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소구 12와 묵상
(성경소구)
■ 요한 20,1-2.11-18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0722]
1 주간 첫날 이른 아침, 아직도 어두울 때에 마리아 막달레나가 무덤에 가서 보니, 무덤을 막았던 돌이 치워져 있었다.
2 그래서 그 여자는 시몬 베드로와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였다. “누가 주님을 무덤에서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나타나시다
11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었다. 그렇게 울면서 무덤 쪽으로 몸을 굽혀
12 들여다보니 하얀 옷을 입은 두 천사가 앉아 있었다. 한 천사는 예수님의 시신이 놓였던 자리 머리맡에, 다른 천사는 발치에 있었다.
13 그들이 마리아에게 “여인아, 왜 우느냐?” 하고 묻자, 마리아가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누가 저의 주님을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14 이렇게 말하고 나서 뒤로 돌아선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서 계신 것을 보았다. 그러나 예수님이신 줄은 몰랐다.
15 예수님께서 마리아에게 “여인아, 왜 우느냐? 누구를 찾느냐?” 하고 물으셨다. 마리아는 그분을 정원지기로 생각하고, “선생님, 선생님께서 그분을 옮겨 가셨으면 어디에 모셨는지 저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제가 모셔 가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16 예수님께서 “마리아야!” 하고 부르셨다. 마리아는 돌아서서 히브리 말로 “라뿌니!” 하고 불렀다. 이는 ‘스승님!’이라는 뜻이다.
17 예수님께서 마리아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아직 아버지께 올라가지 않았으니 나를 더 이상 붙들지 마라. 내 형제들에게 가서, ‘나는 내 아버지시며 너희의 아버지신 분, 내 하느님이시며 너희의 하느님이신 분께 올라간다.’ 하고 전하여라.”
18 마리아 막달레나는 제자들에게 가서 “제가 주님을 뵈었습니다.” 하면서,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하신 이 말씀을 전하였다.
(묵상)
주제 : 사랑의 찬가
세상에서 힘이 센 것이 무엇이냐고 질문하면, 사람들은 아무래도 무기를 먼저 생각할 것입니다. 두 번째 질문에서, 무기를 빼라고 조건을 바꾸면 사람의 주먹이나 힘이 될까요? 이런 질문을 아무리 오래한다고 해도, 신앙인으로 중요하게 생각할 법한 내용이 나오기를 바라는 것은 아주 힘든 일일 것입니다. 세상에서 말하는 힘이 있다고 하는 방법과 신앙에서 말하는 그런 방법들을 말하는 것은 서로 차원을 달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꿔 말한다면, 질문에서 ‘신앙에서는....이라고 단서조항’을 붙이지 않으면 이래저래 대답을 얻기는 힘들 일입니다. 설사 우리가 신앙에서는....이라고 한계를 짓는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가리켜 힘이 세다고 인정해줄 사람은 얼마나 있을까요?
오늘은 마리아막달레나 성녀 축일입니다. 흔히 성인이나 성녀는 신앙의 본보기를 세상 삶에서 잘 드러낸 사람, 그래서 그 본보기를 따를만한 사람으로 교회가 인정한 사람을 가리킵니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막달레나 성녀에 삶의 본보기도 다양하겠지만, 희한하게도 옛날부터 마리아막달레나 성녀는 예수님과 ‘수상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그려지기 십상이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잘은 모르지만 어쨌든 세상에서는 그렇게 표현했습니다. 그 모습의 한 가지가 오늘 복음에 나옵니다.
예수님의 시신이 무덤에 있지 않고 사라졌다는 것을 발견한 막달레나는 동분서주하면서 예수님의 세상흔적을 찾아다닙니다. 이러한 모습에서 막달레나를 향하여, 왜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고 그렇게 천방지축일까.....할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그렇게 정신없이 찾아 헤매던 막달레나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납니다. ‘궁(窮)하면 통한다(=매우 궁박한 처지에 이르면 도리어 해결할 길이 생긴다는 말)’고 한 우리말 속담이 이루어지는 순간을 우리는 오늘 복음을 통하여 들었습니다. 스승으로 간절히 생각해서 찾아다녔든지, 세상에서 소설의 내용으로 등장하는 짝사랑하는 관계여서 그랬든지, 보는 입장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막달레나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가장 먼저 만납니다.
막달레나에게 어떤 기쁨이 왔을지 굳이 질문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그녀에게 찾아온 기쁨이 어떤 것이겠는지 그 내용을 이론으로 아는 것보다는 그녀에게 다가왔을 그런 축복에 나는 참여할 방법을 무엇으로 생각하는지 찾아봐야 할 일입니다.
세상에 기쁘고 즐거운 일은 많습니다. 하지만 사람이 하는 일로서 자기 삶에 ‘영원한 생명을 가져오게 하는 일’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얼마나 되는지는 저도 모릅니다. 그 가짓수를 아는 것이 중요한 일도 아닙니다. 아가서를 통해서 들었을 그 간절한 마음이 담긴 영화를 어제 저녁에는 ‘천국보다 아름다운’이라는 제목으로 영화를 봤습니다. 세상에서도 마찬가지겠지만, 사랑이라는 것의 힘이 얼마나 강하겠는지 그것은 체험한 사람이 아니면 알 방법은 없습니다. 사랑은 어떻게 얻는 것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