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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말씀과 묵상

[홍기선 신부의 복음의 기쁨 해설] (31) 다양한 모습을 지닌 백성 성령의 품 안에서 하나 되는 우리

작성자은총의샘|작성시간26.06.21|조회수34 목록 댓글 0

[홍기선 신부의 복음의 기쁨 해설] (31) 다양한 모습을 지닌 백성

성령의 품 안에서 하나 되는 우리

 

한 사회의 구성원이 타인이나 다른 피조물과 맺는 관계를 규정한 포괄적 개념어가 문화이다. 모든 민족은 자신의 역사 안에서 고유의 문화를 지니고 이를 자율적으로 보존하고 발전시킬 정당한 권리가 있다(116항 참조). 우리는 이와 같은 문화를 통해 타민족의 역사와 그들 고유의 토양 그리고 인간관과 세계관을 이해하게 된다. 서로에 대한 동질성과 상이성도 발견하게 된다.

지금 시복을 위한 마지막 과정에 도달한 이 시대의 참된 신앙인 한 분을 알고 있다. 베트남 출신의 반 투안(Francois-Xavier Van Thun, 1928~2002) 추기경이다. 그분은 생전에 남긴 마지막 강론집에서, 지금은 성인이 되신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과의 만남을 잊지 못한다고 술회했다. 이 만남에서 교황은 추기경에게 2000년 희년의 교황청 사순 피정을 부탁했다. 그는 피정을 마치면서 이렇게 회고했다. “저는 베트남 음식을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요리 냄비와 내용물(희망의 복음)은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메뉴를 바꿀 것입니다. 아시아의 양념과 향료를 넣을 것이고 먹을 때는 젓가락을 사용할 것입니다. 저는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그러나 신통치 않은 요리사는 불 없인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참된 불길, 곧 성령이 필요합니다”(지금 이 순간을 사랑하며중에서).

다양한 문화로 풍요로워지는 교회

하느님 백성은 많은 민족으로 구성되었기에 다양한 모습을 지니고 있다. 인종과 언어와 관습이 서로 다르다. 따라서 다른 그만큼 저마다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다양한 민족의 숫자만큼 고유한 문화를 지니고 있다. 각 민족은 자신들의 고유 문화를 통해, 하느님과 관계 맺고 신앙을 표현해 왔다. 이 모든 것은 그리스도교의 자산이 되었다. “고유의 문화에 따라 하느님 은총을 경험한 다양한 민족들 안에서, 교회는 참다운 보편성을 표현하고 다양한 모습을 한 교회의 아름다움을 보여 줍니다”(116).

다양한 문화와 습속의 차이 때문에 일치하나 됨을 특징으로 하는 교회의 모습이 훼손될 수 있다는 걱정도 가능하다. 그러나 이는 일찍부터 기우(杞憂)로 여겨졌다. 여러 민족이 서로 다른 문화를 지니고 있다는 것은 교회의 아름다움이고 풍요로운 자기 표현이 되는 것이지, 이것 때문에 분열이 발생하거나 일치에 장애가 생기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성령께서는 고유 문화 속에서 힘차게 활동하시면서 그 문화 자체를 새로운 복음화로 변화시키신다. 소위 말하는 토착화성령의 문화적 강생이라고 바꾸어 표현 가능한 것이다. 이렇게 토착화 작업을 통해 표현된 신앙은, 그 민족 고유의 문화가 거룩함의 새 옷을 입은 것이기에, 교회를 더욱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 된다. “이렇게 하여 교회는 다양한 문화의 가치들을 받아들여 패물로 단장한 신부(sponsa ornata monilibus suis, 이사 61,10 참조)가 됩니다”(116).

