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로 풀어 보는 세상 이야기] 엘라의 계곡
행크 디어필드(토미 리 존스)는 헌병대 수사관 출신으로 두 아들의 아버지다. 전역한 지 오래됐지만 군인정신이 몸에 배어있는 사람이다. 스스로의 삶에 엄격한 규율을 적용하고, 애국심도 여전하다. 관공서 앞에 국기가 뒤집혀서 걸려있는 것을 봐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운전을 멈추고 차에서 내려서라도 뒤집힌 걸 바로잡는 그런 사람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이야기
그는 군과 전우애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다. 군대에 가서 전우들과 함께 역경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제대로 된 사내로 성장할 수 있다는 믿음. 그래서 아내가 극구 반대했어도 기어이 두 아들을 모두 군에 입대시켰다, 군인정신을 배워 진짜 사나이가 되어서 돌아오라고.
하지만 공수부대에 입대했던 큰아들 데이빗은 10년 전에 헬기 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작은아들 마이크는 보병으로 이라크에 파병 중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부대로부터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나흘 전에 아들이 미국으로 복귀했는데, 부대에서 이탈했다는 것이다. 일요일까지 복귀하지 않으면 탈영으로 처리된다는 통보였다. 행크는 수사관 경험을 살려서 아들을 찾아 나선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군부대 근처의 잡초덤불이 무성한 공터에서 아들의 시신이 발견된다, 처참하게 살해된 채로. 시신은 토막 내 불에 태운 상태였다. 잘려나간 시신은 날짐승들의 먹이로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다. 뼈에 남아있는 흔적만으로도 칼에 42번 이상 찔려서 살해된 것으로 보였다. 행크를 도와 수사를 진행하는 여형사 에밀리 샌더스(샤를리즈 테론)는 마이크의 전우들을 의심한다.
하지만 행크는 전우애를 모르는 사람만이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다며 에밀리의 생각을 일축한다. 전장에서 서로의 목숨을 함께 지켜줬던 전우들끼리는 서로를 죽일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행크의 믿음은 얼마 가지 못해 깨져버리고 만다. 아들은 전우들에게 살해당한 것이었다. 그것도 지옥 같았던 전쟁터에서 평화로움을 만끽할 수 있었던 고국으로 귀국한 뒤에 살해당한 것이다.
살해의 특별한 동기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부대 밖에서 함께 술을 마시다가 다툼이 벌어졌다. 그러다 한 명이 마이크를 찌른 것이다. 누군가는 시체를 토막 내서 태우자고 했다. 시체를 묻어버리려고도 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유는 배가 고파서였다. 그래서 전우의 시신을 그냥 공터에 버려두었다. 그러고는 허기를 달래러 치킨 가게로 갔다. 전장에서 생사고락을 함께했던 전우를 살해하고도 죄책감이 전혀 없었다. 이들은 살인과 죽음에 대해 무감각한 상태였던 것이다.
귓가에 맴도는 마지막 통화
실화를 바탕으로 한 폴 해기스 감독의 2007년 작 ‘엘라의 계곡(In the valley of Elah)’은 지옥 같은 전쟁터에서 몸과 마음이 무너지는 청년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집에서는 착하고 순진했던 아들이 부모가 기대했던 것처럼 전장에서 진정한 사나이로 거듭났던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회복 불가능한 상태로 망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마이크의 휴대전화에 촬영된 동영상에는 공을 잡으려고 차도로 나온 이라크 소년을 상당한 거리에서 발견하고도 의도적으로 속도를 더 내서, 장갑차로 치고 그 위로 넘어가는 장면이 담겨있었다. 운전자는 마이크였다. 장갑차로 이동할 때는 전방에 무엇이 나타나든 멈추지 말라는 상부의 지시가 있었다. 멈춰서면 잠복해 있던 게릴라가 나타나서 습격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었다.
소년을 발견하고 멈칫하는 마이크에게 조수석의 동료는 멈추지 말라고, 속도를 더 내라고 소리친다. 병사들은 전쟁터라는 지옥에서 괴물로 변해가고 있었다. 부상당한 포로의 상처를 손가락으로 찌르면서 포로의 극심한 통증을 즐기고, 불에 타죽은 시신의 이마에 스티커를 붙이고 사진을 찍으면서 조롱한다.
아버지 행크의 귓가에는 아들과의 마지막 통화가 계속 맴돈다. 집에서 잠을 자고 있다가 새벽에 받은 전화였다. 아들은 울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소년을 장갑차로 쳐서 죽인 뒤에 전화를 한 것이었다. 이라크의 부대 막사에서 전화를 건 마이크는 울먹이며 말한다. “제발 저를 여기서 좀 꺼내주세요!” 행크는 그냥 겁이 나서 그런 거라고 아들을 위로한다, 전쟁터에서 겁이 나는 것은 누구나 당연히 겪어야 하는 시련이라고. 행크는 굳은 마음으로 시련에 맞서면 극복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자기가 그랬던 것처럼 아들도 시련을 극복한 뒤에 더 멋진 사내로 성장해서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행크는 자신을 꺼내달라면서 울먹이는 아들의 말을 단순한 성장통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왜 알지 못했을까
사실 당시 행크는 아들의 우는 모습을 동료들이 알아챌까봐 더 걱정이었다. 군대 가서 힘들다고 새벽에 아버지에게 전화해서 눈물을 흘리는 아들이라니. 전우들에게 겁쟁이로 찍힐까봐 걱정스러웠다. 공개된 장소에서 다른 병사들도 전화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후회스럽다. 왜 그때 아들이 엄청난 심리적 통증에 시달리고 있었다는 것을 알지 못했을까! 아들은 분명히 살려달라고 말했는데. 왜 그때 그 말을 그대로 받아들여 아들을 지옥에서 꺼내주지 못했을까!
사람들은 자신의 관점에서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내가 맛있게 먹은 음식은 다른 사람도 맛있어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를 성장시키는 데 도움이 되었던 경험은 다른 사람의 성장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기 경험을 토대로 다른 사람이 경험하게 될 것을 예측하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추론은 얼추 맞는 경우가 많다. 사람들은 비슷하니까.
