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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말씀만 하소서

[전례] 성체성사 (1) - 주님을 기억함

작성자은총의샘|작성시간26.06.20|조회수41 목록 댓글 0

[전례] 성체성사 (1) - 주님을 기억함

 

이 글에서는 성체 신비 공경에 관한 훈령”(예부성성, 1967. 5. 25.)을 중심으로 성체성사 신학을 해설하고자 한다.

이 훈령은 그 이전에 반포한 여러 문헌들, 곧 회칙, “하느님의 중개자”, 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전례헌장”, 전례 개혁에 따른 후속 조처들에 나타난 일반 원칙들을 신자들과 성직자들에게 구체적으로 적용하기 위한 실천적인 규범들을 담고 있다.

이 훈령은 성체 신비를 대하는 신자들에 대한 사목적 배려에서 나온 것이다. 그래서 어떤 이는 이 훈령을 성체성사에 관한 사목지침이라고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

이 훈령은 성체 신비 공경에 관한 교의(敎義)를 종합적으로 설명하고, 신자들이 거룩한 표징들의 뜻을 이해하여 전례에 능동적으로 참여하고 전례를 통하여 양성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1. 성체성사에 관한 교의

성체 신비 공경에 관한 훈령은 미사에 관한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을 종합적으로 정리하면서 비오 12세의 하느님의 중개자회칙에서부터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에 이르기까지 많은 문헌들을 인용하였다. 이 훈령은 여러 문헌들을 인용하되 성체 신비를 가르치는 교의적인 원칙들 가운데서도 특히 성체 신비에 관하여 그리스도 백성이 가져야 할 태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3항 참조). 그러면서 이 훈령은 교의와 삶의 밀접한 관계를 다시 한번 확인하고, 성체성사가 하느님 백성을 이루게 하고 그들을 성장시킨다는 사실을 크게 강조하고 있다.

성체 신비 공경 훈령3항은 그 이전의 문헌들이 가르치는 주요 교의를 일곱 가지로 요약하고 있는데, 이것은 다시 첫째, 셋째, 다섯째의 세 가지 기본적인 교의로 모아진다. 그 교의들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 사람이 되신 하느님의 아들께서는 죽음과 부활로 죽음을 이기시고 사람을 구원하시어 새로운 피조물로 변화시키셨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영을 주시어 온 민족 가운데서 불러내신 당신의 형제들을 신비롭게 당신 몸이 되게 하셨다 이 몸 안에서 믿는 이들에게 그리스도의 생명이 퍼져나가고, 믿는 이들은 성사를 통하여, 고통을 받으시고 영광스럽게 되신 그리스도께 결합된다. 이 결합은 신비롭게 이루어지는 것이지만 실제적인 결합이다.

구세주께서는 넘겨지시던 날 밤에 마지막 만찬을 드시면서 당신의 살과 피로 이루어지는 성찬의 제사를 세우셨다. 이는 구세주께서 다시 오시는 날까지 십자가의 제사를 영속하게 하고, 당신의 배필인 교회에 당신의 죽음과 부활을 기념하게 하시기 위함이었다. 이 제사는 예배의 신비요 일치의 표징이며 사랑의 고리요 파스카 잔치이다. 이 잔치에서 우리는 그리스도를 받고 은총으로 가득 차, 미래에 누릴 영광의 보증을 받는다(전례헌장, 47항 참조). 그러므로 미사와 주님의 만찬은 같은 것으로 따로 뗄 수 없는 것이다. 미사는 십자가의 제사를 계속하는 제사이며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루가 22,19) 하고 말씀하신 주님의 죽음과 부활을 기념하는 것이다. 또한 미사는 거룩한 잔치이니, 이 잔치에서 하느님의 백성은 주님의 살과 피를 받아모시며 파스카 제사에 참여하고, 그리스도의 피로써 한 번에 영원히하느님과 사람이 맺은 새로운 계약이 계속 효과를 갖게 한다. 이로써 하느님의 백성은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주님의 죽음을 선포하며 아버지의 나라에서 이루어질 마지막 날의 잔치를 미리 보여주고 참여한다.

) 우리가 미사라고 부르는 성체성사의 거행은 그리스도의 행위일 뿐 아니라 교회의 행위이다. 그리스도께서는 교회 안에, 피를 흘리시지 않고 십자가에서 이룩하신 제사가 세세에 계속되게 하시며 사제들의 직무를 통하여 아버지께 세상의 구원을 위해 당신 자신을 바치신다. 그리스도의 배필로서 그분의 직무를 수행하는 교회는 그분과 함께 사제요 제물이 되어 그분을 아버지께 바치며 그분과 함께 자기 자신을 온전히 봉헌한다.이처럼 교회는, 감사기도(prex eucharistica)를 바치며 특히 파스카 신비를 통하여 베풀어주신 모든 은혜에 그리스도와 함께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감사하고 아버지의 나라가 오기를 간청한다.

) 미사 성제로 거행하는 성체성사는 미사를 거행하지 않을 때 하는 성체조배의 원천이며 목표이다. 성체는 미사를 통해 이루어질 뿐만 아니라 미사에 참여할 수 없는 신자들에게 성체를 모셔가 그들이 그리스도와 하나 되고 미사 안에서 이루어지는 제사에 합치되게 하려고 보존한다.

그러므로 성찬의 제사는 교회의 모든 예배와 그리스도 신자생활의 샘이며 정점이다. 신자들은 사제와 하나되고 마음을 다하여 아버지께 거룩한 제물을 봉헌하며 같은 제물을 성찬례 안에서 받음으로써 감사와 속죄, 기원과 찬미의 이 제사에 온전히 참여한다.

1) 미사는 제사요 기념제이며 잔치이다

미사는 십자가 제사를 영속화하는 제사요 주님의 죽음과 부활을 기억하여 거행하는 기념제이며 거룩한 잔치이다. 이 세 가지 의미는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신자들은 미사를 단순히 하느님께 드리는 예배로만 생각한다. 그들은 미사의 참 뜻을 총체적으로 생각하지 못한다. 성찬례는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룩하신 구원을 기념하고 거행하면서 그 구원의 신비를 성사로 실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성찬례의 거행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인간의 역사를 구원의 역사가 되게 한다. 여기에서 교회의 신비가 드러난다.

교회가 거행하는 성찬례는 그리스도의 구원 사건을 재현하고 그것이 지닌 초자연적인 은총을 전달해 줄 뿐만 아니라 성서에서 그토록 자주 말한 때가 차서를 현실화한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구원의 때가 참이 미사 안에서 실현된다.

미사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기념이다. 이렇게 말할 때에는 미사가 지나간 역사를 재현하는 데에 머무르는 것처럼 보인다. 미사가 단순히 과거의 사건을 기억하는 데에 머무르는 것이라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그 구원역사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그러나 미사는 그리스도께서 세상에서 이룩하신 구원의 신비를 지금 여기에그대로 다시 실현하는 것이기에 과거의 사건이 미사의 거행을 통하여 현재의 사건이 된다. 그래서 구원의 사건은 우리 조상들의 사건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사건이 된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완전히 새로운 계약의 백성임을 확인하고, 종말론적인 구원의 싹을 미리 본다. 마침내 우리는 미사가 지닌 또 다른 차원, 곧 종말론적인 차원을 이해하게 된다. [경향잡지, 199611월호, 김종수 요한 신부(주교회의 사무총장)]

 

 

[전례] 성체성사 (2) - 주님을 기억함

 

미사가 그리스도의 죽음을 기념할 뿐 아니라 부활도 기념한다는 사실이 특별히 강조되어야 한다. 예수님의 부활은 단지 죄를 용서하고 은총을 주는 샘일 뿐만 아니라 인간의 구원이 전인적(全人的)임을 알려주고 인간도 같은 영광에 이르게 됨을 보증하는 신비이다. 그래서 성 토마스는 성체성사를 미래 영광의 보증(pignus futurae gloriae)”이라고 했다. 또한 부활은 하느님과 인간의 완전한 만남을 미리 보여준다. 그리고 우리의 부활은 구세주이신 하느님의 자비롭고 거룩하게 하시는 은총을 입게 할 뿐만 아니라 대사제이신 그리스도께서 바치신 완전한 감사의 제사에 참여하게 한다. 이로써 하느님 백성은 기도하는 공동체가 된다. 미사에서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한다는 것은 성체성사가 지닌 예배의 차원과 공동체적이고 종말론적인 차원을 분명히 깨닫게 해준다. 성체성사에 대한 이러한 이해는, 그리스도인은 죄와 옛 사람에 대해 죽을 뿐만 아니라 이 시간 안에서 종말을 미리 체험하며 사는 새로운 사람임을 드러낸다.

미사는 제사이며 잔치라는 사실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미사를 온전히 잔치라는 관점에서만 보아서도 안되고, 또 잔치라는 측면을 영성체에 국한해서 생각해서도 안된다. 미사는 그리스도의 죽음을 기념하는 성사요 제사이며, 빵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로 축성되어 음식과 음료로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지고, 그리스도인들은 같은 식탁에서 한 마음으로 그것을 받아먹고 마심으로써 하나가 된다는 뜻에서 잔치이기도 하다.

성체 신비 공경 훈령은 미사가 제사요 잔치라는 두 가지 측면의 밀접한 관련성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주님께서는 미사 성제 안에서 신자들의 영적 양식으로서 빵과 포도주의 형상 안에 성사적으로 현존하기 시작하실 때 실제로 희생되신다”(3b). 그러므로 영성체를 제사의 관점에서 분리시킨다는 것은 옳지 않다. 영성체는 다만 그리스도의 실제적인 몸을 받는 것만도 아니고 십자가 제사의 효과만을 누리는 것도 아니다. 영성체는 잔치의 형식으로 표현되기는 하지만 그리스도의 신비체인 공동체가 구체적으로 제사에 참여하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사실 제사의 참여 없는 영성체는 없고, 또한 그리스도와 통교 없는 제사 참여도 없다. 이 점에 대해서 성체 신비 공경 훈령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주님의 만찬에 참여하는 것은 우리를 위해 당신 자신을 아버지께 제물로 바치신 그리스도와 언제나 실제로 통교를 나눈다는 것이다”(3b).

