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례교육] 성화직무에 관한 교회법적 접근 : 성체성사에 대한 질문들 (1)
성화직무를 월례교육 주제로 선정한 이유는 신자들의 능동적인 전례 참여를 위함입니다. 미사 안에서 혹은 전례 안에서 신자들에게 짚고 넘어가야 할 것들, 그리고 신자들이 궁금해 할 내용들을 간략하게 정리해 보았습니다.
성체성사는 교회 생활의 핵심이며 정점입니다. 가톨릭 신자들은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심으로써 주님의 파스카 신비를 선포하고 자신의 소명을 자각하며 살아갑니다. 교회는 성체성사를 다양한 용어로 표현하지만, 전례서에서 제시한 ‘지극히 거룩한 성찬’(Sanctissima Eucaristia)이라는 표현을 선호합니다.
1. 교회법전은 성체성사를 어떻게 표현하나요?
교회법전은 성체성사의 본질과 중요성을 4가지 신학적 표현으로 제시합니다. ①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모든 삶은 그리스도로부터 양육됩니다. ② 성체성사는 그리스도의 수난을 기념합니다. ③ 성체성사의 은총으로 영혼은 충만해집니다. ④ 성체성사는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줍니다. 뿐만 아니라 교회법전은 법적인 요소, 즉 성체성사의 집전자와 참여자의 구분, 합당한 집전자, 합당한 재료들, 합당한 참여자, 합당한 성체분배자, 합당한 태도, 신심 등을 언급합니다. 다시 말해서 법전은 성체성사를 온전히 거행하고 받아들이기 위한 기준과 방법, 형식 등을 알려줍니다.
2. 성체성사의 집전자는 누구인가요?
성체성사의 집전자는 유효하게 서품된 사제로서 교회법으로 금지당하지 않은 이어야 합니다(제900조 참조). 만약 집전자가 사제품을 받지 않고 성찬 거행을 시도한 경우, 교회로부터 형벌이 부과될 수 있습니다(제1378조 2항 1호 참조).
교구사제는 원칙적으로 자신의 소속교구에서만 미사를 집전할 수 있습니다. 사제는 서품과 동시에 성품권을 부여받지만, 그 성품권의 관할권(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범위, 혹은 지역)은 해당 교구에서만 적용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교구사제는 소속교구 내 어느 곳에서든지 미사를 집전할 수 있으나, 다른 교구에서 미사를 집전할 경우에 그 지역책임자(본당-본당주임, 수도회-장상)의 허락이 필요합니다(제561조 참조).
3. 사제는 미사를 여러 번 드릴 수 있을까요? 영성체도 하루에 여러 번 모실 수 있나요?
교회법 제904조에서는 사제에게 매일미사를 권장하지만, 제905조에서는 사제가 하루에 여러 번 성찬을 거행할 수 없고 단 두 번까지 가능하다고 말합니다. 이는 아주 오래된 교회의 규정인데, 여기에는 안타까운 이유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과거 미사예물과 관련한 사제의 욕심이나 미신적 신심과 관련한 남용을 방지하기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한국교회는 사목상의 이유로 ‘교구사제 특별권한’을 부여받아 평일에는 세 번까지, 그리고 주일과 의무축일에는 네 번까지 미사를 집전할 수 있습니다. 위와 같은 미사예물의 남용을 방지하기 위해서 대부분의 교구는 미사예물 공유화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각 본당은 모든 미사예물을 교구에 보내고, 교구 혹은 본당에서 각 본당신부에게 해당하는 적당한 미사예물을 지급하고 있습니다.
그럼 영성체는 하루에 몇 번 가능할까요? 교회는 하루에 두 번으로 제한하고 있습니다(제917조 참조). 그 이유는 첫째 신자들이 성찬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도록 독려하기 위함(구[舊]법전 때는 하루에 한 번 밖에 영성체를 할 수 없었습니다)이고, 둘째 미신이나 무지, 그릇된 신심으로 인한 많은 영성체의 오용과 남용을 막기 위한 것입니다.
4. 미사는 신자들을 위해서만 바쳐지나요?
아닙니다. 미사는 산 이와 죽은 이, 신자와 비신자, 죄인이나 성인 구별 없이 어느 누구를 위해서든지 바쳐질 수 있습니다. 과거에는 죽은 비가톨릭 신자들을 위해서는 공적인 미사가 아닌 사적인 미사만을 허락했었습니다(구[舊]법전 제2262조 2항 2호 참조). 1976년 교황청 신앙교리성의 교령은 바오로 6세의 인준으로 구[舊]법전의 관련 규정(구[舊]법전 제809조; 제1241조; 2262조 2항 2호)을 폐지하면서 죽은 비가톨릭 신자를 위하여 그들의 가족이나 친구들이 명백히 이를 요청하고 또한 교구장은 추문의 여부를 판단하여 이들에게도 공적 미사가 적용될 수 있도록 허가하였습니다.
5. 영성체를 모실 수 있는 사람들은 누구인가요?
교회법 제912조에서는 “법으로 금지되지 아니하는 영세자는 누구나 영성체가 허락될 수 있고 또 허락되어야 한다”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통상적으로 세례 받은 성인(成人)은 누구나 영성체를 모실 수 있습니다. 또한 교회는 어린이에게도 영성체를 허락하고 있습니다. 교회법전은 어린이가 사리분별을 하기 시작하는 나이를 만 7세로 규정하는데(제11조 참조), 한국교회에서는 어린이가 10세 전후가 되었을 때 영성체를 하도록 권고합니다.
장애인에게도 영성체가 허락될 수 있습니다. 다만 한국교회에서는 세례와 관련하여 전면적 정신 장애인의 경우에 어린이 세례에 준하기 때문에 영성체가 어렵지만, 부분적 정신 장애인에게는 가능한대로 교육을 실시하고 의사표시를 확인한 다음, 세례성사와 함께 영성체를 베풀 수 있습니다.
6. 성직자 말고 본당교우 어르신들도 성체분배를 하는데 가능한 일인가요?
