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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민 신부의 별별 이야기] (6) 공부하고 싶은데 공부할 수가 없어요

작성자은총의샘|작성시간26.06.05|조회수62 목록 댓글 0

[박현민 신부의 별별 이야기] (6) 공부하고 싶은데 공부할 수가 없어요

 

고등학교 1학년 바오로는 공부 문제로 부모와 함께 상담실을 찾았다. 부모의 말로는 바오로가 머리가 좋아서 중학교 2학년까지는 전교에서 순위에 들 만큼 공부를 잘했다고 한다. 그런데 중학교 3학년 때부터 갑자기 공부를 하지 않으면서 성적이 점점 떨어지고 있는데 혹시 어떤 정신적 혹은 정서적 문제가 있는지 알고 싶다고 하였다.

부모에 의해 마지못해 상담실을 찾은 바오로는 자신을 천재라고 소개하였다. 자신은 머리가 좋고 공부도 잘하지만 요즘 와서 공부에 회의를 느끼며 공부를 해야 할 특별한 이유를 찾지 못한다고 하였다. 바오로는 행복과 인생의 의미는 성적순이 아니라면서, 요즘 명문대 나온 사람들도 실직자들이 많고 기껏해야 월급쟁이로 살아가는 현실이 공부하고 싶지 않게 만드는 이유라고 스스로를 진단하였다. 하지만 부모의 기대도 있고 자신의 좋은 머리를 썩히고 싶지도 않기에 공부를 다시 할 수 있게 해달라고 하였다. 바오로는 자신이 공부에 대한 동기와 욕구를 다시 회복할 수만 있다면 예전처럼 공부를 잘할 수 있을 것이고 명문대 입학은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였다.

겉으로 하는 말로 봐서 바오로는 흔히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재물이나 명예에는 관심이 없고 자신만의 행복을 찾고 싶은 학생처럼 보였다. 능력은 되지만 그 능력을 세속적인 욕구에 허비하지 않고 진정한 삶의 의미와 행복을 추구하고 싶다고 하면서 요즘 아이답지 않은 가치관을 표현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오로와의 대화에서는 자신의 행복을 공부가 아닌 다른 어떤 것에서 찾고 싶은 의지나 바람을 발견할 수가 없었다. 오히려 공부로 성공하고 싶은 욕구가 모든 언어와 표정에서 묻어나고 있었다. 분명 지금 공부에 집중할 수 없는 이유가 따로 있을 것임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좀 더 대화해 보니 바오로는 겉으로는 공부하지 않아야 할 이유를 계속 찾고 있으면서도 속으로는 공부를 잘하고 싶은 욕구를 드러내고 있었다. 바오로는 중학교 2학년 때까지 어느 정도 공부로 인정을 받고 있었다. 부모는 바오로의 머리가 명석하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명문대에 진학할 기대와 희망에 젖어 있었다. 그러나 바오로가 중학교 3학년이 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자신보다 공부를 못하던 아이들이 갑자기 자신을 따라잡기 시작했다.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고 부모의 기대와 희망을 한몸에 받고 있었던 바오로에게는 이런 현실이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 큰 충격이었을 것이다.

결국, 바오로는 자신이 공부를 잘했던 것이 아니라 친구들이 상대적으로 공부를 안 했기 때문에 그동안 자신이 상위권을 유지한 것으로 판단했던 것 같다. 그러자 지금까지 공부 잘하고 머리 좋다는 평가로 주변의 관심을 한몸에 받았던 자신만의 명예를 잃고 싶지 않다는 강한 욕구가 올라왔다. 지금까지 스스로 만들고 누려왔던 자신의 모습이 현실에서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머리 좋은 학생이라는 주변의 부러운 시선을 유지하면서도 성적이 떨어지는 현실을 합리화할 방법을 모색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부모나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는 결코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면서도 남모르게 공부하는 전략을 개발하게 되었다. 자신이 공부를 잘하는 천재가 아닌, 공부를 전혀 안 해도 10등 안에 드는 천재로 남아있고 싶었던 것이다.

