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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선군 묘(충남 기념물 6호) written by 한국의 능원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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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숭선군(인조의 서1남) 묘역 뒤에서 바라 본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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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선군(崇善君)의 이름은 징(徵)이고, 인조의 다섯째 아들이며, 어머니는 귀인 조씨(趙氏)이다. 효종 2년(1651) 누이인 효명옹주의 시할아버지 김자점의 역모에 관계되었다 하여 강화도에 유배되었다가, 효종 7년(1656)에 석방되어 벼슬과 지위를 되돌려 받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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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묘역은 울타리가 둘려져 있으며, 입구의 문은 열려 있습니다. 묘역 바로 앞에는 배롱나무(?) 한 그루가 서 있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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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 2년(1624) 이괄(李适)의 난으로 인조를 따라 공주(公州)로 잠시 피신한 일이 있었는데, 궁으로 돌아와서도 항상 공주를 그리워하더니 숙종 16년(1690) 세상을 떠날 때 공주에 묻어 줄 것을 유언하였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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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숭선군 묘역 전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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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당시 왕족의 무덤은 도성(都城)에서 90리 밖으로 나갈 수 없다는 법 때문에 중단되었고, 그 후 후손에 의해 다시 이곳으로 옮겨져 만들어졌다. 시호는 효경(孝敬)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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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숭선군 묘역내 장명등과 문인석(문인석 한 쌍뿐인데, 자료에는 무인석도 있다고... 한 사람이 자료 잘못 만들면 돌고 돌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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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 주위에는 ㄷ자형으로 담장을 쌓았으며, 묘 앞에는 묘비와 장명등이 있고 좌우에는 무인석과 문인석이 1쌍씩 세워져 있다. 봉분 아랫부분은 화강석으로 둘레석을 둘렀으며, 묘비에 쓰여진 기록을 통해 숭선군과 부인의 합장묘로 영조 42년(1766)에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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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묘역 우측면 전방에서 바라 본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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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 오룡리 귀부(충남 유형문화재 61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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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묘역 입구 도로변 논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코 앞에 두고도 시간이 없어서 촬영을 못하여 문화재청 사진을 사용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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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부는 비받침부분을 일컫는 말로, 대개 거북 모양을 띠고 있다. 이 귀부는 조선 제 16대 임금인 인조의 아들 숭선군의 신도비를 세우기 위해 만든 것이나 비를 세우지 못하고 중단되어 귀부만 남은 것이다. 귀부는 네모난 바닥돌과 큼직한 한돌로 만들었다. 앞으로 쑥 뻗은 머리부분은 용의 모습으로 변했고, 목에는 비늘무늬를 장식하였으며, 등에는 비를 끼우는 곳인 비좌(碑座)를 갖추었다. 통일신라시대나 고려시대의 귀부에 비해 조각 솜씨는 떨어지나 전체적으로 힘차 보이는 조선 중기의 작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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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대 인조대왕(仁祖大王) [1595 ~ 1649]
정비 인열왕후 한씨(仁烈王后 韓氏) [1594 ~ 1635] 적1남 왕세자(王世子) [1612 ~ 1645] 소현세자(昭顯世子)
제1계비 장렬왕후 조씨(莊烈王后 趙氏) [1624 ~ 1688]
서1남 숭선군(崇善君) [1639 ~ 1690] (폐귀인 조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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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선군 묘역 위치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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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상단 좌측의 A 지점에 숭선군 묘역이 있으며, 시작 부분에 귀부가 있습니다. 소재지 : 충남 공주시 이인면 오룡리 산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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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좌측 하단의 A 지점에 숭선군 묘역이 있습니다. 남공주IC를 기준으로 위치를 가늠하시기 바랍니다. |