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한 말씀만 하소서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 (28) 피에르 테이야르 드 샤르댕 (상)

작성자은총의샘|작성시간26.01.05|조회수86 목록 댓글 0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 (28) 피에르 테이야르 드 샤르댕 ()

그리스도교 신앙과 과학적 탐구의 조화로운 통합 제시

- 피에르 테이야르 드 샤르댕.

 

 

 

 

 

과학과 종교, 혹은 과학과 신앙의 관계는 과연 무엇인가. 이는 본격적인 세속화와 더불어 과학기술의 발달이 이뤄지기 시작한 근대부터 본격적으로 제기된 질문이다. 하지만 이는 현대에 이르러 더욱 심각하게 다가오는 중요한 문제다. 오늘날의 종교들, 특히 그리스도교는 '과학주의'라는 광대한 흐름의 도전과 위협에 직면해 있기 때문이다. , 현대의 극단적인 과학적 세계관은 무신론적 성격을 분명히 드러내며 그리스도교 신앙관과 가치관에 맞서고 있다.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자신의 개인적 삶의 여정 안에서 과학적 탐구와 그리스도교 신앙의 조화로운 통합을 시도하고, 여러 저서를 통해 우주적 관점의 보편적 그리스도론을 전개한 프랑스의 예수회원 피에르 테이야르 드 샤르댕(Pierre Teilhard de Chardin, 1881~1955) 신부의 신학사상을 살펴보는 것은 현대의 과학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현대 과학주의의 무신론적 도전

오늘날 그리스도교 신앙에 큰 도전과 위협으로 다가오는 과학주의는 그야말로 과학기술의 놀라운 힘으로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믿는 '과학기술지상주의' 혹은 '과학기술만능주의' 관점에서 먼저 이해할 수 있다. 믿기 어려울 정도의 급속한 발전을 거듭하는 현대 과학기술 문명 속에서 인간은 한편으론 매우 편리하고 안락한 삶을 누리는 것 같지만 다른 한편으론 과학기술에 대한 의존도가 점점 높아져서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마치 그 노예가 된 것 같은 삶을 살아간다. 더욱이 과학기술의 힘이 그 전통적 한계를 넘어서 인간의 모든 삶을 통제하고 지배할 것 같은 착각과 환상에 빠지게 된다.

 

이는 마치 하느님 영역에 도전해 과학기술의 힘으로 바벨탑을 쌓는 시도와 같다고 말할 수 있다. 창세기 111-9절에 나오는 바벨탑 이야기에서 사람들이 바벨탑을 쌓는 목적과 동기는 바로 "성읍을 세우고 꼭대기가 하늘까지 닿는 탑을 세워 이름을 날리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고대의 우주론적 세계관에서 하늘은 곧 신의 영역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결국 이는 자신이 하느님의 자리에까지 오르고자 하는 인간의 독선과 교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이야기다. 이렇듯 인간의 본분을 잊고 있어야 할 자리를 넘어 하느님의 권능에까지 침범하려 도전하는 오만함이야말로 오늘날 극단적인 과학주의 흐름이 보여주는 뚜렷한 경향이다.

 

이러한 현대의 과학적 세계관에서 바라볼 때 그리스도교 가치관과 인간관 및 세계관은 그 관심에서 철저히 배제되며 전통적인 형이상학적, 윤리적 가치관 또한 도외시된다. 과학기술의 힘을 신봉하는 사람들은 이제 그것이 자연과 인간에 대해 거의 신적인 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믿는 것 같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사람들로 하여금 더 이상 하늘을 바라보거나 초월적 차원에 대해 생각할 필요가 없게끔 만든다. 그야말로 모든 것을 가능케 하는 과학기술의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인간의 종교적 믿음에 관한 가치가 근본적으로 의문시되기에 이른다.

 

나아가 과학기술만능주의 관점에서 매우 명시적이고 공격적인 현대 무신론이 등장한다. 전 세계적으로 알려진 무신론 저서 만들어진 신(The God Delusion, 2006)의 저자 리처드 도킨스 등 여러 과학적 무신론자들은 인간의 이성이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진리의 근거와 기준은 오직 현대의 자연과학적 방법론뿐이기에 모든 종교적 믿음은 근거 없는 미신과 맹신에 불과한 것이라고 간주한다.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첫 회칙 신앙의 빛을 통해 "과학으로 제작하고 측량할 수 있는 것만이 진리로 여겨지는"(25) 오늘날의 과학주의 경향을 날카롭게 비판한다.

 

과학적 무신론자들이 신봉하는 찰스 다윈의 생물학적 진화론은 이제 인간의 모든 정신적 사회 현상까지도 설명 가능한 우주적 보편 원리로 등장한다. 미국 하버드대학의 생물학 교수인 에드워드 윌슨은 이러한 진화론적 관점에서의 사회생물학을 주창했고, 바로 이것이 리처드 도킨스 등에게 영향을 미쳐 보다 급진적인 과학적 무신론이 나타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스티븐 호킹 등의 세계적 이론 물리학자들 역시 우주의 자체적 생성을 주장하며 명시적인 무신론을 내세우게 됐다.

 

 

과학과 신학의 대화 필요성

 

이러한 과학적 무신론자들의 급진적 주장 앞에서 우리 그리스도인은 과학과 신앙의 관계에 대해 과연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과학적 탐구는 반드시 무신론적 경향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는 것인가. 과연 그들은 생물학적 결정론이나 환원주의에 근거한 무신론적 과학주의 입장에서 무한히 광대한 우주와 심오한 인간 생명의 신비를 모두 충분하게 설명할 수 있다고 정말 믿는 것인가. 사실상 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특히 인간 영혼의 신비는 인간 이성에 의해 어느 정도 탐구될 수는 있지만 온전히 파악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인간 영혼의 문제는 여전히 이성의 한계를 넘어서는 초월적 영역에 속하기에 과학적 실증주의 입장으로 파악하기에는 분명히 한계가 있는 것이고, 바로 이러한 관점에서 과학과 신학의 대화가 필요한 것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현대 교회의 가르침은 하느님 권능에 의한 세상과 인간의 창조를 가르치면서도 진화론을 전적으로 배척하지 않는다. 과학과 신학의 책임 있는 대화를 통해 이에 관한 연구가 진지하게 지속되기를 권고하면서도 인간 영혼에 관한 영역은 반드시 존중돼야 함을 강조한다.

 

과학과 신학은 상호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건설적 비판에 입각한 상호 대화를 통해 함께 조화와 균형을 이뤄야 한다. 이 둘은 우주의 기원과 인간 생명의 신비에 대한 진리 탐구적 열망의 동일한 원천에서 비롯해, 각자 고유한 길에서 위대한 근원적 신비를 향한 길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긍정적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과학적 견해를 무시하고 간과하는 신학자의 맹목적 입장도 큰 문제지만, 신학적 전망과 가치를 배격하고 무조건 앞으로만 달려가려는 과학적 세계관의 독주 역시 매우 위험하다.

 

그러므로 프란치스코 교황은 신앙의 빛을 통해서 과학의 한계를 조정하고 보완하는 신앙 역할을 강조한다. "과학의 시각은 신앙으로부터 도움을 받습니다. 신앙은 과학자들이 실재의 고갈될 수 없는 모든 부() 안에서 실재에 늘 열려 있도록 격려합니다. 신앙은 과학적 연구가 몇 가지 공식으로 만족하는 것을 막음으로써 비판적인 감각을 일깨워주고, 자연이 언제나 더욱더 큰 실재임을 깨닫게 해 줍니다. 창조의 신비 앞에서 경이감을 갖게 함으로써 신앙은 이성의 지평을 더욱 넓혀 줍니다. 이는 과학적 탐구에 개방되어 있는 세상에 더 큰 빛을 비추기 위함입니다"(34).