본당교우 어르신들이 성체를 분배하는 경우, 이들을 ‘비정규집전자’로 칭합니다. 성체분배의 비정규집전자는 이 임무가 위탁된 시종자(즉 신학생 중 시종직을 수여받은 이)와 필요한 경우 교구 직권자에 의해 한시적으로 이 임무에 위탁된 평신도를 말합니다(제910조 2항 참조). 이들이 성체를 분배하는 경우는 정규집전자(성직자)의 성체분배가 불가능하거나 성체를 모실 신자들의 수가 많은 경우인데, 한국교회에서 실시하는 어르신들의 비정규집전자 권한은 두 번째 경우에 해당됩니다.
평신도가 성체를 분배하기 위해서는 임무에 대한 형식적 합법성을 위해 교회의 공식적 위임을 받아야 합니다. 이는 통상 교구장이나 교구장의 위임을 받은 총대리가 필요한 경우 적절한 교육과 축복예식을 통해 사안별, 기간별로 성체분배 권한을 수여하고 있습니다.
7. 빵과 포도주는 어떤 재료로 만들어지나요?
교회법 제924조는 성찬 거행에 사용될 빵과 포도주에 대한 규정을 제시합니다. “지성한 성찬 제헌은 빵과 물을 조금 섞은 포도주로 봉헌되어야 한다. 빵은 순수한 밀가루로 빚고 새로 구워 부패의 위험이 전혀 없어야 하며, 포도주는 포도로 빚은 천연의 것으로 부패하지 아니하여야 한다.” 미사에 사용되는 빵(panis)은 순수한 밀가루를 자연수로 빚어 불로 군 것만 유효합니다. 포도주(vinum) 역시 자연적으로 성숙한 포도로 빚은 술만 유효합니다. 한국교회에서는 공식적으로 인준된 빵과 포도주, 즉 가르멜 수녀회에서 제병을, 경북 경산의 마주앙 공장에서 포도주를 공급받고 있습니다. [외침, 2017년 10월호(수원교구 복음화국 발행)]
[월례교육] 성화직무에 관한 교회법적 접근 : 성체성사에 대한 질문들 (2)
지난호에 이어서 11월 월례교육의 주제는 ‘성사성사’ 입니다. 이번호에서는 성체성사에 관한 여러가지 질문들 중에서 특별히 공복재, 성체신심, 노자 성체, 미사예물, 사제의 고유기도, 여성복사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1. 미사시간 전에 어떠한 음식도 먹을 수 없나요?
교회법 제919조 1항은 “지성한 성체를 영하기 전, 한 시간 동안은 물과 약 외에는 어떠한 식음도 삼가야 한다”고 규정합니다. 즉 공복재(空腹齋)의 라틴어 ‘ieiunium Eucharisticum’은 ‘성찬을 위한 단식’이란 뜻으로, 성찬례에 대한 존경과 예우를 표현합니다. 구(舊)법전 시기에는 자정부터 미사 전까지 음식을 못 먹었으나, 1957년 비오 12세 교황에 의해 3시간으로 줄었고, 1964년 바오로 6세 교황에 의해 지금과 같이 1시간으로 줄었습니다.
여러 번 미사를 거행하는 신부님은 같은 날 첫 미사에 공복재를 지킬 의무가 있고, 두 번째나 세 번째 거행 전에는 비록 한 시간의 간격이 없더라도 요기할 수 있습니다(제919조 2항). 노인들이나 병약자들, 그리고 이들을 간호하는 이는 비록 한 시간 이내에 조금 먹었더라도 영성체를 할 수 있습니다(제919조 3항).
2. 성체를 자기 집에 모셔둘 수는 없나요?
절대 그럴 수 없습니다. 성체를 자기 집이나 혹은 다른 주거 환경에 둔다는 것은 적법하지 못합니다(제935조). 간혹, 그릇된 신심을 지니고 계신 신자분이 성체를 모시지 않고 집으로 가져가는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때 신자 여러분들의 특별한 관심이 필요하며, 누구든지 이런 경우를 보았다면 그 신자를 저지해야 합니다. 이는 올바른 성체신심을 수호하고 성체훼손의 우려를 막기 위한 신자의 당연한 의무입니다. 지난 달 교육내용 중, 성체를 배령할 수 있는 이들이 특별히 정해진 것처럼(제910조 1항, 2항 참조), 교회법은 적법한 이들만이 성체를 배령할 수 있도록 규정하였습니다. 그러나 가령 위급한 상황들, 예를 들어 화제, 홍수가 난다거나 성체모독에 대한 위험성이 존재하는 경우 등 위급한 사목적 필요성에 따라 일반신자도 성체를 배령할 수는 있습니다(제935조 참조).
3. 노자 성체란 무엇입니까?
노자 성체를 의미하는 라틴어 ‘viaticum’은 사람이 여행 중에 필요한 식료품들을 총칭하는 말에서 유래합니다. 교회는 죽을 위험에 처해 있는 신자들에게 노자 성체를 수여하며 기력을 얻게 하고 있습니다(제921조 1항 참조). 노자 성체를 모실 수 있는 경우는 병이나 노환으로 위급한 경우, 화재나 배의 침몰로 생명이 위급한 경우, 사형과 같은 경우 등이 해당됩니다. 임종하는 이들은 비록 같은 날 성체를 영하였더라도 다시 영성체하도록 교회는 권장하고 있습니다(제921조 2항 참조). 그리고 죽을 위험이 지속되는 동안에는 병자는 자주 영성체를 모실 수 있도록 권장하고 있습니다(제921조 3항 참조). 사목자들은 병자를 위한 노자 성체를 너무 미루지 말아야 하며, 특별히 병자들이 완전한 의식이 있는 동안에 노자 성체로 기력을 얻도록 배려해야 합니다(제922조 참조).
4. 성당 사무실에 미사예물봉투가 있는데 미사예물은 무엇인가요?
