께서는 당신 아드님의 사제적 품위를 증거하십니다. “너는 멜기세덱의 품위를 따라 영원한 사제이니라.” 옛적에 기름 부음 받아 최초로 사제가 된 사람은 아론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구세주께서 계승으로써 사제직을 이어받았다고 생각하지 않도록 여기에서 아론의 품위를 따라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아론이 가졌던 사제직은 대대로 물려주는 것이었지만 우리 구세주의 사제직은 대대로 물려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분은 영원토록 사제이십니다. 그래서 너는 멜기세덱의 품위를 따라 영원한 사제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구세주께서는 육신을 따라 왕이시고 사제이십니다. 그러나 그분께서 기름 부음 받으신 것은 영적인 것이고 육신적인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의 왕들과 사제들은 육신적으로 기름 부음 받아 그 지위에 올랐습니다. 그렇지만 한 사람이 둘 다 되지는 않았습니다. 각자는 왕이든가 또는 사제이든가 했습니다. 율법을 완성시키지 위해 오신 그리스도께만 만사에 있어 완성과 충만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개인으로서 둘 다 될 수는 없었지만 육신적으로 기름 부음 받아 왕이나 사제로 축성된 이들은 그리스도기름 부음 받은 이라 하였습니다. 한편, 참으로 그리스도기름 부음 받은 이이신 우리 구세주께서는 당신에 관해 기록된 것을 이루시려고 육신적으로가 아니라 성령으로 기름 부음 받으셨습니다. “하느님이, 당신의 하느님이 즐거움의 기름으로 당신의 동료들보다 당신을 바르셨나이다.” 주님은 성령을 뜻하는 즐거움의 기름으로 기름 부음 받으셨기 때문에 당신 동료들보다 더 위대한 기름 부음을 받으셨습니다.

이것을 주님 친히 확인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이사야 예언서의 두루마리를 받아 드시고 주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으셨기에 주님의 성령이 나에게 내리셨다.”라는 대목을 읽으셨을 때 듣고 있던 사람들에게 그 예언이 성취되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들의 으뜸인 베드로도 그리스도이신 구세주께서 부음 받으신 크리스마는 성령 즉 하느님의 능력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사도행전에서 그는 지극히 충실하고 자비로운 백부장인 고르넬리오에게 다른 여러 가지 가운데서 이것을 말했습니다. “요한이 세례를 선포한 이래 갈릴래아에서 비롯하여 온 유다 지방에 걸쳐서 일어났던 나자렛 예수에 관한 일들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분에게 성령과 능력을 부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두루 다니시며 좋은 일을 해주시고 악마에게 짓눌린 사람들을 모두 고쳐 주셨습니다.”

우리가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여기서 베드로는 인간인 예수께서 성령과 능력으로 부음 받았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인간인 예수께서 참으로 기름 부음 받은 이그리스도가 되셨고, 성령의 기름 부음으로 영원히 왕이시고 사제이십니다.

응송 히브 6,20 참조

민족들을 구원하러 오시는 분의 위대함에 놀라나니, * 그분은 정의의 왕, 만세의 아들이시도다.

그분은 우리를 위해 선구자로, 멜기세덱을 잇는 영원한 대사제로 오시도다.

그분은. 정의의 왕, 만세의 아들이시도다.

 

 

 

622일 제12주간 월요일

1독서

사무엘 상권에 의한 독서 17,1-10. 32. 38-51

다윗이 골리앗과 싸우다

 

그 무렵 1 불레셋은 전쟁을 일으키려고 군대를 소집하여 유다 소고에 집결했다가 소고와 아제카 사이에 있는 에베스담밈에 진을 쳤다. 2 사울은 이스라엘군을 집결시켜 느티나무 골짜기에 진을 치고 불레셋에 맞서 전열을 갖추었다. 3 불레셋과 이스라엘이 골짜기를 사이에 두고 이쪽 저쪽 산 위에 자리를 잡고 있는데 4 불레셋 진영에서 골리앗이라고 하는 장수 하나가 싸움을 걸어 왔다. 그는 갓 출신으로서 장신이었다.

5 머리에는 놋 투구를 썼고 비늘 갑옷을 입었는데 그 갑옷의 무게는 놋 오천 세겔이나 나갔으며, 6 정강이에는 놋으로 만든 정강이 받이를 찼고 어깨에는 놋으로 만든 창을 메고 있었다. 7 그 창대는 베틀 용두머리만큼 굵었고 창날은 쇠로 되어 있었는데 그 무게는 육백 세겔이 넘었다. 방패 당번을 앞에 세우고 8 나서서 그는 이스라엘 진영을 향하여 고함을 질렀다. “전열을 갖추어 가지고 나오면 어쩌겠다는 말이냐? 너희 사울의 졸개들아, 이 불레셋 장수와 맞서 싸울 자를 골라 이리로 내려보내라. 9 만약 그자가 나한테 이겨서 나를 쳐죽이면 우리가 너희 종이 될 터이나, 내가 이겨서 그자를 죽이면 너희가 우리의 종이 되어 우리를 섬겨야 한다.” 10 그리고 나서 그 불레셋 장수는 다시 소리쳤다. “내가 오늘 이렇게 너희 이스라엘 진영에 욕을 퍼붓는데도, 나와 결판을 낼 사람을 내보내지 못하겠느냐?”

32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였다. “저자 때문에 상심하지 마십시오. 소인이 나가 저 불레셋 놈과 싸우겠습니다.” 38 사울은 자기 군복을 다윗에게 입힌 다음, 머리에는 놋 투구를 씌워 주고 몸에는 갑옷을 입혔다. 39 그리고 자기 칼을 다윗의 군복에 채워 주었다. 그러나 다윗은 이런 것을 입어 본 일이 없었으므로 몸을 제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다윗은 사울에게 이런 것은 입어 본 적이 없습니다. 이래 가지고는 몸을 제대로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하고는 그것을 모두 벗어 버렸다. 40 그리고 다윗은 자기의 막대기를 집어 들고 개울가에서 자갈 다섯 개를 골라 목동 주머니에 넣은 다음 돌팔매 끈을 가지고 그 불레셋 장수 쪽으로 걸어갔다.

