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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말씀만 하소서

전례-기도하는 교회 (13) 안수(按手)와 도유(塗油)

작성자은총의샘|작성시간26.06.22|조회수44 목록 댓글 0

전례-기도하는 교회 (13) 안수(按手)와 도유(塗油)

 

안수(按手) : 야곱은 요셉의 아들들의 머리에 팔을 얹어 축복하였습니다(창세 48,14 이하). 그리고 예수님께도 어린이들에게 손을 얹어 축복해 주셨습니다(마르 10,16). 이처럼 안수는 무엇보다도 축복하는 자세입니다. 또한 모세가 손을 얹어 여호수아에게 자신의 직분을 이어받게 한 것처럼(민수 27,18 이하), 안수는 직무의 전달과 그 직무를 수행할 능력을 부여하는 자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성품 성사 거행에서 안수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수여하신 직무와 그 능력을 수품자에게 전달하는 가장 중요한 표징이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안수하시며 병자들을 치유하셨고(마르 6,5; 8,23), 사도들에게도 병자에게 손을 얹어 치유하는 능력을 부여하셨습니다(마르 16,18). 그리고 사도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손을 얹어 병자를 고쳐주었습니다(사도 5,12; 14,3 참조). 그래서 병자 성사와 고해 성사 거행 중에 사제는 안수를 통해서 예수님께서 주시는 성령의 능력으로 영혼과 육신의 치유가 이루어지기를 청합니다.

더 나아가 사도들의 안수를 통하여 성령이 주어졌습니다(사도 8,17-19; 13,3; 19,6 참조). 세례 성사와 특별히 견진 성사 중에 안수를 통해서 하느님의 자녀들은 성령을 받습니다. 이처럼 안수는 성령의 선물을 드러내는 표징입니다. 축복도, 직무와 능력의 전달도, 병의 치유도 모두 성령의 선물로 가능합니다. 미사 거행 중에 사제는 빵과 포도주 위에 손을 펴 얹는 안수와 함께 성령께서 내려오시어 성체와 성혈을 이루어 주시기를 청합니다. 이 성령 청원 기도(Epiclesis)는 교회가 보존하고 있는 안수(按手)라는 표징의 의미를 가장 분명하게 드러냅니다.

 

도유(塗油) : 성경 안에서도, 고대 사회의 상징 체계 안에서도 기름 부음塗油은 풍부한 의미를 지닙니다. 기름은 풍요와 기쁨의 상징입니다. 동시에 기름은 깨끗하게 하며(목욕 전후에 기름 바름), 유연하게 만들고(운동 선수에게 기름 바름), 깨지고 상처 난 데를 낫게 하므로 치유를 상징하기도 합니다. 또 향기로운 기름은 아름다움과 건강과 힘을 되돌려 주는 것이었습니다(가톨릭교회 교리서 1293항 참조).

이러한 기름 바름의 의미들은 성사 거행 안에서도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예비 신자에게 기름 바름(한국 교회는 하지 않음)은 정화와 강화를 의미합니다. 자들에게 기름 바름은 치유와 위안을 뜻합니다. 세례 직후와 견진, 서품 때에 축성 성유를 바름은 축성되었다는 표징입니다(리서 1294항 참조). 특히 축성 성유 바름을 통해 우리는 그리스도께 속한 이로 성별 되고 성령의 인장을 받으며, 성령의 충만함 속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기며 살아갈 힘을 얻습니다.

교회의 전례 안에는 행동만이 아니라 성물과 같은 거룩한 표징들도 존재합니다. 이 표징들에 지나친 의미와 힘을 부여하여 만병통치나 만사형통의 도구로 여긴다면, 우리의 신앙은 맹목적인 믿음을 넘어서 광신이 됩니다. 반대로 과학적 합리성이나 이성을 내세워 전례의 표징이 드러내고 있는 신비를 무시하고 잃어버린다면, 우리의 믿음은 차갑게 식어버립니다. 전례와 삶 안에서 거룩한 표징들을 통하여 당신의 신비를 드러내 보이시고 은총을 주시는 하느님께로 우리의 시선이 끊임없이 향할 때, 우리의 신앙은 올바른 신앙이 될 것입니다. 하느님께 대한 올바른 믿음을 안에서 거룩한 표징들을 통하여 주시는 성령의 선물을 가득 받는 전례 생활이 되면 참 좋겠습니다.