 

 

 

바오로에게는 머리가 좋은 천재라는 평판이 가장 듣기 좋은 칭찬이었으며, 자신은 천재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점차 커 나가면서 자신은 천재가 아니라는 현실에 직면하게 되고 그 평가가 사라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생겨났다. 결국, 바오로는 머리 좋은 천재라는 칭찬을 계속 듣고 싶은 마음에 오히려 공부하지 않는 비현실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장자는 어릴 적 신었던 꼬까신이 예쁘다고 성인이 된 후에도 그 신을 신으려 해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나 자신과 주변 그리고 환경과 사회는 늘 변화한다. 그 변화의 과정 안에서 누구는 고통을 느끼며 뒤로 물러서지만, 누구는 오히려 성장의 기회로 삼아 앞으로 나아간다. 이 변화의 과정 중 특별히 고통스러운 것은 바로 자기 자신에 대한 변화일 것이다. 우리 모두는 예외 없이 이상적 자기와 현실적 자기 사이에서 고통, 즉 열등감(콤플렉스)을 지니고 있다. 이 간격을 평생 메꾸어 나가는 것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해 주신 삶의 과제요, 동시에 자아실현을 위한 소명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박현민 신부의 별별 이야기] (7) 운동복 바람이 웬말이냐

 

고부간의 갈등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발생하는 사회적 현상인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 여자는 시집을 간다고 표현하는 것처럼,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함께 살아야 했던 부계가족 사회에서는 구조적으로 고부간의 갈등이 존재할 수밖에 없었다. 서양에서도 시어머니는 설탕으로 만들어도 쓰다라는 속담이 있다. 이처럼 고부간의 갈등은 동서를 막론하고 같은 여자이면서도 서로 화목하거나 친밀할 수 없는 생물학적 혹은 심리적인 이유가 있는 듯하다.

고부간 갈등은 요즘 단체대화방(단톡방)’이 가족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지 못하도록 만드는 중요한 이유도 된다. 특히 시부모와 며느리가 함께 있는 단톡방은 고부 갈등을 부추기는 일종의 모바일 시월드로 인식되면서 하나둘씩 문을 닫고 있기 때문이다. 시어머니의 메시지에 며느리가 즉각 답을 하지 않거나, 눈치 없이 자기 속마음을 꺼내 놓았다가는 전혀 의도하지 않은 오해와 갈등이 발생할 수 있다. 오죽하면 시댁 부모의 메시지에 며느리가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이모티콘 응대법이 개발되었겠는가?

고부간의 관계는 영원한 평행선일까? 갈등이 아닌 친밀함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누가 그리고 어떻게 풀어야 할까? 이 질문을 던지면서 신혼여행을 다녀온 후 시댁으로 인사를 가게 된 두 며느리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마리아는 신혼여행 후 곧바로 시댁을 방문했다. 그런데 시어머니로부터 큰 꾸지람을 듣게 되었다. 며느리가 인사를 오면서 청바지를 입고 왔기 때문이다. 시어머니는 며느리가 기본 예의가 없으며 시댁을 우습게 생각했다면서 크게 호통을 쳤다. 시어머니의 갑작스러운 비난과 야단에 마리아는 너무 놀라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사실 마리아는 시댁 선물을 준비해야 했기 때문에 일단 편한 청바지 차림으로 쇼핑을 한 후 시댁에서 한복으로 갈아입을 참이었다. 그러나 정작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시어머니로부터 받은 호통세례는 며느리의 온몸을 얼어붙게 하였다. 정작 자신은 한복을 준비해 왔으며 정식으로 옷을 차려입고 인사를 드리려 했다는 자기 변론도 하지 못했다. 결국, 마리아는 무조건 잘못했다는 말만 할 수밖에 없었으며 그때부터 시댁 공포증으로 몸살을 앓기 시작했다.

