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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교회의 가르침] (18) 「여성의 존엄」 (1) 여성의 존엄한 정체성·소명에 관한 ‘사랑의 편지’

작성자은총의샘|작성시간26.06.17|조회수36 목록 댓글 0

[현대교회의 가르침] (18) 여성의 존엄(1)

여성의 존엄한 정체성·소명에 관한 사랑의 편지

 

마리아의 해, 성모 승천 대축일에 발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사도적 서한, 여성의 존엄(Mulieris

Dignitatem, 1988. 8.15)은 마리아신학자인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앞서 발표한 회칙, 구세주의 어머니(Redemptoris Mater, 1987)에서 마리아를 통해서 성숙한 교회의 미래를 준비하려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간절한 사목적 지향과 마리아 안에서 전망하는 인간과 교회의 지평에서 시작한다. , 순례하는 교회에게 구세주의 어머니21세기에 나아갈 새로운 길의 지평이며 나침반이라면, 여성의 존엄은 세상과 교회를 감싸 안고 생명의 힘으로 북돋우는 여성의 존엄한 정체성과 소명에 관해 사랑이 가득한 마음으로 쓴 편지이다.

어머니이신 마리아에게서 교회와 여성의 모델을 확인한 교황이 현대 세계의 여성들에게 보낸 교황의 편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관점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복음의 기쁨에 이르는 연관성 안에서 문헌의 자리를 매김하는 것이 필요하지만, 그럼에도 마리아에게 드린 자녀의 사랑으로 세상의 모든 여성들에게 전한 교황의 사랑의 편지가 어떤 빛과 향기를 품고 있는지 그 내용을 읽어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다.

 

I. 서한의 구성과 내용

1. 서론-시대의 징표 / 마리아의 해

2. 여인-하느님의 어머니 (Theotokos)

하느님과 일치 / 하느님의 어머니 / “섬기는 것은 다스리는 것

3. 하느님의 모상과 닮은꼴

창세기 / 인격-통교-선물 / 성경의 용어: 의인화(擬人化)

4. 하와-마리아

시작과 죄 / “그가 너를 지배할 것이다” / “첫 복음

5. 예수 그리스도

제자들이 돌아와 예수님께서 여자와 이야기하시는 것을 보고 놀랐다” / 복음의 여성들

간음하다 잡힌 여인 / 복음 메시지의 수호자들 / 부활의 첫 증인들

6. 모성-동정

여성의 소명이 지닌 두 가지 차원 / 모성 / 계약적 관계 안에서 모성 / 하늘 나라를 위한 동정

성령에 따른 모성 / “또다시 함께 산고를 겪어야 할 나의 어린 자녀들

7. 교회-그리스도의 신부

위대한 신비” / 복음적 쇄신” / “위대한 신비의 상징적 차원 / 성체성사 / 신부의 내어 줌

8. “그 가운데에서 으뜸은 사랑입니다

변화의 물결 앞에서 / 여성들의 존엄과 사랑의 경륜 / 사명의 인식

9. 결론-“너에게 말하는 이가 누구인지 알았더라면

 

차례에서 볼 수 있듯이 여성의 존엄은 체계적인 교의를 가르친 것이 아니라, 오랜 동안 마음에 품고 있던 깊은 정을 드러낸 연서이다. 요한 바오로 2세가 교황이며 사목자이기 이전에 하느님의 사랑과 신비를 깊이 경험한 신학자로서, 그의 인격을 담아서 세상의 모든 여성들에게 쓴 사랑의 고백이며 애절함의 탄원서인 것이다. 또는 여성을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된 존재로 드러낸 창세기의 전승과, 여성들과 더불어 하느님 나라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던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는 제자인 현대의 신비가가 자신과 함께 살고 있는 현대의 여성들에게서 새롭게 발견하는 어머니 마리아의 향기를 고백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온 세상에 스캔들처럼 회자되고 격렬한 토론의 단초가 된 지극히 개인적인 이 서한을 찬성하거나 비판하기 이전에 체계적이지 않고, 계획된 목적이 없이 쓰여진 서한의 내용을 조명하고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선 서한은 마리아 해의 정점인 성모 승천 축일을 기념하여 쓰여졌다. 부성이 가득한 노년의 교황은 마리아의 이름을 빌어서 현대의 여성들에게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까?

첫째, “복음의 정신으로 무장한 여성들이여, 이 시대는 그대들의 위대한 공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이다. 바티칸공의회의 <사목헌장><평신도 사도직에 관한 교령>에서 정리된 것을 확인하며, 성녀 예수의 데레사와 시에나의 카타리나에게 교회박사의 칭호를 드린 바오로 6세의 공헌을 언급하면서, 신약성경에서 이미 드러난 여성들의 잠재적인 역량이 여전히 선명하게 부각되지 못하는 상황에 대한 안타까움과 미안함을 우선 밝힌다. 그러기에 교황은 교회와 사회 안에서 여성들의 능동적인 현존이 어떻게 가능한지 규명할 것을 약속한다.

