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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말씀과 묵상

[홍기선 신부의 복음의 기쁨 해설] (36) 문화와 사상과 교육 이성과 과학으로 복음화에 박차를 가하다

작성자은총의샘|작성시간26.06.22|조회수25 목록 댓글 0

[홍기선 신부의 복음의 기쁨 해설] (36) 문화와 사상과 교육

이성과 과학으로 복음화에 박차를 가하다

 

복음을 선포한다는 것은 친구를 불러내어 귀엣말로 비밀을 털어놓는 것이 아니다. 만민에게 담대하고 장중하게 선포되어야 할 기쁜 소식이다. “너희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숨겨진 것은 드러나게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지기 마련이다.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에서 말하는 것을 너희는 밝은 데에서 말하여라. 너희가 귓속말로 들은 것을 지붕 위에서 선포하여라”(마태 10,26-27).

사람과 사람의 만남을 통해 복음이 전달되지만 우리는 보다 높은 차원에서 이 막중한 사명을 생각해야 한다. 한 시대를 지배하고 있는 문화 자체를 복음화한다면, 그 사회의 구성원들은 그곳에서 태어나고 성장하여 죽음에 이르기까지 복음의 그늘 아래서 살게 될 것이다. 그 어떤 말보다도 힘 있는 증언이 될 것이다. 그래서 교황은 문화의 복음화에 대해 강조했다.

이성과 과학과 신학의 만남

문화의 복음화라는 용어, 간단치 않은 말이다. ‘문화는 인간 삶의 총체적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교황은 이렇게 말했다. “직업적인 전문가 집단과 과학계와 학계에 복음을 선포하는 것도 문화의 복음화입니다”(132).

문화 예술계의 복음화도 말할 수 있겠지만, 교황은 인간의 이성의 결과물인 학문계의 복음화에 대해 먼저 언급한다. 그곳에 복음을 선포하는 것은 신앙과 이성과 과학의 만남을 주선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 만남은 믿음의 근거를 다루는 대화, 즉 신빙성에 관한 새로운 논의를 발전시키는 것이다. 이성을 통한 학문의 발전과 과학의 진보는 신학과 또 다른 차원의 깊은 대화를 가능하도록 이끌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를 통해 신앙을 더욱 가치 있는 것으로 만들고, 더 많은 사람이 우리의 외침에 귀 기울이게 할 수 있다. 교황은 이와 같은 작업을 모든 이가 복음을 경청하도록 새로운 환경을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또한 이러한 논의 자체는 근원적인 호교론’(apologetica originale)이 된다고까지 표현했다. 이성과 과학과 신학의 만남을 통해 이루어지는 대화는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듣도록 만드는 기회가 되기에, 보다 적극적으로 복음의 가치와 그 내용의 참됨을 입증하게 된다는 것이다.

호교론’(護敎論) 혹은 호교학’(護敎學)이란 무엇인가? 가톨릭 대사전은 이렇게 설명한다.

종교의 가르침을 설명하고, 증명하기 위한 학문. 특히 그리스도교, 그중에서도 로마 가톨릭교의 수용(受容)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제기하는 반론과 의문에 대하여, 이성에 입각해서 교리에 그릇됨이 없음을 밝히는 것이다. 호교학은 기초신학으로도 불린다. 그리스도교의 계시가 믿을 수 있다는 것을, 기적적인 현상이나 편견에 의해서가 아니라 역사에 근거하여 증명한다. 호교학은 신학의 한 분과다. 하지만 신학이 하느님의 계시를 교리의 내용으로 연구하는 것이라면, 호교학은 그리스도교의 권위를 확인하기 위해 그 증거의 참다운 가치를 외부에서 고찰하는 것이다.”

신학자들의 과학계와 학계와의 만남과 대화, 그들과의 적극적 교류는 가장 강력하고 적극적인 호교론이 된다는 것이다.

