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교회의 가르침] (22) ‘교회의 선교 사명’ (1)
그리스도가 세운 교회, ‘성령’ 인도로 복음 선포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재위 1978~2005)의 1990년 회칙 ‘교회의 선교 사명’(Redemptoris Missio)은 현대 교도권의 가르침 중 거의 유일하게 신학적 · 사목적 · 교리교육적 · 선교적 차원을 모두 망라해서 종합적이고 포괄적인 전망을 제시하는 매우 중요한 문헌이라 할 수 있다. 이 회칙은 기본적으로 복음 선포를 위한 교회의 선교 사명을 말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서 신학적으로도 중요한 핵심 개념과 원리들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거의 사반세기가 지난 오늘날의 ‘새로운 복음화’(New Evangelization)를 위해서도 여전히 유효한 성찰과 전망을 드러낸다. 사실, ‘교회의 선교 사명’은 현대의 조직신학과 선교신학 논문들 중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교황 문헌이라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이는 2013년 11월 발표되어 현재 프란치스코 교황(재위 2013~)의 올 8월 방한을 앞두고 한국교회에서 광범위하게 읽혀지고 인용되는 교황 권고 ‘복음의 기쁨’(Gaudium Evangelii)을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한 전제 문헌이라 할 수 있다. 즉, ‘복음의 기쁨’에 담겨져 있는 신학적 의미를 충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교회의 선교 사명’을 먼저 정독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두 문헌 사이의 연속성을 깨닫고 이해하며, 다른 한편으로 과거에 비해 현재 무엇이 어떻게 더 발전되어왔는가를 살펴본다면, ‘복음의 기쁨’에 대한 보다 심층적인 이해가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한 구원 중개와 그 외의 참여적 중재들
‘교회의 선교 사명’ 제1장(4~11항)에서는 모든 복음 선포의 중심에 위치한, 유일한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분명한 신앙고백을 제시한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유일성과 보편성을 명확하게 강조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유일한 중개자이십니다. 따라서 아무도 성령의 감도로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서는 하느님과 친교를 맺을 수가 없습니다.”(5항)
그런데 여기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한 구원 중개와 관련하여 신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개념 하나가 제시된다. 그것은 바로 ‘참여적(참여된) 중재’(participated mediation) 개념이다. “그리스도의 유일하고 보편적인 중개는 하느님께 나아가는 여정에 장애가 되기는커녕 하느님께서 몸소 정해 주신 길입니다. 그리스도께서도 이 사실을 온전히 알고 계십니다. 다양한 종류와 정도로 참여하는 중재 형태들이 배제되지는 않지만, 그러한 중재 형태들은 오직 그리스도의 중개에서만 의미와 가치를 얻으며, 결코 그리스도의 중개와 같거나 그것을 보완할 수 있다고 여겨서는 안 됩니다.”(5항)
이 신학적 개념은 교회 안과 밖에서 이루어지는 인간 구원을 향한 모든 열망과 기획과 노력이 결국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한 구원 중개 안에 종속적으로 참여되고 수렴되어 그분을 통해서만 진정 성취되고 종국적으로 완성될 수 있는 것임을 드러낸다. 사실, 우리가 여러 가지 직무와 방법으로(교회 지도자, 사목자, 신학자, 수도자, 교리교사, 선교사, 봉사자 등의 차원에서) 복음 메시지를 전하고 헌신하는 것도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한 구원 중개에 모두 다양한 방식으로 참여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사실, 성모 마리아의 중개 역시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한 구원 중개에 종속되는 임무임을 제2차 바티칸공의회(1962~1965)의 「교회 헌장」 62항에서 다음과 같이 분명히 밝힌다. “실제로 어떠한 피조물도 강생하신 말씀, 곧 구세주와 결코 똑같이 헤아려질 수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사제직에 교역자나 신자들이 여러 모양으로 참여하듯이, 또 하느님의 유일한 선성이 피조물들 안에서 실제로 갖가지 모양으로 퍼져 나가듯이, 구세주의 유일한 중개도 피조물들 가운데서 그 유일한 원천에 참여하는 다양한 협력을 가로막지 않고 오히려 불러일으킨다. 마리아의 이러한 종속적인 임무를 교회는 의심 없이 믿고 끊임없이 체험하며, 신자들의 마음에 권장하여 어머니의 이러한 도우심과 보호로 중개자, 곧 구원자를 더욱더 가까이 따르자고 한다.”
그런데 ‘교회의 선교 사명’ 5항에서는, 특히 그리스도인이 복음 선포 및 종교 간 대화의 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타 종교 전통의 구원 의미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식별을 위한 규범으로서 이 ‘참여적(참여된) 중재’ 개념이 미리 제시된 것이라 분석 가능하다. 즉, 우리가 그리스도의 참다운 교회를 모르는 선의의 타 종교인들의 구원 가능성을 개방적으로 인정하고 타 종교 전통의 구원론적 함축성을 어느 정도 인정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한 구원 중개에 대한 참여를 통해서만 이루어진다는 점을 분명히 밝히는 것이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사목 헌장」 22항에서 천명하듯이, “성령께서 하느님만이 아시는 방법으로 모든 사람에게 이 (그리스도) 파스카 신비에 동참할 가능성을 주신다”고 우리는 믿기 때문이다.
선교의 주역이신 성령
‘교회의 선교 사명’ 제3장(21~30항)은 ‘선교의 주역이신 성령’에 관해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세워진 교회는 성령의 인도를 받아 생명의 활력을 얻으며 그 역동적 사명을 수행하게 된다. 그러므로 교회의 사명 전체의 으뜸 주역이신 성령께서는 당연히 만민 선교를 인도하신다는 설명이 이루어진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성령 안에서 땅 끝에 이르기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장엄한 파견 명령을 받았다. 그리하여 사도행전에서는 성령의 인도를 따라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고 기적을 행하는 사도들의 활약상이 잘 드러난다.
사실, 성령께서는 온 교회와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선교사로, 복음 선포자로 만드신다. 성령에 의한 내적 친교(2코린 13,13 참조)로 이루어지는 교회 공동체는 또한 세상을 향해 파견되는 교회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 교회 공동체의 성령론적 본질이다. 성령에 의한 교회적 친교는 곧 성령의 인도를 따라 땅 끝에 이르기까지 복음을 선포하는 교회적 사명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교회 안에서 친교와 일치를 주관하시는 성령께서는 세상 안에서도 신비로이 현존하시고 작용하시며 그리스도인의 복음 선포를 이끄신다. 복음 선포는 우선적으로 이 세상의 반복음적·비복음적인 가치에 대한 예언자적 고발이며, 하느님 나라에 대한 증거이다. 그리고 이러한 복음 선포 중에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의 인도를 받아 세상 안에 뿌려져 있는 그리스도 ‘말씀의 씨앗들’을 발견하게 되기도 한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문헌에서 드러나는 ‘완성론’ 혹은 ‘성취론’적 선교관과도 같이, 세상 안에 묻혀 있는 이 ‘말씀의 씨앗들’을 정화하고 성장하게 함으로써 또한 복음화가 촉진되고 이루어진다.