그리스도인을 하나로 묶는 성령

교황은 다양성이 신앙 안에서 일치를 이룬다는 것은 일치의 영이신 성령께서 활동하고 계시기 때문임을 분명히 인식시켜 주었다. 모든 문화 속에서 다양한 일치를 이루어 주시는 분은 성령이라고 강조했다. 성부와 성자께서 보내주시는 성령은 성삼위의 완전한 친교와 일치 속으로 우리를 초대하고 우리 역시 서로에게 사랑의 유대가 되도록 이끄신다. “성령께서는 풍요롭고 다양한 은사를 가져다주시면서 동시에 결코 획일적이지 않고 다양한 형태로 사람들을 끌어당겨서 조화와 일치를 이루게 하십니다”(117).

우리가 사는 읍면의 작은 촌락에서도 적잖은 다양성이 존재한다. 같은 문화권, 같은 나라, 같은 세대라고 해도, 서로 다른 종교를 지녔기에 발생할 수 있는 문화적 차이도 있다. 이 모든 것을 아우르면서 사랑의 유대로 서로를 표현하고 수용하며 공존하도록 이끄는 것이 성령의 역할이다. 가끔 열심하다는 신앙인들의 열성이 분별력을 잃었을 때, 사회적 물의가 발생하는 것을 본다. 성령의 감도로 표현된 조화로운 신앙이 아니라 악한 영이 그들의 눈을 흐리게 하여 개인적 욕심이 분별없이 표현된 결과이다. ‘예수천국, 불신지옥이 그 일례이다. 교황은 복음화라는 사명감에 사로잡혀 특정 문화의 옷을 입힌 그리스도의 메시지를 광신적 모습으로 전달하는 것은 성령의 활동이 아니라고 했다(117항 참조).

성령께서 활동하시며 구체적인 문화를 통해 하느님의 메시지를 전달해 주시나 그 내용은 그 문화의 틀 속에서만 이해되는 것이 아니다. 그 문화의 틀 속에서만 하느님의 메시지에 응답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 메시지는 시공을 초월한 보편적 구원의 메시지이기 때문이다. “어떤 문화들이 복음 선포와 그리스도교 사상의 발전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계시된 메시지는 그 가운데 어떤 문화와도 동일시되지 않고 문화를 초월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117). “우리는 모든 대륙의 민족들이 그들의 그리스도 신앙을 표현하면서, 유럽 국가들이 그들 역사의 특정한 시기에 발전시킨 표현 양식을 따르라고 주장할 수 없습니다. 신앙은 어느 특정 문화의 이해와 표현의 한계에 갇힐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단 하나의 문화가 그리스도의 구원 신비를 완전히 담아내지 못한다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없습니다”(118).

 

 

 

 

[홍기선 신부의 복음의 기쁨 해설] (32) 우리는 모두 선교하는 제자

우리는 모두 선교하는 제자

 

우리 교구 어느 시골 본당의 이야기이다. 바닷가 근처 본당이다. 매 주일, 80여 명이 미사에 참여한다. 신자 대부분이 노인들이다. 그들 가운데 성당 일에 전심전력으로 봉사하는 젊은 부부가 있다. 그들의 나이를 정확히는 모르나 40대 후반 정도로 보인다. 그들에게는 늦게 얻은 막내아들이 있는데, 그 녀석이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지금 초등학교 3학년이고 성당을 놀이터 삼아 친구들과 함께 지내며 성장하고 있다. 2014, 그 본당의 영세자는 8명이었다. 대세를 받은 사람이 2, 유아 세례자가 1, 나머지 5명은 명오(明悟)가 열려 성인으로 취급받는 초등학생들이었다. 여기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명오가 열린 영세자 5명 모두가 막내아들의 친구라는 것이다. 요즘 복사로 활동하며 즐거움에 흠뻑 빠진 이 어린이 외에는, 바닷가 근처 옥() 같은 시냇물[]이 흐르는 본당에서 2014년에 선교에 힘쓴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는 슬픈 이야기다. 표현을 고쳐본다. 많은 이들이 선교에 힘썼으나 열매 맺은 것은 오직 그 꼬마의 활동밖에 없었다. 그래도 슬프다.

