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 들여다보기] 제대 : 성전의 중심
성전에 들어서면 고개를 숙여 인사합니다. 그 인사가 향하는 곳이 제대인지 감실인지 혹은 십자가인지 궁금할 때가 있습니다. 게다가 신자석과 구별되는 한 장소에 모여 있기에 의문이 가중되기도 합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인사가 향하는 곳은 제대입니다. 이는 제대의 중심성을 강조한 것이지 감실과 십자가의 의미를 절하시키는 것은 결단코 아닙니다.
제대는 제단 안에 있습니다. 제단(presbyterium)은 미사가 봉헌되는 제대, 감실, 사제석 등이 마련된 성당의 앞부분을 가리킵니다. 제단에는 오르기 위한 단이 있어야 하는데, 거룩한 공간으로 구분하기 위해서입니다. 구약성경에서 제단은 하느님의 부르심과 인간의 만남을 상징하며 하느님과 계약을 맺은 장소였습니다.(창세 8,20.12,7 참조)
제단 안에 하느님의 백성이 시선을 집중할 수 있는 곳에 제대가 위치합니다. 제대(altare)는 라틴어 ‘altus(드높인)’에서 유래하는데, 하느님과 인간이 결합하기 위해 사용되는 ‘드높인 자리’라는 뜻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제대로 내려오시고 인간은 제대를 향합니다.
일찍이 암브로시오 성인은 제대에 대해 “제대는 그리스도의 성체를 나타내고, 그리스도의 성체는 제대 위에 계신다.”라고 이야기했고 초대 교회의 교부들은 “그리스도께서는 제물이시고 사제이시며 당신 자신을 바치시는 제사를 위한 제대이시다.”라고 고백하였습니다.
교회는 “제대는 십자가의 희생 제사가 성사적 표지로 재현되는 곳이며, 미사에 모인 하느님 백성이 다 함께 참여하는 주님의 식탁이다. 또한 제대는 성찬례로 이루어지는 감사 행위의 중심이다.”라고 공식적으로 가르치며 제대의 중심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 296항)
제대는 신앙의 원천이자 정점인 성체성사가 거행되는 자리이자 하느님과 하느님 백성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곳이며 교회의 정체성을 그대로 드러내는 성당의 중심입니다.
제대에 담긴 의미를 기억하면서 성전에 들어가고 나올 때 혹은 머물면서 예수님을 마주하는 마음으로 인사를 드리고 제대를 바라보면 좋겠습니다.
[전례 일반과 미사의 Q&A] (55) 생미사에 대해서
우리는 세상을 떠난 분들을 위한 미사를 위령미사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살아 있는 이들, 동료나 가족들의 축일이나 생일 때, 또는 감사미사를 봉헌할 때는 우리는 흔히 “생미사”라는 단어를 사용하곤 합니다. 생일 때, 축일 때, 또는 환자를 위해서, 또는 어느 특별한 날이나, 특별한 상황에 대해서 미사 봉헌 중에 함께 기억해 달라고 미사를 봉헌하곤 합니다. 이러한 미사를 보통 생미사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생미사는 어떠한 의미를 가질까요?
우선 가톨릭 사전에 나와 있는 “생미사”의 의미를 알아봅니다.
가톨릭 사전 : 살아 있는 이를 위하여 드리는 미사. 그러나 파문 받은 자는 여기에서 제외된다. 신자들은 보통 가족·친지의 본명 축일이나 생일을 맞아 축하미사로, 또는 어떤 일에 대해 특별히 감사를 드리기 위한 감사미사로, 기타 특별한 은혜를 청하기 위해 미사예물을 바쳐 생미사를 드린다.