 

 

샤르댕의 생애와 공헌

 

이러한 '과학과 신학의 관계'라는 주제를 다룸에 있어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으니, 그는 바로 지질학자이자 고생물학자이면서 동시에 신학자였던 피에르 테이야르 드 샤르댕이다. 샤르댕은 1881년 프랑스 중부 오베르뉴 지방에서 태어나 18세에 예수회에 입회한 후 신학과 과학을 두루 공부했다. 1911년 사제품을 받은 후 지질학과 고생물학, 고고인류학 등의 분야를 계속 연구했다. 1915~1919년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여러 차례 생사의 고비를 넘긴 체험은 그의 신학사상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1922년 파리 소르본대학에서 자연과학 분야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23~1946년 중국에 머물며 과학 연구를 진행했고 1929'북경 원인' 발굴 작업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후 1946~1951년 프랑스 파리에서, 1951~1955년 미국 뉴욕에서 연구를 계속하다가 미국에서 1955년 부활 대축일에 세상을 떠났다. 2005년 샤르댕 사후 50주년을 기념해 유엔(UN) 본부가 '인류의 미래-테이야르의 현대적 의의'라는 제목으로 심포지엄을 개최했을 정도로 그의 업적과 사상적 발자취는 높게 평가되고 널리 인정받고 있다.

 

신학적 관점에서 보면 샤르댕은 현대 조직신학적 차원에서 처음으로 '우주적 그리스도'(cosmic Christ) 개념을 명시적으로 언급하며 과학과 신학의 통합을 시도했던 공로를 인정받는다. 샤르댕의 여러 저서를 통해 분명히 드러나는 것은 우주 전체의 진화와 발전을 역동적으로 촉진해 마침내 그 모든 것을 완성으로 인도하는 '우주적 그리스도'에 관한 신학적 전망이다. 샤르댕은 우주의 발전과 동시에 그 안에서 이뤄지는 인간의 점진적 진보를 강조했다. 그리고 이 모든 자연적 진화와 발전 과정이 최종적으로 수렴되는 종말론적 완성으로서 '오메가 포인트'(Omega Point)를 제시했는데, 바로 이를 그리스도와 연결시켜 신학적으로 개념화하고 해석했다.

 

다시 말해, 신약성경 바오로서간에 나오는 우주적 그리스도론(에페 1,3-10; 콜로 1,15-20; 필리 2,6-11 참조)을 근본 바탕으로 샤르댕은 자신의 독창적인 우주적 그리스도 개념의 제시와 전개를 통해 과학적 세계관과 그리스도교 신앙관의 역동적인 통합을 시도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알파이며 오메가이고 처음이며 마지막이고 시작이며 마침이다"(묵시 22,13)는 성경 말씀에 근거해 그리스도를 우주의 알파요 오메가로서 우주적 발전과 진화의 출발점이자 또한 종착점으로 제시한다.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 (29) 피에르 테이야르 드 샤르댕 ()

우주적 진화의 시작과 끝을 예수 그리스도와 연결, 통합

창조와 진화의 통합적 전망 제시

프랑스 신학자 테이야르 드 샤르댕(1881~1955)이 전개한 보편적 차원의 우주적 그리스도론은 우주와 인간의 탄생과 발전이 어떻게 그리스도 안에서 이뤄지고 마침내 완성에 이르는가를 설명한다. 이는 우주의 전체적 진화 현상에 대한 과학적 고찰을 그리스도 중심적 신학 차원에서 새로이 해석해 수용하고자 시도한 것이다. 물론 샤르댕의 사상에 대해선 긍정적 평가와 비판적 평가가 교차된다. 하지만 샤르댕의 가장 큰 공헌은 당시 도저히 양립 불가능하며 심지어 적대적으로까지 간주되던 그리스도교 창조론과 과학적 진화 사상을 통합하는 신학적 전망을 제시하려고 노력했다는 점이다. 오늘날 우리는 창조론과 진화론의 올바른 관계가 과연 무엇이고 교회가 진화론을 어떻게 평가하고 받아들이는지를 잘 알 필요가 있는데, 샤르댕의 신학사상을 아는 것은 이를 이해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된다.

 

 

 

창세기의 신학적 의미

 

먼저 성경의 창조론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아야 한다. 과학적 진화론자의 창조론 비판, 혹은 창조론에 입각한 진화론 비판의 양쪽 모두에서 성경에 대한 올바른 이해 부족이 발견되는 경우가 많다. , 유물론적 관점에서 진행되는 극단적 진화론도 배척되어야 하겠지만, 성경을 글자 그대로 정보적 관점에서만 이해하려는 축자적(逐字的) 입장 역시 지양돼야 한다. 왜냐하면 창세기 내용은 세상의 기원과 전개 과정에 대한 실제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데 그 목적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창세기를 통해 드러나는 세상의 실재와 인간 존재의 근원적 의미에 대한 신학적 성찰이다.

 

사실 창세기 111장의 태고사(원역사)는 다른 부분보다 더 후대에 기록됐지만 창세기의 맨 앞에 자리하게 됐다. 구약성경이 전하는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는 창세기 12-50장의 '성조사'(聖祖史), 즉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의 이야기 및 이어지는 요셉의 이야기를 통해서 시작된다고 할 수 있으며, 이스라엘 백성의 진정한 하느님 체험은 바로 이집트 탈출 사건에서부터 출발한다. 창세기 저자와 편집자들은 역사적 체험을 통해 이스라엘이 구원자이신 주 하느님께 선택받은 백성이라는 선민(選民) 사상을 펼치면서,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 간의 계약을 강력히 드러낸다. 그리고 이러한 계약을 태초의 기원으로까지 끌어올리면서 창세기 111장의 창조 이야기가 형성되기에 이른다.

 

특히 창세기 13장에서 인간 창조에 관한 이야기가 두 번 나오며 문학적 긴장이 발견되는 것은, 창세기 1,12,4a(기원전 6~5세기의 사제계 문헌)2,4b3,24(기원전 10~9세기의 야훼계 문헌)이 서로 다른 전승에 연유하는 까닭이다. 이 두 전승이 결합돼 편집된 시기는 바빌론 유배 생활이 끝난 직후인 기원전 400년쯤으로 보인다. 이처럼 인간 기원에 대한 설명을 제공하고 있는 서로 다른 이야기들이 창세기 도입부에 함께 모여 여러 편집 과정을 거치며 문학적 긴장을 자아내는 현재의 형태로 형성된 것은 이스라엘 민족과 계약을 맺으신 하느님께서 바로 온 세상과 우주를 만드신 창조주임을 드러내기 위함이었다.

 

이는 주 하느님에 대한 시각이 이스라엘의 민족신 개념을 벗어나 보편적 창조주의 차원으로 확대됨을 의미한다. 하느님 말씀은 일차적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지만 이제 이스라엘을 넘어 전 인류를 지향하게 된다. 창세기 편집자들은 이처럼 신관(神觀)에 대한 재성찰을 통해 주 하느님의 권능과 약속에 대한 기대와 전망을 보편적 차원에서 새롭게 함으로써, 바빌론 유배라는 민족적 위기 상황에서 겪어야 했던 어둡고 부정적인 체험을 이겨내는 강력한 희망을 제시하려 했다. 그러므로 창조와 계약을 연결시키는 관점에서 편집된 창세기 도입부는 고통스러운 현재적 체험에서 출발해 태초의 기원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일련의 신학적 성찰이며 반성이다.

