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와 함께] 미사의 구성 (4) 말씀의 전례 ①
말씀의 전례는 그날 전례의 핵심 지향을 담은 본기도 이후에 시작됩니다. 하느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의 의미를 되새기는 미사의 한 부분이 말씀의 전례입니다. 독서와 복음, 그리고 강론으로 이어지는 말씀의 전례는 구약의 말씀, 신약의 서간들의 말씀, 그리고 복음 말씀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무엇보다 말씀의 전례는 독서나 복음을 ‘읽는 것’이 아니라 ‘선포하는 것’입니다. 독서를 읽는 사람은 하느님 말씀이 청중에게 직접 선포되고 있다는 사실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복음 선포도 마찬가지입니다. 복음은 그야말로 ‘기쁜 소식’이고 모든 회중, 나아가 모든 사람에게 하느님의 구원 섭리를 확고히, 선명히 알리는 것입니다.
독서가 끝나고 화답송을 하게 되는데, 화답송은 대부분 시편에서 발췌한 부분을 노래로 봉헌합니다. 하느님 말씀을 듣고 화답하는 회중은 말씀에 대한 감사와 그 말씀이 믿는 이들 안에 온전히 이루어졌다는 기쁨을 시편의 구절들로 노래하게 됩니다. 이어지는 복음 선포 전에 우리는 ‘알렐루야’를 부르게 되는데, ‘알렐루야’는 ‘하느님을 찬양하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독서를 통해 들은 하느님 말씀은 4복음서, 그러니까 마태오, 마르코, 루카, 요한 복음에 나타나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통해 다시 한번 확고히 선포됩니다. 독서의 말씀이 구원을 향한 하나의 약속이었다면, 복음의 말씀은 그 구원이 예수님 안에 온전히 이루어졌다는 완성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복음 선포 전 하느님을 찬양하는 알렐루야를 부르며 구원에의 기쁨을 미리 드러내는 것입니다.
복음이 끝나면 사제는 강론을 합니다. ‘강론’은 그리스말 ‘호밀리아(ὁμιλία)’에서 유래했는데, 대화, 담화, 혹은 해설과 연설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강론은 선포된 하느님 말씀을 설명하는 주석적 관점과 그 설명을 공동체의 상황에 적용하는 해석학적 관점으로 그 성격을 규정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함부로 해석되어서는 안되기에 정통 신학과 신앙 교육을 받은 사제의 고유한 직무가 강론의 자리에서 더욱 도드라지는 것이지요. 또한 사목적 차원에서 말씀은 늘 육화되어 실천되어야 하겠기에 본당 사목의 책임을 지고 있는 사제의 역할은 강론을 통해 분명해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말씀의 전례는 독서와 복음 선포 이후에 일정부분 ‘침묵’의 시간 역시 중요한 요소로 기억합니다. 침묵은 선포된 하느님 말씀을 깨닫는 회중들의 적극적 행위입니다. 온전히 선포된 말씀에 집중하여 자신의 삶과 반추해보는 일이 침묵입니다. 선포된 말씀과 침묵 사이에 말씀의 전례는 하느님과 믿는 이들을 하나로 묶어내는 친교와 일치의 전례가 됩니다.
[전례와 함께] 미사의 구성 (4) 말씀의 전례 ②
사도신경
사제의 강론 이후에 주일이나 대축일에 우리는 ‘신경’을 바치게 됩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신경은 ‘사도 신경(Symbolum Apostolorum)’ 입니다. 그러나 미사 중 공식적으로 사용되기를 권장하는 신경은 삼위일체 교리가 담긴 ‘니케아 콘스탄티노플 신경’입니다. ‘신경’이라고 번역된 ‘Symbolum’은 그리스말 동사 ‘쉼발레인(συμβάλλειν)’에서 유래한 단어로, ‘함께 던지다, 함께 맞춰보다’라는 뜻을 지닙니다. 하나의 신앙 안에 함께 모여 친교와 일치를 이룬다는 것이 ‘신경’이란 말마디가 가리키는 것입니다.
신경의 주요 말마디들의 의미는 이러합니다.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시고’: 예수님은 천상에 계신 초월적 존재가 아니라 인간과 똑같은 삶을 사신 분으로 우리는 믿습니다. 무엇보다 당신의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을 통하여 하느님의 생명과 구원을 안겨주신 분이 예수님이시고 그런 예수님을 통해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끝없는 사랑을 우리는 고백합니다.