하지만 사람들은 서로 다르기도 하다. 문제는 특히 자신이 생각하는 경험의 강도와 다른 사람이 실제로 체험하는 경험의 강도가 크게 다를 때 발생한다. 행크도 아들의 군대생활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이 아들에게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통증이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제발 지옥에서 꺼내달라는 아들의 이야기를 듣고도, 적응과정에서 경험하게 되는 성장통쯤으로 여겼던 것이다.
자신도 그걸 경험했고, 결국은 극복했으니, 아들도 이런 시련을 이겨낼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자신처럼 제대로 된 사나이가 되어서 돌아올 것이라고 굳게 믿었던 것이다.
공포심과 싸워 이겼기 때문에
에밀리의 집에 저녁식사를 초대받은 행크. 그는 에밀리의 어린 아들 데이빗이 잠자리에 들기 전에 이야기를 하나 들려준다. 다윗과 골리앗 이야기이다. 이스라엘 군대와 팔레스타인 군대가 엘라의 계곡을 사이에 두고 양편 언덕에서 대치하고 있었다.
팔레스타인 전사 중에 골리앗이라는 어마어마하게 큰 거인이 있었다. 그는 40일간 날마다 엘라의 계곡으로 내려와 일대일로 자신과 싸우자고 상대 진영에 싸움을 걸었다. 하지만 이스라엘 군인 가운데 나서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모두 겁을 먹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다윗이라는 이스라엘 소년이 형들이 있는 진영에 빵을 가지고 왔다가 그 이야기를 듣고 임금에게 자신이 골리앗과 싸우겠노라고 말한다. 임금은 다윗에게 갑옷과 칼을 주었지만, 너무 크고 무거워서 다윗은 모두 내려놓는다. 그러고는 주변에 있던 조그만 돌멩이 다섯 개를 주워서 골리앗이 기다리고 있는 엘라의 계곡으로 내려간다.
골리앗이 엄청난 괴성을 지르면서 다윗을 향해 달려들었다. 다윗은 돌팔매질로 골리앗의 이마 한가운데를 맞혔다. 골리앗은 땅바닥에 얼굴을 박은 채 쓰러졌고, 다윗은 골리앗의 칼을 뽑아서 그의 목을 베었다.
행크는 데이빗에게 다윗은 자기 자신의 공포심과 싸워서 이겼기 때문에 골리앗을 이길 수 있었다고 이야기해 준다. 골리앗이 괴성을 지르면서 엄청난 기세로 자기를 향해 달려오는데도 꿈쩍하지 않고 기다릴 수 있는 용기를 가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골리앗이 돌팔매의 사정거리까지 다가올 때까지 침착하게 마주보고 서있다가 이마 한가운데로 돌팔매를 냉정하게 날려버릴 수 있었던 용기.
우리는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매혹된다. 실패자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멘도(역량, 지식, 지혜, 긍정적 가치관을 고루 갖춘 상담가, 지도자, 스승님, 선생님 등의 의미)의 위치에는 성공적으로 역경을 극복한 사람들만이 오를 수 있다. ‘멘토’와 ‘힐링’(몸과 마음의 치유)의 시대에 멘토들은 힘들고 지친 사람들에게 당신도 다윗이 될 수 있다고 격려한다. 자신에게도 시련이 있었지만 참고 노력한 덕분에 자신ㄷ 다윗처럼 승자가 될 수 있었다고 말이다. 이런 멘토들의 격려는 힘을 분다.
하지만 이미 헤어날 수 없는 수렁에 빠진 사람들에게는 이런 격려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 한다 참고 견디어 노력하라고 말하기 전에 먼저 손을 내밀어 수렁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사람을 건져내 목숨을 살려야 할 때가 있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다윗이 될 수는 없다. 더구나 우리 모두가 다윗처럼 살 필요도 없다. 그리고 다윗은 엘라의 계곡에서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힘들고 고통스러웠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심리로 풀어 보는 세상 이야기] 엄마의 사랑으로 만드는 세상
첫사랑의 대상
우리는 태어나자마자 금세 사랑에 빠진다. 첫사랑이다. 인생의 사랑은 보통 세상에 태어나서 6개월에서 1년 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에 찾아온다. 이 시기가 되면 아기는 얼굴에 대한 변별력을 갖게 된다. 누가 누구인지, 어떤 얼굴이 자신을 사랑하고 지켜주는 사람인지 알게 되는 것이다. 그러곤 그 얼굴의 사람에 대한 사랑의 감정을 키우게 된다.
모든 사랑이 사랑하는 대상에 대한 그리움을 키우듯이, 아기는 자신의 사랑과 늘 함께하고 싶어 한다. 자신의 사랑과 물리적으로 떨어질 때는 눈물을 흘리며 불안해한다. 격리불안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 반면, 자신의 사랑과 다른 얼굴을 한 사람이 가까이 다가오면 공포심을 드러낸다. 낯가림을 하는 것이다. 격리불안과 낯가림은 사랑에 푹 빠졌다는 증거다. 어떤 얼굴이 자신의 사랑인지 알고, 전적으로 그 대상과 함께 있고자 하는 마음으로 가득 찬 상태다. 첫사랑은 이렇게 우리 인생을 방문한다.
첫사랑, 곧 인생의 초기에 우리에게 사랑을 준 대상에게 우리의 마음을 주는 현상을 애착이라고 한다. 아기가 극소수의 제한된 대상에게 느끼게 되는 강력한 심리적 유대감 또는 감정적인 끈이다. 사람이 태어나서 경험하게 되는 첫 번째 사랑의 대상은 많은 경우가 어머니이다.
어머니와의 신체적 접촉 과정을 통해 경험하는 ‘접촉 위안’이 애착형성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인이라고 한다. 어머니의 따뜻한 품에 안겼을 때 경험하는 심리적 따뜻함이 바로 난생처음 경험하는 사랑의 감정이다.