 

 

창조론과 진화론

 

이처럼 창세기는 창조 역사에 대한 실제적 객관적 보도가 아니라 하느님 창조에 관한 신학적 메시지를 전한다. , 창세기 내용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구체적인 역사 속에 작성된 신앙고백적 성격을 지니기에 우주의 생성 장면을 직접 목격한 누군가가 마치 구체적 사건 보도를 하듯이 기록한 것이라고 할 수 없다. 창세기에 대한 이러한 신학적 이해에 근거한다면, 우리는 진화론을 무조건적으로 수용하거나 아니면 일방적으로 배척하는 양 극단을 피해야 한다.

 

창조론과 진화론의 현대적 논쟁과 관련해 비오 12세 교황(재위 1939~1958)1950년 회칙 인류(Humani Generis)를 통해 가톨릭 교회의 공식 입장을 다음과 같이 밝힌다. "교회 교도권은 진화론적 주장이 이미 선재(先在)하는 생물체로부터 유래하는 인간 육체의 기원에 대하여 연구하는 한, 과학과 신학의 현재 상태에 따라 그 양쪽 분야의 전문가들에 의해 진화론적 주장이 연구와 토론의 대상으로서 다뤄지는 것을 금하지 않는다. 다만 가톨릭 신앙은 영혼들이 하느님에 의해서 즉각적으로 창조됐다고 생각할 것을 우리에게 의무로서 요구한다. 그리고 이러한 연구와 토론은, 진화론에 찬성하거나 반대하는 양편의 주장 모두가 마땅히 신중함과 중용에 의해서 그리고 조심스럽게 숙고되고 판단되는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 또 양편 모두는 그리스도께서 진정한 성경 해석과 신앙교리 수호의 임무를 위탁하신 교회의 판단에 승복할 자세가 돼 있어야 한다."

 

여기에서 언급된 인간 영혼이 하느님에 의해서 직접 창조되었다는 관점은 진화론과의 대화와 토론에 있어 결코 가톨릭 신앙이 포기할 수 없는 핵심 논점임이 1966년 바오로 6세 교황(재위 1963~1978)에 의해 재확인된다. 그리고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재위 1978~2005) 역시 1996'생명의 기원과 진화'를 주제로 열린 교황청 과학원 총회에 보낸 담화에서 이 원칙을 거듭 천명한다. "진화의 이론들에 영감을 준 철학들에 따라, 인간 정신이 생물체의 힘에서 나온다든지 또는 생물체의 단순한 부수 현상이라고 여기는 진화론들은 인간에 대한 진리가 될 수 없다. 그러한 이론들은 또한 인간 존엄성의 근거가 될 수 없다."

 

 

샤르댕의 통합적 전망

 

이러한 창조론과 진화론의 상관관계를 이해함에 있어 샤르댕 신학사상은 큰 도움이 된다. 샤르댕에게는 우주의 신비에 대한 관찰과 이해가 과학적 탐구의 목표였다. 그는 지질계로부터 생명의 발생과 인간의 출현에 이르기까지 우주를 하나의 통일체로 놓고 이에 대한 현상학적 고찰을 추구했다. 그래서 물질에 대한 탐구를 시작으로 생명체를 고찰하던 샤르댕은 '진화'라는 중요한 현상을 접하게 된다. 하지만 샤르댕이 생각한 진화는 종의 기원의 저자 찰스 다윈(Charles Darwin, 1809~1882)을 비롯한 생물학적 진화론자들의 특정 주장에 갇히는 것이 아니었다. 샤르댕의 과학적 진화 현상론은 보다 고차원적으로 만물이 어떤 성장 과정에 의해 존재하게 됨을 말하는 우주 전체의 진화를 의미한다.

 

이러한 발전 단계 중 생명의 발생과 인간의 출현은 우주 진화의 결정적 현상이다. 그리고 그 상승적 발전 과정이 종결되는 모든 우주적 진화의 최종 수렴점으로서 '오메가 포인트'(Omega Point)가 제시되기에 이른다. 샤르댕은 이 오메가 포인트를 설명함에 있어 세상과 우주 안에 역동적인 사랑의 순환을 가능케 하는 인격적 중심이 존재함을 말하면서, 이를 그리스도교 계시를 통해 드러나는 예수 그리스도와 연결시킨다. 이는 나자렛 예수님을 통해 드러난 그리스도의 강생이 우주적 신화(神化)를 위한 결정적 사건이며 궁극적으로는 신성화된 우주를 그리스도 자신에게로 최종 수렴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하여 샤르댕은 육화하신 하느님 아드님의 사건, 즉 그분의 탄생과 죽음과 부활의 신비로써 모든 '인간 현상'의 전체적 의미가 충만히 드러난다는 입장을 제시한다.

 

샤르댕의 이러한 사상은 신약성경의 대표적 그리스도 찬가인 콜로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115-20절의 우주적 그리스도론을 과학적 언어로 설명하고자 시도한 것이다. 여기에서는 성자 그리스도께서 창조의 중재자이자 원동력이며, 중심이자 목표로서 드러난다. 요한 묵시록에서 주님이신 그리스도께서 바로 '알파이며 오메가이고 시작이며 마침'이라고 표현하는 것처럼, 창조부터 종말론적 완성에 이르기까지 전체 구원 역사의 우주적 중심에 그리스도께서 자리하심이 드러난다. 특히 그리스도 안에서 '온갖 충만함'이 드러난다고 말하는데 이는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만물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화해할 것이며, 또한 그리스도를 '향하여' 완성되어 갈 것임을 의미한다. 그리고 에페소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14-10절의 그리스도 찬가에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만물의 수렴'에 대해 말한다. "그것은 때가 차면 하늘과 땅에 있는 만물을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을 머리로 하여 한데 모으는 계획입니다"(에페 1,10).

 

샤르댕이 말한 '오메가 포인트'는 바로 우주적 그리스도를 통해 이뤄지는 종말론적인 '만물의 수렴과 충만' 사상을 과학의 언어로 표현하려 시도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이처럼 샤르댕은 우주의 진화를 과학적 차원에서 탐구한 후 이를 신학적으로 재해석함으로써 창조와 진화를 통합하는 새로운 전망을 제시했다.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 (30) 피에르 테이야르 드 샤르댕 ()

거대한 우주론적 차원에서 성체성사의 신학 재조명

세계 위에서 드리는 미사

샤르댕은 자신의 개인적 삶의 여정을 통해 드러난 것처럼 과학적 탐구와 그리스도교 신앙을 통합하는 낙관적이며 미래지향적인 세계관을 제시하고 이를 바탕으로 우주론적 차원의 신학사상을 전개했는데, 이는 20세기 초중반 당시에 매우 놀랍고도 신선한 충격을 줬다. 한편으로 샤르댕의 신학사상은 그의 생전에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교회 안팎에서 많은 논쟁을 유발시키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여러 가지 면에서 긍정적인 영향 또한 계속 미치고 있다. 예를 들어 샤르댕의 신학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1962~1965)사목헌장교회헌장작성에 사상적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된다.