학문을 복음 선포의 도구로

교황은 학문과 과학이 복음 선포에 유용할 뿐만 아니라 도구가 될 수 있음을 일깨우고 있다. 이성의 결실인 학문과 과학의 궁극적 목적은 진리 탐구이다. 그리스도인에게 신앙의 내용 모두는 진리로 자리하고 있다. 따라서 학문과 과학의 진보와 발전은 더욱 분명하게 진리를 수용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기에, 학문과 과학 역시 복음 선포의 한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교황은 이렇게 표현했다. “이성과 과학의 일부 범주가 그 메시지 전달에 활용되면, 그 범주들은 복음화의 수단이 됩니다. 물이 포도주로 변하게 되는 것입니다. 복음 메시지 전달에 무엇이든 한 번만 쓰이면, 그 자체가 구원될 뿐만 아니라, 성령께서 세상을 밝히시고 쇄신하시는 데에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132).

여기에서 교황은 신학의 중요성에 대해 언급했다. ‘기초 신학은 다른 학문과 인간 경험과의 대화를 증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함을 말했다. ‘사목 신학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신학자들 전체는 복음화를 늘 염두에 두고 학문에 매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좁은 탁상에서 펼치는 신학’, 즉 탁상공론으로 그들의 학문은 전락하고 만다. 특별히 가톨릭 대학교는 이 모든 것을 펼치기에 탁월한 환경을 지녔기에 매우 중요하고 소중한 자원임을 강조했다.

 

 

 

 

 

[홍기선 신부의 복음의 기쁨 해설] (37) 강론 I

말로만 가르치지 말고 삶의 모범으로 보여줘야

 

교황은 계속해서 전례 안에서 이루어지는 복음 선포인 강론의 중요성에 대해 말씀하셨다. 비교적 많은 분량의 말씀을 하시면서 구체적으로 필요한 부분을 지적하셨다. 성령께서 강론자를 통해 전해주시는 치유와 위로, 사랑과 평화를 세상 만민이 감동으로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하느님은 선포하는 사람을 통해 다른 이에게 다가가시기 때문이다. 교황께서 하신 말씀을 3회에 걸쳐 요약해 보겠다. 강론의 책무를 지닌 사제들에게 하신 말씀이다. 앞으로 강론의 주요 지침이 될 내용으로 꾸며주셨다. 특별히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은 없다. 사제들 스스로 반성하게 만드는 내용이다.

선포자의 전형 예수 그리스도

먼저 교황은 우리 모두의 스승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 선포의 모습을 상기하도록 이끄셨다. 선포자의 전형은 예수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이다. “우리의 주님께서는 말씀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으셨습니다. 사람들은 주님의 말씀을 듣고자 사방에서 모여들었습니다(마르 1,45 참조). 사람들은 주님의 가르침에 놀랐습니다(마르 6,2 참조). 사람들은 주님께서 권위를 가지고 그들에게 말씀하신다고 느꼈습니다(마르 1,27 참조). 그리스도께서 당신과 함께 지내게 하시고, 파견하시어 복음을 선포하게’(마르 3,14) 하신 사도들은 말을 통하여 모든 민족이 교회의 품 안에 들어오도록 하였습니다”(마태 16,15-20. 참조).

강론 준비는 매우 중요한 책무

교황은 강론에 대한 평신도와 사목자의 불편한 감정을 솔직하게 밝히면서 우리 모두의 소망을 담담히 이야기했다. “강론은 사목자가 자신의 백성에게 다가가고 대화하는 능력을 가늠하는 시금석입니다. 평신도는 강론을 듣는 것이 어렵고 사목자는 강론을 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사정이 이렇다는 것이 유감입니다. 사실 강론은 성령을 강렬하고 기쁘게 체험하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쇄신과 성장의 지속적인 원천이신 하느님 말씀, 위로하시는 하느님 말씀을 만나는 것입니다”(135).

사목자들의 자성을 촉구하는 말씀을 하시면서 매너리즘에서 벗어나 자신의 직무를 즐겁고 유익한 멍에로 적극적으로 수용하도록 이끄셨다. “강론 준비는 매우 중요한 책무이기에 창의적인 사목을 위하여 연구와 기도와 묵상에 오랜 시간을 바쳐야 합니다. 준비되지 않은 강론자는 영성적이지 않고 정직하지 않으며 자신이 받은 은사에 무책임한 자입니다”(145).