공동체 모두가 선교 사명을 부여받으니

교황은 세례받은 모든 사람은 교회 안에서의 역할과 지위에 상관없이 선교 사명을 받았다고 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 사랑을 만난 그리스도인은 모두 선교사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제자와 선교사가 아니라 언제나 선교하는 제자라고 말해야 합니다”(120). 지금까지 이곳저곳에서 말씀하신 내용이다. 특히 119항에서 조금 어렵게 느껴지는 말씀을 하셨는데, 좀 더 쉽게 이해하기 위해 필자가 새롭게 번역해 보았다. CBCK 번역문과 함께 올려본다. 권고문의 표현을 다양한 각도에서 이해하기 위해, 치빌타 카톨리카와의 인터뷰 내용 가운데서도 일부분을 실어보았다. 비교하며 심화시키길 바란다.

CBCK 번역문

세례 받은 모든 사람 안에서, 한 사람도 빠짐없이, 성령의 성화하는 힘이 작용하여 복음화를 재촉합니다. 하느님의 백성은 이 도유에 힘입어 거룩해집니다. 이는 믿음에서(in credendo) 오류가 없게 합니다. 비록 자신의 신앙을 표현할 말을 찾지 못하여도, 하느님 백성은 믿을 때 오류를 저지르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성령께서는 하느님 백성을 진리 안에서 이끄시어 구원에 이르게 하십니다. 인류에 대한 당신 사랑의 신비의 일부로, 하느님께서는 신자들 전체에게 신앙의 본능, 곧 신앙 감각(sensus fidei)을 심어 주시어 무엇이 참으로 하느님의 것인지를 식별하도록 해 주십니다. 성령의 현존은 그리스도인들이 신적인 실재들과 어떤 공본성을 이루게 하십니다. 그리고 그들이 정확히 표현할 방법이 없더라도 그러한 실재들을 직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하는 지혜도 주십니다”(119).

필자 번역문

세례받은 모든 사람 안에는, 한 사람도 빠짐없이, 복음화를 재촉하는 성령의 힘, 즉 거룩하게 만드는 힘이 작용합니다. 하느님 백성은 거룩합니다. 왜냐하면 믿음에서(in credendo) 오류를 범할 수 없도록 이끄는 기름으로 도유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다음과 같은 의미를 지닙니다. 하느님 백성은 비록 자신의 신앙을 설명해 낼 표현을 찾지 못할 때라도, 그들이 신앙할 때에는 오류를 범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성령께서 하느님 백성을 진리 안에서 이끄시고 구원에로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인류에 대한 당신 사랑의 신비의 영역으로서, 신자 전체(개인이 아니라 전체 공동체 안에)에게 신앙의 본능, 곧 신앙 감각(sensus fidei)을 심어 주시어, 무엇이 참으로 하느님의 것인지를 식별토록 해주셨습니다. 성령의 현존은 그리스도인들이 신적인 실재들을 (하느님과) 같은 본성으로 느끼도록 이끌어 주십니다. 또한 그들이 정확히 표현할 방법을 찾지 못할 때에라도, 성령께서는 그러한 실제들을 직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도록 지혜를 주십니다”(119).

치빌타 카톨리카와의 인터뷰 내용

신앙으로 형성된 하느님 백성은 믿음에서 백성 전체의 이름으로 오류를 범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여정을 함께하는 모든 백성의 초자연적 감각을 통해 자신들의 믿음을 표명합니다. 바로 이 신앙 안에서 그들의 무류성이 분명히 밝혀집니다. 2차 바티칸 공의회 정신에 따라 모든 신자의 무류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이것을 어떤 이들은 포퓰리즘의 한 형태로 여길 수 있기에,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들어주십시오. 포퓰리즘이 아닙니다. 성 이냐시오가 교회를 사목자들과 백성 전체의 의미로 하느님 백성이라 부른 것처럼, 이것은(모든 신자의 무류성은) ‘자모이시며 거룩한 교계적 교회의 경험입니다(역사를 통해 입증된 것이라는 의미). 교회는 하느님 백성 전체를 의미합니다”(두 분 교황님과 함께, 39-40 발췌).