 

 

온 땅을 주님께 드리는 제단으로

 

우주론적 차원에서 전개되는 샤르댕의 신학사상을 가장 단적으로 잘 보여주는 것은 그가 중국에 가서 지질학과 고생물학을 연구하기 시작하던 시절인 1923년의 신앙체험을 기록한 글 세계 위에 드리는 미사이다. 당시 그는 학문적 탐사를 위해 몽골 접경지대인 오르도스(Ordos) 사막 한가운데에 머물고 있었다. 마침 '주님의 거룩한 변모 축일'을 맞아 새벽에 일어났지만 그는 미사를 봉헌할 도구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 상태였다. 그렇지만 샤르댕은 아침 해가 떠오르는 사막의 지평선을 바라보며 아무 도구도 없이 홀로 미사를 봉헌하면서 성체성사의 신비를 온 우주적 차원으로 확대해 거행하는 체험을 했던 것이다(세계 위에 드리는 미사참조, 김진태 옮김/이병호 감수, 가톨릭대학교출판부, 2004, 표지).

 

그곳에는 성당도 제단도 없었기에, 샤르댕은 지평선을 바라보며 온 땅을 주님의 제단으로 삼아 미사를 봉헌한다. "주님, 이번에는 아시아의 대초원 안에 들어와 있지만, 또 다시 저는 빵도 포도주도 제단도 없이 이렇게 서서, 그 모든 상징들을 뛰어넘어 장엄하게 펼쳐져 있는 순수 실재를 향해 저 자신을 들어 올리려 합니다. 당신의 사제로서, 저는 온 땅덩이를 제단으로 삼고, 그 위에 세상의 온갖 노동과 수고를 당신께 봉헌하겠습니다"(15).

 

그렇다면 온 땅을 주님의 제단으로 삼아 미사를 집전하는 샤르댕 신부가 빵과 포도주 대신 미사의 예물로 봉헌하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세상의 모든 인간과 생명체들이 이뤄내는 삶의 노력과 수고다. "저쪽 지평선에서는 이제 막 솟아오른 태양이 동쪽 하늘 끝자락을 비추고 있습니다. 이 거대한 불이 찬란한 빛을 내며 떠오르면, 그 아래 살아 있는 땅의 표면은 다시 한 번 잠에서 깨어나 몸을 떨며 또다시 그 두려운 노동을 시작합니다. 오 하느님, 저는 새로운 노력이 이루어낼 소출들을 저의 이 성반에 담겠습니다. 또 오늘 하루 이 땅이 산출해낼 열매들에서 짜낼 액즙을 이 성작에 담겠습니다. 이제 곧 지구 곳곳으로부터 올라와 ''()을 향해 모아질 온갖 힘들을 받아들이기 위해 자신을 활짝 열어 놓고 기다리는 영혼의 깊은 속 그것이 저의 성반이며 성작입니다. 새날을 맞이하라고 지금 빛이 흔들어 깨우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기억하게 하시고, 그들과 신비로이 하나가 되게 하소서"(15~16).

 

한마디로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우주의 모든 것을 마치 성체성사에 사용되어 거룩하게 변화되고 거양될 '대제병'처럼 하느님께 봉헌한 것이다. 바로 이것이 샤르댕이 발견한 "세계의 성사"(36). "주님, 새날의 첫 새벽에 당신께서 만드신 창조계 전체가, 당신의 이끄심에 따라 움직이며 모든 것을 다 올려 봉헌하는 이 '거대한 제병'을 받으소서. 저희의 노동인 이 빵이 그 자체로서는 너무나 보잘것없는 부스러기일 뿐임을 저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저희의 고통인 이 술 역시 다음 순간에 사라질 하찮은 것임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볼품없는 물질 덩어리 그 깊이에 당신께서는 거룩함을 향한 어떤 억누를 수 없는 갈망을 숨겨 두셨습니다"(18~19).

 

 

샤르댕의 신학사상에 대한 평가

 

세계 위에 드리는 미사를 통해 샤르댕은 성체성사의 신학을 거대한 우주론적 차원에서 재조명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처럼 우주론적 차원에서 전개되는 샤르댕의 신학사상에 대해 교회 내에서도 많은 반대와 논란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특히 오늘날 샤르댕의 신학사상이 가장 큰 오해를 받는 부분은 현대 뉴에이지(New Age) 운동의 이론가들과 그 추종자들이 '우주적 그리스도'(cosmic Christ)에 관한 그들의 잘못된 개념과 논리를 합리화하고 정당성을 얻기 위해 샤르댕의 글을 자주 언급하고 인용한다는 점이다. 뉴에이지 사상가들이 주장하는 바는, 세상의 궁극적 실재란 오직 하나의 비인격적이고 신성한 에너지로서의 '우주적 정신'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우주적 차원에서의 비인격적인 궁극적 실재 이론을 내세우는 세계관을 옹호하기 위해서 샤르댕의 저서들이 뉴에이지 운동의 이론가에 의해 계속 인용되는 것이다.

 

그러나 샤르댕의 사상은 보편적이고 우주적인 그리스도론을 주장하면서도 결정적으로 그리스도 강생 신비의 인격적 차원을 강조한다. , 모든 실재가 혼동 없이 수렴되는 중심으로서의 그리스도는 보편적이면서도 동시에 인격적 실재라는 점이 분명히 드러난다. 사실 샤르댕의 진정한 의도는 초대 교회부터 전수되는 고전적인 '말씀(Logos) 그리스도론'을 현대 과학사상이 탐구하는 우주적 차원에서 재조명하려 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신약 성경의 바오로 서간에 나오는 우주적 그리스도론(에페 1,3-10; 콜로 1,15-20; 필리 2,6-11 참조)을 근거로 샤르댕은 역동적인 현대적 세계관에 맞게 창의적인 방식으로 그리스도의 우주적 보편성에 관한 신학사상을 전개하고자 시도한 것이다.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재위 2005~2013)는 샤르댕의 신학사상을 매우 긍정적으로 언급한 바 있다. 모두가 알다시피 베네딕토 16세는 가톨릭 교회의 정통 교리를 수호하는 최종 책임자로서 교황청 신앙교리성 장관을 오랜 기간 역임했다. 그러므로 베네딕토 16세의 긍정적 평가는 샤르댕 신학사상의 정당성과 합법성을 모두에게 알려준다. 요제프 라칭거(Joseph Ratzin ger)라는 개인 신학자 이름으로 활동하던 시절인 1968년 출간된 그리스도 신앙 어제와 오늘(장익 옮김, 분도출판사, 2007년 신정판)은 베네딕토 16세의 신학적 기조 사상이 압축적으로 잘 드러나는 핵심 저서다. 바로 여기에서 베네딕토 16세는 샤르댕의 신학사상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데, 특히 예수님에게서 드러나는 인성과 신성의 결합 의미를 현대의 과학적 세계관의 지평에서 설명하고자 시도한 공로를 높이 산다. 그리고 이 평가는 샤르댕의 그리스도론 전체에 대한 훌륭한 요약이기도 하다.

 

"이런 연관을 오늘의 세계관에서 새로 생각하고 다소 지나치게 생물론적 경향이 없지는 않았으나 전체로 보아 그래도 옳게 이해했으며, 여하튼 새로이 대할 수 있게 한 것은 테이야르 드 샤르댕의 큰 공로였다고 인정해야 할 줄 안다.여기 현대 세계관의 견지에서 때로는 지나치게 생물학적 어휘를 써 가면서도 근본적으로는 바오로-그리스도론의 방향이 파악되고 새롭게 이해될 수 있게 되었다고 하겠다. 신앙은 예수에게 있어 생물학적 도식으로 말해서 이를테면 다음 단계의 진화적 도약을 성취한 인간, 우리의 제한된 인간 존재 양상과 단자(單子)적 봉쇄에서 탈출한 인간을 보는 것이다. 인격화와 사회화가 더 이상 서로를 배제하지 않고 오히려 뒷받침하는 인간, 지상(至上)의 일치가 또한 아울러 지상(至上)의 개성과 매한가지인 인간, 인류가 그에게서 최대한 자신의 미래로 성취될 수 있는 저 인간을 신앙은 예수에서 본다. 따라서 신앙은 균열된 인류를 유일한 아담, 유일한 '', 미래의 인간존재 안으로 모아들이는 움직임의 시동을 그리스도에서 본다. 신앙은 그리스도에게서 인간이 오히려 '사회화'되고 유일한 분과 일체가 돼 개개인이 붕괴되지 않고 오히려 완전히 자기 자신이 될 저 미래를 본다"(239~242).

