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회 성인들의 생애와 영성] 성 이냐시오 로욜라 (6) 주님께 받은 영적 위로, 세상에 나눠주다
- 회심 시기 이냐시오는 온종일 기도하고 그리스도의 사랑과 가난을 실천하는 사도적 활동을 했다. 그는 기도 중 환시를 통해 특별한 영적 위로를 받았다. 그림은 이냐시오 생가에 전시돼 있는 것으로 성인이 기도 중에 영적 환시를 경험하고 있는 모습이다.
예루살렘 순례에 대한 열망
이 두 권의 책으로 이제 예루살렘이라는 주제가 이냐시오의 삶에 매우 중요하게 등장하게 된다. 「금빛 전설」에 묘사된 아우구스티노의 저술 「신국론」에 나타난 두 개의 도시에 대한 이미지와 「그리스도의 생애」에 나타난 순례라는 이미지가 이냐시오의 마음에서 합쳐졌고, 이냐시오는 예루살렘으로 가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게 된다. 예루살렘은 바로 예수님께서 ‘자신을 온전히 비우고 내어주는 삶’의 정점에 이른 곳이었다. 이제 이냐시오가 원하는 것은 예루살렘으로 가는 보속의 여정이다. 예루살렘으로 가고 싶다는 이냐시오의 커다란 열망은 그리스도와 일치하고 싶다는 이냐시오의 매우 강한 열망을 반영한다. 예루살렘으로 가고 싶다는 열망이 확증된 것은 바로 아기 예수와 함께 있는 성모님을 본 환시를 통해서였다. 이 환시에서 이냐시오는 매우 특별한 영적 위로를 받았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영적 현상의 결실이 영적 현상 그 자체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냐시오에게 있어 결실은 이냐시오에게 일어난 깊은 내적 변화였다. 이 내적 변화는 외형적 변화로도 나타났는데, 심지어 이냐시오의 식솔도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였다.
하느님과의 일치를 향하여
이냐시오의 삶의 방향이 하느님을 향해 나아가게 되면서 그에게 매일의 삶에 변화가 뒤따랐다. 이냐시오는 기본적으로 두 가지 일을 하면서 하루를 보냈는데, 하나는 ‘기도’이며 다른 하나는 ‘사도적 활동’이었다. 먼저 그의 기도 생활을 살펴보자. 이냐시오는 하루에 많은 시간을 기도로 보냈다. 「자서전」은 이렇게 말한다. “그가 가장 위로를 받는 일로는 별빛 찬란한 하늘을 조용히 바라보는 일이었는데 점점 더 그런 일이 잦아지고 점 더 그 시간은 길어져 갔다. 그는 그 결과 우리 주님을 섬기겠다는 커다란 열망을 마음속에 세차게 느끼게 되었다. 그는 자신의 속마음을 거듭 되새기며, 완전히 회복하여 길 떠날 수 있는 날만을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자서전」 n. 11)
이냐시오는 이러한 위로를 생애 말년까지 경험하였다. 이냐시오는 말년에 종종 로마의 예수회 총원 옥상으로 올라가 하늘을 바라보곤 했다. 이냐시오가 말한 자신의 이 경험은 우리에게 두 가지를 알려준다. 첫째, 이러한 위로는 이냐시오로 하여금 하느님을 섬기려는 더 큰 열망으로 이끌었다. 즉, 이냐시오에게 영적 위로는 주님을 섬기는 것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주님께서 주신 영적 위로는 결코 자기 자신만을 위한 위로가 아니다. 그렇기에 이 위로는 자신만을 위해 자신 안에 가두어 두는 것이 아니라 이웃을 향해 확장되어 나아가야 한다. 둘째, 이냐시오의 마음은 기도를 통해서 하느님께 더욱 높이 들어 올려졌으며, 더 나아가서 모든 것은 ‘위로부터’ 주어진 선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기에 모든 것은 하느님께로부터 내려오며, 하느님께로 다시 올라간다. “온갖 좋은 선물과 모든 완전한 은사는 위에서 옵니다. 빛의 아버지에게서 내려오는 것입니다.”(야고 1,17)
이냐시오에게 일어난 또 다른 변화는 그의 사도적 활동이다. 이냐시오는 ‘영적 대화’를 통해 집안사람들 영혼에 선익을 주었다. 이냐시오 영성의 고유성을 드러내는 대표적인 한 가지 표현인 ‘영혼을 돕는다’는 것은 주님을 섬기고 주님께 봉사하는 주요한 한 가지 일이다. 여기에서 영혼은 ‘한 사람 전체’를 의미한다. 영성 지도 혹은 고해성사를 주는 일 등과 같은 영적 사목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가난으로 배고픈 이들이 있다면 이들과 음식을 나누는 일과 같은 실제적인 도움도 포함된다.