한편 마르타도 신혼여행 후 곧바로 시댁으로 인사를 드리러 갔다. 이때 마르타의 복장은 마리아의 경우보다 심각한(시어머니가 보기에) 상태였다. 헬로키티(고양이 캐릭터)가 엉덩이에 새겨진 분홍색 운동복을 입고 시댁을 방문한 것이다. 현관문을 들어선 며느리의 모습을 처음 마주한 마르타의 시어머니 역시 기염을 토했다. 마리아의 시어머니와 마찬가지로 마르타의 시어머니 역시 개념 없는 며느리를 두고 곧장 호통을 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마르타는 마리아와 전혀 다른 성격의 며느리였다. 마르타는 마치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환히 웃으면서 어머니, 운동복 바람으로 인사를 오게 되어 많이 놀라셨죠?(호호) 어머니 사실 제가 정장을 차려입고 오려 했으나 그냥 이렇게 편하게 인사드리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해서 일부러 이렇게 입고 왔어요.” 천연덕스럽게 너스레를 떠는 며느리를 보며 시어머니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어처구니가 없어 황당한 표정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시어머니를 향해 마르타는 예상치 못한 마지막 한 마디를 날렸다. “어머니, 이제 우리는 한가족이잖아요?(호호)” 시어머니는 순간 화를 내야 할지 아니면 용기가 가상하다고 해야 할지를 몰라 당황스러웠다. 꾸밈없고 솔직한 표정으로 자신의 너그러운 마음을 내심 기대하며 환하게 웃고 있는 며느리의 얼굴에 대놓고 화를 낼 수도 없었다. 마침내 시어머니는 그래, 이제 넌 내 식구이고 우린 한가족이다!”라면서 며느리를 따뜻하게 안아주었다. 분명 뭔가 잘못된 것 같은데도 며느리가 밉지 않았다.

똑같은 상황에서도 서로 다른 관계가 발생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어쩌면 고부 갈등은 해결되지 않는 구조적이며 근원적인 이유가 있다는 말보다는 뭔가 다른 설명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고부간의 갈등이 아니라 친밀함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예의범절보다는 지혜와 유머 혹은 위트가 더 필요한 시대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박현민 신부의 별별 이야기] (8) 운전만 하면 화가 나요

 

자신은 분노조절 장애라며 스스로 진단을 내리고 상담실을 찾아오는 분들이 의외로 많다. 모든 일에 짜증이 나고 일상에서 별것 아닌 사건으로도 극도의 분노를 느낀다는 점, 한 번 분노가 일어나면 쉽게 가라앉지 않아 결국 자신과 타인에게 큰 피해를 주고 나서야 감정이 가라앉는다는 점에서도 이들은 많이 닮아 있었다.

무엇보다도 특이한 점은 대부분 화를 가장 참기 힘든 상황은 운전할 때라고 말한다는 것이었다. 특히 운전 중에 가장 화가 많이 난다고 하였다. 방향지시등을 켜지 않고 갑자기 끼어들기를 한다거나, 급정지하는 경우, 혹은 고속도로를 나가기 위해 길게 늘어선 자동차 행렬 사이를 비집고 끼어든다거나 신호위반을 하고 질주하는 차량을 보면 예외 없이 분노가 올라와 욕설을 내뱉는다고 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화가 나지 않는 이가 더 이상한 사람이지 않을까? 타인의 부주의나 위법 행위로 인해 자신이 피해를 볼 수 있는 상황에서 분노 감정이 발생한다는 것은 오히려 자연스러운 반응일 것이다. 게다가 그러한 행동이 실수가 아니라 다분히 의식적이고 고의성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된다면, 불같이 타오른 분노 감정에 기름을 부은 것과 같은 느낌을 받게 될 것이다.

하지만 같은 상황에서도 다른 감정과 행동을 보이는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다. 어떤 사람은 운전 중 갑자기 당황스러운 상황이 발생해도 사고가 나지 않은 것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표현한다. 어떤 사람은 상대방 행동이 이해되지 않아도 무엇인가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며 기꺼이 양보하는 마음과 태도를 보인다. 그런 사람들이 어디 있느냐고 항변하는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세상에는 어떤 부정적 상황에서도 긍정적 마음 자세를 잃지 않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같은 상황에서 다른 감정과 행동을 보이는 이유는 다름 아닌 생각의 차이때문이다. 생각, 더 정확히 말하면 사건을 인지하는 방식에서 감정과 행동이 결정된다. 그렇다면 운전 중에 부정적인 감정과 행동을 일으키는 사람과 반대로 긍정적인 감정과 행동을 보이는 사람의 인지 방식의 차이는 어디에서 발생하는 것일까?

