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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례-미사, 예수님과 함께 드리는 기도 (3) 입당과 입당 노래

작성자은총의샘|작성시간26.06.14|조회수31 목록 댓글 0

전례-미사, 예수님과 함께 드리는 기도 (3) 입당과 입당 노래

 

미사 거행은 하느님의 백성인 신자들이 모인 다음, 사제가 부제와 봉사자들(복사와 독서자 등)과 함께 제단으로 나아가면서 시작됩니다. 이 행렬은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제대를 향해 나아갑니다. 사제와 봉사자들은 공동체를 대표하여 주님께 나아가기에 신자들도 마음으로 행렬에 동참하여 주님 대전에 나가야 합니다.

입당의 역사를 간략히 살펴보면, 미사가 개인 집이나 작은 건물에서 거행되던 4세기 전에는 입당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교황이 성직자들과 함께 행렬을 지어 성당으로 들어가던 형식이 주교나 사제 집전 미사에도 적용되면서 입당 행렬이 일반화되었습니다. 이는 성당의 크기가 커진 것이 한몫했고, 나중에 제의실이 제단 옆에 설치되면서 사제가 행렬 없이 제대로 나아가도 입당은 미사의 고정 예식이 되었습니다. 5세기 말까지 입당 행렬은 노래나 기도 없이 침묵 중에 거행되었습니다. 이처럼 침묵 속에 제대로 나아가던 흔적은 성금요일의 수난 예식 입당에 남아있습니다. 입당 노래는 교황이 미사를 거행하기 위해 성당으로 행렬할 때 부른 노래와 기도에 기원을 두고 있습니다. 교황을 환영하기 위한 노래와 기도가 점차로 주교의 성대한 입당 행렬에도 사용되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입당 노래 대부분 주례 환영가 또는 축제 시편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이 노래는 성가대나 독창자가 부르는 방식에서 점차 교우들이 함께 입당 대송(Antiphona)’을 부르는 형식으로 발전하였습니다. 이후 입당 시편이 그날 전례 시기나 축일과 관련된 시편으로 바뀌었고, 입당 시편의 첫 단어가 주일이나 축일의 고유 명칭이 되기도 했습니다.1)

입당 행렬에 따르는 노래는 미사 거행을 시작하고, 함께 모인 이들의 일치를 굳게 하며, 전례 시기와 축제의 신비로 그들의 마음을 이끌고, 그들을 사제와 봉사자들의 행렬에 참여시킬 목적을 가집니다.2) 입당 노래는 성가대와 신자들이 교대로 부르거나, 선창자와 신자들이 교대로 부를 수 있습니다. 또는 신자 전체가 부르거나 성가대만 부를 수도 있습니다. 입당 노래의 목적을 고려한다면, 신자들이 노래에 함께 참여하는 방식을 우선으로 선택해야 합니다.3) 다만 신자들과 함께 부르기 어려운 성가 - 전례가 거행하는 신비로 이끄는 - 의 경우에는 성가대만이 부르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입당 노래는 로마 성가집(Graduale Romanum)” 또는 소성가집(Graduale Simplex)”에 실린 따름 노래를 시편과 함께 부를 수 있고 주교회의나 교구장이 승인한 시편 모음, 따름 노래집, 성가집에 나오는 노래나 알맞은 전례 노래를 부를 수 있습니다. 입당할 때 노래를 부르지 않으면, “미사 경본에 실린 입당송을 신자들이나 해설자나 독서자가 낭송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주례 사제가 시작 예식을 이끄는 말을 하는 방식으로 사제 자신이 낭송할 수 있습니다.

입당 성가를 부르며 우리는 구원의 신비를 거행하기 시작합니다. 입당 성가가 전례 거행의 흐름을 방해할 정도로 길어서도, 너무 짧아서도 안 됩니다. 주례 사제와 봉사자들이 제대에 다다르면 성가가 자연스럽게 멈춰지고 구원의 신비 거행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입당 성가를 함께 부르며, ‘오늘우리 안에 이루어지는 구원의 신비를 만날 준비하시면 좋겠습니다.