그리스도와 나누는 통교는 영성체로써 실제로 이루어진다. 그리스도와 신자들의 통교는 성사적인 영성체로써 가장 효과적으로 실현되며, 그리스도와 친교를 나누는 신자들 모두를 믿음과 사랑 안에 하나 되게 한다. 따라서 미사는 하느님께 부름을 받은 모든 이들을 일치시키는 사랑을 나누는 표징이 된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제사를 성사적으로 재현한다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교회 공동체는 하느님 아버지께 당신 자신을 봉헌하신 그리스도의 제사를 기념하며 그리스도와 함께 아버지께 예배를 드리고 형제들과 한 식탁에서 친교를 나눈다.

2) 미사는 그리스도 신비체의 제사이다

위에서 말한 성체성사 거행이 지닌 잔치의 특성은 미사가 공동체의 행위라는 사실에서 나오는 것이다.

미사는 그리스도의 제사일 뿐 아니라 교회 공동체의 제사이다. 미사는 사제가 설령 혼자 드리는 일이 있게 되더라도 교회의 행위이고 공동체의 거행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어떤 때 어떤 형태의 미사를 드리더라도 미사는 사제이시며 제물이신 그리스도와 함께 교회가 드리는 제사이다. 이때 교회는 그리스도처럼 사제가 되고 제물이 된다. 그런데 이 교회는 직무 사제직을 수행하는 이들과 보편 사제직을 수행하는 이들로 이루어져 있기에 사제들뿐만 아니라 일반 신자들의 능동적 참여가 강조된다.

미사는 직무 사제들에게만 유보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몫이 다르기는 하지만 일반 신자들도 그들이 지닌 보편 사제직을 수행하며 직무 사제들과 함께 공동체의 제사를 드리는 것이다.

3) 미사는 그리스도인의 예배이며 삶이다

성체 신비 공경 훈령은 미사가 교회의 예배이며 그리스도 신자 생활의 중심임을 말하고 있다(3e).

) 미사성제로 이루어지는 성체성사의 거행은 미사 밖에서 성체께 드리는 예배의 기원이며 목표이다.

 

 

 

) 미사가 끝난 뒤에도 남아있는 거룩한 성체는 미사에 참여할 수 없는 신자들이 성체를 받아모심으로써 그리스도와 하나 되고 미사에서 바쳐진 제사에 참여할 수 있도록 보존된다.

) 성찬의 제사는 교회의 모든 예배와 모든 그리스도 신자 생활의 원천이며 절정이다.

신자들 가운데에는 열심히 성체조배를 하면서도 그 성체를 이루는 미사에 소홀히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성체는 미사에서 축성된 것이며 성체조배보다도 마사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우쳐줄 필요가 있다. 모든 성체 공경 예배는 미사에서 절정에 이른다는 것을 교육해야 한다. 미사와 연결되지 않은 성체조배는 자칫 주술적으로 흐를 위험이 있다. 미사는 미사 밖에서 이루어지는 성체조배를 가능하게 하는 원인이며 그것의 목표임을 분명히 깨닫게 해야 한다.

미사는 모든 성체조배의 목표이며 교회의 모든 예배와 신심활동의 첫자리를 차지한다. 그러나 성체현시나 성체강복 그리고 성체거동과 같은 여러 형태의 성체 공경 행위가 이루어질 때 그것들과 미사의 관련성을 강조하는 사목자를 보기가 어렵다. 오히려 미사보다도 그러한 성체 공경을 더 강조하는 듯한 인상을 받을 때가 더 많다.

그리스도 신자 생활은 모두 성체성사의 거행 안에서 이루어지는 하느님과 인간의 만남을 준비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미사는 구원을 이루는 제사요, 교회의 친교를 드러내는 잔치이며 종말론적인 파스카이다. 이러한 세 가지 뜻과 관련을 맺지 못하는 등의 성체조배 공경 행위는 주님의 은총만을 비는 기복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스도 신자 생활은 그리스도와 온전히 하나 되어 그리스도처럼 날마다 자기 자신을 하느님께 바치는 봉헌의 삶이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 신자는 미사를 거행하며 봉헌의 삶을 배우고 미사에서 그렇게 살 수 있는 힘을 받는다. 미사는 바로 이러한 봉헌생활의 원천이며 절정이다.

 

 

 

 

[전례] 성체성사 (3) - 주님을 기억함

 

2. 성체성사를 거행할 때 지켜야 할 규범

성체 신비 공경에 관한 훈령은 성체성사가 지닌 교의적인 관점뿐 아니라 신자들의 공동체에서 성체성사를 거행할 때 지켜야 할 일반적인 규범들을 제시하고 있다.

1) 첫째로 공동체의 일치가 분명히 드러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성체성사를 거행하면서 그 성사의 거행 안에서 그리스도 백성의 본성인 완전한 일치가 이루어진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세례를 통해서 모든 이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유다인이나 그리스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아무런 차별이’(갈라 3,28) 없게 되었으므로, 모든 인종과 연령과 신분의 신자들의 집회는 성체성사 안에서 교회의 본질을 가장 잘 드러내야 한다”(16).

이 훈령은 또 전례헌장 41항과 교회헌장 26항을 인용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일치의 뛰어난 표본은 탁덕들과 다른 봉사자들과 함께 주교가 주례하는 같은 성체성사와 같은 기도와 같은 제대에 모든 하느님 백성이 완전하고 능동적으로 참여할 때이다”(16). 교회 공동체의 일치는 그리스도를 대리하는 주교와 탁덕들과 함께 성체성사를 거행할 때 더 잘 드러난다는 것이다.

성체성사는 온 인류를 불러모은십자가 제사를 지금 여기에실현하는 신비이다. 그것은 곧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된 온 인류의 표징이다. “미사 성제 안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온 세상의 구원을 위해 당신 자신을 봉헌하신다. 그러므로 회중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된 인류의 표본(typus)이며 표징(signum)이다”(18). 각 지역 교회는 이렇게 성체성사를 거행하면서 온 백성이 같은 주님 안에 한 백성임을 깨닫고 확인한다. 그리스도께서 여러 개로 쪼개진 성체 조각 안에도 온전히 현존하시듯이, 하느님 백성 전체 안에 현존하시는 그리스도께서는 성체성사를 거행하려고 모인 각 지역 교회의 회중 안에도 온전히 현존하신다.

2) “성체 신비 공경 훈령은 성체성사 안에서 백성의 하나 됨을 강조하여 한 성당 안에서 두 가지 전례를 동시에 집전하지 않도록 주의를 주고 있다. 한 성당에서 같은 시간에 여러 미사를 거행하거나 성무일도를 바치거나 설교를 하거나 세례를 주거나 혼인성사를 집전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17). 이것은 회중의 주의가 여러 곳으로 분산되는 것을 막고 분심이 들지 않게 하려는 배려이지만 더 깊은 뜻은 단일한 공동체의 일체성을 강조하는 데에 있다. 한 성당에서 동시에 여러 미사나 또 다른 성사를 거행한다면 성체성사 거행 안에서 온 백성이 하나가 된다는 사실을 누가 믿을 수 있겠는가? 누구나 제각기 다른 지향을 가지고 있는 다른 집단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러한 규범은 고해성사에도 똑같이 적용해야 할 것이다. 미사가 거행되고 있는 성당에서 고해성사를 보려고 많은 신자들이 줄을 서있는 모습은 미사를 거행하고 있는 신자들에게 분심을 줄 뿐 아니라, 미사 성제의 가치가 무시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

3) 미사 성제 안에서 가장 잘 드러나는 그리스도 백성의 일치를 강조하고자 이 훈령은 언어를 달리 하는 여행자들도 그 지역의 미사에 참여할 수 있도록 배려하라고 목자들에게 권고하고 있으며(19), 성직자가 아닌 수도자들의 작은 단체나 그와 비슷한 다른 단체들은, 특히 주일과 축일에 본당 사목구의 성당에 가서 미사에 참여하도록 권고한다(26). 또 어떤 특정한 단체의 회원들을 위한 미사를 주일에 거행하여 공동체의 일치를 드러내는 데에 장애를 주지 않도록 주의를 주고 있다. 어쩔 수 없이 주일에 그러한 단체를 위한 특별지향을 가지고 미사를 거행하더라도 본당 신자공동체의 단일성을 유지하도록 노력해야 한다.”(27)고 말한다.

4) 이 밖에도 성체 신비 공경 훈령은 보조 봉사자들의 태도, 미사중계나 촬영 때의 주의사항, 성당 내부의 장식 등에 대해서도 지침을 주고 있다. 보조 봉사자들의 태도를 규정하고 있는 조항을 보면 거룩한 전례를 올바로 거행하고 신자들이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봉사자들은 전례규범에 따라 정확하게 그들의 소임을 다할 뿐 아니라 그들의 태도로써 거룩한 것의 뜻을 깨우쳐줄 수 있도록 행동해야 한다.

신자들은 미사 때에 하느님 말씀의 선포와 해설로 양육될 권리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사제들은 정한 때나 필요한 때에 강론을 할 뿐 아니라 그들 자신이나 다른 봉사자들이 맡은 직무에 따라 큰소리로 말하거나 선포하거나 노래하여 신자들이 예식을 분명하게 깨닫거나 그 뜻을 깨우칠 수 있게 하여 그때그때 화답하고 참여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어야 한다. 이러한 봉사자들은 특별히 신학교와 수도원에서 적절히 연습하여 이러한 전례봉사를 위한 준비를 갖추어야 한다.”(18)고 말한다.