41 불레셋 장수도 방패 당번을 앞세우고 한걸음 한걸음 다윗에게 다가왔다. 42 불레셋 장수는 다윗을 건너다 보고 볼이 붉은 잘생긴 어린아이라는 것을 알고는 우습게 여겨, 43 “막대기는 왜 가지고 나왔느냐? 내가 개란 말이냐?” 하고는 자기 신의 이름을 부르며 다윗을 저주하였다. 44 그리고 불레셋 장수는 다윗을 을러메었다. “어서 나오너라. 네 살점을 하늘의 새와 들짐승의 밥으로 만들어 주마.” 45 그러나 다윗은 불레셋 장수에게 이렇게 응수하였다. “네가 칼을 차고 창과 표창을 잡고 나왔다만, 나는 만군의 주님의 이름을 믿고 나왔다. 네가 욕지거리를 퍼붓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느님의 이름을 믿고 나왔다. 46 오늘 주께서 너를 내 손아귀에 넣어 주셨다. 나야말로 네놈을 쳐서 목을 떨어뜨리고 네 시체와 불레셋 전군의 시체를 하늘의 새와 들짐승의 밥으로 만들어 주리라. 그리하여 이스라엘이 모시는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 천하에 알리리라. 47 여기 모인 모든 사람은 이제 주께서는 칼이나 창 따위를 써서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리라. 주께서 몸소 싸우시어 네 놈들을 우리 손에 넘겨주실 것이다.”

48 불레셋 장수가 한걸음 한걸음 다가오자, 다윗은 재빨리 대열에서 벗어나 뛰쳐나가다가 49 주머니에서 돌 하나를 꺼내어 팔매질을 하여 그 불레셋 장수의 이마를 맞혔다. 돌이 이마에 박히자 그는 땅바닥에 쓰러졌다. 50 이리하여 다윗은 칼도 없이 팔매 돌 하나로 불레셋 장수를 누르고 쳐죽였다. 51 다윗은 달려가서 그 불레셋 장수를 밟고 서서 그의 칼집에서 칼을 빼어 목을 잘랐다.

응송 1사무 17,37; 시편 56(57),4c. 5a 참조

주께서 나를 사자와 곰으로부터 살려내셨도다. * 그분은 이제 나를 원수들의 권세에서 살려내시리라.

하느님께서 당신 사랑, 당신 진리를 내게 보내시어, 내가 사자들 가운데 누워 있을 때 나를 살려내셨도다.

그분은. 이제 나를 원수들의 권세에서 살려내시리라.

 

 

2독서

니사의 성 그레고리오 주교의 그리스도인 완성의 원형에서 (PG 46,254-255)

그리스도인은 제이의 그리스도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신지 누구보다 더 잘 알았고 또 그분의 이름, 즉 그리스도인이란 이름을 받은 이들이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지 자신의 생활을 통하여 보여 주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를 너무도 정밀히 본받음으로 해서 자신 안에 이루어진 주님의 형상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정밀히 그리스도를 본받아 그의 영혼의 형상은 원형이신 그리스도의 형상과 너무도 일치하여 이제는 말하는 사람이 바오로가 아니라 그리스도인 것처럼 보였습니다. 자신이 받은 축복을 잘 알고 있던 바오로는 그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나를 통하여 말씀하고 계신다는 증거를 찾고 있던 여러분이 그 증거를 보게 될 것입니다.” 다른 데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내 안에서 사시는 것입니다.”

바오로는 다음의 여러 가지 말씀을 할 때 그리스도라는 이름이 얼마나 큰 힘을 지니고 있는지 우리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능력이시요 지혜이시며, 평화 자체이시고 하느님께서 그 안에 거하시는 접근할 수 없는 빛이십니다. 우리의 속량과 구원과 대사제이시고 파스카이시며 영혼들의 속죄물이십니다. 하느님 영광의 광채요 그분의 본체의 모상이시며, 세기의 창조주이시고 우리의 영적인 양식과 음료이시며, 바위와 물이십니다. 신앙의 기초와 모퉁잇돌이시며,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모상과 위대한 하느님이시고, 당신 몸인 교회의 머리이시며 새 피조물의 맏아들이시고, 죽은 이들 가운데 최초로 부활이신 분이시요 죽은 이들 가운데의 맏아들이시며, 많은 형제들의 맏형이십니다. 하느님과 사람들 사이의 중재자이시며, 영광과 영예의 월계관을 쓰신 외아드님이시고, 영광의 주, 만물의 시작, 정의의 왕이시며 세상의 어느 왕국도 그분을 경계선 안에 갇히게 할 수 없는 그런 권세를 얻으신 평화의 왕, 만물의 왕이십니다.

바오로는 이 칭호들과 이와 같은 다른 여러 가지 칭호들을 그리스도께 적용시키는데, 이들은 너무 많아서 열거하기조차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 모든 칭호들을 분류하여 하나 하나의 의미를 이끌어 낸다면, “그리스도라는 이름이 지닌 놀라운 힘을 드러내 줄 것이고 우리 정신으로 파악할 수 있는 한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 이름의 엄위를 나타내 보일 것입니다.

자비하신 주님은 우리가 모든 칭호 중에 가장 위대하고 거룩하며 첫째가는 그리스도라는 이 이름에 참여하게 하시어, 우리를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으로 꾸며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니고 있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도 우리 안에서 그리스도라는 이름이 표현하고 있는 모든 칭호들을 표현하는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이 이름을 거짓으로 지니고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 우리 생활은 그 이름의 증거와 확인이 되어야 합니다.

응송 시편 5,12; 88(89),16b-17a

주여, 당신께 피신하는 자 모두 다 기뻐하고, 그 기쁨 넘치는 소리 끊임없으리이다. * 당신은 방패 삼아 감싸 주시니, 주님 이름 받드는 자들 주 안에서 즐기나이다.

주여, 그들은 당신 얼굴의 빛 속에 걸으오리니, 그들은 항상 당신 이름으로 기쁘오리다.

당신은. 방패 삼아 감싸 주시니, 주님 이름 받드는 자들 주 안에서 즐기나이다.

 

 

 

 

 

623일 제12주간 화요일

1독서

사무엘 상권에 의한 독서 17,57-18,9. 20-30

다윗에 대한 사울의 질투

그 무렵 17,57 다윗이 그 불레셋 장수를 죽이고 돌아오는데 아브넬이 그를 사울 앞으로 인도했다. 그의 손에는 불레셋 장수의 목이 들려 있었다. 58 사울이 젊은이는 누구의 아들인가?” 하고 묻자 다윗이 저는 베들레헴에 사는 임금님의 종인 이새의 아들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18,1 요나단은 다윗이 사울에게 하는 말을 모두 듣고 나서 다윗에게 마음이 끌려 그를 자기 목숨처럼 사랑하게 되었다. 2 사울은 그날로 다윗을 붙잡아 두고 집으로 돌려보내지 않았다. 3 요나단은 다윗을 자기 목숨처럼 아껴 그와 의형제를 맺었다. 4 요나단은 입고 있던 겉옷을 벗어 주고 다윗에게 칼과 활과 허리띠까지도 다 내주었다. 5 그로부터 다윗은 사울을 따라 출전할 때마다 승전하고 돌아왔다. 그래서 사울은 그에게 군사령관직을 맡겼다. 그것을 백성은 물론 사울의 신하들까지도 모두들 흐뭇하게 여겼다.