 

 

 

[홍기선 신부의 복음의 기쁨 해설] (33) 복음화와 대중 신심

대중 신심은 하느님 향한 삶의 표현

교황은 계속하여 대중 신심이 복음화에 얼마나 중요한지 강조하면서, 이를 잘 관리하고 북돋도록 권장하고 있다(122~126). 대중 신심을 통해 배울 것도 많기에 이를 촉진하고 강화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 또한, 복음 선포는 개인에서 개인으로도 전달되는 것이기에, 언제나 정중하고 친절하게 선포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 하느님 백성들 모두가 인격적인 대화를 통해 복음을 선포하도록 유도하고 있다(127-129).

성령의 역할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성령께서는 개인과 개인 그리고 공동체와 공동체 사이의 서로 다름으로 발생할 수 있는 불편을 해소시켜 주신다. 당신의 특별한 은사로 더욱 조화롭고 매력적인 것으로 바꾸어 주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시다. 다양성과 다원성 그리고 다중성 가운데서도 일치를 이루어 주시는 분이시다(130~131).

끝으로는 신학자들에게 당부하면서, 받은 은사를 복음화를 위해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문화계와 과학계와의 대화를 촉진하도록 격려하면서 그들에게도 복음이 선포되어야 함을 강조했다(132~134). 오늘은 먼저 대중 신심에 대해 다루어 보겠다.

고유한 문화 속에서 재탄생하는 대중 신심

교황은 2장에서도 대중 신심의 중요성에 대해 언급했다. 사목자들이 이 대중 신심에 좀 더 관심을 기울이길 원했고 적절히 활용하기를 부탁했다. “대중 신심은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와 마리아와 성인들과 맺는 인격적인 관계를 포함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신심들은 몸과 얼굴이 있습니다”(90).

3장에서는 대중 신심의 탄생 배경과 역할에 대해 진지하게 다루고 있다. 일단 가톨릭 교회 교리서를 통해 대중 신심의 의미를 살펴보자. 대중 신심은 무엇을 말하는가? 그리스도인 대중의 신앙심 표현을 말하는 것으로 성인들의 유해 공경, 성당 방문, 성지순례, 거리 행렬, 십자가의 길, 종교 무용, 묵주 기도, 메달 등과 같은 다양한 형태의 신심 행위를 의미한다(가톨릭 교회 교리서1674 참조).

대중 신심은 복음이 어떤 민족에게 수용되면, 일정 기간이 지나면서 그 민족의 고유한 문화 속에 자리 잡게 되는데, 그 문화 속에서 탄생하고 성장한 새로운 세대의 구성원들이 자신들의 신앙을 자신들 고유의 문화 속에서 재창조하여 표현한 것이다. 복음이 그 문화 속에 강생하여 대중들의 마음속에서 새롭게 태어난 신앙의 표현인 것이다.

교황은 이렇게 설명했다. “대중 신심은 일단 받아들인 신앙이 어떻게 한 문화 안에 구현되고 지속해서 전달되는지를 볼 수 있게 해 줍니다”(123).

복자 반열에 오른 바오로 6세 교황은 순박하고 가난한 사람들만이 알아볼 수 있는 하느님에 대한 갈망을 표현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리고 신자들이 신앙을 위해서라면 아낌없이 영웅적인 희생도 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대중 신심이라고 했다(현대의 복음 선교).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대중 신심은 가톨릭 교회의 소중한 보화이고, 그 안에서 라틴 아메리카 사람들의 영혼이 드러난다고 했다(2007년 라틴 아메리카와 카리브 주교회의 개막 연설 중에서).

아파레시다 문헌(2007)에서는 대중 신심을 대중 영성또는 민중의 신비주의로 표현하기도 했다(124항 참조).

대중 신심을 통한 복음화 활동

교황은 예수회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만일 어떤 분이 성모님이 누구이신지를 알고 싶으면 신학자들에게 물어보면 됩니다. 그러나 그분을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를 알고 싶다면 백성에게 물어보아야 합니다”(두 분 교황님과 함께39).