교회의 선교 사명’ 28항은 이러한 복음화 작업을 ‘성령의 보편적 현존과 활동’이라는 신학적 원리를 통해 설명한다. “성령께서는 특별한 방식으로 교회와 그 구성원들 안에 자신을 드러내십니다. 그러나 그분의 현존과 활동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 보편적인 것입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성령께서 종교적인 활동들을 포함한 인간의 활동들 안에, 그리고 진리와 선과 하느님께 이르려는 인간의 노력 안에서 발견되는 ‘말씀의 씨앗’을 통하여 모든 인간의 마음 안에 작용하고 계심을 상기시킵니다. 성령의 현존과 활동은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와 역사, 민족, 문화, 종교에도 영향을 줍니다. 실제로 성령께서는 역사적 순례의 도상에 있는 인류를 이롭게 하는 모든 고귀한 생각과 활동의 원천이십니다. 성령께서는 다양한 풍습과 문화 안에 있는 ‘말씀의 씨앗들’을 뿌려서 그 씨앗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충만한 성숙에 이르도록 준비시켜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지만 이러한 성령의 보편적 활동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는 성령의 특별한 활동과 분리되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실제로, 교회에 생명을 주시고, 교회가 그리스도를 선포하도록 재촉하시며, 모든 개인과 민족에게 선물을 주시어, 교회가 이 선물을 발견하고 대화를 통하여 받아들이고 증진하도록 이끌어주시는 분도 언제나 교회 안에서 활동하시는 성령이십니다. 어떠한 형태의 성령의 현존도 존경과 감사로 받아들여야 하지만, 이러한 현존을 식별하는 일은 교회의 책임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주시고자(요한 16,13 참조) 교회에 당신 성령을 보내셨기 때문입니다.”
[현대교회의 가르침] (23) ‘교회의 선교 사명’ (2)
그리스도 따라 걷는 것이 선교 영성의 핵심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재위 1978-2005)는 1990년 회칙 「교회의 선교 사명」(Redemptoris Missio)을 통해, 오늘날 복음화 사업의 장애물로 ‘열성의 부족’과 ‘그리스도인들의 악표양’, 그리고 ‘종교 무차별주의’ 및 그 외 ‘복음화를 방해하는 핑계들’을 지적한다.(36항 참조) 그것은 바로 현대의 교회가 당면하고 있는 도전이며 어려움이다. 그리고 이는 현재의 프란치스코 교황(재위 2013- )이 권고 「복음의 기쁨」을 통해 지적하듯이, 거의 사반세기가 지난 오늘날에도 계속 발견되는 문제들이기도 하다.
복음화 사업의 장애물과 그 극복
첫째, ‘열성의 부족’은 인간 내면에서 비롯되는 요소이기에 그만큼 더욱 심각한 어려움이라 할 수 있다. 이는 “피로나 환멸, 타협, 무관심, 그리고 무엇보다도 기쁨과 희망의 결여”로 나타난다. 둘째, ‘그리스도인들의 악표양’은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다. “과거와 현재의 그리스도인들의 분열, 그리스도교 국가들의 신앙 상실, 사도직 성소의 감소, 그리스도의 모범에 따라 살지 않는 신자들과 그리스도인 공동체들의 악표양” 등은 교회의 선교 활동에 커다란 장애가 되는 것이다. 셋째, ‘종교 무차별주의’는 “그릇된 신학적 견해에 근거하고 ‘모든 종교가 다 나름대로 좋은 것’이라는 생각을 낳게 하는 종교적 상대주의를 그 특징으로 한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그 밖에도 여러 가지 ‘복음화를 방해하는 핑계들’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이미 요한 바오로 2세가 지적한, 이렇듯 선교를 방해하는 여러 심각한 문제들을 현 교황 프란치스코는 「복음의 기쁨」을 통해 다음과 같이 거듭 설명한다. 즉, 이기적인 나태(81-83항), 무익한 비관주의(84-86항), 교회 안에 침투한 영적 세속성(93-97항), 분열과 싸움(98-101항), 기타의 문제들(평신도의 역할과 책임 부족, 여성의 소외, 청소년들의 떠남, 성소의 부족과 감소 등: 102-107항)을 우리는 오늘날 대면하고 극복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여러 가지 문제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하나의 신앙적 확신이 필요하다. 요한 바오로 2세는 「교회의 선교 사명」에서 말한다. “이 확신은 신앙에서, 곧 교회 선교의 주역은 우리가 아니라 바로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이시라는 신념에서 옵니다. 우리는 협력자들일뿐이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다하고 나서는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루카 17,10)하고 말해야 합니다.”(36항)
만민 선교의 범위
「교회의 선교 사명」 제4장은 만민 선교의 범위에 대하여 설명한다. 사실, 그리스도의 보편적 명령 덕분에 만민 선교에는 원칙적으로 그 한계가 없지만, 실질적인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서는 그 범위를 정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요한 바오로 2세는 말한다.(37-38항 참조)
선교 활동은 일반적으로 특정한 지역과 관련해서 규정되어 왔다. 이런 관점에서, 전통적인 ‘지리적 기준’은 다소 불명확하고 늘 잠정적이긴 하지만, 여전히 선교 활동이 나아가야 할 경계를 가리키는 유효한 지표라고 할 수 있다.
한편 현대의 특수한 상황 속에서, 급속한 도시화와 인구 밀도가 높은 도시들의 팽창을 고려해야 한다. 물론, ‘가장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선택’이란 측면에서, 버림받고 소외된 지역을 항상 특별히 생각해야겠지만, 다른 한편으로 “새로운 풍속과 생활양식과 더불어 새로운 형태의 문화와 커뮤니케이션이 더 폭넓은 대중에게 영향을 미치는 대도시들”에 선교 역량을 집중하는 것도 필요한 일이다.
그리고 미래를 위한 선교를 말할 때, 결코 젊은이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교회의 미래인 그들에 대한 특별한 관심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또 현대 세계의 새로운 현상인 많은 이민자와 난민자들에 대한 사목적 배려가 선교적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나아가, 이러한 집단 이민의 원인이 되는 빈곤 현상에 대한 교회적 관심과 배려 또한 요구된다. 마지막으로, 오늘날 필요한 복음 선포의 새로운 영역으로서, 현대의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내는 새로운 문화 안에 그리스도교 메시지를 통합시키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하겠다.
