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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말씀만 하소서

[전례 들여다보기] 전례 동작의 의미 : 일어섬

작성자은총의샘|작성시간26.06.13|조회수41 목록 댓글 0

[전례 들여다보기] 전례 동작의 의미 : 일어섬

예수님의 부활을 축하드립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수난과 죽음을 건너 부활하시어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들이 이러한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그들 가운데에 서시어, ‘평화가 너희와 함께!’하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루카 24,36) 일어서 있는 것은 부활의 기쁨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면서 동시에 세례를 통해 이 신비에 함께 동참하고 있다는 것을 드러냅니다.

성모님께서는 예수님의 마지막 순간까지 십자가 아래에 서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는 그분의 어머니와 이모, 클로파스의 아내 마리아와 마리아 막달레나가 서 있었다.”(요한 19,25) 예수님의 고통과 죽음이라는 처절한 순간에도 결코 도망치지 않고 하느님에 대한 굳은 신뢰로 곁에 서 있는 성모님의 모습은 교회의 정체성을 드러내기도 하지요.

이런 의미들은 전례 안으로 들어와 신앙 안에서 확고히 서 있음을 뜻하게 됩니다. 특히 말씀의 전례 중에 복음을 봉독할 때 모든 사람들은 일어서게 됩니다. 하느님 말씀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서서 경청하겠다는 것입니다.(루카 4,16 참조)

또한 서 있는 것은 기도하는 이의 자세입니다. “너희가 서서 기도할 때에 누군가에게 반감을 품고 있거든 용서하여라.”(마르 11,25) “그러나 세리는 멀찍이 서서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 엄두도 내지 못하고 가슴을 치며 말하였다.”(루카 18,13)

초대 교회의 신자들은 해가 떠오르는 동쪽을 향해 서서 양팔을 들고 기도했는데 이는 카타콤바의 벽화 기도하는 사람”(Orans)에도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요컨대 사제가 입당할 때부터 본기도를 할 때까지, 신앙고백부터 보편지향기도를 할 때까지, 또 성찬례 때 일어서 있는 것은 그냥 있는 것이 아니라 사제와 함께 기도하겠다는 의미입니다.

이밖에도 서 있는 것은 깨어 준비하고 있는 사람의 기본적인 자세입니다. 언제든 하느님의 뜻을 실천할 수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지요.

물론 오래 서 있는 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다리가 아파 앉고 싶을 수도 있고 다른 생각이 들어오기도 합니다. 하지만 서 있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새겨보며 전례에 참여하면 어떨까요?

예수님의 부활을 다시 한 번 축하드립니다.

알렐루야!

 

 

 

 

 

[전례 일반과 미사의 Q&A] (60) 대축일? 축일? 기념일?

 

세상의 달력이 있듯이, 교회에도 달력이 있습니다. 이를 우리는 전례주년이라고 말합니다. 전례주년은, 이미 설명드렸었지만, 일 년이라는 시간 안에서 지정된 날들에 하느님의 구원 활동을 경축함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주일에 미사를 봉헌하고, 일 년에 한 번 주님 부활 대축일을 장엄하게 봉헌하는 이유도 직접적으로는 전례주년과 관련이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전례주년을 효과적으로 살기 위해서는 교회가 우리에게 주어진 하루를 어떠한 날로 경축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교회는 하루를 대축일, 축일, 기념일로 구분합니다. 전례주년과 전례력에 관한 일반 규범 10항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전례일의 경축은 그 중요성에 따라 대축일과 축일과 기념일로 구분하여 부른다.”

교회가 이렇게 기념하는 이유는 하루라는 시간 동안 그리스도의 삶을 묵상하고, 나아가 신자들로 하여금 구원의 신비를 기억하고’, ‘성인들의 삶을 본받게 하려는 데있습니다. 가끔 교회력을 보면, 성모님과 성인 축일이 지정된 경우들을 보셨을 것입니다. 이러한 기념은 성모님, 성인 자체 인물을 기억하기보다는 그들의 삶 속에서 주님의 신비를 어떻게 구체화했는가를 묵상함으로써 하느님을 찬미하기 위해서입니다.