대중 신심은 신앙 활동에서 하느님의 존재를 믿는 것(credere Deum)보다 하느님을 믿는 것(credere in Deum)에 더 역점을 둡니다. 대중 신심은 신앙을 살아내는 합법적 삶의 방식이고, 교회의 한 부분으로서의 소속감을 자각하는 방식이며, 선교사가 되는 방식입니다”(124).

교황은 계속해서 그 의미를 쉬운 표현으로 설명하였다. “함께 성지 순례를 하고 다른 대중 신심 활동에 참여하고 자신의 자녀와 함께하거나 다른 이들을 초대하여 그렇게 하는 것도 그 자체가 복음화의 활동입니다”(124).

행복을 추구하는 인간의 정서적 욕구 충족의 근원적 표현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기에 때론 사목자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기도 한다. 기복적인 신앙의 표현이라며 무시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교황은 이를 경계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런 선교의 힘을 억누르거나 통제하려 들지 맙시다!”(124).

계속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신경 구절은 못 외우지만 묵주 기도에 매달리며 병든 아이를 간호하는 어머니들의 강인한 믿음을 저는 생각합니다. 또한 성모 마리아의 도움을 간구하는 누추한 집 안에 켜진 촛불에서 퍼져 나가는 큰 희망을 생각해 봅니다. 또한 십자고상을 바라보는 깊은 사랑의 눈길을 생각해 봅니다. 하느님께 충실한 거룩한 백성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이러한 행위들을 거룩한 것에 대한 순전히 인간적인 추구의 표현이라고 여기지 않을 것입니다. 이러한 행위들은 우리의 마음 안에 부어진 성령의 활동으로 힘을 얻는, 하느님을 향한 삶의 표현입니다”(125).

 

 

 

 

[홍기선 신부의 복음의 기쁨 해설] (34) 이 사람에게서 저 사람에게로

선교, 그리스도의 향기 전하는 일

 

춘천교구에서는 선교 운동을 전개하기 위해 올해 상반기에 신자들을 대상으로 선교 교육을 했다. 모든 본당의 선교 여건이 다르므로 유형별로 구분하여 교육했다. 큰 본당(A유형), 중간 본당(B유형), 작은 본당(C유형)으로 나눴다. 유형별로 가진 문제점을 분석하고 해결 방안을 마련하여 참석한 신자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노력했다. 3차례에 걸쳐 총 500명 정도가 참석했으니, 성황리에 상반기 교육을 마친 셈이다.

상대에 대한 존중과 사랑으로 복음을 전해야

그 교육 내용 가운데 상황별 대처 훈련이 있었다. 신자들이 선교할 때, 낯선 이들로부터 혹은 잘 아는 대상자들로부터 받을 수 있는 질문과 대처 방법이다.

그 내용은 이러하다.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존재를 어떻게 믿을 수 있습니까?” “종교는 다 똑같지 않습니까?” “하느님께서 계시다면 왜 세상을 이렇게 악하게 버려두십니까?” “착하고 바르게 살면 되지, 꼭 종교를 가질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어떤 사람은 성당에 다녀도 나쁜 행동만 하던데요?” “죄가 너무 많아 성당에 나갈 수가 없습니다” “천국이 정말로 있습니까?”

모두 좋아했다. 이 문제만 속 시원히 답변할 수 있다면, 누구든 성당으로 인도할 것만 같았다. 신앙인 자신들도 때로는 이런 의문에 휩싸여 신앙이 흔들린 경험까지 있었기에 더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정말 이런 문제만 해결되면, 이런 문제의 해결책을 설득력 있게 전달하기만 하면 그들이 제 발로 성당을 찾아와 문을 두드릴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필요하고 중요한 문제이나 이것보다 우선시해야 하고 더 중요하게 다루어야 할 부분이 있다. 무엇인가? ‘인격적 만남이다.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통해 인간으로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이렇게 사랑으로 찾아오셨다는 것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신자들의 상냥하고 부드러운 말투와 몸짓, 상대에 대한 존중과 사랑이 선행되어야 한다. 교황은 이 부분을 강조하였다. 교황은 복음 선포가 개인에서 개인으로도 전달되는 것이기에, 언제나 정중하고 친절하게 선포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 하느님 백성들 모두가 인격적인 대화를 통해 복음을 선포하도록 유도하고 있다(127-129).