따라서 이냐시오 영성은 매우 ‘강생적’이다. 하느님께 받은 영적 위로를 다른 이들에게 실제로 세상 한가운데에서 전하는 것이다. 하느님과 일치에 이르는 길은 하느님께 봉사하고 하느님을 섬기는 것이며, 이에 대한 구체적인 길은 영혼을 돕는 것으로 나타난다. 먼 훗날 이냐시오는 1547년 5월 7일 코임브라의 예수회원들에게 쓴 편지에서 “여러분의 이웃을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하느님의 모상으로 바라보십시오”라고 말한다. 삼위일체 하느님의 모상인 이웃에게 봉사하는 것이 곧 하느님을 섬기는 것이며, 이를 통해 하느님과의 일치에 이르는 길을 걷게 된다. 훗날 더욱 심화될 이냐시오 영성의 사도적 특성은 이렇게 이냐시오의 회심 초기에서부터 발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냐시오는 이때까지만 해도 자신의 사도적 체험의 중요성을 충분히 인지하지 못했다. 로욜라를 떠나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순례 중 머물게 된 만레사(Manresa)에서 그 중요성을 깨달았다.
또 순례하면서 기도와 활동 사이의 긴장을 점차 통합하게 된다. 사도적 삶을 살아가는 데 기도와 활동이 서로 완전한 조화를 이룰 때까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인간의 활동은 하느님의 활동 안에서 이뤄지게 되고, 영혼을 더욱 돕고 섬길수록 하느님과 더욱 깊은 일치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이냐시오는 본래 만레사에 오랫동안 머물 계획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계획을 바꿔 만레사에서 거의 11개월을 머물게 된다. 그 이유는 추정하건대 만레사 근처 몬세라트에 있는 성 베네딕도 대수도원 가르시아 히메네스 데 시스네로스 (Garca Jimnez de Cisneros, 1455~1510) 아빠스의 저서 「영성 생활 수련서(Exercitatorio de la Vida Espiritual)」 와 「시간 전례 지침서(Directorio de las Horas Cannicas)」를 알게 되었고, 이 책으로 영적인 수련을 수행했기 때문이다. 이냐시오는 만레사에서 「준주성범」을 알게 됐고, 이때부터 「준주성범」은 평생 그의 곁을 떠난 적이 없었다.
[예수회 성인들의 생애와 영성] 성 이냐시오 로욜라 (7) 끝없는 죄의 고통에서 해방되다
- 이냐시오는 하느님께서 주시는 다양한 가르침을 통해 신적 조명 상태로 접어들게 된다. 스페인 만레사 동굴에서 회심하고 있는 성 이냐시오.
이냐시오는 로욜라에 이어 만레사에서도 교회의 영적 유산으로부터 영적인 삶에 대하여 배우게 된다. 이 배움은 단지 책을 읽음으로써가 아니라 실제로 수련을 하면서 이뤄졌다. 이 배움의 시기는 학자마다 다르게 이름을 붙이기도 하지만 대개 세 단계로 나눌 수 있다. 즉 ‘능동적 정화 과정’과 ‘수동적 정화 과정’ 그리고 이어지는 ‘신적 조명의 시기’다.
