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윤회 고리 한 매듭을 서둘러 끊어 버리고 안개 낀 새벽 강 너머로 홀연히 건너가시던 50년 전 그날 그 새벽입니다. 서른여덟, 생애는 짧았으나 남기고 간 이름은 길고 길어 현비유인안동김씨신위(顯妣孺人安東金氏神位).
아득한 은하수 저편에서 나들이 오신 어머니!
늘 비어있던 아랫목 당신 자리에 좌정하시고 불러 모은 4형제, 미루어 둔 말들이 산처럼 쌓였건만 서로 물끄러미 바라볼 따름, 대화 없이 살아온 긴 세월 습관처럼 우리는 또 침묵으로 앉아있습니다. 향로에선 선향 몇 올이 피어올라 젖 냄새로 풀어질 뿐, 흐느끼듯 일렁이는 쌍 촛대엔 이승 저승 섞인 눈물이 그렁그렁 고였다가 소리 없이 흘러내릴 뿐….
생전에 기쁨이라곤 드려보지 못한 어머니!
기쁨은커녕 숨겨두었던 비밀을 이젠 고백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언젠가 된장독에 구더기가 득실거려 할머니로부터 심하게 꾸중을 들으셨던 일, 실은 제가 된장독 고무줄로 새총을 만들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매일 알을 낳던 닭이 하루 이틀씩 건너뛰자, “저것도 산아 제한 하는 갑다.” 하고 웃으셨지만, 그 역시 제가 달걀을 훔쳐내 아이스케키랑 왕사탕이랑 바꿔 먹은 탓입니다. 마지막 보여드린 성적표의 석차 4/57, 성적이 올랐다고 기뻐하셨지만, 사실은 어머니가 휘두르는 부지깽이가 무서워 11을 4로 변조해 갖다 바친 것입니다.
이실직고할 죄가 어디 그것뿐이겠습니까? 어머니와 맹세한 약속 두 가지도 못 지키고 말았습니다. 동생들 잘 키울 것. 절대 울지 말 것.
당신이 가신 뒤, 막내는 매일 밤 젖 냄새를 찾아다니며 앵앵 울었습니다. 할머니는 껍질만 남은 젖을 물려 보았지만, 오히려 더 울리고 말아 내가 호롱불을 켜고 막내를 붙잡아다가 미음 물을 떠먹이면 그 애는 도리질하며 발버둥 치고, 저는 억장이 무너져 미음 사발을 집어 던지고, 그 난리가 벌어지면 자던 동생들마저 일어나 맏형과 막내의 결투를 멀뚱멀뚱 구경하고…. 잘 키우기는커녕 무말랭이가 다 된 막내를 하마터면 당신 곁으로 보낼 뻔했습니다.
한번은 둘째가 소풍 간다며 김밥을 만들어 달라고 조르겠지요. 김밥은커녕 굶기를 밥 먹듯 하는 처지에 까까머리 중학생이 무엇으로 김밥을 만듭니까? 그래도 다른 아이들은 엄마들이 줄줄이 따라갈 텐데 싶어, 맨밥이라도 들려 소풍은 보내야겠다 싶어 보물처럼 비장해 둔 막내 미음 쌀을 한 줌 안쳐, 보리가 덜 섞인 밥을 골라 도시락을 싸 주었습니다. 그 정도 신경을 썼으면 얌전하게 들고 갈 일 아닙니까? 그런데 얘가 뚜껑을 열어보더니 김밥이 아니라고 떼를 씁니다. 당장 도시락을 압수하고 뺨을 한 대 올려붙였지요. 아, 어머니! 저도 제 손목을 자르고 싶었습니다.
또 한번은 이웃 누나가 시집가던 날, 남루한 셋째가 잔치 마당 귀퉁이에 쪼그리고 앉아 음식을 얻어먹고 있는 걸 발견했지요. 못 본 척 지나가든지 저도 들어가 형제간 마주 앉아 오순도순 먹이고 나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런데 울며 버티는 셋째를 기어이 집으로 끌고 와 버렸지요. 그날 밤 이웃 아주머니에게 혼이 났습니다. 무슨 애가 그렇게 모질고 독하냐고, 셋째가 문밖에서 기웃거리기에 당신이 데리고 들어가 음식을 먹였노라고, 배고픈 애 좀 얻어먹으면 어떠냐고, 그런 건 부끄러운 일도, 자존심 상할 일도 아니라고, 그렇게 맑아서야 험한 세상 어떻게 살아가려느냐고…. 그분의 예언이 적중해 저는 평생 피곤하게 살았습니다.
제가 여자로 태어났더라면 척박한 환경일망정 동생들이 좀 덜 고달프지 않았을까, 어머니보다 살갑진 못하겠지만 정이라는 것을 맛이라도 보지 않았을까, 강하게 키운답시고 스파르타 채찍을 휘두르는 바람에 정 표현에 서툰 것도 다 제 잘못 같아 뼈가 저립니다.
뙤약볕에 버려진 올챙이 같던 4형제, 허기지고 헐벗고 공부조차 모조리 독학으로 때우고, 혼인 말이 오갈 때마다 계모 시어머니 밑에 어설픈 집안이라고 퇴짜 당하길 수없이 반복했지만, 그럭저럭 모두 배필들을 만나 아들딸 낳고 한 살림씩 차렸습니다.