 

 

세상 자체가 곧 성체가 됨을 향하여

 

한편, 20097월에도 베네딕토 16세는 로마서 8장에 대한 강론을 통해 샤르댕이 세계 위에 드리는 미사에서 제시했던 관점을 인용하며 그의 신학사상을 매우 긍정적으로 언급했다. 어쩌면 이는 샤르댕 신학이 담고 있는 최종 지향점에 대한 베네딕토 16세의 영성적 해석이기도 하다.

 

"사제직의 역할은 세상을 축성하여 세상 자체가 살아 있는 성체가 되도록, 하나의 전례가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전례는 세상의 실재와 동떨어진 그 어떤 것이 아니게 됩니다. 오히려 세상 자체가 살아 있는 성체가, 하나의 전례가 되어야 합니다. 바로 이것이 테이야르 드 샤르댕에 의해 제시되었던 위대한 전망이기도 합니다. 마지막에는, 우리가 진정한 우주적 전례를 거행하게 될 것인데, 거기에서는 우주 자체가 곧 하나의 성체가 될 것입니다. 바로 이런 의미에서 우리 모두 사제가 될 수 있도록 주님께 도움을 청하며 기도합시다. 하느님께 대한 흠숭 안에서 세상이 새로이 변형될 수 있도록, 그리고 그 변형이 바로 우리 자신으로부터 시작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길 기도합시다."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 (46) 엘리사벳 쉬슬러 피오렌자 ()

금녀의 벽넘어 대표적 여성신학자로 자리매김

 

-엘리사벳 쉬슬러 피오렌자(Elisabeth Schssler Fiorenza)

 

 

 

 

엘리사벳 쉬슬러 피오렌자(Elisabeth Schssler Fiorenza)는 하버드 신학대학원에서 여성주의 성경 해석을 가르치고 있는 가톨릭 여성신학자입니다. 그의 신학 방법론에 관한 강의는 미국의 보스턴 지역에서 신학을 전공하는 이들에게는 거의 필수 과목처럼 여겨지고 있습니다.

 

그는 1996년에 한국을 방문해 이화여자대학교와 연세대학교, 그리고 한국기독교공동학회의 25번째 정기 학술대회에서 강연한 적이 있기 때문에 한국에도 비교적 잘 알려진 인물입니다.

 

피오렌자 교수의 삶과 신학 사상에 대한 다음의 소개는 글렌 에난더가 쓴 그의 전기를 바탕으로 정리한 것입니다.

루마니아 태생의 똑똑한 여자아이

엘리사벳 쉬슬러는 1938, 루마니아에서 태어났습니다. 2차 세계대전 중이던 19449월 러시아군의 공격으로, 당시 여섯 살이던 엘리사벳은 부모와 함께 피난을 떠나 전쟁 난민이 돼 이곳저곳을 표류하다 전쟁이 끝나던 1945년에 독일의 한 시골 마을에 정착하게 됩니다. 그곳에서 엘리사벳의 아버지는 재봉사로 일했습니다. 전쟁으로 학교에 다니다 중단하기를 반복한 엘리사벳은 세 번째로 다시 1학년에 입학했는데, 곧 뛰어난 학업 수행 능력을 드러냈습니다. 그리하여 매우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에 입학하게 됐는데, 루터교가 주를 이루고 있던 지방에서 한 가톨릭 소녀가 이토록 뛰어난 성적을 얻게 된 것이 당시에 많은 이의 이목을 끌었다고 합니다. 엘리사벳은 10대 소녀였을 때 수도자가 될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본당신부님께서 엘리사벳은 순종 서원을 사는 것이 어려울 것 같다는 조언을 하시면서 수도 성소를 포기하게 하셨는데, 이후에 그 충고는 아주 현명했던 것으로 드러났다고 본인이 밝히고 있습니다.

 

 

남성들의 학문, 신학에 문 두드려

 

1958년 엘리사벳은 대학 예비과정을 마치고 뷔르츠부르크 대학에서 독일 문학과 역사, 신학을 공부했습니다. 1962년에는 그곳에서 신학석사 학위(MDiv)를 취득하고 1963년에는 박사 학위 바로 밑에 해당하는 상급석사 학위(licentiate)를 취득했습니다. 그 후 1964년부터 1970년까지 뮌스터 대학교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 피오렌자 교수는 1971년에서 1984년까지 14년간 미국의 유명한 노트르담 대학교에서 신학을 가르쳤다. 당시 노트르담 대학교의 종교학부에서 피오렌자 교수는 유일한 여성 교수였다. 사진은 노트르담 대학교 캠퍼스에 세워져 있는 이 대학 설립자 에드워드 소린 신부 동상. CNS 자료 사진

 

 

대학에서 신학 교육을 받은 전 과정 동안 엘리사벳은 거의 모든 수업에서 유일한 여학생이었고, 그 때문에 엘리사벳의 뛰어난 성취는 더욱 많은 주목을 받게 됐습니다. 어떤 교수들은 엘리사벳에게 매우 협조적이었지만 일부 교수들은 여성이 신학 석ㆍ박사 학위를 얻으려고 한다는 사실 자체에 대해 매우 적대적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엘리사벳은 굳은 결심으로 이 학위들을 차례로 취득했습니다. 1960년대 독일에서, 신학이란 남성들의 학문이었습니다. 엘리사벳은 유일한 여학생으로서 처음 신학 공부를 시작했을 때부터 여성의 존재에 대한 관심을 잊지 않았습니다. 1964년 상급석사 학위를 받았을 때 엘리사벳이 쓴 논문은 교회 안에서 여성들이 하는 봉사직에 초점을 둔 사목신학에 관한 것으로, 이 논문은 잊힌 동반자(Der vergessene Partner, [Dsseldorf: Patmos Verlag, 1964])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판됐습니다. 엘리사벳의 첫 번째 저서인 이 책은 박사 학위를 받기에도 충분하다는 평을 얻었다고 합니다.

 

엘리사벳은 뛰어난 성적으로 대학원을 졸업하고, 1964년에 같은 대학인 뷔르츠부르크 대학에서 루돌프 쉬낙켄부르그를 지도교수로 모시고 박사 학위 과정을 시작했습니다. 신학박사 학위 과정에서도 엘리사벳은 당연히 유일한 여학생이었고, 당시의 분위기에 적응하며 사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여성이어서 겪어야 하는 불이익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지도교수였던 쉬낙켄부르그는 당시 세 명의 학생에게 장학금을 줄 수 있었는데, 그는 신학의 미래를 쥐고 있는 이들에게 장학금을 줘야지 미래도 없는 여학생에게 줄 수는 없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는 또 평신도가 신학교에서 가르치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여겼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엘리사벳의 실망은 매우 컸습니다. 학생으로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했고 성적도 누구보다 뛰어났음에도, 엘리사벳이 여성이라는 사실은 그의 학업성취능력으로도 뛰어넘을 수 없는 장벽이 됐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엘리사벳은 뮌스터대학의 요셉 슈라이너 교수를 만나게 됐고, 그의 지도로 박사 학위 공부를 하게 됐습니다. 슈라이너 교수는 엘리사벳에게 대학의 연구직도 마련해줬습니다.