늘 준비된 선교사의 자세로

교황의 권고문은 처음부터 끝까지 선교하는 교회와 선교를 위한 하느님 백성의 존재 의미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선교 쇄신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가 모두 언제 어디서나 만나는 사람들과의 대화와 눈빛 교환에서도 선교사의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늘 준비된 선교사가 되라는 말씀이다. “제자가 된다는 것은 예수님의 사랑을 언제나 다른 이들에게 전할 준비가 되어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는 거리나 광장에서, 일할 때나 여행할 때와 같은 예상하지 못한 때에 어느 곳에서든 일어날 수 있습니다”(127).

인격적 만남이 주는 감동

()을 당한 가족들을 위한 신자들의 헌신적 봉사, 병원에 입원해 있는 사람들을 따뜻한 마음으로 방문하여 기도하여 주는 것, 어려움 가운데 놓인 사람들에게 베푸는 도움의 손길, 집 가까이 사는 이들에게 보내는 밝은 미소와 예의 가득한 인사말, 이 모두는 그리스도의 향기를 머금은 것들이다. 이것이 더욱 중요하다. 이런 인격적 만남이 사람을 감동시킨다.

교황은 우리가 사람들을 만날 때, 늘 명심해야 할 근본적 메시지가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사람이 되시어 우리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내어 주셨고 영원히 살아 계시며 당신의 구원과 우정을 우리에게 주시는 하느님의 인격적 사랑입니다”(128).

우리가 늘 이 메시지의 심오함을 깨닫고 이 내용을 비신앙인과의 인격적 만남을 통해 전달할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과 사귐의 기쁨이 우리들의 삶을 지배하도록 하라는 말씀이다. 그리고 복음이 개인과 개인의 차원을 넘어 문화를 통해 전달되도록 힘쓰라고 당부했다.

복음이 한 문화에 뿌리내리고 있다면 메시지는 더 이상 개인에게서 개인으로만 전달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교가 소수 종교인 나라에서 개별 교회들은 모든 세례 받은 이가 복음을 선포하도록 격려할 뿐만 아니라, 적어도 초보적인 형태라도 토착화를 적극적으로 촉진해야 합니다. 우리가 추구하여야 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각 문화의 고유한 분야들에 따라 표현된 복음 선포가 그 특정 문화와 새로운 종합을 이루게 하는 것입니다”(129).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 문화 속에 그리스도의 정신이 스며들도록 힘쓰라는 말씀이다.

 

 

 

 

[홍기선 신부의 복음의 기쁨 해설] (35) 복음화로 이끄는 친교에 이바지하는 은사들

성령은 교회에 다양성과 일치를 주셨다

 

2015년은 봉헌 생활의 해이다.

교회법 제573조는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복음적 권고의 선서를 통한 봉헌 생활은 성령의 감도 아래 그리스도를 더욱 가까이 따르는 신자들이 하느님의 영광과 교회의 건설과 세상의 구원을 위하여 하느님께 전적으로 봉헌되는 고정된 생활 형식이다.”

적어도 올해 한 해 동안만이라도 수도자들을 위해 특별히 기도해야 하겠다. 그들의 존재 자체가 우리에게 말해주는 바가 크다.