6 다윗이 그 불레셋 장수를 죽이고 나서 군대를 이끌고 돌아오자 이스라엘 모든 성읍에서 여인들이 나와 소구를 치고 환성을 올리며 꽹과리에 맞추어 노래하고 춤추며 사울 왕을 맞았다. 7 여인들은 덩실거리며 노래를 주고받았다.

 사울은 수천을 치셨고,

 다윗은 수만을 치셨다네!”

8 사울은 이 말이 비위에 거슬려 몹시 화를 내며 투덜거렸다. “다윗에게는 수만 명을 죽인 공을 돌리고 나에게는 고작 수천 명을 죽인 공밖에 돌리지 않으니 왕의 자리마저 그에게 돌아가겠구나.” 9 그날로부터 사울은 다윗을 주목하게 되었다.

20 한편 사울의 딸 미갈이 다윗을 사랑하고 있었다. 이 일을 전해 듣고 사울은 마침 잘됐다고 생각하였다. 21 “그 애를 아내로 주어야겠다. 그 애를 미끼로 삼아 불레셋 놈들의 손을 빌어 놈을 죽여야지.” 사울은 이런 속셈으로 다윗에게 오늘 당장 내 부마가 되어 주게.” 하고 다시 부탁하였다. 22 그리고는 신하들을 시켜 다윗에게 당신은 왕의 마음에 드셨을 뿐 아니라 왕의 신하들도 다 좋아하니 서슴지 말고 부마가 되시오.” 하고 넌지시 이르게 하였다. 23 사울의 신하들이 다윗에게 그대로 말하였다. 그러나 다윗은 당신들은 나처럼 가난하고 천한 몸으로 부마가 되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이라고 생각하시오?” 하면서 사양하였다. 24 신하들은 사울에게 다윗이 한 말을 전했다. 25 그러자 사울은 다윗에게 가서 왕이 공주를 맞는 몸값으로 원하시는 것은 별게 아니고 왕의 원수를 갚고 불레셋 사람들의 포경 백 개만 잘라 오면 된다.” 고 이르게 하였다. 사울은 이렇게 하여 그를 불레셋 사람의 손을 빌어 죽일 속셈이었다.

26 신하들이 사울의 말을 다윗에게 전하니 다윗은 그것으로 부마가 된다면 좋다고 생각하고 기한도 되기 전에 27 부마가 되려고 부하를 이끌고 나가 불레셋 사람을 이백 명이나 죽이고 그 포경을 모두 거두어 왕에게 바쳤다. 이리하여 사울은 딸 미갈을 주어 그를 사위로 삼았다.

28 그는 주께서 다윗과 함께하시고 자기의 딸 미갈마저 그를 사랑한다는 것을 똑똑히 보고 나서는 29 다윗이 점점 더 두려워져서 끝까지 그를 원수로 여기게 되었다. 30 불레셋 추장들이 싸움을 걸어 왔지만, 그때마다 다윗은 사울의 어느 부하들보다도 잘 싸워 그의 명성은 높아 가기만 하였다.

응송 시편 55(56),2. 4b. 14ab

하느님, 이 몸을 불쌍히 여기소서. 사람이 나를 짓밟으며, 진종일 들이치며 압박하나이다. * 이 몸은 당신께 의지하오리이다.

행여 내 발이 빠질세라, 내 목숨을 죽음에서 건져 주셨나이다.

이 몸은. 당신께 의지하오리이다.

 

 

2독서

니사의 성 그레고리오 주교의 그리스도인 완성의 원형에서 (PG 46,283-286)

우리의 전체 생활은 그리스도를 드러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드러내고 구별 짓는 것은 행동과 말과 생각?이 세 가지입니다. 이 세 가지 중 생각이 먼저 나오고, 다음으로 마음속에 생기고 새겨져 있는 생각을 드러내 밝히는 말이 나오며, 생각과 말 다음으로 마음속에 생각한 것을 실천으로 옮기는 행동이 나옵니다. 그래서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도중 행동하고 생각하고 말하게 될 때, 우리 말과 행동과 생각은 그리스도라는 이름을 설명해 주는 그 칭호들의 거룩한 규범에 맞도록 해야 하고 이들의 고귀한 함축적 의미에서 벗어나는 생각과 말과 행동을 결코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고귀한 이름을 지니는 영광을 가진 사람은 자신의 모든 생각과 말과 행동을 주의 깊게 살펴보아 이 세 가지 각각이 그리스도를 향하고 있는지 또는 그분에게서 떨어져 나가 있는지 판단해 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이 명확한 판단을 여러 방법으로 내릴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어떤 걱정과 불안이 담긴 행동과 생각과 말은 결코 그리스도께 상응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들은 영혼의 진주를 걱정, 불안이라는 진흙과 뒤섞어 그 귀한 보석의 광채를 손상시켜 버리는 악마의 날인과 자취를 지니고 있는 것들입니다.

한편 온갖 애착심에서 벗어난 순결한 것이 우리에게 있다면 그 원천은 우리 마음의 생각과 정감을 순수하고 깨끗한 샘에서처럼 솟아나게 하는 평화의 주이시고 왕이신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래서 개울에 흐르는 물과 항아리에 담겨 있는 맑은 물이 샘 속에 있는 물과 거의 같은 것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에게서 나오는 우리의 생각과 정감은 그 원천인 그리스도와 유사성을 띠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순수성과 우리 마음속에 있는 순수성은 한가지로서 같은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순수성은 샘에서 솟아 나와 샘에 고여 있는 그 순수성이고 우리의 순수성은 샘에서 솟아 나와 우리에게까지 다다른 물의 순수성입니다. 그리고 샘이신 그리스도에게서 나오는 물이 우리에게까지 이를 때 그분의 아름다움과 순수성을 담아다 줍니다. 또 내적 인간과 외적 인간의 조화가 이루어지도록 그리스도에게서 솟아 나오는 생각과 정감은 우리의 실제 생활을 꾸며 주어 거룩함과 질서의 길로 인도해 줍니다.

그러므로 내 생각으로는 그리스도인 생활의 완전성은 그리스도라는 이름이 포함하는 모든 칭호를 우리 내적 생활과 우리 말과 행동이라는 외적 생활에 완전히 참여시키고 그것을 실천으로 옮기는 데 있다고 봅니다.

응송 골로 3,17; 로마 14,7

너희는 무슨 말이나 무슨 일이나, * 모두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라.

우리들 가운데는 자기 자신을 위해 사는 사람도 없고 자기 자신을 위해서 죽는 사람도 없도다.

모두.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라.

 

 

 

624일 제12주간 수요일

1독서

예언자 예레미야서에 의한 독서 1,4-10. 17-19.

예언자의 소명

4 내가 받은 주님의 말씀은 이러하였다.

5 “내가 너를 점지해 주기 전에

 나는 너를 뽑아 세웠다.

 네가 세상에 떨어지기 전에

  나는 너를 만방에 내 말을 전할

 나의 예언자로 삼았다.”