이 의미에서 알수 있듯이 살아 있는 이를 위한 미사를 말합니다. 그리고 이 미사 안에, 감사미사나 특별한 은혜를 청하는 미사 등이 포함됩니다. 그러나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점은 파문 받은 자는 여기에서 제외된다는 점입니다. 교회법에 의거하여, 신앙인으로 합당한 자세를 갖추지 않은 이를 위해서는 미사를 봉헌할 수 없다는 점은 우리가 유의해야 합니다. 물론 이 말을 통해서 비신자를 위해서는 미사를 봉헌할 수 없는가라는 궁금증이 생길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한국 천주교 사목지침서 제84조 1항에서 사제는 “천주교 신자뿐 아니라 세례 받지 아니한 사람을 위하여서도 미사 지향을 두고 미사를 집전할 수 있다”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곧 교회법에 의거하여, 신앙과 교리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여 파문된 사람을 위해서는 미사 봉헌이 어렵지만, 비신자는 우리 한국 천주교 사목 지침서에 의거하여 미사 봉헌을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미사 지향을 받았을 경우, 감사기도 중에 반드시 이름을 넣어야만 한다는 이야기를 하시는 교우들이 계십니다. 이는 전례적으로는 올바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로마 미사 경본을 보면, 위령미사를 봉헌할 경우, 이름을 넣어 부르게 허용하고 있지만, 생미사의 지향을 넣을 수 있는 부분을 따로 명시해 두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오로지 사목구 주임의 사목적인 판단에 의한 것이지, 반드시 이름을 넣어야 하는 전례법적인 요소는 없습니다. 그렇기에 감사기도 중에 지향을 넣어주고, 넣어주지 않는 것을 가지고 논쟁할 여지는 없습니다.
누군가를 위해 기도해 주는 것이 사랑이라면, 누군가를 기억하며 드리는 미사가 우리에게는 또 다른 사랑의 모습일 수 있습니다. 무슨 의미가 있겠냐는 마음보다는 서로가 서로를 기억하며 봉헌하는 미사를 통해 사랑의 모습으로 나아가는 우리들이 되기를 희망해 봅니다.
[알기 쉬운 전례 상식] 새로 발행된 장례 미사?!
얼마 전 ○○ 본당의 전례 봉사자가 성당 밖에서 죽은 이를 위한 미사를 준비할 때마다 무척 힘들다며 물었다. “신부님∼, 죽은 이를 위한 미사를 준비할 때 제대 위에 어떤 것을 올려놓아야 하나요? 「로마 미사 경본」? 「장례 예식」? 「장례 미사」? 또 어떤 신부님은 십자 성호를 긋는 것부터 시작하여 미사 통상문 시작 예식의 모든 요소를 바치시고, 어떤 신부님은 미사 시작 예식의 다른 부분들을 생략하고 본기도를 바치시는데 어느 쪽이 맞나요?”
장례 미사는 보통 성당 밖에서 거행하는 경우가 많다. 사실 교황청 경신성사성의 요청에 따라 라틴어 표준판과 일치시켜 발행한 「장례 예식」(2018년)은 미사 통상문과 독서 등이 수록되어 있지 않아 사목자들이 성당 밖에서 죽은 이를 위한 미사를 거행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이에 한국천주교주교회의는 예외적으로 「장례 미사」(2019년)를 발행하여 성당 밖에서 미사를 거행하는 사목자들의 불편을 없애고 편리하게 활용하도록 하였다. 「장례 미사」 통상문에는 고유 기도문과 독서를 해당 자리에 한두 개씩만 싣고, 자유로이 선택할 수 있는 다른 기도와 독서는 「로마 미사 경본」(2017년)과 「미사 독서」(2016년)와 「장례 예식」(2016년)에서 해당 부분을 발췌하여 사목 자료로 활용하도록 하였다. 그리하여 사망 소식을 들은 다음 성당 밖에서 미사를 거행할 때 「장례 미사」 기도문을 쓰는 일이 없도록, “사망 소식을 들은 뒤에 드리는 미사 기도문”(「장례 미사」 IV)의 상황을 단수와 복수로 예시하였고, 첫 기일 미사 때 쓸 수 있는 기도문(「장례 미사」 V)도 수록해 놓았다.
또한 “한국 교구들에서는 천재지변이나 부득이한 사정으로 유골만 있거나 시신이 없는 경우에도 고별식을 거행할 수 있다. 이 경우 기도문은 알맞게 바꾸어 적용하고, 유골도 없는 경우에는 성수 뿌림과 분향은 하지 않는다.”(「장례 예식」 10항)고 정하였으므로, 현행 「장례 미사」 에는 유골도 없이 거행하는 고별식과 그 마침 예식도 실어 놓았다. 장례 미사에 이어 매장 예식이 있으면 영성체 후 기도가 끝난 다음, 미사의 마침 예식을 생략하고 고별식을 거행하지만(「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 384항 참조), 유골도 없어 운구 행렬이 나가지 않는 경우에는, 고별식 뒤에 보통으로 미사를 마칠 때처럼 적절히 마침 예식을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입당 후 「장례 미사」의 시작 예식은 미사 거행에서 보통 하던 대로, 곧 “장례 미사는 다른 모든 미사와 같은 방식으로 거행한다.”(「주교 예절서」 832항) 예전에는 사제가 제대에 인사한 후에 시작 예식의 다른 부분들을 생략하고 본기도를 바치는가 하면, 주일에는 대영광송과 신경을 생략하고 미사를 거행하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그러나 성당 밖에서 거행하는 「장례 미사」에서 주례 사제는 십자 성호를 긋는 것부터 시작하여 미사 통상문 시작 예식의 모든 요소를 생략하지 않고(특히 주일에는 자비송, 대영광송, 신경 포함) 장례 미사를 거행해야 한다.