또 미사중계와 촬영할 때에 교구 직권자들은 미사중계로 말미암아 신자들의 기도와 참여가 방해를 받지 않도록 보살피고, 전례개혁의 원칙에 따라 거룩한 신비를 잘 거행하도록 배려해야 한다”(22). “전례거행 특히 미사가 촬영 때문에 방해를 받지 않도록 크게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타당한 이유가 있어서 촬영을 할 때에는 교구 직권자가 정한 규범에 따라 크게 신중을 기해야 한다”(23).

성당 내부의 장식이 지닌 중요성을 언급하고 있는 조항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성체성사를 거행하고 성체를 보존하며 신자들이 모이고 우리를 위해 제대 위에서 봉헌되신 하느님의 아들 우리 구세주께서 현존하시는 기도의 집은 신자들의 유지와 보살핌으로 존경을 받고 기도와 거룩한 예식을 거행하기에 맞갖고 깨끗해야 한다(사제직무교령, 5).

목자들은 거룩한 장소의 적합한 배치가 전례를 올바로 거행하게 하고 신자들이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데에 크게 도움을 준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개혁된 전례에 맞게 성당을 건축하고 제대를 만들고 장식하며 주례와 보조 봉사자들의 자리를 마련하고 성서봉독을 위한 자리와 회중석 그리고 성가대의 자리를 정할 때에 목자는 전례헌장 실행 규정’(Inter Oecumenici) 90-99항에 정한 원칙과 규범을 따라야 한다. 특히 주 제대는 언제나 그리스도 자신의 표징임이 드러나도록 자리를 정하고 만들어야 한다. 제대는 구원의 신비가 이루어지는 자리이고 회중의 중심으로 가장 크게 존경을 받아야 한다.

또한 성당을 보수할 때에는 귀중한 성미술품들이 파손되지 않게 해야 한다. 전례쇄신에 따라 (내부를 변경해야 할 때에는) 교구 직권자의 판단에 따라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고, 필요하다면 그에 관련된 사람들의 동의를 얻어 귀중한 미술품들을 현재 보존하고 있는 장소에서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한다. 그리고 새 장소에서도 작품의 품위가 손상되지 않도록 세심한 지혜와 주의를 기울여 적절하고 합당하게 안치해야 한다. 목자들은 제의의 재료와 모양이 전례거행을 품위있게 하는 데에 크게 영향을 준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한다. 그러나 제의의 재료와 모양은 화려하기만 한 것보다는 고상한 아름다움을 지니도록’(전례헌장, 124) 해야 한다”(24).

 

 

 

 

 

[전례와 상징] 성체성사, 그 상징들

 

하느님은 당연히 교회나 성사(聖事)보다 위대하다. 그러므로 교회는 성사 집행 과정에서 예수님 또는 하느님이 보이지는 않지만 주인으로서 직접 이를 행하심을 깨우쳐준다. 성사가 모든 사람을 위한 희망의 표지란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세례를 받고 혼인성사와 기타 성사 생활을 통하여 신자들은 하느님이 모든 사람에게 선하시고 구원을 주신다는 신뢰심을 갖게 된다. 그러므로 성사는 모두 교회의 예배이다. 그중 가장 직접적이고 명백한 예식이 성찬의 전례이다.

공동체인 교회는 이 전례를 거행할 때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사 자체임을 드러낸다. 2차 바티칸 공의회는 성체성사의 빠스카 신비(예수의 죽음, 부활, 승천) 그리고 공동체적, 종말론적인 체계를 완성하였다. 그리스도는 미사 중에 현존하신다. 골고타에서 홀로 드리신 제사가 아니라 당신이 다시 오실 때까지 교회와 함께 기념하고 현실화하는 제사이다. “이 제사는 자비의 성사요, 일치의 표징이요, 사랑의 맺음이며, 우리에게 장래 영광을 보증해 주는 빠스카 잔치이다”(전례헌장 47).

성사는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 외적인 표정이다. 표징이란 무엇인가. 상징이란 말과 비슷하지만 구별할 필요가 있다. 표징(表懲)이란 일정한 내용을 대신하여 표시하는 것이며 기호(記號 : sign)라고도 한다. 그 표시에 따르는 실재를 생각나게 한다. 상징(symbol)은 서로 다른 사항이 어떤 유사성에 의하여 서로 관련을 맺게 되는 만들어 것이다. 즉 해석자에 의하여 만들어지는 표징이다. 종교적으로 하느님과 인간, 하늘과 땅, 영과 육이라는 두 세계가 교회 전례를 통하여 서로 만나게 된다. 이렇게 상징이란 표시하는 바를 불완전하게나마 드러내는 형태로서 본성상(本性上) 볼 수 없는 실재를 가지적(可知的)으로 현존케 하는 것이다.

성체성사의 가장 자명한 표정은 빵과 포도주인 음식이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식사하는 과정에서 성체성사를 제정하셨다. 먹고 마시며 대화하고 삶을 나누는 인간적이면서도 거룩한 상징을 남겼다. 빵과 포도주는 팔레스티나 지역에서 주식으로 사용되었다. 음식을 통한 영양 공급을 상징하면서도 빵과 포도주는 자연적인 산물이 아니라 인간의 노동과 지식을 통하여 만들어진 공정이 깃든 산물이다.

미사 중 제물 봉헌을 하며 사제는 땅을 가꾸어 얻은 이 빵을하고 기도드린다. 또한 예수님은 내가 바로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고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내 살은 참된 양식이며 내 피는 참된 음료이기 때문이다”(요한 6,35.55).

빵은 일과 노동의 상징이요, 생명의 상징이며 함께 나누어질 경우 가족적이며 사회적인 성격을 띤다. 포도주는 흥을 돋운다. 인간에게 활력과 의욕을 북돋아준다. 잔치상에 포도주를 빼놓는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포도주를 나눔은 빵과 마찬가지로 나눔과 친교, 일치의 상징이며, 더구나 제사술[祭酒]로 사용한다는 것은 피를 흘림, 즉 생명의 희생을 뜻한다. 빵과 포도주는 각각 그리스도께서 실제로 온전히 현존해 계시다는 사실을 보증해 준다. 또한 유다인들에게는 식사가 종교적으로 축복이요 감사이다. 만찬은 희생 제사이며 기념이고 그리스도의 현존, 교회 공동체의 건설이라는 다양한 측면이 있다.

예물 준비와 봉헌

미사 각 부분은 말씀의 전례까지도 모두 주님과 만나고 삶을 나누는 식탁이기에 중요한 상징과 표정으로 되어 있지만 지면 관계상 성찬 전례의 중심 부분만 몇 가지 살펴본다.

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신자들은 축성할 제병을 미사 시작 전이나 봉헌 때 각자 스스로 제대 앞에 마련된 성합에 넣을 수 있도록 하였다. 초대 교회에서는 빵과 포도주를 제물로서 준비하였는데 신자들은 자기 몫 이상을 희사하였고 교회는 그것으로 운영비를 충당하고 가난한 자를 돕는 데 사용하였다. 현재의 헌금도 이런 뜻이 남아 있다.

사제가 빵과 포도주를 각각 들고 생명을 주는 음식, 영신 생명의 음료가 되도록 기도한다. 이것은 고대 유다인들의 식탁 기도에서 유래한 것이다. 포도주에 몇 방울의 물을 타는 것은 나약한 한계성을 지닌 우리가 영원하신 그리스도의 천주성에 참여한다는 뜻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신자의 자세는 자신을 제물로 바치신 그리스도와 함께 자기 자신과 일상 생활을 바치는 온전한 정성이다.

성찬 기도

미사의 절정은 감사의 성찬 기도이다. 이 기도는 감사송으로 시작하여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함께라는 기도와 신자들의 응답인 아멘까지를 포함하고 있다. 성찬 기도의 중심은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 먹어라. 이는 너희를 위하여 바칠 내 몸이니라내 피의 잔이다라는 내용이다. 이 기도와 동시에 빵과 포도주는 예수님의 몸과 피로 변화하여 현존하시게 된다. 사제는 능력이 아니라 위임받은 대리로서 성령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인격안에서 이를 행한다. 그래서 사제가 드리는 성찬 기도는 개인 자격이 아니라 공동체의 이름으로 바쳐지는 것이다.

사제가 성찬 기도를 시작하면서 준비한 제물 위에 십자 표시를 하고 두 손을 덮어 성령을 통하여 거룩한 변화가 이룩되기를 기도한다. 성체와 성혈을 높이 들 때 종을 치는데 이때 신자들은 흠숭의 표시를 하고 성체를 우러러보며 내 주시요, 내 참 천주시로다라고 기도할 수 있다. 이는 교황 비오 10세가 대사를 얻도록 한 기도이다. “그리스도를 통하여하면서 사제가 빵과 잔을 위로 들고 기도하는데 이는 기도와 동작의 일치를 보이며 우리의 봉헌과 구원을 동시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성찬식

주의 기도로 성찬식이 시작된다. 영성체 전 기도로 바친 것은 4세기부터이다. 하느님 나라가 우리의 생활과 우리가 속한 이 세상에서 자라나기를 그리스도께서는 원하신다. 성찬식은 하느님 보살핌의 섭리이고 하느님께 대한 봉사의 다짐이다. 우리를 배불리고 살게 하는 빵을 먹는 영성체는 미사 전체의 표징이요 열매이다.

빵을 나눔

최후 만찬 식탁에서 예수님은 빵을 떼어 제자들에게 나누어주셨다. 구약 시대에는 빵의 나눔이 가정 생활 관습이었다.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으나 그분께서 빵을 나눌 때에야 비로소 제자들이 그분을 알아보았듯이 현대의 그리스도인들도 나눔을 통하여 일치를 이루고 깨닫는다. 빵의 작은 부분을 떼어 성작에 넣는 것은 5세기부터이고 빵 조각을 축성한 포도주에 섞어 먹던 관습에서 유래하였다.

천주의 어린 양을 노래하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에집트에서 어린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발라 죽음을 면한 것처럼 주님께서 돌아가셨다가 부활하심으로써 우리 인간도 죄와 죽음에서 구원되었음을 찬양하기 위함이다.