 

 

 

[알기 쉬운 전례 상식] 세정대가 뭐여?

 

교회의 관습에 따라 오래된 성경이나 축복받은 성물은 종종 교회 부지나 가톨릭 공동묘지에 묻는다. 제대에서 사용되는 다양한 수건과 같은 다른 도구도 먼저 태운 다음 재를 묻는다. 그렇다면 성체가 더러워졌거나 상했다면, 성혈을 바닥에 흘렸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교회는 제의실에 세정대를 만드는 관습을 보존하고 있다(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 334). 세정대는 라틴말로 사크라리움’(Sacrarium) 또는 피시나’(piscina)라고 한다. 세정대는 일반 하수와 섞이는 저장 탱크나 하수구로 배수되는 것과는 달리 땅으로 직접들어가는 배수구가 있는 특수 싱크대(보통 2)를 말한다. 하수구나 정화조에 흘려보내지 않고 특수 제작된 세정대를 통해 땅으로 직접 흘려보낸다. 거룩한 용도로 사용된 물을 교회 건물 아래 땅으로 흘려보내면서 물을 창조하시고 거룩하게 하신 하느님을 기리는 것이다. 일반적인 용도로는 주례 사제가 손을 씻은 물, 미사 후에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담은 거룩한 그릇과 다양한 전례용 물품(주수병, 제대포, 성체포, 성작 수건, 물수건 등) 같은 것을 깨끗이 씻은 물을 흘려보내는 것이다(334). 850년 교황 레오 4세가 처음으로 세정대를 제대 근처에 설치하도록 지시하였다. 이어서 교황 인노첸시오 3(1216)는 두 개의 피시나를 사용하도록 지시하였는데, 하나는 미사 후에 성작을 씻고 다른 하나는 주례 사제가 손을 씻는 데 사용하게 하였다. 세정대의 형태와 치수는 다양하며 제대 근처, 성전의 남쪽 벽, 제의실 또는 기타 적절한 장소에 설치하도록 한다.

성체 분배가 끝나면 사제는 사제의 손가락에 축성된 빵 부스러기가 붙어 있을 경우, 특히 성체를 쪼갠 다음 또는 신자들에게 성체를 분배한 다음에는 성반 위에서 털거나 필요하면 물로 씻는다(278).

남은 성체는 사제가 제대에서 모시거나 성체 보관을 위한 곳으로 옮겨 간다. 다시 제대로 돌아온 사제는 성반 밖에 떨어져 있는 성체 부스러기와 성체포 위에 부서진 성체 조각을 모은 다음 제대나 주수상에 서서 성반이나 성합을 성작 위에서 깨끗이 닦고 성작을 씻는다.

이때 속으로 주님, 저희가 모신 성체를 깨끗한 마음으로 받들게 하시고 현세의 이 선물이 영원한 생명의 약이 되게 하소서을 바친다.

성작은 물 또는 물과 포도주로 씻으며 씻은 사람이 마신다. 성반은 보통 성작 수건으로 닦는다. 제대에서 거룩한 그릇들을 깨끗이 씻으며, 씻을 그릇이 많을 경우에는, 제대나 주수상 위에 성체포를 깔고 잘 덮어 두었다가 미사가 끝난 뒤 신자들을 파견한 다음 곧바로 씻을 수 있다. 또한 영성체 다음에 그리스도의 성혈이 남아 있으면 곧바로 제대에서 다 모셔야 한다(279). 그러나 축성된 빵이나 그 조각이 바닥에 떨어졌으면 경건히 줍는다. 성체가 상했거나 더러워져서 모실 수 없게 되면 먼저 제의실로 조심스럽게 옮겨 물이 담긴 깨끗한 용기에 넣어 충분히 녹인 다음 세정대에 버려야 한다. 성혈을 바닥에 흘렸으면 그 자리를 물로 깨끗이 닦고 그 물은 나중에 제의실에 마련된 세정대에 버려야 하며, 천을 사용하여 성혈을 닦은 경우에는 천을 세정대 위에서 깨끗이 헹구고 물은 세정대에 버려야 한다(280).