대축일, 축일, 기념일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대축일 : 대축일은 주요 전례일에 속하며, 그 경축은 전날 제1저녁 기도(축일 전날 해가 지고 난 후)부터 시작합니다. 어떤 대축일에는 전날 저녁에 미사를 드릴 경우에 사용될 고유 전야미사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그중 가장 큰 대축일인 주님 부활과 성탄 경축은 팔 일 동안 지속됩니다.(참조 : 전례주년과 전례력에 관한 일반 규범, 11-12)

2) 축일 : 축일은 당일 하루 동안만 경축합니다. 따라서 대축일과 달리 축일에는 제1저녁 기도가 없습니다. 그러나 예외가 있습니다. 성인의 축일이 아닌 주님의 축일이 연중이나 성탄 시기 주일과 겹치고 그 축일의 전례를 거행하는 경우에는 제1저녁 기도를 합니다.(참조 : 전례주년과 전례력에 관한 일반 규범, 13)

3) 기념일 : 기념일에는 의무 기념일과 선택 기념일이 있습니다. 기념일 전례는 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시간 전례 총지침에 제시된 규범을 따라 해당 평일 전례와 연결시켜 거행합니다. 사순 시기 평일에 오는 의무 기념일은 오로지 선택 기념일처럼 지낼 수 있으며, 같은 날 전례력에 여러 선택 기념이 들어 있으면, 하나만 지내고 다른 기념은 생략할 수 있습니다. 또한 연중 시기 토요일이 의무 기념일이 아니면 복되신 동정 마리아 선택 기념일로 지낼 수 있습니다.(참조 : 전례주년과 전례력에 관한 일반 규범, 14)

오늘은 대축일, 축일, 기념일에 대해서 알아 보았습니다. 전례력 안에서 대축일, 축일, 기념일이 구분되는 이유는 신자들에게 주님의 구원과 신비를 더욱 잘 깨닫게 도와주고, 나아가 우리가 구원의 신비를 살 수 있도록 돕습니다. 그리하여 성인들의 삶을 본받고, 성인들과 함께 천상 교회의 신비에로 나아가기 위함입니다. 매일 마주하는 이 하루가 교회는 어떠한 날로 지정하고 있는지 의식하고, 우리 역시 하루라는 시간 속에 주님의 구원과 은총, 신비를 구체적으로 담을 수 있도록 노력하는 신앙의 여정을 걸어 나갔으면 합니다.

 

 

 

 

[전례 들여다보기] 전례 동작의 의미 : 앉음

 

미사 안에서 이루어지는 여러 동작들을 살펴보고 있는데 간략하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장궤는 하느님께 대한 존경과 공경의 의미를 드러내고 그분께 기도하는 마음의 표현 자리이고, 일어섬은 그리스도께서 죽음에서 일어난 부활의 기쁨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면서 하느님 말씀을 경청하고 기도하는 자세입니다. 이어서 앉아있는 자세에 관해 알아보겠습니다.

사람은 신체구조상 오래 서 있으면 피로를 느끼기에 앉으면 몸이 편안해지면서 마음도 차분해집니다. 이 상태에서 좀 더 내밀하게 하느님의 말씀을 경청할 수 있고 들은 것을 묵상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율법 교사들 가운데에 앉아 그들의 말을 듣기도 하고 묻기도 하셨습니다.(루카 2,46) 군중도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앉아있었으며(마르 3,31-35) 라자로와 마르타의 동생 마리아도 스승의 가르침을 듣기 위하여 주님의 발치에 앉아 그분의 말씀을 들었습니다.(루카 10,39)

앉아있는 것은 가르치는 자세이기도 합니다. 예수님 시대 팔레스티나 지역에서는 가르침을 전수하는 스승, 공식적인 직무를 수행하는 관리, 재판관 등은 앉아서 자신들의 직분을 수행했고 사람들은 앉아서 그것을 들었습니다. 수님께서도 산에 오르시어 자리에 앉아 그리스도교의 대헌장(Magnacarta)이라 불리는 산상설교를 권위 있는 스승의 모습으로 하셨지요.(마태 5,1)