선포와 대화
「교회의 선교 사명」 제5장(41-60항)은 구체적인 선교 방법으로 ‘증언(선포)과 대화의 관계’에 대하여 설명한다. 먼저, 복음화의 첫 형태는 삶의 증언임을 분명히 밝힌다. “증언의 첫 형태는 선교사와 그리스도인 가정, 그리고 교회 공동체의 삶 자체로서, 이는 새로운 삶의 방식을 보여 줍니다. 모든 인간적 한계와 약점에도 그리스도를 본받아 단순한 삶을 사는 선교사는 하느님과 초자연적 실재의 표징입니다. 실제로 교회 안의 모든 사람은 하느님이신 스승을 본받고자 노력하면서 이러한 종류의 증언을 할 수 있고 또 하여야 합니다. 많은 경우에 이러한 증언이야말로 선교사가 될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42항)
한편, 오늘날 요구되는 종교 간 대화는 복음화 사명의 일부라고 이해할 수 있다. “상호 인식과 상호 기여의 길이며 도구로 이해되는 대화는 만민 선교에 배치되지 않습니다. 실제로 대화는 선교와 특별한 연관이 있고 선교의 한 표현입니다. 사실 이 선교는 그리스도와 그분의 복음을 모르거나 대체로 다른 종교에 속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합니다.”(55항)
하지만 대화가 복음화를 모두 대신할 수는 없다. “교회는 구원 경륜에 비추어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일과 종교 간 대화에 참여하는 일 사이에 어떠한 대립이 있다고 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 둘을 교회의 만민 선교 안에 연결시킬 필요가 있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이 두 요소는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지만, 서로 구별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이 두 가지를 혼동하거나 이기적으로 이용하거나 서로 맞바꿀 수 있는 동등한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55항)
그렇다면 복음화를 위한 대화는 과연 어떤 정신과 자세로 이루어져야 하며 어떤 열매를 맺게 되는가? “대화는 계략이나 이기심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고유한 원칙과 요구와 품위를 지닌 활동입니다. 그것은 ‘어디서나 불고 싶은 데로 부시는 성령’(요한 3,8 참조)께서 인간 안에 이루어 놓으신 모든 것에 대한 깊은 존중을 요구합니다. 따라서 교회는 대화를 통하여, ‘모든 사람을 비추는 진리의 빛’인 ‘말씀의 씨앗’을 발견하고자 합니다. 이러한 씨앗들은 각 사람 안에 그리고 인류의 종교 전통들 안에서 발견됩니다. 대화는 희망과 사랑을 바탕으로 하고, 성령 안에서 열매 맺습니다. 다른 종교들은 교회에 긍정적인 도전이 됩니다. 그 종교들은 교회가 그리스도의 현존과 성령의 작용의 표지들을 발견하고 깨닫도록, 그리고 교회가 자신의 정체성을 더욱 깊이 성찰하고 모든 사람의 선익을 위하여 받은 계시의 충만함을 증언하도록 자극하는 것입니다.”(56항)
이처럼 선교를 위한 대화는 매우 광범위한 영역에서 이루어지므로 구체적으로 여러 형태와 표현을 지닐 수 있다. “여러 종교 전통의 전문가들이나 공식 대표들 간의 교류에서부터 종교적 가치의 완전한 발전과 수호를 위한 협력에 이르기까지 그 영역은 다양합니다. 삶의 대화를 통하여 여러 종교의 신봉자들은 일상생활 안에서 각자의 인간적, 영적 가치들을 서로 증언하고, 더욱 정의롭고 우애로운 사회를 건설하고자 그러한 가치들을 따라 살도록 서로 돕습니다. 모든 신자와 그리스도인 공동체들은 비록 정도와 형태는 다를지라도 대화를 실천하도록 부름 받습니다. 이 영역에서는 평신도들의 기여가 반드시 필요합니다.”(57항)
선교 영성
「교회의 선교 사명」의 마지막 제8장(87-91항)은 ‘선교 영성’에 대하여 말한다. 이는 그리스도론적이고 또한 성령론적인 선교 영성이다. “선교 활동에는 특수한 영성이 필요합니다. 이 영성은 특히 하느님께서 선교사로 부르신 모든 사람에게 해당됩니다. 이 영성은 무엇보다도 성령에 대한 완전한 순종의 삶으로 표현됩니다. 이러한 순종을 통해 성령께서는 내면에서부터 우리 자신을 형성시켜주시어 우리가 더욱더 그리스도를 닮게 하십니다. 성령의 은총과 힘으로 우리 안에 살아 계신 그리스도의 모습을 반영하지 않고서는 그리스도를 증언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순종은 우리가 선교 영성의 근본 요소인 용기와 지혜의 은사를 받게 해 줍니다.”(87항)
결국, 선교 영성이란 한마디로 그리스도를 깊이 알고 그분을 닮아가는 데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선교 영성의 본질적 특성은 그리스도와 맺는 긴밀한 친교입니다. 우리는 복음화를 위하여 파견되신 분이신 그리스도를 말하지 않고서는 선교를 이해하거나 수행할 수 없습니다.”(88항) 그러므로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아버지 하느님께 온전히 순종하신 그리스도의 자기 비움(필리 2,5-8 참조)의 길을 따라 성실히 걸어감이 바로 선교 영성의 핵심인 것이다
[현대교회의 가르침] (24) ‘현대의 사제양성’ (1)
‘사제양성’ 새로운 전망·실천방향 기준 제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사도적 권고 「현대의 사제 양성」은 가톨릭교회의 공식 문헌 중에서도 사제양성의 실천적 문제에 대해 가장 총체적으로 다루고 있는 아주 중요한 문헌이다. 이 문헌은 우리 가톨릭교회의 사제 양성과 관련된 문제에 있어서 기준이 되는 교과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92년에 로마에서 공표되었고 그 이듬해인 1993년에 한국어로 번역되어 출간된 이 문헌은 현대의 ‘사제성소자 문제’와 ‘사제직 지원자들의 양성문제’ 그리고 ‘사제들의 계속 양성’에 대한 문제를 중심으로 1990년에 소집되었던 ‘세계주교시노드’의 결과로 나온 후속 문헌이다. 시노드에서 세계주교들에 의해 다루어진 내용을 교황님께서 종합하시면서 가톨릭교회의 사제 양성에 관한 새로운 방향과 비전, 새롭게 추진해야할 노력과 변혁의 기본노선을 제시하신 것이다.