준비한 만큼 사랑받는다

교황은 사목자들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시간을 강론 준비에 바쳐야 한다고 강조한다. 준비하는 데에 들인 시간만큼 신자들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다. 말재주나 지식으로 신자들을 울고 웃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강론자가 그 내용을 준비하기 위해 충분한 시간을 보내지 않았다면, 그에게 신자들을 향한 사랑은 부족하고 하느님의 자녀들에 대한 관리에 충실하지 못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강론 준비에는 사랑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오로지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이나 사물에만 서두르지 않고 기꺼이 시간을 바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우리에게 말씀하고자 하시는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 사랑 때문에 우리는 참된 제자들과 마찬가지로 필요한 시간을 얼마든지 낼 수 있습니다. ‘주님, 말씀하십시오. 당신 종이 듣고 있습니다’(1사무 3,9)”(146).

모범을 보여야

교황은 강론 내용이 사목자의 삶 자체가 되도록 이끈다. 신자들을 가르치려 들지 말고 실제 삶으로 보여주라는 말씀이다. “용기를 잃지 맙시다. 강론자는 자신이 하느님께 사랑받고 있고 예수 그리스도께 구원받았다는 사실을, 그리고 언제나 그분의 사랑이 결정적이라는 사실을 확신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가 마음을 열어 하느님 말씀을 들을 시간을 내지 않는다면, 하느님의 말씀이 자신의 삶에 와 닿지 못하게 한다면, 그 말씀이 자신을 반성하도록 이끌지 못한다면, 그 말씀이 자신에게 권고되지 않는다면, 그 말씀이 자신을 흔들어 놓지 않는다면, 그 말씀과 함께 기도하는 시간을 내지 않는다면, 그는 분명히 거짓 예언자, 사기꾼, 협잡꾼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151).

필자도 사목자이다. 스스로 질문을 던져본다. 강론에 대한 교황의 가르침은 사목자인 내게 어떤 충고와 훈계로 다가오는가? 내가 개선해야 할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마음이 결코 가볍지 않다. 물에 적신 솜이불처럼 묵직한 부담이 밀려온다. 그러나 용기를 내 본다. 주님께서 나를 선택하시어 필요한 은사를 주셨기 때문이다.

 

 

 

 

[홍기선 신부의 복음의 기쁨 해설] (38) 강론 II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구원하셨습니다!”

 

교황은 치빌타 카톨리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선교의 전형적 형태의 선포는 본질적인 것, 즉 필수 불가결한 것에 초점을 맞춥니다. 이것은 사람들을 열광시키는 것이고 더욱 매력적으로 느끼게 하며 마치 엠마오의 제자들처럼 마음을 뜨겁게 만드는 것입니다.아름다운 강론은 첫 선포, 즉 구원의 선포와 함께 시작되어야 합니다. 이 선포보다 더 견고하고 심오하며 확실한 것은 없습니다”(두 분 교황님과 함께 52-53).

첫 선포, 가장 중요한 것, 그 내용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을 구원하셨습니다!” 바로 이것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구원의 선물을 장엄하게 선포하는 것으로 강론은 시작되어야 한다. 모든 강론의 처음부터 끝까지 내용 전체가 지향하는 바도 바로 이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구원하셨습니다!”

지속적 성숙 통해 완성되는 복음화

위의 첫 선포의 내용이 사도들의 케리그마(kerygma, 선포)이다. 권고 복음의 기쁨3장 후반부에서는 케리그마의 내용을 다음의 문장으로 친절히 요약해 주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여러분을 사랑하시고, 여러분을 구원하시고자 당신 생명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날마다 여러분 곁에 사시면서 여러분을 깨우치시고 힘을 주시고 자유롭게 해주십니다”(164).

첫 선포의 내용은 더욱 발전되어야 한다.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시는지, 그분의 생전의 가르침은 무엇인지, 그 내용 전체가 전달되어야 한다. 교황은 주님의 명령에 따라 첫 선포가 어떻게 시작되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심화되고 발전되어야 하는지를 케리그마의 심화를 통한 복음화라는 주제로 설명하였다. 복음화는 지속적인 성숙을 통해 완성된다. 우리도 사도 바오로처럼 고백할 수 있어야 한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갈라 2, 20).