미사예물은 신자의 지향(intensio, 영어; intention)대로 미사를 봉헌하도록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주례자에게 제공하는 봉헌금입니다. 이를 통해 신자들은 교회의 선익에 기여하고 교회의 교역자들을 지원하며, 교회의 여러 가지 지원 사업에 참여합니다(제946조 참조). 물론 신부님은 비록 소액일지라도 수령된 예물마다 각각의 지향대로 미사를 거행해야 합니다(제948조 참조). 이는 미사예물을 위한 미사가 아닌 신자들의 지향대로 바쳐져야 할 교회의 전통적인 관습이고 귀중한 종교적 가치이기에 그렇습니다. 또한 신부님이 아무런 예물을 받지 않아도 그리스도교 신자들, 특히 가난한 신자들의 지향대로 미사가 거행되기를 교회는 간곡히 권고합니다(제945조 제1-2항 참조).
신자가 자신의 지향을 위한 미사예물을 봉헌하지만, 이는 그 미사를 신자 개인이 사는 상행위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교회법은 미사예물이 어떠한 형태의 영업이나 상행위로 사용되는 것을 전적으로 피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제947조 참조).
5. 미사 중 신부님만 드리는 기도를 신자들과 함께 할 수 없나요?
그리스도교는 유대교의 전통도 함께 지니고 있습니다. 구약성경에는 모든 유대교의 전통이 녹아있기 때문이지요. 특히 제사 전통에서 만큼은 항상 집전자에게 유보되어 왔습니다. 이는 교회의 전례 안에서도 그대로 나타나는데 성찬례 안에서 사제에게만 유보된 첫째 가는 부분, 감사와 축성의 기도로 이루어진 성찬기도(Anaphora)는 미사 봉헌 전체의 핵심과 절정에 해당합니다.성찬 감사기도를 드리는 것은 성품을 받은 사제의 고유한 권한이므로 온전히 사제 혼자만이 바칠 수 있습니다. 부제나 평신도들은 성찬거행 시 집전 사제에게 속하는 고유기도 특히 성찬기도를 같이 말하거나 행동해서는 안 됩니다(제907조 참조). 전례행위는 분명 모든 신자공동체의 행위입니다. 그러나 분명 각자의 역할, 신분, 직무에 따라 참여하는 부분들이 다릅니다(「전례 헌장」, 26항). 이 성찬 감사기도는 사제가 부제나 봉사자, 신자들에게 함께 바치자고 제의해서도 안 되는 부분입니다. 오로지 사제를 통해 바쳐져야 하는 사제의 고유한 부분입니다. 그리고 지난달 교육내용에서 언급했던 “교황 프란치스코와 우리 주교 마티아와 보좌주교들과”라는 부분도 생략해서는 안 됩니다. 이는 보존되어야할 매우 오랜 전통으로서 교회의 친교를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6. 예전에는 남자아이들만 복사를 섰는데 지금은 여자복사도 복사를 서네요?
1917년 구(舊)법전의 공표 전후로 미사 안에서 사제를 도와주는 복사의 필요성을 강조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사제 옆에 응답할 남자복사가 필요했던 것입니다(구[舊]법전 제813조 1항). 그러나 현행 법전에 따라 사제를 돕는 복사가 더 이상 반드시 필요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다만 신자들 중에 적어도 몇 명은 성찬에 참석해야 하며, 복사의 응답은 참석한 신자들이 대신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현재, 여자복사도 필요한 경우에는 허락될 수 있습니다. 제단봉사에 여자를 배제할 엄격한 법적근거가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여자복사를 금한 구(舊)법전 제813조 2항과 달리, 현행 법전은 제단봉사에 여자를 금하는 규정을 두고 있지 않습니다(제230조 3항 참조). 「로마 미사경본 총지침」 70항도 이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목적 이유로 특별히 성인 여성 복사가 필요할 경우에 교구장 주교의 허락을 받아 제단봉사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
성체와 성혈로 우리에게 오시는 주님께서 주시는 평화와 그분의 선하심이 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회 한국 성 막시밀리아노 콜베 관구의 동반자이신 여러분 모두와 함께하시기를 빕니다.
코린토 1서에서 바오로 사도께서는 최후의 만찬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주 예수님께서는 잡히시던 날 밤에 빵을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너희를 위한 내 몸이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또 만찬을 드신 뒤에 같은 모양으로 잔을 들어 말씀하셨습니다. ‘이 잔은 내 피로 맺는 새 계약이다. 너희는 이 잔을 마실 때마다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1코린 11,23-25)
이 가르침은 성찬의 전례에서 늘 반복되며, 이를 통해 예수님께서는 성체와 성혈로 우리에게 오심으로써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겠다.’(마태 28,20)는 약속을 지키고 계십니다.
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은 예수님의 몸과 피이며 바로 예수님 자신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입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을 먹는 사람은 누구든지 영원히 살 것입니다.
그러나 과연 성체와 성혈이 예수님의 몸과 피일까요? 확신하십니까?
성체를 모신 후 몰래 뱉어서 부적이나 책갈피로 쓴다든지, 나이 지긋하신 어르신이 어린 손자나 손녀에게도 성체 달라고 한다든지 또는 자기가 영했던 것을 뱉어서 나눠준다든지, 주일 미사를 빠지거나 다른 대죄를 지었지만 고해성사를 보지 않고도 남들 눈이 부끄러워 그냥 성체를 모신다든지 하는 일들이 있다고 합니다. 잘 몰라서 일수도 있지만, 지독한 성체모독입니다.
이 정도는 아니라 하더라도 그냥 걸어가면서 과자 먹듯이 성체를 영하는 경우나, 성체 영하고 돌아와서 예수님과의 친교를 나누지 않고 곧바로 주위 사람들과 떠드는 경우를 흔하게 봅니다. 성체성사에 대한 확신이 없기에 그렇지 않은가 생각해봅니다.
1252년부터 오늘날까지 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회가 맡고 있는 란치아노의 성체기적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이탈리아 아브루죠 지방의 란치아노에서 지금으로부터 약 1,200년 전 그러니까 8세기경 어느 날 바실리오 수도회의 한 사제가 란치아노 시에 있는 성 레곤지아노에게 봉헌된 성당에서 미사를 거행하고 있었습니다. 성체 축성을 하면서 그 수도사제는 성체 안에 예수님께서 참으로 현존하고 계신지에 대해 의심했습니다. 그 순간 제병은 살로 변하였고, 포도주는 피로 변하며 응고되어 각각 다른 모양과 크기의 다섯 부분으로 나뉘어졌습니다.