둘째, “여성들이여, 하느님의 어머니 마리아의 전통으로 돌아오라!”이다. 마리아의 해를 맞이하여 바티칸공의회의 <사목헌장> 8장에 포함된 나자렛의 마리아, 그리스도의 구원의 신비에 참여한 여인, 교회의 신비 안에 현존하는 하느님의 어머니에 관해, 그분과 인류 사이의 예외적인 연결에 관해 보다 더 깊은 통찰을 함으로써 그 신비전통이 갖는 의미와 성격을 실현시키려는 의지를 표현했다.

셋째, “여성들이여, 마리아의 이름으로 존엄한 여성들의 전통을 회복하자!”이다. 당신의 모습을 따라 남자와 여자로 사람을 지으신 창조의 진리가 그리스도의 강생 안에서 비로소 온전한 의미를 드러내는 것을 기억할 때, 창조와 강생의 신비를 잇는 그 특별한 자리에 마땅히 계시는 마리아가 인류에게 여성의 존엄과 소명을 일깨우는 그 함의를 묵상하고 그 성격이 어떠한 것인지를 증언하려는 것이다. 그러면 연서의 내용을 보다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서한이 조명하는 마리아는 구세주의 어머니에서 이미 보았듯이 복음서에서 드러나는 그 모습이 묵상을 통하여 모성을 가진 동정녀로서 드러나며, 잠재적 어머니인 처녀들의 존재론적 차원을 다양하게 조명하고, 복음의 빛에서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위대한 신비사건에 참여하는 상징적 차원에 자리하고 있다.

마리아는 예언자들에게 이야기하시던 하느님이 때가 찼음에 그를 부르심을 알아듣고 계시의 정점을 이루는 결정적인 계기에 참여하여, 결국은 하느님의 강생에 참여한 여인이다. 오랫동안 이스라엘의 딸들이 메시아의 탄생을 기다렸다면, 마리아는 그 메시아의 탄생이 하느님의 강생으로 이루어지는 역사적 실현에 참여한 것이다(3). 인간으로서 자발적으로 하느님께 자신을 드림으로써 여성적 자아의 가치와 존엄성을 살렸을 뿐 아니라, 인간에게 다가온 하느님의 은총을 받아서 완성시키고 승화한 것은 주님의 종으로서 정체성을 가졌던 그리스도에게 일치하며 인격적 존재의 원형을 드러내 보인 것이다. 따라서 여성들은 주님의 종으로서 여성의 존엄한 정체성을 갖고 마리아가 실현한 이 소명의 지평을 벗어나서 자신의 자리를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마리아의 존엄과 소명을 통해서 여성을 이해하는 서한은 여성으로 대표되는 인간의 원형 안에서 신적인 창조 사업에 동참하는 여성과 함께 남성들도 포괄한다(8). 마리아는 지극히 높으신 분이 자신에게서 이루신 그 큰일(루카 1,49)을 찬양하는 노래를 불러서 마니피캇의 전통을 교회에 심었다. , 마리아는 새롭게 시작하는 그리스도 교회의 첫 복음이며 패러다임이 된 것이다(11). 하느님이 인간 여성과 더불어 새로운 역사를 시작했다면, 그의 아들이신 예수는 여성들과 더불어 기쁜 소식을 전파한 분이다. 그를 따르는 제자들 중에서 그보다 더 여성들과 가깝게 친교를 맺었던 이를 찾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예수는 여성에게서 태어난 사람으로서, 여성을 독립적인 인격으로, 대화의 상대로, 복음선포를 함께할 동반자로 우선적 선택을 하였다. 그의 부활 이후 초기교회에서도 여성들이 남성들과 함께 활동한 것은 신약성경의 여러 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 여성은 하느님의 섭리 안에서 사회적 신분이나, 결혼을 하거나 하지 않은 것과 상관없이 교회 안에서 남성들과 함께 동등하며 자신의 고유한 소명에 불리운 존재이므로, 남성과 여성은 서로에게 돕도록 위탁된 존재임을 인식해야 하는 것이다(14-15).

또한 그리스도는 교회를 한 몸이며, 신부로 사랑하며 교회는 그리스도에게 지체로서 복종하며 섬겨야 하지만, 남성과 여성 사이에서는 지배와 복종이 아닌 동반자로서의 존엄함과 배려가 상호교환 되어야 한다. 이렇듯 여성들은 하느님 백성 전체의 사도적 사명에 참여해왔고, 교회는 그들의 활동과 순교를 통해 신앙을 지켜온 것을 칭송해왔다. , 사회적 차별을 넘어서 여성들은 그리스도와의 일치 안에서 자유롭게활동했고 위대한 전통을 이룬 것이다. 한편 그리스도인의 모델로서 여성들이 보여준 사랑과 헌신은 신랑에 대하여 신부의 사랑이 어떻게 실현되어야 하는지 그 모델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27).