또 앉아있는 것은 회개하는 이의 자세였습니다. 요나의 심판 경고를 들은 니네베 사람들은 단식을 선포하고 가장 높은 사람부터 가장 낮은 사람까지 자루옷을 입었습니다. 임금도 이 소식을 듣고 자루옷을 걸친 다음 잿더미 위에 앉았습니다.(요나 3,5-7) 자신들의 죄를 뉘우치고 하느님께 돌아오겠다는 회개의 굳은 의지를 보여준 것이지요. 예수님께서도 당신의 가르침을 듣고 기적을 보았음에도 믿지 않는 코라진과 벳사이다 그리고 카파르나움 지역의 사람들에게 너희에게 일어난 기적들이 티로와 시돈에서 일어났더라면, 그들은 벌써 자루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앉아 회개하였을 것이다.”(루카 10,1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앉아있는 것은 하느님의 권위를 드러내면서 동시에 가르침을 받는 이들이 경청하고 묵상하는 자세입니다. 나아가 성찰한 것을 바탕으로 하느님께로 고개를 돌리는 회개를 상징하는 자세이기도 하지요. 그렇기에 미사 중 말씀의 전례와 봉헌 예물을 준비할 때 그리고 영성체 후 침묵을 지키며 기도하기 위해 앉아있는 것입니다.

물론 서 있으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고 누우면 자고 싶은 것이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우리 몸의 이치입니다. 그럼에도 앉아있는 것의 의미를 생각하며 미사 중에 하느님 말씀에 경청하고, 경청한 것을 삶에서 실천하기 위해 노력해 보면 어떨까요?

 

 

 

[알기 쉬운 전례 상식] 로만 칼라는?!

어느 날 교회에 관심이 많은 ○○○ 베드로가 무척 굳어 있는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묻는다.

 

신부님, 어느 것이 맞는지 모르겠어요. 며칠 전 인터넷에서 성직 칼라’, ‘로만 칼라를 검색하다가 위키백과나무위키사이트에 올려진 글을 읽고 마음이 상해서 이 사실에 대해 여러 신부님들에게 물어봤어요. 그런데 신부님들도 정확하게 대답을 해주지 않으셔서 더욱 답답했어요.”

나는 갑작스러운 질문에 뭣이 속상해서 여러 신부님들에게 물어보았는데?” 하고 베드로에게 되물었다. “신부님도 모르시죠? 위키백과나 나무위키에 따르면, 로만 칼라는 개신교회 성직자인 목사의 복장에서 유래한다고 나온다니까요. 저는 신부님들만 로만 칼라를 착용한다고 생각했었는데,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그게 아니어서

실은 몇 년 전에도 똑같은 질문을 받은 적이 있었다. 참으로 좋은 기회라고 여기며 베드로에게 차분하게 설명해 주었다.

가톨릭 교회에서 로만 칼라는 수단과 함께 천주교 성직자의 상징으로 여긴다. 성직자 신분을 나타내는 수단의 목 부분에 두르는 흰색의 로만 칼라는 혼인을 하지 않고 정결을 지킨다는 독신을 상징하며, 로만 칼라는 주교님에게 순종하고 교황의 수위권을 인정하고 가톨릭 교회에 순종한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 그런데 가톨릭의 로만 칼라는 8세기 이후 유럽 나라별로 등장한다. 그러나 현대의 로만 칼라는 교황님이 머무르고 계시는 로마의 양식으로 16-17세기부터 로만 칼라로 규정되었다. 1565년부터 1582년까지 개최된 이탈리아 북부에 위치하고 있는 밀라노 관구 공의회에서 성직자에게 초기 형태의 로만 칼라를 착용하도록 했으며, 당시까지 흰색이었던 성직 복장의 색깔도 검은색으로 바뀌게 되는 획기적인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그리고 17세기부터 가톨릭 국가들에서 성직자는 관행으로 로만 칼라를 착용, 교황 베네딕토 13세는 17241230일 교령으로 로마의 성직자들에게 로만 칼라를 의무적으로 착용하게 했다. 그런 다음 1725년 전 세계 성직자들에게 이를 준수하게 하며, 특히 1884년 제3차 볼티모어 공의회는 성직자들과 평신도들을 외적으로 특별히 구별해 주는 요소로서 로만 칼라를 착용하게 했고, 재속 사제들과 수도 사제들에게도 준수하게 했다. 그리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전례 개혁의 하나로 성직자 복장을 간소화하면서 개량된 로만 칼라를 성직자가 착용하게 됐고, 이런 로만 칼라는 성직자의 권위나 명예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섬김과 봉사의 표징으로 성직자의 신원을 공적으로 드러내는 표징이라고 말할 수 있다.