너무나 놀란 수사신부는 이 사실을 숨길 수 없어서 미사에 참석한 이들에게 보여주었고 미사에 참석한 신자들은 곧 뛰쳐나가서 이 소식을 란치아노시 전체와 인근 지방들에 알렸다고 합니다.
1970년 의사이자 교수인 오도아르도 리놀리(Odoardo Linoli) 박사에 의해 기적의 성체와 성혈에 대한 최초의 과학적 조사를 시행하였다고 합니다. 그 분석결과에서 중요한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성체 기적의 성체는 참된 살이며, 성혈은 참된 피이다.
둘째, 성체는 심장의 근육조직으로 이뤄져 있다.
셋째, 성체와 성혈은 사람의 것이다.
넷째, 성체와 성혈의 혈액형은 일치하며 AB형이다.
다섯째, 성혈에는 일반 사람에게서 발견되는 정상적인 단백질이 발견되었다.
여섯째, 성혈에는 또한 염화물 · 인 · 마그네슘 · 칼륨 · 나트륨 등의 미네랄이 감소된 양으로 함유되어 있으며, 반면 칼슘은 증가된 양으로 함유되어 있음이 확인되었다.
그리고 리놀리 교수는 다음의 설명을 덧붙였다고 합니다.
첫째, 이 살이 인간의 심장으로부터 해부적으로 잘라온 것일 가능성은 전무하다.
둘째, 그 살과 피를 보존하기 위하여 화학적인 방부 조처를 취한 흔적은 없다.
셋째, 그러므로, 그 살과 피의 단백질과 무기물들이 대기와 미생물의 영향에도 불구하고 부패되지 않고 보존된 것은 절대적으로 예외적인 현상이다.
그 뒤 세계보건기구(WHO: World Health Organization)에서도 이 현상을 15개월간 확인하였는데, 란치아노의 성체 기적은 유례없으며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라고 단정적으로 선언하였습니다.
시에나에서 일어난 또 하나의 성체기적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1730년 8월 14일에 성모승천 대축일 기념행사가 시에나에서 거행되고 있을 때, 비어있는 성 프란치스코 성당에 도둑이 들어와 축성한 성체가 가득 든 성합을 훔쳐 달아났습니다. 성체를 도둑맞았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신자들은 큰 충격에 빠져 성체를 찾을 수 있도록 주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사흘 만에 가까스로 찾았지만, 버려진 성체는 이미 먼지 속에서 너무 더럽혀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연적으로 부패하도록 놓아두었으나 몇 해가 지나도 성체는 변함이 없었습니다.
현대에 와서 과학적인 조사를 하였는데, 성체는 어떠한 방부처리도 되어있지 않고, 그 성분은 갓 구운 제병과 동일하다는 결론이 내려졌습니다. 수세기를 내려오면서 이따금 성체를 신자들에게 영해주어 지금은 223개의 조각이 남아있는데, 28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부패하지 않고 완전한 상태로 보관되고 있습니다.
란치아노와 달리 이탈리아 시에나에서 보관하고 있는 기적의 성체 모습은 우리가 미사성제 때 보는 성체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단지 부패되지 않고 그 상태를 계속 유지한다는 것뿐입니다. 따라서 매일의 미사성제에서 우리에게 오시는 성체는 진실로 예수님의 몸이십니다. 꼭 살과 피로 변화되어야만 참된 예수님의 몸과 피인 것은 아닙니다.
조금은 성체 안에 계신 예수님을 가깝게 느끼셨는지요?
성체를 영함에 있어서 몇 가지 말씀드립니다.
성체 영하는 자세 - 손 올바로 내밀 것, 걸어가면서 먹지 말고 제자리에 서서 영할 것.
영하는 방식 - 씹어 먹든 녹여 먹든 다시 뱉어내지만 말 것.
성체가 떨어뜨렸을 경우 직접 줍지 말고 사제에게 알릴 것.
성체는 하루에 2번까지 영하는 것이 가능함.
비록 여러 성체 기적들이 일어났고 과학적으로 검증되었다 하나, 이를 받아들이고 믿느냐 믿지 않느냐는 우리 자신에게 달려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주님께서는 성체와 성혈로 직접 오실 정도로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십니다. 실로 성체와 성혈은 십자가 나무의 열매이며 하느님 사랑의 육화입니다.
이를 쉽게 잊어버리지 않도록 예수님과 늘 함께하시는 우리 참 어머니 원죄 없으신 성모님과 함께 주님께 나아갑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리라.”(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영성체송)
성체성사 (1)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른다.”(요한 6,51.56) 성체성사는 세례성사, 견진성사와 더불어 ‘그리스도교 입문 성사’입니다. “세례성사를 통해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난 신자들은 견진성사로 굳건하게 되며, 성체성사로 영원한 생명의 음식을”(《가톨릭 교회 교리서》 1212항) 받습니다.
성찬례를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이루신 찬미와 감사의 제사가 거행되며 교회 공동체에 구원의 은총이 주어집니다. 성체를 모심으로써 주님과의 친교가 증대되고, 영적 · 현세적 은총을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체성사는 “그리스도교 생활 전체의 원천이며 정점”(《가톨릭 교회 교리서》 1324항)입니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루카 22,19)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님께서 하신 말씀에 따라 교회 공동체는 성체성사 안에서 주님의 사랑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가운데 그분의 현존을 체험합니다. 동정 마리아의 태중에서 사람이 되신 주님을 오늘 우리는 성체와 성혈 안에서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은 “엎디어 절하나이다. 눈으로 보아 알 수 없는 하느님, 두 가지 형상 안에 분명히 계시오나, 우러러 뵈올수록 전혀 알 길 없삽기에, 제 마음은 오직 믿을 뿐이옵니다. 보고 맛보고 만져 봐도 알 길 없고, 다만 들음으로써 믿음 든든해지오니, 믿나이다, 천주 성자 말씀하신 모든 것을. 주님의 말씀보다 더 참된 진리 없나이다.”(성체 찬미가)라고 성체와 성혈의 신비를 신앙으로 노래합니다. 우리도 미사 때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주님의 죽음을 전하며 부활을 선포하나이다.”라고 노래합니다. 믿는 이들만이 ‘신앙의 신비’를 눈으로 보고, 마음에 새길 수 있습니다. 생명의 빵과 구원의 잔을 나누면서 하느님의 사랑을 깊이 체험할 수 있습니다.
