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바람이 달다.
소소리바람도 앵돌아진 속을 풀었다.
너나들이가 제주도 돌담인 언니랑 무릉도원에서 한바탕 소풍을
즐겼다.
집에서 삶아 온 달걀 네 알. 강정. 빠다 코코넛. 오렌지를
신문지 위에 얹으니 임금님 수랏상이다.
남편 흉을 실컷 보다가도 측은지심으로 돌아서는 것이 착한 아내들의 맘이다.
속내를 탈탈 털어 낸 후에 짬뽕으로 속가심을 했다.
어제 먹었는데도 또 먹었다.
먹는 사람이 다르니 질리지 않는다.
짬뽕같은 인생이다.
온갖 재료들로 얼큰한 맛을 낸다.
우동처럼 말갛기만 하면 무슨 재미랴.
짬뽕을 먹으면서 얼큰한 삶에 취한다.
커피 한 잔씩 들고 교정으로 갔다.
운동장엔 남학생들이 축구를 즐긴다. 오십을 훌쩍 넘긴 두 여인은 벤취에
앉는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추억의 오솔길을 걷는다.
"언니야 학교 다닐 때 생각난다 그쟈? 그때가 엊그제같은데 벌써 우리 나이가
오십이 넘다니.. 세월을 잡고 싶지 않나?" 둘은 마주보며 긴 한숨을 토했다.
여고시절 음악감상실에서 듣던 4월의 노래가 봄바람에 실려 온다.
벤취 옆엔 목련 한 그루가 여고생처럼 꿈을 품고 서 있다.
입을 오물거리면서 옛 수다를 떤다.
타임머신을 타고 교정으로 달려 간다.
수세미처럼 친구들의 얼굴이 보이고 음악 선생님도 웃어 주신다.
별명은 현토벤이다. 곱슬머리가 멋스러워 그렇게 불렀다.
여고생들의 가슴을 발랑거리게 하기에 충분한 훈남이었다.
쉬는 시간엔 음악실을 개방해 놓을테니 와서 감상하라고 하셨다.
그 때나 지금이나 음치지만 감상은 광적이다.
눈만 뜨면 붙어 다니던 삼총사랑 음악실에 앉아 눈을 지그시 감고
도취되었다.
동심초. 4월의 노래. 비목 등은 감수성 하늘거리던 여고생을 한없이
황홀하게 했다.
특히 4월의 노래를 즐겨 들었다.
박목월 시인은 어찌하여 이토록 아름다운 시를 지었을까.
'목련꽃 피는 언덕에서 벨텔의 편질 읽노라.
구름꽃 피는 언덕에서 피리를 부노라.'
가슴을 발랑거리게 하던 그 노래를 아직도 흥얼거리며 산다.
문학소녀답게 여고시절을 촉촉하게 보냈다.
어느 일요일 시험 기간이라 공부하러 학교로 갔다.
그 당시엔 다리가 예뻤던지라 치마도 가끔씩 입고 자태를 뽐냈다.
그 날도 방울방울 물방울이 무지개처럼 수놓아진 치마를 입고
갔다.
운동장을 걸어 가는데 저 멀리서 짝사랑하던 정치경제 선생님이
다가 오신다.
두근 반 세근 반 콩닥춤을 추었다.
떨리는 가슴을 들킬세라 못 본 척 가려는데 선생님이 부르신다.
"아이구 치마 예쁜 것 입었네. 공부하러 왔나?"하신다.
숨이 멎는 줄 알았다.
여상에서 정치경제는 인기가 낮달이다.
일주일에 달랑 한 시간이지만 선생님은 멋진 분이라
짝사랑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총각 선생님도 아니다.
오십을 훌쩍 넘겼으니 아버지뻘이다.
키가 장대같고 헤어스타일이 딱 맘에 들었다.
새치가 한 올 앞으로 삐죽히 내밀고 있는 것 까지 어찌 그리도 멋스럽던지..
짝사랑에도 경쟁이 치열했다.
목요일 7교시엔 선생님을 앞에서 보기 위해 자리를 바꾸기까지 했다.
관심이 없는 친구에게 앞 자리를 양보해 달라고 하여 침 튀기는
맨 앞자리에 앉았다.
한 시간 동안 넋을 놓고 선생님을 바라보느라 시험치면 성적은 신통찮았다.
혼을 빼앗긴 선생님을 하루종일 보고 있을 날이 왔다.
소풍날이다.
선생님이 가시는 곳 마다 병아리처럼 따라 다니면서 콩닥거렸다.
친구들이 선생님 팔짱을 끼고 사진을 찍느라 난리부루스를 춘다.
나도 선생님껜 관심도 없는 삼총사를 데리고 함께 찍자고
꼬드겼다.
엉거주춤 팔짱을 끼고 찍은 사진을 보고 자주 키득거렸는데 행방불명이다.
꿈많던 여고시절 갑자기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절망감에 휩싸였을 때
짝사랑한 선생님 덕분에 밝은 모습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 분은 취직 자리까지 주선해 주셨다.
내가 짝사랑하고 있는 줄은 꿈에도 모르고 출판사 사장님이 지인이라
소개를 해 주셨다.
문학소녀라 교내 백일장에서 상을 타곤 했는데 안성맞춤인
출판사에 자리가 생겨 취직을 했다.
짝사랑하고 존경하는 선생님께서 주선해 주셨던지라 더욱 의미가 컸다.
책더미 속에서 경리를 보았다.
참으로 복받은 직업이었다.
문학소녀로선 최고의 자리에서 맘껏 경리도 보고 틈새를 이용하여 책도
많이 읽었다.
남편과의 열애한 햇수만큼 직장도 일편단심민들레로 오 년을
채우고 결혼을 했다.
난 뭐든 일편단심민들레다.
왠만하면 흔들리지 않고 끝까지 해낸다. 그것이 열정이 아닐까.
지금은 건물관리사로 일한 지 8년 세월이다.
하루같이 소풍이다. 행복도 소풍도 셀프다.
지천명의 두 여인은 봄바람의 토닥거림으로 직면한 현실의 고통 쯤은 잠시
갓길에 두기로 했다.
목련꽃은 피자마자 지는 것이 싫다면서 우린 오래 아름다운 사람이 되자고
했다.
목련이 들으면 기분 나쁠 수도 있을 것이다.
온갖 고생 끝에 하얀 기쁨을 선물하는데 피기도 전에 지는 모습 타령을
하고 있으니 얄밉기도 하리라.
'그래. 며칠이나마 활짝 핀 그대를 맘껏 예뻐해 줄게.' 속살거려 주었다.
사랑은 품앗이라 주거니 받거니 밥도 사 주고 간식도 나누면서 사니
무릉도원이다.
내일 힘든 파도가 덮쳐 올지라도 오늘 쪽빛 바다를 맘껏 볼 수 있으면
그것이 바로 행복이다.
덮치지도 않은 파도 걱정에 쪽빛 바다를 놓쳐서야 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