 6 “! 주 하느님, 보십시오.

 저는 아이라서 말을 잘 못합니다.”

하고 내가 아뢰었더니, 7 주께서는 나에게 이렇게 이르셨다.

아이라는 소리를 하지 말아라.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야 하고,

 무슨 말을 시키든지 하여야 한다.

 8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늘 옆에 있어 위험할 때면 건져주리라.

 이는 내 말이라, 어김이 없다.”

9 그러시고 주께서는 손을 내밀어 나의 입에 대시며 이르셨다.

 나는 이렇게 나의 말을 너의 입에 담아 준다.

 10 보아라! 나는 오늘 세계 만방을 너의 손에 맡긴다.

 뽑기도 하고 무너뜨리기도 하고

 멸하기도 하고 헐어 버리기도 하고

 세우기도 하고 심기도 하여라.

 17 너는 허리를 동이고,

 일어나 나의 백성에게 일러주어라.

 내가 시키는 말을 모두 전하여라.

 이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러다가 그들 앞에서 오히려 두려워하게 되리라.

 18 유다의 임금이나 고관들,

 사제들이나 지방 유지들과 함께

 온 나라가 달려들어도

 내가 오늘 너를 단단히 방비된 성처럼,

 쇠기둥, 놋담처럼 세우리니,

 19 아무리 덤벼도 너를 당하지 못하리라.

 내가 네 옆에 있어 도와주리라.

 이는 내 말이라 어김이 없다.”

응송 예레 1,5. 9b-10a

내가 너를 점지해 주기 전에 뽑아 세우고, 어머니의 태중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화시켰고, * 이교인들에게 내 말을 전할 예언자로 삼았도다.

나의 말을 너의 입에 담아 주고, 뭇 민족들을 너의 손에 맡기어 그들을 다스리게 하며,

이교인들에게. 내 말을 전할 예언자로 삼았도다

 

 

 

2독서

성 아우구스티노 주교의 강론에서 (Sermo 293,1-3: PL 38,1327-1328)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

교회는 요한의 탄생일을 축일로 지냅니다. 성인들 중에 이렇게 탄생일을 축일로 지내는 분은 없습니다. 탄생일을 축일로 지내는 분은 두 분뿐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와 요한 세자입니다. 이 축일을 강론 없이 그냥 보낼 수 없습니다. 이 축일의 신비가 요구하는 만큼 설명할 능력이 나에게는 없지만 그래도 우리 모두 이에 대해 한번 생각해 보는 것은 도움이 되리라 봅니다.

요한은 나이 많고 아이를 낳지 못하는 어머니에게서 태어났고, 그리스도는 나이 어린 동정녀에게서 탄생하셨습니다. 요한의 아버지는 요한이 태어나리라는 것을 믿지 않았으므로 벙어리가 되었습니다. 동정 마리아는 자신으로부터 그리스도가 나오시리라 믿었으므로 신앙 안에 주님을 잉태하셨습니다. 이 주제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말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그런데 먼저 말씀을 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내 능력의 부족과 시간 관계로 우리 모두 이 깊은 신비를 제대로 캐내지 못한다면, 내가 없어도 여러분 안에 말씀하시는 분께서 더 잘 가르쳐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분을 경건히 생각하고 마음으로 받아들여 그분의 성전이 되었습니다.

요한은 신약과 구약을 나누는 경계선입니다. 주님 친히 이것을 증언하십니다. “모든 예언서와 율법은 세례자 요한에게서 끝난다.” 요한은 구약을 대표하고 신약을 예고합니다. 요한은 구약의 대표자로서 나이 많은 부모에게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신약의 예언자로서 어머니의 태중에 있을 때부터 예언자로 선언되었습니다. 요한은 태어나기 전 마리아의 방문을 받았을 때 어머니의 태중에서 기뻐 뛰놀았습니다. 그래서 요한은 태어나기 전부터 예언자로 간택되어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보시기 전부터 그리스도의 선구자로 드러났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미약한 이해력을 초월하는 하느님의 업적입니다.

그가 마침내 태어나 자기 이름을 받았을 때, 그 아버지의 혀는 다시 풀렸습니다. 이 사건이 지니고 있는 상징적 의미를 생각해 보십시오. 즈가리야는 주님의 선구자인 요한이 태어날 때까지 말할 능력을 잃어 침묵을 지켰고 요한이 태어나고서야 다시 입을 열 수 있었습니다. 즈가리야의 침묵은 무슨 뜻을 지니고 있습니까? 그리스도께서 복음 전파를 시작하시기 전까지 감추어져 있던 예언이 그 침묵 속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습니까? 그 예언의 대상이 도착하려고 할 때에 비로소 그 감추인 예언의 내용이 드러났습니다. 요한이 태어날 때 즈가리야의 입이 열리는 것은 이런 뜻을 지니고 있고,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성전 휘장이 갈라진 것도 이런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때 요한이 자기 사명을 전할 능력을 갖고 있었다면 즈가리야가 다시 입을 열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외치는 소리가 태어났기 때문에 즈가리야의 입은 풀리게 되었습니다. 요한이 주님의 오심을 전하고 있을 때 당신은 누구입니까?”라는 질문을 받고, 요한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입니다.” 요한은 하나의 소리이고 주님은 천지가 창조되기 전부터 계신 말씀이십니다. 요한은 잠시 동안 외치는 소리이고, 그리스도는 태초부터 계시는 영원한 말씀이십니다.

응송 루가 1,76-77

아기야, 너 지존하신 이의 예언자 되리니, * 주의 선구자로 주의 길을 닦으라.

죄 사함의 구원을 주의 백성에게 알리라.

주의. 선구자로 주의 길을 닦으라

 

 

 

 

624일 제 12주간 목요일

1독서

사무엘 상권에 의한 독서 21,2-10; 22,1-5

다윗이 도피하다

그 무렵 21,2 다윗은 놉으로 사제 아히멜렉을 찾아갔다. 아히멜렉이 당황하여 다윗을 맞아 어떻게 아무도 없이 혼자 오시오?” 하고 묻자 3 다윗은 사제 아히멜렉에게 이렇게 대답하였다. “나는 왕명을 띠고 길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왕께서 저에게 임무를 맡겨 보내시면서 아무에게도 그것을 알리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 부하들과 어느 지점에서 만나기로 약속하고 헤어졌습니다. 4 그런데 지금 사제님께 혹시 먹을 것이 없습니까? 떡 다섯 덩이라도 좋습니다. 없으면 아무것이라도 주십시오.” 5 사제가 보통 떡은 지금 없고, 거룩한 떡밖에 없소이다. 한데 장군의 부하들은 여인을 가까이한 일이 없는지요?” 하고 묻자, 6 다윗이 대답하였다. “나는 이번 길을 떠날 즈음해서 며칠 동안은 여자를 가까이하지 않았습니다. 내 부하들의 그것도 부정을 타지 않았습니다. 이번 길이 예삿일로 가는 길이긴 하지만, 오늘만은 절대로 깨끗합니다.” 7 그제야 사제는 거룩한 떡을 그에게 주었다. 주께 바친 제사 떡밖에는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날이 마침 더운 떡을 갈아 놓는 날이었다.