성체성사는 하느님의 자비로운 사랑이 드러나는 자리입니다. 착한 목자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스스로를 바치시는 자리입니다. 그러므로 성체를 받아 모신 우리는 일상에서 예수님의 완전한 사랑의 행위를 기억하고, 기념하며, 현존하도록 해야 합니다. 성체와 성혈을 통해 그리스도와 하나 된 우리가 이제는 ‘또 다른 그리스도’로서 사람들에게 다가가야 합니다. 우리 안에 사시는 주님을 세상이 알아차릴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첫영성체를 하는 어린이들을 맞이할 때마다 부르는 축복의 성가가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 모두의 매일의 마음이 되어야겠습니다. “얼마나 행복할까, 첫영성체 즐거움. 예수님을 모시는 우리 모두들.” [길잡이, 2017년 3월호, 조성풍 신부(사목국장)]
성체성사 (2)
“교회와 세상은 마땅히 성체를 공경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사랑의 성사 안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1380항) 초기 교회 공동체가 ‘주간 첫날’, 곧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주일에 한 자리에 모여 성찬례를 거행한 이래(사도 20,7 참조) 미사는 언제나 그리스도교 신자 생활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루카 22,19)는 주님의 말씀에 따라 거행되는 미사 전례는 교회 공동체 전례 가운데 가장 중심이 되는 전례입니다. 미사는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하나의 예배 행위’를 이루는 ‘말씀 전례’와 ‘성찬 전례’ 두 부분으로 이루어집니다. 곧 미사 전례를 통해 말씀의 양식과 주님의 몸과 피인 성체와 성혈의 양식을 받습니다.
함께 십자성호를 그으면서 공동체 전체가 삼위일체 하느님 사랑의 신비를 실현하기 위해 한 자리에 모였음을 기억하며, 주님께서 함께하심을 서로에게 인사합니다. 자신의 생각과 말과 행동이 하느님 뜻에 일치하기를 갈망하면서, 이마와 입술과 가슴에 십자표를 하며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습니다. 미사 거행을 위하여,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여 예물을 봉헌하며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에 참여합니다. 봉헌된 빵과 포도주는 그리스도의 말씀과 성령 청원 기도를 통해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화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현존하시는 ‘실체 변화’에 ‘신앙의 신비’를 믿음으로 노래합니다. 산 이들과 죽은 이들이 하늘과 땅의 온 교회와 이루는 친교를 기억하며, 하느님뿐만 아니라 형제자매 그리고 공동체와 화해할 것을 결심하면서 서로에게 평화의 인사를 나눕니다. “주님, 제 안에 주님을 모시기에 합당치 않사오나 한 말씀만 하소서. 제가 곧 나으리이다.”라는 백인대장의 신앙고백으로 성체를 모시고자 하는 간절함을 고백합니다. “아멘.”이라고 응답하며 성체와 성혈을 모심으로써 “너희는 받아 먹어라. 너희는 받아 마셔라.” 하고 말씀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가 됩니다. 이제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고, 내가 그리스도 안에 살게 되는 것입니다. 강복과 더불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부활하신 주님과 그분의 평화를 알리기 위해 파견됩니다. “미사가 끝났으니 가서 복음을 전합시다.” 한 마음 한 몸인 가족 공동체를 이루는 이 아름다운 자리에 오늘 누구를 초대하시겠습니까?
[성사, 은총의 표징] 성체성사 (1)
성체성사는 가톨릭 신자들의 신앙생활에서 중심을 차지하는 성사로서, 성찬례 또는 미사라고도 합니다. 미사의 성찬전례 중에 빵이 축성되어 예수님의 거룩한 몸, 곧 성체로 변화되고, 포도주가 축성되어 예수님의 거룩한 피, 곧 성혈로 변하기 때문에 미사를 성체성사라고 하는 것입니다.
성체성사는 최고의 영적 양식입니다
인간은 음식을 먹고 음료를 마셔야만 생명이 유지되고 성장합니다. 영적 생명도 마찬가지입니다. 세례성사를 받고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자녀로 새로 태어난 사람은 영적으로 양육되고 성장하기 위해서 영적인 음식을 먹어야 합니다.
영적 양식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에서 가장 좋은 것이 성체입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전례헌장」10항이 말하고 있듯이, 미사에서 마치 샘에서처럼, 은총이 우리에게 흘러나옵니다. 성체성사의 은총이란 바로 헌신적, 희생적 사랑으로 오시는 예수님 자신입니다. 어린 아이가 부모의 사랑을 받으면서 무럭무럭 자라나듯이, 우리 가톨릭 신자들은 빵의 모습으로 오시는 예수님의 헌신적, 희생적 사랑의 힘으로 영적으로 양육되고 성장합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의무감에서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미사에 참례하는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이유 없이 주일 미사에 빠지면 고해성사 봐야 하니까 미사 얼른 끝내고 오자.’ 이렇게 생각하는 분들이 꽤나 많은 것 같습니다. 미사에 담긴 풍부한 은총을 깨닫고 체험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안타까운 현상이 나타납니다. 성체가 얼마나 소중한 영적 양식인지를 이해하고, 미사에서 풍성히 주어지는 은총을 깨닫고 체험한다면, 기쁘고 활기차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성체성사, 미사에 담긴 뜻은 매우 풍부합니다.