주님을 찬미하여라, 주님의 모든 종들아 밤이 지새도록 주님의 집에 서 있는 이들아”(시편 134,1)

 

 

[전례 들여다보기] 전례 동작의 의미 : 장궤

 

미사 안에서 이루어지는 여러 동작이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조금만 해도 이 동작들은 금방 익숙해집니다. 하지만 처음 오는 사람들은 언제 일어나고 앉아야 하는지, 또 언제 나가고 들어와야 하는지 도통 알 수가 없어 눈치를 볼 때가 있습니다. 아마 몸에 익지 않았고 동작 안에 담긴 의미들이 생소해서 그러리라 생각합니다.

가톨릭 교회는 동작과 자세가 전례 거행의 여러 부분들이 지닌 참되고 완전한 뜻을 밝혀 주고, 모든 이가 거행에 참여하는데 도움이 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참여하는 모든 사람이 갖추어야 할 통일된 자세는 거룩한 전례에 모인 그리스도교 공동체 구성원이 이루는 일치의 표지로서 참여자들의 마음과 정신을 표현해 주고 길러준다고 밝히고 있습니다.(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 42)

직립 보행하는 인간이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자신을 낮추는 겸손의 표현이자 상대방에게 존경을 표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 누군가에게 용서를 청하거나 무언가를 간절히 바랄 때 취하는 자세이기도 하지요.

이런 의미가 전례 안에 들어와 있습니다. 무릎을 꿇는 행위를 통해 하느님께 합당한 존경을 표합니다. 그리고 하느님 앞에서 나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그분께 간절히 청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수난을 앞두고 겟세마니에서 아버지의 뜻대로 이루어지게 해달라고 청하시며 무릎을 꿇고 기도하셨습니다.(루카 22,41)

장궤(genuflexio)는 두 가지 형태가 있는데 두 무릎을 굽히고 허리를 펴는 행위를 일반적으로 장궤라 부르고 한쪽 무릎만 굽혀 곧게 자기 몸을 낮추는 것을 장궤인사라 부릅니다.

교회는 기본적으로 전례 중에 장궤할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사제는 빵과 포도주의 축성 다음에, 영성체 전에 제대 앞에서, 미사 시작 때와 마칠 때 오른쪽 무릎을 굽히는 장궤인사를 할 것을 규정합니다. 또 성체 현시 동안 성체께 공경을 표할 때는 장궤를 하고 파스카 금요일 전례에서 기도 지향을 말한 다음 사제나 부제(혹은 해설자)무릎을 꿇읍시다라는 말로 장궤를 유도하여 주님 수난을 묵상하도록 합니다. 또 고해성사 때 장궤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니케아 공의회 교부들은 부활 시기와 주일에는 주님의 부활 축제를 서서 거행할 것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일 제1 저녁기도부터 삼종기도 등을 바칠 때 무릎을 꿇지 않고 서서 기도하는데 이는 부활의 기쁨을 표현하는 행위이기 때문이지요.

한국 교회에서는 우리 문화와 건전한 전통에 맞게 바꾸어 허리를 숙여 절(깊은 절)하는 것으로 바꾸기도 했지만, 신자들이 하느님의 어린양을 노래한 다음 성체 분배 전까지 무릎을 꿇는 관습은 유지하는 것으로 결정했습니다.(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 43)

이처럼 장궤는 하느님께 대한 존경과 공경의 의미를 드러내고 우리의 부족함을 인정하며 그분께 기도하는 마음의 표현 자리입니다. 건강 등의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다면 하느님을 만나러 성전에 들어가고 머물 때 그리고 나오기 전에 장궤로 우리의 신앙을 표현해 보면 어떨까요?

 

 

[전례 일반과 미사의 Q&A] (59) 사순 시기에 다시 기억하는 재의 수요일

 

올해 재의 수요일은 218일이었습니다. 이날 우리는 재를 머리에 얹음으로써 사순 시기를 경건한 마음으로 시작하였고, 어느덧 시간이 흘러 사순 시기도 중반에 들어섰습니다. 어떻게 재의 수요일에 마음 먹었던 신앙적인 다짐과 기도는 안녕하신지요?

재의 수요일에 우리는 이러한 기도로 재를 머리에 얹었습니다. 그런데 재의 수요일 전례를 유심히 보신 분들은 이미 아시겠지만, 통상적으로 재를 얹을 때 두 가지의 기도문이 제시됩니다. 그 기도문은 아래와 같습니다.