현재 영국을 포함한 유럽에서 개신교 목회자가 개량된 로만 칼라를 착용하는데, 특히 루터 교회는 18세기부터 공직자가 착용하던 칼라를 간소화하여 목회자 신분을 드러내는 복장으로 착용했다. 또한 감리교 감독과 성공회 주교도 로만 칼라를 착용, 한국에서는 개신교 교단과 상관없이 목회자 신분을 드러내고자 목사가 로만 칼라를 착용한다. 이것을 근거로 일부 개신교에서 로만 칼라가 개신교 목회자 복장에서 유래하였다고 주장하는데, 그것은 역사적인 변천 과정을 제대로 모르고 하는 이야기일 뿐, 영국과 미국 기자들이 편집해서 올려놓은 인터넷 기사를 그대로 믿으면 안 된다. 역사적으로 분명한 것은 로만 칼라가 가톨릭 교회의 오랜 전통을 지닌 성직자 복장이라는 점. 오히려 일부 개신교에서 가톨릭 교회의 성직자 복장을 받아들여 현대적 셔츠 형태로 개량해서 착용하기 시작하였다고 보는 것이 옳다.

로만 칼라에 대해 정확하게 이해했니, 베드로?”

굳어 있던 베드로의 표정이 밝게 빛난다.

, 신부님, 이제 정확하게 이해했어요!”

 

 

 

 

[전례 일반과 미사의 Q&A] (61) 성체를 꼭 녹여 모셔야 하나요?

 

우리는 통상적으로 성체는 반드시 녹여 모시라고 교회로부터 교육받았습니다. 그런데 정작 미사를 드릴 때 사제나 다른 분들의 모습을 보노라면, 성체를 씹어 모시는 경우를 마주하게 됩니다. 오늘 성체는 꼭 녹여 모셔야 하나요?”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을 먼저 드리자면, 성체를 꼭 녹여서 먹어야 된다는 규정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따라서 성체를 꼭 녹여서 먹어야 하느냐는 질문에는 꼭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된다정도로 답변드릴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성체를 녹여서 모셔야 한다는 교육을 받았을까요? 이는 성체를 공경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으로 유추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교회에서 제시하는 구원의 성사에서는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습니다.

거룩한 미사 거행에 참여하는 모든 신자가 합당한 마음가짐으로 성체를 받아 모시는 것이 가장 좋은 일이다. 그러나 때때로 신자들이 무질서하게 떼 지어 제대 앞으로 나아가기도 한다. 그러한 남용을 신중하고 단호하게 바로잡는 것은 목자들이 할 일이다(구원의 성사 83).”

우리는 미사 거행 안에서 거룩한 주님의 몸을 마주하게 됩니다. 그리고 성체를 모심으로써 우리는 주님과 교회 공동체와 완전한 친교를 이루도록 초대받습니다(교회헌장 7항 참조). 그래서 성체성사는 모든 성사들의 핵심이며 신앙의 기본이 되는 성사입니다. 성체성사는 일치의 표징이고 사랑의 끈이며, 그 안에서 그리스도를 받아 모시어 마음을 은총으로 가득 채우고 우리가 미래 영광의 보증을 받는 파스카 잔치입니다(전례헌장 47). 이렇게 중요한 성체성사이기에 교회법은 영성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지존한 제헌 거행에 능동적으로 참여하고 지극한 정성으로 자주 이 성사를 배령하며 최상의 흠숭으로 경배하면서 지성한 성찬(성체)에 최고의 존경을 드려야 한다(교회법 898).”