능동적 정화 과정
이냐시오는 만레사에 도착한 후부터 약 4개월간 그의 의지로 시작한 능동적 정화 과정에 들어간다. 이 시기 이냐시오의 삶의 모델은 로욜라에서 읽은 「금빛 전설」에 묘사된 한 인물, 오누프리우스였다. 오누프리우스의 극단적인 수덕의 삶을 모방하면서 이냐시오는 실제적 가난의 삶을 살았다. 매일 음식을 구걸하고 고행을 했다. 이전에는 유행에 따라 머리 매무새에 많은 관심을 쏟았지만, 이제는 머리도 제멋대로 자라게 두고 빗질도 이발도 하지 않았다. 손발톱도 그냥 자라게 두면서 외모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기도에만 전념했다. 이냐시오는 이 시기를 “정신의 내적 사건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 채 흔들리지 않는 행복을 느끼는 마음 상태를 늘 누리고 있었다”고 상기한다.(「자서전」 n.20)
이때까지만 해도 그는 하느님을 더욱 열정적으로 섬기고 싶어하는 열망이 강해졌을 뿐 여전히 영적인 사정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다. 어떤 영적 현상을 느끼지만 이 현상의 배경 지식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달리 말하면, 이냐시오는 여전히 나르시시즘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기사도의 이상을 가지고 오로지 자신의 수고와 힘으로만 하느님을 더욱 뛰어나게 섬기려고 했다.
이냐시오의 이러한 정화 과정은 고해성사와 병행됐다. 특히 이냐시오가 총고해를 한 곳은 몬세라트였다. 총고해의 순간은 이냐시오가 자기 내면의 영적 상태를 다른 이에게 완전히 드러낸 첫 번째 순간이기도 했으며, 자신의 죄스러운 과거와 완전히 단절되는 의식이기도 했다.
기록에 따르면 프랑스인 베네딕도회 수도승인 장 샤농(Jean Chanon, 1480~1568)이 그의 총고해를 3일간 들었다. 3일간의 고해는 고해를 준비하는 기간을 포함했을 것이며, 당시 일반적으로 행해지던 기간이었다. 1492년에서 1570년 사이에 스페인에서는 많은 종류의 고해성사 예식서가 쓰였고 출판되던 시기였다. 이냐시오가 실제로 어떤 고해성사 예식서를 사용했는지는 분명하지는 않지만, 장 샤농이 준 고해성사 예식서를 사용했을 확률이 매우 높다. 그 이유는 이냐시오의 「영신수련」에서 이 고해성사 예식서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이냐시오는 「영신수련」 56번에서 이렇게 기술한다. “내 죄들의 경과이다. 즉 연차별, 혹은 시기별로 살피면서 일생의 모든 죄를 기억에 떠올린다. 이를 위해서 다음 세 가지가 도움된다. 첫째, 내가 살았던 장소와 집. 둘째, 내가 다른 사람들과 가졌던 교제. 셋째, 내가 종사했던 일과 직업.”
고해성사를 위해 자신이 살아왔던 장소, 다른 이를 어떻게 대했는지, 자기 일 등을 숙고해 보도록 하는 점이 고해성사 예식서와 비슷하다. 하지만 한 가지 유의해야 할 점은 자신의 죄를 성찰하는 보다 본질적인 이유는 내가 죄를 지음으로써 하느님의 마음을 아프게 해드렸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지은 죄보다도 더욱 커다란 하느님의 사랑을 느끼기 위함이다.
이냐시오의 정화 과정의 커다란 특징 중 하나는 바로 정화 과정이 교회의 전통 안에서 시작됐고 이뤄졌다는 것이다. 이러한 능동적 정화 과정을 거쳐 이냐시오는 이제 수동적 정화 과정을 겪게 된다. 수동적 정화 과정에서 이냐시오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수동적 정화 과정
이냐시오는 능동적 정화 과정 후 다가오는 유혹 그리고 이 유혹이 주는 두려움과 함께 ‘수동적 정화 과정’으로 이끌려 가게 된다. 「금빛 전설」에 나오는 오누프리우스의 삶처럼 앞으로 남은 칠십 평생을 어떻게 이 고된 생활을 해나갈 수 있겠는지 누군가 질문을 던져오는 듯한 고약한 생각이 들었다. 이냐시오는 이러한 생각이 훗날 그가 저술한 「영신수련」에서도 사용한 것처럼 ‘인간 본성의 원수(the enemy of human nature)’에서 오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는 이 인간 본성의 원수가 불러온 유혹에 격렬히 저항하며 영성생활을 지속했다.
