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지 여행[경기 여주] 제간공 권규 묘역

작성자광나루|작성시간09.09.18|조회수524 목록 댓글 1
오늘의 문화재

제간공 권규 묘역(경기 기념물 214호)                                                                              written by 한국의 능원묘

▲ 제간공 권규(뒤)와 경안공주(앞) 묘역 전경

제간공 권규(1393~1421)는 조선 최초의 문형(文衡)인 양촌(陽村) 권근(權近) 선생의 3남으로 본관은 안동이다. 태종4년(1404) 태종의 3녀 경안공주와 결혼하여 길천군(吉川君)으로 다시 봉작되었으며, 1418년에는 의용절제사가 되었다.

▲ 묘역 입구에 있는 비석

▲ 제간공 권규와 경안공주 묘역 전경

▲ 경안공주 묘역 전경

권규(시호 : 제간(齊簡))의 묘역은 권규와 경안공주(慶安公主)의 상하분(上下墳)으로 조성되어 있다. 위 봉분이 권규의 것이며, 아래 봉분은 경안공주의 봉분인 상하합장묘이다.

▲ 경안공주 묘와 석물 모습

▲ 봉분 뒤에서 바라 본 경안공주 묘역

조선 초기의 대표적인 왕실 관련 부마와 공주의 합장묘로 지금까지 알려진 여타 지역의 것보다 압도적인 규모와 독보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조성 초기의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 그 문화재적 가치가 높다.       - 묘역 내 안내판 내용 발췌 -

▲ 경안공주 봉분 뒤에 위치한 제간공 권규 묘

▲ 제간공 권규 묘역 전경

▲ 제간공 권규 묘역내 석물과 측면에서 바라 본 모습

▲ 뒷편 측면에서 바라 본 제간공 권규와 경안공주 묘역 모습

▲ 제간공 권규 묘역 후경

세종대왕 누이 경안궁주 묘 '도굴'

기사입력2007-01-24 14:38 |최종수정 2007-01-24 14:38
 
세종대왕 손위 누이 경안궁주 묘 도굴
세종대왕 손위 누이 경안궁주 묘 도굴
【여주=뉴시스】

조선 태종 임금의 셋째 딸이자 세종대왕의 손위 누이인 경안궁주의 묘가 도굴당해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24일 안동 권씨 제간공 종회와 여주경찰서 등에 따르면 경기 여주군 점동면 덕평1리에 위치한 경안궁주의 묘 일부가 파헤쳐져 있는 것을 덕평1리 이장 등이 발견, 지난 20일 경찰에 신고했다.

덕평1리 조재운 이장은 "지난 20일 등산을 다녀오던 마을 주민들이 경안궁주의 묘가 도굴당한 것 같다는 말을 듣고 와보니 묘 옆 잔디를 파낸 흔적이 있었다"고 말했다. 도굴범은 지난 18일 밤에서 19일 새벽사이 경안궁주의 묘 바로 옆 바닥을 파 봉분으로 들어간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경안궁주의 묘는 도굴로 인해 봉분의 상단 부분이 30cm 가량 내려앉아 있는 상태다. 도굴범은 도굴 후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 묘에 깔려 있던 잔디를 다시 덮어놨으며 묘에서 나온 돌덩이 30여개도 10여m 떨어진 곳에 버리고 달아나는 치밀함을 보였다. 경안궁주 묘 바로 위에 위치한 남편 권규의 묘는 도굴되지 않았다.

조재운 이장은 "평소 자주 지나다니던 곳이었지만 잔디를 다시 덮어두어서 도굴 당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며 "주민들이 인근에 버려진 돌덩이를 보고 이상하게 생각해 알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도굴은 당했지만 정작 피해물품은 확인이 되지 않고 있다.
경안궁주의 묘에서 어떤 부장품이 들어있었는지 종친회측도 알지못하기 때문이다.