사랑의 흔적
사랑은 사랑으로 끝나지 않는다. 모든 사랑은 흔적을 남긴다. 그리고 이러한 흔적은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왜냐하면 사랑의 경험이 바로 우리의 세상과 사람에 대한 태도와 관점을 바꾸어놓기 때문이다. 아기의 사랑도 마찬가지다.
그 누구도 이 세상에 자신이 원해서 나온 사람은 없다. 자기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지 않았음에도 주어진 삶이다. 이 불확실한 미지의 세계에서 처음 만나게 된 존재와 이루는 상호작용은 아기에게 세상과 사람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믿음을 형성하는 토대를 마련한다.
애착 대상이 일관되게 지속적으로 아기에게 관심을 보여주고, 아기의 요구에 민감하게 반응하면, 아기는 이 낯선 세상이 꽤 살 만한 곳이고 인간이라는 존재가 믿을 만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아기는 안정적인 애착을 형성한 것이다. 그 반면, 애착 대상이 아기의 요구에 무관심하고 일관적이지 않게 반응하면, 아기는 세상과 사람에 대한 불신을 형성하게 된다. 세상살이가 만만찮고, 세상에 믿을 사람 없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아기는 불안정 애착을 형성한 것이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경험한 사랑이 따뜻하고 달콤했는지, 그와 반대로 차갑고 아팠는지에 따라 아기가 획득하게 되는 세상과 사람에 대한 믿음은 크게 달라진다. 한 살도 채 되기 전에 시작한 첫사랑의 결과가 세상에 대한 첫인상과 사람이라는 존재에 대한 첫인상을 결정하는 것이다.
인생 초기에 세상은 따뜻하며 사람들은 신뢰하고 의지할 수 있는 존재라는 믿음을 형성한 아기들과, 세상은 차갑고 사람들을 신뢰하거나 의지할 수 없다는 믿음을 형성한 아기들의 미래는 달랐다. 영아기에 안정적인 애착을 형성했던 아이들은 유치원에 가면 불안정 애착을 형성했던 아이들보다 친구가 많고 인기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이유는 안정적 애착을 형성한 아이들은 사회적인 의사소통 기술이 잘 발달되어 있었고, 공격성의 정도가 낮았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아동들은 불안정 애착을 형성한 아동들에 비해 자아 존중감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차이는 초등학교에 입학한 뒤에도 나타났다.
영아기의 애착형성이 사회성 발달에 미치는 영향 가운데 우리가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공격성이다. 미국의 심리학자 해리 할로우(Harry Harlow)는 아기 원숭이가 태어나자마자 세 달 동안 어미나 다른 친구 원숭이들이 없는 우리에 격리시켜서 키웠다. 세상에 나오자마자 마치 감옥 같은 독방에서 3개월을 보내게 만든 것이다. 먹이와 물은 풍부하게 주었지만 어미 원숭이와 애착을 형성할 기회, 곧 첫사랑의 기회는 박탈한 것이다.
세 달이 지난 뒤에 이 원숭이를 또래의 다른 원숭이들이 있는 우리에서 생활하게 했다. 아기 원숭이는 처음에는 또래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두려움과 공포를 나타냈다. 우리 구석에서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머리를 푹 처박은 채 웅크리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점점 흐르면서 또래들과 상호작용을 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런데 일 년가량 지나 어느 정도 성숙했을 때, 또래 원숭이들과는 확연히 다른 차이점이 하나 발견되었다. 바로 매우 공격적이었다.
할로우의 연구결과는 시설에서 자란 아동들이 일반 가정에서 자란 아동들에 비해 더 공격적이라는 연구결과와 맞물려, 애착이 인간의 사회성과 정서의 발달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일러준다고 해석되었다. 실제로 보모 1인당 돌봐줘야 하는 아이의 수가 상대적으로 많은 유아원에서 자란 아이들이 불안정한 애착을 형성하고, 서너 살 무렵에는 안정적인 애착을 형성했던 아이들보다 더 강한 공격성을 나타내는 것으로 밝혀졌다. 애착의 이러한 영향은 성인이 되어서도 지속되는 것으로 보인다.
첫사랑에 따라 달라진 세상
첫사랑의 경험을 통해서 세상과 사람에 대한 신뢰를 획득한 사람과 불신을 형성한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신뢰가 밑바탕에 깔려있을 때, 사람들은 양보와 평화를 선택한다. 반대로 불신은 우리를 경쟁과 힘에 의존하게 만든다. 그 경쟁과 힘에 대한 의존은 결국 갈등과 폭력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믿음이 있는 곳에서 선택되는 수단이 평화라면, 불신이 팽배한 곳에서 주로 선택되는 수단은 폭력이다.
따라서 세상은 따뜻하고 사람들은 믿을 만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과 세상은 차갑고 사람들은 믿을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사회적 상호작용 과정에서 선택하게 되는 수단은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연구들이 영아가 반드시 어머니와 애착을 형성해야만 안정적인 애착을 형성하게 된다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어머니뿐만 아니라 아버지, 할머니, 할아버지, 유모 등과 같이 영아를 돌봐주는 사람은 모두 애착형성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누가 애착형성의 대상이 되는지보다는 아동이 애착을 형성한 대상과 얼마나 안정적이고 건강한 관계를 형성했는지에 있는 것이다. 아기를 유아원 등에 맡겨야 하는 경우, 보모와 영아간에 안정적인 애착이 형성될 수 있을 만큼의 상호작용이 가능해야 한다. 보모가 영아의 얼굴과 이름을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많은 아이를 돌봐야 하는 상황에서 안정적인 애착이 형성되기는 무척 어렵다.