평화의 인사

초대 교회에서는 미사 참여자들이 이웃 사람들과 손을 잡고 인사를 나누었다. 평화의 인사는 제단에 예물을 바치기 전 먼저 이웃과의 화해를 바라는 예수님 말씀을 상기시킨다(마태 5,23-24). 교회와 신자들 간의 일치, 용서를 상징한다. 또한 부활한 예수님이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하신 인사를 본받아 기쁨과 평화와 죄의 용서와 성령의 열매를 기원하는 것이다(요한 20,19-23 참조).

영성체는 축제의 핵심이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서 살고 나도 그 안에서 산다”(요한 6,56).

고백으로 죄의 사함을 받고 이웃과 화해를 이루며 그리스도를 우리 안에 모시니 그 큰 은혜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겠는가!

축복과 파견

미사를 마무리하면서 사제는 공동체와 세상을 위하여 하느님 찬미와 축복의 표시를 한다. 우리는 하느님의 축복을 받았으니 다른 사람을 위해서도 축복이 되어 주님을 전하는 사명을 수행하여야 한다. 또한 신자 생활의 축제인 성체는 일상 생활에서도 축복의 힘으로 발전해야 한다. 성체는 감실에 갇힌 수인(囚人)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도 축복의 성사로 드러나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미사이고 파견이다. 우리는 자신이 복음 증거의 사도로서 파견된(missa) 자임을 명심하고 감사해야 한다.

주님과 함께 항상 기뻐하십시오. 거듭 말합니다. 기뻐하십시오”(필립 4,4-7 참조).

 

비정규 성체 분배자의 역할과 자세

 

성체 분배는 성직자의 직무이다

성체 분배는 성체를 다루는 일이므로 성직자(주교, 사제, 부제)만 가능하다. 이들을 정규 성체 분배자라고 부른다. 하지만, 여러 사정에 따라 평신도에게도 성체 분배의 직무를 부여하기도 한다. 이 경우를 비정규 성체 분배자라고 한다.

여기서 비정규 성체 분배자가 미사 중에 성체를 분배할 수 있는 경우는, 미사를 집전하는 사제 외에 성체 분배를 할 성직자(사제, 부제)가 없는 경우, 성직자들이 있어도 허약한 체질이나 고령 때문에 실제로 성체를 분배하지 못하는 경우, 영성체자들이 너무 많거나 정규 성체 분배자들이 부족해서 영성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릴 경우 등이다. 이런 경우를 대비하여, 교회는 비정규 성체 분배자를 선발하여 성체 분배를 할 수 있는 직무를 부여하는 것이다.

비정규 성체 분배자의 임무와 범위

(봉사자의 범위) 비정규 성체 분배권은 보조적이고 비정규적이다. ‘보조적이란 말은 성직자가 성체 분배를 주도하고 꼭 필요하다면 보조하여직무를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비정규적이란 말은 분배권을 받았다 하더라도 주어진 직무를 동일한 시간과 장소에서 정규적으로, 상시적으로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단지 환경과 조건에 따라 그때마다 직무를 수행하는 것이다.

(사제와의 관계) 비정규 성체 분배권은 보조적으로 수여된다. 따라서 평신도 성체 분배자가 있더라도 성직자가 있다면 그가 성체 분배를 하는 것이 우선이며, 성직자의 성체 분배 의무가 면제되는 것은 아니다. 영성체를 청하는 교우들에게 성체를 분배하는 것은 특히 사제와 부제의 의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비정규 성체 분배권은 예외적으로 수여된다. 미사 중에 신자수가 많을 때는 비정규 성체 분배자의 도움을 받을 수 있지만, 표현을 확대 해석하여 비정규 성체 분배자를 습관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

(봉사자 선택 우선순위) 비정규 성체 분배권자로서 성체 분배권을 받을 수 있는 평신도의 순위는, 시종직을 받은 자, 독서직을 받은 자와 대신학생, 남녀 수도자(수사, 수녀 등), 40세 이상의 교리교사와 남녀 평신도 등의 순서로 비정규 성체 분배권을 한다. 또한 사제들은 그가 집전하는 미사 중에, 전혀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평신도에게 성체 분배를 허가할 수도 있다. 이때에도 위의 우선순위에 맞추어 허가한다. 그 밖에도 비성직 남녀 수도회 장상이나 그 대리자도 교구장이나 그 직무 대리자의 인준을 받아 성체를 분배할 수 있다.

(신청과 권한 수여) 통상적으로 성체 분배권은 교구 직권자가 적절한 교육과 축복예식을 마친 이들에게 수여한다. 하지만 이 권한 수여를 보좌주교나, 교구장 대리, 총대리에게 위임할 수 있다. 일정한 절차를 거쳐 이 권한을 부여하는데, 신청은 관할 직권 사제가 신청하며, 해당자 본인이 직접 신청할 수 없다. 성체 분배권 수여는 비정규적이므로 일정 기간의 한시적이고, 전례거행 장소의 한정으로 부여한다.

(봉사직의 적용) 비정규 성체 분배자는 미사 중에 사제를 도와 성체를 분배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진다. 이는 성체 분배의 통상집전자인 성직자의 위임에 의해서만 수행할 수 있으며, 지정된 장소와 공동체에서만 거행해야 한다. 또 성체 분배권이 부여된 기간 동안에만 수행할 수 있다. 이상의 조건들 중 한 가지라도 부족하면 권한을 행사할 수 없다.

(장소의 이동) 성체 분배자가 어떤 공동체에서 봉사하다가 다른 공동체로 이동하였을 경우에, 비록 그 기간이 남아있고 성직자가 위임했다 하더라도 수행할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한 것이므로 성체분배권을 새로 받아야 된다. 또한 비정규 성체 분배자가 소속 교구를 벗어났을 때에도 당연히 해당 주교로부터 다시 권한을 받아야 한다.

(자기 영성체) 또한 비정규 성체 분배자는 미사 공동 집전자가 하는 것처럼, 스스로 성체를 모실 수는 없다. 그 밖에도 말씀전례를 집전하는 비정규 성체 분배자는 말씀전례 중에 성체를 분배할 수 있다. 이러한 경우는 공소예절을 할 경우 비정규 성체 분배자가 말씀전례를 집전하고 영성체를 시켜주는 경우를 말한다. 아울러 미사 밖에서 성체를 모시거나 분배하는 직무(봉성체 등)는 별도의 권한을 받아야 한다.

(신앙의 모범) 이외에도 비정규 성체 분배자는 품위에 맞는 신앙생활을 통해 그리스도교적 생활에 힘써야 하며, 신앙과 덕행으로 다른 모든 이의 모범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사목자는 비정규 성체분배자가 품위에 어긋나는 생활을 한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성체 분배를 금지시킬 수 있다.

비정규 성체 분배자의 준비

비정규 성체 분배자는 미사 때에 성체를 형제들에게 나누어주는 것이므로 주님의 명령대로 사랑을 명백히 실천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것이 성체 분배자의 가장 기본적인 자격을 갖추는 준비이다. 그리고 성체를 모시는 신자와 마찬가지로 성체성사의 은총을 풍부히 받기 위해 깨끗한 양심과 바른 마음의 준비를 갖추어야 한다. 또한 손이나 몸에서 담배 냄새나 화장품 냄새 등을 풍기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비정규 성체 분배자는 미사 중에만 사제를 도와 성체를 분배할 수 있는데, 그렇다고 하여 자기가 원한다고 해서 아무 때나 성체분배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매번 성체 분배에 관한 위임을 받아서 봉사하게 된다.

비정규 성체 분배자는 성체 분배를 위해서 그 지역에서 전통적으로 사용되는 의복이나 단정한 복장을 입든지 또는 교구장이 인정한 의복을 입어야 한다. 보통은 장백의에 띠를 두르지만 다른 봉사자들과 구별되게 특별히 수단에 중백의를 입을 수도 있다. 전례복은 영성체 시간이 다가오면 갖추어 입거나, 미리 갖추어 입고 있다면 제시간에 맞추어 일어나 합장하고 제단 끝자락에 다가와 절한 다음 기다리며, 성체 안에 계신 주님과 자유롭게 마음으로 기도하는 것이 좋다.

 

 

 

성체를 분배할 때에는 사제에게서 성체가 담긴 성합을 받아 정성껏 모셔 들고 성체 분배를 위해 지정된 자리에서 분배를 하도록 한다. 항상 경건한 걸음걸이를 유지하되, 자연스럽고 편안한 걸음을 취하는 것이 좋다. 오른손 첫째와 둘째손가락으로 성체를 하나씩 집어 들고 그리스도의 몸하면서 성체를 바라보고 교우들의 손바닥 위에 차례로 분배해야 하는데, 이때에 성체에서 떨어질 수도 있는 아주 작은 조각에 대해서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고 입으로 영하기를 원하는 사람에게는 그대로 해주어야 한다.

성체 분배 때에는 교우들에게 분심을 주지 않도록 해야 하며, 성체를 모실 수 없는 예비신자의 경우에는 무안함을 느끼지 않도록 세례명을 묻는 등 친절하게 잘 돌려보내도록 해야 한다. 성체 분배를 마치면 성합을 가슴 가까이 양손으로 잡고 제대 앞이나 제단 아래까지 다가와 성직자에게 성합을 건넨 다음 제대에 깊은 공경의 절을 하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도록 한다. 성체 분배는 성체를 다루는 고귀한 봉사직이므로 언제나 성체께 대한 공경에 누가 되거나 신자들에게 잘못된 표양이 되지 않도록 주의한다.

성체 분배자는 그리스도의 몸을 나누어주는 일을 통해 그리스도의 사랑과 생명을 나누는 거룩한 직무에 불린 사람이다. 신앙의 은총으로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봉사자로, 사도로 불러주시고 선택하셨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이 직무를 정성과 마음을 다해 수행해야 한다. 이렇게 평신도의 성체 분배 직무는, 비록 비정규적이지만, 전례의 편의성을 위한 것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보편 사제직의 확장이며 하느님 백성의 한 사람으로서 하느님께 바치는 충실한 봉사의 의무이기도 하다.