미국 유학시절 보험회사에서 자동차 보험 가입 서류를 작성하고 난 후 서류 마지막 부분에 제시된 문장을 본 후 적잖게 놀란 기억이 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문장이었다. “교통사고는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나 발생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사건입니다. 만일 운전 중에 사고가 발생했을 경우엔 경찰에 연락하신 후 절대 차량 밖으로 나오지 말고 차 안에서 기다리십시오.” 여기서 내 눈길을 끈 것은 교통사고가 자연스러운 사건이라는 말이었다. 보험 계약서에 교통사고의 원인을 인격화(personalization) 하지 말고 자연 발생적 현상으로 수용하라는 심리학적 통찰이 적혀있었던 것이다.

운전 중에 경험하는 모든 일은 누구나 언제 어디서 어떤 형태로든 경험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사건이다. 누구의 책임이고 누구의 탓이라고 생각하면(인격화) 그 사람에 대한 분노가 일어날 수 있다. 하지만 누가 그 사건을 유발했는지가 중요하지 않고 누구든 경험할 수 있는 자연적 사건으로 인지할 수만 있다면 오히려 더 위험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게 도와주신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올릴 수 있을 것이다.

인생을 살면서 체험하게 되는 부정적 사건은 일어나는 시기와 내용만 다를 뿐 거의 모든 사람에게 예외 없이 발생한다. 하지만 그 사건을 어떻게 생각하고 판단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정서적 안정과 영적 성숙은 큰 차이를 보일 것이다. 인격화된 사건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사건으로 수용하는 사고방식은 비단 교통사고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어떤 새 물건도 사용하다 보면 흠집이 나기 마련이다. 생활 흠집을 인격적 사건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면서 발생하는 상처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만 있다면 부정 감정으로부터 조금은 자유로워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박현민 신부의 별별 이야기] (9) 누가 누구를 돌보는가

 

환갑을 갓 넘은 체칠리아 자매는 모든 일에서 친절하고 항상 웃으며 언제나 타인을 위한 희생과 봉사의 삶을 살아왔다. 이 자매의 인생철학은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는 것이었다. 자신은 한 알의 썩은 밀알이 되어 세상에 백배 천배의 열매를 맺는 것을 삶의 목적으로 살아왔다고 말했다.

체칠리아 자매는 직장에서 일할 때나 성당에서 봉사할 때, 항상 주변 사람들을 챙겨왔으며 자신이 움직여 사람들이 행복할 수만 있다면 언제나 희생하고 봉사하는 삶을 살아왔다. 돈을 꾸어달라는 지인에게 자신에게 여유가 없으면 다른 사람의 돈을 빌려서라도 상대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는 성향을 지니고 있었다. 성당 봉사자들과 차를 마시거나 식사를 할 때에도 눈치를 보지 않고 먼저 나서서 값을 치르곤 하였다.

그렇다고 성당 봉사자들이 다 나 같은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가지 않는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다. 사람들은 신부님이 알아주는 일이나 생색을 낼만한 일은 앞을 다투어 그 일을 맡겠다고 달려들었다. 하지만 시간적으로나 경제적으로 희생을 요구하는 일, 혹은 남이 알아주지 않는 일은 항상 핑계를 대며 회피하곤 하였다. 그때마다 아무도 나서지 않는 봉사는 항상 체칠리아 자매의 몫이었다. 자신이 이용당하는 느낌이 들어 기분은 상했지만, 곧 불만을 내려놓고 자신을 다독였다. 희생 없는 봉사는 하느님께서 즐기지 않으신다는 생각으로 오히려 불만을 감사로 승화시키려 노력하였다.

