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근 중이다.
새벽 한 시가 코 앞이다.
교대자가 네 시간 자고 나오면 교대를 한다.
마지막 기저귀 케어를 마쳤다.
세상 시름 모두 내려 놓고 깊이 주무시는 어르신들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 본다.
주무시기 전엔 대부분 치매를 앓기에 욕도 하고 싸우기도 하고
혼잣말도 하신다. 밤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아기처럼 순수한 모습이다.
이마를 만져 보기도 하고 머리카락을 쓰다 듬으면서
무럭무럭 잘 자라기를 바라는 엄마처럼 그저 남은
세월 더 편찮으시지 말기를 기도한다.
한 때는 화려했던 삶을 살았는데 마지막 가는 길은 같다.
새벽 에어로빅 시간에 제일 와 닿는 노래가 '너나 나나'다.
너나나나 거기서 거기다.
히어로 임영웅의 노래도 있다.
'뭣이 중헌디' 뭣이 중헌 줄 안다면 후회없이 살아야 한다.
알게 모르게 남에게 상처를 준 일은 없는지
내가 상처 입은 일은 없는지 살펴야 한다.
그런 일이 있다면 말해야 한다.
말 안하면 귀신도 모른다는 속담이 있다.
자신도 모르게 미움 받을 때도 있다.
물론 일본 어느 작가는 '미움 받을 용기'라는 책을 썼다.
미운 사람이 생겼을 땐 용기있게 말해야 한다.
그래야 고치든지 마음을 풀든지 할 수 있다.
말 안하는 사람이 무섭다.
길게 가면 풀릴 것도 풀지 못한다.
매듭이라면 끊으면 되지만 사람 관계는
간단하질 않다.
누군가 말했다.
내가 좋은 이유가 매듭이 없어서라고 했다.
난 모르고 매듭을 만드는 경우는 더러 있었다.
상대방이 말해 주면 살살 풀어주는 능력도 있다.
곤히 주무시는 어르신들을 보니 얼마나 많은 매듭을
풀지 못하고 치매가 되었나 싶다.
피돌기가 건강의 척도이듯 풀지 못하면 치매가 된다.
치매 어르신들을 모시다보니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답이 보인다.
참는 것도 능사가 아니다. 자신의 속내를 제 때
털지 못하면 자신도 상대방도 힘들게 된다.
어르신들끼리도 싸워야 차라리 안심이 된다.
점잖은 듯 보이는 어르신들이 위험하다.
속에 꽁하니 넣어 두었다가 울화가 치밀어 정신과
약을 복용하기도 한다.
그래서 난 차라리 싸움닭 같은 어르신들을 좋아한다.
뒷탈이 없기 때문이다.
속에 뭐가 들어 있는지 모르는 사람을 경계한다.
치매 예방법은 간단하다.
속을 제 때 터는 것이다. 남의 흉은 사흘이다.
남의 눈치 보느라 말도 못하고 끙끙거리면 자신만 손해다.
행복 항아리를 비운다.
이야기 보따리가 매일 미어 터진다.
소속감이 푸진 덕분이다.
새벽 맨발부터 에어로빅. 요양원, 두류산에서 만나는
사람들까지 대하소설이다.
하루에 읽는 장편소설이 몇 권인가.
수다상 작가로 사는 것은 축복이다.
열린 마음으로 대하니 금방 내 사람이 된다.
두류 야구장에서도 인생 공부를 톡톡히 한다.
글감을 낚는 하이에나가 되어 슬쩍슬쩍 삶을
물어 본다. 기다렸다는 듯 신산한 삶을 풀어
헤친다.
에어로빅이 끝난 후 꽃자리는 하루의 비타민이다.
참 아름다운 사람들이다.
야구장 건너편 타원형 자리에 앉아 고금화
섬유공예가에게 선물받은 깔개를 깔았다.
그 위엔 서로의 가방에서 나온 먹을거리들이 수북하게
쌓인다. 베품의 달인들이다.
더 가져 온다고 생색내는 사람도 없고 덜 가져 온다고
눈치 주는 사람도 없다.
그저 보기만 해도 기분 좋은 사람들이다.
잘 익어 가는 인생 선배들을 만난 것이 참 고맙고
행복하다.
서로의 장점과 특기를 높이 산다.
사임당이란 애칭을 내가 만들어 준 독서회 언니는
팔방미인이다.
시낭송을 권하니 선뜻 한다.
꽃시절에 써 놓았던 서예와 십자수 실력도 수준급이다.
그야말로 환생한 사임당 같다.
에어로빅의 대가 회원과도 너나들이가 봇물이다.
못해도 열심히 하는 난 개인 교습까지 부탁하여
운동장 모퉁이에서 뚱뚱한 몸을 바지런히 움직였다.
서로의 인연에 행복해 하고 있는데 좋아하는 독서회
언니가 마스크 사이로 웃으며 다가 온다.
그 언니 역시 열정우먼이라 좋다.
맨발도 나 보다 더 일찍 시작했단다.
산악 자전거도 타는 카리스마 짱 언니다.
독서 토론도 깊이 있게 잘 한다.
에어로빅 팀이 바통 터치를 한 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수다꽃을 피웠다.
언니도 유년시절부터 독서광이라 박학다식하다.
난 수박 겉핥기 식으로 읽어 외국 작가들은 이름조차
외우기 힘이 든다. 그 언니는 아주 정확하게 로맹가리에
대해 이야기 한다.
로맹가리가 관심을 끌기 위해 두 이름으로 글을 썼다는
사연도 제대로 알게 되었다.
지나치게 남을 의식하여 겉모습에 치중한 삶은
불행해진다.
자신에게 솔직해야 하고 당당할 때 행복해진다.
뭣이 중헌디. 남에게 잘 보이려고
허세를 부려선 안 된다.
늘 남을 의식하고 잘 보이려고 애쓰다보면
초등학교 교과서에 나온 '아버지와 나귀'꼴이
된다.
주체적인 삶을 살 때 인생이 수월해진다.
독서회 언니가 말했다.
"바람꽃은 눈치를 보지 않아서 좋다."
울엄마는 절대로 눈치를 주지 않았다.
늘 칭찬만 하셨다.
그래서 자화자찬쟁이로 산다.
자존감도 하늘에 매달렸다.
내가 행복한 이유다.
눈치 보느라 못한 것들이 많다는 사람을
많이 보았다.
뽕숭아 학당 재방송을 보는데 장민호가 고백했다.
못 하고 산 것들이 너무나 많아 후회스럽다고.
남의 눈치를 보느라 못하고 사는 사람들을 보면
안타깝다.
아무도 생각만큼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다.
맘대로 살아보는 것도 나에 대한 예의다.
잠시 틈도 없이 바통 터치를 했다.
나를 따르고 나도 좋아하는 동생과 만났다.
늘 주머니를 먼저 여는 동생을 말리고 낙지볶음을
사 주었다.
산길을 함께 맨발로 걸었다.
내가 행복한 이유를 들려 주니 그녀는 고갯방아를
찧는다.
남편이 보고 싶다며 문자를 날린다.
옛날통닭을 사오란다.
내가 행복하니 군말없이 시장으로 향했고 통닭을 샀다.
남편과 닭다리를 서로 뜯으라고 권하며 맥주를 마셨다.
산다는 것이 뭐 그리 대단한 일이던가.
소소한 행복이 너울춤을 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