교회를 더욱 풍요롭게 하는 수도회

교회 안에는 수많은 수도회가 존재한다. 모든 시대에 성령께서 특별한 은사를 내리시어 수도회를 창설하셨다. 그들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게 하셨고, 그 성덕은 인류의 정신적 재산이 되었다. 그 이름조차도 다 알 수 없는 수도회의 존재보다 훨씬 다양한 성령의 은사는 지금도 이 시대에 내리고 있고 우리의 역사를 이끌고 있다. 앞으로도 새로운 형태의 수도 생활은 계속하여 탄생할 것이고, 점차로 속화되어가는 우리 주변을 거룩한 삶으로 정화시켜 주실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렇게 많은 수도회가 있을지라도, 그들의 삶의 양태가 서로 다를지라도, 그들이 충돌하거나 우월감과 열등감으로 분쟁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모두가 교회의 한 지체의 역할을 해내고 있고, 교회의 다양성에 기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들이 받은 카리스마에 만족하고 충실히 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성령께서 그렇게 이끌고 계시기 때문이다. 교회는 수도회의 숫자만큼 다양하고 풍요로운 얼굴과 표정을 지니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 모두는 성령께서 하시는 일이다.

교황은 권고 복음의 기쁨을 통해 다양한 방법으로 성령의 역할에 대해 언급했다. 성령께서는 교회에 당신의 풍요로운 은사를 주셨다. 이 은사는 교회를 쇄신시키고 새롭게 건설하기 위함이다. 다양한 은사는 서로 다른 사람들과 조직 혹은 단체를 통해 전달되고 계승 발전되고 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다양한 은사가 서로 조화를 이루고 하나같이 교회를 위해 봉사하는 은사라는 것이다. 성령께서 그렇게 작용하신다.

타 영성의 거룩함 훼손해서는 안 돼

우리나라에 소공동체가 처음 소개되었을 때를 기억한다. 소공동체와 레지오 마리애 조직이 서로 충돌하여 불편함이 발생했었다. 성령께서는 교회를 위해 각각의 운동에 특별한 은사를 주셨건만, 우리는 서로 은사의 차이점을 구분하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이해하게 되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부작용이 발생했고 서로의 조직을 단죄하는 움직임이 있었는지 모른다. 아직도 매끄럽지 못한 부분이 남아 있는 곳도 있다.

교황은 이렇게 말했다. “성령께서 가져다주시는 참된 새로움의 권위, 그 자체를 입증하기 위해 다른 영성과 은사의 선물들 위에 그늘을 드리울 필요는 없습니다.비록 힘든 노력이 필요합니다만 은사는 바로 친교 안에서 참되고 신비로운 열매를 맺습니다. 이러한 도전에 대응할 때에, 교회는 세상에서 평화의 모범이 될 수 있습니다”(130).

교회 안에는 많은 영성 운동이 있다. 성령께서 그 시대마다 필요한 정신을 주시고 열정을 갖고 이를 실현시킬 예언자들을 일으켜주셨다. 모든 수도회와 영성 운동의 창립자들이 그런 사람들이다. 이 모두는 성령의 감도로 가능케 되었다. 포콜라레, 꾸르실료, M.E, MBW, 네오까떼꾸메나도의 길, 마리아 사제 운동, 레지오 마리애 등. 필자가 미처 다 적어내지 못할 정도로 많은 운동이 있다.

교황은 염려한다. 자신들의 영성의 탁월성을 입증하기 위해, 다른 영성의 아름다움에 그늘을 드리울 필요가 없다고 했다. 모든 영성 운동은 그 시대의 필요에 의해,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탄생했기 때문이다. 시대가 변했어도 진리의 빛은 변함없이 빛난다. 새로운 시대에 알맞은 옷을 입고, 그 영성은 또 다른 거룩함으로 우리를 비출 것이다. 각자의 영성은 자신들의 거룩함을 드러내는 것으로 족하다. 타 영성의 거룩함과 아름다움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

불편이 발생할 때마다 우리는 성령께 의지하며 교회의 참모습을 찾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성령께서는 개인과 개인 그리고 공동체와 공동체 사이의 서로 다름으로 발생할 수 있는 불편을 해소시켜 주신다. 당신의 특별한 은사로 더욱 조화롭고 매력적인 것으로 바꾸어 주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시다. 다양성과 다원성, 그리고 다중성 가운데서도 일치를 이루어 주시는 분이시다(13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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