장마에 보릿단 말리듯 고단하게 살아온 세월 끝에 파란만장했던 그 막내, 밥상머리에 끼고 앉아 밥풀 몇 개 떠먹이고 물에 씻은 김치 쪽을 쫄쫄 찢어 입에 물려주면 제비 새끼처럼 받아 오물거리던 그 막내가 드디어 장가를 가던 날이었지요. 의젓한 신랑 모습을 꼭 보여드리고 싶건만 텅 빈 당신 자리가 너무나 허전해 폐백 마당을 뒤로하고 아무도 몰래 당신을 찾아간 저는 백설 위에 꿇어 엎드려 소백산맥이 둘러 꺼지라고 통곡했습니다. 참을 것이 따로 있지 평생 울리기로 작정하고 가시면서 울지 말라고 하면 제가 무슨 수로 그 약속을 지킵니까?
면목 없는 일이나, 따지고 보면 어머니도 신용이 썩 좋은 분이라 할 순 없지요. 애지중지 모아둔 세뱃돈을 금방 돌려준다며 빌려 가시고는 차일피일 미루다가 끝내 갚지 않고 야반도주하신 일. 콩 타작마당에 넘어진 저를 보고 나중에 얽은 각시 만날 거라고 거짓말해 종일 울리신 일, 세상을 다 뒤져서라도 예쁜 색시 구해 주마 달래시더니, 이 세상에선 그런 색싯감을 구할 자신이 없으니까 일찌감치 나 몰라라 피해 가신 일…. 법률용어로는 채무상환 불이행· 유아기만· 직무유기에 해당하지만, 저 역시 공공식품 훼손· 절도· 공문서 위조· 약속 불이행이니 피장파장, 우리 둘만 알고 덮어놓기로 하지요. 모전자승(母傳子承), 우리는 영락없는 신용불량자들입니다.
오리나 되는 옹달샘에서 물 길어오랴, 맵고 추운 부엌에서 삭정이 불로 밥을 지으랴, 강변 얼음구멍 앞에 앉아 빨래하랴, 손등이 더덕 껍질 같던 어머니! 손가락만 까딱하면 냉수 온수 골라잡아 쏟아지고, 딸깍 소리와 동시에 구멍구멍 불길이 솟아오르건만 그래도 당신의 며느리는 불만이 많습니다. 저는 그게 또 불만입니다. 그 당시 저에게 수도꼭지 하나, 세탁기 한 대, 가스레인지 하나만 있었어도 천하에 둘도 없는 효자가 되었을 것을….
저는 그 시절, 여자 나이 서른여덟이면 할머니가 다 되는 줄 알았습니다. 병약한 어머니가 제 눈에 할머니로 보였던 모양입니다. 그러나 당신의 며느리가 서른여덟이 되고서야 저는 그 또래 여자의 모든 것을 알았습니다. 아, 어머니! 당신은 아직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한 송이 국화꽃’이셨습니다.
남겨 간 젖을 물려 잡초나 키우고 계실 어머니!
당신 발치 아래 들국화 언덕, 그곳은 제가 맡아놓은 자립니다. 곁에 누워 구름도 보고, 뻐꾹새 소리도 듣고, 응석도 좀 부려보고….
하필이면 가정의 달에 가정을 버리고 가신 어머니!
제가 싫어하거나 말거나 눈치 없이 갈마드는 계절의 마녀, 건너뛰고 싶은 달 오월이 남의 속도 모르고 꼬물꼬물 늑장을 부리고 있습니다.
인생 고비 고비마다 고달프고 허전할 때면 어머니를 원망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지만, 그래도 이 세상에 태어나 희로애락을 골고루 경험할 기회를 주신 어머니! 영영 보답할 길은 막혀버렸지만, 당신의 손자 손녀들 잘 키우는 것도 보은이려니, 남에게 손가락질받지 않고 사는 것도 보은이려니, 늘 생각하고 있습니다.
명색 우체국 직원이란 것이 제 편지 한 장 보낼 방법을 몰라 쓰고 찢고 찢어온 편 편 사모곡, 이번 오월엔 반송돼 올 각오하고 발송합니다. 철쭉꽃 피어 흐드러진 소백산맥 그 골짜기, 들꽃 피는 언덕 위 황당한 수취인, 숙인 안동김씨지묘(淑人安東金氏之墓)를 찾아 허위허위 올라오는 집배원이 보이거든, 잘 우는 산비둘기 두어 마리 골라 길라잡이 삼아 마중 내려보내세요. 시원한 옹달샘 물도 한 대접 대접하시고요.
모처럼의 나들이, 서둘러 가실 일도 없으련만 배웅하는 저희 자식들 두루마기 옷고름에 진한 얼룩 남겨주시곤 사립문을 나서다 말고 돌아보던 어머니! 아랫목엔 아직도 당신의 온기와 젖 냄새가 남아있건만 새벽 강 건너 은하수 건너 또 어디로 가셨습니까?
보고 싶습니다. 사랑합니다. 어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