‘저승에 가시어’: ‘저승’이라고 번역된 그리스말 ‘하데스(ᾅδης)’는 ‘죽은 자들의 공간’을 가리킵니다. 예수께서 저승에 가셨다는 것은 산 자와 죽은 자 모두의 주님이자 구원자라는 신앙을 담고 있습니다.
‘천주 성부 오른편에 앉으시며’: 7세기 그리스 교부 다마스코스의 성 요한은 ‘성부 오른편’을 신적 영광과 영예의 자리로 이해했습니다. 지상의 삶을 사신 예수께서 성부 오른편에 앉으시는 것은 우리 역시 하느님의 영광과 영예에 함께 참여할 것이라는 희망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거룩하고 보편된 교회’: 우리 교회의 근원은 주님이신 예수님이시기에 거룩합니다. 단순히 인간의 공동체가 아니라 하느님과 인간의 친교가 이루어지는 자리가 교회입니다. 교회가 보편적인 것은 특정 세력이나 계급이 아니라 모든 생명체가 하느님과의 친교 안으로 불리워진 가시적 공간이 교회라는 사실을 또한 기억하는 것입니다.
‘육신의 부활’: ‘육신’이라고 번역한 그리스말 ‘사륵스(σάρξ)’는 ‘살덩어리’라는 의미를 지니는데, 인간을 가리킬 때 사용하는 다소 부정적인 말마디들 중 하나입니다. 육적인 것과 영적인 것을 분리하고 영적이고 정신적인 것만의 우월성과 그 부활을 주장하는 이단을 거슬러 인간 존재 자체의 소중함과 부활을 고백하는 신앙을 담고 있는 말마디가 ‘육신의 부활’입니다.
[전례와 함께] 미사의 구성 (3) 대영광송
대영광송은 주일과 축일에 노래로 봉헌하는 하느님을 향한 찬미가입니다. 참회 예절 이후 당신의 자비로 구원의 길로 들어서는 하느님의 백성이 하느님께 드리는 기쁨과 감사의 기도입니다.
대영광송은 “하느님께 영광”이라는 문구로 시작합니다. 대영광송이 지향하는 대상이 전능하신 하느님이라는 사실을 명확히 합니다. 오늘 우리는 바쁜 일상을 살면서 매 순간 하느님의 구원과 그분의 자비에 대한 감사를 소홀히 할 경우가 많습니다. “하느님께 영광”이라는 문구 하나로도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자리가 그분을 향한 감사의 자리가 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늘 높은 데서”라는 문구는 루카 2,14를 근거로 합니다. 천사들이 베들레헴에서 구세주가 태어나심을 알리는 하나의 선포입니다. 하늘은 더 이상 땅과 구분되고 차별화된 공간이 아니라 우리 인간 세상과 하나 된 하느님 구원의 자리입니다. 하늘의 영광은 예수님을 통해 땅 위에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들”이란 문구 역시 루카 2,14에서 영향을 받았습니다.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들은 특정 세력이나 배타적인 공동체 일원이 아닙니다. 루카 복음은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들의 성격을 보편적인 세상 모든 이로 규정합니다. 땅끝까지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고 모든 사람들이 그분의 사랑 안에 모여들기 바라는 것이 루카 복음의 선포입니다.
대영광송은 하느님을 향하는 찬미가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 나아가 성령께로 향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 드리는 찬미가가 되는 것이지요. 특별히 예수님은 “하느님의 어린 양”으로 소개되는데 이는 요한 1,29에 세례자 요한이 오시는 예수님을 가리켜 사용한 호칭입니다. 하느님의 어린양은 세상의 죄를 없애십니다. 죄로 갈라진 단절과 배척, 그리고 단죄와 심판을 없애시고 사랑으로 친교를 이루시는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대영광송은 “성부 오른편”에 앉아 계신 예수님(마르 16,19)을 언급하면서 구원을 향해 끊임없이 나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내며 끝을 맺습니다. 성부 오른편은 우리 믿는 모든 이들이 갈망하는 구원의 절정입니다. 성부 오른편에 계시는 예수님을 통해 우리는 하느님의 영광 안에 머물고 그분의 영광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게 됩니다.
[전례와 함께] 미사의 구성 (2) 참회 예식
입당 예식 이후 사제는 회중들에게 거룩한 미사를 합당하게 봉헌하기 위하여 우리의 잘못을 성찰하는 시간을 갖자고 권고하는 참회 예식을 거행합니다.
