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순옹주 묘(양평 향토유적 38호) written by 한국의 능원묘 |
강맹경선생 묘역에서 혜순옹주의 묘역 위치는 멀리서 미리 인지하고 진입로를 찾아 들었습니다. 민박집인듯한 곳까지 차량이 들어가서 주차를 하고 아주머니 한 분이 계셔서 혜순옹주 묘를 물어 보았으나 옹주인지 공주인지는 모르나 간혹 사람들이 찾아 온다고 하시며, 제대로 난 길이 없으니 밭을 가로 질러서 산자락으로 올라가는 길을 알려 주셨습니다. 아주머니도 여기 오래 사셨지만 처음 가 보신다고 따라 오시고... |
▲ 위 사진의 민박집인지 전시관이지 좌측으로 올라야... |
▲ 묘역 하단에는 최근에 이장한 선산 묘역군인듯... |
▲ 혜순옹주 묘역 전경 |
혜순옹주(惠順翁主)는 조선 제11대 왕인 중종과 그의 후궁 경빈 박씨(敬嬪 朴氏)의 소생으로 김헌윤의 아들 김인경에게 출가하였다. 남편인 김인경(金仁慶, 1514~1583)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혜순옹주와 결혼하여 중종 17년(1522) 광천위(光川尉)에 봉해졌다. |
▲ 혜순옹주 묘역 내 석물 모습 |
1527년 기묘사화 때 피해자인 사림파의 김안로(金安老)가 기묘사화의 주동자였던 심정(沈貞) 등을 제거하기 위하여 그의 아들이며 중종의 맏사위인 희(禧)를 사주하여 이른바 작서(灼鼠)의 변을 일으켰다. 이 사건은 처음 누구의 처사인지 모르다가, 결국 무격을 좋아했던 김인경의 장모 경빈 박씨가 용의자로 지목되어 아들 복성군 미(福城君 嵋)와 함께 서인이 되어 쫓겨났다. |
▲ 혜순옹주 묘역 봉분 주변의 석물 모습 |
이때 김인경도 연좌되어 상주로 장배(杖配)되었고, 1533년에는 부인 혜순옹주 마저 서인으로 폐출되어 경상도 상주로 유배되었다. 1537년에 관작이 복구되었고, 그뒤 원종공신에 봉해졌고, 종실과 부마들만이 모여 벌인 백일장에서 장원, 통헌대부(通憲大夫)에 가자되었다. |
▲ 혜순옹주 묘역 측면 및 후면 모습 |
묘 중앙의 묘비(높이 141.5㎝, 폭 63.5㎝, 두께 19㎝)는 비좌․비신을 갖추고 있는데, 백색화강암의 비좌는 마모가 심하다. 비신은 전,후면에 비문이 있는데, 전면에 "通憲大夫光川尉金公之墓 惠順翁主祔左"라 음각되어 있다. 묘 앞에는 상석, 향로석, 장명등이 있고 묘 좌우에는 망주석, 문인상이 각 1쌍씩 배치되어 있다. - 양평군청 홈페이지 내용 발췌 - |
▲ 김헌윤(혜순옹주 시아버지)의 묘 |
▲ 김헌윤의 묘역 좌측 하단에 부후묘가 한 기 있네요... |
▲ 광천위 김인경의 부(김헌윤)모 묘역 뒷편에서 바라 본 모습. 사진 우측 하단이 혜순옹주의 묘입니다. |
제11대 중종대왕(中宗大王) [1488 ~ 1544] 가계도 정비 단경왕후 신씨(端敬王后
愼氏) [1487 ~ 1557] 제1계비 장경왕후 윤씨(章敬王后 尹氏) [1491 ~ 1515] 제2계비 문정왕후 윤씨(文定王后 尹氏) [1501 ~ 1565] 서1남 복성군(福城君) [1509 ~ 1533] (경빈
박씨) |
혜순옹주 묘역 위치도 |
소재지 : 경기도 양평군 옥천면 신복리 산303 화살표 ↑ 좌측에 혜순용주 묘역이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