그런데 ‘사제양성’과 ‘사제직분의 이해’의 문제는 이미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서도 중요하게 다루어졌고, 그 결과 「사제 양성에 관한 교령」(Optatam Totius)과 「사제의 생활과 교역에 관한 교령」(Presbyterorum Ordinis)이 반포되었었다. 이 교령들에서는 이 주제들에 대한 기본적이고 원칙적인 측면들이 재조명되어 정리되었다. 하지만 그 이후에, 급변하는 현대 사회와 문화적 상황 때문에 이 공의회의 전망을 심화하고 구체화시켜야할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이 과정 안에서, ‘사제의 정체성에 대한 근본적 문제’를 뛰어넘어 ‘사제 양성의 구체적 과정’과 ‘사제생활의 질적 향상과 관련된 실천적인 문제’에로 교회의 관심이 구체화되고 확대된 것이다.
이러한 요구에 호응하여,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는 이 문헌을 통해 제삼천년기를 맞이하는 교회가 사제성소와 사제양성의 문제를 어떻게 새롭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하는지, 또 그 현실 안에서 교회는 이 문제들을 어떻게 마주하면서 대응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명료하게 밝힌 것이다.
「현대의 사제 양성」이라는 제목으로 한국교회에 출간된 이 문헌의 원래 제목은 라틴어 ‘Pastores Dabo Vobis’ 즉 “내가 너희에게 내 마음에 드는 목자들을 보내리라”라는 예레미아서 3장 15절의 하느님의 말씀이다. 사제양성에 관련된 문헌에 이러한 제목을 붙인 것에는 대단히 중요한 의미가 담겨있다. 예레미야서 안에서 이 하느님의 말씀은, 하느님께 등을 돌린 이스라엘 백성이 곧 멸망하게 될 것이지만 하느님께서는 당신 친히 목자들을 보내심으로 그 멸망에서부터 그 백성을 어떻게 회복시킬지에 대해 예언자를 통해 미리 알려주신 약속과 희망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 말씀을 제목으로 내세우시는 교황님의 의도를 우선 주목하는 것이 이 문헌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데에 결정적인 도움이 된다.
이 문헌의 서두에서 교황님께서는 오늘날의 성소개발의 어려운 문제들을 직시하면서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들을 모아주고 돌봐주는 목자 없이 당신 백성을 내버려두는 일이 결코 없을 것이라는 약속을 하셨다”는 사실을 가장 먼저 환기시킨다. 그러면서 교황님은 “내가 그들을 돌보아 줄 목자들을 그들에게 세워 주리니, 그들은 더 이상 두려워하거나 당황하지 않고, 그들 가운데 잃어버리는 양이 하나도 없을 것이다”(예레 23,4)라는 하느님의 말씀을 이 문헌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이 하느님의 약속의 말씀에 전적인 믿음을 두고 있는 교황께서는 세계주교대의원회의에 참가했던 교부들의 말을 다음과 같이 전해준다. “그리스도의 약속을 전적으로 믿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성령께서 교회 안에서 끊임없이 활동하고 계시다는 것도 알고 있기 때문에 교회 안에서 사제들이 완전히 사라지는 일은 결코 없으리라는 것을 굳게 믿는 바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을 사제직으로 부르시는 일을 그치신 적이 없습니다. 따라서 비록 몇몇 지역에서는 성직자들이 너무 부족하긴 하지만 성소자들을 보내주시는 성부께서 교회에서 당신의 활동을 멈추시는 일은 결코 없을 것입니다.”(1항)
얼마나 대단한 확신이며, 얼마나 투명한 믿음인가! 교황님께서는 현실적으로 대단히 어려움에 직면한 사제 성소와 양성의 문제를 ‘사람의 일’로 보지 않고, 하느님께서 친히 이루어내시는 ‘하느님의 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참조, 마태16,23) 이 하느님의 관점을 오늘날 교회의 사제성소와 사제양성에 관련된 모든 문제를 푸는 열쇠로 삼고 계신 것이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친아들을 우리에게 유일한 참된 목자로 보내시어 그 약속을 이미 완전히 이루어내셨던 것처럼, 지금도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의 뒤를 따르는 사람들을 계속해서 뽑아 보내시고 계심을 교황님은 흔들리지 않는 믿음 안에서 바라보고 계시는 것이다.
이 관점에서 교황께서는 이미 하느님에 의해 목자로 축성되어 파견된 모든 사제들을 향해 사제직무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친애하는 사제들이여… 교회 안에서 여러분이 맡은 역할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참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사제직이라고 하는 무거운 짐을 지고 매일매일 신자들에게 직접 봉사하는 분들입니다. 여러분은 성찬식을 집전하고, 고해성사를 통하여 하느님의 자비를 나누어주며, 모든 영혼들을 위로해 주고, 신자들이 오늘날 삶을 살아가는 가운데 어려운 순간을 맞이할 때마다 그들을 이끌어주는 분들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선택한 그 길을 기쁜 마음으로 마음을 다하여 계속 나아가 주길 촉구하는 바입니다. 결코 낙담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는 일은 우리의 일이 아니라 하느님의 사업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부르시고 파견하신 그분은 우리의 생애 모든 날에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진정 우리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그리스도의 사절들로서 활동하는 것입니다.”(4항) 이렇게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사제, 그리스도를 닮은 착한 목자를 보내시는 하느님의 일에 협력하기 위해서 이제 우리 교회가 해야 할 일들을 교황께서는 이 문헌에서 구체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이 문헌은 총 6장으로 전개되는데, 1장은 오늘날 사제의 삶과 사제양성의 어려움들을 분석하고 있다. 2장에서는 이 현실적인 문제를 마주하여 교회가 이해하고 살아가야할 직무 사제직의 본질과 사명을 명확하게 규명한다. 3장은 사제직의 정체성의 가장 기본과 토대가 되는 사제의 영성생활에 대해서, 4장은 사제성소를 개발하기 위해 시도해야 할 여러 사목적 노력들이 제시된다. 5장에서는 신학교에서 사제직 지원자들을 양성시켜야할 구체적인 기준영역들에 대해서, 그리고 마지막 6장에서는 사제의 계속 교육에 대한 중요 지침들을 제공하고 있다.
이 내용들을 전부 다 소개할 수 없기에, 다음 주에는 사제 양성의 실천적인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는 5장과 6장의 내용만을 간추려 소개하고자 한다. 이 내용은 우리가 사제양성에 대해 실제적인 관심과 노력을 어디에 어떻게 쏟아야 하는지 보다 분명히 보게 도와줄 것이다.
[현대교회의 가르침] (25) ‘현대의 사제양성’ (2)
인성 · 영성 갖춘 ‘참된 목자’ 양성에 초점
「현대의 사제양성」에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 던지는 근본적인 질문은 “어떻게 해야지만 이 시대를 진정으로 감당할 수 있는, 그리하여 오늘의 세계를 복음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제들을 양성할 수 있을 것인가?”(10항)이다. 이를 위해서 교황님께서는 교회의 오랜 전통과 경험에 비추어 ‘사제가 되기 전 신학생에 대한 양성’과 ‘사제서품 후 사제들을 위한 계속 양성’을 구분하여 실천적인 방향들을 제시하고 있다.