 

 

 

이 글에서는 성체 신비 공경에 관한 훈령”(예부성성, 1967. 5. 25.)을 중심으로 성체성사 신학을 해설하고자 한다.

이 훈령은 그 이전에 반포한 여러 문헌들, 곧 회칙, “하느님의 중개자”, 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전례헌장”, 전례 개혁에 따른 후속 조처들에 나타난 일반 원칙들을 신자들과 성직자들에게 구체적으로 적용하기 위한 실천적인 규범들을 담고 있다.

이 훈령은 성체 신비를 대하는 신자들에 대한 사목적 배려에서 나온 것이다. 그래서 어떤 이는 이 훈령을 성체성사에 관한 사목지침이라고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

이 훈령은 성체 신비 공경에 관한 교의(敎義)를 종합적으로 설명하고, 신자들이 거룩한 표징들의 뜻을 이해하여 전례에 능동적으로 참여하고 전례를 통하여 양성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1. 성체성사에 관한 교의

성체 신비 공경에 관한 훈령은 미사에 관한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을 종합적으로 정리하면서 비오 12세의 하느님의 중개자회칙에서부터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에 이르기까지 많은 문헌들을 인용하였다. 이 훈령은 여러 문헌들을 인용하되 성체 신비를 가르치는 교의적인 원칙들 가운데서도 특히 성체 신비에 관하여 그리스도 백성이 가져야 할 태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3항 참조). 그러면서 이 훈령은 교의와 삶의 밀접한 관계를 다시 한번 확인하고, 성체성사가 하느님 백성을 이루게 하고 그들을 성장시킨다는 사실을 크게 강조하고 있다.

성체 신비 공경 훈령3항은 그 이전의 문헌들이 가르치는 주요 교의를 일곱 가지로 요약하고 있는데, 이것은 다시 첫째, 셋째, 다섯째의 세 가지 기본적인 교의로 모아진다. 그 교의들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 사람이 되신 하느님의 아들께서는 죽음과 부활로 죽음을 이기시고 사람을 구원하시어 새로운 피조물로 변화시키셨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영을 주시어 온 민족 가운데서 불러내신 당신의 형제들을 신비롭게 당신 몸이 되게 하셨다 이 몸 안에서 믿는 이들에게 그리스도의 생명이 퍼져나가고, 믿는 이들은 성사를 통하여, 고통을 받으시고 영광스럽게 되신 그리스도께 결합된다. 이 결합은 신비롭게 이루어지는 것이지만 실제적인 결합이다.

구세주께서는 넘겨지시던 날 밤에 마지막 만찬을 드시면서 당신의 살과 피로 이루어지는 성찬의 제사를 세우셨다. 이는 구세주께서 다시 오시는 날까지 십자가의 제사를 영속하게 하고, 당신의 배필인 교회에 당신의 죽음과 부활을 기념하게 하시기 위함이었다. 이 제사는 예배의 신비요 일치의 표징이며 사랑의 고리요 파스카 잔치이다. 이 잔치에서 우리는 그리스도를 받고 은총으로 가득 차, 미래에 누릴 영광의 보증을 받는다(전례헌장, 47항 참조). 그러므로 미사와 주님의 만찬은 같은 것으로 따로 뗄 수 없는 것이다. 미사는 십자가의 제사를 계속하는 제사이며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루가 22,19) 하고 말씀하신 주님의 죽음과 부활을 기념하는 것이다. 또한 미사는 거룩한 잔치이니, 이 잔치에서 하느님의 백성은 주님의 살과 피를 받아모시며 파스카 제사에 참여하고, 그리스도의 피로써 한 번에 영원히하느님과 사람이 맺은 새로운 계약이 계속 효과를 갖게 한다. 이로써 하느님의 백성은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주님의 죽음을 선포하며 아버지의 나라에서 이루어질 마지막 날의 잔치를 미리 보여주고 참여한다.

) 우리가 미사라고 부르는 성체성사의 거행은 그리스도의 행위일 뿐 아니라 교회의 행위이다. 그리스도께서는 교회 안에, 피를 흘리시지 않고 십자가에서 이룩하신 제사가 세세에 계속되게 하시며 사제들의 직무를 통하여 아버지께 세상의 구원을 위해 당신 자신을 바치신다. 그리스도의 배필로서 그분의 직무를 수행하는 교회는 그분과 함께 사제요 제물이 되어 그분을 아버지께 바치며 그분과 함께 자기 자신을 온전히 봉헌한다.이처럼 교회는, 감사기도(prex eucharistica)를 바치며 특히 파스카 신비를 통하여 베풀어주신 모든 은혜에 그리스도와 함께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감사하고 아버지의 나라가 오기를 간청한다.

) 미사 성제로 거행하는 성체성사는 미사를 거행하지 않을 때 하는 성체조배의 원천이며 목표이다. 성체는 미사를 통해 이루어질 뿐만 아니라 미사에 참여할 수 없는 신자들에게 성체를 모셔가 그들이 그리스도와 하나 되고 미사 안에서 이루어지는 제사에 합치되게 하려고 보존한다.

그러므로 성찬의 제사는 교회의 모든 예배와 그리스도 신자생활의 샘이며 정점이다. 신자들은 사제와 하나되고 마음을 다하여 아버지께 거룩한 제물을 봉헌하며 같은 제물을 성찬례 안에서 받음으로써 감사와 속죄, 기원과 찬미의 이 제사에 온전히 참여한다.

1) 미사는 제사요 기념제이며 잔치이다

미사는 십자가 제사를 영속화하는 제사요 주님의 죽음과 부활을 기억하여 거행하는 기념제이며 거룩한 잔치이다. 이 세 가지 의미는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신자들은 미사를 단순히 하느님께 드리는 예배로만 생각한다. 그들은 미사의 참 뜻을 총체적으로 생각하지 못한다. 성찬례는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룩하신 구원을 기념하고 거행하면서 그 구원의 신비를 성사로 실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성찬례의 거행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인간의 역사를 구원의 역사가 되게 한다. 여기에서 교회의 신비가 드러난다.

교회가 거행하는 성찬례는 그리스도의 구원 사건을 재현하고 그것이 지닌 초자연적인 은총을 전달해 줄 뿐만 아니라 성서에서 그토록 자주 말한 때가 차서를 현실화한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구원의 때가 참이 미사 안에서 실현된다.

미사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기념이다. 이렇게 말할 때에는 미사가 지나간 역사를 재현하는 데에 머무르는 것처럼 보인다. 미사가 단순히 과거의 사건을 기억하는 데에 머무르는 것이라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그 구원역사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그러나 미사는 그리스도께서 세상에서 이룩하신 구원의 신비를 지금 여기에그대로 다시 실현하는 것이기에 과거의 사건이 미사의 거행을 통하여 현재의 사건이 된다. 그래서 구원의 사건은 우리 조상들의 사건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사건이 된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완전히 새로운 계약의 백성임을 확인하고, 종말론적인 구원의 싹을 미리 본다. 마침내 우리는 미사가 지닌 또 다른 차원, 곧 종말론적인 차원을 이해하게 된다. [경향잡지, 199611월호, 김종수 요한 신부(주교회의 사무총장)]

 

 

[전례] 성체성사 (2) - 주님을 기억함

 

미사가 그리스도의 죽음을 기념할 뿐 아니라 부활도 기념한다는 사실이 특별히 강조되어야 한다. 예수님의 부활은 단지 죄를 용서하고 은총을 주는 샘일 뿐만 아니라 인간의 구원이 전인적(全人的)임을 알려주고 인간도 같은 영광에 이르게 됨을 보증하는 신비이다. 그래서 성 토마스는 성체성사를 미래 영광의 보증(pignus futurae gloriae)”이라고 했다. 또한 부활은 하느님과 인간의 완전한 만남을 미리 보여준다. 그리고 우리의 부활은 구세주이신 하느님의 자비롭고 거룩하게 하시는 은총을 입게 할 뿐만 아니라 대사제이신 그리스도께서 바치신 완전한 감사의 제사에 참여하게 한다. 이로써 하느님 백성은 기도하는 공동체가 된다. 미사에서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한다는 것은 성체성사가 지닌 예배의 차원과 공동체적이고 종말론적인 차원을 분명히 깨닫게 해준다. 성체성사에 대한 이러한 이해는, 그리스도인은 죄와 옛 사람에 대해 죽을 뿐만 아니라 이 시간 안에서 종말을 미리 체험하며 사는 새로운 사람임을 드러낸다.

미사는 제사이며 잔치라는 사실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미사를 온전히 잔치라는 관점에서만 보아서도 안되고, 또 잔치라는 측면을 영성체에 국한해서 생각해서도 안된다. 미사는 그리스도의 죽음을 기념하는 성사요 제사이며, 빵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로 축성되어 음식과 음료로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지고, 그리스도인들은 같은 식탁에서 한 마음으로 그것을 받아먹고 마심으로써 하나가 된다는 뜻에서 잔치이기도 하다.

성체 신비 공경 훈령은 미사가 제사요 잔치라는 두 가지 측면의 밀접한 관련성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주님께서는 미사 성제 안에서 신자들의 영적 양식으로서 빵과 포도주의 형상 안에 성사적으로 현존하기 시작하실 때 실제로 희생되신다”(3b). 그러므로 영성체를 제사의 관점에서 분리시킨다는 것은 옳지 않다. 영성체는 다만 그리스도의 실제적인 몸을 받는 것만도 아니고 십자가 제사의 효과만을 누리는 것도 아니다. 영성체는 잔치의 형식으로 표현되기는 하지만 그리스도의 신비체인 공동체가 구체적으로 제사에 참여하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사실 제사의 참여 없는 영성체는 없고, 또한 그리스도와 통교 없는 제사 참여도 없다. 이 점에 대해서 성체 신비 공경 훈령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주님의 만찬에 참여하는 것은 우리를 위해 당신 자신을 아버지께 제물로 바치신 그리스도와 언제나 실제로 통교를 나눈다는 것이다”(3b).