아기의 심리적 안전기지가 되어줄 수 있다면, 그 누구나 훌륭한 애착의 대상이 될 수 있고, 이러한 애착의 대상이 존재한다는 사실 그 자체가, 그 대상과는 무관하게 아기의 정서와 사회성 발달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연구에 따르면, 어머니가 취업을 했을 때 아기들이 불안정 애착을 형성하는 경우가 종종 발견된다고 한다. 그 원인은 어머니의 취업으로 아기가 어머니 이외의 다른 사람과의 애착을 형성했기 때문이 아니라, 어머니들이 아기를 제대로 돌보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데서 오는 죄책감이나 불안 등에 있다고 한다.
여성들에게 일과 가정사를 모두 완벽하게 수행하는 ‘슈퍼 맘’이 되기를 강요하는 사회가 직장에 다니는 어머니들에게 죄책감을 느끼게 만들고, 그 결과 어머니와 아기 사이의 안정적 애착형성을 방해한다.
이제는 어머니가 아이를 전적으로 돌봐주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세상이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어머니와 아기 사이에 안정적 애착형성의 책임을 어머니와 아기에게 일임하는 사회는 불안정 애착을 장려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리고 불안정한 애착을 형성한 아기들이 성장해서 일으킬지도 모르는 문제는 결국 안정적 애착형성의 책임을 방기했던 사회로 돌아가게 된다.
현재의 보육문제를 방치한 사회, 곧 첫사랑을 지켜주지 못한 사회의 미래는 평화보다는 폭력에 더욱 가까워질 가능성이 높다. 이것이 우리 사회의 보육문제를 소홀히 다룰 수 없는 또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심리로 풀어 보는 세상사] 행복을 잡는 쉬운 방법
심리학의 딜레마
“심리학은 과학이다.” 오늘날의 심리학을 있게 만들었다고 평가받는 심리학의 선구자들은 ‘심리학이 과학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심리학은 과학이 되기에는 조건이 아주 열악하다. 어떤 학문이 과학이 되려면 관찰이 가능한 연구대상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객관적으로 측정하고 비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심리학자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연구대상은 대부분 눈에 보이지 않는다. 우울이나 불안, 행복 등도 마찬가지다.
이것이 바로 심리학자가 놓인 딜레마다. 심리학을 과학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정작 연구하고 싶은 대상은 관찰하는 게 불가능한 것이다. 이러한 딜레마를 해결하고자 심리학자들이 사용하는 방법이 바로 ‘조작적 정의’이다. 조작적 정의는 보이지 않는 연구대상을 관찰하고 측정할 수 있을 정도로 구체적으로 정의를 내리는 것이다. 조작적 정의를 내리면 문제에 대한 답을 찾는 게 수월해진다. 심지어는 답을 찾는 게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던 문제에 대한 답도 찾을 수 있다. 왜냐하면 보이지 않아서 찾을 수 없을 것만 같았던 것들이 조작적 정의를 통해서 보이기 시작하고, 그래서 잡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마이클 조던과 이상민
농구 역사상 가장 높은 인기를 구가했던 선수는 누구일까? 수많은 스타플레이어(인기 선수)들이 있지만, 아마도 많은 사람이 미국의 마이클 조던을 꼽을 것이다. 아직까지도 농구 황제라는 칭호가 어울리는 사람은 마이클 조던뿐이라는 사실에 많은 사람이 공감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농구 선수들 가운데에서는 누가 가장 높은 인기를 누렸을까? 신동파, 이충희, 김현준, 허재.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세대에 따라 크게 다르지만, 이상민 선수도 엄청난 인기를 누렸던 대표적인 선수 가운데 한 명이다.
프로 농구가 생기기 전에 우리나라 겨울 스포츠의 꽃은 ‘농구대잔치’였다. 이 대회에는 당시 삼성, 현대, 기아, 상무 등 내로라하는 실업 팀들과 연세, 고려, 중앙 등 대학의 강자들이 모두 참여했다. 대학 팀들은 패기와 체력으로 실업 팀들을 위협했지만, 우승은 늘 프로 팀 창단을 앞두고 있던 노련한 실업 팀들의 차지였다. 하지만 프로 농구 창단을 몇 해 앞두고 대학 팀의 반란이 일어나고 말았다.
드디어 실업 팀들을 제치고 농구대잔치의 우승컵을 거머쥔 대학 팀이 나타났는데, 연세대학교 농구부가 그들이다. 이상민, 서장훈, 문경은, 우지원 등의 국가대표급 선수들로 구성된 연세대는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였던 기아를 꺾고 우승을 차지한다. 경기장은 이 선수들을 보러온 여학생 팬들로 가득 찼고, 자신이 좋아하는 선수가 공을 잡을 때마다 비명과 환호가 터져 나왔다. ‘오빠부대’라는 단어가 만들어진 것이 바로 이때였다. 특히, 이상민 선수의 인기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는데, 그의 깔끔한 외모와 ‘포인트가드’(농구에서 경기를 주도해 시합을 자기편에 유리하게 만드는 역할을 맡는 선수)로 팀을 이끌면서 결정적인 순간에는 자신이 해결사로 나서서 승리를 결정짓는 플레이는 남성들조차 매료시켰다.
이쯤에서 엉뚱한 질문을 해보자. 마이클 조던과 이상민 선수 중에서 누가 더 인기가 높았을까? 사실, 너무 쉬운 질문이다. 답은 조던이다. 인기가 많으면 알아보는 사람도 많다. 세계적으로 농구를 좋아하는 팬들 가운데 조던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 반면 이상민 선수를 아는 외국인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인기가 높을수록 더 많은 연봉과 광고 출연료를 받는다. 따라서 조던과 이상민 선수의 연봉과 광고 출연료만 비교해 봐도 쉽게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조금 더 복잡한 질문을 해보자. 조던이 활약할 당시 미국 농구 팬들이 조던을 좋아했던 정도와 이상민 선수의 활약 당시 한국 농구 팬들이 이상민 선수를 좋아했던 정도를 비교할 수 있을까? 달리 표현하면, 조던에 대한 미국 관중들의 애정을 이상민 선수에 대한 한국 관중들의 애정과 비교했을 때, 누구의 애정이 더 컸을까? 쉽지 않은 질문이다. 아니,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 가능하기나 할까?