그러던 중 체칠리아 자매는 갑자기 우울하고 무기력하며 울분이 밀려오는 감정을 느끼기 시작하였다. 봉사는 물론 미사도 참여하기 어려웠으며 소화가 안 되고 잠을 충분히 청할 수도 없었다. 정신적이며 신체적인 모든 면에서 문제가 발생하고 있었다. 최선을 다해 봉사의 삶을 살았고 남에게 조그만 상처도 주지 않으려 노력한 자신이 왜 이런 고통을 당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심지어 죽고 싶다는 말을 혼자 되뇌는 자신을 바라보며 깜짝 놀란 적이 한두 번도 아니었다. 이 상황에 이르다 보니 자신이 정말 정신적으로 우울증을 겪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아니면 영적으로 마귀의 시험에 빠진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었다.

체칠리아 자매는 그동안 누구나 한 번쯤 느껴볼 만한 감정을 인생의 60갑자를 돌고 나서야 비로소 마주하고 있었다. 지난 세월 동안 이런 비슷한 감정으로 괴로웠던 기억이 어렴풋이 느껴지는 것으로 보아 그동안 부정적 감정을 많이 억압하고 회피해 왔던 것 같다. 생각해 보면 늘 좋은 모습이었던 자신 안에서 부정적 감정을 인정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복음 말씀대로 타인을 우선으로 배려하며 살아왔는데 돌아오는 결과가 우울과 분노 그리고 무기력함이라면 누구나 이 사실을 인정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복음 말씀대로 산다고 해서 기쁨과 평화만 찾아올 것이라고 기대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복음적인 삶이 우울이나 분노처럼 부정적 감정을 일으킨다고 말할 수는 더더구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체칠리아 자매는 자신의 삶에 뭔가 문제가 있음을 느끼기 시작하였다. 진정한 복음적인 삶이 무엇인지, 그리고 자신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진지한 물음을 제기했다.

과연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어 줄 수 있는 삶이 가능할까? 만일 가능하다면 그러한 이타적인 삶은 자신의 무조건적인 희생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일까? 체칠리아 자매는 모든 이를 위한 삶을 산다고 했지만 정작 그 모든 이 안에 자신은 빠져있었음을 깨달았다. 자신이 자신을 위해 무엇인가 되어줄 수 없는 삶을 살게 되면, 결국 자신도 타인을 위해 무엇인가 되어줄 수 있는 삶을 살기가 어렵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라틴어 격언에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을 남에게 줄 수 없다(Nemo dat quod non habet)’는 말이 있다. 타인을 위한 진정한 사랑은 어쩌면 자신이 진정으로 사랑받는 체험에서부터 시작될 수 있을지 모른다. 이때 다른 사람들로부터 사랑받는 체험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스스로 자신을 돌볼 수 있는 진정한 마음과 의지가 중요한 사랑의 기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자신에 대한 돌봄과 사랑이 자신만 생각하는 이기적 사랑과 구별된다는 설명을 구차하게 늘어놓을 필요도 없을 것 같다. 이미 우리는 그러한 식별이 어렵지 않을 만큼 충분히 성숙한 신앙인들이기 때문이다.

 

 

 

 

 

[박현민 신부의 별별 이야기] (10) 마셔야 하나 말아야 하나 ()

 

사제품을 받고 경기도 광주의 한 본당에 첫 보좌 신부로 부임한 지도 벌써 23년이 흘렀다. 첫 부임지에서 만난 주임 신부님은 연세가 지긋하시고 마음이 따뜻하신 노사제이셨다. 주임 신부님과 나는 선배와 후배 사제가 아닌 할아버지와 손자의 마음으로 한 해의 짧은 사목 생활의 연을 이어갔다.