, 우리는 성체께 대한 최상의 흠숭과 존경을 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모습을 우리 한국 교회는 전통적으로 씹지 않고 녹여 모시는 것으로 드러냈을 뿐입니다. 물론 앞서 말씀 드렸듯이, 씹고, 녹이는 행위의 모습으로 흠숭의 유무를 판단할 수 없습니다. 아울러 교회의 어느 부분에도 성체를 모시는 행위에 대한 조항은 없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각자가 성체를 모시는 데 있어서 최상의 흠숭과 존경을 드리며 모시고 있는지에 대한 마음입니다.

그리고 종종 묻곤 합니다. “신부님은 씹어도 되고, 신자는 씹으면 안 되나요?” 사제들이 성체를 씹어서 영하는 것은 전혀 잘못된 일이 아닙니다. 당연히 사제는 씹어도 되고 평신도는 씹으면 안 되고 이런 규정도 전혀 없습니다. 누구나 씹어도 되고 녹여도 됩니다. 사제는 다만 바로 성체 분배를 해야 하는 사제로서는 씹어서 모시는 경우도 있습니다. 사제가 씹어서 모신다고 결코 성체에 대한 존경과 흠숭을 저버리는 일은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성체를 영하는 평신도도 씹든 녹이든 전혀 상관 없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앞서 말씀드렸듯이, 성체를 모실 때에 성체가 예수님의 몸임을 인식하고, 예수님께 대한 최고의 흠숭과 존경,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의 마음을 도로 바쳐드리는 마음이 중요할 뿐입니다.

 

 

 

 

[전례 들여다보기] 전례 동작의 의미 : 행렬

 

많은 사람들이 모여 줄을 지어 걸어가는 행렬은 고대부터 공동체의 연대, 어떤 집단의 뜻을 나타내는 수단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이것이 종교 안으로 들어와 의미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구약성경에서 행렬은 이집트에서 탈출하여 약속된 땅으로, 유배지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모습 등에서 드러나고 있습니다.(참조 민수 9,17-18: 이사 52,12) 하느님의 인도와 하느님 백성의 따라감이 행렬을 통해 드러나고 있는 것이지요.

신약성경에서는 행렬하는 모습이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다만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에서 행렬하는 장면이 나타나고 있습니다.(루카 19,35-40) 여기에서 메시아는 귀환한 승리자로 묘사되고 있는데 눈여겨볼 것은 말이 아니라 어린 나귀를 타고 있다는 점입니다. 당시에 말은 전쟁 혹은 정복을 상징했으나 나귀는 평화와 봉사를 뜻하였습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어린 나귀를 타고 구약의 예언을 완성하시는 분이자 겸손한 평화의 임금으로 예루살렘으로 발걸음을 옮기신 것입니다.

딸 시온아, 한껏 기뻐하여라. 딸 예루살렘아, 환성을 올려라. 보라, 너의 임금님이 너에게 오신다. 그분은 의로우시며 승리하시는 분이시다. 그분은 겸손하시어 나귀를, 어린 나귀를 타고 오신다.”(즈카 9,9)

초대 교회에서는 장례와 같은 일반적인 예식 이외에는 행렬이 어려웠습니다. 박해받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4세기 이후 신앙의 자유가 주어지자 행렬은 전례 안으로 들어오게 됩니다. 이것은 조금씩 확대되어 신자들도 순교자 묘지나 성당에 갈 때 행렬을 이루었습니다. 특히 4세기 예루살렘 교회의 전례를 묘사하고 있는 에테리아 여행기에 따르면(참조 24-49),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걸어간 수난의 길을 기도하면서 함께 걷는 관습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것은 십자가의 길 기도로 발전하였고 파스카 성삼일의 여러 행렬의 기원이 된 것으로 보입니다.

요컨대 행렬은 성경의 기록과 교회의 전통에 의거하여 전례 안에 자리 잡았습니다.

