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지 여행[경기 포천] 성석린선생 묘

작성자광나루|작성시간09.11.20|조회수563 목록 댓글 0
오늘의 문화재

성석린선생 묘(포천시 향토유적 22호)                                                                              written by 한국의 능원묘

나홀로 21차 능원묘 답사시 광릉과 포천 권역의 능원묘를 돌면서 성석린선생과 같은 권역에 있는 성여완선생 묘를 찾았으나 네비게이션은 엉뚱한 곳으로 데려다 주어서 길 옆의 표지판을 보고 마을 안쪽으로 들어갔습니다.

▲ 성여완선생 묘(좌측)와 성석린선생 묘(우측)

▲ 성석린선생 묘역 전경

마을에서 들머리와 두 기의 묘가 있다는 것은 확인하고 들어갔으나 가도가도 묘지는 보이지 않고 그냥 돌아가기는 너무 안쪽으로 깊숙히 들어와서 갈때까지 가 보자는 심정으로 안쪽으로 깊숙히 들어가니 저 멀리에 두 기의 묘가 보였습니다.

▲ 성석린선생 묘역 아래에 위치한 묘지

앞에 있는(우측) 묘가 성석린선생의 묘이고, 안쪽(좌측)에 있는 묘가 성석린선생의 부친인 성여완선생의 묘입니다. 두 묘지 모두 조선 초기의 묘지로서 600년이 된 석물들이 묘역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묘는 부인 화숙택주(和肅宅主) 순홍군 안씨와 합장묘로서 묘 앞에는 상석2개, 장명 등, 그리고 좌우에는 신 구 묘비와 문인석이 2기씩 각각 배치되어 있다. 성석린선생은 1338(충숙왕 복위7)-1423(세종5)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이다.

자는 자수, 호는 독곡, 본관은 창녕, 부원군 여완의 아들로 1357년(공민왕6)에 문과에 급제, 전리 좌랑.전교 부령.전리총랑을 지낸 후 신돈에 아부하지 않아 해주 목사로 나갔다가 다시 불리어 성균 사성이 되고, 밀직 대언.지신사에 올랐다.

1384년(우왕10) 밀직 제학으로 있을 때 왜구가 승천부에 쳐들어오자, 조전원수(助戰元帥)로서 원수 양백연(楊伯淵)과 함께 출전하여 적을 격퇴하고 수성좌리공신이 되었다. 후에 이성계등과 함께 우왕에 뒤이어 창왕을 폐하고 공양왕을 세워 그 공으로 찬화공신에 창성군 충의군에 봉해졌으며, 예문 대제학.문하찬성사에 올랐다.

1392년 조선이 건국되자 이색.우현보의 일당으로 한때 추방, 문하시랑찬성사.판개성부사를 거쳐 판한성부사를 역임, 1415년 영의정이 되었다. 시사(詩詞)에 뛰어났고 초서를 잘 썼다. 시호는 문경(文景)이다.

성석린선생 묘역 위치도

소재지 : 경기 포천시 신북면 고일2리 산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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