 

8 그런데 그날 거기에서 사울의 신하 하나가 주님 앞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에돔 출신으로서 이름은 도엑이었는데 사울의 목자들 중에서 가장 힘센 사람이었다. 9 다윗이 아히멜렉에게 왕명이 너무 급해서 칼은 물론 아무 무기도 가지고 오지 못했는데, 여기 창이나 칼이 없습니까?” 하고 물었다. 10 사제가 대답하였다. “장군이 느티나무 골짜기에서 죽인 불레셋 장수 골리앗의 칼밖에 없소이다. 보자기에 싸서 에봇 뒤에 두었는데 그것이라도 가질 생각이 있으면 가지시오. 이곳에 다른 무기라곤 없소이다.” 다윗은 그만한 것이 어디 또 있겠습니까?” 하며 그것을 받아 가졌다.

22,1 다윗은 그 곳을 떠나 아둘람의 굴로 피해 갔다. 그의 형들과 그의 온 집안이 이 소식을 듣고 다윗을 찾아 그리로 내려갔다. 2 또한 억눌려 지내는 사람, 빚을 지고 허덕이는 사람, 그 밖의 불평을 품은 사람들이 다윗 주변에 몰려들었다. 다윗이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는데, 그 수는 사백 명 가량이나 되었다. 3 거기에서 다윗은 모압의 미스바로 가, 모압왕에게 하느님께서 나를 어떻게 하실지 알게 될 때까지 내 부모를 맡아 주십시오.” 하고 청하였다. 4 모압왕은 이 청을 받아들여 다윗의 부모를 맡아 다윗이 그 은신처에 있는 동안 줄곧 곁에 머물러 있게 하였다. 5 그런데 가드라는 예언자가 다윗에게 일렀다. “이 은신처에서 머뭇거리고 있을 게 아니라, 즉시 유다 지방으로 가시오.” 다윗은 하렛 수풀로 자리를 옮겼다.

응송 로마 7,6; 마르 2,25. 26

우리는 율법에 사로잡혀 있었지만, 이제 우리는 죽어서 그 제약을 벗어났도다. * 그래서 우리는 낡은 법조문을 따라서 섬기지 않고, 성령께서 주시는 새 생명을 가지고 섬겨야 하는도다.

너희는 다윗의 일행이 먹을 것이 없어서 굶주렸을 때 다윗이 한 일을 읽어 본 적이 없느냐? 다윗은 하느님의 집에 들어가서 제단에 차려 놓은 빵을 먹었느니라.”

그래서. 우리는 낡은 법조문을 따라서 섬기지 않고, 성령께서 주시는 새 생명을 가지고 섬겨야 하는도다.

 

 

 

2독서

니사의 성 그레고리오 주교의 강론에서 (Orat. 6 De beatitudinibus: PG 44,1263-1266)

하느님은 도달할 수 없는 바위와 같습니다

 

어떤 사람이 높은 산의 정상에서 한없이 깊은 바다를 내려다볼 때 현기증이 나는 것처럼, 내 정신도 주님의 고귀한 말씀의 정상에 서서 개념의 어떤 깊이를 내려다볼 때 현기증이 납니다.

해변에서 우리가 때때로 바다를 등지고 해변에 있는 산을 바라볼 때 산이 정상과 맨 밑바닥으로 잘려져 윗부분이 마치 바다의 수면 위에 걸려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그 높은 정상에서 저 바다 밑을 내려다본다면 현기증이 날 것입니다. 이처럼 나도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하느님을 뵙게 될 것이다.”라는 주님의 위대한 말씀 위에서 내려다볼 때 현기증이 나고 맙니다.

이 말씀은 하느님을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의 관조의 대상으로 내어 줍니다. 그러나 요한 복음 사가가 말한 대로 하느님의 참모습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숭고한 지성을 지닌 바오로도 이것을 확인해 줍니다. “그분은 아무도 일찍이 본 일이 없고 또 볼 수도 없는 분이십니다.”

하느님은 바로 우리 생각에 아무 기초나 바탕을 주지 않는 미끄럽고도 가파른 바위이십니다. 모세도 자기 가르침에서 우리 정신이 결코 거기에 도달할 수 없다고 분명히 했습니다. 하느님을 파악하려 하는 사람은 그가 아무리 높이 올라간다 해도 다음의 말씀에 나오는 이유 때문에 그 가능성을 잃고 맙니다. “주님을 보고 나서 사는 사람이 없다.”

하느님을 보는 것은 영원한 생명입니다. 그러나 요한과 바오로와 모세라는 믿음의 기둥들은 하느님을 보는 것이 불가능한 일이라고 주장합니다. 이 말씀에 포함되어 있는 심연을 볼 때 영혼은 현기증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 하느님이 생명이시라면 그분을 보지 않는 사람은 생명도 보지 못합니다. 성령의 감도를 받은 예언자와 사도들은 하느님을 볼 수 없다고 증언합니다. 그렇다면 인간의 희망은 얼마나 큰 고뇌에 빠져 들겠습니까?

주님께서는 고뇌에 빠져 드는 이 희망을 붙들어 주시고 지탱해 주십니다. 물에 빠져 드는 베드로가 빠지지 않도록 물을 굳게 하시고 그 위에 그가 서도록 하셨습니다. 말씀이신 주님의 손이 우리에게 뻗치시어 생각의 심연 속에서 흔들리는 우리를 다른 차원의 생각 위에 세워 주신다면, 우리가 우리를 인도하시는 말씀이신 주님의 손을 붙잡을 때 우리에게 두려움이 없을 것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하느님을 뵙게 될 것이다.”

응송 요한 1,18; 시편 144(145),3

일찍이 하느님을 본 사람은 없도다. * 아버지의 품 안에 계신 외아들로서 하느님과 똑같으신 그분이 하느님을 알려 주셨도다.

주님은 위대하시고, 크게 기림직하옵시고, 그 위대하심은 측량할 길 없도다.

아버지의. 품 안에 계신 외아들로서 하느님과 똑같으신 그분이 하느님을 알려 주셨도다.