참회 예식은 약간의 ‘침묵’을 가지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침묵’은 바쁜 일상을 벗어나 하느님을 향한 마음과 정신을 다시 가다듬고 자신의 삶 안에 하느님께서 이루어주신 수많은 사랑과 은총을 깨닫고 감사한 마음으로 미사를 봉헌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시간입니다.
참회 예식은 세 가지 형식이 있는데 다음과 같은 문구로 시작합니다.
첫 번째는, ‘전능하신 하느님과 형제들에게 고백하오니…’
두 번째는, ‘진심으로 뉘우치는 사람을 용서하러 오신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세 번째는, ‘주님 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
첫 번째와 두 번째 형식으로 시작하는 참회 예식은 자비송, 그러니까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그리스도님, 자비를 베푸소서,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라는 기도로 마무리합니다.
참회 예식 안에서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할 점은, 개인의 잘잘못에 대한 속죄보다 공동체적 관계에 대한 배척과 단절의 삶을 반성하는 데 있습니다. 삶을 성찰하여 하느님에게로 마음을 모으는 이는 ‘우리’입니다. ‘우리’라는 공동체가 서로의 삶이 하느님을 중심으로 조화와 친교를 이루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참회 예식의 핵심입니다. 루카복음 15장 21절에 아버지를 떠나 속죄하며 돌아온 아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 이런 아들을 아버지는 따뜻한 환대로 맞이하십니다. 나의 완고함과 배타적 자세로 서로를 향한 친교가 무너진 것을 다시 회복하는 일이 참회의 기본입니다.
특별히 우리는 참회 예식 안에서 예수님의 ‘중개자적 자비’를 간절히 바라게 됩니다. 예수님이야말로 하느님과 우리의 관계, 그리고 우리 서로의 관계를 다시 회복시켜주시는 중개자이십니다.(로마 8,34 참조) 예수님을 통하여 세상 모든 이들이 사랑과 친교, 그리고 평화 안에 머물 수 있도록 준비하는 참회 예식은 그야말로 화해의 예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전례 일반과 미사의 Q&A] (42) 성전의 이해 : “독서대”에 대해서
하느님 말씀은 그 존엄성에 비추어 성당 안에 있는 알맞은 곳에서 선포해야 한다. 그리고 이 장소는 말씀 전례 동안 신자들이 자연스럽게 주의를 기울일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이러한 장소에는 일반적으로 고정된 독서대를 놓아야 하며 단순한 이동식 간이 독서대는 놓지 않는다. 독서대는 성당의 구조에 따라 설치하되 신자들이 성품을 받은 봉사자들과 독서자들을 잘 바라볼 수 있고 그들이 선포하는 말씀을 잘 들을 수 있는 곳에 두어야 한다.
독서대에서는 오로지 독서들, 화답송, 파스카 찬송을 한다. 그러나 강론과 보편 지향 기도도 할 수 있다. 독서대의 품위에 비추어 말씀의 봉사자만 거기에 올라갈 수 있다. 새 독서대는 전례에 쓰기 전에 《로마 예식서》에 제시된 예식에 따라 축복한다.(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 309항)
제단 위의 공간은 하나처럼 보이지만, 분명 각각의 공간으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제대, 감실, 그리고 오늘 함께 이야기 나눠 볼 “독서대” 등으로 말입니다. 각 공간은 무의미한 구분이 아닌 분명한 목적성을 지닌 장소입니다. 그중에서도 독서대는 하느님 말씀의 식탁입니다. 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 309항에서도 설명하듯이, 하느님 말씀이 선포되는 알맞은 장소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공간은 미사를 봉헌하는 모든 교우가 자연스럽게 주의를 기울일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고 설명합니다. 이 조항을 자세히 살펴보면, 유난히 바로 “주의를 기울일 수 있도록, 그리고 신자들이 잘 바라볼 수 있도록”이라는 표현을 강조합니다. 이는 단순한 설교나 가르침의 차원을 뛰어넘어 “말씀”이 선포되고, “기도”가 선포되는 공간으로써, 미사를 봉헌하는 교우들의 관심과 시선을 모을 수 있는 곳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아울러, 제대와 마찬가지로, 단순한 이동식이나 간이 독서대의 형식이 아닌 고정된 독서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것 또한 말씀의 중요성을 드러내기 위함임을 인지할 수 있습니다.