이 시기 이냐시오는 자신의 영혼에 커다란 변화를 느끼기 시작한다. 능동적 정화시기에 찾아왔던 기쁨과 행복의 마음 상태 대신에 어떤 때에는 아무런 기쁨도 느끼지 못한 채 불쾌한 기분에 빠져들기도 하고 또 어떤 때에는 슬픔이나 의기소침을 겪기도 했다.(「자서전」 21항)
더 나아가 이냐시오는 세심증으로 매우 극심한 고통을 겪었다. “보통 세심증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 자신의 판단과 자유에서 나오는 것으로 죄가 아닌 것을 죄라고 임의로 생각할 때를 말한다.”(「영신수련」 346번) 이러한 세심증이 너무도 심했던 나머지 이냐시오는 심지어 자살하고 싶은 유혹까지 겪었다. 자신의 힘으로만 거룩함에 이르고자 했지만, 그것이 불가능한 일임을 깨달았던 이냐시오는 치유되는 길이 있다면 강아지 꽁무니를 따라다녀야 하더라도 기꺼이 그렇게 하겠다는 기도를 주님께 겸손되이 청했다.
마침내 이냐시오는 주님께서 이런 방식을 거쳐 그가 꿈결에서 깨어나기를 원하셨고 하느님께서 주시는 다양한 가르침을 통해 영들의 다양성과 영들이 엄습해 오는 방법을 깨닫게 됐다. 이 순간부터 이냐시오는 세심증에서 벗어나 주님께서 자비로이 그를 해방시키셨다는 확신을 얻었다. 이러한 수동적 정화 과정을 거쳐 이냐시오는 이제 신적 조명의 상태로 접어들게 됐다.
[예수회 성인들의 생애와 영성] 성 이냐시오 로욜라 (8) 하느님께서 이끌어 주신 일치의 여정
영신수련의 근본적 전제
정화의 시기를 겪은 후 이냐시오의 영성 생활은 새로운 시기로 접어든다. “그 무렵 하느님께서는 학교 선생님이 학생을 다루듯이 그를 다루셨다.”(「자서전」 27항) 이제 이냐시오는 정화 과정을 끝내고 하느님과의 깊은 일치의 여정으로 들어간다. 자서전에 기술된 이 짧은 한 문장이 하느님과 이냐시오와의 근본적인 관계를 우리에게 알려 준다. 이냐시오는 하느님과 직접적이고도 즉각적인 관계를 맺게 된 것이다. 이냐시오 영성의 신비적 차원이 바로 여기에서 흘러나온다. 더 나아가서 이냐시오가 하느님께로부터 직접 배웠다는 사실 자체가 영신수련에 스며들어 영신수련을 하는 사람 또한 하느님께 직접 배우게 된다.
“하느님의 뜻을 찾는 데 있어서 창조주이신 주님이 몸소 그 열심한 영혼과 통교하시어 당신 사랑으로 그를 껴안아 당신을 경배케 하고 앞으로 당신을 더 잘 섬길 수 있는 길로 준비시키도록 하는 것이 더욱 합당하고 훨씬 더 나은 길이기 때문이다.… 창조주가 피조물과 그리고 피조물이 그의 창조주 주님과 직접 일하도록 두어야 한다.”(「영신수련」 15번) 이 정신이 바로 영신수련 전체의 근본적 전제이다.
신비 체험과 하느님에 대한 확신
이냐시오는 하느님께서 이러한 방식으로 자신을 다루셨다는 것에 매우 강한 확신을 했다. 특히 삼위일체 하느님, 창조, 성체성사, 그리스도의 인성과 성모님, 카르도넬 강둑에서 일어난 신비 체험 등 다섯 가지 점에서 이 사실을 재삼 확인하였다고 말한다.