현대의 물결 앞에서 여성들이 이루어낸 복음적 전통은 하느님 자신의 생명력 안에서 성령과 더불어 사랑의 인격적 실체로서 이루어낸 사랑의 경륜을 드러낸다. 이는 창조주의 생명력 실현이란 관점에서 사랑이 존재론적이고 윤리적인 차원에서 인격을 통해서만 소통될 수 있기 때문이다(29). , 창조주는 인간 여성의 윤리적이고 영적인 힘이 여성 고유의 능력임을 신뢰하며, 모든 인류를 맡기시므로 여성의 소명은 인간적인 감수성을 가진 영적 소명이라는 특별한 방식에 의해서만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그리스도가 여성들에게 기대하는 것은 왕적 사제직인 것이다(30).

그러므로 여성들은 온전히 자신을 내어줌으로써 스스로를 되찾을 수 있는 존재이며, 여성들의 실존은 하느님의 강생과 구원 사건을 실현하는 길이 되었다. 여성들의 존재론적 능력은 성령의 도움을 받아 우리시대의 공동선을 위해서도 유익하게 사용될 수 있을 것이다. 성경에서 증언하는 것처럼 마리아가 이룬 신비를 묵상하면서 여성들은 여성의 고유한 특성 안에서 이루어낼 수 있는 최상의 소명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31).

교황의 서한은 이렇듯 마리아의 이름으로 성숙한 여성들이 현대 사회 안에서 지극한 존엄함을 유지하면서 그 소명을 실천하는 것이 가능하며, 인격적-영적 성숙 안에서 위대한 전통을 이어갈 것을 격려하는 것으로 맺는다.

 

 

 

 

[현대교회의 가르침] (19) 여성의 존엄(2)

마리아 이름으로 여성 존엄 일깨우며 교회 위임

 

II. 서한의 신학적-사목적 배경

사도적 서한 여성의 존엄은 앞서 발표된 회칙 구세주의 어머니와 뒤이어 발표된 교회와 세계에 있어서 평신도의 소명과 사명에 관한 사도적 권고 평신도 그리스도인(1988. 12.30)과의 연관성 속에서 그 맥락을 이해할 수 있다. 왜냐하면 가톨릭 교회 안에서 여성은 구세주의 어머니 마리아의 전통 안에서 자신의 정체성과 소명을 찾을 수 있는 평신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평신도에 관한 바티칸공의회의 입장을 간략하게 살펴보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평신도에 관한 권고를 확인해보자.

 

1. 2차 바티칸공의회에서 성찰한 평신도의 소명

2차 바티칸공의회의 교회에 관한 교의헌장 인류의 빛에서 교회의 신비에 관해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그리스도의 신부로서의 정체성을 갖는다(7). 그러므로 세례를 받은 모든 그리스도인은 어디에서나 그리스도를 힘차게 증언하고 자신들이 간직하고 있는 희망을 설명해야 하는 보편 사제직 안에서 그리스도의 유일한 사제직에 참여한다. 나아가 평신도들은 성찬의 봉헌에 참여하여 거룩한 삶을 증언하고, 극기와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사제직을 수여한다고 밝혔다(10).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평신도 그리스도인에서 새로운 계약에 의해 뽑힌 하느님의 새로운 백성인 교회는 그리스도의 사제직, 예언자직, 왕직에 참여하여 이 세상을 복음화하여야 하는 평신도들의 소명과 사명을 일깨우며, 평신도들이 집단으로든 개인으로든 자신의 은사와 책임을 더욱 깊이 의식하고 증진하도록 권고한다. , 평신도들은 그리스도의 예언자직과 왕직에 참여하여 이 세상에서 활동하도록 부르심을 받았으며, 단순히 세상이라는 포도밭에서 일하는 일꾼일 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말씀하신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요한 15,5)란 표현처럼 그들 자신이 포도원의 일부가 되는 것이라고 가르쳤다.

 

2. 마리아의 전통 안에 있는 여성의 정체성

복음서를 통해서 알 수 있듯이 마리아의 전통은 성령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하느님이 인간이 되시는 사건에 참여한 것에서 시작한다. 여성으로서 마리아는 창세기에서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된 인간의 정체성을 토대로 하느님의 구원 경륜에 참여함으로써 처녀에서 어머니로 존재의 변화를 이루었고, 성화된 인간의 모습을 드러내었다. 또한 예언적 사명을 실현하여 그리스도의 탄생이라는 특별한 소명을 실현하였다(29-30). 이렇게 측정할 수 없는 하느님의 신비는 인간의 역사 안에서 그리스도 예수의 모습으로 드러났으며, 따라서 여성은 교회의 원형이며 어머니인 나자렛 마리아의 모범을 따라 남성과 더불어 존엄하고 자유로운 주체로서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고 성숙한 사랑의 경륜 안에서 특별한 소명을 이룰 수 있는 존재인 것을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나아가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그리스도의 신부라는 여성적 정체성 속에서 그리스도의 탄생을 가능하도록 매개하는 소명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갖는다.

