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소구 9와 묵상
(성경소구)
■마태 12,1-8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 이삭을 뜯다
1 그때에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를 지나가시게 되었다. 그런데 그분의 제자들이 배가 고파서, 밀 이삭을 뜯어 먹기 시작하였다.
2 바리사이들이 그것을 보고 예수님께 말하였다. “보십시오, 선생님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3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다윗과 그 일행이 배가 고팠을 때, 다윗이 어떻게 하였는지 너희는 읽어 본 적이 없느냐?
4 그가 하느님의 집에 들어가, 사제가 아니면 그도 그의 일행도 먹어서는 안 되는 제사 빵을 먹지 않았느냐?
5 또 안식일에 사제들이 성전에서 안식일을 어겨도 죄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율법에서 읽어 본 적이 없느냐?
6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7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너희가 알았더라면, 죄 없는 이들을 단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8 사실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
(묵상)
주제 : 구원을 위한 행동
신앙인이 바라는 것은 언제인지 시간을 정할 수는 없어도 ‘하느님과 함께 사는 것’이라고 정의합니다. 그 말을 바꾸면, ‘천국에 산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천국에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이겠습니까? 이 천국에는 어떻게 갈 수 있냐는 것입니다. 요즘 광고에서 들을 수 있는 ‘알바천국’에 가는 것과는 차원이 다를 것입니다.
천국에는 세상살이에 사용한 육신이 함께 갈 장소는 아닙니다. 그래서 옛날의 수도자들이나 성현들 가운데는 ‘육신을 영혼의 감옥’이라고 표현한 분들도 있습니다. 영혼과 육신이 분리되는 때, 우리에게 다가올 미래가 천국인지 아닌지 구별하는 것은 현실의 내 삶의 결과와 하느님께서 하시는 심판의 결과가 합쳐지는 것으로 나타난다고 말합니다.
세상 어떤 일이든지 마찬가지만, 우리가 목표를 세우면 그 목표에 다다르기 위한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사과를 먹고 싶은데, 아무것도 하기는 싫다는 생각 때문에 그저 사과나무 밑에 누워서, 맛있어 보이는 사과가 떨어져 내 입속으로 들어오기를 바란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 사람에게 옳고 좋은 일, 그가 바라는 좋은 일이 생긴다는 보장도 없겠지만, 아무래도 사과나무 아래에 누워있는 사람의 이빨은 떨어지는 사과에 부딪혀 부러지고 말 것입니다.
오늘 탈출기 말씀은 히브리백성이 이집트를 탈출하기 전, 실천해야 할 마지막 행동에 관한 내용입니다. 파라오의 입장에는 재앙이 될 일이 준비되는 것이고, 히브리백성에게는 축제의 준비가 되는 일입니다. 그 내용을 듣는 우리는 과연 어느 쪽의 입장이겠습니까? 하느님께서 지시하신 일은 먹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씀대로만 잘 실천한다고 해도 구원의 시작이 될 수 있음을 알리는 사건을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독서에서 들은 이 과월절 제사 혹은 과월절 식사는 히브리민족을 형성하는 큰 체험이 되며, 그들의 삶을 새롭게 해석하는 원-체험(元-體驗)이 됩니다.
파라오를 향하여 모세가 행한 9가지 재앙동안, 히브리백성이 할 일은 별로 없었습니다. 하지만 10번째 재앙이면서 구원의 식사를 준비하는 이 선언은 달랐습니다. 사람이 좋은 결과를 얻으려고 하거나, 그에 참여하려면 아무리 적어도 내 몸이 움직여야 할 일이 있는 법입니다. 내가 몸을 움직이기 귀찮다는 생각에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 그 특별한 일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그 좋은 결과에서 내가 얻을 몫은 없는 법입니다.
마태오복음에 나온, 예수님 제자들의 행동은 그 당시 규정에 올바른 일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변호하신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정확하게는 우리가 꿸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일과 덜 중요하게 생각해도 좋을 일을 서로 헷갈려하면서 대했던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자세를 살펴볼 수 있을 것입니다. 법을 위한 법, 사람을 제압하기 위한 법인지,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는데 도움이 되는 법이나 규정인지를 살펴야 할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