첫 번째로 이냐시오는 성삼위께 매일 네 번의 기도를 바칠 정도로 삼위일체 하느님께 대한 신심이 매우 깊어졌다. 어느 날 이냐시오는 그의 오성(悟性, understanding)이 승화되며 성삼위가 세 개의 건반 형상으로 그에게 보이는 것을 체험했다. 즉, 각각의 건반이 각자의 고유한 소리를 내지만 또한 동시에 하모니를 이룬다. 이 순간에 느꼈던 희열과 위로가 너무도 강렬했기에 이때 이후로 이냐시오의 삼위일체 하느님에 대한 신심은 그의 일평생 동안 두드러진 점으로 남아 있게 되었다. 달리 말하면 이냐시오는 하느님께서 주신 신비적 은총을 통해서 새로운 그리스도인으로서 정체성을 가지게 됐다. 이 삼위일체 하느님의 체험은 이냐시오에게 그리스도인으로서 근본 바탕을 제공했다. 삼위일체 하느님에 대한 이냐시오의 신심은 그의 삶에 매일 기도를 통해 스며들었다. 예를 들어 이냐시오가 하느님을 지칭할 때 자주 언급했던 “엄위하신 하느님(Divina Majestad)”이라는 호칭에는 이미 삼위일체 하느님의 함의가 포함돼 있다. 이냐시오는 살아생전에 6815통의 편지를 작성했는데, 이 편지를 제외한 그의 저술에 “엄위하신 하느님”이라는 표현은 총 65회 나타난다. 「영신수련」에 26회, 「예수회 회헌」에 23회, 「영적 일기」에 15회, 그리고 「자서전」에 1회 등장한다.
두 번째로 이냐시오는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던 손길로 자신을 비추어 주셨으며, 그는 거기에서 위대한 영성의 환희를 맛보았다고 말한다. 이냐시오는 그의 오성으로 이러한 비전을 보았다고 증언하는데, 이 비전은 영신수련의 ‘사랑을 얻기 위한’ 관상과 매우 유사한 점을 보여준다.
세 번째로 역시 그의 오성으로 이냐시오는 예수 그리스도가 어떻게 성체 안에 현존하시는지 보게 되었다고 증언한다.
네 번째로 그리스도의 인성과 성모님을 내적인 눈으로 보았다고 증언한다.
그리고 다섯 번째로 이냐시오가 만레사에 도착한 지 약 7개월이 지난 1522년 8월 혹은 9월 그는 그 이전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매우 새롭고도 특별한 영적 체험을 하게 된다. 이 체험이 바로 그 유명한 카르도넬 체험이다. 어느 날 이냐시오는 경건한 마음으로 만레사에서 약간 떨어진, 시토회에서 관할하고 있던 성당으로 길을 나섰다. 길을 가다가 신심이 솟구쳐 그는 강 쪽으로 얼굴을 돌리고 앉았다. 거기 앉아 있을 동안 그의 오성의 눈이 열리기 시작하더니 비록 환시를 보지는 않았으나 영적 사정과 신앙 및 학식에 관한 여러 가지를 깨닫고 배우게 됐다. 모든 것이 그에게는 새로워 보일 만큼 강렬한 조명이 비쳐왔다. 비록 깨달은 바는 많았지만, 오성에 더없이 선명한 무엇을 체험했다는 것 외에는 자세한 설명을 하지 못하였다. 그는 예순두 해의 전 생애를 두고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그 많은 은혜와 그가 알고 있는 많은 사실을 모은다 하더라도 그 순간에 그가 받은 것만큼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자서전」 30항)
[예수회 성인들의 생애와 영성] 성 이냐시오 로욜라 (9) 이웃 안에 머무시는 하느님 섬기는 기쁨
이냐시오는 “모든 것이 새로워 보일 만큼 강렬한 조명이 자신에게 비쳐왔다”고 증언한다. 그러나 이토록 강렬한 조명을 체험했음에도 이에 관한 구체적인 진술이 없다. 그 이유는 이냐시오에게 ‘하느님이 무엇을 가르치셨다’보다는 ‘하느님께서 직접 가르치셨다’는 사실이 무엇보다도 중요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카르도넬 체험(카르도넬 강둑에서 일어난 신비 체험)을 통해 이냐시오에게 무엇이 일어났는지 그리고 그가 이 체험을 통해 무엇을 배웠는지를 알 수 있다.
첫 번째, 이냐시오는 앞선 네 가지 영적 체험에 대해 진술할 때에는 오성(悟性, understanding)으로 “보았다”고 증언하지만, 카르도넬 체험은 본 것이 아니라 “이해하고 알게 되었다”고 증언한다. 카르도넬 체험은 지성적(intellectual)이다. 하느님께서 이냐시오의 오성에 직접 지성적 빛을 주입해 주신 것이다. 예수회 총장이었던 페드로 아루페(1907~1991) 신부는 이 조명을 이냐시오가 자신의 과거와 단절되고 다른 미래의 빛의 지표가 되는 일종의 ‘성령 강림’이라고 말한다.