 

III. 서한의 인간학적-신학적 배경

바티칸의 교황 경당인 <구세주의 어머니>의 한 면을 차지하는 성령 강림의 장면에는 부활하고 승천하신 그리스도 아래에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를 중심으로 예수의 제자들이 자리한 초기 교회의 모습을 알려준다. 그리고 그 왼쪽에는 바오로 사도가, 오른쪽에는 에디트 슈타인 십자가의 베네딕타 성녀가 자리하고 있다. 희년을 맞이하며 꾸며진 새 경당에서 교황은 2000년전 탄생하는 그리스도 교회의 신학적 토대를 만든 바오로 사도와 함께, 3천년기 교회의 인간학적 방향을 제시한 에디트 슈타인을 소개하였다. 유다계 그리스도인, 철학자, 봉쇄 가르멜의 수도자, 아우슈비츠의 순교자인 그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복녀, 성녀, 유럽 복음화를 위한 수호성녀로 선포하였다. , 에디트 슈타인은 여성의 존엄을 이야기하는 교황의 신학적 인간학의 이상을 온전히 대변할 수 있는 인물이라 할 수 있으며, 그의 신학적 작품들 안에서 현대 여성이 마리아와 함께 수립할 영적 전통의 성격을 가늠할 수 있다. 그의 사상 안에서 마리아의 모습을 성찰해보자.

에디트 슈타인의 작품에서 마리아는 하느님의 계획에 동참하는 이로서 하느님의 어머니, 인류의 영적인 어머니이며 여성성의 완전한 모델로서 그의 철학과 신학의 정점으로 표현된다. 처녀이신 어머니 마리아의 모습은 영혼의 여성성과 그리스도의 신부로서의 여성성을 동시에 드러낸다. 그 나자렛의 처녀가 Fiat(자발적인 긍정의 응답)을 발설하는 순간 하느님의 나라가 이 세상에 시작되었다. 신이 인간 안에, 인간이 신 안에 있게 된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하느님의 나라에 참여하는 바로 그것이다. 하느님의 섭리에 따른 마리아의 응답에서 성령에 의한 그의 수태가 가능해졌다. , 처녀에서 부인으로, 이어서 어머니가 되는 순환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 신비는 매번 인간의 구원과 하느님의 나라를 향해 실현된다. 성령의 오심을 맞이했던 처녀는 태어나는 교회의 중심이 되었다. 나자렛에서 숨겨진 가운데 드렸던 마리아의 그 응답은 이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측정하는 잣대가 되었다. 나아가 인간의 보편성에 자리한 여성성의 이콘인 나자렛의 마리아에게서 인류의 새로운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루카 1,26-38).

에디트 슈타인은 나자렛 마리아의 모습에서 그 주체적인 결단에 주목한다. 말씀을 품어 안는 주체, 공경 받아 마땅한 하늘의 여왕이기 이전에 아들 예수의 제자들에 둘러싸여 기도하는 주체이며, 성찬에 참여하는 주체로서의 모습이다. 하느님의 어머니로서 마리아는 실제로 인간의 실존에 신적 참여가 이루어지는 순간, 말씀을 품어 안음으로써 그의 특별한 소명에 일치하는 고유한 정체성을 드러낸다. , 하느님과 공감하는 대화의 한 주체로서, 또한 여성으로서 아버지 하느님께 드리는 사랑의 응답을 통하여 구원의 새로운 역사를 이루는 성령의 활동에 참여했던 마리아의 전통 안에서 교회는 그 일치의 역동성을 지속적으로 실현하며 그리스도의 탄생을 이루어낼 수 있는 것이며, 마리아의 자발적 선택에 의한 모성이 자연적이고 초자연적인 두 지평에서 동시에 실현된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처음 죄를 지었을 때 여성이 먼저 참여했다면, 인간의 구원이 시작될 때에도 여성의 참여와 함께 그 시작이 이루어졌고, 나아가 여성은 하느님의 어머니로 고백되기에 이르렀다. 이렇듯 진정한 모성은 자연적인 것과 초자연적인 것이 동시에 이루어질 때, 즉 인간의 영혼이 그리스도의 영으로 가득 채워져서 그의 자녀를 잉태할 때 모성의 정점에 이르게 된다. 이렇게 나자렛의 마리아는 그의 자발성을 근거로 자유로운 선택에 의해 육체적, 정신적, 영적 어머니의 원형으로서 모든 남녀 그리스도인들의 모범이 되었으며, 신적인 사랑으로 가득 채워진 영혼은 여성과 남성의 구별을 떠나서 다른 이를 향해 흐르는 애정이 넘쳐나는 심장을 가진 사람이기를 지향한다. 사랑이 넘치는 영혼은 동시에 자유로운 선택을 통하여 하느님과의 일치에 이르게 된다.

