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지 여행[강원 영월] 엄흥도 묘

작성자광나루|작성시간09.12.18|조회수1,130 목록 댓글 0

엄흥도 묘                                                                                                                                      written by 한국의 능원묘

▲ 엄흥도 묘역 뒷편에서 내려다 본 모습

나홀로 42차 능원묘 답사에서 다녀 왔습니다. 길가의 묘역 입구 돌 안내판을 보고 그 방향으로 들어 갔다가 한참 헤메고 보니 돌 안내판 길 건너편 언덕에 있었습니다. 2004년도에 성역화 사업의 일환으로 묘역 정비가 깔끔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자료를 정리하다 보니 군위에 있는 묘가 진짜 엄흥도 묘로 확인되었다는 기사가 있네요... 하단 기사 참고하시 바랍니다.

▲ 돌 안내판 도로 건너편 계단으로 올라야...

▲ 묘역 입구 도로 건너편에 안내 비석들 모습

조선 제6대 단종대왕이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강원도 영월에 유배되었을 때 충의공은 이 고장 호장직(戶長職)에 있었다.

 

밤낮으로 대왕의 거소(居所) 청령포를 바라보고 대왕이 무사하기를 기원하던 중 어느날 달 밝은 고요한 밤에 청령포 대왕의 거소에서 슬프고 애끊는 비명의 곡성이 들려오므로 황급히 강을 건너가 진배하니 대왕은 울음을 멈추고 “이 심야엔 웬 사람이 나를 찾는가?” 하고 물으니, “소신은 이 고장 영월호장 엄흥도이옵니다”라고 대답하고 옥안을 바라보니 대왕은 “육지고도(陸地孤島)인 이곳 청령포에 유배된 이후 밤마다 꿈속에서 신하들을 보고 추억을 회상하며 탄식하고 지내던 중 비조불입인 이곳에서 너를 보니 육신을 상봉한 것 같구나. 그대는 실로 초야에 묻힌 선인이로구나!”하고 반갑게 맞이 하였다.

▲ 묘역으로 오르는 계단이 길고 가파릅니다.

▲ 계단을 다 올라서 내려다 본 모습

그후 호장 엄홍도는 매일 밤 풍우를 가리지 않고 문안을 드렸으며 그해 여름 큰 장마로 인하여 대왕은 청령포 어소에서 영월읍 영흥리 관풍헌에 침소를 옮기게 되어 밤마다 객사 동편에 있는 자규루에 올라 자규시르 읊으면서 지내던 중 금부도사 왕방연(王邦衍)이 가지고 온 사약을 받고 승하하니, 그 옥체는 동강물에 던져지고 시녀는 동강절벽(후일에 낙화암이라고 함)에서 투신절사(投身節死)하였는데 이 때가 매우 추운 겨울이었다.

▲ 2004년 성역화 사업으로 묘역이 깨끗하게 조성되어 있습니다.

호장 엄흥도는 군수에게 성장(聖裝)을 청하였으나 세조를 두려워하므로 성사치 못하자 즉시 서강과 동강이 합류하는 곳으로 달려가 그곳에서 대기하였다 옥체를 인양하여 미리 준비한 관에 봉안하고 가족들과 같이 운구하여 영월군 서북쪽 동을지산(冬乙支山)에 암장하고 자취를 감추었다. 호장 엄흥도의 충성은 인정으로 된 것이 아니고 하늘이 내렸다하여 후세인들이 그를 항상 추모하였다.

▲ 좌우측에서 바라 본 엄흥도 묘역 전경

1759년(영조 34년) 그 벼슬을 공조판서로 추봉하여 사육신 정렬에 배향하고 육신사(六臣祠)에 봉안·치제케 했다.
그후 1516년 (중종 11년)에 어명으로 노산묘를 찾아 수축하고 능전사청을 후인
1791년 (정조 15년)에 어명으로 노산료를 찾아 수축하고 능전사청을 건립
1791년 (정조 15년)에 어명으로 장릉 배식단에 배합향배(配合享배)케 하고 정려치제(旌閭致祭)케 하였으며, 1833년(순조 33년) 공조판서에 추증되고 고종 13년(1876)에 충의공 시호를 내렸다.