사랑의 계명을 실천해야

그렇다면 케리그마를 심화시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신 것을 스스로 지키고 다른 사람이 지키도록가르쳐야 한다. 그리스도로부터 받은 가르침의 내용은 무엇인가?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가르쳐 지키도록 한 모든 내용이 해당된다. 모든 덕과 계명이 그 내용이다. 기회 닿는 대로 교회의 교리와 윤리적이고 종교적인 의무들에 대한 가르침을 주어야 한다.

그러나 하느님의 구원적 사랑이 이 모든 계율보다 앞선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계명 가운데 으뜸이며 모든 율법의 완성인 것이 사랑이다.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5,12). “남을 사랑하는 사람은 율법을 완성한 것입니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로마 13,8-10). 이 가르침을 실행하도록 끊임없이 전달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 날 우리가 심판받는 기준도 바로 이 사랑의 계명을 얼마나 실천하였느냐에 달려 있다(마태 24,31-46 참조). 사제들의 강론에서 늘 강조되어야 할 부문이다.

선포, 신앙인 삶의 중심이 돼야

교황은 신자들에게 베풀어지는 교리교육의 내용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을 표명하며 케리그마와 신비 교육에 대해 소상히 설명한다. 신비 교육이란 새롭게 세례받은 이들이 공동체 안에서 부활 시기 동안 특별한 관심과 배려 속에 뿌리내리도록 이끄는 교육을 의미한다. 어른 입교 예식서는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성사들에 자주 새롭게 참여함으로써, 새 신자들은 성경 말씀을 분명히 이해하게 되고, 사람들을 좀 더 알게 되고 공동체 생활을 해 가면서 다른 신자들과 더 쉽고 유익하게 친교를 이루게 된다. 따라서 신비 교육 기간은 새 신자들이 대부모의 도움을 받아 다른 신자들과 더욱 친밀해지며, 세상에 대한 새로운 시각으로 새로운 동기를 가지고 살아가도록 이끌어 주는 아주 중요한 기간이다”(어른 입교 예식서 39).

우리는 교리교육에서도 첫 선포 또는 케리그마가 근본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을 재발견하였습니다.교리교사의 입에서 첫 선포가 되풀이하여 울려 퍼져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여러분을 사랑하시고, 여러분을 구원하시고자 당신 생명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날마다 여러분 곁에 사시면서 여러분을 깨우치시고 힘을 주시고 자유롭게 해 주십니다. 이 선포가 이라고 불리는 것은 처음부터 있었는데 나중에 잊히거나 이보다 더 중요한 내용들로 대체되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이는 질적인 의미에서 첫째입니다. 그것이 으뜸 선포, 곧 다양한 방식으로 언제나 우리가 거듭 들어야 하는 것이고, 교리 교육 과정에서 다양한 형태로, 그 모든 단계와 시기에 언제나 우리가 거듭 선포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164).

신자들의 재교육 차원에서도 케리그마는 그 중심에 있어야 함을 강조하셨다. 이 케리그마는 교리교육에서 다루는 모든 주제의 의미를 더욱 온전히 이해하도록 해주고, 모든 인간의 마음 안에 자리 잡은 무한에 대한 갈망에 응답할 수 있는 메시지이기 때문이다. [평화신문, 2015913, 홍기선 신부(춘천교구 사목국장)]

 

 

 

 

 

[홍기선 신부의 복음의 기쁨 해설] (39) 강론 III

비유의 언어와 신자 기도가 명강론 만든다

 

교황은 계속해서 모든 형태의 교리 교육은 아름다움의 길’(via pulchritudinis)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리스도를 선포한다는 것은,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것이 단순히 마땅하고 옳은 일일 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일이기도 하다는 것을 보여 준다는 의미”(167)라고 설명했다. 시련 속에서도 삶을 새로운 빛과 심오한 기쁨으로 채울 수 있기에 아름답다고 했다.