 

 

 

 

625일 제12주간 금요일

1독서

사무엘 상권에 의한 독서 25,14-24. 28-39

다윗과 아비가일

그 무렵 14 이 일을 어떤 일꾼이 나발의 아내 아비가일에게 알려 주었다. “다윗이 광야로부터 사람들을 보내어 우리 주인께 축수하면서 무엇을 좀 달라고 하자 주인께서 마구 쫓아 보내셨습니다. 15 그들은 우리를 조금도 괴롭히지 않고 매우 잘 대해 주었습니다. 들에서 그들과 함께 지내는 동안 우리는 새끼 양 한 마리도 잃지 않았습니다. 16 그들은 우리가 양을 치는 동안 밤낮으로 우리를 성처럼 감싸 주었습니다. 17 그러니 이제 헤아려 처신하지 않으면 우리 주인이나 온 집안이 정녕 화를 입을 것입니다. 주인 어른은 성급하신 분이라 말씀을 드릴 수도 없습니다.”

18 그리하여 아비가일은 떡 이백 개, 술 두 부대, 요리한 양 다섯 마리, 볶은 밀 열 말, 건포도 백 뭉치, 말린 무화과 과자 이백 개를 서둘러 마련하여 나귀에 실었다. 19 그리고 자기 시종들에게 자기는 뒤따라갈 터이니 앞서가라고 일렀다. 그러나 남편 나발에게는 알리지 않았다.

20 그는 나귀를 타고 산굽이를 돌아 내려가다가 부하를 거느리고 내려오고 있는 다윗과 마주치게 되었다. 21 다윗은 단단히 벼르고 있었다. “내가 광야에서 이자의 재산을 지켜 무엇 하나 손실이 나지 않게 해주었지만, 다 부질없는 짓이었다. 모처럼 잘해 주었더니 이렇게 악으로 갚는구나. 22 내가 내일 아침까지 사내 녀석들을 하나라도 남겨 둔다면 하느님께 무슨 벌이라도 받으리라.” 23 아비가일은 다윗을 보자 나귀에서 급히 내려 땅바닥에 엎드려 절하였다. 24 그리고 다윗의 발 앞에 엎드린 채 애원하였다. 28 “이 계집의 말이 마음에 거슬리더라도 제발 용서해 주십시오. 주께서 앞장서시는 싸움을 나리께서 싸우셨으니 주께서 나리의 집안을 정녕 튼튼히 세워 주실 것입니다. 나리께서는 한평생 어떤 재난도 겪지 않으실 것입니다. 29 나리를 쫓아다니며 죽이려는 사람이 있다 하여도 나리의 주 하느님께서 나리 목숨을 보물처럼 감싸 주시고 그 대신 원수의 목숨은 팔매 돌처럼 팽개치실 것입니다. 30 주께서 약속하신 온갖 복된 일을 이루시어 나리를 이스라엘의 수령으로 세우실 터인데, 31 이런 실수를 해서 두고두고 마음에 걸리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 손수 원수를 갚느라고 공연히 피 흘리는 일은 없도록 하십시오. 주께서 나리의 운을 터 주시는 날 이 계집종을 잊지 말아 주십시오.”

32 다윗이 아비가일에게 말하였다. “오늘 그대를 보내시어 이렇게 만나게 해주셨으니, 이스라엘의 주 하느님을 찬양할 뿐이오. 33 그대는 사리를 참 잘 판단하였소. 하마터면 내 손이 원수를 갚으려다가 피를 볼 뻔했는데 오늘 이렇게 말려주어서 정말 고맙소. 34 그대가 재빨리 나를 만나 주지 않았던들 나발 집안에서는 모든 사내가 내일 아침까지 죽고 말았을 것이오. 그대를 해치지 않도록 나를 막아 주신 이스라엘의 주 하느님께서 살아 계시는 것이 틀림없듯이 정녕 그렇게 되었을 것이오.” 35 다윗은 그 여자가 가져온 것을 받고 말하였다. “댁으로 평안히 돌아가시오. 내가 그대의 말을 듣고 요청을 들어주었소!” 36 그리하여 아비가일이 집으로 돌아와 보니 나발은 왕이나 차릴 만한 잔치를 베풀고 흥에 겨워 취할 대로 취해 있었다. 아내는 날이 샐 때까지 그 일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37 그러다가 아침이 되어 술이 깬 뒤, 나발은 아내의 이야기를 듣고 그만 실신하여 돌처럼 굳어져 버렸다. 38 열흘쯤 지나서 나발은 주께 벌을 받아 죽고 말았다.

39 나발의 죽음을 전해 듣고 다윗은 주님을 찬양하였다. “주님은 찬양을 받으실 분이시라. 나를 욕한 나발을 당신께서 몸소 문책하시고 나로 하여금 죄를 짓지 못하게 막아 주셨다. 주께서는 나발의 죄를 본인에게 갚아 주셨다.”

응송 1사무 25,32a. 33b; 마태 5,7

오늘 그대를 보내시어 이렇게 만나게 해주셨으니, 이스라엘의 주 하느님은 찬미 받으소서. * 그대는 오늘 이렇게 나를 말려 주어서, 내가 피 흘리는 죄과를 범치 않게 하고 내 손으로 보복하는 일을 막아 주었도다.

자비를 베푸는 사람은 행복하도다. 그들은 자비를 입게 되리라.

그대는. 오늘 이렇게 나를 말려 주어서, 내가 피 흘리는 죄과를 범치 않게 하고 내 손으로 보복하는 일을 막아 주었도다.

 

 

2독서

니사의 성 그레고리오 주교의 강론에서(Orat. 6 De beatitudinibus: PG 44,1266-1267)

하느님을 뵈오리라는 희망

 

하느님의 약속은 너무도 위대하여 행복의 최고 한계를 초월합니다. 하느님을 본 사람이 하느님을 봄으로써 그분 안에서 모든 것을 소유하게 된다고 생각한다면 그렇게 좋은 것을 맛본 다음 무엇을 또 원하겠습니까? 사실 성서에서 무엇을 본다.”라는 것은 무엇을 가지다?누리다.”라는 말과 같은 뜻입니다. 예를 들면 시편에서 예루살렘의 번영을 누리게 하여 주시기를이라는 뜻으로서 예루살렘의 번영을 보게 하시기를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악한 자는 주의 영광을 보지 못하게 쫓겨나리라.”라는 말씀에서 예언자가 주의 영광을 보지 못하게라고 말할 때 그는 주의 영광에 참여하지 못하게라는 뜻으로 이 말을 사용합니다.