 

뮌스터대학으로 옮긴 후 그곳에서 장차 남편이 될 프란시스 피오렌자를 만나게 됩니다. 현재 하버드 신학대학원에서 가톨릭 신학을 가르치고 있는 프란시스 쉬슬러 피오렌자 교수는 당시엔 미국 볼티모어의 성 마리아 신학대학에서 신학석사 학위를 받은 후 1963년에 독일 뮌스터대학으로 가서 유명한 두 분의 신학자 요한 밥티스트 메츠와 요제프 라칭거(베네딕토 16세 교황)의 지도로 박사 학위를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프란시스는 종종 엘리사벳에게 뷔르츠부르크에서 장학금을 받지 못한 것이 얼마나 잘 된 일인가 하고 농담으로 말하곤 한답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그들은 평생 서로 만나지 못했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1964년에서 1970년까지 뮌스터에서 엘리사벳은 자신의 꿈을 마음껏 펼칠 수 있었습니다. 비록 처음에는 그의 논문을 읽어줄 교수들을 찾는 데 어려움을 겪었지만 1970년에 최고 졸업논문상을 받고 학교를 졸업했습니다. 1967년에 프란시스 피오렌자와 결혼하여 엘리사벳 쉬슬러 피오렌자가 된 그는 남편과 함께 미국의 유명한 가톨릭대학인 노트르담 대학에 교수직을 얻어 1971년에 미국으로 이주하게 됩니다.

 

 

종교학부 유일한 여성 교수

 

신학 교육을 받는 동안 엘리사벳은 교회 안에서 여성의 역할에 대해 꾸준한 관심을 보였습니다. 당시 교회는 교회가 세속 안에서 어떻게 현존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주된 논제로 다루고 있었는데, 엘리사벳은 신학생들이 세속 사회에서 살고 그 사회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배우게 하려면 신학교가 여학생들에게 개방돼야 한다고 제안했다고 합니다. 이 제안은 1960년대의 독일에서는 꽤 충격적 제안이었고, 이런 주장을 제기한 엘리사벳의 첫 번째 책에 머리말을 썼던 지도교수는 그 문장 때문에 머리말을 쓰는 것을 주저했다고 합니다.

 

1971년 미국에 와서 신학을 가르치는 동안에도 피오렌자 교수(이후부터 엘리사벳 쉬슬러 피오렌자는 피오렌자 교수로 지칭함)는 여성이 신학 고등교육 과정에서 어떤 취급을 받는지에 대해 단 한 번도 잊지 않았고, 자신의 이런 경험이 이후의 학문 연구 방향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바탕이 됐다고 합니다.

 

피오렌자 교수는 1971년에서 1984년까지 14년간 노트르담 대학교에서 신학을 가르칩니다. 당시에 노트르담 대학교의 종교학부에서 피오렌자 교수는 유일한 여성 교수였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피오렌자 교수가 대학 사회에 적응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았음을 충분히 짐작하게 합니다. 노트르담에서 가르치던 거의 마지막 시기에 피오렌자 교수는 자신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그녀를 기억하며: 그리스도교의 기원에 관한 여성신학적 재건(In Memory of Her: A Feminist Theological Reconstruction of Christian Origin New York: Crossroads, 1983; 1994; 우리말 번역으로, 김애영 역, 크리스찬 기원의 여성신학적 재건, 종로서적, 1986)을 출판했는데, 이 책은 성경 연구의 패러다임에 도전을 제기하는 것으로 엄청난 논쟁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이 책으로 인해 피오렌자 교수는 노트르담 대학에서 더욱 고립됐고 결국 그 학교를 떠나야만 했습니다.

 

1984년에 노트르담 대학교를 떠난 후 미국 매사추세츠 주 케임브리지에 있는 성공회 대학으로 옮겨가 그곳에서 4년을 가르칩니다. 그리고 1988년에 미국의 최고의 대학이라 할 수 있는 하버드 대학교로 옮겨가 그곳에서 최초의 크라이스터 스탕달 교수’(하버드의 유명한 신약학 교수 크라이스터 스탕달을 기려 그 이름을 딴 교수직)가 됩니다.

 

케임브리지에서 피오렌자 교수의 삶은 어떻게 전개됐으며, 어떤 과정을 통해 그의 사상이 성숙하게 됐는지는 다음에 다루겠습니다.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 (47) 엘리사벳 쉬슬러 피오렌자 ()

전통적 성경 연구법 탈피해 대안적 해석학 제시

노트르담대학교를 떠나 케임브리지의 성공회 대학으로 옮겨온 피오렌자 교수는 해방을 위한 비판적 여성주의 해석학을 더욱 발전시켜 나갔습니다. 1984년에서 1988년까지 케임브리지의 성공회 신학대학에서 신학을 가르치는 동안 많은 이들에게 비판적 여성주의 성경해석을 가르치고 소개하였습니다. 이때에 가톨릭 대학교인 노트르담대학교에서 가르칠 때보다 더 많은 가톨릭 여학생이 그의 수업을 들었다고 합니다.

 

피오렌자 교수의 학문적 연구는 점차 학계의 인정을 받기에 이릅니다. 1985년에 그는 미국 성서학회의 첫 번째 여성 회장으로 선출되었습니다. 이는 성서학계가 피오렌자 교수가 성경해석 분야에 끼친 공헌을 공식으로 인정하였음을 드러냅니다. 뿐만 아니라 이 사건은 점점 더 많은 학자들이 성경 연구에서 비판적 여성주의적 관점에 관심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같은 해에 피오렌자 교수는 주딧 플래스코(Judith Plaskow)와 함께 여성주의 종교연구라는 잡지(Journal of Feminist Studies in Religion)를 펴내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잡지는 이후로 여성신학자들의 학문 업적을 세상에 드러내는 데 중요한 창구 역할을 해왔습니다.

 

피오렌자 교수는 1988년 이후 지금까지 하버드 신학대학에서 성경 해석학과 여성신학 분야에서 수많은 후학을 양성하고 있습니다.

 

 

연구업적 및 주요 저서

 

피오렌자 교수는 성서해석학과 여성신학 분야에서 선구적인 연구 업적을 남겼고 지금도 이 분야에서 주도적 역할을 해나가고 있습니다. 피오렌자 교수의 강의와 연구는 성경 및 신학과 관련된 인식론, 해석학, 수사학, 정치신학 등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것이며, 신학교육과 평등성, 근원적인 민주주의와 관련된 주제들에도 꾸준한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피오렌자 교수의 저술 활동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왕성하다고 할 수 있는데, 현재까지 약 24권의 책을 저술하였고, 17권에 이르는 책의 편저자이며, 240편이 넘는 논문을 독일어, 영어, 스페인어로 발표하였습니다. 현재, 여성주의 종교연구라는 잡지의 공동 설립자이자 공동 편집자이며, 콘칠리움(Concilium)이라는 잡지의 공동 편집자이기도 합니다. 그 외에도 다양한 성경 관련 주요 잡지들과 연구소들에서 상임위원직을 맡고 있습니다. 2001년에는 미국 인문과학 아카데미의 회원으로 선출되었습니다. 피오렌자 교수의 뛰어난 연구 활동을 인정하여 미국의 코네티컷에 있는 성 요셉 칼리지, 오하이오의 데니슨 대학교, 뉴욕 로체스터의 성 베르나르도 학교, 스웨덴의 웁살라 대학교, 독일의 뷔르츠부르그 대학교, 퍼킨스 신학대학, 남부 메토디스트 대학교, 바이에른의 아우구스타나 신학대학에서 피오렌자 교수에게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하였습니다. 2002년에는 가톨릭 도서관협회에서 주는 성 예로니모 상을 수상하였습니다.

