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한 말씀만 하소서

[구역반장 월례연수] 사랑 <가정> 사랑의 성소, 기장을 향한 교회의 조대 - 기쁨과 희망의 동행 -

작성자은총의샘|작성시간26.06.06|조회수45 목록 댓글 0

[구역반장 월례연수] 사랑 <가정>

사랑의 성소, 기장을 향한 교회의 조대

- 기쁨과 희망의 동행 -

 

1. 시대의 징표 : 흔들리는 세상 속에서 길을 찾는 청년들

오늘날 우리 시대의 청년들이 마주한 현실은 참으로 녹록지 않습니다. 급격한 사회 변화, 경제적 불확실성, 그리고 무한 경쟁의 굴레는 가정이라는 전통적인 울타리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많은 청년이 결혼과 출산을 축복이 아닌 생존의 문제포기해야 할 선택지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원가족과의 갈등, 독신의 외로움, 자발적 무자녀, 동거 등 다양한 가족 형태를 경험하며 많은 이들이 정서적 혼란과 아픔을 겪고 있습니다.

교회는 이러한 시대적 징표와 젊은이들의 고통을 결코 외면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의 아픔에 깊이 공감하며, 변화된 가치관 속에서 길을 잃은 이들에게 가정의 참된 의미와 행복을 다시 발견하도록 간절히 초대하고자 합니다. 가정은 단순히 사회를 유지하는 최소 단위나 경제적 공동체가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이 본질적으로 갈구하는 사랑의 가치를 실현하고, 하느님의 신비를 체험하는 유일무이한 사랑의 성소이기 때문입니다.

 

2. 가정 공동체: 하느님 사랑이 구현되는 친교의 성소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은 권고 가정 공동체를 통해 가정이 하느님으로부터 부여받은 고유하고도 거룩한 사명을 선포하셨습니다. 교황님은 가정을 단순히 혈연의 집합체가 아니라 생명과 사랑의 친밀한 공동체라고 정의하셨습니다.

히브리어 바이트(Bayit)’는 건물로서의 집을 넘어 가족 구성원과 하느님과의 관계가 실현되는 공간을 의미합니다. 가정은 하느님께서 세우신 최초의 공동체이며,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세상에 보여주는 살아있는 표징입니다. 청년들이 꿈꾸는 가정은 단순히 머무는 곳이 아니라 하느님을 만나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한국 교회 선조들은 혹독한 계급 사회 속에서도 하느님 앞에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는 진리를 깨달아 신앙 공동체를 일구었습니다. 이러한 전통은 오늘날 우리 가정 안에서도 이어져야 합니다. 부부와 부모 자녀가 서로를 자신의 욕구를 채우기 위한 도구로 보지 않고, 하느님 앞에 존귀한 인격체로서 존중하며 함께 성장할 때 가정은 비로소 안식처가 됩니다.

가정은 서로의 믿음이 바닥나지 않게 돕고, 하느님과의 약속을 지키며 살아가도록 지탱해 주는 신앙의 학교입니다. 부모와 자녀가 함께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일상에서 사랑을 실천할 때, 가정은 세상을 복음화하는 가장 강력한 보루가 됩니다.

 

3. 사랑의 기쁨: 일상의 구체적인 삶에서 만나는 자비의 학교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권고 사랑의 기쁨을 통해 가정이 완벽한 성인들만의 모임이 아니라, 서로의 부족함을 인내하고 채워주는 자비의 학교가 되어야 함을 일깨워주셨습니다.

삶의 폭풍 속에서 흔들리고 찢어진 돛을 단 채 울며 기도해야 하는 날이 반드시 옵니다. 하지만 가정은 내가 처한 문제를 다 풀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곁에 있는 가족을 위해 다시금 손을 내밀고 위로할 수 있는 신비로운 힘을 지닌 곳입니다. 고통을 함께 나누는 그 순간, 우리는 가정 안에서 부활의 기적을 체험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우리가 청년들에게 전해야 할 핵심적인 세 가지 진리를 강조하셨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구원하십니다”, “그리스도는 살아 계십니다”. 가정은 이 거창한 진리를 이론이 아닌 밥상머리일상의 대화속에서 몸소 배우는 곳입니다. 가정에서 체득한 사랑의 기쁨은 담장을 넘어 사회로 흘러 들어가 세상을 하느님의 진리 위에 바로 세우는 기초가 됩니다.