나아가 말씀이 사람이 되신 그리스도교적 함의를 성찰하고 수용할 때 추상적인 진리는 삶 안에서의 인간적인 가치로 전환되고, 그 가치의 수용이라 할 수 있는 신앙고백의 순간에 보편적 함의는 살아있는 개별자의 지평으로 열리게 된다. 이렇게 아래로부터의 믿는 이의 관점(Sensus fidelium)은 마리아에서 시작하여 신학적 인간학의 토대이며, 역동적인 신학의 중심축으로서, 인간과 문화의 가치에 열려있고 인간구원에 관심하는 인간의 본질적 지향성과 일치하며, 신비신학의 관점에서 삼위일체와 인간이 맺는 역동성에 일치하게 된다. , 자유로운 인격적 주체가 신적 존재와 소통함에 있어 개별자의 자유와 의지를 바탕으로 응답하는 그 자리에 바로 인간실존의 진리가 자리한다.

나자렛의 마리아는 전 존재의 열림과 헌신을 통해서 본질적으로 열린 인간의 본래 모습을 보여준다. 그의 응답은 한 처음 인간의 창조에서 발설된 삼위의 일치에 대한 기억이며, 그 일치를 담아낸 인간존재의 본질과 창조된 것의 아름다움을 함께 기억하는 것이다: 철학적 피앗(Fiat)이 삼위일체적 인간의 피앗(Fiat)이 되었다. 마리아를 이해하는 것은 인간의 본질과 삶의 진리를 인식하는 것이며, 하느님의 종으로서 위대한 일을 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다.

이렇게 에디트 슈타인은 진리의 빛 아래 나자렛의 마리아와 함께 말씀이 사람이 된 진리를 성찰하고 응답하였으며, 그의 삶은 사랑에 불타는 떨기 나무아래에 머무는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아우슈비츠에서 십자가의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것으로 완결되었을 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에 참여하는 현대 여성의 사명을 완성한 것으로 평가되었다.

 

IV. 서한의 실천적 전망

서한이 발표 되었을 때, 많은 이들은 교황이 여성의 존엄에 알맞는 지위, 즉 여성의 사제직을 거론하지 않은 것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25년이 흐르고, 보다 더 성숙한 그리스도교 인간학의 관점에서 볼 때, 교황의 서한은 놀라운 성찰을 기반으로 전적으로 새로운 전망을 제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마리아의 모범을 따라 복음의 전통을 확인할 때, 가부장제 사회 안에서 이천여년 동안 힘겹게 적응해온 교회가 가부장제 이후의 사회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복음을 선포할 수 있도록 마리아의 이름으로 새로운 인간상을 대표하는 여성들에게 그 존엄함을 일깨우며, 전적으로 교회를 위임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이 서한을 읽어낼 수 있는 숨겨진 열쇠라고 하겠다

 

 

 

 

[현대교회의 가르침] (20) ‘평신도 그리스도인’ (1)

평신도, ‘행동하는 신앙의 복음 선포자로 파견

 

2차 바티칸공의회는 가톨릭교회 역사상 평신도의 사명을 새롭게 정립한 대사건이었다.

교회는 곧 교계제도’(Hierarchia)라는 것에서 교회는 하느님 백성’(De Populo Dei)이라는 것으로 이해하면서 하느님 백성은 평신도와 교계제도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평신도 교령을 통해 그 정체성을 분명히 하였다. 특별히 평신도를 규정하는 두 가지 특징으로서 평신도는 더 이상 교회의 구원 대상일 뿐만 아니라, ‘세상, 곧 속된 세상에 존재하는 교회 자신이다라는 평신도의 교회성현세의 일을 하고 하느님의 뜻대로 관리하며, 하느님의 나라를 추구한다는 평신도의 세속성을 강조하였다(교의헌장 31).

공의회에서 정의한 이런 평신도의 정체성을 토대로 그의 사명에 대한 지속적인 논의는 이후 계속해서 진행되었다.

공의회 폐막 10주년을 맞이하여 복음화를 주제로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제3차 정기총회(1974)에서는 교회의 본성인 복음화사명에 대한 온 교회의 임무를 촉구하면서 세상 속에서 특별한 성소를 지니고 광범위한 분야에서 복음화 활동을 하는 평신도들에 대해서 강조하였다. 여기에서 온 교회라 함은 주교들과 사제들, 그리고 모든 신자들이라고 총회 후속 권고문헌인 현대의 복음 선교에서 분명히 밝히고 있다.

1987101~30일 로마에서 개최된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제7차 정기총회는 다시 한 번 평신도의 사명에 대해서 논의하는 자리가 되었다.

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20년을 지낸 교회와 세계에서 평신도의 소명과 사명을 주제로 열린 총회에서 평신도들은 마태오 복음에 나오는 포도밭의 일꾼들로 표현된 하느님 백성으로서의 성소를 강조하였다. 여기에 참가한 시노드 교부들은 끊임없이 공의회 가르침을 참고할 만큼 평신도에 관한 공의회의 가르침은 대단히 새롭고 현시성을 담보한 실천적인 것이었다. 공의회 이후, 교회 안팎에서는 계속해서 여러 형태로 평신도 운동들이 일어났고, 교회와 세상에서 평신도의 사명에 대한 인식은 날로 성숙하고 확장되어갔다.