‘사제가 되기 전 신학생에 대한 양성’과 관련된 제5장에서는 사제 지망자들을 양성하는데 핵심적으로 인식되고 있는 영역들 즉 인성, 영성, 지성, 사목 분야에서 다루어져야할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제6장은 ‘사제의 계속 양성’과 관련한 부분인데, 여기서는 사제들의 성화와 쇄신을 위한 지속적인 양성의 주요한 지침들이 제시된다. 이제 그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하자.
신학교에서 사제지망자들을 위해서 이루어져야할 양성의 여러 영역들 중에서 가장 먼저 주목하는 분야는 ‘인성’ 즉 인간적 품성과 정서적 성숙함과 관련된 교육이다. 그 이유는 이 영역이 다른 영역들(지성, 영성, 사목)의 교육의 기초가 되고 발판이 되기 때문이다.
“사제양성을 할 때 인간교육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사제양성의 전 과정은 마치 밑 빠진 독과 같은 것이 되어 버릴 것”이라는 시노드 교부들의 견해(시노드 건의안 21항)를 교황님께서도 전적으로 받아들이신다. 사실, 사제 직무 자체가 본질적으로 한 인간으로서 다른 사람들과 맺는 관계 안에서 이루어지기에, 이 인성분야의 양성이 가장 우선적으로 중시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을 구속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와 만나는 데 사제의 인격이 다른 사람들에게 장애물이 되지 않고 하나의 다리가 될 수 있도록 신학생들을 교육하라고 교황님은 요구하신다.
이를 위해서 각 신학교는 신학생들이 육체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정신으로나 사랑의 관계 안에서 성장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고, 공동체 안에서 자유와 책임과 양심에 대한 엄격한 훈련과 함께 타인을 위해 헌신하게끔 교육하도록 당부하신다.
두 번째로 지목되는 ‘영성 교육’은 사제양성교육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영역으로서 하느님과 관계를 맺고 친교를 이루어 내는 일과 관련되는 영역이다.
이 교육은 사제지망자가 성령의 주도권 아래에서 사제로서 살아가야할 자신의 존재와 행동을 통일시키는 것에 초점이 맞혀진다. 이것은 한 인간을 총체적으로 다루는 작업이기에, 앞선 ‘인성 교육’의 연장선 안에서 또 그 완성을 이루는 교육이다. 이를 위해서 교황님께서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사제양성에 관한 교령」을 참고하여, “그리스도를 찾고 그분과 밀접하게 일치된 삶”을 살도록 신학생들을 양성할 것을 권고하시면서 다음의 세 가지 실천적 방법을 구체적으로 실시할 것을 제시하신다. ‘하느님의 말씀을 충실하게 묵상하며 기도하는 교육(Lectio Divina)’, ‘예수 그리스도의 파스카 신비에 깊이 참여하는 전례교육(미사를 비롯한 모든 성사와 성무일도)’ 그리고 ‘순명과 독신과 가난을 살아가면서 사람들 안에 그리스도를 찾으면서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도록 하는 교육’. 그리고 세 번째 분야는 하느님을 알고 따르는 지혜를 얻게끔 도움을 주는 ‘지적인 교육’이다.
이 영역은 앞의 ‘인성 교육’과 ‘영성 교육’이 더욱 효과적으로 열매 맺도록 도와주는 결정적 역할을 수행하기에 신학교에서 아주 중요하게 여겨야 할 부분이다. 더군다나 오늘날 다원주의가 광범위하게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상황에서 신앙을 옹호하고 설명해 줄 수 있는 역량이 사제들에게 더욱 요구되어지기에 아주 수준 높은 지적 교육은 그 어느 때보다 더 더욱 필요하다.
그래서 구원의 신비와 진리에로 나아갈 토대가 되는 철학은 물론이고 인문과학과 실증적 학문의 도움도 받아야 하며, 또 신앙진리들을 깊이 이해하기 위한 학문들(성경과 교부들, 교회의 가르침, 전례와 역사, 교의신학과 윤리신학, 영성신학과 교회법, 사목신학과 기초신학, 타종교에 관한 학문 등)을 통합적으로 배울 수 있는 체계적인 신학 교육이 모든 신학교에서 충실히 실시되어야 함을 교황님께서는 특별히 강조하신다.
마지막 네 번째 분야는 ‘사목 교육’인데, 이는 신학생들에게 이루어지는 모든 교육의 지향점이 되는 부분이다. 왜냐하면 사제지망자들이 받는 모든 교육들의 목적은 결국 “스승이시요, 사제이시며, 목자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라 영혼들을 돌보는 참된 목자”가 되는 데에 있기 때문이다. 사목 현장과 보다 직접적으로 관계되는 이 교육도 앞서 다루어진 다른 영역의 교육들과 함께 체계적이고 객관적으로 이루어져 신학생들이 교회의 ‘신비’와 ‘친교’와 ‘선교’의 차원에 깊게 참여하게 되기를 교황님께서는 당부하신다.
이상과 같이 인성, 영성, 지성, 사목 영역에서 체계적으로 또 통합적으로 교육이 이루어지는 신학교 교육공동체 모습을 제시하신 교황님께서는 이어지는 6장에서 ‘사제의 계속 교육’ 문제를 언급하신다. 이것은 교회문헌 안에서 ‘사제의 계속 교육’ 문제가 처음으로 공식적으로 다루어진 것이다. 여기에서 교황님은 사제서품 자체를 통해 모든 사제는 계속 교육을 받도록 부름을 받았다는 사실에 먼저 주목하면서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강조한다.
사제들은 본래의 신선함과 아름다움이 조금도 퇴색되지 않도록 하느님께 받은 성품의 은총을 유지해야할 필요가 있다. 세상의 인간적인 모든 일도 더 성장하기 위해서는 계속적인 교육이 필요하듯이 사제직도 그러하다. 더군다나 하느님의 끊임없는 부르심을 끝까지 충실히 따르기 위해서는 사제의 계속 교육은 더 더욱 필요한 것이다. 사제직에 임하는 목자로서 끝까지 ‘충실하기 위해서’ 또 개인적으로 ‘끊임없는 회개의 과정’을 위해서는 이 계속 교육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이것이 목자로서의 역할에 충실히 임할 수 있는 가장 본질적인 태도이다.
사제들의 계속 교육은 신학교 교육을 더 완성시켜 나가면서도 현실적 적용과 변화를 추구하면서 진행되어야 한다.