 

4. 2027 서울 WYD : 복음의 설득력 있는 증인이 되는 길

다가오는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WYD)는 전 세계 청년들이 우리 삶 속에 살아계시는 그리스도를 직접 체험하는 은총의 시간입니다. 특히 이번 대회는 현대 사회 가정의 위기 속에서 참된 사랑의 가치를 성찰하고, 이를 구체적으로 실현할 방법을 찾는 여정이 될 것입니다.

교회는 원가족의 상처를 안고 있거나, 혼자 사는 청년, 혹은 새로운 형태의 삶을 고민하는 모든 젊은이와 함께 걷고자 합니다. 2027 서울 WYD는 어떤 처지에 있든 우리가 하느님의 가족임을 깨닫고, 그 안에서 어떻게 사랑을 구현하며 행복을 찾을 수 있을지 함께 답을 찾는 자리

가 될 것입니다.

한국 교회의 평신도 신앙과 순교 정신은 오늘날 청년들에게 생명과 사랑을 선택할 용기를 줍니다. 세상이 주는 죽음의 문화소비적 사랑에 저항하고, 하느님이 주신 생명의 존엄성을 지키는 주역이 바로 여러분입니다.

자기 집안을 이끌 줄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하느님의 교회를 돌볼 수 있겠습니까?”(1티모 3.5)라는 말씀처럼, 청년 여러분은 자신의 일상과 가정이라는 작은 밭을 먼저 사랑으로 일구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말 한마디, 태도 하나가 곧 복음의 가장 설득력 있는 증거가 됩니다.

 

5. 성령의 이끄심에 몸을 맡기는 사랑의 모험

가정은 우리가 세상의 풍파로부터 비겁하게 숨어드는 도피처가 아닙니다. 오히려 하느님의 사랑을 가득 충전하여 다시 거친 세상으로 나아가는 파견지입니다. 2027 서울 WYD를 향한 이 여정은 여러분에게 더 이상 두려움이 아닌 기쁨과 생명의 삶을 약속할 것입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이 강조하신 가정의 거룩한 본질을 잊지 마십시오. 동시에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일깨워주신 구체적인 사랑과 자비를 여러분의 삶에서 실천하십시오. 성령께서는 여러분의 연약함을 생명력으로 바꾸어 주실 것이며, 성모님께서는 어머니의 따뜻한 품으로 여러분의 사랑의 여정을 지켜주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일구는 작은 사랑의 노력이 모여 우리 사회를 치유하는 성가정의 모범이 되고, 그것이 온 세상을 비추는 복음의 빛이 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가정은 내 문제를 다 풀지 못해도 다른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고 위로할 수 있는, 하느님의 사랑이 시작되는 성소입니다. 이제 그 사랑의 기적을 향해 우리 함께 나아갑시다.’(요한 바오로 2세 교황, 생명의 복음참조)

 

 

 

[구역반장 월례연수] 회칙 찬미받으소서1장을 통해 파악하는 기후 위기

공동의 집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까?

지금 전 세계 교회는 교황청 온전한 인간 발전 촉진을 위한 부서의 요청에 따라 작년부터 찬미받으소서 7년 여정에 동참하는 중입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계속해서 우리를 괴롭히고 있는 와중에, 기후 위기로 인한 기상 이변까지 현실화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인류 공동체는 이중의 고통을 겪는 중입니다. 그러니 한편으로는 지금이 어느 때보다도 우리 공동의 집을 보호하기 위한 관심과 노력이 필요한 시점임을 알 수 있습니다.