 

피오렌자 교수의 책 그녀를 기억하며(In Memory of Her, 우리말 번역 크리스찬 기원의 여성신학적 재건)은 현재 13개 언어로 번역 출간되었습니다. 그밖에 우리말로 번역 출간된 피오렌자 교수의 저서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돌이 아니라 빵을(김윤옥 역, 대한기독교서회, 1994): Bread Not Stone: The Challenge of Feminist Biblical Interpretation (Boston: Beacon, 1985).

 

2) 동등자 제자직(김상분, 황종렬 역, 분도, 1997): Discipleship of Equals: A Critical Feminist Ekklsia-Logy of Liberation (New York: Crossroad 1993).

 

3) 성서-소피아의 힘: 여성 해방적 성서 해석학(김호경 역, 다산글방, 2002): Sharing Her Word: Feminist Biblical Interpretation in Context (Boston: Beacon, 1998).

 

 

신학사상

 

여성 성경신학자로서 피오렌자 교수는 성경 해석의 방법들과 특권적 배경이 없는 사람들에 대한 억압에 어떤 연관성이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였습니다. 자신의 오랜 연구를 통하여 그는 성경 본문 자체와 그리고 그 성경을 설명하려는 해석 방법들이 종종 특권층에 속하지 못한 이들이 그들이 경험하고 있는 억압에서 벗어나도록 돕기보다는 오히려 벗어나지 못하도록 막는 경우가 많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피오렌자 교수는 성경과 그 해석 방법에 대한 다차원적 비평 방법을 만들어내었습니다. 기존의 해석 방법들을 단지 비판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전통적인 해석 방법에 대한 대안적 읽기를 찾아 나선 것입니다. 피오렌자 교수의 접근법은 복잡하고도 역동적이며 성경 해석의 윤리적 결과들을 깊이 고려합니다. 어떤 이들은 성경 해석에 관한 이러한 피오렌자 교수의 주장을 이데올로기적이라고 비판합니다. 이에 대해 피오렌자 교수는 어떤 생각이든 어느 정도로는 이데올로기적일 수밖에 없으며, 성경 해석에 사용되는 관념이나 방법들 역시 마찬가지라고 대답합니다. 어차피 이데올로기적인 것을 피할 수 없다면, 무엇보다 윤리적인 해석 방법을 취하는 것이 중요한 선택일 것입니다. 그만큼 성경은 사회에 아주 큰 영향을 미치는 책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피오렌자 교수가 소외되고 억압받는 이의 입장에서 성경 해석과 그 방법들을 바라보고자 하는 것은 그가 어린 시절에 전쟁 난민으로서 경험하였던 고통을 잊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는 억압받는 이들의 경험에서 출발하여 성경을 읽고, 해석하고자 합니다.

 

피오렌자 교수는 그가 저술한 수많은 책과 논문들에서 지속적으로 기존의 성경 연구 방법에 도전을 제기합니다. 성경 연구라고 하는 학문을 변모시키려는 피오렌자 교수의 노력은 두 가지 측면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첫째는 오늘날의 성경 연구라고 하는 학문이 전제하고 있는 것, 곧 성경 본문 안에서 더 객관적이고 정확한 사실들을 발견하는 것이 성경 연구의 목적이라는 전제에 이의를 제기합니다. 피오렌자 교수는 성경 본문이 형성되는 과정에서부터 그것이 번역되고 해석되는 과정에 이르기까지 심각한 학문적, 사회적 문제들이 연루됐다고 주장합니다. 피오렌자 교수는 그 오류를 주인중심제’(kyriarchy)라고 부르는데, 이는 소수의 엘리트 남성들이 특권 받지 못한 사람들 위에 군림하는 사회적 지배의 복잡한 패턴을 일컫는 말입니다.

 

여성신학자들이 가부장제 혹은 남성중심적 지배 체제를 비판한다면, 피오렌자 교수는 남성 중심적이라는 말이 서구사회를 지칭하는 적절한 말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많은 남성 역시 그 지배 체제에서 소외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의 문제는 여성과 남성 간의 대립에서 온 것이기보다는 오히려 소수의 특권 계층이 전체를 지배하고, 그 지배를 정당화하며, 불특정 다수는 그런 지배를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게 된 체제에 있다고 보며, 이 체제를 피오렌자 교수는 주인중심제’(kyriarchy)라고 부릅니다. 피오렌자 교수는 성경 본문 안에, 그리고 성경의 해석 방법들 안에 주인중심적인 사고방식이 어떻게 나타나고 있고, 또 특정한 성경 본문이나 해석 방법에 의해 어떻게 그것이 강화되고 있는지를 지적합니다.

 

둘째로 피오렌자 교수는 성경 연구 분야에서 되풀이되고 있는 주인중심적 사고방식을 비판하는 데서 나아가 대안적인 성경 연구 방법들을 찾고 제시하고자 합니다. 피오렌자 교수가 제시하는 전통적인 성경 해석 방법에 대한 대안은 해방을 위한 비판적 여성주의 해석학’(a critical feminist hermeneutics for liberation)입니다. 그러나 자신이 제안하는 바가 유일한 대안이 아님을 피오렌자 교수는 강조합니다. 그리고 기존의 주인중심적 연구 풍토, 곧 소수의 주류 학자들이 전체 학계를 이끌어가는 풍토에서 벗어나 다양한 담론이 이루어질 수 있는 철저하게 민주적인 공간이 만드는 것이 중요함을 역설합니다. 피오렌자 교수가 제시하는 해방을 위한 비판적 여성주의 성경 해석의 내용은 제 3부에서 살펴보겠습니다.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 (48) 엘리사벳 쉬슬러 피오렌자 ()

여성주의 관점에서 비판적 성경 해석 제시

해방을 위한 비판적 여성주의 해석학이란 비판적인 여성주의 사상가의 눈으로 성경 해석의 방법론적 원칙들을 연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피오렌자 교수의 생각을 잘 이해하려면 그가 자신의 방법론을 설명하는 데 사용하는 세 가지 중심 용어를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세 가지는 용어는 각각 ‘wo/man,’ ‘의식화(conscientization),’ 그리고 주인중심제(kyriarchy)’입니다. 피오렌자 교수는 익숙한 개념들이 전제하고 있는 바가 무엇인지를 되생각해 보게 하려고 의도적으로 낯선 용어들을 만들어내고 그것을 사용하곤 합니다.

 

 

중심용어 세 가지

 

첫째 용어인 wo/man 혹은 wo/men이라는 용어는 피오렌자 교수가 자신의 독자로 하여금 남성중심적 언어의 문제점을 의식하게 하도록 만든 것입니다. 이 용어(wo/men)는 어떤 형태로든 억압을 경험하고 있는 남녀 모두를 지칭하기 위하여 사용됩니다.

