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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3일 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 기념일

작성자알로이시우스|작성시간26.06.13|조회수45 목록 댓글 0

[백] 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 기념일

예수 성심을 공경하면서 자연스럽게 생겨난 성모 신심에 대한 공경은 17세기 프랑스 노르망디 출신의 요한 외드 성인의 노력으로 점점 보편화되어, 예수 성심 미사에서 기억하는 형태로 전례 안에서 거행되기 시작하였다. 비오 12세 교황은 1942년 성모님의 파티마 발현 25주년을 맞아 ‘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께 세상을 봉헌하고 이 기념일을 온 교회가 지내게 하였다. 처음에는 8월 22일에 선택 기념일로 지냈는데, 1996년 교황청 경신성사성 교령에 따라 ‘예수 성심 대축일 다음 토요일’에 의무 기념일로 지내게 되었다.

 

 오늘 성구(聖句)
[1독서]

<나는 주님 안에서 크게 기뻐하리라.>
(이사야서  61,9-11)
내 백성의 9 후손은 민족들 사이에,
내 백성의 자손은 겨레들 가운데에 널리 알려져
그들을 보는 자들은 모두 그들이 주님께 복 받은 종족임을 알게 되리라.
10 나는 주님 안에서 크게 기뻐하고 내 영혼은 나의 하느님 안에서 즐거워하리니
신랑이 관을 쓰듯 신부가 패물로 단장하듯
그분께서 나에게 구원의 옷을 입히시고
의로움의 겉옷을 둘러 주셨기 때문이다.
11 땅이 새순을 돋아나게 하고 정원이 싹을 솟아나게 하듯
주 하느님께서는 모든 민족들 앞에 의로움과 찬미가 솟아나게 하시리라.

[2독서]
[복음]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였다.>
(루카  2,41-51)
41 예수님의 부모는 해마다 파스카 축제 때면 예루살렘으로 가곤 하였다.
42 예수님이 열두 살 되던 해에도 이 축제 관습에 따라 그리로 올라갔다.
43 그런데 축제 기간이 끝나고 돌아갈 때에
소년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그대로 남았다.
그의 부모는 그것도 모르고,
44 일행 가운데에 있으려니 여기며 하룻길을 갔다.
그런 다음에야 친척들과 친지들 사이에서 찾아보았지만,
45 찾아내지 못하였다.
그래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그를 찾아다녔다.
46 사흘 뒤에야 성전에서 그를 찾아냈는데,
그는 율법 교사들 가운데에 앉아 그들의 말을 듣기도 하고
그들에게 묻기도 하고 있었다.
47 그의 말을 듣는 이들은 모두 그의 슬기로운 답변에 경탄하였다.
48 예수님의 부모는 그를 보고 무척 놀랐다.
예수님의 어머니가 “얘야, 우리에게 왜 이렇게 하였느냐?
네 아버지와 내가 너를 애타게 찾았단다.” 하자,
49 그가 부모에게 말하였다. “왜 저를 찾으셨습니까?
저는 제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
50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이 한 말을 알아듣지 못하였다.
51 예수님은 부모와 함께 나자렛으로 내려가, 그들에게 순종하며 지냈다.
그의 어머니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였다.
복음 묵상(默想)글

아이를 잃어버린 부모의 마음은 참으로 애타는 마음일 것입니다. 오늘 복음의 마리아와 요셉이 그런 모습입니다. 축제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예수님이 보이지 않자, 가던 길을 멈추고 뒤돌아섭니다. 사흘 동안 애타게 찾은 끝에 겨우 성전에서 예수님을 발견하지만, 아들 예수님의 대답은 쉽게 알아들을 수 없는 말씀이었습니다. “저는 제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
어쩌면 우리도 꼭 그렇습니다. 주님을 믿고 따른다고 하지만, 어느 순간 그분이 내 곁에 계시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함께 걷고 있는 줄만 알았는데 어느 순간 주님을 놓쳐 버린 마음이 드는 때가 온다면, 우리는 다시 처음의 자리로 돌아가야 하겠습니다. 분주한 저잣거리로부터 왔던 길을 되짚어 나가, 결국 성전에 이르러 예수님을 찾게 된 마리아와 요셉처럼 우리도 그렇게 예수님을 찾아 나서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잠깐 주님을 놓칠지라도, 당신은 처음의 그 자리에서 언제나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삶 속에서 주님을 놓치더라도, 다시 초심으로 돌아갈 줄 아는 우리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오늘의 묵상》