장례 미사 때 시신을 성당에 안치할 때, 적절하다면 죽은 이가 전례 회중에서 지닌 위치에 따라 옛 풍습대로, 평신도는 얼굴이 제대를 바라보도록 발을 제대 쪽으로 놓으며 고별식이 끝나면 관의 방향을 돌려 시신을 운구한다. 성직자는 얼굴이 교우들을 바라보도록 발을 교우들 쪽으로 놓으며 고별식이 끝나면 그대로 시신을 운구한다. 교우들이 제대의 십자가를 잘 볼 수 있으면, 관 옆에 다른 십자가를 놓지 않으며, 시신의 머리 쪽에는 파스카 초를 켜 놓는다.
[전례 일반과 미사의 Q&A] (54) 연미사? 위령미사? 장례미사? 기원미사?
연미사, 위령미사, 그리고 장례미사 등 세상을 떠난 이들을 위한 미사의 종류도 다양한 이름으로 불립니다. 분명 세상을 떠난 이를 기억하며 봉헌하는 미사임을 알겠지만, 명칭만큼이나 약간의 성격은 다릅니다. 그렇지만 교우분들께서 명확히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오늘은 이 명칭들에 대해서 알아보고, 어떠한 차이가 있는지 알아봅시다.
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 380-385항을 보면, 죽은 이를 위한 미사는 장례미사와 위령미사로 구분된다고 말합니다. 다음은 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 380, 381항의 조항입니다.
380. 죽은 이를 위한 미사 가운데에 장례미사가 첫 자리를 차지한다. 장례미사는 법 규범을 모두 지키면서 의무 대축일, 성주간 목요일, 파스카 성삼일, 그리고 대림 사순 부활 시기의 주일을 제외하고 언제나 드릴 수 있다.
381. 사망소식을 들은 다음 곧바로 드리는 미사, 매장 때 드리는 미사, 또는 첫 기일미사는 재의 수요일과 성주간이 아닌 평일, 의무 기념일, 성탄 팔일 축제에도 드릴 수 있다.
죽은 이를 기리는 다른 미사, 곧 평일 위령미사는 실제로 어떤 이에게 적용되는 미사라면 선택 기념일이나 평일 전례를 거행하는 연중 시기 평일에 드릴 수 있다.
이 지침에 따라 한국 천주교주교회의에서는 “미사 거행에 관하여”라는 지침을 통해 죽은 이를 위한 미사를 세 가지로 구분하여 제시합니다.
위령 1
고인을 떠나 보내는 고별식이 포함되어 있는 미사
의무 대축일, 성주간 목요일과 파스카 성삼일 그리고 대림 사순 부활 시기의 주일을 제외하고 언제나 드릴 수 있다. (총지침 380항 참조)
위령 2
- 사망 소식을 들은 다음 봉헌하는 미사
- 하관 때 드리는 미사
- 기일 미사
- 선종 소식을 듣고 봉헌하는 고별식 없는 미사
재의 수요일과 성주간이 아닌 평일, 의무 기념일, 성탄 팔일 축제에도 드릴 수 있다. (총지침 381항 참조)
위령 3
위령 1, 위령 2에 해당되지 않고, 세상을 떠난 영혼들을 위해 기도해주고 싶은 미사
전례력에 맞춰 봉헌한다.