요한 바오로 2세의 권고 평신도 그리스도인은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제7차 정기총회 후속 문서로 나온 것으로서, 공의회 이후 평신도에 관한 교회의 일관적이면서도 적극적인 우리 안의 양들에 대한 신분을 확고히 하고, 교회의 본질적인 사명에서 그 책임이 결코 적지 않다는 것을 천명한 문헌이다.

평신도 대헌장이라고도 불리는 이 문헌은 평신도에 대한 교회와 세상 안에서의 존재행동을 말하고 있다. 그것을 함축하여 크게 네 가지로 정리하여 말하고 있는데, 그것은 교회와 세상에서 평신도의 존엄성과 참여, 선교하는 교회에서 평신도의 공동책임과 교육이다.

 

1. 평신도의 존엄성

포도밭의 일꾼들로 묘사된 평신도 그리스도인들은 단순히 포도밭에서 일하는 일꾼만이 아니라 그들 자신이 포도밭의 일부이기도 하다는 전제 하에 주님께서 친히 그들을 부르시어,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복음 선포와 증언의 사명을 주시며, 그들을 통해 현대 세계 안에 존재하는 다양한 상황과 문제들에 직면하게 하신다고 강조하고 있다(8~9).

평신도는 교회에 속해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자신이 바로 교회이기도 하다는 분명한 의식을 통해 세례성사로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 난 모든 지체들이 같은 존엄성를 가지고, 같은 자녀의 은총을 누리며, 똑같은 완덕의 소망을 지닌다(교의헌장 32)고 하였다. 다시 말해서 세례성사의 공통된 존엄성으로 인해 평신도들은 교계와 더불어 교회의 사명에 대해 더욱 공동책임자가 되는 것이다.

그들의 가장 큰 사명은 주어진 삶의 환경과 처한 상황에서 그리스도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가시적으로 증거 하는 것이다. 세례와 그리스도인 생활의 새로움을 통해 하느님의 자녀가 되어 그리스도 안에서(10~11) 그분과, 또 그리스도인 상호 간의 신비적 일치로 한 몸을 이루는 가운데(12) 그 자신 성령의 살아 있는 성전이 되어(13) 예수 그리스도의 사제직, 예언자직, 왕직에 참여하는 것이다(14). 이것이 세례에서 나오는 은총과 존엄성의 새로운 측면인 것이다.

그러므로 세례를 통해 친교의 생명력으로 그리스도의 소유가 된 사람들이라는 품위는 평신도를 사제와 수도자로부터 따로 분리시키지 않으면서 또 다른 측면에서 그들의 신원을 분명하게 구별지어 주는 생활양식이 된다.

공의회는 이런 생활양식을 세속적 성격이라고 적시한 바 있다. 평신도들은 세속 안에서, 각자 주어진 온갖 세상 직무와 일 가운데 연구하고 노동하며, 사회의 일원으로서, 문화계 등의 구성원으로서, 전문 직업인으로서 교우 관계를 형성하고 삶의 증거로서 믿음과 희망과 사랑으로 빛을 밝혀 그리스도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분명히 보여주는”(15)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세속에서 살아가는 평신도의 존재와 활동은 인간학적·사회학적인 실체만이 아니라, 특별히 신학적이고 교회적인 실재이기도 한 것이다(15). 이것이 평신도가 교회 안에서 갖는 지위이자 존엄성인 것이다. 그래서 성 레오 대교황은 , 그리스도인이여! 그대의 존엄성을 깨달으십시오!”라고 했던 것이다. 주님의 포도밭에서 일하도록 부르심 받은 일꾼들의 존엄성은 책임을 지닌 존엄성으로서 하느님의 구원 계획이 모든 시대의 모든 사람에게 세상 어디에서나 더욱 더 널리 가 닿도록 노력해야 하는 빛나는 과제인 것이다(16~17).

 

2. 평신도의 참여

공의회 이후 교회와 세상에서 평신도의 참여는 여러 차원에서 진행되었다.

사제, 수도자, 평신도들 사이에서 이루어진 적극적인 협력의 새로운 방식들에서부터 시작하여 각종 평신도 운동과 사회참여의 형태들을 통해서 드러났다. 전례와 말씀 선포와 교리교육 분야에서 능동적인 참여, 다양한 봉사와 임무, 단체·협회·영성운동들의 발흥이 그 사례들이다. 여기에는 남녀 모든 평신도들의 활기찬 투신과 사회발전을 위한 적극적인 참여가 있었다.

21세기, 교회는 물론 사회, 경제, 정치, 문화 분야에서 일어나고 있는 많은 새로운 상황들은 갈수록 평신도들의 행동을 절실하게 촉구하고 있다. ‘아무도 하는 일 없이 빈둥거려서는 안 된다고 강력하게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급격한 사회변화와 현대세계의 각종 우상들에 직면하여 현대인들의 취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평신도의 능동적이고 의식적이며 책임 있는 교회생활의 참여는 교회 공동체 안에서 끊임없이 성령의 새로운 바람()을 일으킬 수 있는 동력이 된다.