마찬가지로 오래된 세례수, 남은 재, 오래된 성유도 보관하지 말고 세정대에 버려야 한다. 세정대의 존재는 더 이상 사용할 수 없는 거룩한 것에 대한 우리의 경건한 관심과 존경심을 보여준다.

어이베드로 신부! 자네 본당에는 세정대가 설치되어 있나?

 

 

 

[성 베드로 사도좌 축일] 베드로 사도의 삶과 사도좌

예수께서 교회의 반석으로 선택하고 하늘나라 열쇠를 맡기시다

 

성 베드로 사도좌 축일’(222)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 베드로 사도를 당신의 지상 대리자로 삼으신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가톨릭교회 초기 역사는 곧 베드로가 걸어갔던 발자취에 압축돼 있다고 볼 수 있다. 629일이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로 정해지면서, 222일은 베드로 사도를 교회의 최고 목자로 공경하는 축일로 기념되고 있다. 전 세계 가톨릭교회의 총본산인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이 성 베드로 사도 무덤 위에 세워진 역사에서도 그가 왜 으뜸 사도이며 교회의 반석이 됐는지를 알 수 있다. 베드로 사도의 신앙과 순교, 사도좌의 의미를 알아본다.

베드로 사도의 신앙

성 베드로 사도좌 축일 복음(마태 16,13-19)에는 베드로 사도가 예수 그리스도를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고백한 내용이 담겨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고백을 들은 뒤 베드로라는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고 베드로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고 선언한다. 이로써 성 베드로 사도는 교회의 반석이 된 것이다.

베드로 사도가 교회의 반석이 되기까지 예수님을 충실히 따르기만 한 것은 아니다. 갈릴래아 출신 어부였던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으로부터 부름을 받고 제자가 된 후(마태 4,18-22, 마르 1,16-20 참조) 예수님으로부터 두려워하지 마라. 이제부터 너는 사람을 낚을 것이다라는 사명을 부여받는다.(루카 5,10)

예수님이 특별히 아낀 제자가 베드로 사도였다는 사실은 제자들이 모두 예수님을 배반할 것이라는 예언에 베드로 사도가 모두 스승님에게서 떨어져 나갈지라도, 저는 결코 떨어져 나가지 않을 것입니다”(마태 23,33)라고 말한 성경 기록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의 예언대로 닭이 울기 전에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오라고 세 번 부인했다. 그럼에도 베드로 사도가 교회의 으뜸 사도(사도좌)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나서, 밖으로 나가 슬피 울었던 회개의 행동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마르 14,66-72, 루카 22,55-62 참조)

예수님이 부활한 뒤 제자들에게 나타나 특별히 성 베드로 사도에게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세 번 묻고 역시 세 번 ,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라는 대답을 들은 뒤 내 양들을 돌보아라라고 명령한다. 성 베드로 사도에게 양들을 돌볼 사목권을 부여한 것이다.(요한 21,14-17 참조)

성 베드로 사도의 순교

예수님은 베드로 사도에게 내 양들을 돌보아라라고 명령하면서 동시에 베드로 사도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느님을 영광스럽게 할 것인지 예언하시며 나를 따라라라는 명령도 내린다.(요한 21,18-19 참조) 베드로 사도의 순교를 암시하는 구절이다. 베드로 사도의 순교에 대해서는 성경에 기록돼 있지 않고 전승으로 알려져 있다. 베드로 사도는 생애 후반기에 로마로 가서 활동하다 순교했고 그곳에 묻혔다고 전해진다. 베드로 사도가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한 모습을 그린 성화들은 널리 알려져 있다.

서기 95년경 로마 클레멘스 주교는 코린토인들에게 보낸 편지라는 글에서 베드로 사도가 그리스도교 박해 속에서도 거룩하고 위대한 모범을 보여주었다고 기록했다. 베드로 사도가 순교했다는 전승은 여러 가지 형태로 부정확하게 전해지다 2세기 말에서 3세기 초에 정립됐다. 베드로 사도가 65년경 로마 네로 황제의 대박해 기간에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했다는 내용이다.