 

그런데, 피오렌자 교수의 저서를 읽는 독자들은 그들이 남성이든 여성이든 자신을 wo/men이라는 용어에 포함할 것인지 아닌지를 결정하도록 초대받으며, 그것을 결정하기 위해서는 자신들이 어떤 사회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를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각자가 자신이 속한 사회 안에서 힘을 가진 존재인지 아닌지를 성찰해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피오렌자 교수가 지적하듯이 자신이 한 사회의 억압받는 존재인가 아닌가 하는 물음은 양자택일적 물음이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억압하는 자인 동시에 억압받는 자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 개인의 사회적 위치는 다양한 관계들을 포함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피오렌자 교수는 이처럼 한 사람이 자신이 어떻게 억압자가 되고, 또 억압받는 자가 되는지를 인식하게 되는 것을 의식화라고 부릅니다.

 

세 번째 용어는 제2부에서 이미 소개한 바 있는 주인중심제(kyriarchy)’라는 용어입니다. 이 단어는 신약성경에서 주님을 뜻하는 그리스어와 다스린다, 지배한다는 의미를 지닌 그리스어를 결합해 만든 것입니다. 주인중심제란 소수의 엘리트 남성이 남성과 여성 모두를 지배하는 사회정치 구조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가부장제라는 말이 젠더라는 생물학적 개념에 기초한 용어라면, 주인중심제는 지배 구조를 지칭하는 것으로, 여기에서 젠더는 사회적인 지위나 부와 함께 그런 지배 구조를 가능하게 하는 한 요소입니다. 피오렌자는 일반적으로 사회의 특권층에는 남성이 속하지만 억압받는 자에게는 양성 모두 속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피오렌자 교수에게 있어서 wo/men과 주인중심제는 상호연관된 용어입니다. 피오렌자 교수는 여성주의(feminism)란 남녀 모두의 의식을 일깨워 그들을 묶고 있는 억압의 구조를 이해하도록 돕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남녀 모두 성별을 떠나서 그들이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그리고 종교적으로 억압받고 있다면 그들이 억압받고 있음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인간은 누구든 억압받고 있다고 느끼고 싶지 않기 때문에 이것을 인식하고 인정하는 단계는 매우 힘든 과정입니다. 나아가 소수의 엘리트 남성에게 특권을 부여하는 주인중심제는 그런 상황이 정상적이고 상식적이라는 망상을 만들어냅니다. 전통적 성경 해석은 이런 주인중심제를 천부적 체제로 여기게 하곤 하였습니다. 피오렌자는 이런 사고방식 때문에 얼마나 오랫동안 여성이 고통을 받아 왔는지를 지적합니다. 주인중심적인 억압의 체제가 정상적인 것도 상식적인 것도 아님을 아는 것이야말로 해방을 위한 중요한 단계이며, 의식화 과정의 일부분이 된다고 피오렌자 교수는 말합니다.

 

자신이 속한 상황을 비판적으로 성찰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자신이 무엇에 의해 억압받고 있는지를 알아차려야 하고, 또 다른 이들이 받고 있는 억압에 의식적인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어떤 식으로 참여하고 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나아가서 피오렌자 교수는 성경 본문과 성경의 해석 역시 주인중심제의 지배구조를 옹호하고 있는지 혹은 저항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알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피오렌자 교수는 기존의 학문적 성경 연구 분야도, 학자들이나 사목자들, 평신도들이 하는 성경 본문의 해석도 모두 다 주인중심제의 패턴을 반영하고 있다고 봅니다. 어떤 여성신학자들은 그런 이유로 인하여 아예 성경을 포기합니다. 성경 본문 자체가 이미 남성중심적 사고에 젖어 있기 때문에 그것에서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피오렌자 교수는 성경을 포기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성경 연구나 성경의 해석을 그런 패턴에 맡겨두는 것 역시 무책임한 것이라고 봅니다. 피오렌자 교수는 성경을 읽고 그 안에 담긴 말씀들을 자신의 영적 삶의 중심으로 삼고 있는 이들조차도 기존의 성경 해석 방법이 미치는 결과들에 무지하다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이를 수정하기 위하여 비판적 여성주의 성경 해석자라는 개념을 제시합니다. ‘비판적 여성주의 성경 해석자란 성경 본문 자체와 성경을 해석하는 학문이 내재적으로 주인중심제의 구조를 가지고 있음을 이해하고, 더 근원적인 민주주의적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관심을 기울이는 자입니다. 이런 해석자들을 통하여 여성에 대한 지배를 옹호하는 성경 해석에서부터 여성이 그런 지배에 저항하고 그것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게 하는 비판적 여성주의 성경 해석이 가능해질 것입니다. 피오렌자 교수는 이를 위하여 다음 일곱 가지의 해석학적 모델을 발전시켰습니다: 경험을 사회적으로 정의하는 경험의 해석학, 지배의 해석학, 의심의 해석학, 평가의 해석학, 재상상력의 해석학, 재구성의 해석학, 변화와 개혁의 해석학.

 

이 가운데 몇 가지만 조금 더 자세하게 설명하겠습니다. 피오렌자 교수의 의심의 해석학은 남성중심적이고 주인중심적인 본문과 그에 대한 해석이 주인지배적인 억압을 유지하기 위하여 활용한 방법들을 연구합니다. 이와 반대로 욕망의 해석학, 혹은 재상상력의 해석학은 의심의 해석학이 밝혀낸 지배와 착취, 소외의 관계를 변화시키기 위한 담론을 만들어 내고 해방을 위한 비전을 만드는 것을 추구합니다. 피오렌자 교수는 이런 비전의 한 예로 여성-에클레시아라는 말을 만들어 냅니다. 보통 교회로 번역되는 그리스어 에클레시아는 충분한 시민 자격을 갖춘 완전한 시민들의 민주적인 회합을 일컫는 말입니다. 따라서 피오렌자의 여성-에클레시아라는 말에는 모두가 평등하며, 의사결정 과정에 충분히 참여하는 근원적 민주주의에 대한 비전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피오렌자 교수가 여기에 여성이라는 수식어를 덧붙인 이유는 여성들만의 교회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교회(에클레시아)에서 여성들이 소외되었고, 결정권 대부분이 소수의 엘리트에게만 주어졌다는 사실을 상기시키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지혜-소피아의 집

 

피오렌자 교수는 성경 안에 나타난 하느님의 이미지들 안에서도 주인중심적 지배 체제가 반영되어 있음을 지적합니다. 성경의 언어 자체가 남성중심적 체제 안에서 형성된 것이기 때문에 하느님은 남성으로 지칭되어 왔습니다. 그런데 여성이 억압받는 사회에서는 하느님을 남성으로 표현하는 것이 여성들의 억압을 영속화하는 효과를 낼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피오렌자 교수는 먼저 신을 표현하는 인간 언어의 부적절성과 어려움을 나타내기 위하여 하느님을 G*d로 표기합니다. 그리고 하느님을 지혜-소피아로 볼 것을 제안합니다. 지혜-소피아로서의 신개념은 성경에 나오는 개념이지만 다양한 신개념들 가운데 상대적으로 소홀히 여겨진 개념이기도 합니다. 마치 지혜가 일곱 기둥으로 집을 짓고 사람들을 자신의 집에 초대하듯이 피오렌자 교수는 자신의 독자들로 하여금 비판적 여성주의 성경 해석을 실천해보도록 지혜-소피아의 집으로 초대합니다. 이 배움의 집에서는 누구든지 자신의 사회적 지위나 경제적 부와 무관하게 영적 성장과 사회적 참여의 기회를 균등하게 가질 수 있습니다.

 

피오렌자 교수는 학자로서의 전 삶을 이 집에 이르는 길을 만드는 데 바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오늘도 지혜-소피아의 일꾼이 되어 그 집 문간에 서서 부지런히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