사제의 계속 교육에서는 사제가 사람들과 더 깊이 교감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인간적인 측면’, 새로운 복음화를 위해 복음을 더욱 근본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영성적인 측면’, 현대사회 안에서 그리스도교의 진리를 더욱 효과적으로 전달하도록 도와주는 ‘지적인 측면’, 더욱 착한 목자가 되도록 도와주는 ‘사목적인 측면’ 등이 체계적으로 또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렇게 계속 양성의 당위성과 방향을 제시하신 교황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을 하신다. “사제는 교회 안에서 계속 교육을 받음으로써 주교와 일치를 이루며 자신이 속한 사제단 안에서 또한 자신이 속한 사제단과 함께 성숙해져야 합니다.”(74항) “계속 교육은 정말로 계속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제가 어떤 연령층에 속하든, 어떤 처지에 있든, 또한 교회에서 얼마나 중요한 책임을 맡고 있든 늘 사제 생활의 일부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76항)
지금까지 알아본 사도적 권고서 「현대의 사제 양성」 안에서, 요한 바오로 2세께서는 “내 마음에 드는 목자들을 세워주겠다”(에레 3,15)는 하느님의 약속이 실현되는 현장이 바로 사제의 ‘계속 교육’과 신학생들의 ‘사제직을 향한 교육’이 이루어지는 현장이라고 여기고 계심을 볼 수 있었다. 신학생들과 사제들 안에서 훌륭한 일을 시작하신 하느님께서 그 일을 완성하실 수 있도록 우리 모두가 최선을 다해 하느님께 협력하도록 노력하자는 것이 교황님께서 우리에게 던지시는 메시지이다. 이제 우리가 이 메시지에 응답할 차례이다.
[현대교회의 가르침] (26) ‘진리의 광채’ (1)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 따르는 윤리적 삶 천명
세상 속에서 비춰지는 교회의 모습들 가운데서 가장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이미지는 윤리의 교사로서의 교회 이미지다. 전통적으로 교회는 세상의 윤리 문제들에 개입해서 교회의 가르침을 제시하는 일종의 윤리 교사의 역할을 해왔다. 윤리적 혼돈의 수위가 높아지고 도덕적 가치의 상대주의가 더 큰 목소리를 얻어가는 현대 세계에서 교회는 더욱 윤리 교사로서의 자신의 임무를 자각하는 것 같다. 때때로 교회가 고루한 도덕 선생의 이미지로 보일 수 있는 위험도 간혹 있지만, 도덕과 윤리의 원리와 원칙을 정초하기 어려운 현대 세계 안에서, 윤리와 도덕에 관한 교회의 입장 표명은 매우 중요하다.
1993년 8월에 반포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열 번째 회칙인 「진리의 광채」는, 세속의 윤리적 혼란과 교회 안에서 마저도 교회의 가르침에 대한 회의가 발생하는 상황 속에서, 다시 한 번 “성경과 살아 있는 사도적 전승에 바탕을 둔 윤리적 가르침의 원리를 제시”(5항)하려는 교회의 노력이다.
이 회칙의 현실 진단에 따르면, 주관주의와 개인주의의 영향 속에서 윤리와 가치의 다원주의와 상대주의의 흐름이 현대 세계 안에서 윤리적 규범에 대한 사람들의 이해를 흐릿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그리스도교 공동체 자체 안에도 “교회의 윤리적 가르침과 관련하여 인간적, 심리적, 사회적, 문화적, 종교적, 심지어 신학적 성격을 띠고 있는 수많은 의심과 반대가 팽배하고”(4항) 있는 현실이라고 회칙은 지적한다. 회칙은 현대 사회에 만연한, 신앙과 윤리가 별개의 문제로 여겨지는 경향, 진리와 자유 사이의 본질적이고 기본적인 유대의 부정, “내적으로 악한 행위를 언제나 예외 없이 금지하는 윤리 계명의 보편성과 불변성”(115항)을 강조하는 자연법적 전통과 개념들을 거부하는 풍조에 대해 강하게 비판한다.
이 회칙의 기본 목적은 교회의 윤리적 가르침이 왜곡되고 부정되는 위기 속에서, 가톨릭 교리의 근본 진리를 상기시키기 위해, 교회의 윤리적 가르침 전체에 대한 성찰을 제시하는 것이다. 회칙은 결혼과 성 윤리, 이혼과 재혼의 문제, 낙태와 생명의 문제, 동성애 문제 등, 구체적 윤리문제들에 관한 교회의 가르침을 이야기하기보다는 윤리 신학의 근본 문제들에 대한 일종의 학문적(disciplinary) 성찰의 성격을 띠고 있다. 특히 2장의 내용은 높은 차원의 윤리 신학적 논의를 담고 있다. 회칙 스스로가 무엇보다도 윤리 학자와 윤리 신학자들에 대한 특별한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 특히 회칙은 교회의 전통적인 윤리적 가르침에 대한 의심과 회의를 표출하는 교회 안의 일부 윤리 신학자들을 암시하면서, 교회 안에서의 윤리 신학자의 직무와 봉사에 대해 명시적으로 언급하고 있다(109항-113항). 이처럼 회칙의 목적이 학문적 특성을 지니고 있고 회칙의 주 대상자가 윤리 신학자들이기 때문에 회칙의 내용을 일반 신자들이 이해하기에는 좀 어렵다.
회칙의 기본 얼개는 세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은 마태오 복음 19장에 나오는 부자 청년과 예수님과의 대화의 내용을 매개로 해서 윤리적 문제들에 대한 대답을 성서학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2장은 현대 윤리 신학에 나타난 세속적 경향과 윤리적 문제들에 대한 기본 원리들에 관한 신학적 논의를 담고 있다. 3장은 윤리적 문제들에 대한 교회의 사목적, 실천적 노력들에 관한 성찰을 담고 있다. 대부분의 회칙들이 그러하듯이, 「진리의 광채」 역시 성서적, 신학적, 사목적(실천적) 논의 구조를 띠고 있다.
윤리 문제들에 대한 대답이며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
오늘날 윤리 문제에 있어서 어떤 절대적 기준과 규범을 찾기가 점점 어렵다. 계몽주의 전통과 문화 인류학의 발전은 가치와 윤리에 있어서 다원성과 다양성을 강조하는 경향을 드러낸다. 거대 담론과 메타 담론의 상실을 주장하는 현대 세계 안에서 “진리”라는 용어는 매우 낯선 것이 되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회칙의 제목으로 “진리의 광채”라는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자신의 의도를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교회는 언제나 진리의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가 모든 윤리 문제들에 있어서 절대적 진리임을 선포해야 한다는 것이다.