사람아,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여라.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이 기도문은 사제가 재를 얹으며 선포하는 기도문이기 때문에 우리가 선택할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각 기도문은 그 분명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기도문은 사순 시기를 어떠한 마음으로 보내는지 일러주고 있습니다. 비록 재의 수요일이 지난 지 오래이지만, 아직 사순 시기를 걷고 있는 우리들에게 있어서 이 기도문은 어떠한 의미를 담고 있고, 나아가 사순 시기 동안에 우리가 기억해야 할 우리들의 마음가짐은 무엇인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첫 번째 형식은 교회의 오랜 전통에서 시작된 형식으로, 하느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에덴동산에서 내쫓으시면서 하신 말씀(창세 3,19)에 근거합니다. 이 형식은 인간이 아무것도 아니고 흙과 같은 존재라는 것을 명시적으로 보여주며 동시에 우리 자신이 장차 당하게 될 죽음을 미리 묵상하게 해 줍니다. 또한 인간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겸손하게 참회하도록 하는 형식이며 인간은 결국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로 삶과 죽음이 하느님의 손에 달려있음을 일깨우는 형식입니다.

두 번째 형식은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전도를 시작하시며 말씀하시는 것에(마르 1,15) 근거합니다. 예수님께서 공생활을 시작하시며 분명한 목적을 드러내십니다. 바로 많은 이가 회개하여 하느님께 돌아오고, 복음을 믿도록 하는 것입니다. , 사순 시기를 시작하며 재를 얹으며 이 구절을 선포하는 것은 우리 또한 참된 회개의 마음으로 예수님의 마음을 따라야 한다는 그 의미를 담고 있다는 점입니다. 나아가 참된 정화와 회개, 그리고 보속을 통해 파스카 신비를 준비하고 다시 하느님께로 돌아가자는 상징성을 담은 기도문이기도 합니다.

두 기도문은 분명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두 가지 양식 모두는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이가 겸손해야 하며, 특히 우리 모두는 죽음을 피할 수 없는 한계를 지닌 존재임을 상기시키고, 나아가 하느님과 인간의 화해를 위해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참회와 회개를 호소하는 의미를 갖습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사순 시기는 겸손우리들이 마주한 한계라는 십자가를 짊어지고 주님을 따르는 시기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마음가짐이 바로 회개와 참회로 이어집니다. 단순히 부활의 영광만을 바라며 기도하는 겉핥기식 신앙에서 벗어나, 나를 되돌아보고, 온 마음 다해 주님을 따라 나서는 우리들이 되기를 희망해 봅니다.

 

 

 

 

[전례 들여다보기] 미사보 : 신앙의 표현방식

본당에 있을 때의 일입니다. 첫 영성체 찰고를 하는데 남자아이가 자신도 미사보를 쓰고 싶다 하더군요.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예뻐서.” 한참을 설명했지만 또래에 비해 덩치가 컸던 그 아이는 미사보에 미련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미사보(velum)는 미사 때 여성 신자들이 머리를 가리는 천입니다. 보통 흰색과 검은색이 사용되는데 대부분은 흰색을 사용하고 장례 미사 때 검은 미사보를 사용합니다. 미사보는 종종 남녀 차별의 요소로 지적되는데, 이는 차별의 지점이 아니라 성경의 전통과 문화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머리를 가리는 것은 존경을 표현하는 하나의 행위입니다. 구약 시대에 여성은 머리를 가리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여성은 자신과 결혼하는 남자를 만나러 갈 때 커다란 베일로 얼굴을 가렸는데 자신이 미혼이라는 것과 상대를 존경한다는 것을 표현하는 방식이었습니다. 레베카가 남편이 될 이사악을 처음 만났을 때 얼굴을 가린 것(창세 24,65)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남자들도 하느님 앞으로 나아갈 때 얼굴을 가렸는데 모세와 엘리야가 그러했습니다(탈출 3,6; 1열왕 19,13)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모든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이시고 아내의 머리는 남편이며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느님이시라는 사실을 여러분이 알기를 바랍니다. 어떠한 여자든지 머리를 가리지 않고 기도하거나 예언하면 자기의 머리를 부끄럽게 하는 것입니다.”(1코린 11,3.5)

여성이 머리를 가리는 것은 하느님에 대한 경외와 존경을 표시하는 방법이라는 말입니다. 남자들에게 머리를 가리지 말라고 한 것은 당시 랍비 전통이 예배 때 머리를 가리지 말 것을 강조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유다인 남자들은 둥글고 납작한 키파(kippah)라 불리는 모자를 쓰고 기도합니다. 이를 통해 바오로 사도는 시대적 상황과 그 문화를 충분히 고려했는 것으로 유추할 수 있습니다. 차별이 아니라 차이를 말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리스도와 하나 되는 세례를 받은 여러분은 다 그리스도를 입었습니다. 그래서 남자도 여자도 없습니다.”(갈라 3,27-28)

미사보에 대한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성경의 전통이 이어져온 문화로서 하느님을 경외하고 존경하는 하나의 표현 방법이라는 것을 먼저 기억해 보면 좋겠습니다.

