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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례 들여다보기] 거룩한 그릇 : 성작과 성반

작성자은총의샘|작성시간26.06.16|조회수37 목록 댓글 0

[전례 들여다보기] 거룩한 그릇 : 성작과 성반

 

미사 때 사용하는 전례 용구들을 제구(祭具)라 합니다. 제구에는 성작, 성합, 성반, 성작덮개, 성체포, 성작수건 등이 있습니다.

성작(calix)은 성찬 전례 때 포도주를 담아 봉헌하는 잔이고, 성반(patena)은 미사 때 축성될 제병, 특히 사제용 제병을 놓아두는 둥글면서도 약간 오목한 쟁반을 뜻합니다. 사제의 축성 기도로 제병과 포도주는 그리스도의 성체(聖體)와 성혈(聖血)로 변화합니다.

성작은 초대교회에서 가정교회의 특성을 반영하여 유리그릇을 사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후 구리, 청동, 천연 수정 등이 사용되다가 교회에 대한 박해가 종식된 후에는 금이나 은과 같은 귀금속을 주재료로 하고 다양한 보석을 사용하였습니다. 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성작은 단순하고 장식이 없는 형태로 바뀌었습니다.

거룩한 그릇은 고귀한 금속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 금속이 녹슬 수 있거나 금보다 덜 고귀하다면 적어도 안쪽은 도금을 해야 합니다. 특히 주님의 피를 담을 성작과 다른 그릇의 잔 부분은 물기가 스며들지 않는 재료로 만들어야 하며 받침대 부분은 단단하고 품위 있는 다른 재료로도 만들 수 있습니다.

아울러 주교회의의 판단과 사도좌의 승인에 따라 거룩한 그릇은 용도에 맞으면 그 지역에서 보통 고상하다고 여기는 견고한 다른 재료를 쓸 수 있는데 쉽게 깨지거나 부서지지 않는 재질을 골라야 합니다. 이런 이유로 우리나라에서는 칠보나 자개 같은 귀하고 값진 재료도 쓸 수 있습니다. (로마 미사경본 총지침 328, 329)

성찬 전례 중 감사기도 마지막에 사제는 성체가 담긴 성반과 성혈이 담긴 성혈을 들어 올리면서 마침 영광송(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을 바칩니다. 성작과 성반이 무엇인지 기억하며 거룩한 그릇 안에 계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면 좋겠습니다.

 

 

 

 

[전례 일반과 미사의 Q&A] (57) 서품식 때 대상자들이 엎드리는 이유는?

 

2026113. 대전교구 주교좌 대흥동 성당에서 사제서품이 거행됩니다. 올해는 2명의 새 사제가 탄생됩니다. 작년에도 서품식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부제서품, 사제서품을 설명하였었습니다. 올해는 특별히 많은 교우분이 감명받는 예식인 대상자들이 엎드리는 이유에 대해서 이야기 나눠보고자 합니다.

성품성사가 봉헌될 때, 대상자들은 제단 앞에 엎드리고, 주교를 포함한 모든 사제, 교우들은 장괘를 합니다. 동시에 이때 성인호칭기도를 봉헌합니다. 이러한 전례적 모습은 분명한 의미를 담고 있는 고귀한 예식입니다.

우선 대상자들이 엎드리는 이유는 하느님의 부르심 앞에 겸손함을 드러내는 가장 낮은자의 모습을 드러내는 표지입니다. 자신의 능력이 아닌 주님의 부르심에 따라 이 길을 걸어가겠노라는 다짐을 봉헌하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만큼 자신이라는 존재가 미약한 존재로서 비록 당신을 따르기에 합당치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명의 응답을 엎드림으로 봉헌하는 것입니다. 또한 자신을 포기하고 온전히 자신을 봉헌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 자세는 바오로 사도의 이 고백과 일맥상통합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육신 안에서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바치신 하느님의 아드님에 대한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갈라 2,20)