성 베드로 대성당과 사도좌 수위권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은 베드로 사도의 무덤 위에 세워졌으며, 전 세계 가톨릭교회의 중심이다. 최초의 성 베드로 대성당은 90년경 성 아나클레토 교황에 의해 작은 경당으로 지어졌다. 그 뒤 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밀라노 칙령을 반포함으로써 신앙의 자유가 주어졌고, 330년 무렵 성 실베스테르 1세 교황이 베드로의 무덤이 있다고 믿어 온 바티칸 언덕에 새 성당 건축을 시작해 30년간의 공사 끝에 완공했다.

지금의 성 베드로 대성당 건축 역사는 무척 길다. 15세기 중반 니콜라오 5세 교황이 재위 중에 재건축을 구상하기 시작했지만 여러 차례 건축 계획이 실행되지 못하다가 결국 176년이라는 오랜 공사 끝에 16261118일 우르바노 8세 교황에 의해 봉헌됐다. 그 후 알렉산데르 7세 교황의 위촉을 받은 베르니니가 주랑(柱廊)으로 둘러싸인 타원형 광장을 설계해 성 베드로 대성당의 진입로 역할을 하게 하면서 오늘날의 성 베드로 대성당의 전체 형태가 완성됐다.

성 베드로 대성당은 길이 221m, 높이 141m에 이르는 세계 최대 규모의 성당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가시관을 상징하는 대성당 돔의 직경도 42m나 된다. 성 베드로 대성당 정면에는 성년(聖年)에만 열리는 성문(聖門)이 있다. 성 베드로 대성당 중앙 제대 아래에는 베드로 사도와 많은 교황들의 무덤이 자리한다. 중앙 제대 뒤편에는 성 베드로 사도좌가 보존돼 있다. 청동으로 만든 베드로 사도 동상도 대성당 내부에 있다.

성 베드로 사도좌는 전 세계 교회에 대한 사목적 최고 권위를 상징한다. 이 권위는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사도들 가운데 으뜸인 베드로에게 수여됐고, 그 후계자인 교황에게 계승되고 있다. 사도좌라는 어휘는 교회에서 성좌(聖座), 성청(聖廳), 교황청(敎皇廳)으로도 쓰인다.

베드로에게서 시작된 사도좌는 교회법 제331주께로부터 사도들 중 첫째인 베드로에게 독특하게 수여되고 그의 후계자들에게 전달될 임무가 영속되는 로마 교회의 주교는 주교단의 으뜸이고 그리스도의 대리이며 이 세상 보편교회의 목자이다. 따라서 그는 자기 임무에 의하여 교회에서 최고의 완전하고 직접적이며 보편적인 직권을 가지며 이를 언제나 자유로이 행사할 수 있다는 조항과 제333조 제1교황은 자기 임무에 의하여 보편교회에 대한 권력을 가질 뿐 아니라 모든 개별 교회들과 그 연합들에 대하여도 직권의 수위권을 가진다는 조항에 의해 사도적 계승과 수위권을 본질로 한다.

성 베드로 사도와 그 후계자인 교황이 행사하는 사도좌 권위는 단체성’(collegiality)을 중요한 요소로 한다. 이 개념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교회론과 교회 규범에서 자주 언급됐으며, 교황을 머리로 하는 주교단의 신학적, 법적 성격이기도 하다. 이에 따라 성 베드로 사도좌 권위는 하느님 백성과의 일치 안에서 행사된다.

 

 

 

 

 

 

 

 

전례-기도하는 교회 (12) 전례 거행의 공통 표징 4 : 앉는 자세, 팔을 벌림

 

앉는 자세 : 모든 미사에서 신자들이 앉아 있는 경우는 복음 전 독서를 하는 동안, 화답송을 바치는 동안, 강론을 듣는 동안, 봉헌 예물을 준비하는 동안, 그리고 필요에 따라 영성체 후 거룩한 침묵을 지킬 때이다.”(총지침 43) 이 규정은 앉음이 말씀을 잘 듣고 새기며, 잠잠한 태도를 쉽게 취하며 전례가 드러내는 신비를 향하도록 도와주는 동작임을 가르쳐줍니다.

중세 초기까지 그리고 어떤 지역에서는 오늘날까지 성당에 신자들이 앉을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어 있지 않은 곳이 있습니다. 이는 전례에 참여하는 근본적인 자세가 서는 자세임을 드러냅니다. 반면에 오래된 성당들 특히 수도원의 경당이나 주교좌 성당에는 수도자들이나 의전 사제단이 앉을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이는 신자들을 차별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긴 시간 그리고 여러 차례 이루어지는 전례, 특히 시간 전례에 참여하는 이들을 위한 것입니다.