미사 때 행렬은 사제가 부제와 봉사자들과 함께 제대로 나아감, 부제가 복음 선포 전에 복음집이나 복음서를 독서대로 모셔 감, 신자들이 예물을 가져옴, 영성체하러 나아감 같은 것들입니다. 이러한 행위와 행렬은 각각의 규범에 따라, 알맞은 노래를 부르는 동안 우아하게 이루어져야 합니다.(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 44)

이외에도 성체 거동, 주님 봉헌 축일(22)에 미사 전 빛의 행렬, 주님 수난 성지주일의 예루살렘 입성 행렬 등이 있습니다.

이처럼 행렬은 몸으로 하는 일종의 신앙고백이자 기쁨과 소망, 환영, 존경, 하느님께 나아감 등의 의미로 전례 안에서 사용되는 행위임을 기억하며 미사에 참여해 보면 좋겠습니다.

 

 

 

 

전례-미사, 예수님과 함께 드리는 기도 (4) 제대 인사와 성호경(聖號經)

 

제대 인사1): 입당 행렬이 제단에 이르면, 사제와 봉사자들은 제대에 존경의 표시로 깊은 절을 하고 계단을 오릅니다. 그리고 사제는 제대에 입을 맞추거나 깊은 절을 합니다. 성당의 중심인 제대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원천이자 정점인 성찬례가 이루어지는 장소이며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2) 그래서 미사성제의 제정자이시고 대사제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공경과 사랑의 표시로 가장 먼저 인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제대에 친구(親口)를 하는 관습은 고대의 다른 종교의 영향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교회는 초기에 제대를 성찬의 식탁으로 여기다가, 차츰 십자가상 제사가 봉헌되는 제단으로 대하고 그리스도의 상징으로 여기게 되면서, 4세기 말부터 제대에 입을 맞추기 시작하였습니다. 중세를 지나며 제대 속이나 그 아래에 성인의 유해를 안치하면서 제대 친구(親口)가 성인 공경의 표현으로 변화되기도 하였지만, 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전례 개혁으로 본래 의미를 되찾았습니다.

주일과 대축일 등에는 십자가와 제대에 향을 피우며 주님께 대한 인사를 더욱 성대하게 행합니다. 분향은 우리 마음을 하느님께로 향하여 들어 올리는 공경과 기도를 표현하는 행위입니다.

십자성호3) : 주례 사제가 제대에 인사하고 입당 성가가 끝나며, 사제는 신자 회중과 함께 십자성호를 긋습니다. 십자성호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상 죽음과 부활로 이루어진 구원에 대한 희망을 드러내며 삼위일체 하느님께 대한 신앙을 고백하는 외적 표지입니다. 성호경이라고 불리는 이 기도와 행동은 우리가 세례성사 때 받은 인호(印號) 곧 하느님의 자녀임을 상기시킵니다. 또한 가장 짧은 기도이지만 모든 기도의 시작과 마침이 되는 주요 기도입니다. 그래서 가톨릭 신자는 모든 일의 시작과 마침에 성호경을 바치며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서 항상 함께하시며 축복해 주시길 청합니다.

십자성호에는 작은 십자성호큰 십자성호가 있습니다. 2세기경부터 사제가 예비 신자의 이마에 십자 표시를 하면서 작은 십자성호가 먼저 입교 예식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4세기 이후로 사제가 오른손으로 사람이나 사물에 십자를 그어 축복하는 관습이 생겨났고, 12세기부터 이마와 입술, 가슴에 십자를 긋는 형식이 전례에 도입되었습니다.

1)큰 십자성호는 5세기경에 나타났습니다. 처음에는 십자를 오른쪽 어깨에서 왼쪽 어깨로 넘어가는 형식(동방정교회의 십자성호)으로 시작되었으나 13세기부터 가톨릭교회에서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넘어가는 형식으로 널리 보급되었습니다.

2) 큰 십자성호가 전례 안으로 들어온 것은 14세기로

,3) 제단 앞에서 바치는 이른바 층하경을 시작하는 기도로 도입되었으며 16세기에 이르러 전례 안에 온전히 자리 잡았습니다.