평신도의 교회생활 참여는 구체적으로 신앙생활을 소홀히 하거나 포기한 냉담교우들과 비신자들을 향한 선교 열정을 다시 일깨우고(27), 본당 공동체를 친교의 공동체로 만드는 것으로 나타나고(20), 사회생활 참여는 형제자매들의 생활조건과 노동, 곤경과 희망에 완전히 동참하고(28), 다원적이고 분화된 사회 상황에서 사회적 주체로서 교회의 사회교리에 따라 인간의 전인적 존엄성에 봉사하고 투신하도록 한다(29~30).

그러므로 평신도의 행동하는 신앙은 다양한 공동체와 환경에 복음의 정신을 불어넣고, 인간 사회에서 교회의 현존을 증거하며, 정의로운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참여와 연대의 효과적인 통로가 되는 것이다.

 

 

[현대교회의 가르침] (21) ‘평신도 그리스도인’ (2)

복음화 되는동시에 복음화 하는평신도 돼야

 

1978년부터 26년의 재임 기간 동안 104차례에 걸쳐 129개 국을 방문하며 세계인의 사목자로서 현장을 직접 접하고, 그들의 상황을 잘 알게 된 성 요한 바오로 2세는 행동하는 교황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그가 내 놓은 회칙들은 대부분 현장의 목소리가 그대로 반영되어 지금까지 조명되지 못했던 하느님 백성들’, 그 가운데서도 평신도, 여성, 청년 등에 대한 사목적 관심을 드러내고 있다.

사도적 권고 평신도 그리스도인’(Christifidel es Laici, 1988)은 이렇게 나온 그의 순례하는 회칙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평신도 그리스도인에서 그는 오늘날의 교회 상황에서 평신도가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과제들에 대해 집중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거기에는 선교임무의 자각, 영성적 ? 교리적 ? 사회적 양성의 필요성, 공적생활에서 평신도들의 책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전제에 따라 지난주에 이어 사도적 권고에서 강조하고 있는 바를 살펴보기로 하자.

 

3. 평신도의 공동책임

교회의 선교사명은 그 자체의 본성에서 비롯되고, 그리스도께서 원하신 바, “하느님과 이루는 깊은 결합과 온 인류가 이루는 일치의 표징이며 도구이기에 교회의 본질과 보편 사명을 가진 신자들이 온 세상에 명백하게 선언하고자 하는 것이다.”(교의헌장 1) 이 사명은 사람이 되신 하느님의 아들이 세계의 역사 안에 도입하신 새로운친교를 모든 사람이 알게 하고, 또 그 친교 속에서 살아가게 하려는 목적을 지니고 있다.

모든 평신도는 각자 성직자들과 남녀 수도자들과 더불어 세례에서 흘러나오는 하나의 존엄성에 힘입어, 교회의 사명에 책임감 있게 동참해야 하는 것이다. 관련하여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아직도 교회를 편파적으로 이해하고, 교계와 동일시하려는 경향은 하느님 백성의 공동 책임과 공동 사명을 망각하는 것”(2009년 로마교구대회에서 한 연설 중)이라고 질책하였다.

회칙 평신도 그리스도인에서 평신도들은 교회 자체의 제일 과제인 복음 선포에 참여하고, 이를 통해 신앙 공동체를 건설함으로써 하느님의 말씀을 온전히 지키며 신앙을 고백하고, 성사들 안에서 신앙을 경축하며, 그리스도인의 도덕적 실존 원리인 사랑으로 신앙을 실천한다”(33)고 하였다. 평신도들은 교회의 구성원이라는 이유 때문에 복음 선포의 소명과 사명을 지니며, 그리스도의 사제직과 예언자직과 왕직에 적극 참여함으로써 교회생활과 세상활동에서 가장 먼저 복음화 되는 동시에 복음화 하는 존재로 거듭나는 것이다.

복음화를 통해 교회는 세상이 제기하는 다양한 문제들과 희망에 대한 가장 확실하고 유일한 해답을 줄 수가 있고, 평신도들은 교회가 따라 걸어야 하는 일차적이고 근본적인 길인 인간과 인간 집단인 사회에 봉사하는 생활 복음화의 주체가 된다. 평신도들은 인간의 존엄을 증진하고, 인류사회의 결속을 강화하며, 일상 활동에 보다 깊은 의미와 중요성을 부여함으로써 세상에 빛을 주는 것이다. 인류가족에 대한 봉사의 과업은 교회 전체가 책임을 져야 하는 일이지만, 평신도들은 특유의 세속성때문에 특별한 위치에서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고유한 방법으로 현세 질서에 그리스도의 정신을 불어넣을 수가 있는 것이다(36). 여기에서 평신도 직무의 다양성이 강조되는 것이다. 인간 존엄성의 증진(37), 불가침의 생명권 존중(38), 양심의 자유와 종교의 자유에 대한 권리(39) 등 절대 가치들의 수호에서부터 교계와 협력하는 새로운 양식을 발견하고, 교회와 사회에 대한 다양한 형태의 참여와 연대를 모색하는 것이다.

