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근 중이다.
내일은 어르신 목욕 시키는 날이다.
야근자가 목욕 준비를 완벽하게 해 두어야 한다.
목욕시키는 일 보다 할 일이 푸지다.
15명 어르신들의 침대보.베갯잇.방수포를
교체하고 빨래까지 빨아야 한다.
화장실 청소도 하고 목욕 후 입을 옷을
챙겨 이름표를 붙여 둔다.
어리버리하면 짝꿍에게 피해를 주기에 날쌘돌이가
되어야 한다. 그런 일로 마음이 안 맞아 애를
먹는 경우도 다반사다.
어쨌거나 난 이 직업이 딱 좋다.
그 중에서 어르신들의 말씀을 듣는 일이 꿀단지다.
치매의 포로가 되어 툭툭 던지는 말씀 중에서도
배울 점이 다복솔이다.
오늘도 백 세 가까운 어르신의 기저귀를 갈다가
빵 터졌다.
"선상 손이 우째 요래 뜨시노?
누구하고 사랑에 빠졌나?"
"어르신을 사랑하니 손이 뜨시네예."하니
"늙어서 다 죽어 가는 나를 뭐 하러 사랑하노?
좋은 사람하고 사랑해라."
내가 아가씨인지 늙은 새도 안 돌아보는 나이인지
감을 못 잡으시나 보다.
그러시면서 덥다고 부채질도 해 주시고 터진
밀감 밖에 줄 것이 없다며 앞치마에 넣어 주신다.
그러시다가도 다른 사람은 기저귀 갈아 주면서
당신만 쏙 빼놓는다며 온갖 욕설을 퍼붓기도
하신다.
그래도 마냥 좋다.
작은 침상에서도 당신의 권리를 포기하지 않는
자세가 아름답기까지 하다.
행복 항아리를 비운다.
새벽 차 타는 맛이 단단히 들었다.
이젠 독자들의 합류 요청까지 들어 온다.
수다상이 독자들의 정신적.육체적 건강까지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니 자긍심이 하늘을 찌른다.
산행을 즐기다보니 시나브로 곰실곰실 살이
빠지기 시작했다. 사진이 증거다.
특히 오늘 삼필봉 정상에서 찍은 사진은 압권이다.
늘씬하게 찍어 달라고 사진 찍을 때 마다 동행한
하모니카 선생님인 언니한테 부탁했다.
언니는 최대한 늘씬하게 나오게 하려고 주저앉다시피
했다. 그런 정성 덕분일까.
지금까지 본 내 모습 중에 최고다.
독자들에게 자랑질하니 난리다.
온갖 찬사가 날아 들었다.
난 살이 빠진 모습도 좋았지만 행복이 온 얼굴에
묻어난 것이 흐뭇했다.
사랑과 기침은 숨길 수가 없다고 했던가.
행복은 사랑의 어머니다.
사랑하지 않으면 결코 행복할 수가 없다.
사람을 사랑하고 산을 사랑하고 문학을 사랑한
결과물이다.
내가 바빠서 울엄마와 자식들에게 소식을 주지
못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지만 무심했음이
미안했다.
울엄마가 전화를 주셨다.
이젠 요양원 어르신들 안부까지 물으신다.
"엄마! 난 요양원 어르신들이 너무 좋다.
똥도 예뿌다." 하면 복 받을거라며 잘 해 드리란다.
"엄마는 요즘 뭐 하고 지내노?"
"내사마 맨날 바뿌다.
감도 따야 되고 할 일이 천지삐까리다.
장가 못 간 니 동생 밥 해 주는 것도 보통이 아니내이.
언니하고 니는 얼마나 좋노?
자식들이 알아서 척척 살아주니 그 보다 더
복된 일은 없다. 언제 한 번 오너래이!"
늘 장가 못 간 남동생 걱정에 잠을 제대로 못 이루신다.
그냥 주무시라고 해도 잘 안 된다고 하니 안타깝다.
그래도 목소리는 카랑카랑하여 기분이 좋다.
자식들에게도 톡할 틈이 없었다.
내가 바쁘고 즐겁게 사느라 집착할 틈이 없다는 건
축복이다.
가까스로 틈을 내어 어떻게 지내냐고 물었다.
아주 잘 살고 있어 고맙기만 하다.
내가 자식에게 해 줄 수 있는 건 건강하고
행복한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다.
삼필봉.함지산.금봉산 정상에서 찍은 사진을
쫄로리 붙여 보냈다.
반응이 뜨겁다.
"울엄마 멋지당!" 하며 엄지 척을 보내왔다.
차를 구입한 딸이 살살 운전을 하기 시작했단다.
놀러 가고 싶어 안달한 엄마답게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고 했다.
딸이 그러자고 한다.
맛있는 것도 먹고 산에도 가잔다.
마음이 더 바빠진다.
독자들도 여기저기 함께 가고 싶다고 하여 신바람이
난다. 열정과 체력이 탱탱볼이다.
푹 꺼지기 전에 다니고 또 다니리라.
월광수변공원을 감싸고 있는 삼필봉은 결코 얕은 산이
아니었다. 거의 5킬로미터다.
세 시간 소요되었다.
산 사랑에 푹 빠졌다.
가는 산 마다 마음에 쏙 든다.
정상 정복하는 재미가 어찌나 좋은지 미칠 것 같다.
척추전방전위증 진단을 받은 후 평길 밖에
못 걸을까봐 노심초사했다.
참으로 희한하다.
내 열정에 두 손 두 발 들었다.
높은 산도 날아다닐 것
같은 착각마저 든다.
산은 선하다.
등산객들도 말간 얼굴로 친절을 베푼다.
어느 쪽으로 가야 산 아래가 훤히 보이는지
가르쳐 준 사람 덕분에 최고의 사진도
태어 났다.
산행 후 먹는 밥은 달디달다.
육회비빔밥을 먹으니 소 한 마리가 들어 온 듯
포만감이 든다.
하모니카 언니가 된장을 예쁜 항아리에 담아 준다.
윤장금이 받아 들고 춤을 춘다.
손가락으로 푹 찍어 먹어 보니 맛있다.
언니의 친정 어머님이 담아 놓고 돌아 가셨단다.
6년이나 된 깊은 사랑이다.
어머님은 가셨지만 된장은 남았다.
언니와 돌아가신 부모님에 대한 추억담을 꺼냈다.
불쑥 내게 고백할 것이 있다고 하여 청룡산에
웃음보가 터졌다.
"맹숙아! 내 머리가 별로 안 좋대이.
그래도 나는 순종파라 시키는대로 하고 살았대이."
머리 안 좋은 걸 고백하는 사람은 처음 봤다.
얼마나 그 모습이 순수하고 아름답던지 오히려
감동늪에 빠졌다.
결코 나쁜 머리가 아니다.
피아노.플룻.하모니카 선생님이 어찌 나쁜 머리로
될 수 있겠는가.
겸손하면서도 열정적이고 조용한 카리스마가
있는 언니가 참 좋다.
우린 먼 길 함께 가자고 굳게 약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