따라서 하느님을 보는 사람은 이 보는 행위 안에서 이 세상에서 선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갖게 됩니다. 그는 끝없는 생명, 영원토록 부패하지 않는 것, 사라지지 않는 행복, 영구한 나라, 끊임없는 기쁨, 참 빛, 감미로운 영신의 목소리, 도달할 수 없는 영광, 그리고 끝없이 지속하는 용약?한마디로 온갖 선을 얻습니다. 희망 속에 약속된 행복이 우리에게 가져다 주는 것은 이렇게 많고도 큽니다. 그러나 앞에서 말한 것처럼 하느님을 보는 것은 마음의 순수성에 달려 있으므로 마음이 깨끗한 사람만 하느님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마음의 순수성은 우리 본성을 능가하고 우리가 이루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까? 이것을 생각할 때 내 마음은 한번 더 현기증을 느끼게 됩니다. 하느님을 보는 것이 이 순수성에 달려 있고 또 한편 모세와 바오로가 자기들이나 어떤 누구도 그분을 볼 수 없다고 말하듯이 자신들도 그분을 보지 못했다면 이제 말씀께서 우리에게 제안하시는 행복은 그전에도 성취되지 못했고 또 실제로 불가능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하느님을 보게 될 수 있는지 알아도 우리가 알게 된 그 목적을 이룰 힘이 없다면 우리에게 유익되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이것은 흡사 이승에서 볼 수 없는 것을 천국에서 보게 되기 때문에 천국에 있는 것은 복되다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말이 천국에 도달하는 방법까지 보여 주어야만 참으로 유익한 말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 천국에 이르지 못하는 동안에는 천국에 있는 것은 행복하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천국의 행복을 알면서도 그것을 아직 얻지 못하는 것은 결국 우리에게 앗긴 것으로 느껴질 때 번뇌와 환멸이 되어 버리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하느님은 우리 인간 본성과 능력으로서는 할 수 없는 그런 엄청난 것을 명하신단 말입니까?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날개를 주시지 않은 이들 보고 새가 되라고 명하시는 일이 없고 뭍에서 살게 되어 있는 조물 보고 물 속에서 살라고 명하시지도 않습니다. 다른 모든 피조물에게 있어 법은 그 피조물의 능력에 맞게 되어 있고 그 능력 이상의 것을 지키라고 명하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할 때 우리에게 약속된 이 행복은 우리 능력으로 가능한 것임을 알아 그것을 이루는 데 실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요한도 바오로도 모세도 또 그들과 같은 다른 이들도 하느님을 보는 데에 존재하는 그 초월적 행복에서 누리지 못한 것이 없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바오로는 이제는 정의의 월계관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그날에 정의의 재판장이신 주님께서 그 월계관을 나에게 주실 것입니다.”라고 말하고, 요한은 주님의 가슴에 기대어 있었으며”, 모세는 모든 이에 앞서 너를 알았노라.”는 하느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하느님을 보는 것은 인간 능력을 초월하는 것이라고 말한 이들이 행복을 이루었다면, 그리고 행복이 하느님을 보는 데에 있고 또 마음이 깨끗하고 순수한 사람들이 하느님을 볼 수 있다면, 행복을 이룰 수 있게 해주는 그 순수성은 불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바오로 같은 분들이 하느님을 보는 것이 인간 능력을 초월하는 것이라고 말할 때, 이 말이 사실이라면, “마음이 깨끗한 자는 하느님을 뵙게 되리라.”는 하느님의 말씀은 바오로의 말과 모순이 되는데 이를 어떻게 설명해야 하겠습니까?

응송 시편 62(63),2bc. 16(17),15

내 영혼이 당신을 목말라 하나이다. * 하느님 내 하느님, 당신을 애틋이 찾나이다.

나는 의로움으로 당신 얼굴을 뵈오리다. 깨어나 당신 영광을 뵈옴으로 흡족하오리다.

하느님. 내 하느님, 당신을 애틋이 찾나이다.

 

 

 

626일 제12주간 토요일

1독서

사무엘 상권에 의한 독서 26,5-25

다윗이 사울을 너그러이 대해 주다

그 무렵 다윗이 5 사울이 진을 치고 있는 곳으로 가보니 사울이 넬의 아들 아브넬 사령관과 함께 누워 있었다. 사울은 전군이 둘러 진치고 있는 원형 진지 한가운데서 자고 있었던 것이다.

6 다윗은 헷 사람 아히멜렉과 스루야의 아들 요압의 형제인 아비새에게 누가 자기와 함께 사울의 진으로 내려가겠느냐고 물었다. “제가 내려가겠습니다.” 하고 아비새가 나섰다. 7 다윗은 그를 데리고 밤을 타서 적진으로 들어갔다. 그 곳에 이르러 그는 사울이 그 원형 진지 안에서 머리맡에 창을 꽂아 놓고 잠들어 있는 것을 보았다. 아브넬이 거느린 군대도 사울을 둘러싸고 누워 자고 있었다.

8 이것을 보고 아비새가 다윗에게 말하였다. “하느님께서는 오늘 이 원수를 장군님 손에 부치셨으니 여기 이 창으로 그를 단번에 땅에 박아 놓겠습니다. 두 번 찌를 것도 없습니다.” 9 다윗이 아비새를 타일렀다. “그렇게 해치워서는 안된다. 누가 감히 주께서 기름 부어 세우신 어른에게 손을 대고 죄를 받지 않겠느냐?” 10 다윗은 다시 말을 이었다. “사울은 어차피 주께 얻어맞을 분이다. 때가 되어서 죽든지 싸움터에 내려가 최후를 마치든지 할 분이다. 11 내가 주께서 기름 부어 세우신 어른에게 손을 댔다가는 주님께 벌을 받으리라. 그러니 그의 머리맡에 있는 창과 물병만 가지고 가자.” 12 다윗은 사울의 머리맡에서 창과 물병을 가지고 빠져 나왔다. 주께서 그들을 모두 깊이 잠들게 하셨으므로 다윗을 본 사람도, 눈치챈 사람도 없었다.

13 다윗은 건너편으로 건너가 멀리 산꼭대기에 서서 14 적군을 향하여 넬의 아들 아브넬에게 소리쳤다. “아브넬아, 내 말이 들리지 않느냐?” 아브넬이 왕께서 계신 데다 대고 소리치는 자가 누구냐?” 하며 대꾸하자 15 다윗이 호통을 쳤다. “너는 사내 대장부가 아니냐? 이스라엘에 너 같은 사내 대장부가 또 어디 있느냐? 그런데 이쪽에서 군인 하나가 네 상전인 왕을 해하려고 들어갔는데도 네 상전인 왕을 지키지 못하다니 16 네가 어찌 이럴 수 있느냐? 너희는 주께서 기름 부어 세우신 상전을 지키지 못했으니 너야말로 죽어 마땅한 놈이다. 왕의 머리맡에 있던 창과 물병이 어디 갔는지 당장 찾아보아라.”

17 사울이 다윗의 목소리를 알아보고 물었다. “내 아들 다윗아, 이것이 네 목소리가 아니냐?” 다윗은 그렇습니다, 임금님.” 하면서 18 말하였다. “임금님께서 소자를 추적하시다니 웬일이십니까? 제가 무슨 짓을 했단 말씀입니까? 무슨 흉계라도 꾸몄다는 말씀입니까? 19 임금님께서는 이제 소자가 아뢰는 말씀을 들어주십시오. 만일 소자가 임금님의 손에 죽는 것이 주님의 뜻이라면 저는 기꺼이 제물이 되겠습니다. 그러나 만일 이것이 사람의 생각이라면 그들이 주님께 저주를 받을 것입니다. 그들은 지금 주께서 주신 이 땅에서 나를 쫓아내려는 것입니다. 가서 다른 신이나 섬기라고 하는 것입니다. 20 이제 주님 앞을 벗어난 이 땅에 제 피를 흘려야만 되겠습니까? 이스라엘왕께서 산으로 꿩을 잡으러 나서듯이 벼룩 한 마리를 찾아 나서신 것입니까?”

