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지 여행[경기 파주] 성혼선생 묘

작성자광나루|작성시간09.11.09|조회수385 목록 댓글 0
오늘의 문화재

성혼선생 묘(경기 기념물 59호)                                                                                           written by 한국의 능원묘

이세화선생 묘역을 돌아 나와서 가까운 곳에 있는 율곡의 평생지기이며, 성리학의 대가라는 성혼 선생의 묘역을 찾았습니다. 입구의 홍살문서부터 사당과 비각 등 제대로 갖추어진 묘역입니다만, 선생의 묘역은 아주 단촐합니다. 그 흔한 문인석 자리에는 동자석이 대신하고 있네요... 성혼선생 묘역 하단에 부친인 성수침의 묘가 있는데, 율곡 선생의 묘역과 같이 역장이긴 합니다만...

▲ 성혼선생 묘역 입구 전경

조선 중기 성리학의 대가인 성혼(成渾 1535 ∼ 1598)선생의 묘이다. 선생의 자는 호원(浩原), 호는 우계(牛溪), 또는 묵암(默庵),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파평(坡平) 우계(牛溪) 옆에 살았으므로 학자들이 우계 선생이라 불렀다.

▲ 사당(좌)과 신도비 2기(성혼과 부친인 성수침의 신도비)가 안치된 비각(우) 모습

성혼은 명종 6년(1551) 생원·진사의 초시(初試)에 모두 합격하였으나 복시(復詩)에는 응하지 않고 학문에만 전념하였다. 휴암(休庵) 백인걸(白仁傑)의 문하에서 학문을 배우고, 명종 9년에는 같은 고을의 이이(李珥)와 사귀게 되면서 평생지기가 되었다.

▲ 묘역을 오르면서 먼저 만나는 성혼 선생의 부모 묘역. 부-성수침(成守琛), 모-파평 윤씨

이황(李滉)의 학설을 이어받아 이기호발설(理氣互發設)을 지지하여 이이와 선조 5년(1572)부터 6년간 에 걸쳐 사단칠정(四端七情)에 대한 논쟁을 벌여 유학계의 큰 화제가 되었다.

▲ 성혼선생 묘역 전경

선조 초부터 여러관직에 임명되었으나 취임하지 않다가 이이의 권유에 의해 이조참판에 특배되고 임진왜란 중에는 우참판에 오르고 선조 27년 좌참판에 이르렀다.

▲ 아래 자료에는 문인석이라고 설명이 되었지만 동자석 모습입니다. 묘비는 봉분 앞에 있지 않고 우측에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 영의정 유성룡(柳成龍)과 함께 일본과의 화의를 주장하다 선조의 노여움을 사게 되어 고향인 파주로 돌아왔다. 그가 죽은 뒤 선조 35년 기축옥사(己丑獄事)와 관련하여 삭탈관직 되었다가 인조 11년(1633) 복관되어 좌의정에 추증되었다.

▲ 성혼선생 묘역 뒷편에서 내려다 본 모습

묘역은 사성으로 둘러져 있고 봉분을 중심으로 우측에 묘비가 세워져 있으며 봉분 정면에 상석과 향로석이 배치되어 있다. 상석앞에는 장대석으로 계단을 쌓았으며 좌우에 문인석을 배치하였다. 묘소입구 우측에는 신도비가 있는데 비문은 김상헌(金尙憲)이 짓고 김집(金集)이 썼으며 전액(篆額)은 김상용(金尙容)이 썼다.                                      - 파주시청 홈페이지 내용 발췌 -

성혼선생 묘역 위치도

 소재지 : 파주시 파주읍 향양리 산 8-1                                                                     화살표 ↑ 상단에 성혼선생 묘역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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