그리고 서품식에 참여한 모든 이가 성인호칭기도를 봉헌하고, 장괘를 하는 이유는 모든 성인의 전구를 청원하는 마음을 담는 예식입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성인에게 이 새로운 사제들, 봉사자들을 위해 기도해 주십사 전구를 청하는 기도이기도 합니다. 성인들은 이미 하느님 곁에서 영광을 누리는 이들입니다. 곧 새로운 사제직을 시작하는 후보자들이 그 영광의 길, 주님의 길을 잘 걸어갈 수 있도록 대신 기도해주기를 요청하는 예식입니다. 이로써 새로운 봉사직을 시작하는 이들이 그 기도를 통해 교회 전체가 주님께로 올바른 길을 걸을 수 있도록 해주십사 청하는 고귀한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정리하자면, 대상자들의 부복은 주님의 부르심에 겸손한 자세로 응답하고, 온전히 당신께 의탁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주는 자세입니다. 동시에 이 시간에 봉헌하는 성인호칭기도는 모든 성인에게 이 대상자들을 위해 기도해 주십사 전구를 청하고, 주님의 길을 올바로 걸어나갈 수 있기를 청하는 마음이 담긴 기도입니다. 거룩한 예식 안에 담긴 의미를 되새김으로써 우리도 합당한 지향을 들고 함께 기도했으면 합니다.

 

 

 

 

[전례 들여다보기] 감실 : 하느님 현존의 장소

 

성전에 들어서면 불이 들어오는 곳이 보입니다. 바로 감실(龕室)입니다. 감실 안에는 성체를 담은 성합이 있고 그 밑에는 성체포가 깔려있습니다.

이 단어는 유교에서 기제사의 대상이 되는 조상의 신주를 주독(主櫝)에 넣어서 모셔두는 시설을 뜻합니다. 불교에서는 시신을 화장한 후 나오는 뼈나 사리를 보관하는 작은 공간이나 함을 감실이라 했습니다. 우리나라에 신앙이 전파되면서 성체를 모셔두는 장소를 감실이라는 말로 번역하여 사용하고 있습니다.

감실을 라틴어 tabernaculum이라 하는데 천막, 초막을 의미합니다. 구약에서는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탈출하여 약속의 땅으로 가는 길에 하느님께서 스스로를 나타내시고 그들 가운데 머문 이동식 장소, 곧 성막(聖幕)을 뜻하는 말입니다(탈출 26). 이 성막은 솔로몬 시대에 이르러 성전으로 자리 잡습니다.

초대교회 때는 박해의 위험이 늘 있었으므로 안전을 위해 성체를 집안에 모셨습니다. 그러다 313년 박해가 끝나고 신앙의 자유를 누리게 되면서 성체를 성당에 모셔두다가 8세기경부터는 제단에 모시게 되었습니다.

감실은 임종을 앞둔 사람들이나 병자들을 위한 성체를 보관하고, 성체 안에 현존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공경하게 하기 위해 마련되어 있습니다. 그렇기에 성체가 보존되는 성당은 매일 적어도 몇 시간 동안 신자들이 성체 앞에서 기도할 수 있도록 개방되어야 합니다.(교회법 제937)

성체가 보존되는 감실은 성당이나 경당 안에서 눈에 잘 띄는 뛰어난 곳에 아름답게 꾸며져 기도하기에 적합하게 설치되어야 하며(교회법 제938) 감실 앞에는 그리스도의 현존을 표시하고 현양하는 특별한 등불이 항상 켜져야 합니다.(교회법 제 940)

아울러 감실은 견고하고 불투명한 재료로 만들어 고정시키고 잠가 놓아 모독의 위험이 최대한 예방되어야 하며 성당이나 경당을 관리하는 사람은 성체가 보존되는 감실의 열쇠를 잘 보관하도록 늘 준비해야 합니다.(교회법 제 940)

미사 전과 후 그리고 일상 중에 잠시라도 시간을 내어 감실 안에 계신 예수님을 만나보면 어떨까요?