그러면서 참된 아름다움의 모든 표현은 주 예수님을 만나는 길이 될 수 있으므로 예술을 적극 활용하도록 권고했다. 새로운 비유의 언어로 신앙을 전달할 수 있도록 노력하라고 했다. “우리는 말씀을 전달하는 데에 필요한 새로운 표지와 새로운 상징과 새로운 형체를 찾는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이는 다양한 문화적 상황에서 소중히 여겨지는 아름다움의 다양한 형태들을 찾는 것입니다”(167). 사목자의 노력이 필요하다. 미래는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할 것이다. 구원의 메시지를 담는 비유의 언어는 아름다움의 총화가 돼야 한다.

비유의 언어를 계발해야

스스로 질문해 본다. 케리그마의 심화에 대한 교황의 가르침을 읽었다. 우리가 본당에서 교리교육 혹은 특강을 하거나 일상적인 신자 재교육을 준비할 때, 염두에 둬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교황은 이와 같은 내용을 전달하기 위해 새로운 표지와 새로운 상징과 새로운 형체를 찾는 용기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새로운 비유의 언어를 계발하라는 말씀이다. 어떤 것을 생각해 볼 수 있겠는가?

교황은 계속해서 성직자, 수도자 그리고 평신도는 성숙과정의 동행인들이기에, 서로를 존중하며 참다운 영적 동행으로 지상 여정을 순례하도록 권고했다. 이들의 함께함을 동행의 예술이라는 표현으로 묘사했다. ‘예술은 서로에 대한 존중을 의미하는 말이다(탈출 3,5 참조). “이 동행은 힘차고 꾸준한 발걸음으로 이루어지고 존중과 연민으로 가득 찬 시선이 담겨 있어야 한다”(169).

바오로가 티모테오와 티토와 맺은 관계는 사목 활동 중에 이루어지는 이러한 동행과 교육의 모범이 된다고 했다. 그리고 모든 복음화의 원천은 성경에 있음을 강조하면서 말씀에 귀 기울이는 훈련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또한 신자들까지 성경 연구에 적극 참여하도록 독려했다. 그 내용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성경 연구는 모든 신자에게 열린 문이 되어야 합니다.우리는 하느님을 눈먼 채로 찾지 않습니다. 또한 하느님께서 이미 말씀해 주셨으므로, 우리에게 계시되지 않은, 우리가 더 알아야 할 것이 없기 때문에,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먼저 말씀하시기를 기다리지도 말아야 합니다. 계시된 말씀의 숭고한 보화를 받아들이도록 합시다”(175).

명강론은 신자들의 기도에서 나온다

교황은 복음의 기쁨3장 후반부 강론에 대해 말하면서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의 동행의 예술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좋은 동행자는 좌절하거나 두려움에 빠지지 않습니다. 그는 다른 이들이 치유되어 다시 일어나고 십자가를 지며 모든 것을 뒤로하고 복음을 선포하고자 언제나 새롭게 출발하도록 권유합니다”(172).

베트남 반 투안 추기경 이야기를 하고 싶다. 2000년 희년에 교황청 사순 피정 강론을 시작하며 이렇게 말했다. 반 투안 추기경은 예화를 들었다. “미국의 한 작가가 군중을 매혹 시킨 유명한 설교자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 저에게 큰 위안이 되었습니다. 어떤 노인이 설교를 충실히 듣고 있었습니다. 설교자는 자신의 성공 앞에서 몹시 행복해했습니다. 어느 날 밤 꿈에 천사가 나타났습니다. ‘명설교를 축하드립니다. 참으로 훌륭하십니다! 그런데 설교를 들으려고 늘 당신 앞에 앉아 있는 그 노인을 기억하시나요?’ 그가 , 기억하고말고요하고 대답하자 천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가 당신의 설교를 듣기 위해 오는 것이 아니라, 당신을 위해 기도하려고 온다는 사실을 알아두세요. 그분의 기도 덕분에 당신의 설교는 신자들에게 언제나 좋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으로부터 강론에 대해 충분한 가르침을 받았다. 야단도 많이 맞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제들의 강론이 시원찮으면, 그들을 위해 기도해 주는 평신도들이 형편없기(?) 때문이라고 억지로 푸념해보고 싶어 위의 예화를 인용해 보았다.