중세 이후 많은 성당 안에 의자를 놓게 되는 이유는 개신교의 영향으로 말씀의 전례가 길어졌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앉는 자세는 편안함을 주기 위해 전례 안으로 들어온 자세입니다.

이 편안함의 핵심은 전례가 거행하는 신비에 집중하기 위함입니다. 주일 미사 중, 1독서와 제2독서 때에 앉는 것은 하느님의 말씀에 좀 더 귀를 기울이고 성의를 다해 응답하고, 그 의미를 묵상하기 위해서 취하는 자세입니다. 또한 하느님의 현존 앞에서 감사와 찬미를 드리기 위한 자세이기도 합니다. 봉헌 행렬이 이루어지는 중에 또는 영성체 후에 앉는 것은 바로 이를 위한 시간입니다. 이처럼 앉아서 지키는 잠시의 침묵은 전례 안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참고로 주례자의 좌석 특별히 주교좌나 아빠스의 자리는 그리스도의 현존을 드러내는 상징입니다. 주님께서 지금 여기 현존하시며 직무를 수행하는 이를 통해 친히 주례하신다는 사실과 직무를 수행하는 이의 모든 권위가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드러냅니다.

 

팔을 벌림 : 전례 거행 안에서 팔을 벌리는 자세는 주로 사제의 동작입니다. 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은 사제가 팔을 어떻게 벌려야 하는지 획일적인 동작으로 지시하지 않습니다. 사실 팔을 들고 손을 높이 펼치는 동작은 여러 문화권에서 공통으로 볼 수 있는 자세입니다. 이는 초월적인 존재를 향해 자신의 바람을 청하는 동작으로 사용됩니다. 사제는 팔을 벌려 기도하면서, 하느님 앞에서 모든 권위주의적 태도와 자신의 업적을 드러내려는 자만심을 내려놓고 빈손을 하느님께로 향합니다. 그리고 그 빈손을 하느님의 선물로 채워주시기를 간청합니다. 주먹을 펴고 들어 올린 빈손은 자기 뜻을 관철하고자 하는 폭력적인 마음을 버리고 자신을 비움으로써 하느님의 도움과 은총으로 채우려는 희망을 드러냅니다.

어떤 이들은 팔을 벌리는 자세가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리신 모습을 모방한 것이라고 하지만, 이는 중세 때 미사를 신비적으로 해석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를 재현하는 자세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해석하든, 팔을 벌려 기도하는 사제와 함께 하느님의 은총을 청할 때도 또는 혼자서 하느님께 빈손을 내어놓고 자신을 비우며 기도할 때도 우리는 사랑이신 하느님의 은총과 도움을 만나고 깨닫고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전례 안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동작들은 모두 각각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 의미는 바로 하느님 앞에 서 있는 내 모습입니다. 전례 거행 중에 별 의미 없이 습관적으로 행하던 자세와 동작에 마음을 담고 삶을 담아서, 하느님과의 관계를 더 깊이 살아갈 수 있는 은총이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전례 일반과 미사의 Q&A] (28) 미사 중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의 의미

미사 때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라는 인사가 자주 반복됩니다. 이 인사말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주님의 천사가 그에게 나타나서 힘센 용사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 하고 말하였다.”(판관 6,12)

천사가 마리아의 집으로 들어가 말하였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루카 1,28)