정말 좋아하는 대상을 보게 되면 의식적으로 통제하기 힘든 여러 가지 현상이 나타난다. 환호성도 그중의 하나다. “와~.” 하는 탄성을 터뜨리거나,“ 오빠~.”라는 외침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터져 나오는 것이다. 더 좋아하는 사람이 등장할수록 환호성은 더 커진다. 한양대 오재응 교수 팀은 1997년도 1월 20일에 열린 농구대잔치 결승전의 선수 소개 때 터져 나온 순간소음을 측정하였다. 환호성의 크기를 측정한 것이다. 그 결과, 이상민 선수는 113 데시벨, 서장훈 선수는 103 데시벨, 조상현 선수는 102 데시벨이었다고 한다.
항공기가 이륙하거나 착륙할 때 발생하는 소음이 100 데시벨이라고 하니, 말 그대로 귀청이 떨어질 것 같은 환호성이 터져 나온 것이다. 하지만 마이클 조던이 등장할 때 미국 관중들이 지르는 환호성의 크기는 90 데시벨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따라서 이러한 결과는 이상민 선수가 활약할 당시 그에 대한 한국 관중들의 애정이 얼마나 강했는지를 보여준다.
동양 문화권에 사는 사람들이 서양 문화권 사람들보다 감정의 표출을 자제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까지 감안하면, 이상민 선수의 인기는 실제로는 113 데시벨 대 90 데시벨의 차이를 통해 추론할 수 있는 것보다 더 컸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조작적 정의는 답을 찾는 것이 불가능해 보였던 문제에도 답을 찾을 수 있게 해준다.
행복에 대한 조작적 정의
행복은 우리 모두가 원하는 것이다. 하지만 주변에서 행복하다는 사람을 찾기는 그리 쉽지 않다. 그 이유 가운데 하나는 행복이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으니 행복을 찾는 것이 힘들고, 쉽게 행복해지는 것도 어려운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행복해지려면 눈에 보이지 않는 행복을 눈에 보이게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행복을 잡을 수 있다. 행복에 대한 조작적 정의가 필요한 것이다.
행복에 대한 오해 가운데 하나는 행복은 우리 인생에 거창한 성공과 행운이 찾아왔을 때 경험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행복은 일상에서 경험하는 기쁨과 즐거움이 쌓여 만들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행복해지려면 미래의 큰 성공과 행운만을 기다리는 대신 작지만 현재의 구체적인 기쁨과 즐거움이 무엇인지 알아채고 이를 충분히 느낄 수 있어야 한다. 똑같은 일상을 살아도 자신에게 주어진 기쁨과 즐거움이 무엇인지 알아채고 이를 만끽하며 사는 사람과 이를 전혀 자각하지 못하고 하루하루를 흘려보내는 사람의 행복은 크게 다른 것이다.
행복은 단순히 우리의 기분을 좋아지게 만들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행복은 일종의 자원이다. 행복한 사람은 마음속에 정신적 자원을 더 많이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인생의 위기나 스트레스에 직면해도 더 쉽게 극복할 수 있다. 정신적 자원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행복하게 살아야 하는 또 다른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숙제 : 행복 리스트 만들기
“오늘 이 글을 읽으신 분들에게는 숙제가 하나 있습니다. 설마 「경향잡지」 보다가 숙제를 하게 될 줄은 모르셨겠지요? 15분 정도의 시간만 투자해 보면 어떨까요. 준비물은 종이 한 장과 펜 하나. 조용히 책상에 앉아서 리스트(목록)를 하나 작성하시는 겁니다. 그 안에는 여러분을 행복하게 만드는 행동이 들어가되 매우 구체적이어야 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성공’ 같은 추상적인 단어는 사용 금지입니다. 만일 자판기에서 커피 한 잔 뽑아 마시면서 수다를 떨어도 기분이 좋아지는 친구가 있다면, 그 친구와의 수다 떨기가 여러분의 행복 리스트에 포함되어야 합니다. 반신욕도 좋고, 집 근처의 산책도 좋습니다. 한 학생은 자신이 좋아하는 향이 있는데, 매일 아침 샤워한 다음에 그 향이 들어간 스킨로션을 바를 때마다 너무 큰 행복을 느낀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작지만 이런 구체적인 행동이 여러분의 행복 리스트에 포함되어야 합니다.
작성을 마치고 나면, 이제는 그 안에 들어 있는 행동 가운데 최소한 세 가지를 일주일 동안 의도적으로 해보세요. 가능하면 자주 그 안에 있는 일을 실행해 보세요. 그것이 행복입니다. 여러분이 경험하는 행복의 총량은 이렇게 작지만 구체적인 행동을 통해서 경험하게 된 기쁨과 즐거움이 쌓여서 만들어집니다. 그리고 행복을 자주 경험하면 할수록 우리의 마음은 건강해집니다.
신체를 단련하려면 꾸준히 운동을 하듯이, 이제는 마음의 건강을 위해 행복 리스트에 써놓은 행동을 계획적으로 실천해 보면 어떨까요.”
[심리로 풀어 보는 세상사] 어른의 조건
“머리카락 보인다. 꼭꼭 숨어라.” 숨바꼭질의 핵심은 잘 숨는 것이다. 술래가 이런 곳에 숨을 것이라고는 상상할 수도 없는 곳을 찾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숨바꼭질의 기본은 자신의 몸을 완벽하게 감추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다섯 살 전후의 아동들의 숨바꼭질에는 이런 기본이 빠져 있다. 거실 창문의 커튼 뒤에서 조용히 차렷 자세로 숨죽인 채 숨어 있다.
그런데 문제는 커튼의 길이가 무릎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종아리와 발이 그대로 드러난 채로 커튼 뒤에 꼼짝 않고 숨어 있다. 그러다 술래가 자신을 찾아내면 깜짝 놀란다. 이렇게 완벽하게 숨었는데, 어떻게 찾아냈지?