그리스도와 나누는 통교는 영성체로써 실제로 이루어진다. 그리스도와 신자들의 통교는 성사적인 영성체로써 가장 효과적으로 실현되며, 그리스도와 친교를 나누는 신자들 모두를 믿음과 사랑 안에 하나 되게 한다. 따라서 미사는 하느님께 부름을 받은 모든 이들을 일치시키는 사랑을 나누는 표징이 된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제사를 성사적으로 재현한다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교회 공동체는 하느님 아버지께 당신 자신을 봉헌하신 그리스도의 제사를 기념하며 그리스도와 함께 아버지께 예배를 드리고 형제들과 한 식탁에서 친교를 나눈다.

2) 미사는 그리스도 신비체의 제사이다

위에서 말한 성체성사 거행이 지닌 잔치의 특성은 미사가 공동체의 행위라는 사실에서 나오는 것이다.

미사는 그리스도의 제사일 뿐 아니라 교회 공동체의 제사이다. 미사는 사제가 설령 혼자 드리는 일이 있게 되더라도 교회의 행위이고 공동체의 거행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어떤 때 어떤 형태의 미사를 드리더라도 미사는 사제이시며 제물이신 그리스도와 함께 교회가 드리는 제사이다. 이때 교회는 그리스도처럼 사제가 되고 제물이 된다. 그런데 이 교회는 직무 사제직을 수행하는 이들과 보편 사제직을 수행하는 이들로 이루어져 있기에 사제들뿐만 아니라 일반 신자들의 능동적 참여가 강조된다.

미사는 직무 사제들에게만 유보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몫이 다르기는 하지만 일반 신자들도 그들이 지닌 보편 사제직을 수행하며 직무 사제들과 함께 공동체의 제사를 드리는 것이다.

3) 미사는 그리스도인의 예배이며 삶이다

성체 신비 공경 훈령은 미사가 교회의 예배이며 그리스도 신자 생활의 중심임을 말하고 있다(3e).

) 미사성제로 이루어지는 성체성사의 거행은 미사 밖에서 성체께 드리는 예배의 기원이며 목표이다.

 

 

 

) 미사가 끝난 뒤에도 남아있는 거룩한 성체는 미사에 참여할 수 없는 신자들이 성체를 받아모심으로써 그리스도와 하나 되고 미사에서 바쳐진 제사에 참여할 수 있도록 보존된다.

) 성찬의 제사는 교회의 모든 예배와 모든 그리스도 신자 생활의 원천이며 절정이다.

신자들 가운데에는 열심히 성체조배를 하면서도 그 성체를 이루는 미사에 소홀히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성체는 미사에서 축성된 것이며 성체조배보다도 마사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우쳐줄 필요가 있다. 모든 성체 공경 예배는 미사에서 절정에 이른다는 것을 교육해야 한다. 미사와 연결되지 않은 성체조배는 자칫 주술적으로 흐를 위험이 있다. 미사는 미사 밖에서 이루어지는 성체조배를 가능하게 하는 원인이며 그것의 목표임을 분명히 깨닫게 해야 한다.

미사는 모든 성체조배의 목표이며 교회의 모든 예배와 신심활동의 첫자리를 차지한다. 그러나 성체현시나 성체강복 그리고 성체거동과 같은 여러 형태의 성체 공경 행위가 이루어질 때 그것들과 미사의 관련성을 강조하는 사목자를 보기가 어렵다. 오히려 미사보다도 그러한 성체 공경을 더 강조하는 듯한 인상을 받을 때가 더 많다.

그리스도 신자 생활은 모두 성체성사의 거행 안에서 이루어지는 하느님과 인간의 만남을 준비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미사는 구원을 이루는 제사요, 교회의 친교를 드러내는 잔치이며 종말론적인 파스카이다. 이러한 세 가지 뜻과 관련을 맺지 못하는 등의 성체조배 공경 행위는 주님의 은총만을 비는 기복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스도 신자 생활은 그리스도와 온전히 하나 되어 그리스도처럼 날마다 자기 자신을 하느님께 바치는 봉헌의 삶이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 신자는 미사를 거행하며 봉헌의 삶을 배우고 미사에서 그렇게 살 수 있는 힘을 받는다. 미사는 바로 이러한 봉헌생활의 원천이며 절정이다.

 

 

 

 

[전례] 성체성사 (3) - 주님을 기억함

 

2. 성체성사를 거행할 때 지켜야 할 규범

성체 신비 공경에 관한 훈령은 성체성사가 지닌 교의적인 관점뿐 아니라 신자들의 공동체에서 성체성사를 거행할 때 지켜야 할 일반적인 규범들을 제시하고 있다.

1) 첫째로 공동체의 일치가 분명히 드러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성체성사를 거행하면서 그 성사의 거행 안에서 그리스도 백성의 본성인 완전한 일치가 이루어진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세례를 통해서 모든 이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유다인이나 그리스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아무런 차별이’(갈라 3,28) 없게 되었으므로, 모든 인종과 연령과 신분의 신자들의 집회는 성체성사 안에서 교회의 본질을 가장 잘 드러내야 한다”(16).

이 훈령은 또 전례헌장 41항과 교회헌장 26항을 인용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일치의 뛰어난 표본은 탁덕들과 다른 봉사자들과 함께 주교가 주례하는 같은 성체성사와 같은 기도와 같은 제대에 모든 하느님 백성이 완전하고 능동적으로 참여할 때이다”(16). 교회 공동체의 일치는 그리스도를 대리하는 주교와 탁덕들과 함께 성체성사를 거행할 때 더 잘 드러난다는 것이다.

성체성사는 온 인류를 불러모은십자가 제사를 지금 여기에실현하는 신비이다. 그것은 곧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된 온 인류의 표징이다. “미사 성제 안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온 세상의 구원을 위해 당신 자신을 봉헌하신다. 그러므로 회중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된 인류의 표본(typus)이며 표징(signum)이다”(18). 각 지역 교회는 이렇게 성체성사를 거행하면서 온 백성이 같은 주님 안에 한 백성임을 깨닫고 확인한다. 그리스도께서 여러 개로 쪼개진 성체 조각 안에도 온전히 현존하시듯이, 하느님 백성 전체 안에 현존하시는 그리스도께서는 성체성사를 거행하려고 모인 각 지역 교회의 회중 안에도 온전히 현존하신다.

2) “성체 신비 공경 훈령은 성체성사 안에서 백성의 하나 됨을 강조하여 한 성당 안에서 두 가지 전례를 동시에 집전하지 않도록 주의를 주고 있다. 한 성당에서 같은 시간에 여러 미사를 거행하거나 성무일도를 바치거나 설교를 하거나 세례를 주거나 혼인성사를 집전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17). 이것은 회중의 주의가 여러 곳으로 분산되는 것을 막고 분심이 들지 않게 하려는 배려이지만 더 깊은 뜻은 단일한 공동체의 일체성을 강조하는 데에 있다. 한 성당에서 동시에 여러 미사나 또 다른 성사를 거행한다면 성체성사 거행 안에서 온 백성이 하나가 된다는 사실을 누가 믿을 수 있겠는가? 누구나 제각기 다른 지향을 가지고 있는 다른 집단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러한 규범은 고해성사에도 똑같이 적용해야 할 것이다. 미사가 거행되고 있는 성당에서 고해성사를 보려고 많은 신자들이 줄을 서있는 모습은 미사를 거행하고 있는 신자들에게 분심을 줄 뿐 아니라, 미사 성제의 가치가 무시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

3) 미사 성제 안에서 가장 잘 드러나는 그리스도 백성의 일치를 강조하고자 이 훈령은 언어를 달리 하는 여행자들도 그 지역의 미사에 참여할 수 있도록 배려하라고 목자들에게 권고하고 있으며(19), 성직자가 아닌 수도자들의 작은 단체나 그와 비슷한 다른 단체들은, 특히 주일과 축일에 본당 사목구의 성당에 가서 미사에 참여하도록 권고한다(26). 또 어떤 특정한 단체의 회원들을 위한 미사를 주일에 거행하여 공동체의 일치를 드러내는 데에 장애를 주지 않도록 주의를 주고 있다. 어쩔 수 없이 주일에 그러한 단체를 위한 특별지향을 가지고 미사를 거행하더라도 본당 신자공동체의 단일성을 유지하도록 노력해야 한다.”(27)고 말한다.

4) 이 밖에도 성체 신비 공경 훈령은 보조 봉사자들의 태도, 미사중계나 촬영 때의 주의사항, 성당 내부의 장식 등에 대해서도 지침을 주고 있다. 보조 봉사자들의 태도를 규정하고 있는 조항을 보면 거룩한 전례를 올바로 거행하고 신자들이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봉사자들은 전례규범에 따라 정확하게 그들의 소임을 다할 뿐 아니라 그들의 태도로써 거룩한 것의 뜻을 깨우쳐줄 수 있도록 행동해야 한다.

신자들은 미사 때에 하느님 말씀의 선포와 해설로 양육될 권리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사제들은 정한 때나 필요한 때에 강론을 할 뿐 아니라 그들 자신이나 다른 봉사자들이 맡은 직무에 따라 큰소리로 말하거나 선포하거나 노래하여 신자들이 예식을 분명하게 깨닫거나 그 뜻을 깨우칠 수 있게 하여 그때그때 화답하고 참여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어야 한다. 이러한 봉사자들은 특별히 신학교와 수도원에서 적절히 연습하여 이러한 전례봉사를 위한 준비를 갖추어야 한다.”(18)고 말한다.

또 미사중계와 촬영할 때에 교구 직권자들은 미사중계로 말미암아 신자들의 기도와 참여가 방해를 받지 않도록 보살피고, 전례개혁의 원칙에 따라 거룩한 신비를 잘 거행하도록 배려해야 한다”(22). “전례거행 특히 미사가 촬영 때문에 방해를 받지 않도록 크게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타당한 이유가 있어서 촬영을 할 때에는 교구 직권자가 정한 규범에 따라 크게 신중을 기해야 한다”(23).