안동권씨 제간공 종회 권영상 회장은 "할머니 묘에 어떤 부장품이 들어있는지는 모르고 있다"며 "공주의 신분이다보니 일반인들의 부장품과는 다른 물건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만하고 있다"고 밝혔다. 경안궁주 묘는 그동안 여러차례 도굴이 시도되는 등 도굴범의 목표 대상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해 3월 이번에 도굴 당했던 부분의 인근을 도굴범이 파헤치다 미수에 그치는 등 그동안 3차례 가량 도굴이 시도됐다. 권 회장은 "그 동안 몇차례 도굴을 시도한 흔적이 발견돼 묘 부근에 차단기를 설치하는 등 도굴을 막으려고 했는데 결국 도굴을 당하고 말았다"며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경안궁주는 태종의 셋째딸이자 세종대왕의 손위 누이로 안동권씨 집안 권규와 혼인했다. 경안궁주와 남편 권규의 묘는 지난해 8월 경기도 문화제 213호로 지정됐다. 박종률기자 parkjr@newsis.com">parkjr@newsis.com 김기중기자 k2j@newsis.com

덕곡의 전설
덕망 높은 노승이 붙여준 이름 ‘덕곡’
2009년 05월 29일 (금) 16:16:52 박도금 기자pdk@yjns.net"> pdk@yjns.net
   
 
   
 
오갑산 국수봉을 마주 건너다보면 봉이 드높게 솟은 강금산 마루에서 빤히 건너다보이는 수리산봉 아래 명당자리에 양촌 권근 문충공의 묘가 자리해 있다. 또한, 드높은 강금산 기슭에 태종의 부마인 길천군과 태종의 삼녀 경안궁주의 분묘가 가지런한데, 이곳의 권규가 바로 양촌 권근의 삼남이다.

560여 년 전 다른 곳에서 이곳으로 길천군 묘를 천장하느라고 산역준비로 사람들이 한창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사면을 한 바퀴 둘러보아도 산세의 생김이 같은 모양새라고 하는 강금산의 양지 바른 동남쪽엔 오목조목 작은 봉과 계곡이 많다. 한참 사람들이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는데 어디선가 노승과 동자승이 나타나 광중을 파는 데로 다가서더니 “물이 나온다. 물이 나와”하며 머리를 긁적거렸다.

이때 산역을 지휘하던 관헌은 어처구니가 없어 사람을 불렀다.
광중에 물 한 방울 안 비치는데 물이 나온다니 쓸데없이 허튼 소리를 하는 동자승을 포박하라고 명을 내렸다. 동자승이 포박당하고 얼마 후 시간이 흐르고 그렇게 뽀송뽀송하던 광중 안에 샘이 솟더니 이내 광중 바닥에 물이 고이고 말았다.

관헌과 산역군들은 서로 얼굴만 쳐다보고 어찌할 바를 몰라 당황해 했다. 그때 한 관헌이 동자승의 포박을 풀어주며 겸손하게 예를 올리고 좋은 묘안을 가르쳐 달라고 했다. 동자승이 미소 띤 얼굴로 노승을 바라보니 노승이 고개를 끄덕이자, 동자승이 손가락으로 한 골짝을 가리키며 그곳에다 우물을 파라고 일러주어 우물을 파니 신기하게 광중 안의 물이 잦아들고, 나던 샘이 그쳤다.

동자승이 노승을 가리키며 덕망이 높으신 노승의 귀한 말을 듣고 장례를 모시라고 하자, 노승 주위로 관헌과 지관이 모여섰다. 노승은 혼자 산 계곡의 이름을 지어 나갔다. 기시미골, 부처골, 긴골, 움물골, 평바위골, 재피골, 장자골 등등 노승은 혼잣말로 “산이 골형제가 많군” 하더니 무쇠 삿갓을 쓴 사람이 지나가면 그때가 하관시기라고 일러줬다.

그때 청명하던 하늘에 먹구름이 몰려와 하늘은 때 아닌 소나기를 퍼부었다. 바로 그 무렵 밥 짓는 데서 일을 보던 어느 할머니가 비를 피하느라고 무쇠 솥 뚜껑을 머리에 쓰고 비를 피해 뛰어가고 있었다.

그때를 맞춰 하관을 서둘러 장례를 모신 후 노승과 동자승을 찾으니 이미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동자승과 노승이 일러준 대로 장례를 모신 후, 후손들은 더 많은 관직에 올랐으며 아직도 강금산 계곡마다 그때 노승이 좋은 이름을 붙여주어 동네가 태평하다고 한다.

덕망 높은 노승이 계곡에 이름을 붙여주었다 하여, 이 동네를 사람들은 덕곡이라 불러오다가 그 이름이 지금에 와서는 덕실로 변했다. 이곳이 지금의 점동면 덕평1리다.

제간공 권규 묘역 위치도

 소재지 : 경기 여주군  점동면 덕평리 산9-1                                              화살표 ↑ 위치 부근에 권규 묘역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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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동해 푸른 바다 | 작성시간 09.09.19 그날 기억이 새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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