아동들은 숨바꼭질을 할 때 자기 눈만 가리는 경우가 많다. 자신이 보지 못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도 보지 못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커튼 뒤에 있어서 자신의 눈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니, 술래도 자신을 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어떻게든 자기 눈을 가리려고 노력한다. 다리는 방바닥에 다 나와 있어도, 머리만은 침대 밑에 숨기려고 한다. 욕실에 걸린 큰 수건 뒤에 숨고 싶은데, 키가 작아서 수건에 미치지 못하면, 까치발을 해서라도 수건 뒤에 자기 눈은 꼭 가리려고 한다. 나이가 비슷하면 생각하는 것도 비슷하다. 커튼 뒤에 같이 숨어 있는 두 명의 꼬마는 모두 술래가 자신들을 찾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자아 중심적 사고
어른과 아이는 다르다. 어른은 나와 타인이 보는 세상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안다. 내가 보지 못한 것을 상대방이 볼 수도 있고, 내가 본 것을 상대방은 보지 못할 수도 있다. 내게 소중한 것이 상대방에게는 별 의미가 없을 수 있고, 상대방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이 내게는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아동들은 세상 모든 사람이 자신과 동일한 세상을 본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자신에게 안 보이면, 다른 사람에게도 안 보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반대로, 자신이 본 것은 다른 사람도 봤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관점과 다른 사람의 관점이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타인의 관점을 고려하지 못하는 아동들의 사고방식을 자아 중심적 사고라고 한다. 이러한 사고 경향 때문에 아동들은 자신이 좋아하고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다른 사람도 좋아하고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만일 다섯 살 전후의 아동들에게 이른바 명품이라고 하는 고가의 가방과 ‘뽀로로’가 그려진 가방 중에서 엄마에게 줄 선물을 고르라고 하면, 아동들은 뽀로로 가방을 선택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는 아동들이 엄마도 자기와 같은 관점으로 세상을 볼 것이라고 여기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자아 중심적이라는 것이 이기적인 사고방식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엄마도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대상인 엄마를 위해서 최선을 다해 뽀로로 가방을 고르는 것이다.
어른의 생각
아동들은 대략 여덟 살 전후로 타인의 관점을 고려할 수 있는 능력을 갖는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다양한 생각과 관점을 가진 또래와의 상호 작용을 경험한다. 덕분에 다른 사람들은 자신과는 다른 관점으로 세상을 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친구는 싫어할 수도 있고, 내가 싫어하는 것을 친구는 좋아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엄마는 뽀로로 가방보다는 뽀로로가 없는 가방을 더 좋아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나는 만화 영화가 재미있는데, 아빠는 뉴스를 더 재미있어 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타인의 관점을 수용할 수 있는 능력은 우리를 타인과 소통할 수 있는 존재로 만든다. 나와는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과 소통하려면 상대방이 어떻게 세상을 보는지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자신과는 다른 타인의 관점을 받아들이고 인정할 수도 있어야 한다.
왜 상대방은 내가 싫다고 하는 것을 좋다고 하는지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어야 상대방과 대화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서로가 납득할 수 있는 해결책을 찾아낼 수가 있는 것이다.
자아 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남으로써 아이는 이제 어른의 방식으로 세상을 보기 시작한다. 자신의 생각이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했던 아이는 이제 세상에는 수많은 다른 생각이 존재한다는 것을 이해하기 시작한 것이다.
사회적 동물에게 필수적인 능력은 바로 다른 구성원과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이다. 그래야 다른 구성원과의 사회적 상호 작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아 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났다는 것은 아이가 이제 다른 구성원과 독립적으로 소통이 가능한 존재, 곧 어른이 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권력의 맛
초등학생 때 이미 획득한 타인의 관점을 수용할 수 있는 능력은 다양한 요인으로 말미암아 손상된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권력의 맛이다. 권력은 자아중심적으로 세상을 조망하도록 만든다.
한 연구에서는 실험 참여자들에게 자신의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이 읽을 수 있게 이마에 알파벳 ‘E’를 쓰도록 지시했다. 앞에 있는 사람이 쉽게 읽을 수 있게 하려면 ‘E’를 뒤집어서 써야 한다. 곧, 앞에 있는 사람의 관점에서 ‘E’를 써야 하는 과제였다.
그 결과, 이전 과제에서 자신의 권력이 높아진 느낌을 받았던 사람들이, 권력이 낮아진 느낌을 받았던 사람들보다 ‘E’를 뒤집어서 쓰는 과제에서 더 많은 실수를 범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권력의 맛이 다른 사람의 관점을 취하는 것을 방해한 것이다.
권력은 권력을 가진 자로 하여금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취할 수 있는 자유를 제공한다. 그 결과, 권력의 맛을 보게 되면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관심사에 둔감해지고, 자신의 목표와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만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관계에서 더 많은 권력을 가진 사람들(상사, 형 등)이 상대적으로 적은 권력을 가진 상대방(부하, 동생 등)의 감정이나 태도를 틀리게 판단하는 경우가 그 반대의 경우보다 많다. 권력의 맛은 약자의 목표와 욕구에 대한 관심을 잃게 만든다. 사회적 약자들의 관점을 이해하는 것처럼 행동했던 사람이 권력을 잡고 난 뒤에 사람들의 아픔에 무감각한 사람으로 돌변하기도 하는 것이다.
권력의 맛은 어른을 다시 자아 중심적 사고에 가둔다. 자신과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득의 관점에서만 세상을 바라보고, 자신의 판단과 의사 결정이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라고 믿게 만든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자아 중심적 사고는 카리스마, 추진력, 선명성, 그리고 단호함으로 포장되기도 한다.
하지만 자신들이 원하고 좋아하는 것을 모든 사람이 원하고 좋아할 것이라고 믿고 설득하는 것은, 다섯 살짜리 아이가 엄마에게 뽀로로 가방이 더 좋다고 설득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아동의 자아 중심적 사고는 위험하지 않다. 아동에게는 권력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권력을 가진 성인의 자아 중심적 사고는 폭력이 되기 쉽다. 특히, 리더십을 발휘하는 위치에 있거나 그런 위치에 있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자아 중심적 사고는 지도자의 결정에 삶이 크게 영향받는 사람들에게는 심각한 폭력으로 다가올 가능성이 크다.