 

 

 

 

[돋보기] 위령기도 해설 (6) 위령기도를 노래로 바치는 이유

 

1. 인간 생활과 종교 예식의 필수 요소인 음악

몇 가지 지식과 기술만으로 풍요로운 삶을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생존에 필요한 학문과 기량뿐 아니라, 기예(技藝)도 다양하게 습득할 때 삶은 더욱 넉넉해집니다. 고대 중국의 예서인 주례(周禮)는 교육의 기본을 예(: 예법), (: 음악), (: 활쏘기), (: 말타기), (: 글쓰기), (: 수학) 등을 일컫는 육예(六藝)에 두었습니다. 예기(禮記)는 다른 요소들과 함께 음악을 인간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요소라고 가르쳤습니다.*

종교 예식에도 음악은 필수 요소입니다. 무당이 혼자 굿할 때는 무가(巫歌)만 부르지만, 큰굿에서는 무당의 노래뿐 아니라 악사의 반주와 춤까지 어우러집니다. 스님 혼자 목탁을 두들기며 독경(讀經)하기도 하지만, 큰 재()에서는 찬불가, 악기 연주, 춤이 하나가 되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룹니다. 종묘제례악(宗廟祭禮樂) 역시 노래, 악기 연주, 춤이 총체(總體)가 되어 죽은 왕의 넋과 산 이들이 만납니다. 이처럼 종교 예식에서 음악의 역할은 절대적입니다. 가톨릭교회도 기도하거나 미사를 비롯한 전례를 거행할 때 노래로 주님을 찬미합니다.

 

2. 노래로 기도하는 것은 교회의 전통

굳건한 부활 신앙을 간직한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죽음을 영원한 생명에 참여한다는 의미로 천상 탄일(天上誕日)이라고 불렀습니다. 교부 시대에는 죽은 이를 위해 시편, 찬미가와 함께 후렴을 노래했습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성가는 두 배의 기도입니다.”라고 할 만큼 음악이 기도와 전례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강조했습니다.

8세기 이후부터 임종이 가까워지면 함께 모인 모든 이가 시편을 노래했으며, 임종하는 순간에는 성인호칭기도를 노래로 합송(合誦)했습니다. 운명하면 시신을 성당으로 운구해 안치한 다음 성무일도를 바치고 장례미사를 봉헌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시편을 노래하면서 묘지로 행렬해 시신을 안장했습니다. 이처럼 노래로 위령기도를 바치는 것은 교회의 오랜 전통입니다.

 

3. 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가르침

2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회의 모든 구성원이 함께 모여 주님에 관한 기록을 읽고, 그분 죽음의 승리와 개선을 재현하는 성찬례를 거행하고, 동시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이루 말할 수 없는 선물을 주시는 하느님께 감사드리고, 성령의 힘으로 하느님의 영광을 찬양하라.”고 가르쳤습니다(전례 헌장, 6 참조). 이와 함께 온 교회의 음악 전통은 특히 말씀이 결부된 거룩한 노래로서 성대한 전례의 필수 불가결한 부분을 이루고 있다. 성음악은 기도를 감미롭게 표현하거나, 한마음을 이루도록 북돋아 주거나, 거룩한 예식을 더욱 성대하고 풍요롭게 꾸며 준다.”(전례 헌장, 112 참조)라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기도하거나 미사를 비롯한 전례를 거행할 때 할 수 있다면 노래로 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이와 함께 예규의 규범과 규정에 따라 거룩한 신심행사들에서 그리고 바로 전례 행위 안에서 신자들의 목소리가 울려 퍼질 수 있도록, 대중 성가를 적극 장려하여야 한다.”(전례 헌장, 118)라면서 교회 구성원이라면 누구나 노래로 기도할 수 있도록 쉬운 노래로 만들 것을 요청했습니다.

4. 누가 위령기도를 노래로 하는가?

우리 민족이 노래를 좋아하기 때문에 위령기도를 노래로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한민족이 노래를 즐긴다는 주장은 맞지만, 그런 이유만으로 위령기도도 노래로 해야 한다는 말은 타당하지 않습니다. 노래로 위령기도를 바치는 민족이 우리 외에는 없거나 극히 적어야만 그 주장이 맞는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노래로 위령기도를 바치는 것은 가톨릭교회의 오랜 전통이고, 그 전통을 중국이나 한국교회뿐 아니라 다른 나라 교회도 충실하게 따랐을 뿐입니다. 지역의 환경이나 정서에 맞게 위령기도의 세부(細部) 내용이나 순서를 적절히 선택하고 근본정신을 훼손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 개변(改變)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가톨릭교회의 근본정신과 형식에서 온전히 벗어나는 지역교회는 없다는 점을 간과하면 안 될 것입니다.