카르도넬 체험을 통해 이냐시오는 모든 것을 새롭게 보기 시작하면서 영적으로 변화된 삶을 살기 시작했다. 달리 말하면 이냐시오는 모든 것을 새로운 눈으로 보는 방법론을 배웠다. 방법론은 다름 아닌 ‘식별의 원리’다. 이냐시오는 능동적 정화과정에 들어갈 때 자신에게 일어났던 여러 영적 현상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예를 들어 그에게 위로와 슬픔을 가져다주기도 했던 뱀의 형상을 한 물체에 대한 환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식별할 수 없었다.(「자서전」 31항) 그러나 카르도넬 체험 이후로 이냐시오는 자신의 ‘경험적 지식’에 바탕을 둔 식별의 원리에 따라 그 환시가 악마에게 온 것임을 똑똑히 알게 됐다.
두 번째, 일련의 영적 체험을 통해 특히 카르도넬 체험은 이냐시오의 영성이 수덕적(금욕적) 영성에서 사도적 영성으로 전환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이냐시오의 만레사 초기 생활의 본보기는 오누프리우스의 수덕적 삶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삶에 변화가 일어난다. “그가 일 년을 보낸 만레사에서 있었던 일이다. 하느님께서 그에게 위로(위안)를 주시기 시작하고 하느님께서 영혼들을 치유하시는 열매(위로)를 그가 본 후, 그는 형식을 따라 고수해 오던 극단적 행위를 중지하고 손발톱과 머리를 깎았다.”(「자서전」 29항)
이냐시오는 로욜라에서부터 속죄와 회개의 삶을 살아가기로 했고, 성 오누프리우스가 살았던 수덕적 생활 양식을 본보기로 생활해왔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주시는 위로를 받으면서 이냐시오는 자신 안에서 일하시는 하느님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 안에서 일하시며 그들을 치유하시는 하느님을 발견하게 됐다. 고행하면서 자신 안에 머무르는 삶보다 이웃을 섬기고 돕는 것이 하느님을 더욱 섬기고 하느님께 더욱 커다란 기쁨을 드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느님을 위해 위대한 행동을 하는 것 대신에(자기 자신에게만 초점을 맞추는 것 대신에), 다른 이들 안에서 일어난 효험에 대해서도 주의를 기울이게 됐던 것이다. 그럼으로써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것이다.
따라서 이냐시오는 이웃에게 더욱 다가서고 또 주변 사람들이 그에게 더욱 편안하게 다가올 수 있도록 기존에 해왔던 극단적 고행을 중지하고 여느 사람처럼 외모를 유지했다. 사도적 영성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 이냐시오에게 오누프리우스는 더이상 삶의 본보기가 되지 않았다.
이냐시오가 새롭게 깨달은 사도적 영성의 중요성은 카르도넬 체험을 통해 깨닫게 된 삼위일체 하느님에 대한 깊은 인식을 통해 더욱 심원해졌다. 카르도넬 체험이 앞서 받은 일련의 조명들의 정점이라면, 그가 카르도넬에서 받은 조명의 내용은 하느님의 본성과 성삼위의 일치에 대한 것이며, 더욱 구체적으로는 삼위일체 하느님의 ‘밖으로’의 활동, 즉 창조와 강생에 대한 심원한 지식이다. 이냐시오는 카르도넬에서 ‘구원경륜적 삼위일체 하느님(Economy Trinity)’을 강하게 체험했다. ‘구원경륜적 삼위일체 하느님’이 ‘내재적 삼위일체(Immanent Trinity) 하느님’의 생명 안에만 머물지 않고 인류의 구원을 위해 활동하시는 것처럼, 이냐시오도 이 삼위일체 하느님의 구원 사업에 더욱 깊이 참여하기 위해 이웃을 향한 사도적 소명의 삶을 더욱 깊이 살아갔다.