성체성사는 감사의 제사입니다
미사는 예수님의 최후만찬에서 유래합니다. 최후만찬이란 예수님은 돌아가시기 전날 밤에 제자들과 함께 하신 마지막 식사를 말합니다. 이 최후 만찬은 동시에 파스카(과월절) 만찬이었습니다. 파스카 만찬이란 출애굽 사건을 기억하고 찬양하는 식사입니다. 하느님께서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을 모세의 영도 하에 해방시켜 주셨는데, 이스라엘 백성은 매해 그때가 되면 출애굽 사건을 이루신 구원의 하느님을 기억하며 감사하는 만찬을 거행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파스카 만찬입니다.
미사의 기원이 되는 최후만찬은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의 하느님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파스카 만찬의 형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최후만찬에서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베푸신 자비에 감사를 드리면서, 빵과 포도주를 통해서 자신의 십자가상 죽음이 하느님 백성의 구원을 위한 희생제사라는 것을 알려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이 다가온 절박한 상황에서도 하느님의 자비에 대한 감사를 잊지 않으시고, 자신의 고통스러운 십자가 죽음을 우리 구원을 위해 봉헌하신 것입니다.
최후만찬 석상에서 예수님은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루카 22,19)는 명하셨습니다. 그 명에 따라 우리는 미사 때마다 구원을 위한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을 기억하고 감사드립니다. 그래서 1세기 말엽부터 미사를 ‘감사제’라고 불렀습니다. 우리는 미사 중에 하느님께서 사랑으로 세상을 창조하시고, 당신 아들을 통해 우리 죄인들을 구원해주신 것, 성령을 보내시어 우리를 거룩하게 해주신 것에 감사를 드립니다.
교회 전체와 신자들 각자는 하느님의 큰 은혜에 힘입어서 존재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감사의 제사인 미사에 매주일 참예하는 신자라면, 평소의 삶에서도 감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어떤 수도자는 병원에서 환자들에게 관장을 시켜주는 일을 한 달 간 했는데, 그 일을 마치고서 이렇게 고백했다고 합니다. “누구의 부축도 없이 자신의 힘으로 화장실 가서 일 볼 수 있는 것만 해도 하느님의 축복입니다.”
우리 또한 이 수도자처럼 평소에 당연시 여겼던 것이 사실은 하느님의 큰 은혜라는 것을 깨닫고, 진정 감사와 기쁨의 생활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많이 감사할 줄 알면, 많이 기뻐하고 행복할 수 있습니다. 세례 받은 신자는 누구나 복음, 기쁜 소식을 선포해야할 사명을 지니는데, 기쁜 소식을 전하는 사람이 얼굴을 찡그리고 있으면, 누가 그 말을 믿겠습니까?
성체성사에는 부활하신 주님께서 현존하십니다
최후만찬에서 예수님은 빵을 쪼개어 주시면서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 주는 내 몸이다.”고 말씀하셨다. 또한 포도주가 든 잔을 주시면서 “이 잔은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내 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루카 22,19-20) 따라서 미사 때 사제가 축성한 빵과 포도주는 그냥 빵과 포도주로 머물지 않고 예수님의 몸과 피로 변화됩니다. 미사 중에 축성되는 빵과 포도주 안에 예수님이 현존하시고, 그 현존의 힘으로 빵과 포도주는 변화되어 그분의 몸과 피가 됩니다. 이를 거룩한 변화, 곧 성(聖) 변화라고 하는데, 전통적으로 가톨릭교회는 이 변화를 실체변화(實體變化)라고 표현해왔습니다.
실체변화라는 용어는 12세기에 당시의 철학적 개념을 바탕으로 형성된 것입니다. 당시 철학에서는 한 사물이 실체(實體)와 우유(偶有)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했습니다. 실체란 한 사물의 본질로서, 눈으로 보거나 손으로 만져서 알 수 없고 단지 정신으로만 알아볼 수 있습니다. 우유란 한 사물의 겉모양으로서, 이는 색깔, 냄새, 무게 등을 지니고 있어서 감각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철학적 사상을 바탕으로, 미사 때에 빵의 우유, 즉 그 겉모습은 변하지 않지만 빵의 보이지 않는 본질인 실체는 그리스도의 몸으로 변한다는 것이 바로 실체변화가 말하는 내용입니다.
실체변화설이란 말 자체는 실체와 우유라는 철학적 개념 때문에 다소 어렵게 여겨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우리의 실생활에서 드러나는 예를 통해서 보면 이해하기가 그리 어려운 것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이 꽃집에서 장미 한 송이를 사서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의 표징으로 건네준다면, 그 장미는 내용상 다른 무엇이 됩니다. 장미를 선사하면서 자신의 사랑하는 마음, 어떤 의미에서도 바로 자기 자신을 선사하기에 장미는 그 이상의 것으로, 아주 귀중한 표징으로 변합니다.
미사 때에 이루어지는 빵과 포도주의 변화도 이와 비슷하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빵과 포도주를 통해서 우리를 위해 헌신하고 피를 흘리신 자기 자신을 선사하십니다. 그러므로 빵과 포도주는 그 이상의 것이 됩니다. 물론 빵과 포도주의 겉모습은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선물해준 장미가 장미의 모습 그대로 남아 있듯이 말입니다.
그러나 그 선물을 받은 사람에게 그 장미는 보통의 장미가 아니라 그 이상의 것, 사랑을 담은 표징이 되는 것입니다. 이와 비슷하게 미사에서 축성된 빵과 포도주도 그냥 빵과 포도주가 아니라 내용적으로는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표징, 그분 자신을 담은 표징이 되는 것입니다.
빵이 예수님의 몸으로, 포도주가 예수님의 피로 변화되는 것은 우리의 생각이나 상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능력, 즉 성령에 의한 것입니다. 하느님의 영인 성령은 우리의 상상을 뛰어 넘는 변화를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창세기 1장 2절에 보면, 세상이 창조될 때 하느님의 영이 함께 하셨습니다. 성령은 아무것도 없는 데에서 세상 만물이 있도록 하는 창조의 영이십니다. 2장 7절에는 하느님의 숨을 불어 넣으시니까 흙으로 빚어진 아담이 살아있는 인간이 됩니다. 또한 에제키엘서 37장을 읽어보면 하느님의 영의 능력으로 “마른 뼈들”이 새 생명을 얻게 됩니다. 창조의 영인 성령은 생명의 영이시기도 합니다.