“스승님, 제가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무슨 선한 일을 해야 합니까?”(마태오 19,16)라는 질문을 던진 부자 청년은 “인간의 구원자이신 그리스도께 다가와 윤리에 대한 물음을 던지는 모든 사람”(7항)을 대표하는 상징적 인물이다. 또한 그 질문의 내용은 “윤리적 선과 자신의 삶의 완성 사이의 연관성”(8항)을 포함하고 있다. 회칙은 분명하게 “오늘날 사람들이 무엇이 선한 것이고 무엇이 악한 것인지에 대한 질문의 답을 들으려면 다시 한 번 그리스도께 돌아가야 한다”(8항)고 선언한다. 예수 그리스도와의 인격적 만남과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 그리스도교 윤리의 본질적이고 본래적인 기초임”(19항)을 표명한다.
회칙은 비신앙인이라 할지라도 선과 악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며 윤리적 요구에 따라 살아간다면 구원의 길이 열려 있음을 천명한다(3항). 윤리적 선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것이 곧 선 자체이신 하느님께로 돌아감을 뜻한다는 것이다(9항). 즉, 인간 안에 심어진 자연법을 따라 사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와의 인격적 만남의 시작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윤리적인 문제에 결정적 답을 줄 수 있는 분은, “하느님의 계명을 자세히 설명하고, 사람들에게 당신을 따르라고 초대하며, 새 생명을 위한 은총을 주는”(25항) 예수 그리스도이기 때문이다. 회칙은 윤리 문제들에 있어서 규범과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이며, 그 진리는 추상적 관념의 진리가 아니라 인격적 진리임을 거듭 선언한다. 회칙은 진리의 문제에 대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인격주의(personalism)적 접근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자유와 진리의 관계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윤리 신학의 기초
회칙은 현대 윤리신학의 흐름 속에서 드러나는 그리스도교 윤리에 대한 왜곡과 부정의 경향들에 대한 교도권적 식별을 강조하면서 건강한 윤리적 가르침을 위한 윤리신학의 쇄신을 요청한다. 회칙은 “어떤 특정한 신학 체계나 철학 체계를 강요할 생각은 없다”(29항)고 분명하게 밝힌다. 단지 식별을 위한 윤리 신학의 필수적 원칙들이 무엇인지에 대해 명확하게 가르치고자 한다.
회칙의 진단에 따르면, 현대인들은 자유만을 강조해서 진리와 자유가 긴밀히 연결되어 있음을 잘 깨닫지 못하고 있다. “자유를 절대적인 것으로까지 격상시켜, 모든 가치의 원천이 되게 해서”(31항) 진리의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는 것이다(32항). 이러한 경향은 종교의 자유와 양심의 자유의 문제를 둘러싼 논쟁에서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즉, 현대의 주관주의와 개인주의의 풍조 안에서 자유와 양심이 진리에 기초하지 않고 “성실성과 진실성 그리고 ‘편한 마음’(sincerity, authenticity, and ‘being at peace with oneself’)”이라는 기준에 정초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회칙은 지적한다. 따라서 회칙은 자유와 양심은 언제나 진리를 추구해야 하며 진리에 순응해야 함을 강조한다. 참된 자유는 오직 진리에서 나오는 것이다. 참된 윤리 신학은 “자유가 지닌 진리에 대한 의존성을”(34항)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야한다.
이런 관점에서 회칙은 2장에서 자유와 법(35-53항), 양심과 진리(54-65항), 근본적 선택(65-70항)이라는 윤리 신학의 필수 주제들을 다루면서 윤리적 행위의 본질(71-83항)에 대해 설명한다.
윤리적 선은 교회의 쇄신과 사회의 변화를 지향
회칙은 진리를 행하는 것이 윤리적 선임을 천명한다(84항). 윤리적 선을 실천하는 것은 교회 생활의 쇄신과 사회생활의 쇄신을 뜻한다. 회칙은 거듭 진리와 자유, 신앙과 윤리의 긴밀한 연결을 강조한다. 회칙은 그리스도의 진리와 연결되어 있는 객관적 윤리 규범들이 정의롭고 자유로운 사회의 기초임을 거듭 천명한다. “복음화는 윤리의 선포와 제시까지도 포함한다”(107항). 왜냐하면 복음의 선포는 “예수 그리스도의 목소리, 선과 악에 대한 진리의 목소리”(117항)를 반영해야하기 때문이다.
[현대교회의 가르침] (27) ‘진리의 광채’ (2)
‘실천’으로 열매 맺는 윤리적 가르침 선포
I. 회칙의 의의와 공헌
전통에 대한 강조
회칙 「진리의 광채」는 현대 윤리신학 안에서 영향력을 확산하고 있는 비례주의(proportionalism)와 결과주의(consequentialism) 경향에 대한 비판이 담겨있는 학술적 문헌의 성격이 강하다. 하지만 이 회칙은 학문적 특성을 넘어 여러 측면에서 고유한 위치를 갖는다. 무엇보다 회칙은 다른 어떤 회칙들보다 교회의 전통에 대한 강조를 담고 있다. 회칙은 교회의 전통적 가르침의 복구와 활성화를 통해 현대의 윤리적 위기를 극복하고자 하는 의도를 표방한다. 따라서 회칙은 한 해 전에 반포된, 교회의 전통적 가르침이 새롭게 집대성된 『가톨릭 교회 교리서』와의 연계를 강조한다. 회칙의 관점에 따르면, 현대 윤리신학과 많은 윤리 신학자들은 교회의 전통적 가르침의 통일체적 특성을 포기함으로써 윤리적 규범의 합의점과 권위를 스스로 상실해버렸다는 것이다.
자연법의 보편성과 불변성에 대한 옹호
회칙의 전통에 대한 강조는 윤리신학에 있어서 자연법에 대한 강조로 이어진다. 자연법은 모든 인간이 자신의 이성의 빛에 비추어 간파할 수 있는 윤리적 지침이다. 회칙은 자연법에 대한 교회의 전통적 가르침의 복구를 통해 현대의 윤리적 상대주의를 뛰어넘고자 한다. 회칙의 진단에 따르면, 현대 윤리신학의 “물리주의와 자연주의에 대한 반대는 자연법의 전통적 개념을 반대하는 차원에까지”(47항) 이르렀기 때문이다.
회칙의 설명에 따르면, “자연법은 하느님의 영원한 법의 인간적 표현”(43항)이다. 즉, 자연법은 영원한 신법에 참여하는 것이다. 이처럼 자연법은 참여적 신율(theonomy)이기 때문에 자율(autonomy)과 타율(heteronomy)이라는 두 극단적 방식을 피한다.