우리는 주님께 청하고 또 청합니다. 그렇게 세상 속의 걱정과 근심을 주님께 올립니다. 물론 가끔은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는다고 주님을 원망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모습은 신앙생활 안에서 자주 반복되는 현상입니다. 마치 우리가 기도한 것이 이루어졌을 때만 주님께 감사를 드리며, 주님께서 은총을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미사 중에 반복되는 한 인사말은 은총의 모습이 어떻게 우리에게 이루어지는지 알려줍니다.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 주님의 신비와 은총은 어떤 기도를 들어주셨을 때만 허락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함께하신다는 점으로 은총의 근본 모습을 알려줍니다. 마치 지금 우리를 감싸고 있는 공기처럼, 그리고 매일같이 반복되는 낮과 밤의 모습처럼, 그리고 지금 내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모습에서 그 은총의 모습은 늘 그렇게 우리와 함께합니다. 세상 끝날까지 내가 너희와 함께 있겠다고 약속하신 말씀은 은총의 모습이 무엇인지 이 말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미사 중 평화 인사로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주님의 평화를 나눕니다. 이 인사말에는 주님께서 허락해 주시는 은총을 통해 주님께서 원하시는 참된 사랑의 모습이 드러납니다.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으로 허락하신 은총을 함께 모인 서로가 서로에게 주님의 평화를 나눌 수 있고, 나아가 삼위일체 하느님의 신비와 일치된 교회 모습으로 주님의 신비에로 더욱 가까이 다가선다.” 이러한 시작점은 함께하시는 주님을 기억하고, 의식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내가 주님과 함께 있음을 의식하지 못한다면, 주님의 은총은 추상적으로 남아있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주님의 이 인사말을 기억해야 합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두려운 상황 속에서도 주님께서는 우리와 함께하시기 위해 다가오십니다. 절망적인 어려움 속에서도 주님께서는 방관하지 않으시고 함께하십니다. 그리고 우리와의 약속에 성실하십니다. 그래서 미사 중 자주 반복되는 이 인사말은 단순히 형식적인 인사가 아니라, 주님께서 우리와 끊임없이 머무르고 있음을 기억하도록 돕습니다. 미사 중 사제의 입을 통해 선포되는 이 인사말을 깊이 묵상하며 온 마음으로 받아들였으면 합니다. 이 인사말은 희망의 씨앗이자, 은총의 육화이며, 구체적으로 선포하시는 사랑, 그 자체입니다.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전례 일반과 미사의 Q&A] (27) 미사 중 분향에 대해서

미사나 성체강복 때 분향을 보게 됩니다. 분향은 어떠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까?

 

주님께 올리는 기도 분향 같게 하옵시고, 쳐든 손 저녁 제사 같게 하옵소서(시편 141,2).”

이 구절에 분향의 의미가 온전히 담겨 있습니다. , 향을 피울 때, 향기로운 연기가 피어 오르듯, 우리 기도를 온전히 주님께 올려드리고, 주님께서 어여쁘게 받아주시기를 바라는 의미입니다.

분향의 의미를 알기 위해서는 교회 역사에서 분향의 모습을 이해해야 합니다. 구약성경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께 제물을 태워 봉헌할 때 향 가루도 함께 태웠습니다. 그리고 분향 제단을 별도로 지정하여 아침마다 하느님께 향을 피워 올렸습니다. 분향 제단이 있는 곳은 지극히 거룩하신 하느님이 머무시는 지성소였습니다(탈출 30장 참조). 이러한 의미를 살려, 초세기 교회에서는 전례에 분향을 도입시켰습니다. 나아가 11세기에는 미사 때도 분향하는 예절을 도입하였고, 성직자와 신자들 그리고 성당 봉헌식 등의 봉헌 예식으로 확대했습니다. 그러나 전례 안에서 너무 남용되는 부분을 막기 위해 12세기 이후부터는 대축일의 요소, 장엄미사(Missa solemnis)에만 소급 적용하였습니다.

그러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전례 개혁의 결과로 분향은 초세기 교회 안에서 행해졌던 그 의미를 회복시켰습니다. 그래서 분향은 대축일과 축일뿐 아니라 어느 미사 때에나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성체강복 때와 성당 봉헌 때에 그리고 장례 예식 때에도 분향하는데 그 의미는 공경과 기도, 거룩함으로 요약됩니다.

 

성경에서 드러난 분향의 모습을 토대로 그 의미를 유추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로, 구마식에서 영들을 멀리 쫓아내는 구마적 의미로 드러납니다(토비 6,8 참조).

둘째로, 기도의 상징입니다. 위로 올라가는 연기는 하느님께 올라가는 기도의 표지로 볼 수 있습니다(시편 140,2; 묵시 5,8; 8,3-4).

셋째, 확산의 상징으로 향기로운 냄새처럼 퍼지는 실재를 언급합니다(2코린 2,14-15 참조). 넷째로 존귀함의 상징입니다. 역사 안에서 비잔틴 제국에서는 황제를 맞이하기 위한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왕궁에서 사용되었습니다.