독서대에서는 단순히 말씀만 선포되는 것은 아닙니다. 독서를 포함한 “화답송”, “파스카 찬송”, “강론”, “보편 지향 기도”도 할 수 있다고 전합니다. 이를 통해서 말씀만이 선포되는 곳이 아닌, 우리들의 찬미와 기도도 선포될 수 있다는 점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특별히 화답송이나 보편 지향 기도를 해설대에서 하는 경우들이 많습니다만, 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에서는 독서대에서 봉헌할 것을 권장하고 있기에, 우리 본당 전례는 어떻게 봉헌되고 있는지 살펴보는 것도 공동체적인 성찰에서 중요한 부분일 것입니다.
독서대의 재료는 제대와 조화를 이루는 고상하고 튼튼한 재료가 좋다고 전합니다. 그리고 독서대의 크기와 모양 역시 성당의 구조와 제단의 모습과 어울리도록 설치하는 것이 좋습니다. 오히려 재료와 모습보다 중요한 것은 제대와 같은 존경과 품위를 표시하기 위해 구성되어야 한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말씀 전례와 성찬 전례로 구성된 미사, 그 미사가 봉헌되는 제단 안에서는 제대를 성찬 전례의 식탁으로, 독서대는 말씀 전례의 식탁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이해한다면, 공간 안에서 핵심적인 두 공간과 예식이 어떻게 어울려 거행되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전례 일반과 미사의 Q&A] (41) 성전의 이해 : “감실”에 대해서
지극히 거룩하신 성체는 각 성당의 구조와 합당한 지역 풍습을 고려하여 성당의 한 부분에 감실을 만들어 모셔 둔다. 감실은 참으로 고상하고 잘 드러나고 잘 보이면서도 아름답게 꾸민 곳에, 또한 기도하기에 알맞은 곳에 마련해야 한다.
감실은 보통 하나이고 붙박이로 만들어야 한다. 또한 단단하고 깨지지 않는 불투명 재질로 만든다. 그리고 성체를 모독할 위험이 결코 없도록 닫아 두어야 한다. 그 밖에도 전례에 쓰기 전에 《로마 예식서》에 제시된 예식에 따라 축복한다.(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 314항)
성전에 들어가, 제단을 바라보면 하나의 빛을 볼 수 있습니다. 그 빛의 의미는 잘 아시다시피, 감실에 성체가 모셔져 있음을 알려줍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빛을 통해 성체가 모셔져 있음을 알고, 성체조배를 하거나 성체와 함께 머무릅니다. 이렇듯 성전 안에서 “감실”은 성체를 보관하고, 특별히 성체 훼손을 막으며, 나아가 교우들이 성체 앞에 머무르며 기도하도록 돕는 역할을 합니다. 감실의 위치에 대해 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에서 명확하게 제시됩니다.
표지라는 의미에서 볼 때, 미사가 거행되는 제대에는 지극히 거룩하신 성체가 보존되는 감실을 두지 않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므로 교구장 주교의 판단에 따라 감실은 아래와 같이 만드는 것이 좋다.
ㄱ) 예식을 거행하는 제대가 아닌 가장 적절한 곳에 알맞은 형태로, 제단 안에 설치한다. 더 이상 예식 거행에 쓰지 않는 옛 제대 위에 설치할 수도 있다.(303항 참조)
ㄴ) 성당과 유기적으로 연결되고 그리스도 신자들의 눈에 잘 띄며 개인적으로 조배하고 기도하기에 알맞은 다른 경당에도 설치할 수 있다.(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 315항)
이 내용에 따르면, 제대에 성체가 보관되는 감실을 두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예를 들어, 제대 앞 부분에 성체를 보관할 장소를 마련하여 일체형으로 만드는 것들에 대해 반대한다고 전합니다. 아울러, 감실 위치에 대한 부분은 교구장 주교의 판단에 따라 인준받아야 한다고 설명합니다.
감실의 형태와 구성, 위치에 대해서 가장 중요한 원칙은 성체가 훼손되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아울러 그리스도 신자들의 눈에 잘 띄게 하여 조배하고 기도할 수 있도록 마련되어야 합니다.
316. 전통 관습에 따라 감실 옆에는 기름이나 초를 사용하여 언제나 특별한 등불을 켜 놓아 그리스도의 현존을 나타내고 경의를 표시한다.
317. 지극히 거룩하신 성체 보존에 관하여 법 규범으로 정해진 다른 모든 사항도 잘 지켜야 한다.
그리고 316, 317항에서는 감실등에 대한 부분과 성체 보존을 위한 법 규범까지 제시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특별한 등불”은 그리스도가 모셔져 있음을 알려주는 표지입니다. 우리 역시 이 빛을 바라보며, 주님의 현존을 의식하고, 늘 성체 앞에 머무르며 함께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