성당 내부의 장식이 지닌 중요성을 언급하고 있는 조항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성체성사를 거행하고 성체를 보존하며 신자들이 모이고 우리를 위해 제대 위에서 봉헌되신 하느님의 아들 우리 구세주께서 현존하시는 기도의 집은 신자들의 유지와 보살핌으로 존경을 받고 기도와 거룩한 예식을 거행하기에 맞갖고 깨끗해야 한다(사제직무교령, 5).

목자들은 거룩한 장소의 적합한 배치가 전례를 올바로 거행하게 하고 신자들이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데에 크게 도움을 준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개혁된 전례에 맞게 성당을 건축하고 제대를 만들고 장식하며 주례와 보조 봉사자들의 자리를 마련하고 성서봉독을 위한 자리와 회중석 그리고 성가대의 자리를 정할 때에 목자는 전례헌장 실행 규정’(Inter Oecumenici) 90-99항에 정한 원칙과 규범을 따라야 한다. 특히 주 제대는 언제나 그리스도 자신의 표징임이 드러나도록 자리를 정하고 만들어야 한다. 제대는 구원의 신비가 이루어지는 자리이고 회중의 중심으로 가장 크게 존경을 받아야 한다.

또한 성당을 보수할 때에는 귀중한 성미술품들이 파손되지 않게 해야 한다. 전례쇄신에 따라 (내부를 변경해야 할 때에는) 교구 직권자의 판단에 따라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고, 필요하다면 그에 관련된 사람들의 동의를 얻어 귀중한 미술품들을 현재 보존하고 있는 장소에서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한다. 그리고 새 장소에서도 작품의 품위가 손상되지 않도록 세심한 지혜와 주의를 기울여 적절하고 합당하게 안치해야 한다. 목자들은 제의의 재료와 모양이 전례거행을 품위있게 하는 데에 크게 영향을 준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한다. 그러나 제의의 재료와 모양은 화려하기만 한 것보다는 고상한 아름다움을 지니도록’(전례헌장, 124) 해야 한다”(24).

 

 

 

 

 

[전례와 상징] 성체성사, 그 상징들

 

하느님은 당연히 교회나 성사(聖事)보다 위대하다. 그러므로 교회는 성사 집행 과정에서 예수님 또는 하느님이 보이지는 않지만 주인으로서 직접 이를 행하심을 깨우쳐준다. 성사가 모든 사람을 위한 희망의 표지란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세례를 받고 혼인성사와 기타 성사 생활을 통하여 신자들은 하느님이 모든 사람에게 선하시고 구원을 주신다는 신뢰심을 갖게 된다. 그러므로 성사는 모두 교회의 예배이다. 그중 가장 직접적이고 명백한 예식이 성찬의 전례이다.

공동체인 교회는 이 전례를 거행할 때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사 자체임을 드러낸다. 2차 바티칸 공의회는 성체성사의 빠스카 신비(예수의 죽음, 부활, 승천) 그리고 공동체적, 종말론적인 체계를 완성하였다. 그리스도는 미사 중에 현존하신다. 골고타에서 홀로 드리신 제사가 아니라 당신이 다시 오실 때까지 교회와 함께 기념하고 현실화하는 제사이다. “이 제사는 자비의 성사요, 일치의 표징이요, 사랑의 맺음이며, 우리에게 장래 영광을 보증해 주는 빠스카 잔치이다”(전례헌장 47).

성사는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 외적인 표정이다. 표징이란 무엇인가. 상징이란 말과 비슷하지만 구별할 필요가 있다. 표징(表懲)이란 일정한 내용을 대신하여 표시하는 것이며 기호(記號 : sign)라고도 한다. 그 표시에 따르는 실재를 생각나게 한다. 상징(symbol)은 서로 다른 사항이 어떤 유사성에 의하여 서로 관련을 맺게 되는 만들어 것이다. 즉 해석자에 의하여 만들어지는 표징이다. 종교적으로 하느님과 인간, 하늘과 땅, 영과 육이라는 두 세계가 교회 전례를 통하여 서로 만나게 된다. 이렇게 상징이란 표시하는 바를 불완전하게나마 드러내는 형태로서 본성상(本性上) 볼 수 없는 실재를 가지적(可知的)으로 현존케 하는 것이다.

성체성사의 가장 자명한 표정은 빵과 포도주인 음식이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식사하는 과정에서 성체성사를 제정하셨다. 먹고 마시며 대화하고 삶을 나누는 인간적이면서도 거룩한 상징을 남겼다. 빵과 포도주는 팔레스티나 지역에서 주식으로 사용되었다. 음식을 통한 영양 공급을 상징하면서도 빵과 포도주는 자연적인 산물이 아니라 인간의 노동과 지식을 통하여 만들어진 공정이 깃든 산물이다.

미사 중 제물 봉헌을 하며 사제는 땅을 가꾸어 얻은 이 빵을하고 기도드린다. 또한 예수님은 내가 바로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고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내 살은 참된 양식이며 내 피는 참된 음료이기 때문이다”(요한 6,35.55).

빵은 일과 노동의 상징이요, 생명의 상징이며 함께 나누어질 경우 가족적이며 사회적인 성격을 띤다. 포도주는 흥을 돋운다. 인간에게 활력과 의욕을 북돋아준다. 잔치상에 포도주를 빼놓는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포도주를 나눔은 빵과 마찬가지로 나눔과 친교, 일치의 상징이며, 더구나 제사술[祭酒]로 사용한다는 것은 피를 흘림, 즉 생명의 희생을 뜻한다. 빵과 포도주는 각각 그리스도께서 실제로 온전히 현존해 계시다는 사실을 보증해 준다. 또한 유다인들에게는 식사가 종교적으로 축복이요 감사이다. 만찬은 희생 제사이며 기념이고 그리스도의 현존, 교회 공동체의 건설이라는 다양한 측면이 있다.

예물 준비와 봉헌

미사 각 부분은 말씀의 전례까지도 모두 주님과 만나고 삶을 나누는 식탁이기에 중요한 상징과 표정으로 되어 있지만 지면 관계상 성찬 전례의 중심 부분만 몇 가지 살펴본다.

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신자들은 축성할 제병을 미사 시작 전이나 봉헌 때 각자 스스로 제대 앞에 마련된 성합에 넣을 수 있도록 하였다. 초대 교회에서는 빵과 포도주를 제물로서 준비하였는데 신자들은 자기 몫 이상을 희사하였고 교회는 그것으로 운영비를 충당하고 가난한 자를 돕는 데 사용하였다. 현재의 헌금도 이런 뜻이 남아 있다.

사제가 빵과 포도주를 각각 들고 생명을 주는 음식, 영신 생명의 음료가 되도록 기도한다. 이것은 고대 유다인들의 식탁 기도에서 유래한 것이다. 포도주에 몇 방울의 물을 타는 것은 나약한 한계성을 지닌 우리가 영원하신 그리스도의 천주성에 참여한다는 뜻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신자의 자세는 자신을 제물로 바치신 그리스도와 함께 자기 자신과 일상 생활을 바치는 온전한 정성이다.

성찬 기도

미사의 절정은 감사의 성찬 기도이다. 이 기도는 감사송으로 시작하여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함께라는 기도와 신자들의 응답인 아멘까지를 포함하고 있다. 성찬 기도의 중심은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 먹어라. 이는 너희를 위하여 바칠 내 몸이니라내 피의 잔이다라는 내용이다. 이 기도와 동시에 빵과 포도주는 예수님의 몸과 피로 변화하여 현존하시게 된다. 사제는 능력이 아니라 위임받은 대리로서 성령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인격안에서 이를 행한다. 그래서 사제가 드리는 성찬 기도는 개인 자격이 아니라 공동체의 이름으로 바쳐지는 것이다.

사제가 성찬 기도를 시작하면서 준비한 제물 위에 십자 표시를 하고 두 손을 덮어 성령을 통하여 거룩한 변화가 이룩되기를 기도한다. 성체와 성혈을 높이 들 때 종을 치는데 이때 신자들은 흠숭의 표시를 하고 성체를 우러러보며 내 주시요, 내 참 천주시로다라고 기도할 수 있다. 이는 교황 비오 10세가 대사를 얻도록 한 기도이다. “그리스도를 통하여하면서 사제가 빵과 잔을 위로 들고 기도하는데 이는 기도와 동작의 일치를 보이며 우리의 봉헌과 구원을 동시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성찬식

주의 기도로 성찬식이 시작된다. 영성체 전 기도로 바친 것은 4세기부터이다. 하느님 나라가 우리의 생활과 우리가 속한 이 세상에서 자라나기를 그리스도께서는 원하신다. 성찬식은 하느님 보살핌의 섭리이고 하느님께 대한 봉사의 다짐이다. 우리를 배불리고 살게 하는 빵을 먹는 영성체는 미사 전체의 표징이요 열매이다.

빵을 나눔

최후 만찬 식탁에서 예수님은 빵을 떼어 제자들에게 나누어주셨다. 구약 시대에는 빵의 나눔이 가정 생활 관습이었다.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으나 그분께서 빵을 나눌 때에야 비로소 제자들이 그분을 알아보았듯이 현대의 그리스도인들도 나눔을 통하여 일치를 이루고 깨닫는다. 빵의 작은 부분을 떼어 성작에 넣는 것은 5세기부터이고 빵 조각을 축성한 포도주에 섞어 먹던 관습에서 유래하였다.

천주의 어린 양을 노래하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에집트에서 어린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발라 죽음을 면한 것처럼 주님께서 돌아가셨다가 부활하심으로써 우리 인간도 죄와 죽음에서 구원되었음을 찬양하기 위함이다.