우리가 흔히 선종하신 교우를 위한 미사를 장례미사라고 하며, 이를 “위령 1”이라고 칭합니다. 곧 고인을 떠나 보내는 고별식이 포함되어 있는 미사로 이해합니다. 그리고 “위령 2”라고 정의하는 미사는 누군가의 사망 소식을 들은 다음 곧바로 봉헌하는 미사나 매장 때 드리는 미사 또는 장례가 있는 날 고별식 없이 봉헌되는 미사나 선종하신 지 1년이 되신 날을 기억하며 봉헌하는 1주기 기일에 봉헌하는 미사를 포함합니다. 마지막으로 “위령 3”은 앞선 “위령 1”과 “위령 2”에 해당하는 날을 제외하고 세상을 떠난 영혼을 위해 기도하고 싶을 때 봉헌하는 미사를 포함합니다.
[전례와 함께] 미사의 구성 (6) 영성체 예식
성찬례가 끝나면 주님의 기도로 영성체 예식이 시작됩니다. ‘주님의 기도(Oratio Dominica)’는 성체를 모시기 위해 마음과 정성을 가다듬는 준비의 기도입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Pater noster, qui es in caelis)”라는 첫마디는 단순한 호칭이 아니라, 우리를 한 가족으로 부르는 초대입니다. “우리”라는 말은 신앙의 고백이자 공동체의 기억입니다. 이 기도는 나 혼자의 청원이 아니라, 교회가 함께 드리는 공동의 숨결입니다.
이어서 우리는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Adveniat regnum tuum)”라고 청합니다. 여기서 ‘adveniat’는 ‘도래하다’라는 뜻의 동사 advenire에서 왔습니다. 단순히 ‘언젠가 오리라’는 미래적 소망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그분의 다스림이 우리 안에 실현되기를 간청하는 동사입니다. 하느님 나라가 멀리 있지 않다는 믿음, 그것으로 우리는 이미 이 세상에서 하느님 나라를 살아가는 것입니다.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Panem nostrum quotidianum da nobis hodie)”라는 구절에서 panis는 빵이지만, 교회는 오래전부터 이 빵을 성체의 예표로 이해해 왔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단순히 오늘 하루의 먹을 것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 성체의 은총으로 살아가게 해달라는 청원을 드리는 것입니다.
주님의 기도가 끝날 때, 사제는 “주님, 저희를 모든 악에서 구하시고(Libera nos a malo)”라고 이어서 말합니다. 이는 교회가 고통과 유혹, 죄의 세력으로부터 구원을 청하는 전례적 호소입니다. 그리고 “평화의 인사(Ritus pacis)”로 이어지지요. “평화를 너희에게 남기고 간다(Pacem relinquo vobis)”는 예수님의 말씀을 전하며, 우리는 서로에게 평화를 건넵니다. 이때의 평화는 단순한 인사 이상의 것입니다. 이는 화해(reconciliatio)의 성사적 징표이며, 영성체를 향한 준비입니다. 성체는 사랑의 일치이기에, 미움과 분열의 자리에서는 온전히 받아들여질 수 없습니다.
그 다음, 사제는 성체를 높이 들며 “하느님의 어린양(Agnus Dei, qui tollis peccata mundi)”을 노래합니다. Agnus는 ‘어린양’을 뜻하고, tollis는 ‘들어올리다, 없애다’라는 뜻의 동사 tollere에서 왔습니다.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이라는 표현은 단지 죄를 지워버린다는 의미가 아니라, 죄의 무게를 짊어지고 들어올리신 예수님에 대한 신앙 고백입니다. 우리는 이 고백을 통해, 십자가 위의 그리스도를 마주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영성체(Communio)”의 순간이 다가옵니다. ‘communio’는 cum (함께) + munus(선물, 봉헌)에서 나온 말로, ‘함께 나누는 선물’을 뜻합니다. 곧, 하느님이 당신 자신을 선물로 내어주시는 자리입니다. “주님, 제 안에 주님을 모시기에 합당치 않사오나(Domine, non sum dignus…)”라는 고백은 인간의 한계를 드러내지만, 동시에 구원의 은총을 향한 열정을 드러냅니다. 우리는 합당하지 않지만, 그분의 자비가 우리를 합당하게 만듭니다.
성체를 모시는 것은 단순히 빵을 먹는 행위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삶을 우리 안에 받아들이는 사건입니다. 그분의 살과 피가 우리 안에서 사랑으로 녹아들어, 우리 삶이 그분의 삶으로 이어지는 신비가 영성체입니다. 그리하여 미사는 우리 안에 지속되는 일상이 됩니다. 미사 후에도 우리는 “주님의 기도”의 사람으로, “영성체”의 사람으로, 세상 속에서 그분의 몸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