 

 

 

 

 

[홍기선 신부의 복음의 기쁨 해설] (40) 신앙 고백과 사회 참여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라!

복음의 기쁨4장은 복음화의 사회적 차원을 다룬다. 하느님의 구원은 지금 여기에서 개인과 공동체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함을 일깨워주고 있다. 신앙인들의 행동 양식을 규정 짓는 내용이다. , 아니오가 분명한 말씀이다. 사회 정치적인 문제에서 신앙인들이 자신들의 분명한 목소리를 내도록 이끌고 있다. 큼직한 주제가 네 가지나 된다. 다음과 같다. ‘케리그마의 공동체적 사회적 반향’(177-185), ‘가난한 이들의 사회 통합’(186-216), ‘공동선과 사회평화’(217-221), ‘평화에 이바지하는 사회적 대화’(238-241).

기쁜 소식으로 시작된 그리스도교

그리스도교는 교리윤리로부터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전하여진 소식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기쁜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외침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우리는 이를 첫 선포(케리그마)라고 부른다. 그 내용을 다시 적어본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여러분을 사랑하시고, 여러분을 구원하시고자 당신 생명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날마다 여러분 곁에 사시면서, 여러분을 깨우치시고, 힘을 주시고, 자유롭게 해 주십니다”(164).

 

이 케리그마를 듣고, 믿어서 회개하는 사람은 하느님 아버지를 믿는 것이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인간을 무한히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믿는 것이다. 이 믿음은 하느님의 아드님이 인간의 몸을 취하시고, 우리를 위해 피를 흘리며 십자가의 희생 제사를 봉헌하셨음을 믿는 것이다. 어느 누구도 이 사랑으로부터 배제되지 않았다. 하느님은 인간 모두를 이렇게까지 존귀하게 여기신다. 그래서 우리 신앙인들은 인간의 존엄을 무한대로 인식한다. 이는 우리들 가운데 가장 보잘것없는 한 사람에게까지 똑같이 적용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최후의 심판 기준으로 이를 언급하기까지 하셨다. 가장 보잘것없는 한 사람에게 해준 것이 곧 자신에게 해 준 것이라 하셨다. 외아들의 희생을 통해, 인간을 구원하신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에 대한 인간의 보답은, 가장 보잘것없는 한 사람으로 존재하는 그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라는 말씀이다. 교황은 이렇게 말한다. “첫 선포는 우리가 하느님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바로 그 사랑으로 하느님을 사랑하도록 초대하는 것입니다. 이 첫 선포를 받아들일 때, 우리 삶과 활동에서 주요한 근본적인 응답이 나오게 됩니다. 곧 다른 이들의 선익을 바라고 찾고 보호하게 되는 것입니다”(178).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주어라. 그러면 너희도 받을 것이다. 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되받을 것이다”(루카 6,36-38).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전해야

이미 시작된 하느님의 나라는 하느님께서 다스리는 나라이고, 보편적인 형제애, 정의, 평화, 인간 존엄이 실현되는 나라이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신앙인들을 다그치신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마태 6,33). 온 우주를 구원하시고자 하시는 하느님의 구체적 구원 계획을 사도 바오로는 이렇게 설명한다. 하느님 아버지의 구원 계획은 때가 차면 하늘과 땅에 있는 만물을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을 머리로 하여 한데 모으는”(에페 1,10) 것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이렇게 명령하셨다.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라”(마르 16,15). “사실 피조물은 하느님의 자녀들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습니다”(로마 8,19). 우리 신앙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교황은 이렇게 설명한다. “여기에서 피조물은 인간 삶의 모든 측면에 관련된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는 사명에는 보편적 목적이 있습니다. 그 사랑의 명령은 실존의 모든 차원, 모든 개인, 공동체 생활의 모든 분야, 모든 민족들을 포함합니다. 인간적인 모든 것이 거기에 포함됩니다”(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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