인간에 대한 봉사를 평신도들의 고유하고 특별한 임무로 생각하고 그것을 평신도의 일차적인 과제라는 전제하에 특별히 문헌에서 강조하는 평신도의 사명은 정치생활경제생활에 관한 언급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점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점차 확장된 평신도의 사명에 대한 교회의 촉구이자, ‘사랑의 고차원적인 형태로서 정치에 대한 교회의 시선이며, ‘봉사하는 경제구조에 대한 구체적인 요구라고 할 수 있다. , 정치와 관련하여, “인간과 사회에 봉사한다는 의미에서, 현세질서에 그리스도 정신을 불어넣어야 할 자신의 의무를 성취하고자 평신도들은 정치참여를 결코 거절하지 말아야 합니다”(42)고 천명하고 있다. “정부, 의회, 지배 계층이나 정당의 인사들이 출세 제일주의, 권력에 대한 우상 숭배, 이기주의, 부패 등으로 비난받는다고 하여, 그리고 정치 참여는 의심할 여지없이 도덕적으로 위험하다는 일반적인 견해가 있다고 하여, 정치 생활에서 그리스도인의 역할에 대한 회의주의나 포기가 결코 정당화될 수는 없습니다는 것이다. 이것은 공동선을 추구하고, 정의를 수호하며 증진하기 위한 평신도들의 중대한 책무이기 때문이다. 경제와 관련하여, 경제와 노동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우려할 만한 변화 속에서 평신도들은 매우 심각한 여러 가지 문제들을 해결해 내는 일에 앞장서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실업문제, 노동권과 노동쟁의권, 노동의 현장에서 인간 존엄성의 문제, 연대성, 교역과 금융, 기술교류 체제의 재검토 등에서 앞장설 것을 촉구하고 있다(43). 이런 목적을 위해 전문적인 역량과 인간적인 정직성,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무장한 평신도들이 많이 나와 자기 성화의 길로서 노동을 수행하고, 그 안에서 그리스도의 현존을 드러내기를 바라는 것이다.

 

4. 평신도의 교육

그리스도인은 탄생하는 것이 아니라 되어가는 것이다”(Cristiani non si nasce ma si diventa, 테르툴리아누스)라는 초대 교부의 격언은 성인 입교자가 월등하게 많은 우리시대 한국의 역사와 문화적인 상황에서는 새삼스러울 것이 없다고 할 수 있다. 전통적인 가톨릭 국가들에서도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다원주의가 확산되고 더 이상 태중 교우라는 말이 무색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회칙 평신도 그리스도인은 이렇게 다원화된 주님 포도밭과 거기에서 일하는 일꾼들의 자질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을 잊지 않으면서, ‘일꾼 만들기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다. 포도밭을 형성하는 인류가 가진 다양한 은총과 더불어 그것들을 관리하는 충직한 관리인의 소명의 다양함도 함께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단 한 사람도 예외가 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듯 성인 남녀에 앞서 젊은이들, 어린이들, 그리고 노인들에 대해서 먼저 이야기하고 있다.

젊은이들은 교회의 희망으로서, 특별히 복음화의 주역이자 사회 개혁의 참여자로 교회를 대신하여 행동하는 사람이 될 것을 주문하고 있고(46), 어린이들은 주님에 대한 전적인 신뢰의 힘으로 살아가고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데 필요한 본질적인 도덕적·정신적 조건들을 밝혀주는 웅변적인 상징이며 고귀한 표상이라고 칭하고 있다(47). 노인들은 특유의 지혜의 은총을 통해 교회와 사회 안에서 신앙의 전통에 대한 증인이 되어 주고, 인생의 교훈을 가르쳐 주는 스승이 되며, 사랑의 장인이 되어 준다고 강조하고 있다(48).

특별히 시노드 교부들이 관심을 갖고 강조했던 여성의 지위와 역할에 대한 언급은 이 회칙이 갖는 또 다른 의미라고 할 수 있다. 성 요한 23세에 의해 여성의 공적 생활에 대한 참여를 시대의 징표로 보았음을 상기하며, 남녀평등을 수호하고 신장하는 일의 절박함을 강조한 것이다(49). 그리고 이를 위한 조건으로서, 인간학적이고 신학적인 토대에 대한 깊고 정확한 통찰(50), 교회와 세계 안에서의 사명(51), 남성과 여성의 공동 현존과 협력을 위한 노력을 들었다(52).

가정에서부터 시작된 다양한 형태의 공동체와 그 안에서 구현되어야 하는 사랑의 다양성은 평신도들의 다양한 소명들을 통해 표현되고, 이는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위격적 친교를 드러내는 표지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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