이렇게 창조와 생명의 영이신 성령이 미사 중에 임하시어 빵과 포도주를 예수님의 몸과 피로 변화시켜주십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한 성령이시라면 이미 존재하는 것을 다른 것으로 변화시킬 능력도 분명 있으실 것입니다. 성령의 놀라운 능력을 믿는 사람이라면 빵과 포도주가 예수님의 몸과 피로 변하는 거룩한 변화를 믿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미사 중에 사제는 성체를 축성하기 전에 항상 아버지 하느님께 성령을 보내주시기를 청원합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모든 거룩함의 샘이시옵니다. 간구하오니, 성령의 힘으로 이 예물을 거룩하게 하시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되게 하소서”(성찬기도 제2양식).
성령의 힘으로 이루어지는 성변화는 이성으로 완전히 파악해서 개념에 담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단지 이성과 개념을 통해 신비에 접근할 수 있는 실마리를 얻을 수 있을 뿐입니다.
성변화는 성령이 이루시는 신비이기 때문에 말로 다 표현하기가 불가능하고, 궁극적으로는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리는 영성체를 하면서 이 믿음을 분명하게 표현합니다. 사제가 성체를 들어 보이면서 “그리스도의 몸”하면 신자는 “아멘”하고 대답하는데, 아멘은 히브리어로 ‘참으로 그렇습니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아멘”이라는 대답은 눈에 보이는 작은 밀떡이 실상은 예수님의 몸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일종의 신앙고백입니다. 영성체를 하면서 또렷한 목소리로 “아멘”하며 성체에 대한 신앙을 고백을 하면 좋겠습니다.
[성사, 은총의 표징] 성체성사 (2)
성체성사는 희생제사입니다
성체성사가 제정된 최후만찬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빵을 떼어주시면서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주는 내 몸이다”(루카 22,19)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포도주 잔을 돌리시면서 “이 잔은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내 피로 맺는 새 계약이다. 내 피로 맺는 새로운 계약의 잔이다.”(루카 22,20), “이는 죄를 용서해 주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내 계약의 피다.”(마태 26,2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말씀을 통해서 당신 몸도 빵처럼 십자가에서 못 박혀 찢겨지고, 붉은 포도주 같은 피를 쏟을 것임을 암시하십니다. 예수님이 사용하신 아람어에서 몸이란 단지 살덩어리가 아니라 바로 그 사람 자신을 뜻하고, 몸을 내어준다는 것은 남을 위해서 자신을 전적으로 헌신한다는 뜻입니다. 또 피는 몸속에 흐르는 혈액만을 일컫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 자신을 말하는데, 피를 흘린다는 것은 극도에까지, 곧 죽음에까지 이르기까지 자신을 내어놓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로써 예수님은 당신의 십자가 죽음이 모든 이를 위한 헌신의 죽음, 희생 제사라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십자가상 헌신과 희생의 죽음이 교회를 통해 기억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최후만찬에서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루카 22,19)는 명령을 남기셨습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명령에 따라 성체성사를 거행하면서 그분의 십자가상 희생 제사를 기억해왔습니다. 성체성사는 십자가의 희생 제사를 기념하고 재현(再現)하는 예식으로서, 이를 통해 우리는 십자가상 희생제사의 효과를 나누어 받습니다. 그래서 트리엔트 공의회는 이렇게 말합니다. 미사에서는 “십자가 위에서 단 한 번 이루어진 피의 제사가 재현될 것이며, 그 기념이 세상 끝 날까지 계속될 것이고, 그 구원의 효과는 우리가 날마다 저지르는 죄의 용서에 적용될 것이었다.”(『가톨릭교회교리서』 1366항)
성체 안에 현존하시는 예수님은 당신의 십자가상 희생 제사의 은혜를 우리에게 나누어 주시는 동시에 우리도 당신처럼 헌신하고 희생하도록 부르십니다(요한 13,14-17). 우리는 이 부르심에 기꺼이 응답하여 헌신하고 희생하는 사람이 되도록 다짐해야 합니다. 이렇게 성찬례 중에 교회는 예수님의 헌신과 희생을 기념하면서, 이에 능동적으로 응답하여 스스로를 헌신하고 희생한다는 의미에서 성체성사는 교회가 드리는 희생 제사이기도 합니다.
비폭력 저항으로 인도의 독립을 이룩한 마하트마 간디(+1948)는 나라를 망치는 7가지 죄악들 중의 하나로 ‘희생 없는 신앙’을 꼽았습니다. 그것은 신앙인들이 겉으로만 희생의 미덕을 찬양할 뿐 자기희생의 정신을 실천하지 않는 위선을 꾸짖은 것입니다. 자신을 온전히 바치신 예수님을 매 주일 또는 매일 미사 중에 우리 안에 모시면서도 정작 우리 자신은 작은 희생도 꺼려한다면, 그것이 바로 위선적 신앙생활입니다. 가톨릭 신자라면 미사 중에 주님의 십자가상 자기 봉헌과 희생에 깊이 감사하고, 일상의 삶에서 희생을 실천하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성체성사는 일치의 표지입니다
예수님이 친히 말씀하신 대로 우리는 미사 중에 성체와 성혈을 영함으로써 그분과 긴밀하게 일치하게 됩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서 머무른다.”(요한 6,56) 세례성사를 통해서 이루어진 주님과의 일치가 영성체를 통해서 더욱 굳건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과 일치하게 되면 그분의 무한한 자비와 사랑이 우리에게 마치 ‘햇볕’이나 ‘비’처럼 내려옵니다(마태 5,45).