5. 상장 예식은 우리 것

상장 예식은 우리나라 교회가 우리 민족의 관습과 정서가 밴 우리말과 가락으로 거행하게 하는 장례 예식서입니다. 그런데 상장 예식을 두고 전제하는 우리라는 단어가 내포하는 범위에 한국 땅, 한국인, 한국교회라는 묶음만 있습니까? 오늘의 상장 예식과 지난 시절 100년 이상 사용한 텬쥬셩교례규의 발생원인과정내용구성 등을 우리가 포함하는 범위를 기준으로 따져보면 최소한 두 가지 차원에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우리 민족을 지칭할 때의 우리와 우리 가톨릭교회를 지칭할 때의 우리입니다. 텬쥬셩교례규상장 예식은 우리나라 교회가 우리 관습과 정서를 반영한 우리말과 가락으로 편찬한 예식서라는 점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다른 나라 교회에는 없고, 오직 우리나라 교회에만 있는 기도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는 점도 사실입니다. 대부분 보편교회가 편찬한 예식서의 기도들을 우리말로 번역했거나, 우리 환경에 맞게 덧붙이고 빼거나 약간 변형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텬쥬셩교례규Rituale Romanum(로마 예식서)을 한문으로 번역편찬한 聖敎禮規(성교례규)를 비롯한 중국교회의 기도서예식서 내용을 발췌하고, 우리나라의 관습을 고려해 한글로 엮은 것입니다. 상장 예식도 최민순 신부의 받으시옵소서를 제외하면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에 간행한 Ordo Exequiarum(장례 예식서)을 번역하고, 우리나라의 장례 환경을 고려해 편찬한 장례 예식서입니다. 따라서 텬쥬셩교례규상장 예식을 두고 말하는 우리에는 우리나라또는 우리 민족우리우리 가톨릭교회우리가 결코 떨어질 수 없도록 함께 엮여 있습니다.

상장 예식은 분명히 우리 땅에서 우리나라 교회가 우리 관습과 정서가 밴 우리말과 가락으로 구현하는 우리의 장례 예식서입니다. 그러면서도 성경 말씀과 가톨릭교회 장례의 정신과 내용 그리고 형식 등에서 벗어나지 않은 우리 가톨릭교회의 장례 예식서라는 점에서도 분명히 우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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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써 그 백성의 뜻을 이끌고, ()으로써 그들의 소리를 조화롭게 하며, 정치로써 그 행동을 통일시키고, 형벌로써 그들의 간사함을 막는다. 예악형정(禮樂刑政)의 목적은 한 가지인데 백성의 마음을 하나로 하고 바른 정치를 실행하는 것이다(禮記, 樂記).

 

 

 

 

 

전례-기도하는 교회 (19) 성찬례 : 예수님과 함께 드리는 감사기도

 

복음에서 성찬례’(Eucharistia)는 일차적으로 예수님께서 최후 만찬 중에 하신 기도를 뜻합니다. 그리고 시대가 흐르면서 예수님께서 세우신 예식 전체를 일컫는 표현이 되었습니다. 사실 마태오 복음(26,26)과 마르코 복음(14,22)은 빵을 축성하시며 하신 기도를 축복의 기도(“찬미를 드리신 다음”)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대교의 관습에 따라서 빵을 들어 축복하셨습니다. 여기서 축복은 하느님께서 사람에게 베푸시는 은총과 자비를 뜻합니다. 동시에 하느님께 받은 은총에 감사하며 인간이 드리는 찬미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Eulogia(축복)성찬례를 부르는 이름으로도 사용하였습니다. 하지만 마태오 복음사가와 마르코 복음사가는 빵을 축복하신 다음 잔을 들어 감사를 드리신 다음”(마태 26,27; 마르 14,23)이라고 기록함으로써, 축복의 기도를 감사의 기도라고 지칭합니다. 바오로 사도와(1코린 11,24 참조) 루카 복음사가도(루카 22,17 참조) 예수님의 기도를 감사드린다’(eucharistein)라는 동사로 표현함으로써 ‘Eulogia’‘Eucharistia’, 곧 유대 전통의 축복기도를 예수님의 감사기도로 바꿉니다.