더 나아가서, 이냐시오의 카르도넬 체험의 핵심이 삼위일체 하느님이라는 사실은 이냐시오의 사도적 영성이 개인적 차원으로만 국한되기보다는 공동체적 차원으로 확장돼 수행돼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왜냐하면, 삼위일체 하느님은 성삼위가 일치를 이루는 공동체며, 공동체로서 인류의 구원 사업을 수행하시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냐시오의 사도적 영성의 공동체적 측면은 이냐시오가 카르도넬 체험 후 만레사에 머물던 중에 작성된 「영신수련」의 핵심 묵상인 ‘예수 그리스도의 왕국 관상’과 ‘두 개의 깃발 묵상’에서 드러난다. 묵상에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 한 가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와 협력해 그의 사업을 지상에서 계속해 나아가도록 모든 사람을 부른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냐시오는 만레사 이후 자신의 순례 여정 중에 끊임없이 동료들을 모으고자 노력했으며, 이냐시오가 지닌 이러한 공동체적 비전은 몽마르트 언덕에 있는 성 데니스 성당에서 동료들과 함께 서원함으로써 열매를 맺는다.
혹자는 영신수련이 매우 개인적이라고 말한다. 영신수련을 하는 동안의 기도가 매우 개인적인 차원에서 이뤄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령과 ‘영신수련을 주는 이’와 ‘영신수련을 받는 이’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영신수련은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공동체인 삼위일체 하느님의 전망 안에서 매우 그리스도 중심적으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영신수련을 마친 이의 영성은 결코 개인적인 차원으로 남아 있을 수 없다. 오히려 더욱 사도적이고 더욱 공동체적인 차원으로 향해 나아간다.
[예수회 성인들의 생애와 영성] 성 이냐시오 로욜라 (10) 13개월 걸려 예루살렘에 도착했는데 떠나라니…
이냐시오는 만레사에서의 생활을 뒤로하고 본래 계획했던 예루살렘을 향해 순례를 계속했다. 예루살렘 순례가 이냐시오에 어떤 영향을 줬을까? 무엇보다도 이냐시오는 예루살렘 순례길을 통해 실제적 가난의 상태로 예수 그리스도를 따름에서 오는 기쁨을 느꼈다. 두 번째로 이냐시오의 예루살렘 순례는 이냐시오가 「영신수련」을 집필하는 데 커다란 도움이 됐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실제로 당신의 생애를 살아오셨던 예루살렘을 직접 본 경험은 이냐시오에게 특히 「영신수련」에 나오는 복음 관상(관조 묵상)에 도움을 줬다. 세 번째로 인간이신 예수님께서 살아오셨던 땅에 직접 가 봄으로 인해 그리스도의 인성에 대한 친밀감을 더욱 깊이 느끼게 됐다. 네 번째로 예루살렘 순례는 이냐시오의 식별 지평이 더욱 확장되는 계기가 됐다. 이는 예루살렘에서 있었던 미처 예기치 못한 사건을 통해서 일어났다. 예루살렘에 살면서 영혼을 돕고자 하는 열망을 지녔던 이냐시오는 결국 로욜라를 떠난 지 약 13개월 만에 예루살렘에 도착했다.
그러나 이 열망은 실현될 수 없었다. 당시 성지를 책임지고 있던 프란치스코회 관구장 신부는 누구든지 성지에 남게 하거나 떠나게 할 수 있는 권한을 교황청으로부터 부여받았다. 그는 이 권한으로 이냐시오가 예루살렘에 머무는 것을 금했다. 이 사건은 교황청의 어떤 결정이나 지침이 이냐시오의 삶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 첫 번째 사건이었다. 이냐시오는 예루살렘에 머물겠다고 식별했고 이 식별의 결과에 따라 행동했지만, 이 식별이 교회의 권위와 충돌했던 것이다. 자연스럽게 이냐시오는 이 충돌을 식별하게 됐고, 그 결과 주님의 뜻은 그가 예루살렘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게 됐다. 그래서 이냐시오는 자신의 식별에 따른 선택을 고집하기보다는 프란치스코회 관구장의 명령에 순명함으로써 이 충돌을 해소했다. 이냐시오는 교회의 권위를 통해 드러나는 하느님의 뜻이 자신의 개인적 식별보다 우선순위를 갖는다는 것을 깨닫고 받아들였던 것이다.