 

전례-미사, 예수님과 함께 드리는 기도 (2) 시작 예식

 

사람들이 함께 모여 거행하는 예식에는 시작을 알리고 그 의미를 드러내는 개회식이 있습니다. 비록 예식의 종류에 따라서 그 구성이나 내용이 조금씩 다르지만, 식을 여는 첫 부분은 참석자들이 하나가 되어 예식에 참여하도록 이끕니다. 교회의 공적 예배인 미사도 개회식과 비슷한 시작 예식이 있습니다. 말씀의 전례에 앞서 입당, 인사, 참회, 자비송, 대영광송, 본기도로 이루어진 시작 예식시작과 인도와 준비의 성격을 지닙니다. 그리고 이 예식들은 미사 거행에 참여하기 위해 한데 모인 신자들이 일치를 이루고, 하느님 말씀을 올바로 듣고, 합당하게 성찬례를 거행할 수 있도록준비시키기 위한 부분입니다. 전례서의 규범에 따라서 다른 예식과 함께 거행될 때, 시작 예식은 생략하거나 다르게 거행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부활 성야 미사, 재의 수요일 미사, 주님 수난 성지 주일 미사와 주님 봉헌 축일에는 참회 예절이 생략됩니다.1)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초대 교회 전례에는 시작 예식이 없었습니다. 2세기 유스티노 성인의 증언이나 3세기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의 기록에 따르면, 성찬례의 거행은 바로 독서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다 4세기에 종교자유가 보장되면서 성찬례의 거행 장소가 가정집에서 큰 건물인 바실리카로 옮겨갑니다. 그 결과로, 입당 행렬이 생겨나고 제단 앞에 성직자들이 엎드려 기도하는 예식 등 시작 예식이 점차로 형성되기 시작했습니다. 대부분의 시작 예식은 4세기에서 7세기 사이에 미사 전례 안으로 들어옵니다. 하지만 중세를 지나면서도 시작 예식은 개념이나 역할이 분명하지 않았고 일정한 규정도 확립되지 않았습니다. 지역 교회마다 비교적 자유로운 형태로 거행되던 시작 예식은 16세기 트리엔트 공의회 이후 비오 5로마 미사 전례서를 통해 완전한 형태는 아니지만 정비되었습니다. 이후 제2차 바티칸 공의회로 시작된 전례 개혁을 통해서 새 미사 경본 안에는1) 시작 예식이 그 내용과 형식을 명확히 갖추게 됩니다.2)

전례 개혁 이전 미사 전례 규정(Rubrica)사제가 준비되면 입당한다라고 규정했습니다. 하지만 새 미사 경본에는 교우들이 모인 다음, 사제는 봉사자들과 함께 제대로 나아간다라고 규정합니다. 이는 미사성제가 주례 사제 중심의 미사가 아니라, 하느님 백성이 모인 공동체 전체가 함께 거행하는 전례라는 사실을 명백히 보여줍니다. 미사 경본 총지침은 미사 거행의 여러 형태에서 공동체와 함께 거행하는 미사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사제 혼자 드리는 미사는 아주 특별한 경우에만 거행하도록 권고합니다. 미사의 시작 예식은 함께 모여 미사를 거행하는 공동체가 하나 되어 능동적으로 전례에 참여하도록 이끄는 예식입니다. 공동체와 인사를 나누고, 모인 이들과 함께 하느님과의 관계 안으로 들어가는 예식입니다. 어떤 마음으로 성당에 들어서고, 미사에 참례하시나요? 개인적인 삶의 무게에 눌려 혼자 외로이 하느님 앞에 서기보다는, 시작 예식을 통해 형제자매들과 함께 하느님 앞으로 나아가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새로운 힘을 얻는 미사 참례가 되면 참 좋겠습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마태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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