초등학교에 들어간 아동이 자아 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자신과는 다른 조망으로 세상을 보는 친구들 덕분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싫다고 말하고, 내가 싫어하는 것을 좋다고 말하는 친구들이 생각의 시야를 확장시켜 준 것이다. 어른이 되려면 나와는 다른 생각을 이야기해 줄 친구가 있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권력이 자아 중심적 사고에 빠지지 않으려면 권력과는 다른 생각이 존재해야 한다. 권력에 대한 비판은 자아 중심적 사고에 빠지지 않도록 권력을 돕는 것이다. 권력을 더욱 성숙하게 만드는 것이 비판이다.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존재는 나에게 자신감을 주지만, 나를 어른으로 만드는 것은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존재다.
[심리로 풀어 보는 세상사] 자기 합리화의 심리학
초콜릿 케이크를 눈앞에 둔 꼬마. 어머니는 절대로 케이크에 손대면 안 된다고 강조한다. 어머니가 잠깐 자리를 비우자마자, 꼬마의 어깨 위에는 악마가 나타나 속삭인다. 당장 케이크를 먹어 버리라고, 초콜릿 케이크가 얼마나 달콤한지 생각해 보라고 충동질한다. 어머니가 자리를 잠깐 비운 이 순간이 케이크를 마음껏 먹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꼬드긴다.
마음이 흔들리는 순간, 다른 쪽 어깨에 천사가 나타나서 말한다. 착한 아이는 어머니의 말씀을 잘 들어야 한다고 말이다. 이를 거역하는 순간, 산타클로스 할아버지도 선물을 안 주신다는 나쁜 아이가 되는 거라고 겁을 준다. 악마의 말을 들을 것인가, 천사의 말을 따를 것인가?
인간의 성격 구조 세 가지
오스트리아의 심리학자 프로이트에 따르면, 우리의 성격은 서로 다른 기능을 담당하는 세 가지의 구조, 곧 원초아(Id), 자아(Ego), 그리고 초자아(Superego)로 이루어진다.
원초아는 본능적 충동으로 구성된 성격 구조다. 본능 덩어리인 원초아는 쾌락 원칙에 따라 움직인다. 욕구가 발생하면 이를 즉각적으로 충족시키려고 한다. 달콤한 케이크가 눈앞에 있으면 당장 먹어 치우라고 명령한다. 홈 쇼핑에 마음에 드는 옷이 나오면, “당장 사!”라고 외치는 성격의 구조가 원초아다.
자신의 경제 상황에 대한 고려는 전혀 없다. 카드가 연체되었건 말건, 심지어는 사채 빚이 있건 없건 상관하지 않는다. 즉각적으로 자신의 쾌락을 충족시키면 된다. ‘지름 신’을 강림시키는 우리 안의 쾌락주의자가 바로 원초아다.
자아는 성격의 집행자 또는 성격 구조의 행정부에 해당한다. 원하는 것을 얻고자 어떻게 움직일 것인지를 계획하고, 이를 실행에 옮기는 성격 구조다.
자아는 현실 원리에 따라 움직인다. 욕구가 발생하면 먼저 자신의 현실적 상황부터 파악한다. 어머니가 먹지 말라고 그렇게 강조한 케이크를 먹어 치웠을 때 자신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생각한다. 홈쇼핑에 나오는 물건을 사기에 통장 잔고가 충분한지 확인하는 것이다.
만일 지금 상황에서 욕구를 실현하는 것이 심각한 문제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판단하면, 자아는 현실적 대상과 방법이 발견될 때까지 욕구 충족을 지연하거나 억제한다.
하지만 자아의 궁극적인 목표도 원초아와 다르지 않다. 자아의 목표도 본능 충족인 것이다. 다만 본능을 충족시키고자 하는 전략이 다를 뿐이다. 논리적 사고를 통해 계획을 세우고, 필요하면 다른 성격 구조를 설득한다. 은행 잔고가 부족하면, 다음 달 월급이 나올 때까지 조금만 참으라고 원초아를 설득하는 것이다.
초자아는 완고하게 이상적인 선을 추구하는 성격 구조다. 사회의 이상적인 가치가 내면화되어서 만들어진 것이 초자아다. 초자아는 원초아의 맹목적인 본능 추구를 비난한다. 자아에게는 본능적인 충동을 억누르고 도덕성과 완벽성을 추구하라고 압박한다. 케이크 따위가 뭐가 중요하느냐며, 착한 아이가 되라고 외친다. 쇼핑은 물질적 낭비에 지나지 않는다며, 도덕군자처럼 다음 달에 월급이 나와 경제적 상황이 좋아지면 원하는 물건을 구매하려 하는 자아를 비난한다. 초자아의 이런 비난 때문에 우리는 양심의 가책이라는 것을 느낀다.
충동과 이상 사이에서 고민하는 인간
악마의 충동질과 천사의 경고 사이에서 갈등하던 꼬마는 결정한다. 저녁 식사 때까지만 참고 기다리기로 말이다. 어차피 아버지의 생일 케이크이니까 아버지가 퇴근하고 돌아오면, 촛불을 끈 다음에 한 조각 먹을 수 있을 것이다. 본능을 따르라고 충동질하는 악마는 쾌락 원칙에 따라 움직이는 원초아다.
그 반면 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천사는 이상을 추구하는 초자아다. 그리고 이 악마와 천사 사이에서 욕구를 충족하고자 현실적인 방안을 고민하는 인간이 자아다. 곧, 프로이트의 세 가지의 성격 구조는 본능적 충동과 이상 사이에서 고민하고 갈등하는 인간의 모습인 것이다.
내 마음속의 악마와 천사는 우리에게 상반된 것을 요구한다. 본능과 이상. 하지만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원초아와 초자아는 모두 맹목적이다. 현실에 대한 고려 없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자아에게 강요한다.