▲ 엄흥도 묘역 전경

단종의 시신을 염습했던 충의공 엄흥도 묘

 

의흥면 조림산 신남촌 진짜-김광순 원장 확인

2009년 09월 16일(수) 09:14 [군위신문]

 

 

↑↑ 택민국학연구원 학술조사단과 김광순 원장이 문헌연구를 통해 밝혀낸 군위군 의흥 조림산 신남촌에 있는 엄흥도의 묘. 위의 것이 엄흥도의 묘이며 아래는 가묘다.

ⓒ 군위신문

 

군위군 의흥면 조림산 신남촌에 있는 충의공 엄흥도 묘가 진짜 임이 입증되고 있다.

 

죽음을 무릅쓰고 단종의 시신을 염습했던 충의공 엄흥도의 묘소가 군위에 있음이 확인됐다.

 

김광순 택민국학연구원장(경북대 명예교수·사진)은 지난 10일 울산, 청주, 문경, 안동 등 전국의 영월 엄씨 세거지를 답사하고 탐문 조사한 결과, 엄흥도의 묘가 현재 영월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군위군 의흥에 있음을 밝혀냈다.

 

김 원장은 학술조사단, 보건대 강영숙 연구원간사, 배계용 상임연구원 등과 함께 국학연구론총 제3집에 발표한 논문 ‘충의공 엄흥도(忠毅公 嚴興道)의 삶과 묘소 진위에 관한 고찰’을 통해 단종의 시신을 염습한 엄흥도의 도피생활과 그의 묘소 진위에 대해 이같이 규명했다.

 

김 원장은 “엄흥도가 은거하여 생을 마치고 묻힌 묘소가 있다고 제시된 곳은 영월과 청주, 경상도 의흥 세 곳 중의 하나로 알려져 왔는데 충의공실기와 영월엄씨파보(寧越嚴氏波譜) 등의 기록을 근거로 엄흥도의 묘소가 의흥에 있다는 결정적인 증거를 찾아냈다”고 밝혔다.

 

“의흥의 광순문(光舜門)이 수대에 걸쳐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는 의흥 조림산(鳥林山) 신남촌(身南村)에 있는 엄흥도의 묘소를 잘 보존하고 있는 것은 엄흥도가 은거한 곳이 의흥이고 화본리의 묘소가 진묘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었다”는 김 원장은 “단종 시신을 수습할 때 엄흥도를 은밀하게 도운 아들 엄광순(嚴光舜)의 묘와 엄흥도의 묘가 의흥 신남촌 산등 하나를 사이에 두고 위치하고 있어 부자간의 은둔했던 삶의 궤적을 짐작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택민국학연구원 학술조사단은 이번 엄흥도 묘소의 진위 확인과 더불어 의흥의 영월엄씨 22세손 엄철업(嚴哲業) 등이 장(狀)을 올려 영조 9년(1733) 엄씨 종손에게 군역과 복호(復戶·세금)를 면제하는 완문(完文)이 내려졌음도 이번에 밝혀냈다. 이 완문은 의흥 종손이 약 300년 전부터 내용도 모르고 보관해 온 것으로, 학술조사단 김광순 원장은 의흥 광순문이 엄흥도의 자손임을 조정으로부터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귀중한 문서임을 밝혀냈다.

 

조선조 6대 임금 단종은 세조 3년(1457) 6월에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봉되어 강원도 영월에 유배되었다가 같은해 9월 경상도 순흥에 유배되었던 금성대군이 단종의 복위를 계획하다가 발각되자 서인(庶人)으로 강봉, 10월에 죽음을 당하였다. 엄흥도는 단종이 죽자 신변의 위험을 무릅쓰고 방치된 단종의 시신을 염습하여 자신의 선산인 동을지산(冬乙旨山)에 묻고 영월에서 살 수 없어서 영남으로 몸을 피했다고 전해진다.

군위신문 기자 kunwinews@hanmail.net

엄흥도 묘역 위치도

 소재지 : 강원도 영월읍 팔괴리 창평산 186                                                         화살표 ↑ 부근에 엄흥도 묘역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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