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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6일 연중 제9주간 토요일

작성자알로이시우스|작성시간26.06.06|조회수25 목록 댓글 0

[백] 성 노르베르토 주교
[백] 복되신 동정 마리아

 오늘 성구(聖句)
[1독서]
<복음 선포자의 일을 하십시오. 주님께서 의로움의 화관을 주실 것입니다.>
(사도 바오로의 티모테오 2서  4,1-8)
사랑하는 그대여,
1 나는 하느님 앞에서, 또 산 이와 죽은 이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님 앞에서,
그리고 그분의 나타나심과 다스리심을 걸고
그대에게 엄숙히 지시합니다.
2 말씀을 선포하십시오. 기회가 좋든지 나쁘든지 꾸준히 계속하십시오.
끈기를 다하여 사람들을 가르치면서, 타이르고 꾸짖고 격려하십시오.
3 사람들이 건전한 가르침을 더 이상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을 때가 올 것입니다.
호기심에 가득 찬 그들은 자기들의 욕망에 따라 교사들을 모아들일 것입니다.
4 그리고 진리에는 더 이상 귀를 기울이지 않고 신화 쪽으로 돌아설 것입니다.
5 그러나 그대는 어떠한 경우에도 정신을 차리고 고난을 견디어 내며,
복음 선포자의 일을 하고 그대의 직무를 완수하십시오.
6 나는 이미 하느님께 올리는 포도주로 바쳐지고 있습니다.
내가 이 세상을 떠날 때가 다가온 것입니다.
7 나는 훌륭히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
8 이제는 의로움의 화관이 나를 위하여 마련되어 있습니다.
의로운 심판관이신 주님께서 그날에 그것을 나에게 주실 것입니다.
나만이 아니라,
그분께서 나타나시기를 애타게 기다린 모든 사람에게도 주실 것입니다.

[2독서]
[복음]
<저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마르코 12,38-44)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38 가르치시면서 이렇게 이르셨다.
“율법 학자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은 긴 겉옷을 입고 나다니며 장터에서 인사받기를 즐기고,
39 회당에서는 높은 자리를, 잔치 때에는 윗자리를 즐긴다.
40 그들은 과부들의 가산을 등쳐 먹으면서
남에게 보이려고 기도는 길게 한다.
이러한 자들은 더 엄중히 단죄를 받을 것이다.”
41 예수님께서 헌금함 맞은쪽에 앉으시어,
사람들이 헌금함에 돈을 넣는 모습을 보고 계셨다.
많은 부자들이 큰돈을 넣었다.
42 그런데 가난한 과부 한 사람이 와서 렙톤 두 닢을 넣었다.
그것은 콰드란스 한 닢인 셈이다.
43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가까이 불러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저 가난한 과부가 헌금함에 돈을 넣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44 저들은 모두 풍족한 데에서 얼마씩 넣었지만,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진 것을,
곧 생활비를 모두 다 넣었기 때문이다.”
복음 묵상(默想)글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은 그럴듯해 보일 때가 많습니다. 사람들 앞에서는 경건한 얼굴을 하고, 존경할 만한 말과 행동을 내세우지만 정작 하느님 앞에서는 속이 텅 비어 있을지 모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바로 그 점을 조심하라고 하십니다. 사람의 시선에서 커 보이는 믿음과 하느님 시선에서 귀한 믿음이 같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헌금함 앞에 앉아 사람들을 지켜보십니다. 많은 부자들이 큰돈을 넣었지만, 예수님의 시선은 가난한 과부 한 사람에게 머뭅니다. 보잘것없어 보이는 렙톤 두 닢이 예수님 눈에는 가장 큰 헌금이었습니다. 다른 이들은 풍족한 데에서 얼마를 내놓았지만 그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진 것을, 곧 생활비 전체를 내어놓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액수보다 마음을 보시고, 남은 것보다 전부를 내어놓는 사랑을 보십니다.
우리의 신앙도 이와 같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일지보다 하느님께 무엇을 내어드리고 있는지가 더 중요합니다. 많이 하는 것처럼 보이는 신앙이 아니라 비록 작아 보여도 진심으로 드리는 신앙이 더 귀합니다. 오늘 나는 하느님께 무엇을 봉헌하고 있는지, 혹시 남은 것만 드리며 내 마음만은 붙들고 있지는 않은지 조용히 돌아보게 됩니다. 겉모습이 아니라 진실한 마음으로 삶 전체를 봉헌하는 우리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오늘의 묵상》
마르코 복음서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되풀이하여 나열합니다. 성전에서 가르치시는 예수님의 언어는 따뜻하고 정겨운 교훈이 아니라 진실을 찾는 논쟁의 칼날이 되고, 그 칼날은 율법 학자들을 겨눕니다. 그들에게 신앙은 하느님을 향한 길이기보다 사람들의 시선을 향한 우월과 교만의 무대가 됩니다. ‘기도’조차도 제 위신을 위하여 길게 늘어뜨린 장식으로 삼으며, 그리스 말 표현에 따르면 과부들의 ‘집마저 삼키는’ 데 주저하지 않습니다. 당시 관행으로 미루어 보건대, 사회적으로 취약한 과부들을 위한답시고 재산을 맡아 주면서 부당하게 자기 것으로 만들거나, 성전 제의를 위하여 봉헌하라고 권하면서 재산을 빼앗은 것으로 보입니다. 분명한 것은 그들의 긴 기도는 제 이익을 위한 구실이며, 하느님의 종말론적 심판을 더욱 무겁게 불러온다는 것입니다.
이 경고 뒤에 마르코 복음사가는 곧바로 장면을 바꿉니다. 예수님께서는 성전의 헌금함 맞은쪽에서 사람들이 돈을 넣는 모습을 바라보십니다. 부자들의 많은 돈이 쏟아지는 가운데, 한 가난한 과부가 가장 작은 동전 두 닢을 넣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선언하십니다. 하느님의 눈에는 액수의 크기가 아니라 마음의 깊이가 그 가치를 결정한다고요.
부자들은 풍족한 가운데 남는 것을 바쳤으나, 과부는 부족함 속에서 ‘자기 삶 전체’를 바쳤습니다. 돌로 된 성전은 거대한 금과 은을 삼키지만, 하느님께서는 그 작은 동전 두 닢으로 한 사람의 온 생애를 받아들이십니다. 우리는 묻게 됩니다. 나는 지금 하느님께 무엇을 ‘드리는가’, 또는 무엇을 ‘내맡기고’ 있는가. 또한 우리는 물어야 합니다. 교회는 신자들이 가진 돈과 시간과 노력, 봉사를 바라는가. 아니면 그들의 온전한 삶이 하느님께 봉헌되기를 바라는가. 
(박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