또 다른 공통점은 바로 이 악마와 천사 때문에 우리가 불안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불안은 위험이 가까이 있다는 신호를 자아가 느낄 때 발생한다.
특히, 자아가 이런 위험을 스스로 통제하기 힘들다고 생각할 때 불안은 더 커진다. 프로이트의 성격 이론에서 불안은 위험의 원천이 어디에 있는지에 따라 현실 불안과 신경증적 불안, 그리고 도덕적 불안으로 구분한다.
현실 불안은 위험이 현실 세계에 실제로 존재하는 경우에 생겨난다. 갑자기 지진이 일어나거나 강의실에 뱀이 나타나는 것처럼 현실에 불안을 유발하는 이유가 실재하는 것이다.
그 반면 신경증적 불안과 도덕적 불안은 불안을 야기하는 위험이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안을 경험하는 이유는 불안을 유발하는 위험이 우리의 성격 구조 안에 있기 때문이다. 원초아가 있기 때문에 경험할 수밖에 없는 불안이 신경증적 불안이다. 그 반면 초자아가 있기 때문에 경험하게 되는 것이 도덕적 불안이다.
신경증적 불안은 원초아의 본능적 충동이 의식되었을 때 경험하게 된다. 혹독한 훈련을 통과하던 병사가 갑자기 교관의 얼굴을 주먹으로 때리고 싶은 충동을 의식하게 되는 순간 불안을 느낀다. 불안의 강도는 본능적 충동을 자아가 통제하기 어렵다고 느낄수록 강해진다. 처음에는 충동을 쉽게 통제할 수 있다. 겉으로는 예전과 똑같이 교관의 명령에 충실한 훈련병의 모습으로 행동하는 것이 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원초아의 충동이 너무 강해서 자아가 이런 충동을 통제하는 것이 힘들다고 생각하게 되면 불안은 심각한 수준으로 상승하게 된다. 원초아의 맹목적 충동을 통제하려는 자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언젠가는 교관의 얼굴에 주먹질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자아를 불안하게 만드는 것이다.
도덕적 불안은 초자아의 비난이 너무 심해서 자아가 이를 견디기 힘들다고 느낄 때 경험하게 된다. 성적인 상상이나 공격적인 생각을 했다는 것만으로 초자아는 자아를 맹렬히 비난한다. 처음에는 자아도 초자아의 비난을 대수롭지 않게 견딘다. 하지만 초자아의 강도 높은 비난이 지속될수록 자아는 죄책감이나 수치심을 경험하게 된다.
현실 불안은 현실의 위협을 제거하면 해결된다. 뱀 때문에 불안하면 뱀을 잡으면 된다. 하지만 신경증적 불안과 도덕적 불안은 성격 구조의 갈등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에 잘 해결되지 않는다.
원초아와 초자아는 자아와 함께 성격의 한 축을 담당하는 구조다. 따라서 우리의 마음에서 사라지지도 않고, 없애는 것도 불가능하다. 우리 마음속의 악마와 천사는 성격이라는 집에서 평생을 우리와 함께 사는 것이다.
그 결과 우리의 마음은 늘 갈등하고, 불안에 직면하게 된다. 불안은 우리 안에 있는 성격 구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경험할 수밖에 없다. 자아는 불안을 최소화하고자 심리적인 전략을 사용한다. 불안을 감소시키려고 자신의 경험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왜곡하거나 위장한다. 이를 방어 기제라고 한다.
생각의 왜곡
사람들은 불안을 감소시키려고 다양한 방어 기제를 사용한다. 그 가운데 하나가 자기 합리화다. 자신의 행동이나 태도의 진짜 동기를 의식적으로 인정하는 것이 불안을 불러일으킬 때, 그럴듯해 보이는 다른 이유를 제시하여 불안을 줄이는 전략이다. 일종의 정당화 과정이고, 자기변명이다.
이솝 우화에 나오는 여우는 달콤한 포도가 먹고 싶지만 발이 닿지 않아서 포도를 따 먹을 수 없었다. 그러자 여우는 저 포도는 시어서 맛이 없을 거라면서 포기한다. 이 신 포도 이야기는 여우가 자신이 원하는 것을 갖지 못해서 발생하는 불안을 자기 합리화 전략을 통해서 완화시키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인간은 자기를 합리화하는 존재다. 누구나 불안을 경험하고, 불안을 감소시키려고 자기 합리화라는 방어 기제를 사용한다. 남이 하면 불륜이라고 냉정하게 비난한다.
하지만 자기가 하면 로맨스라고 합리화한다. 우리의 생각은 수많은 자기 합리화로 가득 차 있다. 하지만 모든 합리화를 비난할 수는 없다. 자기 합리화를 할 수 있어야 불안을 조금이라도 덜어 내고, 자존감을 유지하며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이 오랜만에 과식한 뒤에, “맛있게 먹으면 살 안 쪄.”라고 합리화하는 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사소하거나 귀여운 수준의 합리화는 힘겨운 우리 인생에 달콤한 위로를 준다.
하지만 지나친 자기 합리화는 단순히 심리적 불안을 줄여 주는 것을 넘어서 자신과 세상을 근본적으로 왜곡해서 지각하도록 만들기도 한다. 폐 질환이 있는 사람이 담배를 피우면서, “하루에 다섯 개비 미만은 건강에 전혀 해가 되지 않아.”라고 합리화하는 것은 스스로의 건강을 파괴하는 생각의 왜곡이다.
자기 합리화는 폭력이 되기도 한다. 강간 사건의 가해자가 피해자가 자신을 먼저 유혹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합리화가 폭력으로 쉽게 변질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힘을 가진 사람의 자기 합리화는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힘의 크기만큼 위험할 수도 있다. 자신의 사익을 위한 행동을 공익을 위한 것으로 합리화하는 것은 다수에 대한 폭력이 되기 쉽다. 집단 수준의 자기 합리화는, 나치의 유다인 학살에서 볼 수 있듯이, 인류에 재앙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