주님과의 일치에서 얻는 자비와 사랑은 우리 신앙 여정에 꼭 필요한 영적인 힘이 됩니다. 사람은 누구에게든 사랑을 받아야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제대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육신의 생명은 밥을 먹어야 유지되지만 영적인 생명은 사랑을 통해서 양육됩니다. 예수님은 성체 안에 현존하시면서 바로 이런 사랑을 풍성하게 우리에게 주시기에 성체는 우리 영혼의 양식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맥락에서 트리엔트 공의회는 성체는 “영혼의 영적 양식”으로서 우리를 “매일의 잘못에서 해방시키고 치명적 죄에 빠지지 않게 해주는 해독제”라고 말합니다.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길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도와준다는 말입니다. 달리 표현하면, 성체를 통한 예수 그리스도와의 일치는 우리를 그분과 좀 더 닮도록 변화시킵니다. 예수님을 닮으면 그분처럼 하느님 아버지를 오롯하게 공경하고 사랑하는 동시에 이웃 사람들, 특히 약한 사람, 버림받은 사람, 낯선 사람들까지도 사랑하도록 노력하게 됩니다. 따라서 성체를 통한 그리스도와의 일치는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다른 형제ㆍ자매들과의 친교와 밀접하게 연결됩니다.
사도 바오로는 성체성사에서 그리스도와 이루는 일치는 그 성사에 참여하는 신자들과의 일치와 뗄 수 없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강조합니다. 성찬의 공동체와의 친교를 하나로 봅니다. “우리가 축복하는 그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동참하는 것이 아닙니까? 우리가 떼는 빵은 그리스도의 몸에 동참하는 것이 아닙니까? 빵이 하나이므로 우리는 여럿일지라도 한 몸입니다. 우리 모두 한 빵을 함께 나누기 때문입니다.”(1코린 10,16-17) 그래서 사도 바오로는 신자들 간의 일치와 친교를 돌보지 않고 성찬례를 거행함으로써 “주님의 몸과 피에 죄를 짓게 됩니다.”(1코린 11,17)라고 경고합니다.
이렇게 영성체를 통한 그리스도와의 일치는 교회 공동체와의 친교와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와의 일치를 원하는 사람은 교회 공동체와의 친교를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 미사 중에 성체를 영하기 위해서 다른 형제, 자매들과의 일치와 친교를 도모하는 기회를 갖습니다. 예를 들면, 미사 시작 예식에서 형제와 자매들에게 자신이 생각과 말과 행위로 죄를 많이 지었다고 참회를 하고, 어려운 처지에 있는 이들을 위해 보편 지향 기도를 바치고 헌금을 합니다. 또한 영성체 전에 ‘주님의 기도’를 바치면서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라고 기도함으로써 서로 용서하겠다는 다짐을 하고, 평화의 인사를 나누면서 서로에게 주님의 평화를 기원합니다.
성체성사를 통해 이루어진 교회 공동체의 일치와 친교는 미사가 끝난 후에도 지속될 수 있어야 합니다. 거룩하게 변화된 빵과 포도주를 먹고 마신 사람들은 거룩한 모습으로, 곧 일상의 삶에서 서로 관심을 갖고 이해하며, 돕고, 나누며, 용서하는 거룩한 사람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교회가 성체성사 통해 그리스도와의 일치를 이루고 신자들 간의 친교를 실현하는 공동체로 변화된다면, 갈등과 분열로 얼룩진 이 세상에 대해서 대조적(對照的)인 모습을 보여주게 됩니다. 즉 교회는 여러 가지 이유들, 예를 들어서 돈, 지역, 학벌, 성별, 인종 등의 이유로 서로 반목, 대립하는 세상에 대해서 다른 모습의 삶을, 진정 인간에게 행복한 일치와 화합의 삶을 살 수 있다는 징표가 되어 ‘세상의 빛과 소금’(마태 5,13-14)이 될 것입니다.
성경 말씀으로 성체성사를 준비합시다
미사, 곧 성체성사는 일곱 성사 중에서 으뜸이 되는 성사로서 풍성한 은총의 샘입니다. 모든 신자들이 매 주일 참예하는 미사가 영적인 기쁨과 힘을 주는 자리가 되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일차적으로 미사를 집전하는 신부님이 열과 성의를 다해야 할 것입니다. 성실하게 강론을 준비하고, 정성을 다해 미사를 거행할 때 신자들의 마음이 활짝 열려서 하느님의 말씀을 귀 기울여 듣고, 성체 안에 계신 예수님을 가깝게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미사를 집전하는 사제의 준비도 중요하지만, 미사에 참석하는 신자들의 준비도 그 못지않게 중요합니다. 루카복음 24장에 나오는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들은 낯선 사람의 모습으로 그들에게 다가오신 예수님의 성경 뜻풀이 말씀을 들으면서 마음이 뜨거워집니다. 그리고 목적지인 엠마오에 이르러서 어느 집에 들어가 빵을 나눌 때 낯선 나그네가 예수님이라는 것을 알아보게 됩니다. 여기서 낯선 나그네의 성경 뜻풀이 말씀은 ‘말씀 전례’를, 빵을 나눈다는 것은 ‘성찬 전례’를 암시합니다. 두 제자가 낯선 사람의 모습으로 오신 주님의 말씀을 경청하면서 마음이 열렸기에 빵을 나누면서 주님의 현존을 강렬하게 체험했던 것입니다.
오늘 날에도 우리가 미사 중에 성경 말씀을 귀담아 듣고서 마음이 열리게 되면, 성체를 영하면서 주님의 현존을 체험하는 일이 충분히 가능합니다. 미사 전에 적어도 15분 정도 준비를 하면 어떨까요? 처음 5분은 마음을 가라앉히는 시간을 갖고, 그 다음에는 ‘매일미사’를 펼쳐서 그 주일의 독서와 복음 말씀을 찬찬히 읽으면서 마음에 새겨두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미사의 말씀 전례 중에 봉독되는 성경 말씀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고, 그러면서 우리 마음이 서서히 열리게 될 것입니다.
마음이 잘 준비된 상태에서 영성체를 하게 되면, 성체 안에 계신 예수님을 좀 더 가깝게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미사에서 주님의 말씀과 현존으로 힘을 얻은 사람이라면 신앙생활을 기쁘게, 활기차게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은총과 축복은 무상으로 주어지지만, 그것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성실한 준비가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