찬미받으소서 7년 여정의 기저에는 일종의 절박감과 시급함이 자리합니다.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가 어떠한 선택을 하느냐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이 선택에 따라서 미래 세대와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다른 피조물들이 감내해야 하는 고통의 총량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찬미받으소서의 개요

지난 2015524일에 반포된 찬미받으소서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첫 번째 사회교리 회칙입니다. 교회 역사상 최초의 생태환경 회칙이며, 모든 신앙인과 선의를 지닌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합니다. 6, 246항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의 생태 영성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1891년 레오 13세 교황님께서 노동문제에 관한 회칙 새로운 사태를 반포하신 이래로, 교황님들의 사회교리 회칙 반포는 교회의 전통이 되었습니다. 당대를 관통하는 사회 문제는 워낙 분야가 다양하고 계속해서 변화합니다. 그러므로 교황님들께서 사회교리 회칙을 반포하실 때 그 주제가 자연스럽게 그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사회 문제가 되기 마련입니다. 예를 들어 전임 베네딕토 16세 교황님께서는 2009년에 회칙 진리 안의 사랑을 반포하셨습니다. 당시 금융위기가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었기 때문에 회칙의 주제는 당연하게도 경제였습니다. 투기적인 금융자본이 실물 경제의 위기를 가져오고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어렵게 만드는 와중에 회칙은 진정한 발전에 대해서 고찰하며 인류가 나아갈 길을 제시했습니다.

이런 전례에 비추어보면 찬미받으소서가 생태환경 회칙인 이유도 해석이 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6년 전에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셨던 사회 문제가 바로 환경이라는 뜻입니다. 찬미받으소서에서 교황님께서는 환경 위기, 특히 기후 변화라는 인류 공동의 문제가 얼마나 다급하고 거대한 문제인지를 상기시켜주시고, 이에 대한 신학적 영적 성찰을 통합하고 발전시키셨습니다.

 

1장 공동의 집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까?

사회교리의 기본 접근방식은 관찰-판단-행동입니다. 먼저 현상을 객관적으로 또한 충분하게 관찰하는 작업이 있어야 복음에 비추어서 올바른 판단이 가능해집니다. 그리고 판단된 것들을 행동으로 옮겨야 세상이 하느님 보시기 좋은 모습으로 변화됩니다. 이런 과정에서 그 출발점은 언제나 관찰이 됩니다. “공동의 집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까?”라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찬미받으소서의 첫 장 역시 현상에 대한 관찰을 담고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제1장에 45항을 할애하시면서 현재 지구 생태계에 일어나는 문제들을 살펴보시는데, 세부 항목은 다음과 같습니다.

목차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인류가 그동안 환경을 잘못된 방식으로 대해왔기에 지구 생태계에 다양한 문제가 일어났고, 이것이 다시 인간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중입니다. 특히, 기후 변화 문제는 단순히 지구의 평균기온이 상승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기후 변화는 세계적 차원의 문제로 환경, 사회, 경제, 정치, 재화 분배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이는 오늘날 인류가 당면한 중요한 도전 과제입니다.”(25)사실, 찬미받으소서반포 이전에도 국제사회에서 기후 변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는 계속 있었습니다. 그리고 현시점에서 이런 우려들은 점점 더 커지는 중입니다. 지구 생태계가 그 한계점에 도달하는 중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논의들에서의 주된 초점은 많은 부분 현상에 대한 해결 방안, 특히 기술적 방안에만 국한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을 믿는 신앙인들이 세상 현상을 바라보는 시각은 그 출발점부터가 달라야 할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현 상황을 이렇게 바라보셨습니다. “이 누이가 지금 울부짖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지구에 선사하신 재화들이 우리의 무책임한 이용과 남용으로 손상을 입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구를 마음대로 약탈할 권리가 부여된 주인과 소유주를 자처하기에 이르렀습니다.”(2)

결국, 기후 변화라는 현상의 기저에는 인간의 교만이 자리합니다. 진리를 폐기해버리고 인간이 창조주의 자리를 대신한 세상에서 자유는 절대권력이 되었습니다.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 대량 폐기를 반복해야 작동하는 자본주의 안에서, 피조물은 착취되었고 고통받는 이들은 배제되어갔습니다. 찬미받으소서는 이러한 인간 존재의 근원적 문제에 주목합니다. 교회의 전통이 그러하듯이 사회교리 회칙이 세상 문제를 다루면서도 전 세계 신앙인들에게 보내는 신앙회칙이 되는 이유도 여기에서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문제의 근원이 인간에게 있기 때문에, 환경 문제는 그 자체로 끝이 아닙니다. 자연환경과 인간 환경이 함께 악화되고 있습니다. 인간이 자연을 착취한 결과가 인간 사회에 그대로 돌아옵니다. 또한, 인간이라는 존재는 자연을 바라보는 방식 그대로 타인을 대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무관심의 세계화”(52)가 세상에 만연합니다. 우리는 그동안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우리와 무관하지 않다는 진리, 하느님께서 공동의 집과 그 안에서 살아가는 모든 피조물을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잊고 살아왔습니다.