해마다 파스카 축제를 지내러 예루살렘으로 향하던 성가정의 발걸음은 오늘 복음에 나오는 동사 “가곤 하였다.”(루카 2,41)가 암시하듯 되풀이되는 경건한 습관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열두 살이 되던 해에 이 익숙한 리듬은 새로운 전환을 맞게 됩니다. 유다 전통에서 ‘성인의 책임’을 묻는 나이에 가까운 열두 살에 예수님께서는 유다 전통의 익숙함을 끊고 성전에 머물기를 ‘선택’하십니다. 이는 부모의 실수라기보다는, 성년의 문턱에서 당신이 누구이신지를 드러내시고자 하신 예수님의 결단이지요.
부모가 예수님을 찾아 헤맨 ‘사흘’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사이의 시간인 ‘사흘’을 미리 보여 줍니다. 성전의 율법 교사들 사이에 앉아 계신 소년 예수님의 모습은 뒷날 수난 직전 성전에서 펼쳐질 율법 교사들과의 논쟁을 미리 보여 주며, 주님 수난의 큰 슬픔을 마주하게 될 독자들을 미리 준비시키는 듯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질문은 슬픔이나 고통 너머로 우리를 초대합니다. “저는 제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2,49) 이 질문은 애타게 아들을 찾던 부모에게는 차갑지만, 믿는 모든 이에게는 복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혈연을 넘어 신성한 하느님의 자리가 우리 가운데 있음을 선언하십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이 말을 바로 이해하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이해할 수 없는 신비를 마음속에 간직함으로써 신앙의 원형을 보여 줍니다.
결국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묻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어디를 향하고 있습니까? 그 ‘사흘’의 시간을 통하여 저만치 멀리 계신 하느님께서 우리 삶 한가운데로 오셨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있는지요.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예수님께서는 다시 나자렛으로 내려가시어 부모에게 순종하시며 일상을 보내십니다. 가장 신성한 순간과 가장 평범한 순종이 교차하는 지점, 그곳이 바로 우리의 삶이고 예수님께서 선택하신 하느님 현존의 자리입니다. 
(박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


2026년 6월 13일 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 기념일
 
 
“인간은 평생 자기 뇌의 10%도 쓰지 못한다.”
 
이 말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맞는 말일까요? 학창 시절에 선생님께서 이 말씀을 자주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아인슈타인은 자기 뇌의 15%를 써서 위대한 물리학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자기 뇌의 1%만 더 써도 좋은 성적을 얻을 수 있다고 하셨지요.
 
아마 지금도 이 말이 맞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알츠하이머의 경우 손상하는 뇌가 10~20%에 불과합니다. 그렇다면 정상적인 뇌의 부분이 80~90%나 되는데 정상적인 활동이 불가능한 것일까요?
 
사실 모든 사람은 자기 뇌의 100%를 사용한다고 합니다. 만약 뇌의 10% 정도만 사용하게 된다면 생존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위의 말은 잘못입니다. 그러면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잠재력입니다. 자기가 가진 잠재력의 10%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이지, 실제로는 뇌를 100% 활용하고 있습니다.
 
잠재력을 다 발휘하지 못하는 ‘나’를 생각해야 합니다. 이 잠재력은 뇌의 활동량과 상관없습니다. 어떤 마음을 품고, 어떤 노력을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하느님을 향한 우리의 잠재력은 얼마나 쓰고 있을까요? 한 10%는 쓰고 있을까요? 하느님의 뜻을 마음에 간직하고, 그 뜻을 실천하는 것이 하느님을 향한 우리의 잠재력일 것입니다.
 
오늘은 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 기념일입니다. 하느님의 뜻에 온전히 순명하고 예수님의 구원 사업에 철저히 동참하신 성모님의 순결하고 거룩한 마음을 묵상하는 날입니다. 이를 오늘 복음에서 발견합니다.
 
소년 예수님을 성전에서 잃어버렸다가 사흘 만에 다시 찾습니다. 성모님께서 “얘야, 우리에게 왜 이렇게 하였느냐? 네 아버지와 내가 너를 애타게 찾았단다.”(루카 2,48)라고 말씀하시자, 예수님께서는 “왜 저를 찾으셨습니까? 저는 제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루카 2,49)라고 대답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육신의 부모보다 하느님과의 관계, 그리고 그분의 뜻이 우선임을 선언하시는 것입니다. 사실 성모님께서는 이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해하지 못해도 순명하십니다. 그래서 “그의 어머니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였다.”(루카 2,51)라고 복음은 우리에게 전해줍니다.
 
성모님처럼 이해할 수 없는 시련과 고통 앞에서도 하느님을 애타게 찾고, 그분의 신비를 함부로 판단하지 않으며, 삶의 모든 사건을 기도로 마음속에 간직하는 거룩한 마음을 높여야 합니다. 그래야 하느님의 완벽한 협력자가 될 수 있습니다.

『오늘의 말씀 카드』



(오늘 나의 기도)

하늘에계신 우리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 지소서.

하느님 께서는 미천한 종들의 구원을 위하여 외아들 예수님을 보내주셨으니

오늘 저희 삶의 매듭에 고통받는 당신의 종들을 가엾이여기시어 자비를 베풀어주소서. 

또한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의 영광으로 세상을 떠난 모든이가

하느님의 자비로 평화의 안식을 얻게하소서.

우리주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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