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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화선생 묘(경기 기념물 60호) written by 한국의 능원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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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포 김행 선생의 묘를 돌아 나와서 점심 식사 후에 조선시대 주요 요직을 두루 거친 청백리라는 이세화선생 묘역을 찾았습니다. 다른 묘역에 비해서 찾기가 수월합니다.
묘역의 석물 특징 중에 향로석의 상판에 직접 향을 피울 수 있도록 일정 깊이로 파 놓아서 제향때 실제로 향을 피울 수 있으며, 우측에는 남은 향을 놓을 수 있도록 직사각형으로 파 놓았습니다. 이런 향로석은 광나루도 처음 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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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묘역 입구에 세워진 홍살문 |
▲ 묘역 관리실 건물로 추측됩니다. |
▲ 숭모단 모습 |
| 조선 숙종때의 문신인 이세화(李世華 1630 ∼ 1701)선생의 묘이다. 선생의 자(字)는 군실(君實), 호(號)는 쌍백당(雙柏堂), 시호(諡號)는 충숙(忠肅), 본관은 부평(富平)이다. 선생은 효종 8년(1657)에 식년문과(式年文科)에 급제하여 평안도, 황해도, 전라도의 관찰사를 역임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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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세화선생 신도비(사진 좌측 뒷편이 숭모단 입니다.) |
▲ 신도비 앞에서 올려다 본 이세화선생의 묘역입니다. |
| 그 뒤 의금부사(義禁府事)겸 지경연사(知經筵事), 세자빈객(世子賓客)에 오르고 청백리로 선정되었다. 이후 공조·형조·병조·예조·이조판서를 두루 역임하고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재임시 세상을 떠났다. 이에 조정에서는 충신의 상징인 정문(旌門)을 고향에 세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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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세화선생 묘역 원경 |
▲ 이세화선생 묘역에서 내려다 본 모습(선생의 후손 묘역인듯...) |
| 묘역은 사성(沙城)으로 둘러져 있고, 봉문은 쌍분으로 부인 순창 설씨(淳昌 薛氏)와의 합장묘이다. 봉분의 중앙 앞에는 묘비·상석·향로석이 서로 가깝게 배치되어 있고, 상석 아래 좌우에 망주석과 문인석이 1쌍씩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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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세화선생 묘역 |
| 신도비는 묘역의 진입로 우측에 세워져 있는데 비문은 남구만(南九萬)이 글을 짓고, 오태주(吳泰周)가 썼으며 최석정(崔錫鼎)이 머리글을 써서 숙종 34년(1708)에 건립한 것이다. - 파주시청 홈페이지 내용 발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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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향로석에서 직접 향을 피울 수 있겠지요... |
▲ 묘역내 석물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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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화선생 묘역 위치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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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파주시 문산읍 선유리 산89-4 화살표 ↑ 상단에 이세화선생 묘역이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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