2026년 6월 6일 연중 제9주간 토요일
 
 
십자가의 성 요한 성인은 모든 것을 내려놓으라는 말씀을 특히 강조하셨습니다. 그의 책 ‘어둔 밤’은 감각의 유혹에서 벗어나는 것뿐 아니라, 정신적인 집착에서도 벗어나야 함을 강조합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에 한 젊은 가르멜 수도자가 말합니다.
 
“저의 십자고상은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성물입니다. 이 십자고상을 바라볼 때마다 저는 큰 위로를 받습니다.”
 
이 말에서 십자가의 성 요한 성인은 이렇게 조언하셨습니다.
 
“십자고상에 그렇게 집착하고 있다면, 그 십자고상을 버리십시오.”
 
어두운 밤을 지나가기 위해서는 모든 집착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요한 성인의 요구였습니다. 사실 집착하는 것이 없는 것 같으면서도 진짜 많습니다. 물질에 대한 집착뿐 아니라 사람에 대한 집착도 큽니다. 자기 뜻과 맞지 않다면서 쉽게 판단하고 단죄하는 것 역시 집착이기 때문입니다. 집착에서 벗어날 때, 진정으로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것을 보지 않고 주님만 바라볼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 끊어야 할 집착은 무엇인지 묵상하십시오. 너무 많아서 무엇부터 끊어야 할지 혼란스럽지 않습니까?
 
예수님께서 헌금함 맞은쪽에 낮으시어, 사람들이 헌금함에 돈을 넣는 모습을 보고 계셨습니다. 많은 부자가 큰돈을 넣는데, 가난한 과부는 와서 렙톤 두 닢을 넣었습니다. 렙톤 두 닢은 당시 통용되던 화폐 중 가장 작은 동전으로 그 누구의 주의도 끌지 못할 만큼 초라하고 보잘것없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다르게 보십니다.
 
“저 가난한 과부가 헌금함에 돈을 넣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마르 12,43)
 
사람들은 헌금함에 들어간 동전의 액수를 세지만, 예수님께서는 그 사람의 주머니에 남아 있는 비율을 보신 것입니다. 즉, 부자들은 자기의 풍족한 재산 중 일부를 바칩니다. 과부의 헌금은 가장 작았지만, 궁핍한 가운데에서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바쳤습니다. 그래서 진정한 봉헌을 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진 것을, 곧 생활비를 모두 다 넣었기 때문이다.”(마르 12,44)
 
원어인 그리스어 ‘생활비’는 곧 ‘생명’을 의미합니다. 이 과부는 내일 당장 살아갈 기약조차 없는 상황에서 자신의 생명 전체를 하느님의 섭리와 자비에 온전히 내어 맡긴 것입니다. 모든 집착을 버린 것입니다. 주님을 위해 이기심과 기득권을 포기하고 비울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진정으로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오늘의 말씀 카드』



(오늘 나의 기도)

하늘에계신 우리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 지소서.

하느님 께서는 미천한 종들의 구원을 위하여 외아들 예수님을 보내주셨으니

오늘 저희 삶의 매듭에 고통받는 당신의 종들을 가엾이여기시어 자비를 베풀어주소서. 

또한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의 영광으로 세상을 떠난 모든이가

하느님의 자비로 평화의 안식을 얻게하소서.

우리주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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