다섯째, 희생 제사의 표지인데, 특히 말라 111절에서 잘 나타납니다. 신약의 제사에서 분향깨끗한 봉헌”(참조. 탈출 30,34; 레위 2,1 이곳에서는 음식 봉헌이 분향과 결합되어 나온다.)과 함께 언급됩니다. 이러한 봉헌의 상징은 성경 여러 곳에서 자주 등장합니다(탈출 30,7; 2역대 26,19; 1마카 4,49-50; 시편 140,2; 이사 1,13; 루카 1,10-11; 에페 5,2 등등). 여섯째로, 씻음과 정화의 의미입니다. 에티오피아 전례에서 정화의 상징으로 성작에 분향합니다.

마지막으로 분향은 또한 구름의 상징에 포함됩니다. 주님의 영광을 상징하는 구름을 표현하기 위함입니다(탈출 16,10).

 

분향의 의미를 잘 되새기며, 이 예식을 마주할 때, 우리의 기도를 연기처럼 주님께 올려드리고, 감각적으로 드러나는 요소임을 인지하며, 주님께 오롯이 봉헌하는 전례에 참여하는 우리가 되기를 바라봅니다.

 

 

[전례 일반과 미사의 Q&A] (26) 사제의 미사 중 팔 벌림의 행위에 대해서

미사 중 사제의 팔 벌림은 무슨 의미가 있나요? 그리고 신자들이 따라 해도 되나요?

 

이어서 사제는 팔을 벌리며 교우들에게 인사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하느님의 사랑과

성령의 친교가 여러분 모두와 함께.

또한 사제의 영과 함께.

미사를 시작하며, 주례 사제는 성호경을 긋고, 다음의 미사 예규를 따릅니다. “사제는 팔을 벌리며 교우들에게 인사한다.” 여기서 유심히 바라볼 수 있는 모습은 사제가 팔을 벌려인사한다는 점입니다. 이 외에도 미사 중 사제는 팔을 벌려 인사하거나 기도합니다.

그렇다면 사제의 팔을 벌리는 행위는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우선 사제의 팔 벌림은 구약시대부터 내려오는 전통적인 장엄기도의 자세입니다. 사제의 이러한 팔 벌림의 기도 자세는 하느님께 향하고 주님의 도움을 바라는 자세(탈출 17,9-14; 시편 134,2; 이사 1,15)입니다. , 이 기도 자세는 주님께로 향하려는 신앙의 표시이자, 애덕의 표시이고, 하느님 아버지와의 일치를 드러냅니다. 미사가 하느님께 드리는 제사라는 개념과 연결하여 이해한다면, 제사장이 팔을 벌리고 기도하는 모습은 우리 모두가 하느님께로 향하고 있음을 의식하게 하고, 주님께 간절히 기도한다는 점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미사 중 사제들이 팔을 벌리는 모습을 본다면, 미사를 봉헌하는 우리들은 어떠한 마음 가짐을 가져야 할까요?

사제는 팔을 벌리며 말한다.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또한 사제의 영과 함께.

사제는 손을 올리며 말한다.

마음을 드높이.

주님께 올립니다.

사제는 팔을 벌리고 계속한다.

우리 주 하느님께 감사합시다.

마땅하고 옳은 일입니다.

사제는 팔을 벌리고 감사송을 계속한다.

감사송에서 드러나는 이 인사에서 지향이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주님의 현존에 대한 믿음을 고백하고, 우리들의 마음을 하느님께 올려드리며, 동시에 감사의 마음을 아버지께 봉헌하는 것이 우리들의 합당한 자세입니다. 따라서 사제의 팔 벌림을 바라보는 순간에는 더욱 우리들이 하느님께 집중하고, 기도해야 한다는 점을 의식해야 합니다. 가끔, 주님의 기도를 봉헌할 때 신자분들 중에도 팔을 벌려 기도를 바치시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전례 예규에 의하면 불필요한 행위입니다. 왜냐하면 이미 사제가 공동체를 대표로 하여 팔을 벌려 기도를 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자세를 따라 하기보다는 우리들의 마음을 올리고, 아버지께 감사와 기도를 올리려는 마음의 자세를 갖추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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