어느덧 대림 시기가 되어 주임 신부님은 부임하신 이래로 첫 구역 판공성사를 하기로 결정하셨다. 그동안 거동도 불편하시고 연세가 있으신 관계로 가정 방문과 구역 미사를 드릴 수가 없었던 주임 신부님으로서는 보좌가 부임하였기에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셨던 것이다. 하지만 많은 신자분은 자신의 집에 신부님을 모신다는 사실 자체가 기쁘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여느 본당과 마찬가지로 본당 관할 내에는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분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어려운 살림에 하루하루를 어렵게 살아가고 있는 분들이었다. 이런 분들에게는 신부님이 가정을 방문한다는 사실이 여간 부담스럽고 불편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임 신부님은 전 세대 가정 방문을 추진하셨고 대신 신부님을 맞이할 때는 절대 음식을 준비하지 말고 차 한 잔 정도만 준비하라고 당부하셨다. 주임 신부님과 나는 서로 구역을 나누어 세대를 방문하였다. 물론 주임 신부님은 하루 한두 세대 방문하시는 것으로 일정을 마감하셨고 나머지 세대는 아직 힘이 넘치는 보좌 신부의 몫이었다.

본당의 각 가정을 방문하면서 신자들이 얼마나 어려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를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어느 한 가정도 시련과 고통이 없는 곳이 없었으며 나름대로 각자의 십자가를 지고 어려운 삶을 열심히 살아가고 있었다. 인간적으로 도저히 이해하거나 받아들일 수 없는 고통도 이분들은 십자가를 바라보며 묵묵히 견뎌내고 계셨던 것이다. 본당 신자들의 삶과 고통을 직접 체험하면서 앞으로 어떤 사제가 되어야 하는지를 많이 묵상할 수 있었다. 이렇게 주임 신부님은 앞으로 사제로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깊은 깨달음을 체험하도록 배려함으로써 나에게 첫 번째 성탄 선물을 선사하셨다.

첫 판공 기간 만난 많은 신자 중에 지금도 눈을 감으면 선하게 떠오르는 한 할머니가 있다. 할머니는 지금도 믿기지 않을 정도로 집이 아닌 반지하 토굴에서 살고 계셨다. 지면에서 사선으로 땅을 파고 그 안에 비닐하우스를 묻은 것과 같은 모양의 주거 형태였다. 비닐 막을 걷고 안으로 거의 기어들어가니 2~3평 남짓한 공간에서 할머니가 기쁜 모습으로 반겨주셨다. 10분도 앉아있기 어려워 봉사자 2명은 나를 놓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역한 냄새로 안에 앉아있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나는 할머니와 30여 분 대화를 나눈 후 고해성사와 강복을 드리고 작별 인사를 했다.

그런데 할머니는 인사가 끝나기가 무섭게 몸을 날려 문앞을 큰 대자로 가로막으시며 신부님이 오신다고 준비한 유자차가 있는데 그걸 대접하지 않으면 안 된다면서 그 차를 마셔야만 여기서 나가실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할 수 없이 할머니 성의를 봐서 그러겠다고 다시 자리를 앉았다. 할머니는 그제야 안심한 듯이 옷장 위에 놓아둔 유자청 단지를 꺼내서 뚜껑을 열고 한 숟가락 유자청을 퍼 올리셨다. 그 순간 나는 내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유자청 위에 뽀얗게 앉은 곰팡이가 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할머니가 신부님 오신다고 정성스럽게 준비한 유자청은 결국 너무 오래되어 곰팡이가 피어있었던 것이다.

할머니는 이 유자청을 3년 전에 선물 받았는데 당신이 먹기엔 너무 아까워 가장 귀한 손님에게 먼저 대접하시겠다며 지금까지 보관하였다고 하셨다. 그러던 중에 신부님이 방문하신다는 소식에 그 귀한 유자청 단지를 이제야 개봉하게 되었다면서 너무 기쁘고 영광이라며 좋아하셨다. 참으로 난감했다. 이미 상한 유자차를 확인한 이상 마시기도 그러했고, 그렇다고 안 마시자니 할머니의 정성을 외면하는 것 같아 여간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놀랄 일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박현민 신부의 별별 이야기] (11) 마셔야 하나 말아야 하나 ()

 

유자청을 몇 숟가락 꺼내 담은 그릇은 바로 양은 세숫대야였다. 어릴 때 보고 거의 보지 못했던 양은 세숫대야를 거기서 마주한 것이었다. 할머니는 세안용으로 사용했던 세숫대야에 유자청을 물과 함께 몇 술 퍼 담으신 후 그것을 휴대용 가스레인지에 앉히셨다. 나는 그만 기겁을 하고 말았지만, 할머니는 개의치 않은 듯 열심히 세숫대야에 한 사발 유자청을 끓여 나에게 건네주셨다. 이미 밖에서 봉사자들이 다시 들어와 할머니를 제지했지만 완강한 할머니의 태도에 다들 어찌할 바를 몰랐다.