따라서 교황님께서는 공동의 집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까?”라는 주제 안에서, 환경에 대한 문제와 현상뿐만이 아니라, 다시 여기에서 영향을 받고 있는 인간의 문제에도 분량의 절반을 할애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언제나 그러하시듯 가장 취약한 이들의 고통에 더 주목하셨습니다. 우리가 코로나19 사태를 통해서도 체험하고 있듯이 전 지구적인 재난이라 하더라도 그 고통은 부유한 국가보다 가난한 국가에 더 가혹합니다. 또한, 같은 나라 안에서도 가난한 사람들이 더 고통받습니다. “사실, 모든 것이 정리되고 나서 보면 소외된 이들의 문제는 가장 뒷전으로 밀려나 있습니다.”(49) 결국, 환경 문제 역시 인류의 오래된 숙제인 불평등의 문제로 귀결됩니다. “오늘날 우리는 참된 생태론적 접근은 언제나 사회적 접근이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한 접근은 정의의 문제를 환경에 관한 논의에 결부시켜 지구의 부르짖음과 가난한 이들의 부르짖음 모두에 귀를 기울이게 해야 합니다.”(49)

회칙에서 이러한 불평 등에 관한 주목은 최종적으로 기후 변화에 관한 국가 간 차등적 책임”(52), 생태적 빚”(51) 개념에 도달합니다. “불평등은 개인에게뿐만 아니라 모든 나라에 영향을 미칩니다. 그렇기 때문에 불평등은 우리가 국제 관계의 윤리도 생각해보게 합니다. 현실적인 생태적 빚은 특히 남반구와 북반구 사이에 발생한 것으로 환경에 영향을 미치는 상업적 불균형, 그리고 특정 국가들이 장기간에 걸쳐 천연자원을 지나치게 이용한 사실과 관련됩니다.”(51)

산업혁명 이후 누적된 온실가스 배출량은 일부 부유한 국가들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기후 변화로 인한 결과는 온 인류에게 영향을 미치고, 그 고통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더 크게 다가옵니다. 남태평양 섬나라들이 배출하는 온실가스는 극히 미미합니다. 그러나 이 나라들은 해수면 상승으로 소멸되는 와중에 있습니다.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한 나라들은 이들에게 생태적 빚을 진 셈입니다.

그러니 책임도 차등으로 주어져야 실효적인 문제 해결이 가능해질 것입니다. 국제사회가 90년대부터 기후 변화 해결을 위한 논의를 시작했지만, 차등적 책임에 관한 부분이 예전에도 합의를 방해했고 지금도 문제 해결을 어렵게 만드는 주요 원인 중에 하나로 버티고 있습니다. 국가 간의 득실에만 너무 집착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국가와 민족 이전에 우리가 다 같은 하느님의 피조물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의 인류 가족이라는 인식을 더욱 확고히 해야 합니다. 우리가 숨을 수 있는 정치적 사회적 국경도 장벽도 존재하지 않습니다.”(52)

이처럼 찬미받으소서의 첫 번째 장은 현시대 상황에 관한 포괄적이고 본질적인 관찰을 바탕으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의 말씀을 인용하며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합니다. “현재 세계 체제는 여러 관점에서 봤을 때 지속될 수 없는 것이 분명합니다. 우리가 인간 활동의 목적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을 멈추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가 우리 지구의 여러 지역들을 살펴본다면, 우리는 바로 인류가 하느님의 기대에 어긋났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61)

그렇다면 하느님의 기대에 어긋난 인류는 무엇을 되돌려야 할까요? 어떠한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아야 하겠습니까? 이에 대한 대답으로 회칙이 전하는 주요 개념들을 다음 호에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