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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흥도 묘 written by 한국의 능원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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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흥도 묘역 뒷편에서 내려다 본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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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홀로 42차 능원묘 답사에서 다녀 왔습니다. 길가의 묘역 입구 돌 안내판을 보고 그 방향으로 들어 갔다가 한참 헤메고 보니 돌 안내판 길 건너편 언덕에 있었습니다. 2004년도에 성역화 사업의 일환으로 묘역 정비가 깔끔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자료를 정리하다 보니 군위에 있는 묘가 진짜 엄흥도 묘로 확인되었다는 기사가 있네요... 하단 기사 참고하시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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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 안내판 도로 건너편 계단으로 올라야... |
▲ 묘역 입구 도로 건너편에 안내 비석들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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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제6대 단종대왕이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강원도 영월에 유배되었을 때 충의공은 이 고장 호장직(戶長職)에 있었다.
밤낮으로 대왕의 거소(居所) 청령포를 바라보고 대왕이 무사하기를 기원하던 중 어느날 달 밝은 고요한 밤에 청령포 대왕의 거소에서 슬프고 애끊는 비명의 곡성이 들려오므로 황급히 강을 건너가 진배하니 대왕은 울음을 멈추고 “이 심야엔 웬 사람이 나를 찾는가?” 하고 물으니, “소신은 이 고장 영월호장 엄흥도이옵니다”라고 대답하고 옥안을 바라보니 대왕은 “육지고도(陸地孤島)인 이곳 청령포에 유배된 이후 밤마다 꿈속에서 신하들을 보고 추억을 회상하며 탄식하고 지내던 중 비조불입인 이곳에서 너를 보니 육신을 상봉한 것 같구나. 그대는 실로 초야에 묻힌 선인이로구나!”하고 반갑게 맞이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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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묘역으로 오르는 계단이 길고 가파릅니다. |
▲ 계단을 다 올라서 내려다 본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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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후 호장 엄홍도는 매일 밤 풍우를 가리지 않고 문안을 드렸으며 그해 여름 큰 장마로 인하여 대왕은 청령포 어소에서 영월읍 영흥리 관풍헌에 침소를 옮기게 되어 밤마다 객사 동편에 있는 자규루에 올라 자규시르 읊으면서 지내던 중 금부도사 왕방연(王邦衍)이 가지고 온 사약을 받고 승하하니, 그 옥체는 동강물에 던져지고 시녀는 동강절벽(후일에 낙화암이라고 함)에서 투신절사(投身節死)하였는데 이 때가 매우 추운 겨울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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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년 성역화 사업으로 묘역이 깨끗하게 조성되어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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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장 엄흥도는 군수에게 성장(聖裝)을 청하였으나 세조를 두려워하므로 성사치 못하자 즉시 서강과 동강이 합류하는 곳으로 달려가 그곳에서 대기하였다 옥체를 인양하여 미리 준비한 관에 봉안하고 가족들과 같이 운구하여 영월군 서북쪽 동을지산(冬乙支山)에 암장하고 자취를 감추었다. 호장 엄흥도의 충성은 인정으로 된 것이 아니고 하늘이 내렸다하여 후세인들이 그를 항상 추모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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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우측에서 바라 본 엄흥도 묘역 전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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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9년(영조 34년) 그 벼슬을 공조판서로 추봉하여 사육신 정렬에 배향하고 육신사(六臣祠)에 봉안·치제케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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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흥도 묘역 전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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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흥도 묘역 위치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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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강원도 영월읍 팔괴리 창평산 186 화살표 ↑ 부근에 엄흥도 묘역이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