 

21 그러자 사울은 내가 잘못했다. 내 아들 다윗아, 돌아오너라. 네가 오늘 내 목숨을 그렇게 소중하게 보아주었는데, 내가 어찌 다시 너를 해치겠느냐? 내가 미치지 않고서야 이렇게 엄청난 잘못을 저지를 수 있겠느냐?” 하면서 사과하였다. 22 다윗이 대답하였다. “여기 임금님의 창이 있습니다. 부하 하나를 보내시어 가져가십시오. 23 주께서는 누구든지 참되게 살기만 하면 그대로 갚아 주시는 분이십니다. 오늘 주께서 임금님을 제 손에 부치셨지만 저는 손을 댈 마음이 없었습니다. 임금님은 주께서 기름 부어 세우신 분이 아니십니까? 24 이렇게 제가 임금님의 목숨을 귀중하게 보아 드렸으니, 주께서도 제 목숨을 귀하게 여기시어 온갖 재난에서 구해 주실 것입니다.” 25 사울이 다윗에게 말하였다. “내 아들 다윗아, 너야말로 훌륭하구나. 네가 하려고 하면 무슨 일인들 못하겠느냐?” 다윗은 자기의 갈 길을 가고 사울은 궁으로 돌아갔다.

응송 시편 53(54),5ab. 3. 8a. 4a

거만한 자들이 나를 거슬러 일어났삽고, 광포한 자들 내 목숨을 앗으려 하오니, 하느님, 당신 이름으로 나를 구하소서. * 당신 힘으로 내 송사를 바루어 주소서.

나는 자진하여 당신께 제사를 올리리이니, 하느님, 내 기도를 들어주소서.

당신. 힘으로 내 송사를 바루어 주소서.

 

 

2독서

니사의 성 그레고리오 주교의 강론에서(Orat. 6 De beatitudinibus: PG 44,1270-1271)

하느님은 인간의 마음에서 찾아뵐 수 있습니다

 

육신의 건강은 인간 생활에서 가장 바람직한 것 중의 하나입니다. 그러나 참으로 행복한 사람은 어떻게 건강을 얻을 수 있는지 아는 사람이 아니고 실제로 건강하게 사는 사람입니다. 누가 건강의 가치에 대해 훌륭히 말하면서 병을 유발시키는 해로운 음식을 먹는다면 병으로 고통받는 그에게 건강에 관한 훌륭한 말이 무슨 소용 있겠습니까? 지금 설명하고 있는 것도 이런 식으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행복한 사람이란 하느님에 대한 어떤 것을 아는 사람이 아니고 하느님을 자신 안에 모시는 사람이라고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하느님을 뵙게 될 것이다.” 내 생각으로 이 성서 말씀은 영혼의 눈이 깨끗해진 사람에게 하느님께서 당신 자신을 직접 보여 주신다는 뜻이 아니라고 봅니다. 놀라운 이 말씀은 주께서 성서 다른 곳에서 하느님의 나라는 바로 너희 안에 있다.” 고 말씀하실 때 좀더 명백히 표현하시는 바를 뜻한다고 봅니다. , 모든 피조물에 대한 불의한 애착심에서 벗어난 사람은 이렇게 된 자신의 마음의 아름다움에서 하느님 본성의 모상을 보게 된다는 뜻입니다.

앞의 짧은 말씀에서 주님은 다음과 같은 충고의 말씀을 하고 계신다고 봅니다. “너희 인간 존재 안에는 참으로 선한 것을 보고 싶어하는 갈망이 있다. 그런데 너희가 하느님의 엄위는 하늘 위에 고양되어 있고 그 영광을 표현할 수 없으며 그 아름다움은 말로 다할 수 없고 그 본성은 파악할 수도 볼 수도 없다는 말을 들을 때, 너희가 갈망하는 것을 직관하지 못한다고 해서 실망하지 말라. 열심하고 올바른 생활로써 마음에 붙어 있는 더러움을 씻어버린다면 너희 안에 하느님의 아름다움이 빛날 것이다.”

쇠붙이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숫돌로 녹을 다 벗겨내면 조금 전에 시커멓던 것은 빛나고 태양 빛을 받아 반짝일 것입니다. 이처럼 주님이 마음이라고 부르시는 내적 인간의 축축한 부패가 그 안에 나타나게 한 녹 같은 때를 닦아 없애 버린다면 그 내적 인간은 다시 원형과의 유사성을 되찾고 선하게 될 것입니다. 선 자체와 같이 되는 것은 틀림없이 선한 것입니다.

마음이 깨끗한 사람이 자신을 볼 때에 자신이 갈망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따라서 그는 자신의 순수성을 볼 때 그 모상을 통하여 원형을 볼 수 있게 되기 때문에 행복한 사람입니다. 예를 들면 거울을 통하여 태양을 보는 사람은 하늘 자체를 직접 보지 못하지만 태양을 직접 보는 사람 못지 않게 그 태양을 보는 것입니다. 이처럼 여러분도 여러분의 힘만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그 빛을 볼 수 없지만 원래 지니고 있는 그 모상의 아름다움과 은총으로 되돌아간다면 여러분 안에서 찾고 있는 것을 갖게 될 것입니다.

하느님은 완전히 순수하시고 죄악과 욕정이 없으시며 온갖 악에서 멀리 떨어져 계십니다. 이 모든 것이 여러분 안에 있으면 하느님은 틀림없이 여러분 안에 계십니다. 따라서 여러분의 영혼이 온갖 죄악에서 깨끗해지고 온갖 욕정에서 해방되어 모든 악에서 멀리 떨어져 있을 때 여러분의 시야가 밝아져 정밀한 눈을 갖게 되기 때문에, 행복한 사람이 되어 마음이 깨끗하지 못한 사람이 보지 못하는 것을 여러분은 깨끗해졌기에 보게 됩니다. 물질에 대한 애착심이 야기시킨 어둠은 여러분 영혼의 눈에서 제거되어 여러분의 마음은 깨끗한 하늘에서 빛나는 영상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마음이 보게 되는 영상이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거룩함과 깨끗함과 단순함이고 하느님을 보여 주는 그분 본성의 찬란한 광채들입니다.

응송 요한 14,6a. 9b; 6,47b

주께서 말씀하시는도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로다. * 나를 보았으면 곧 아버지를 본 것이니라.”

나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누리리라.

나를. 보았으면 곧 아버지를 본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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