최후의 만찬 중에 예수님께서 하신 기도를 감사기도로 표현하면서, 초대 교회는 빵과 포도주를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화시키는 이 기도의 새로움을 강조하고자 했습니다. 이제 예수님의 말씀과 기도로 유대교의 파스카 만찬이 아니라 성체와 성혈이 우리에게 양식으로 주어지는 성찬례가 이루어집니다. 또한 이 새로움은 기도에 담긴 태도에도 있습니다. 유대교의 축복기도에는 하느님의 초월성과 전능하심을 높이 기리는 찬양의 태도가 담겨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감사기도는 하느님께서 이루신 놀라운 일에 대한 단순한 찬미와 찬양을 넘어서 인간에게 베푸시는 주님의 자비와 구원에 응답하는 태도가 담겨 있습니다. ‘감사는 자비와 사랑을 베푸시는 하느님께 받은 것을 조금이나마 돌려 드리는 태도입니다. 예수님께서도 감사의 마음에 이끌려 지극한 효심으로 성부의 사랑에 응답하는 삶을 사셨습니다. 그리고 감사의 삶을 통해서 예수님께서는 당신 제자들도 하느님께 받은 모든 것에 대해서 찬미와 감사를 드리도록 이끄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감사기도안에서 성령의 현존 또한 인식해야 합니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성령 안에서 기쁨에 넘쳐서 성부께 감사를 드리십니다(루카 10,21 참조). 성령께서는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성부께로 이끄시며 일치시키시는 이십니다. 은 숨으로서, 예수님 안에 하느님께 기도하는 열정과 효심을 불러일으키십니다. 또한 성령을 통하여 예수님의 십자가상 희생 제사는 성부께 봉헌됩니다(히브 9,14 참조). 이제 예수님의 감사기도는 성령 안에서 봉헌과 하나가 됩니다. 이처럼 성령 안에서 감사는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하는 것이고, 우리의 감사는 성령의 도우심으로 예수님께서 바치신 구원의 희생 제사 안에서 주님의 봉헌에 하나가 됩니다.

성찬례는 단순히 성체 성사를 지칭하는 이름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성찬례안에서 성부께 감사한 마음으로 당신을 봉헌하셨고, 당신을 따르는 이들도 감사와 봉헌의 삶을 살아가기를 바라셨습니다. ‘성찬례안에서 우리는 구원의 은총을 베푸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만나게 됩니다. 이 사랑은 모든 시련과 고통 속에서 우리와 함께하시고 악에서 구하시는 하느님을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바라보도록 초대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과 함께 응답하는 봉헌의 삶을 살아가게 합니다. 이처럼 우리가 거행하는 성찬례곧 미사성제는 우리가 구원의 신비를 만나고 살아가는 원천이며 정점입니다. 거룩한 성찬례를 통하여 구원의 신비를 만나고 깨닫고 살아가는 감사의 나날을 보내시면 참 좋겠습니다.

 

 

 

 

 

[전례 일반과 미사의 Q&A] (56) 2026년의 전례력 소개

 

130일 대림 제1주일을 시작으로 2026년 전례력이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는 보통 대림 1주일부터를 새해로 맞이합니다. 그래서 세상의 시간보다 한 달 정도 빨리 한 해를 맞이합니다. 오늘은 2026[가해] 전례력에 대해서 소개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대림 시기를 지내고 성탄을 맞이한 후 성탄 시기 중 중요한 대축일로, 주님 공현 대축일은 1월 첫 번째 주일에 맞이합니다. 주님 공현 대축일은 보편교회 전례력에는 16일이지만, 의무 축일이 아닌 곳에서는 12일과 8일 사이에 오는 주일에 지내기에, 우리 한국교회에서는 2614일에 지내게 됩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오는 주일은 주님 세례 축일로서 26년도에는 주님 공현 대축일 일주일 뒤인 주님 세례 축일을 기념합니다. 그리고 성탄 시기를 마무리하고, 112일부터 연중 제1주간 월요일로 연중 시기를 시작합니다.