4) 삼위일체 하느님을 부르며 긋는 십자성호는 우리가 세례성사 때 한 신앙고백을 새롭게 하면서, 예수님의 십자가상 희생 제사에 참여하는 마음가짐을 가지게 합니다. 정성스러운 성호경과 함께 하느님의 은총을 받고 누리는 미사성제에 참여하시면 좋겠습니다.

주님은 당신을 부르는 모든 이에게, 당신을 진실하게 부르는 모든 이에게 가까이 계시다.”(시편 145,18)

 

 

 

 

[전례 들여다보기] 전례 동작의 의미 : 고개와 허리숙임

 

스포츠 중계를 보면 우리나라 선수들과 외국 선수들의 인사하는 방법이 다른 것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대개 우리 선수들은 고개 혹은 허리를 숙이는 경우가 많은데, 외국 선수들은 다른 모습으로 인사할 때가 있습니다. 이것은 예법이 틀린 것이 아니라 나라마다 또 문화권마다 인사하는 방법이 다른 것입니다.

허리를 숙여 인사하는 것은 자신을 낮추고 상대방을 높인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타인에 대한 존경과 존중 혹은 반가움을 시각적이고 물리적으로 표하는 예절로서 우리나라에서 인사법으로 널리 사용됩니다.

성전에 들어서면 보통 성수를 찍고 성호경을 그으며 제대를 향해 고개나 허리를 숙여 인사합니다. 전례에서도 사용되는 이 동작은 장궤와 비슷한 의미를 지니는데, 하느님께 대한 공경을 표현하는 방법입니다. 외국은 친구(親口)1)나 한쪽 무릎을 꿇는 것도 전례에서 사용되지만 우리나라는 그런 문화가 없기에 이런 동작들을 허리 혹은 고개를 숙이는 동작으로 통일시켰습니다.(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 274항 참조) 이 동작이 언제, 어떻게 사용되는지에 대해 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 275항은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습니다.

절은 어떤 이나 그의 표상에 공경과 영예를 드림을 뜻한다. 고개를 숙이는 절과 허리를 굽히는 절 두 가지가 있다.

) 고개를 숙이는 절은 하느님의 세 위격을 한꺼번에 부를 때, 그리고 예수님이나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이름을 부를 때, 어떤 성인을 공경하여 거행하는 미사에서 그 이름을 부를 때 한다.

) 허리를 굽히는 절, 곧 깊은 절은 제대에서 전능하신 하느님, 제 마음과와 주 하느님, 진심으로 뉘우치는을 할 때, 신경에서 성령으로 인하여 동정 마리아 부분에서, 감사 기도 제1양식(로마 전문)에서 전능하신 아버지, 간절히 청하오니에서 한다. 마찬가지로 부제가 복음을 선포하기에 앞서 축복을 청할 때도 깊은 절을 한다. 그 밖에 사제는 축성 부분에서 주님의 말씀을 할 때 허리를 조금 굽힌다.

이외에도 입당 행렬을 하여 제단 앞에 이르렀을 때, 독서와 복음 낭독 전, 축성된 빵과 성작을 거양한 다음과 영성체를 하기 전에 깊은 절을 합니다.

고개와 허리를 숙이는 것은 하느님께 대한 합당한 공경을 드러내는 자리입니다. 이런 의미를 이해하여 필요한 때에 적절한 동작을 마음을 담아 해보면 좋겠습니다.

1) 공적인 전례 거행 중에 경의를 표해야 하는 대상이나 인물에게, 또는 평화를 나누기 위해 입 맞추는 것을 말합니다. 특히 미사의 시작과 마침 때 제대에 하는 친구는 환영과 작별의 인사로서 전례 거행의 시작과 마침을 알려 주는 행위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동작은 존경과 사랑을 표현하는 행위로서 성인 유해나 성화(Icon), 주교 반지에 대한 친구도 있습니다. 2차 바티칸 공의회는 전례 쇄신을 통해 친구 횟수를 축소하였고, 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에서 제대와 복음서에 대한 존경은 각 국가의 고유한 풍습과 정서에 따라 친구 대신 다른 동작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가톨릭 대사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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