평화의 인사

초대 교회에서는 미사 참여자들이 이웃 사람들과 손을 잡고 인사를 나누었다. 평화의 인사는 제단에 예물을 바치기 전 먼저 이웃과의 화해를 바라는 예수님 말씀을 상기시킨다(마태 5,23-24). 교회와 신자들 간의 일치, 용서를 상징한다. 또한 부활한 예수님이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하신 인사를 본받아 기쁨과 평화와 죄의 용서와 성령의 열매를 기원하는 것이다(요한 20,19-23 참조).

영성체는 축제의 핵심이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서 살고 나도 그 안에서 산다”(요한 6,56).

고백으로 죄의 사함을 받고 이웃과 화해를 이루며 그리스도를 우리 안에 모시니 그 큰 은혜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겠는가!

축복과 파견

미사를 마무리하면서 사제는 공동체와 세상을 위하여 하느님 찬미와 축복의 표시를 한다. 우리는 하느님의 축복을 받았으니 다른 사람을 위해서도 축복이 되어 주님을 전하는 사명을 수행하여야 한다. 또한 신자 생활의 축제인 성체는 일상 생활에서도 축복의 힘으로 발전해야 한다. 성체는 감실에 갇힌 수인(囚人)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도 축복의 성사로 드러나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미사이고 파견이다. 우리는 자신이 복음 증거의 사도로서 파견된(missa) 자임을 명심하고 감사해야 한다.

주님과 함께 항상 기뻐하십시오. 거듭 말합니다. 기뻐하십시오”(필립 4,4-7 참조).

 

비정규 성체 분배자의 역할과 자세

 

성체 분배는 성직자의 직무이다

성체 분배는 성체를 다루는 일이므로 성직자(주교, 사제, 부제)만 가능하다. 이들을 정규 성체 분배자라고 부른다. 하지만, 여러 사정에 따라 평신도에게도 성체 분배의 직무를 부여하기도 한다. 이 경우를 비정규 성체 분배자라고 한다.

여기서 비정규 성체 분배자가 미사 중에 성체를 분배할 수 있는 경우는, 미사를 집전하는 사제 외에 성체 분배를 할 성직자(사제, 부제)가 없는 경우, 성직자들이 있어도 허약한 체질이나 고령 때문에 실제로 성체를 분배하지 못하는 경우, 영성체자들이 너무 많거나 정규 성체 분배자들이 부족해서 영성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릴 경우 등이다. 이런 경우를 대비하여, 교회는 비정규 성체 분배자를 선발하여 성체 분배를 할 수 있는 직무를 부여하는 것이다.

비정규 성체 분배자의 임무와 범위

(봉사자의 범위) 비정규 성체 분배권은 보조적이고 비정규적이다. ‘보조적이란 말은 성직자가 성체 분배를 주도하고 꼭 필요하다면 보조하여직무를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비정규적이란 말은 분배권을 받았다 하더라도 주어진 직무를 동일한 시간과 장소에서 정규적으로, 상시적으로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단지 환경과 조건에 따라 그때마다 직무를 수행하는 것이다.

(사제와의 관계) 비정규 성체 분배권은 보조적으로 수여된다. 따라서 평신도 성체 분배자가 있더라도 성직자가 있다면 그가 성체 분배를 하는 것이 우선이며, 성직자의 성체 분배 의무가 면제되는 것은 아니다. 영성체를 청하는 교우들에게 성체를 분배하는 것은 특히 사제와 부제의 의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비정규 성체 분배권은 예외적으로 수여된다. 미사 중에 신자수가 많을 때는 비정규 성체 분배자의 도움을 받을 수 있지만, 표현을 확대 해석하여 비정규 성체 분배자를 습관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

(봉사자 선택 우선순위) 비정규 성체 분배권자로서 성체 분배권을 받을 수 있는 평신도의 순위는, 시종직을 받은 자, 독서직을 받은 자와 대신학생, 남녀 수도자(수사, 수녀 등), 40세 이상의 교리교사와 남녀 평신도 등의 순서로 비정규 성체 분배권을 한다. 또한 사제들은 그가 집전하는 미사 중에, 전혀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평신도에게 성체 분배를 허가할 수도 있다. 이때에도 위의 우선순위에 맞추어 허가한다. 그 밖에도 비성직 남녀 수도회 장상이나 그 대리자도 교구장이나 그 직무 대리자의 인준을 받아 성체를 분배할 수 있다.

(신청과 권한 수여) 통상적으로 성체 분배권은 교구 직권자가 적절한 교육과 축복예식을 마친 이들에게 수여한다. 하지만 이 권한 수여를 보좌주교나, 교구장 대리, 총대리에게 위임할 수 있다. 일정한 절차를 거쳐 이 권한을 부여하는데, 신청은 관할 직권 사제가 신청하며, 해당자 본인이 직접 신청할 수 없다. 성체 분배권 수여는 비정규적이므로 일정 기간의 한시적이고, 전례거행 장소의 한정으로 부여한다.

(봉사직의 적용) 비정규 성체 분배자는 미사 중에 사제를 도와 성체를 분배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진다. 이는 성체 분배의 통상집전자인 성직자의 위임에 의해서만 수행할 수 있으며, 지정된 장소와 공동체에서만 거행해야 한다. 또 성체 분배권이 부여된 기간 동안에만 수행할 수 있다. 이상의 조건들 중 한 가지라도 부족하면 권한을 행사할 수 없다.

(장소의 이동) 성체 분배자가 어떤 공동체에서 봉사하다가 다른 공동체로 이동하였을 경우에, 비록 그 기간이 남아있고 성직자가 위임했다 하더라도 수행할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한 것이므로 성체분배권을 새로 받아야 된다. 또한 비정규 성체 분배자가 소속 교구를 벗어났을 때에도 당연히 해당 주교로부터 다시 권한을 받아야 한다.

(자기 영성체) 또한 비정규 성체 분배자는 미사 공동 집전자가 하는 것처럼, 스스로 성체를 모실 수는 없다. 그 밖에도 말씀전례를 집전하는 비정규 성체 분배자는 말씀전례 중에 성체를 분배할 수 있다. 이러한 경우는 공소예절을 할 경우 비정규 성체 분배자가 말씀전례를 집전하고 영성체를 시켜주는 경우를 말한다. 아울러 미사 밖에서 성체를 모시거나 분배하는 직무(봉성체 등)는 별도의 권한을 받아야 한다.

(신앙의 모범) 이외에도 비정규 성체 분배자는 품위에 맞는 신앙생활을 통해 그리스도교적 생활에 힘써야 하며, 신앙과 덕행으로 다른 모든 이의 모범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사목자는 비정규 성체분배자가 품위에 어긋나는 생활을 한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성체 분배를 금지시킬 수 있다.

비정규 성체 분배자의 준비

비정규 성체 분배자는 미사 때에 성체를 형제들에게 나누어주는 것이므로 주님의 명령대로 사랑을 명백히 실천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것이 성체 분배자의 가장 기본적인 자격을 갖추는 준비이다. 그리고 성체를 모시는 신자와 마찬가지로 성체성사의 은총을 풍부히 받기 위해 깨끗한 양심과 바른 마음의 준비를 갖추어야 한다. 또한 손이나 몸에서 담배 냄새나 화장품 냄새 등을 풍기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비정규 성체 분배자는 미사 중에만 사제를 도와 성체를 분배할 수 있는데, 그렇다고 하여 자기가 원한다고 해서 아무 때나 성체분배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매번 성체 분배에 관한 위임을 받아서 봉사하게 된다.

비정규 성체 분배자는 성체 분배를 위해서 그 지역에서 전통적으로 사용되는 의복이나 단정한 복장을 입든지 또는 교구장이 인정한 의복을 입어야 한다. 보통은 장백의에 띠를 두르지만 다른 봉사자들과 구별되게 특별히 수단에 중백의를 입을 수도 있다. 전례복은 영성체 시간이 다가오면 갖추어 입거나, 미리 갖추어 입고 있다면 제시간에 맞추어 일어나 합장하고 제단 끝자락에 다가와 절한 다음 기다리며, 성체 안에 계신 주님과 자유롭게 마음으로 기도하는 것이 좋다.

 

 

 

성체를 분배할 때에는 사제에게서 성체가 담긴 성합을 받아 정성껏 모셔 들고 성체 분배를 위해 지정된 자리에서 분배를 하도록 한다. 항상 경건한 걸음걸이를 유지하되, 자연스럽고 편안한 걸음을 취하는 것이 좋다. 오른손 첫째와 둘째손가락으로 성체를 하나씩 집어 들고 그리스도의 몸하면서 성체를 바라보고 교우들의 손바닥 위에 차례로 분배해야 하는데, 이때에 성체에서 떨어질 수도 있는 아주 작은 조각에 대해서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고 입으로 영하기를 원하는 사람에게는 그대로 해주어야 한다.

성체 분배 때에는 교우들에게 분심을 주지 않도록 해야 하며, 성체를 모실 수 없는 예비신자의 경우에는 무안함을 느끼지 않도록 세례명을 묻는 등 친절하게 잘 돌려보내도록 해야 한다. 성체 분배를 마치면 성합을 가슴 가까이 양손으로 잡고 제대 앞이나 제단 아래까지 다가와 성직자에게 성합을 건넨 다음 제대에 깊은 공경의 절을 하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도록 한다. 성체 분배는 성체를 다루는 고귀한 봉사직이므로 언제나 성체께 대한 공경에 누가 되거나 신자들에게 잘못된 표양이 되지 않도록 주의한다.

성체 분배자는 그리스도의 몸을 나누어주는 일을 통해 그리스도의 사랑과 생명을 나누는 거룩한 직무에 불린 사람이다. 신앙의 은총으로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봉사자로, 사도로 불러주시고 선택하셨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이 직무를 정성과 마음을 다해 수행해야 한다. 이렇게 평신도의 성체 분배 직무는, 비록 비정규적이지만, 전례의 편의성을 위한 것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보편 사제직의 확장이며 하느님 백성의 한 사람으로서 하느님께 바치는 충실한 봉사의 의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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