26년 사순 시기는 재의 수요일인 218일에 시작합니다. 217일까지 연중 시기로 봉헌하다가, 재의 수요일부터 본격적인 사순 시기를 시작합니다. 그런데 올해는 특이한 점이 바로 설 연휴 마지막 날과 재의 수요일이 겹친다는 점입니다. 2016년도에도 이와 같은 경우였는데, 그때에는 교구장 주교님의 명으로 재의 수요일 미사는 당일 봉헌하되, 단식과 금육은 다른 날로 옮겨 시행하도록 권하였었습니다. 이번에도 교구에서 특별한 지침을 지시할 예정입니다.

성주간이 시작되는 주님 수난 성지 주일은 사순의 여섯 번째 주일로서 329일입니다. 그리고 일주일 뒤인 45일이 주님 부활 대축일입니다.

이외에도 전례력 상에서 눈에 띄는 특징은 바로 2025년 정기 희년, “자비의 특별 희년의 폐막과 관련된 부분입니다. 20241224일에 개막하였던 정기 희년은 2616(로마교회는 의무 축일로서 주님 공현 대축일을 16일에 봉헌)에 폐막합니다. 이에 지역 교회, 곧 우리 대전교구는 251228일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에 주교좌 대흥동 성당에서 폐막미사를 봉헌합니다.

2026년의 전례력에 대해서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수동적으로 다가서는 전례력이 아닌 늘 깨어 준비하는자세로 전례력을 능동적으로 의식하고, 주님의 발걸음과 맞춰 걸어나가는 우리들이 되기를 희망해 봅니다.

 

 

 

 

 

[전례 들여다보기] 제대 : 위치와 모습

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에 지은 성당(: 성 유스티노 신학교 경당, 가실성당 등)에 가면 제대가 벽에 붙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공의회 이전에 사제는 신자들을 등지고 라틴어로 미사를 봉헌하였고 신자들은 전례에 능동적으로 참여하기보다 수동적으로 참석했습니다.

현대 세계로의 적응”(Aggiornamento)을 기치로 개최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통해 많은 것이 변화되었습니다. 교회는 모든 신자가 전례 거행에 의식적이고 능동적이고 완전한 참여를 하도록 인도되기를 간절히 바라는데, 이것은 전례 자체의 본질에서 요구됩니다. “선택된 겨레, 임금의 사제, 거룩한 민족, 하느님의 소유가 된 백성인 그리스도인은 세례의 힘으로 그 참여에 대한 권리와 의무를 가집니다.(전례헌장 14)

공의회 이후 미사 때 모국어를 사용할 수 있게 되어 하느님의 백성은 전례에 능동적으로 참여합니다. 제대도 벽에서 떨어져 사제와 신자 사이에 위치하게 되었었는데, 사제는 제대 둘레를 쉽게 돌 수 있고 교우들을 바라보며 미사를 거행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로마 미사경본 총지침 299) 제대가 상징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공동체의 중심에 모신다는 의미가 고스란히 표현되고 있습니다.

교회는 제대가 고정되어 있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이야기합니다. 살아있는 돌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더 분명하게 지속적으로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고정제대의 윗부분은 돌로, 곧 자연석으로 만듭니다. 하지만 주교회의의 판단에 따라 품위 있고 튼튼하며 정성 들여 마련한 다른 재료로도 만들 수 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고정 제대의 윗부분을 고상하고 튼튼한 나무를 잘 다듬어 만들 수 있습니다.

나아가 거룩한 거행을 위하여 봉헌된 곳이 아닌 다른 장소에서는 이동제대를 쓸 수 있는데, 고상하고 튼튼하며 해당 지역의 전통과 관습에 따라 전례 용도에 알맞으면 어떤 재료로도 만들 수 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로마 미사경본 총지침 298, 301)

이런 이유로 제대는 어떤 곳은 돌로 어떤 곳은 나무로 되어 있습니다. 또 이동이 가능한 제대가 있는 곳도 있습니다. 제대 위치의 의미와 그 모습을 바라보며 전례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예수님을 마음에 담아보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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