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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여완선생 묘(포천시 향토유적 21호) written by 한국의 능원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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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여완선생의 묘는 성석린선생 묘역 바로 좌측에 있으나 능선이 달라서 성석린 묘역 아래로 다시 내려와서 돌아서 성여완선생의 묘역으로 오르면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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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여완선생 묘역으로 오르는 길 |
▲ 성여완선생 묘역 전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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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곳은 성석린선생 부친 묘로 묘역 조성이 더 오래되어서 앞의 문인석은 모습이 조금 다르고 뒤에 있는 문인석은 고려시대의 투박한 인석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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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역은 부인 경안택주 금성군 나씨와 합장묘로서 묘역에는 상석. 향로석. 묘비2기. 동자석 문인석 등 석물이 배치되어 있어 조선초기 묘제와 석물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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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분의 높이는 1.6m, 지름은 3m이다. 성여완 선생은 1309년 고려(충선왕1)에 태어나 1397년(조선태조6)에 졸한 고려말 조선초의 문신이다. 호는 이헌 본관은 창령 판도총랑 군미(君美)의 아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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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6년(충숙왕5) 문과에 급제, 예문춘추 검열을 거쳤으며 이후 해주.충주의 목사를 역임, 공민왕 때 민부상서가 되고, 신돈이 주살되자 그 일당으로 몰려 유배되었다. 후에 풀려나와 우왕 때 정당문학상의에 이르러 창녕부원군에 봉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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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공양왕4) 정몽주가 살해되자 고려의 국운이 이미 기울어졌음을 알고 포천 왕방산에 들어가 은거했다. 조선 개국 후에 노인직으로 검교문하시중에 창성부원군으로 봉해졌으나 사퇴하고 절개를 지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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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여완선생 묘역 위치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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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경기 포천시 신북면 고일2리 산30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