이 사건은 이냐시오의 주관적 식별이 그가 처한 객관적 현실과 만나게 된 첫 번째 경우였으며, 이를 통해 이냐시오는 개인의 식별에는 항상 객관적 현실이 포함돼야 한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인식하게 됐다. 이 체험은 이냐시오적 식별에 한 가지 원리를 제공한다. 즉 개인의 식별은 교회의 합법적 권위에 반대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순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체험은 「영신수련」에도 스며들었다. “우리가 선택하고자 하는 모든 것들은 그 자체로 중립적이거나 선한 것이어야 하며 거룩한 어머니이신 교계 교회 안에서 도움이 되어야지 악한 일이나 교회에 반대되는 일이어서는 안된다.” (「영신수련」 170번)
여기에서 이냐시오의 교회관을 간략히 살펴보자. 이냐시오의 교회관은 특히 「영신수련」에 표현된 두 개의 여성적인 이미지를 통해 엿볼 수 있다. “모든 판단을 버리고 모든 일에 있어서 우리 주 그리스도의 진정한 배필이며 우리의 거룩한 어머니이신 교계 교회에 기꺼이, 즉시 순명할 마음을 지녀야 한다.”(「영신수련」 353번) 교회는, 특히 교계 교회는 “우리 주 그리스도의 진정한 배필”이며, “우리의 거룩한 어머니”이다.
이냐시오의 이 말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 먼저 전자를 살펴보자. 이냐시오에게 배필로서의 교회는 그리스도와 교회 사이의 일치를 구현한다. 이냐시오는 “같은 영(el mismo espritu,「영신수련」 365번, 성령을 가리킨다)”이 교회와 자신 안에서 일한다고 인식했다. 그러므로 교회를 특히 교계 교회(hierachical church)의 결정을 따른다는 것은 자신을 교회와 일치시킨다는 것을 뜻하며, 교회는 성령으로부터 생명과 인도를 받기 때문에 교회와의 일치를 통해 우리는 성령과 일치하게 된다. 이 교회는 세상 안에서 일하시는 성령의 도우심으로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와의 일치로 이끈다. 이냐시오의 이러한 관점을 휴고 라너는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참된 영은 교계 교회에 순명하도록 재촉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서는 성부와 일치할 수 없으며, 주교를 통하지 않고서는 그리스도와의 일치는 없기 때문이다.”
이냐시오에게 어머니로서의 교회는 모든 믿는 이들 사이의 일치를 구현한다. 교회는 성령이 체화되는 곳이다. 그러기에 우리가 성령으로부터 어떤 종류의 초자연적 선물을 받건 간에 이 선물들이 믿을만한 것이라고 확증하는 것은 바로 교회다. 이냐시오는 모든 신비주의를 교회에 종속시키며, 영적 경험의 해석을 교계 교회에 위탁한다. 교계 교회와의 이 일치는 ‘하느님 백성’ 사이에서의 일치를 위해서 매우 중요하다. 교계 교회와 일치되지 않을 때 결국은 교회가 분열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어머니인 교회를 통해 양육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5년 9월 3일 일반 알현 때 한 강론에서 “교회는 우리의 어머니”라고 말씀하셨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나 혼자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백성 즉 교회의 한가운데에서 신앙 안에서 태어나고 양육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면에서 교회는 참된 어머니이며 우리의 어머니로서 우리를 양육한다.
예루살렘에서 자기 뜻보다는 교계 교회에 순명하기로 한 이냐시오의 선택이 의미하는 바는 성령께서는 이냐시오가 생각하는 지평보다 더 넓은 지평에서 일하고 계시다는 것에 대한 신뢰이며 “같은 영”이 바로 그를 그리스도를 통해 하느님과의 일치로 이끄신다는 믿음에 대한 실제적인 고백이기도 하다.
교계 교회의 결정에 순명한 이냐시오는 순례의 종착지라고 생각했던 예루살렘에 더는 머물 수 없게 됐다. 이냐시오는 자신의 미래에 관해 어떤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순례자는 예루살렘에 남아있는 일이 하느님 뜻이 아님을 깨달은 뒤부터 자기가 할 일이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생각하고 있었다. 마침내 영혼들을 도우려면 얼마 동안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마음을 돌리고 드디어 바르셀로나에 가기로 작정했다.” (「자서전」 50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