회칙은 자연법의 두 가지 특성인 보편성(universality)과 불변성(immutability)을 강조한다. 자연법의 이 두 특성을 옹호하기 위해 회칙은 인간의 단일성을 주장한다. 인간은 영혼과 육체로 이루어진 단일적 인격체로 존재한다. “육체를 포함하는 전 인격체는 인간에게 완전히 맡겨져 있으며, 인간이 그 윤리 행위의 주체가 되는 것은 영혼과 육체의 단일성 안에서다”(48항). “자연법은 인간의 고유하고도 원초적인 본성, 곧 ‘인격체의 본성’에 속한다.” 이런 맥락에서 이해되는 “자연법은 자유와 본성 사이에 어떠한 분리도 허용하지 않는다”(50항).
세속의 학자들은 현대 세계 안에서 문화적 변화를 강조하고 자연법의 보편성에 대해 의문을 표하며 절대적이고 객관적인 도덕적 규범의 존재를 부정하는 일종의 역사의식을 강조한다. 하지만 회칙은 현대의 이러한 역사의식에 반대한다. 인간은 다른 문화들 속에 존재하지만 인간의 어떤 특성 또는 인간 본성은 문화를 초월하며 문화의 척도가 된다고 회칙은 주장한다. 즉, 변하지 않는 인간의 근본 본성이 자연법의 보편성과 불변성의 기초라고 회칙은 말한다(53항). 물론 이러한 자연법의 보편성 주장이 인간 존재의 개성과 각 개인의 절대적 고유성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자유 행위는 참된 선의 보편성을 드러내는 것이다(51항).
자연법의 보편성과 불변성에 대한 강조는 결국 인간 윤리 행위는 어떤 분명한 규범에 의해 판단될 수 있다는 의미다. 따라서 교회는 서로 다른 문화적 맥락을 감안하면서 보편적이고 변함없는 윤리 규범에 대해 가장 알맞은 정식을 추구하고 발견할 필요성을 갖는다. 보편적이고 불변적인 윤리 규범의 올바른 정식화와 권위 있는 해석은 교도권이 역사적 상황들에 비추어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며, 동시에 신자들의 신앙 감각과 신학자들의 신학적 성찰 작업들과 협력의 과정을 요구한다(53항).
하느님, 구원, 윤리의 상관성
이 회칙이 반포된 후 많은 사람들이, 부정적 의미이든 또는 긍정적 의미든, 회칙의 대담함에 놀람을 표현했다. 왜냐하면 회칙이 현대화된 세상에서 대담하게 전통적인 윤리를 재강조하고, 탈권위화 되어가는 현대 세속 사회 안에서 교계적 권위주의의 경향을 드러내며, 교회의 가르침들에 의문을 제기하며 반대의 의견을 제시하는 사람들에 대해 억압적인 교조주의의 모습을 보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회칙의 대담함은 무엇보다 하느님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 점점 어려운 현대 사회에서 하느님을 분명하게 언급함으로써 복음주의적 색채를 뚜렷하게 드러내고,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 문제에 대한 토론에 있어서 하느님에 대한 질문을 중심에 놓은데 있다. 윤리적 문제들은 인간 구원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 즉, 윤리적인 문제들은 하느님에게 초점을 맞추는 신학적 탐구의 맥락 속에 있어야 한다. 하느님은 단순히 인간의 영성적 대상이거나 인간 존재의 깊이를 명료화하는 대상이 아니라 인간의 전인적 삶에 관한 탐구의 대상이다. 하느님에 대한 질문과 탐구는 결국 인간의 윤리적 문제들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으며 그래서 구원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
II. 논쟁과 한계
진리와 자비
회칙이 주장하는 진리가 추상적 관념의 진리가 아니라 인격적 진리를 뜻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를 뜻하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실제 현실에서 진리라는 관념은 자칫 배타적이며 독선적인 경향을 낳을 수 있다. 진리의 하느님, 사랑의 하느님, 자비의 하느님, 이 세 표현 모두 다 올바른 고백이며 올바른 서술이다. 하지만 하느님의 진리를 강조하는 것과,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강조하는 것은 실제 현실에서 묘한 뉘앙스의 차이가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최근 발언은 매우 시사적이다. “저는 진리가 절대적이라고 신자들에게조차 이야기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절대적인 것은 이탈되어 있는 초월적인 것, 모든 관계를 벗어나 있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교 신앙에 따르면 진리는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사랑이고 그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난다. 따라서 진리는 관계다.”
교도권과 신학(또는 신학자)
회칙의 반포 후 많은 윤리 신학자들이 불편함을 느꼈다. 왜냐하면 회칙 안에는 윤리 신학자들이 도덕적 상대주의를 가르치고 있다는 잠재적 비난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회칙은 이 시대의 윤리 신학이 상대주의, 실용주의 그리고 실증주의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에 과학적이고 기술적인 문화의 맥락 안에서 신중한 식별을 해야 한다고 지적한다(112항). 그리고 무엇보다 “윤리 신학자들은 교회의 가르침을 제시하고, 그 직책 수행을 통하여 교의와 윤리 분야의 교도권 가르침에 대한 충직한 동의의 본을 보여 주어야 한다”(111항)고 강조한다.
교회의 가르침의 직(the Church’s teaching office)은 단순히 교도권 그 이상을 포함한다. 교회의 가르침의 권위는 신자들의 신앙감각, 신학자들의 공동체, 교도권이라는 세 개로 분류된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전에는 이 셋은 수직적 상하의 질서관계를 뜻했지만, 공의회 이후에는 일종의 삼각형적 협력관계로 이해된다. 신앙감각, 신학, 교도권이라는 세 권위는 교회의 가르침의 직에 각자의 역할이 있다. 어떤 하나의 권위가 다른 두 권위들을 배제하고 독자적으로 자신의 책임을 수행할 수는 없다. 즉, 교도권 역시 신자들의 신앙감각에 늘 귀 기울이고, 신학자들의 성찰들에 언제나 열린 태도로 있어야 한다. 또한 이 시대의 권위에 대한 이해는 예전과 다르다. 권위는 소유가 아니다. 권위는 관계의 질이다. 권위는 어떤 개인들에게나 어떤 객체적 대상들에 있는 것이 아니다. 참된 권위는 두 실재들(권위를 인정하는 것과 그 권위를 증명하는 것)의 관계 사이에서 유지되는 것이다.
선포와 수행(실천)의 간격
회칙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윤리적 진리의 분명하고도 확고한 제시는 결코 그 깊고 성실한 준수와 분리될 수 없다”(95항). 교회는 “선포된 말씀의 선물뿐 아니라 생활로 실천된 말씀의 선물을 통하여”(107항) 복음화를 이루어 가야 한다. 윤리적 진리에 대한 교회의 선포는 교회 구성원들 스스로가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를 살아내고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실제로 수행할 때 그 실제적 효과를 나타낸다. 세상에 대한 교회의 윤리적 가르침이 참다운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교회 자신이 먼저 그 가르침을 수행하고 있는지 성찰해야 한다. 세상의 변화와 교회의 쇄신은 언제나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