나는 순간 상한 유자청을 세숫대야에 끓여서 대접한 할머니의 정성을 받아들여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두고 몇 초를 망설였다. 하지만 이내 한 컵을 덜어 차를 마시기 시작했다. 그까짓 곰팡이 핀 유자청이면 어때? 끓였는데 별일 뭐 있겠어? 라고 생각하며 스스로 위안으로 삼았다. 그때는 할머니의 정성을 매정하게 뿌리친다는 것이 차라리 먹고 탈 나는 것보다 더 두렵고 힘든 일처럼 느껴졌었다.

한 컵을 어렵게 다 마시고 난 후 나는 이만 일어나겠다고 다시 갈 길을 재촉하였다. 하지만 그 순간에 다시 할머니에게 제지를 당하였다. 끓여놓은 차를 다 마시고 가셔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쯤 되고 보니 나로서도 더는 할머니의 뜻에 양보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였다. 무엇보다도 다음 신자 가정을 방문하여야 하는 나로서는 할머니의 청을 더 이상 들어드릴 수 없는 충분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할머니는 고집이 여간 센 분이 아니셨다. 끓여놓은 차를 다 마시지 않으면 못 나간다며 큰 대자로 문 앞을 다시 가로막고 서 계신 것이 아닌가. 이쯤 되고 보니 머리가 복잡해졌다. 처음부터 완강한 태도로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하며 거절을 해야 했던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지만 이미 뒤늦은 상태였다. 나는 기왕 이렇게 된 바에야 차라리 마음을 내면 되지 하고 끓여놓은 세숫대야의 차를 다 마시고 난 후 할머니의 깊은 감사 인사를 받으며 그곳을 떠날 수 있었다.

그 날 밤 나는 주임 신부님으로부터 호된 꾸중과 야단을 맞았다. 사제가 한 사람의 청을 과감히 거절하지 못하면 그 결과가 다른 신자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고 말씀하시면서 잊히지 않는 소중한 가르침을 전해주셨다. 실제로 그 날 나는 설사를 하며 속이 불편한 나머지 오후 일정을 최소한으로 마감할 수밖에 없었다.

어리석은 처신으로 다른 신자들을 충분히 만나지 못하고 일찍 가정 방문을 마치게 되어 죄송한 마음이 드는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아직도 난 그 날의 체험을 잊지 못하며 지금도 그때의 결정을 후회하지 않는다. 다른 신자들에게는 일찍 가정 방문을 끝내는 아쉬움을 남겼지만, 적어도 그 할머니에게는 생애에 가장 큰 대접을 사제에게 베풀 수 있는 기쁨을 전해드렸다는 점에서 나름의 기쁨과 의미를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세상은 기능과 효율을 강조하면서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을 요구하고 있다. 최소의 비용을 들여 최대의 수익을 올려야 하고, 같은 조건에서도 최상의 판단을 합리적으로 도출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해지고 있다. 이러한 시대적 요청은 세상을 제4차 산업혁명 시대로 빠르게 이전시키고 있다. 이에 인간의 능력과 판단을 대신하는 인공지능(AI)이 인간의 모든 삶의 영역을 대신하게 될 가능성이 점차로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세상의 변화에도 인간의 비합리성이 자리하게 될 가능성은 여전히 충분하다. 상대를 위해 양보하고 희생하는 마음은 겉으로는 비합리적일 수 있지만,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치유의 원천이 된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 사랑의 바보로 살아가는 많은 분이 계시기에 우리 사회는 아직도 따뜻한 체온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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